끝까지 할 수 있는 용기
『용감한 아이린』 그림책 자세히보기
악기를 배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지요. 어떤 곡이든 악보만 보고 연주할 수 있을 실력이 되려면 꽤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기타를 연주하려면 손에 굳은살이 어느 정도 배겨야 하고, 드럼을 치려면 같은 박자를 오랫동안 두드리는 연습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처럼 음계가 있는 악기로 웬만한 곡을 연주하려면 몇 년의 시간이 걸리기도 합니다. 저희 첫째는 꼬박 8년을 바이올린을 배우고 있는데, 전공을 시키려고 가르친 것은 아닙니다. 저희 부부는 악기를 배우는 것이, 같은 것을 여러 번 하는 지루함과 새로운 것을 익히는 어려움을 이겨내는 힘을 기르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이가 멋지게 연주를 해내는 순간보다, 더듬더듬 같은 곡을 반복해서 연습하는 모습이 더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함께 볼 그림책은 윌리엄 스타이그의 『용감한 아이린』입니다. 처음 제가 이 책을 접했을 때, 아이들이 이 책을 좋아할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주인공 아이린은 자신이 감당하기 힘들고 어려운 일을 끝까지 해내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독자는 그 일의 결과와 상관없이, 아이린이 이 일을 한다는 것 자체로 감동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쉽고 간단하게 해낼 수 있는 일을 좋아하지, 힘들고 어려운 일은 싫어합니다. 요즘 대중매체도 무언가를 쉽게 하는 것이 좋다고 말합니다. 무엇이든 클릭 한 번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광고하고, 공부도 책을 읽으며 하는 것이 아니라 영상을 보며 하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아이린의 선택과 행동에 공감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림책 표지에는 자신의 몸집만 한 상자를 들고 매서운 눈보라를 뚫고 가는 한 여자아이가 보입니다. 이 아이가 그림책의 주인공 ‘아이린’입니다. 아이린의 엄마는 옷을 만드는 사람이지요. 아주 멋지고 예쁜 무도회 드레스를 완성 시킨 엄마는 오늘따라 시무룩한 표정입니다. 이 드레스를 주문하신 공작부인에게 가져다드려야 하는데 몸이 아프고 기운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이린은 아픈 엄마를 대신해 드레스를 가져다드리기로 했습니다.
드레스를 꼼꼼히 챙긴 아이린이 집을 나섰는데, 밖은 매서운 바람이 불고 매우 추웠습니다. 아이린은 자신의 몸집만 한 드레스 상자를 꼭 붙들고 눈바람을 맞으며 한 걸음 한 걸음 걸었지만, 바람이 얼마나 세게 불던지 쉽사리 걸음을 옮기기 어려웠지요. 그림책 페이지를 넘길수록 더 큰 시련을 겪는 아이린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 이리저리 휘청이던 아이린은 그만 드레스 상자를 떨어뜨리고 마는데, 이때 드레스가 눈바람에 날아가 버립니다. 아이린은 드레스를 열심히 만든 엄마의 모습과 이를 기다리고 있는 공작부인이 생각나 눈물이 솟구치지요. 하지만 아이린의 눈물마저 그대로 얼어버릴 만큼 눈바람은 사나웠습니다.
드레스는 바람에 날려 어디로 가버렸는지도 모르지만, 아이린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공작부인의 집으로 계속 가기로 합니다. 빈 상자라도 들고 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솔직히 말씀드리기 위해서지요. 아이린은 수북이 쌓인 눈 사이로 발을 질질 끌며 걸어가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짧은 겨울 해는 져버리고 맙니다.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변했기에, 아이린은 지금 가는 길이 맞는 길인지도 분별할 수 없었고 결국 길을 잃고 맙니다. 이 대목에서 독자는 아이린 같은 작은 꼬마가 춥고 어두운 눈보라 속에서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걱정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아이린이 멀리서 희미한 불빛을 발견합니다. 아이린은 다시 힘을 내서 산비탈을 내려가지만, 갑자기 발이 미끄러지며 눈 속에 빠집니다. 자신을 도와줄 사람도 없는 이곳에서 그냥 얼어 죽자고 생각하던 아이린에게 사랑하는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아이린은 다시 일어나, 드레스 상자에 올라탄 채 미끄러져 산비탈을 내려옵니다.
이제 공작부인께 나쁜 소식을 알려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걸음을 옮기던 아이린 앞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바로 엄마가 만든 드레스가 나무에 걸려 있는 것이었지요. 아이린은 드레스를 다시 상자에 고이 접어 넣고 공작부인의 집 현관문을 두드렸습니다. 공작부인과 하인들은 이 매서운 눈발을 헤치고 드레스를 전해 준 아이린을 환영하며 따뜻한 음식을 대접하고, 고생한 아이린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다행히 젖은 드레스는 하인들의 솜씨로 말쑥하게 다려져 공작부인은 드레스를 입고 무사히 무도회를 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이린도 멋진 신사들과 함께 춤을 추며 무도회를 즐긴 후 다음 날 공작부인의 배려로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옵니다.
이 그림책에서 주요 서사는 사나운 겨울 눈보라를 헤치고 걸어가는 아이린의 모습입니다. 아이린은 작고 어린아이이기 때문에 이렇게 어렵고 힘든 상황을 헤쳐 나갈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이린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합니다. 분명 실패할 것이 뻔하고, 계속 더한 어려움이 닥쳐오더라도 말이지요. 왜 그림책 작가는 아이린에게 계속해 더 큰 어려움이 닥치는 이야기를 만들었을까요?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아이린의 모습 자체가 너무 아름답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린이 그 일을 성공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아이린이 최선을 다해 그 일을 감당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 감동적이었습니다.
저는 2023년 가을에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4학년까지 약 25명의 아동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그림책 수업을 8주 진행하였습니다. 『용감한 아이린』은 이 수업의 마지막 그림책이었습니다. 한 그룹의 수업 시간은 40분이었는데, 이 날은 책을 읽는 것만 20분이 넘게 소요되었습니다. 그동안 수업 시간을 고려해 책을 읽는데 15분 남짓 걸리는 그림책으로만 수업했습니다. 마지막 수업은 놀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제가 활동지를 나누어 주자 ‘선생님 마지막 날 어떻게 이럴 수 있어요?’라고 하며 배신당한 듯한 얼굴을 하는 아이도 있었지요. 하지만 책을 읽기 시작하자 아이들은 놀랍도록 집중했습니다. 아이들 대부분은 그림책을 한두 장 더 넘기면, 아이린의 시련이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책을 넘겨도 아이린에게 시련이 거듭되자 자기의 눈을 가리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특히, 아이린이 희미한 불빛을 발견했을 때, 바로 다음 장을 넘기면 누가 아이린을 구해주거나, 아이린이 공작저로 안전하게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린이 눈구덩이에 빠졌다고 하자,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순간 절망이 스쳤습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그림 텍스트에서 아이린이 상자 위에 올라서 미끄럼을 타자, 곧바로 안도하며 “선생님, 아이린이 잘 도착하지요?”하고 제 얼굴을 쳐다보며 대답을 요구했지요. 저는 조용히 뒷장을 넘겨 책을 이어서 읽어주었답니다.
이 후 아이린은 공작저에 도착합니다. 나무에 걸려 있는 드레스를 발견하지요. 하지만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은 아이린이 드레스를 다시 찾아 자신의 임무를 성공하였다는 것보다, 아이린이 무사히 공작저에 도착했다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제가 활동지에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어떤 생각을 했는지 적어주세요.’라고 한 질문에 아이들 대부분은 ‘추운 눈보라를 뚫고 지나가는 아이린이 대단하고 용감하다고 생각했다’라고 적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이린에게 기적이 일어난 것 같다. 드레스를 날려버렸는데, 다시 찾았기 때문이다’라고 적은 아이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아이들의 반응은, 아이린이 드레스를 전달하는 자신의 임무를 수행했는지보다는 끝까지 자기가 맡은 일을 완수하려고 했던 노력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초등학교 4학년 남아
초등학교 3학년 여아
초등학교 2학년 여아
저는 그림책을 사랑하는 성인들을 만날 기회가 종종 있습니다. 최근 한 모임에서 이번 달 함께 읽을 그림책을 추천해달라는 글에 초등학교 교장까지 지내시고 지금은 어린이 도서관 관장을 하시는 한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림책이 어떤 메시지를 전하는지 중요하겠지만, 저는 책이 전하는 메시지보다 그 책이 얼마나 즐거운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을만한 책을 많이 찾게 되고, 저도 그런 책이 좋더라구요.”
문학이 독자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은 “즐거움”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 즐거움이 어떤 즐거움인지에 대한 분별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음식을 먹을 때, 아이들은 당연히 ‘맛있는’ 음식을 좋아합니다. 우리나라에는 된장찌개나 생선구이, 제육볶음 등 맛있는 음식이 참 많지요. 하지만 초콜릿도 맛있고, 치킨이나 피자도 맛있으며, 우리가 흔히 불량식품이라고 말하는 길거리의 조잡한 간식거리들도 맛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단순히 입에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 영양도 높으며 맛있는 음식을 찾지요. 그림책도 이와 같습니다. 아이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면서 즐거움을 주는지 중요하지요. 윌리엄 스타이그는 탁월한 이야기꾼입니다. 우리에게 어떠한 일의 결과보다 그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렇게 재미있는 그림책을 통해 전달하고 있으니까요.
| 강다혜 | 성균관대학원 아동청소년학과 박사과정 수료 시와 글을 쓰며 책을 좋아하던 저는 국문학을 전공하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총신대 유아교육학과에 입학하였을 때 한편으로는 좌절했지만,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하나님이 내가 제일 잘 하는 곳으로 나를 이끄셨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대학 4년을 보내면서 제가 깨달은 것은 역시 하나님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유아교육의 분야 중에서도 유아문학이 또 그 중에서 그림책이 저에게 가장 즐거웠고 또 적성에 맞았기 때문입니다. 그 후로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에 입학해 현은자 교수님 밑에서 박사과정을 마쳤습니다. 지금은 4명의 자녀와 함께 공기 좋고 초목이 푸르른 경상남도 합천에서 끝나지 않는 집안일과 육아로 정신없이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그림책 속 세계관을 연구하여 다음 세대에 진심으로 추천해줄 수 있는 좋은 그림책을 발견하고 소개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
끝까지 할 수 있는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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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를 배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지요. 어떤 곡이든 악보만 보고 연주할 수 있을 실력이 되려면 꽤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기타를 연주하려면 손에 굳은살이 어느 정도 배겨야 하고, 드럼을 치려면 같은 박자를 오랫동안 두드리는 연습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처럼 음계가 있는 악기로 웬만한 곡을 연주하려면 몇 년의 시간이 걸리기도 합니다. 저희 첫째는 꼬박 8년을 바이올린을 배우고 있는데, 전공을 시키려고 가르친 것은 아닙니다. 저희 부부는 악기를 배우는 것이, 같은 것을 여러 번 하는 지루함과 새로운 것을 익히는 어려움을 이겨내는 힘을 기르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이가 멋지게 연주를 해내는 순간보다, 더듬더듬 같은 곡을 반복해서 연습하는 모습이 더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함께 볼 그림책은 윌리엄 스타이그의 『용감한 아이린』입니다. 처음 제가 이 책을 접했을 때, 아이들이 이 책을 좋아할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주인공 아이린은 자신이 감당하기 힘들고 어려운 일을 끝까지 해내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독자는 그 일의 결과와 상관없이, 아이린이 이 일을 한다는 것 자체로 감동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쉽고 간단하게 해낼 수 있는 일을 좋아하지, 힘들고 어려운 일은 싫어합니다. 요즘 대중매체도 무언가를 쉽게 하는 것이 좋다고 말합니다. 무엇이든 클릭 한 번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광고하고, 공부도 책을 읽으며 하는 것이 아니라 영상을 보며 하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아이린의 선택과 행동에 공감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림책 표지에는 자신의 몸집만 한 상자를 들고 매서운 눈보라를 뚫고 가는 한 여자아이가 보입니다. 이 아이가 그림책의 주인공 ‘아이린’입니다. 아이린의 엄마는 옷을 만드는 사람이지요. 아주 멋지고 예쁜 무도회 드레스를 완성 시킨 엄마는 오늘따라 시무룩한 표정입니다. 이 드레스를 주문하신 공작부인에게 가져다드려야 하는데 몸이 아프고 기운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이린은 아픈 엄마를 대신해 드레스를 가져다드리기로 했습니다.
드레스를 꼼꼼히 챙긴 아이린이 집을 나섰는데, 밖은 매서운 바람이 불고 매우 추웠습니다. 아이린은 자신의 몸집만 한 드레스 상자를 꼭 붙들고 눈바람을 맞으며 한 걸음 한 걸음 걸었지만, 바람이 얼마나 세게 불던지 쉽사리 걸음을 옮기기 어려웠지요. 그림책 페이지를 넘길수록 더 큰 시련을 겪는 아이린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 이리저리 휘청이던 아이린은 그만 드레스 상자를 떨어뜨리고 마는데, 이때 드레스가 눈바람에 날아가 버립니다. 아이린은 드레스를 열심히 만든 엄마의 모습과 이를 기다리고 있는 공작부인이 생각나 눈물이 솟구치지요. 하지만 아이린의 눈물마저 그대로 얼어버릴 만큼 눈바람은 사나웠습니다.
드레스는 바람에 날려 어디로 가버렸는지도 모르지만, 아이린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공작부인의 집으로 계속 가기로 합니다. 빈 상자라도 들고 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솔직히 말씀드리기 위해서지요. 아이린은 수북이 쌓인 눈 사이로 발을 질질 끌며 걸어가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짧은 겨울 해는 져버리고 맙니다.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변했기에, 아이린은 지금 가는 길이 맞는 길인지도 분별할 수 없었고 결국 길을 잃고 맙니다. 이 대목에서 독자는 아이린 같은 작은 꼬마가 춥고 어두운 눈보라 속에서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걱정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아이린이 멀리서 희미한 불빛을 발견합니다. 아이린은 다시 힘을 내서 산비탈을 내려가지만, 갑자기 발이 미끄러지며 눈 속에 빠집니다. 자신을 도와줄 사람도 없는 이곳에서 그냥 얼어 죽자고 생각하던 아이린에게 사랑하는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아이린은 다시 일어나, 드레스 상자에 올라탄 채 미끄러져 산비탈을 내려옵니다.
이제 공작부인께 나쁜 소식을 알려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걸음을 옮기던 아이린 앞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바로 엄마가 만든 드레스가 나무에 걸려 있는 것이었지요. 아이린은 드레스를 다시 상자에 고이 접어 넣고 공작부인의 집 현관문을 두드렸습니다. 공작부인과 하인들은 이 매서운 눈발을 헤치고 드레스를 전해 준 아이린을 환영하며 따뜻한 음식을 대접하고, 고생한 아이린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다행히 젖은 드레스는 하인들의 솜씨로 말쑥하게 다려져 공작부인은 드레스를 입고 무사히 무도회를 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이린도 멋진 신사들과 함께 춤을 추며 무도회를 즐긴 후 다음 날 공작부인의 배려로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옵니다.
이 그림책에서 주요 서사는 사나운 겨울 눈보라를 헤치고 걸어가는 아이린의 모습입니다. 아이린은 작고 어린아이이기 때문에 이렇게 어렵고 힘든 상황을 헤쳐 나갈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이린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합니다. 분명 실패할 것이 뻔하고, 계속 더한 어려움이 닥쳐오더라도 말이지요. 왜 그림책 작가는 아이린에게 계속해 더 큰 어려움이 닥치는 이야기를 만들었을까요?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아이린의 모습 자체가 너무 아름답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린이 그 일을 성공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아이린이 최선을 다해 그 일을 감당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 감동적이었습니다.
저는 2023년 가을에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4학년까지 약 25명의 아동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그림책 수업을 8주 진행하였습니다. 『용감한 아이린』은 이 수업의 마지막 그림책이었습니다. 한 그룹의 수업 시간은 40분이었는데, 이 날은 책을 읽는 것만 20분이 넘게 소요되었습니다. 그동안 수업 시간을 고려해 책을 읽는데 15분 남짓 걸리는 그림책으로만 수업했습니다. 마지막 수업은 놀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제가 활동지를 나누어 주자 ‘선생님 마지막 날 어떻게 이럴 수 있어요?’라고 하며 배신당한 듯한 얼굴을 하는 아이도 있었지요. 하지만 책을 읽기 시작하자 아이들은 놀랍도록 집중했습니다. 아이들 대부분은 그림책을 한두 장 더 넘기면, 아이린의 시련이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책을 넘겨도 아이린에게 시련이 거듭되자 자기의 눈을 가리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특히, 아이린이 희미한 불빛을 발견했을 때, 바로 다음 장을 넘기면 누가 아이린을 구해주거나, 아이린이 공작저로 안전하게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린이 눈구덩이에 빠졌다고 하자,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순간 절망이 스쳤습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그림 텍스트에서 아이린이 상자 위에 올라서 미끄럼을 타자, 곧바로 안도하며 “선생님, 아이린이 잘 도착하지요?”하고 제 얼굴을 쳐다보며 대답을 요구했지요. 저는 조용히 뒷장을 넘겨 책을 이어서 읽어주었답니다.
이 후 아이린은 공작저에 도착합니다. 나무에 걸려 있는 드레스를 발견하지요. 하지만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은 아이린이 드레스를 다시 찾아 자신의 임무를 성공하였다는 것보다, 아이린이 무사히 공작저에 도착했다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제가 활동지에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어떤 생각을 했는지 적어주세요.’라고 한 질문에 아이들 대부분은 ‘추운 눈보라를 뚫고 지나가는 아이린이 대단하고 용감하다고 생각했다’라고 적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이린에게 기적이 일어난 것 같다. 드레스를 날려버렸는데, 다시 찾았기 때문이다’라고 적은 아이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아이들의 반응은, 아이린이 드레스를 전달하는 자신의 임무를 수행했는지보다는 끝까지 자기가 맡은 일을 완수하려고 했던 노력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초등학교 4학년 남아
초등학교 3학년 여아
초등학교 2학년 여아
저는 그림책을 사랑하는 성인들을 만날 기회가 종종 있습니다. 최근 한 모임에서 이번 달 함께 읽을 그림책을 추천해달라는 글에 초등학교 교장까지 지내시고 지금은 어린이 도서관 관장을 하시는 한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문학이 독자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은 “즐거움”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 즐거움이 어떤 즐거움인지에 대한 분별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음식을 먹을 때, 아이들은 당연히 ‘맛있는’ 음식을 좋아합니다. 우리나라에는 된장찌개나 생선구이, 제육볶음 등 맛있는 음식이 참 많지요. 하지만 초콜릿도 맛있고, 치킨이나 피자도 맛있으며, 우리가 흔히 불량식품이라고 말하는 길거리의 조잡한 간식거리들도 맛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단순히 입에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 영양도 높으며 맛있는 음식을 찾지요. 그림책도 이와 같습니다. 아이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면서 즐거움을 주는지 중요하지요. 윌리엄 스타이그는 탁월한 이야기꾼입니다. 우리에게 어떠한 일의 결과보다 그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렇게 재미있는 그림책을 통해 전달하고 있으니까요.
강다혜 | 성균관대학원 아동청소년학과 박사과정 수료
시와 글을 쓰며 책을 좋아하던 저는 국문학을 전공하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총신대 유아교육학과에 입학하였을 때 한편으로는 좌절했지만,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하나님이 내가 제일 잘 하는 곳으로 나를 이끄셨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대학 4년을 보내면서 제가 깨달은 것은 역시 하나님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유아교육의 분야 중에서도 유아문학이 또 그 중에서 그림책이 저에게 가장 즐거웠고 또 적성에 맞았기 때문입니다. 그 후로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에 입학해 현은자 교수님 밑에서 박사과정을 마쳤습니다. 지금은 4명의 자녀와 함께 공기 좋고 초목이 푸르른 경상남도 합천에서 끝나지 않는 집안일과 육아로 정신없이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그림책 속 세계관을 연구하여 다음 세대에 진심으로 추천해줄 수 있는 좋은 그림책을 발견하고 소개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