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이야기와 그림책
제가 그림책의 소재로서 ‘귀신 이야기’를 연구하기 시작한지 꼬박 2년이 되었습니다. 2021년 아직 ‘코로나 19’가 우리의 삶을 좌지우지 흔들고 있을 무렵 어째서인지 세상은 ‘좀비’라는 캐릭터에 열광했습니다. 2016년 ‘부산행’이라는 영화가 개봉하여 대 흥행을 하였고, 연이어 2019년 한 OTT 회사에서 만든 ‘킹덤’이라는 드라마가 소위 대박을 터트렸는데, 이는 조선 땅에 나타난 ‘좀비’를 소재로 한 이야기였습니다. 이 드라마가 2020년 시즌 2를, 2021년 시즌 3를 연달아 만들어 내면서 ‘좀비’라는 캐릭터는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이는 하나의 아이템이 되었습니다. ‘Tiktok’이라는 동영상 플랫폼에 한 때 초중고등학생을 중심으로 좀비사진 찍기가 유행한 적이 있지요. 이미 아이들은 ‘좀비 놀이’라며 시체처럼 아무 곳에나 널브러져 있다가 갑자기 일어나서 다른 친구들을 잡아 좀비로 오염시키는 놀이가 유행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시체 흉내를 내거나 괴물 흉내를 내는 것을 짧은 영상으로 찍어 동영상 플랫폼에 공유하고 서로 즐겼습니다.
이런 문화 가운데 아이들을 지켜내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2013년에 큰 아이를 어린이집에 처음 보내고, 10월이 되자 어린이집에서 안내장이 하나 왔습니다. 어린이집에서 할로윈 파티를 하니, 아이들에게 코스튬을 입혀서 보내라는 것이었죠. 그때 저는 별 생각 없이 공주 드레스를 하나 입혀 보낼까 하다가 마땅한 의상이 없어서 그냥 아이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날 밤 어린이집 선생님께 사진을 몇 장 받고 저와 신랑은 기겁을 했습니다. 그 사진에는 귀신과 마녀 분장을 한 아이들이 손에는 호박 바구니를 들고, 마치 귀신이 집이 된 것 같은 어린이집 교실을 돌아다니는 모습이 찍혀 있었습니다. 의상을 준비해가지 않은 저희 아이도 마녀분장을 하고 있었죠. 왜 어린이집에서는 우리나라 문화도 아닌 외국 문화인 할로윈을 이렇게 열정적으로 준비했을까요? 저희 부부는 앞으로 절대 10월 말에는 어린이집을 보내지 말자 다짐했지요. 10월 31일이 되면, 아직도 라디오에서는 10월의 마지막 날을 아쉬워하는 한 유행가의 노래가 흘러나오지만, 아이들과 관련된 모든 곳에서는 ‘할로윈’이라는 아이템으로 상업적 이득을 얻기 위해 정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희 부부는 귀신의 축제로부터 우리 아이들을 지켜내기 위해 매년 고군분투하였지요.
그러나 우리 아이들이 자라날수록 부모가 아이들의 문화를 통제하는 것은 점점 어려워집니다. 저희 집 둘째가 초등학교 1학년이던 어느 날 집에 와서 “엄마, 좀비는 진짜 있는 거예요?” 하고 물었습니다. 학교에서 친구들이 조선시대에 이미 우리나라에 좀비가 존재했다고 하더랍니다. 그러면서 친구들과 나눈 대화를 이야기 합니다.
“엄마 ○○은 귀신을 봤대. 그리고 ★★이도 아빠가 귀신으로 보인 적이 있대.
게다가 ▲▲이는 나보고 우리나라에 좀비가 살고 있으니까 항상 조심해야 한대.
그런데 우리 동네에 좀비가 있으면 어떻게 하지?”
아이에게 ‘좀비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매일 귀신만 생각하니까 가족들까지도 그렇게 보이는 거 아니냐’,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귀신들린 자도 쫒아내신다’, ‘귀신 이야기가 결국 너에게 두려움을 주니 친구들에게 귀신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제안해라’ 라며 아이를 한참 달래었죠. 하지만 그럼에도 무서워 엄마랑 자고 싶다고 조르는 아이를 며칠 동안 한 방에 재우며, 귀신에 대한 두려움은 그 이야기를 들은 시점부터 우리 아이들의 내면 깊은 곳까지 침투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단순히 귀신 이야기를 들은 순간만 아이들을 무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두고두고 아이들을 계속 괴롭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동과 공포라는 감정에 대해 연구한 많은 학자들은 대학생이 되어서도 어릴 적 경험했던 공포에 대한 잔류불안을 26% 정도 느끼고 있으며[1], 아동이 느끼는 공포의 대상은 주로 ‘귀신’과 ‘초자연적 힘’, ‘동물’등에 공포를 많이 느낀다고 밝혔습니다[2]. 또한 그림책 속에 나타난 비현실적 공포를 조사한 연구에서는 유아가 과도한 공포를 느끼거나 공포에 적절한 대처를 찾지 못하면 막연한 불안감에 시달릴 수 있다고 말하며, 이는 성장한 이후에도 공포심이 누적되어 세상에 대한 방어적인 태도를 가지게 한다고 말하였습니다[3]. 그런데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유아들이 느끼는 공포의 대상은 그 아이들의 부모가 공포스러워 하는 대상과 같으며, 아이들은 ‘귀신’과 같은 초자연적인 공포를 부모 및 양육자에게서 학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4]. 어떤 사람들은 ‘공포문학’이 공포와 두려움을 이겨내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아이들에게 담대함과 용기를 가르쳐줄 가능성을 인정하기도 합니다[5]. 하지만 그러한 사람들도 아이들이 책을 읽는 시간동안 자신들이 감당하기 힘든 공포와 두려움을 느낀다는 사실은 부정하지 않습니다.
사실 그림책에 ‘귀신’이 등장인물로 나오는 경우는 예전부터 종종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옛이야기에는 귀신이나 도깨비가 등장하는 이야기가 많이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무속신앙은 귀신을 섬기는 신앙이었기 때문입니다. 조선 시대 우리나라에 처음 도착한 선교사님들의 기록에 따르면, 조선 사람들은 한 발짝 옮길 때마다 귀신에게 기도를 올렸다고 합니다. 집안 구석구석, 온 동네 구석구석에 다 귀신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백석의 시에 서선미가 그림을 그린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고인돌, 2018)은 부엌, 화장실, 대청마루, 집안 기둥, 광, 마을 어귀, 우물가 등 집안 구석구석과 마을 구석구석 모두 귀신이 있어서 너무 무섭다고 말하는 한 아이의 이야기입니다. 출판사는 ‘한 아이를 키우려면 마을 사람 모두가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라는 메시지를 이 책이 전한다고 하지만, 이 그림책의 글 텍스트는 ‘나는 이 마을에 태어나기가 잘못이다’로 시작해서 ‘마을은 온데간데 구신(귀신)이 돼서 나는 아무 데도 갈 수 없다’로 끝이 나지요. 아이는 집안과 마을을 다닐 때마다 귀신에게 쫓기는데, 이렇게 아이를 괴롭히는 귀신을 다른 귀신들이 물리쳐주는 장면이 한 두 컷 나오긴 합니다. 하지만 이목구비가 전혀 없는 달걀귀신이 무서워 도망가는 아이를 쫒아오는 그림과, 온 마을 구석구석에 귀신 숨어서 무섭다고 일관되게 말하는 글 텍스트를 보면, 이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정성을 기울이고 있는 것인가 의심이 듭니다.
집안 구석구석 귀신이 있다고 믿는 무속신앙을 우리의 민족정신으로 여겨 이를 가르치는 그림책도 많이 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언어세상 사파리에서 2003년에 기획해서 만든 <국시꼬랭이 시리즈>의 『똥떡』(이춘희 글, 박지훈 그림)입니다. <국시꼬랭이 시리즈>는 우리나라의 자투리 문화를 가르쳐주기 위한 정보 그림책 기획인데, 이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 뒷간 귀신을 섬기는 이야기인 것이죠. 이 그림책은 표지부터 재래식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는 아이의 위에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귀신이 앉아 있는 모습으로 무서운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저희 큰 아이는 6살 때 이 책을 서점에서 보고 무섭다고 울었습니다. 서점 베스트셀러 가판대에 이 책이 올라와 있었기에 누구나 아동 코너로 들어가면 이 그림책 표지를 볼 수 있었습니다. 저희 아이는 처음 이 그림책의 표지를 보고 흠칫 놀라서 유심히 보더니, 귀신이 그려져 있다며 기겁을 하고 도망을 갔지요.
그런데 최근 출판되는 그림책에서 ‘귀신’과 관련된 심상치 않은 모습들이 포착되는데, 이는 귀신을 우리 주변에 항상 존재하는 친근한 존재로 그리고 있는 작품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윤정주 작가는 냉장고 속의 음식들의 이야기를 그린 『꽁꽁꽁』 시리즈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 2021년 『꽁꽁꽁 좀비』를 내놓았습니다. 이 그림책은 집 주인 가족들이 여행을 간 사이 냉장고 속에서 오래된 음식들이 썩어가는 모습을 ‘좀비’에 빗대어 나타냈습니다. 이 그림책 속 주인공 자두 삼총사는 지우네 가족들이 여름휴가를 떠난 김에 냉장고 속 식구들도 모처럼 푹 쉬기로 했다고 말하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얼마나 잤을까 요란한 천둥소리에 잠에서 깬 자두 삼총사는 흐물흐물해진 과일과 채소들이 자신들을 잡아먹을 듯 다가와 깜짝 놀라며 냉장고 야채칸에서 나와 위로 올라갑니다. 고추장과 된장 등 비교적 오래 보관이 되는 음식들은 그래도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 다행이라며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갑자기 옆에 있던 냄비도 부글부글 끓기 시작합니다. 냄비 안에 있던 카레 가족이 좀비가 되어 튀어 나왔기 때문이죠. 자두 삼총사는 우유좀비, 요거트 좀비, 콩자반 좀비 등 좀비로 변한 여러 음식들을 피해 맨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지요. 그 곳에 있던 딸기쨈과 초코바, 치즈는 자두 삼총사에게 너희가 좀비인지 아닌지 확인이 필요하다며 그들을 경계합니다. 서로가 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에 안심할 즈음 좀비가 된 모든 음식들이 냉장고 맨 꼭대기로 앞 다투어 올라오는 긴박한 상황이 그려지고, 이를 제지하기 위해 사이다가 이산화탄소를 내뿜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지우네 가족들이 집에 도착하여 냉장고 문을 여는 바람에 냉장고 속 친구들은 모든 일을 멈추고 그 자리에 얼어붙습니다. 이 그림책은 태풍으로 인해 원래 예정된 여행보다 3일이나 늦어버린 지우네 식구들은 냉장고 안의 참사를 확인하고 냉장고를 깨끗이 치우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처음 이 그림책을 보았을 때, 썩어가는 음식들을 좀비로 비유한 작가의 상상이 기발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작가의 이러한 상상력이 우리 아이들에게 가지고 올 파장이 걱정되기도 하였습니다. 제가 살림을 잘하지 못하기 때문에 저희 집 냉장고에서도 종종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만 저는 이를 ‘좀비’라는 것과 연결시켜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작가가 이런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는 것은 우리 삶 속에 귀신의 문화가 굉장히 깊이 들어와 있다는 것을 방증합니다. 요즘 서점과 도서관에는 ‘빅북 그림책’이라고 해서 가로 380mm, 세로 500mm의 그림책도 출판되어 있는데, 이 그림책도 빅북 사이즈로 이미 도서관에 들어가 있지요. 어느 날 동네 도서관을 갔다가 이 그림책을 빅북 사이즈로 아이에게 읽어주는 엄마를 보았습니다. 저와 같이 자신의 집 냉장고에서 이러한 상황을 많이 겪어 보셨는지 그 엄마는 너무 재미있어 하며 굉장히 실감나게 아이에게 이 그림책을 읽어주었습니다. 좀비 목소리를 흉내내며 그림책을 읽어주다가 급기야는 좀비처럼 걸어다니며 아이를 잡으러 다니셨습니다. 그러자 아이는 “엄마 하지마, 무서워~”라는 말을 반복하며 엄마를 피해 도서관을 뛰어 다녔지요. 아이에게 재미있게 책을 읽어주는 다정한 엄마가 한 순간 귀신으로 변해 아이를 위협하는 모습이 좋게 보이지만은 않았지요. 왜냐하면 아무리 좋게 포장을 해도 아이에게 귀신은 무서운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나의 엄마가 귀신이 되다니요. 물론 한때의 장난이지만, 엄마가 귀신이 되어 아이를 위협하는 행동을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요? 좀비와 같은 귀신이 우리 생활 속에 친근한 존재가 된 것처럼 친근한 우리 가족들이 언제든지 좀비나 귀신이 될 수도 있는 것일까요?
신문 기사는 날마다 새로운 기술이 나왔다, 뭔가 획기적인 발견을 했다, 과학의 발전으로 우리의 삶이 예전과는 다를 것이다 떠들고 있지만, 우리의 문화는 귀신이 우리 삶에 함께 존재하고 있으며 이들을 의지해야한다는 무속 신앙의 세계도 잊지 말라고 끊임없이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새로운 문화를 개척해 나가는 것도 우리의 할 일이겠지만, 대중의 문화에 휩쓸리지 않고 중요한 것을 분별하며 가려내는 것도 우리가 할 일입니다. 우리 아이들의 영혼도 건강하게 가꾸려고 노력하는 신실한 부모들이 점점 늘어나길 바랍니다.
[1] Harrison & Cantor (1999) Tales from the screen: Enduring fright reactions to scary media. Media Psychology, Vol, 9. No, 2. 97-116.
[2] Sayfan & Lagattuta (2009) Scaring the Monster Away: Waht Children know about managing fears of real and imaginary creatures. Child Development. Vol, 80. No, 6. 1756-1774.
[3] 윤이나, 김민진 (2019) 유아 그림책에 제시된 비현실적 공포와 대처 방식 연구. 어린이문학교육연구. 20(4). 101-126.
[4] 구미향 (2009) 유아의 성, 연령, 정서행동문제 수준에 따른 유아가 두려움 목록 분석. 아동학회지. 30(3). 55-69.
[5] Greg Ruth (2014) Why Horror is Good For You (and Even Better for Your Kids). https://www.tor.com/author/greg-ruth/
| 강다혜 | 성균관대학원 아동청소년학과 박사과정 수료 시와 글을 쓰며 책을 좋아하던 저는 국문학을 전공하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총신대 유아교육학과에 입학하였을 때 한편으로는 좌절했지만,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하나님이 내가 제일 잘 하는 곳으로 나를 이끄셨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대학 4년을 보내면서 제가 깨달은 것은 역시 하나님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유아교육의 분야 중에서도 유아문학이 또 그 중에서 그림책이 저에게 가장 즐거웠고 또 적성에 맞았기 때문입니다. 그 후로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에 입학해 현은자 교수님 밑에서 박사과정을 마쳤습니다. 지금은 4명의 자녀와 함께 공기 좋고 초목이 푸르른 경상남도 합천에서 끝나지 않는 집안일과 육아로 정신없이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그림책 속 세계관을 연구하여 다음 세대에 진심으로 추천해줄 수 있는 좋은 그림책을 발견하고 소개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
귀신 이야기와 그림책
제가 그림책의 소재로서 ‘귀신 이야기’를 연구하기 시작한지 꼬박 2년이 되었습니다. 2021년 아직 ‘코로나 19’가 우리의 삶을 좌지우지 흔들고 있을 무렵 어째서인지 세상은 ‘좀비’라는 캐릭터에 열광했습니다. 2016년 ‘부산행’이라는 영화가 개봉하여 대 흥행을 하였고, 연이어 2019년 한 OTT 회사에서 만든 ‘킹덤’이라는 드라마가 소위 대박을 터트렸는데, 이는 조선 땅에 나타난 ‘좀비’를 소재로 한 이야기였습니다. 이 드라마가 2020년 시즌 2를, 2021년 시즌 3를 연달아 만들어 내면서 ‘좀비’라는 캐릭터는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이는 하나의 아이템이 되었습니다. ‘Tiktok’이라는 동영상 플랫폼에 한 때 초중고등학생을 중심으로 좀비사진 찍기가 유행한 적이 있지요. 이미 아이들은 ‘좀비 놀이’라며 시체처럼 아무 곳에나 널브러져 있다가 갑자기 일어나서 다른 친구들을 잡아 좀비로 오염시키는 놀이가 유행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시체 흉내를 내거나 괴물 흉내를 내는 것을 짧은 영상으로 찍어 동영상 플랫폼에 공유하고 서로 즐겼습니다.
이런 문화 가운데 아이들을 지켜내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2013년에 큰 아이를 어린이집에 처음 보내고, 10월이 되자 어린이집에서 안내장이 하나 왔습니다. 어린이집에서 할로윈 파티를 하니, 아이들에게 코스튬을 입혀서 보내라는 것이었죠. 그때 저는 별 생각 없이 공주 드레스를 하나 입혀 보낼까 하다가 마땅한 의상이 없어서 그냥 아이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날 밤 어린이집 선생님께 사진을 몇 장 받고 저와 신랑은 기겁을 했습니다. 그 사진에는 귀신과 마녀 분장을 한 아이들이 손에는 호박 바구니를 들고, 마치 귀신이 집이 된 것 같은 어린이집 교실을 돌아다니는 모습이 찍혀 있었습니다. 의상을 준비해가지 않은 저희 아이도 마녀분장을 하고 있었죠. 왜 어린이집에서는 우리나라 문화도 아닌 외국 문화인 할로윈을 이렇게 열정적으로 준비했을까요? 저희 부부는 앞으로 절대 10월 말에는 어린이집을 보내지 말자 다짐했지요. 10월 31일이 되면, 아직도 라디오에서는 10월의 마지막 날을 아쉬워하는 한 유행가의 노래가 흘러나오지만, 아이들과 관련된 모든 곳에서는 ‘할로윈’이라는 아이템으로 상업적 이득을 얻기 위해 정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희 부부는 귀신의 축제로부터 우리 아이들을 지켜내기 위해 매년 고군분투하였지요.
그러나 우리 아이들이 자라날수록 부모가 아이들의 문화를 통제하는 것은 점점 어려워집니다. 저희 집 둘째가 초등학교 1학년이던 어느 날 집에 와서 “엄마, 좀비는 진짜 있는 거예요?” 하고 물었습니다. 학교에서 친구들이 조선시대에 이미 우리나라에 좀비가 존재했다고 하더랍니다. 그러면서 친구들과 나눈 대화를 이야기 합니다.
아이에게 ‘좀비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매일 귀신만 생각하니까 가족들까지도 그렇게 보이는 거 아니냐’,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귀신들린 자도 쫒아내신다’, ‘귀신 이야기가 결국 너에게 두려움을 주니 친구들에게 귀신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제안해라’ 라며 아이를 한참 달래었죠. 하지만 그럼에도 무서워 엄마랑 자고 싶다고 조르는 아이를 며칠 동안 한 방에 재우며, 귀신에 대한 두려움은 그 이야기를 들은 시점부터 우리 아이들의 내면 깊은 곳까지 침투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단순히 귀신 이야기를 들은 순간만 아이들을 무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두고두고 아이들을 계속 괴롭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동과 공포라는 감정에 대해 연구한 많은 학자들은 대학생이 되어서도 어릴 적 경험했던 공포에 대한 잔류불안을 26% 정도 느끼고 있으며[1], 아동이 느끼는 공포의 대상은 주로 ‘귀신’과 ‘초자연적 힘’, ‘동물’등에 공포를 많이 느낀다고 밝혔습니다[2]. 또한 그림책 속에 나타난 비현실적 공포를 조사한 연구에서는 유아가 과도한 공포를 느끼거나 공포에 적절한 대처를 찾지 못하면 막연한 불안감에 시달릴 수 있다고 말하며, 이는 성장한 이후에도 공포심이 누적되어 세상에 대한 방어적인 태도를 가지게 한다고 말하였습니다[3]. 그런데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유아들이 느끼는 공포의 대상은 그 아이들의 부모가 공포스러워 하는 대상과 같으며, 아이들은 ‘귀신’과 같은 초자연적인 공포를 부모 및 양육자에게서 학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4]. 어떤 사람들은 ‘공포문학’이 공포와 두려움을 이겨내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아이들에게 담대함과 용기를 가르쳐줄 가능성을 인정하기도 합니다[5]. 하지만 그러한 사람들도 아이들이 책을 읽는 시간동안 자신들이 감당하기 힘든 공포와 두려움을 느낀다는 사실은 부정하지 않습니다.
사실 그림책에 ‘귀신’이 등장인물로 나오는 경우는 예전부터 종종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옛이야기에는 귀신이나 도깨비가 등장하는 이야기가 많이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무속신앙은 귀신을 섬기는 신앙이었기 때문입니다. 조선 시대 우리나라에 처음 도착한 선교사님들의 기록에 따르면, 조선 사람들은 한 발짝 옮길 때마다 귀신에게 기도를 올렸다고 합니다. 집안 구석구석, 온 동네 구석구석에 다 귀신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백석의 시에 서선미가 그림을 그린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고인돌, 2018)은 부엌, 화장실, 대청마루, 집안 기둥, 광, 마을 어귀, 우물가 등 집안 구석구석과 마을 구석구석 모두 귀신이 있어서 너무 무섭다고 말하는 한 아이의 이야기입니다. 출판사는 ‘한 아이를 키우려면 마을 사람 모두가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라는 메시지를 이 책이 전한다고 하지만, 이 그림책의 글 텍스트는 ‘나는 이 마을에 태어나기가 잘못이다’로 시작해서 ‘마을은 온데간데 구신(귀신)이 돼서 나는 아무 데도 갈 수 없다’로 끝이 나지요. 아이는 집안과 마을을 다닐 때마다 귀신에게 쫓기는데, 이렇게 아이를 괴롭히는 귀신을 다른 귀신들이 물리쳐주는 장면이 한 두 컷 나오긴 합니다. 하지만 이목구비가 전혀 없는 달걀귀신이 무서워 도망가는 아이를 쫒아오는 그림과, 온 마을 구석구석에 귀신 숨어서 무섭다고 일관되게 말하는 글 텍스트를 보면, 이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정성을 기울이고 있는 것인가 의심이 듭니다.
집안 구석구석 귀신이 있다고 믿는 무속신앙을 우리의 민족정신으로 여겨 이를 가르치는 그림책도 많이 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언어세상 사파리에서 2003년에 기획해서 만든 <국시꼬랭이 시리즈>의 『똥떡』(이춘희 글, 박지훈 그림)입니다. <국시꼬랭이 시리즈>는 우리나라의 자투리 문화를 가르쳐주기 위한 정보 그림책 기획인데, 이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 뒷간 귀신을 섬기는 이야기인 것이죠. 이 그림책은 표지부터 재래식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는 아이의 위에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귀신이 앉아 있는 모습으로 무서운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저희 큰 아이는 6살 때 이 책을 서점에서 보고 무섭다고 울었습니다. 서점 베스트셀러 가판대에 이 책이 올라와 있었기에 누구나 아동 코너로 들어가면 이 그림책 표지를 볼 수 있었습니다. 저희 아이는 처음 이 그림책의 표지를 보고 흠칫 놀라서 유심히 보더니, 귀신이 그려져 있다며 기겁을 하고 도망을 갔지요.
그런데 최근 출판되는 그림책에서 ‘귀신’과 관련된 심상치 않은 모습들이 포착되는데, 이는 귀신을 우리 주변에 항상 존재하는 친근한 존재로 그리고 있는 작품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윤정주 작가는 냉장고 속의 음식들의 이야기를 그린 『꽁꽁꽁』 시리즈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 2021년 『꽁꽁꽁 좀비』를 내놓았습니다. 이 그림책은 집 주인 가족들이 여행을 간 사이 냉장고 속에서 오래된 음식들이 썩어가는 모습을 ‘좀비’에 빗대어 나타냈습니다. 이 그림책 속 주인공 자두 삼총사는 지우네 가족들이 여름휴가를 떠난 김에 냉장고 속 식구들도 모처럼 푹 쉬기로 했다고 말하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얼마나 잤을까 요란한 천둥소리에 잠에서 깬 자두 삼총사는 흐물흐물해진 과일과 채소들이 자신들을 잡아먹을 듯 다가와 깜짝 놀라며 냉장고 야채칸에서 나와 위로 올라갑니다. 고추장과 된장 등 비교적 오래 보관이 되는 음식들은 그래도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 다행이라며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갑자기 옆에 있던 냄비도 부글부글 끓기 시작합니다. 냄비 안에 있던 카레 가족이 좀비가 되어 튀어 나왔기 때문이죠. 자두 삼총사는 우유좀비, 요거트 좀비, 콩자반 좀비 등 좀비로 변한 여러 음식들을 피해 맨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지요. 그 곳에 있던 딸기쨈과 초코바, 치즈는 자두 삼총사에게 너희가 좀비인지 아닌지 확인이 필요하다며 그들을 경계합니다. 서로가 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에 안심할 즈음 좀비가 된 모든 음식들이 냉장고 맨 꼭대기로 앞 다투어 올라오는 긴박한 상황이 그려지고, 이를 제지하기 위해 사이다가 이산화탄소를 내뿜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지우네 가족들이 집에 도착하여 냉장고 문을 여는 바람에 냉장고 속 친구들은 모든 일을 멈추고 그 자리에 얼어붙습니다. 이 그림책은 태풍으로 인해 원래 예정된 여행보다 3일이나 늦어버린 지우네 식구들은 냉장고 안의 참사를 확인하고 냉장고를 깨끗이 치우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처음 이 그림책을 보았을 때, 썩어가는 음식들을 좀비로 비유한 작가의 상상이 기발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작가의 이러한 상상력이 우리 아이들에게 가지고 올 파장이 걱정되기도 하였습니다. 제가 살림을 잘하지 못하기 때문에 저희 집 냉장고에서도 종종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만 저는 이를 ‘좀비’라는 것과 연결시켜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작가가 이런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는 것은 우리 삶 속에 귀신의 문화가 굉장히 깊이 들어와 있다는 것을 방증합니다. 요즘 서점과 도서관에는 ‘빅북 그림책’이라고 해서 가로 380mm, 세로 500mm의 그림책도 출판되어 있는데, 이 그림책도 빅북 사이즈로 이미 도서관에 들어가 있지요. 어느 날 동네 도서관을 갔다가 이 그림책을 빅북 사이즈로 아이에게 읽어주는 엄마를 보았습니다. 저와 같이 자신의 집 냉장고에서 이러한 상황을 많이 겪어 보셨는지 그 엄마는 너무 재미있어 하며 굉장히 실감나게 아이에게 이 그림책을 읽어주었습니다. 좀비 목소리를 흉내내며 그림책을 읽어주다가 급기야는 좀비처럼 걸어다니며 아이를 잡으러 다니셨습니다. 그러자 아이는 “엄마 하지마, 무서워~”라는 말을 반복하며 엄마를 피해 도서관을 뛰어 다녔지요. 아이에게 재미있게 책을 읽어주는 다정한 엄마가 한 순간 귀신으로 변해 아이를 위협하는 모습이 좋게 보이지만은 않았지요. 왜냐하면 아무리 좋게 포장을 해도 아이에게 귀신은 무서운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나의 엄마가 귀신이 되다니요. 물론 한때의 장난이지만, 엄마가 귀신이 되어 아이를 위협하는 행동을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요? 좀비와 같은 귀신이 우리 생활 속에 친근한 존재가 된 것처럼 친근한 우리 가족들이 언제든지 좀비나 귀신이 될 수도 있는 것일까요?
신문 기사는 날마다 새로운 기술이 나왔다, 뭔가 획기적인 발견을 했다, 과학의 발전으로 우리의 삶이 예전과는 다를 것이다 떠들고 있지만, 우리의 문화는 귀신이 우리 삶에 함께 존재하고 있으며 이들을 의지해야한다는 무속 신앙의 세계도 잊지 말라고 끊임없이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새로운 문화를 개척해 나가는 것도 우리의 할 일이겠지만, 대중의 문화에 휩쓸리지 않고 중요한 것을 분별하며 가려내는 것도 우리가 할 일입니다. 우리 아이들의 영혼도 건강하게 가꾸려고 노력하는 신실한 부모들이 점점 늘어나길 바랍니다.
[1] Harrison & Cantor (1999) Tales from the screen: Enduring fright reactions to scary media. Media Psychology, Vol, 9. No, 2. 97-116.
[2] Sayfan & Lagattuta (2009) Scaring the Monster Away: Waht Children know about managing fears of real and imaginary creatures. Child Development. Vol, 80. No, 6. 1756-1774.
[3] 윤이나, 김민진 (2019) 유아 그림책에 제시된 비현실적 공포와 대처 방식 연구. 어린이문학교육연구. 20(4). 101-126.
[4] 구미향 (2009) 유아의 성, 연령, 정서행동문제 수준에 따른 유아가 두려움 목록 분석. 아동학회지. 30(3). 55-69.
[5] Greg Ruth (2014) Why Horror is Good For You (and Even Better for Your Kids). https://www.tor.com/author/greg-ruth/
강다혜 | 성균관대학원 아동청소년학과 박사과정 수료
시와 글을 쓰며 책을 좋아하던 저는 국문학을 전공하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총신대 유아교육학과에 입학하였을 때 한편으로는 좌절했지만,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하나님이 내가 제일 잘 하는 곳으로 나를 이끄셨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대학 4년을 보내면서 제가 깨달은 것은 역시 하나님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유아교육의 분야 중에서도 유아문학이 또 그 중에서 그림책이 저에게 가장 즐거웠고 또 적성에 맞았기 때문입니다. 그 후로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에 입학해 현은자 교수님 밑에서 박사과정을 마쳤습니다. 지금은 4명의 자녀와 함께 공기 좋고 초목이 푸르른 경상남도 합천에서 끝나지 않는 집안일과 육아로 정신없이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그림책 속 세계관을 연구하여 다음 세대에 진심으로 추천해줄 수 있는 좋은 그림책을 발견하고 소개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