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그림책 읽기


ㄱㄴㄷ 그림책으로 한글 배우기

2023-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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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ㄴㄷ 그림책으로 한글 배우기




저희 집은 지금 사실상 비상에 걸려 있습니다. 올해 3월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셋째 아들이 아직 한글을 다 깨치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1학년 교육과정에는 한글을 배우는 시간이 분명 포함되어 있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이미 한글을 능숙하게 읽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저희 첫째와 둘째도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한글을 다 익혔습니다. 제가 따로 가르친 적이 없는데 어느 순간 아이들이 한글을 알기에, 어려서부터 그림책을 많이 읽어주어서 그런가보다 하고 쉽게 생각했지요. 사실 제가 셋째는 첫째와 둘째에 비하면 그림책을 많이 읽어주지 않았습니다. 분명 책 읽기를 좋아하는 아이인데도 육아와 집안 일에 지쳐서 등한시 하곤 했지요. 지난 해 여름, 30년 넘게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신 시어머니께서 한동안 저희 아들을 옆에 끼고 한글을 가르치셨습니다. 초등학교 입학이 코앞인데 제가 아무것도 하지 않자, 시어머니께서 직접 나서신 것이지요. 하지만 공부시간은 15분을 넘기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할머니와 ‘ㅂ’까지 배웠다고 했지만, 저희 아들은 정말 낫 놓고 ‘ㄱ’도 모르더라구요.

아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기 위해 제일 처음 한 일은, 한글 교재를 사는 일이었죠. 무엇이 좋은지 몰라 우선은 아이가 좋아하는 캐릭터가 그려져 있는 책을 샀었습니다. 하지만 캐릭터 이름만 나열될 뿐, 한글을 모르는 아이에게 어울리는 책은 아니었죠. 그래서 시중의 엄마들이 많이 산다는 한글교재를 하나 구입했습니다. 아이가 교재를 따라 재미있게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써 나가긴 하였지만, 저희 아들은 글자를 몇 번 따라 썼다고 글자를 알지 못하더라구요. 그래서 아이가 글자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책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ㄱㄴㄷ 그림책을 생각했습니다. 20년 가까이 그림책을 연구하였기에 ㄱㄴㄷ 그림책은 글자에 관심이 없는 아이들에게 흥미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막상 저희 아이에게는 이를 읽어준 적이 없었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의 문턱에서 ㄱㄴㄷ부터 가르쳐야 하는 현실이 다소 아찔하고 정말 아이가 한글을 익힐 수 있을까 불안하기도 했지만, ‘시작이 반이다’라는 마음을 가지고 꼼꼼히 아이와 함께 읽을 ㄱㄴㄷ 그림책을 찾아보았습니다. 오늘은 제가 찾아보았던 그림책 중 하나인 이지원이 기획하고 이보니 흐므엘레프스카가 그림을 그린 『생각하는 ㄱㄴㄷ』(논장, 2005)를 아이와 읽은 경험에 대해 나눠보려고 합니다.

이 그림책은 초등학교 1학년 1학기 국어 교과서 2단원 ‘재미있게 ㄱㄴㄷ’ 중 50-51쪽에 수록이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ㄱ자를 위하 거북이와 ㅅ자를 위한 산의 그림 단 두 장면만 포함되어 있지요. 그러나 교과서에 나온 다른 예시 그림을 보면, 이 그림책의 표현방법을 활용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보이는 사물이나 장면을 통해 자음자의 모양을 유추할 수 있도록 하였거나, 그 자음자가 속한 단어를 자음자의 모양으로 표현한 것이 그렇습니다. 이는 한글의 자음자를 처음 익히는 아이들에게 이러한 활동이나 작업이 흥미와 동기를 불러일으키는데 좋은 효과를 준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실제로 저희 아이도 그러했습니다. 이 그림책의 표지를 보면, 제목 ‘생각하는’도 그림이 조합되어 있습니다. ‘생’은 붓과 연필, 샤프와 같은 도구의 배합으로 만들어졌고, ‘하’는 밥과 수저 그리고 차를 들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 조합되어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를 처음 본 저희 아이는 글자를 아직 모르기때문에 무엇이 표현된 것인지 단번에 알아차리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한참을 그림을 보다가 ‘ㅎ’을 보고는 수저 받침대와 수저, 그리고 흰쌀밥이 ‘ㅎ’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지요. 자신의 이름에 ‘ㅎ’이 들어가기에 이 글자를 알아본 아들은 굉장히 재미있는 발견을 하였다며 빠르게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습니다.

면지는 훈민정음 해례본의 일부 내용이 들어가 있는데, 여기서 이 책의 뒤에 나올 그림들을 먼저 만나볼 수 있지요. 사람이 사다리를 받치고 서서 ㅅ을 만든다던가, 나무와 나무 그림자가 ㄴ을 만든 것, 원숭이가 몸을 동그랗게 말고 ㅇ을 만든 모습들이 눈에 띕니다. 속표지를 지나 ㄱ을 보면, ‘개미를 들여다보는 김씨 아저씨’의 모습에서 독자는 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옆으로 기차, 고양이, 가위, 그네 등이 그려져 있는데 모두 ㄱ을 표현하는 모습으로 그려지지요. ㄴ으로 넘어가면 ‘낙타가 느긋하게 앉아 있는데 ㄴ은 어딨냐고요?’하는 물음과 함께 낙타가 ㄴ의 모습으로 앉아 있습니다. 그 옆으로는 앉아서 두 다리를 쭉 뻗고 꽃의 냄새를 맡고 있는 여인의 모습, 두 다리를 하늘로 뻗은 채 넘어진 남자의 모습, 오늘치 식량을 다리 사이에 포획한 ㄴ의 모습으로 표현된 낙지 등이 보입니다.

  

하민아, 이 아저씨가 무엇을 보고 있지? 

개미를 보는데.

그럼 이 아저씨가 어떤 모습으로 개미를 보고 있지?

(아저씨처럼 허리를 숙이고) 이렇게.

하민아 바로 그 모습이 ㄱ이래. 예전에 할머니랑 배웠지? 그리고 엄마 이름에도 들어가고. 

아하! 옆의 그림도 다 ㄱ이구나.


하지만 아직 이 그림들이 왜 ㄱ을 표현한 것인지 저희 아들은 쉽게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하나씩 그림을 짚으며 이 그림에 무엇이 그려져 있는지 이야기 나누었지요. 그리고 그 그림들이 모두 ㄱ으로 시작하는 단어를 표현한 것임을 알려주었습니다. 가운데 갈색 배경에 하얀색으로 ㄱ이 써있고, 그 주변으로 ㄱ으로 시작하는 단어들이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단어는 8가지 작은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는 단어들이지요. 하지만 각 단어가 적힌 위치가 그림과 1대1로 대응을 이루지는 않습니다. 즉, 하얀색으로 쓰여진 ㄱ 위로는 왼쪽부터 가위, 기차, 가시가 써 있지만, 8개의 작은 그림 중 맨 왼쪽 상단의 그림은 가위가 아닌 기차를 그린 것이고, 그 옆으로 고양이, 가위가 그려지지요. 그래서 독자는 이 단어를 보고 각 그림이 무엇을 표현한 것인지 유추하거나, 반대로 그림에 그려진 단어를 여기에서 찾으며 그림을 보고 유추한 자신의 생각이 맞는지 맞춰볼 수 있습니다.


하민아, 여기는 ㄷ이 들어가는 단어들이 나오는 장면이야. 이 그림들을 보니까 ㄷ이 어떤 모양일까? 

(손으로 도토리 그림과 다람쥐 그림을 훑으며 ㄷ을 쓴다) 이렇게 쓰는 건가?

맞아. ㄷ은 이런 모양이야. 옆 장에서도 ㄷ이 많은데 한번 그림 안에서 ㄷ을 찾아볼까?

(그림 중 ‘돼지’그림을 보고) 엄마 이건 돼지인데?

응. (가운데 ㄷ의 주변에 ‘돼지’ 단어를 찾아 가르키며) 이게 ‘돼지’라는 글씨인데, 여기에 ㄷ이 들어가거든. 돼지 말고 다른 그림 중에는 아는 것 있어?

(토끼가 당근을 가지고 있는 그림을 가르키며) 이거 토끼.

응 맞아. 그런데 토끼는 ㄷ이 아닌 ㅌ이라는 글자로 시작되거든. 그래서 아마 이번 장면에서는 토끼가 주인공이 아닐거야. 다시 그림을 봐봐. 누가 주인공일까?

(그림을 한 참 보다가) 당근인가?

맞아. (가운데 ㄷ의 주변에서 ‘당근’ 단어를 찾아 가르키며) 이게 ‘당근’이라는 글씨인데, 여기에 ㄷ이 들어가. 참 잘 찾았네. 조금 어려운 문제였거든. 


저는 아이와 이 책을 한 번만 읽지 않았습니다. 사실 ㄱ부터 ㅎ까지 가르치는 동안 매일 보고 있지요. 현 시점으로 ㅊ까지 가르쳤으니, 아직 며칠은 더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첫 날은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읽으며 이 책의 그림이 한글 자음의 모양을 본 떠 그려져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아들은 한 장 한 장 재미있게 살펴보았지요. 특히 ㅅ의 ‘사자’를 표현한 그림은 사자가 나뭇가지를 짚고 ㅅ의 모양으로 서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 그림을 보고 ㅅ의 모양을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사자가 나뭇가지를 붙잡고 서 있는 모습이 웃기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엄마, 사자가 나무를 잡고 서 있어. 사자가 힘이 강해야 하는데, 힘이 없나? 왜 나무를 잡고 있는 거지?

어머머 그러네. 그런데 엄마는 여기서 무언가 글자가 보이는 거 같은데…

뭐지? (한참을 보더니) 엄마 사자에 어떤 글자가 있어?

이건 ㅅ이야. 

 아 그럼 사자에 ㅅ이 들어가는구나. ‘사’에 들어가?

 

 다행히 아이가 지난 여름 할머니와 한글을 배울 때 모음은 조금 기억하고 있기에-물론 이중모음은 아직 모릅니다- 하루에 자음 하나씩 엄마와 배우기로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ㄱ을 배우는 날은 다시 이 그림책의 ㄱ 부분을 펴고 아이와 먼저 함께 읽습니다. 그런 뒤 아이의 한글 교재를 펴서 ‘가갸거겨’를 읽고 쓰고 관련된 단어를 같이 찾고 함께 그리지요. 제가 ‘누나’를 글자로 써주면, 아이가 어느 글자를 썼는지 생각해보고 글자를 맞춥니다. 아이가 글자를 제대로 맞춰 읽으면, 제가 쓴 단어 밑에 아이가 연필을 쥐고 따라 써보지요. 그러고 나서 아이는 관련된 그림을 그립니다. ㄱ과 ㄴ, 그리고 ㅈ 세 글자를 배운 날은 아이와 간단한 말놀이도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죠.


(글자 “누구지”를 써 놓고) 하민아 엄마가 어떤 글자를 쓴 걸까?

(한참을 고민하고 생각한 뒤) 누구지

맞아. 그런데 엄마가 여기에 이렇게 물음표를 붙이면?

누..구지?(말끝을 올린다)

그런데 여기 앞에 “너”를 붙이면?

너 누구지?

맞아. 하민이 참 잘 읽네. 

그런데 여기에 이렇게 쓰면…. (“나”를 쓴 뒤) 나 누구지?

어? 너 누군데?

나? 멋진 하민이지. 


 처음 『생각하는 ㄱㄴㄷ』 그림책을 읽을 때는 그림을 그림으로만 보고, 글자를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더니, 이제는 이 책에서 글과 그림이 무엇을 전달하는지 알기에 오히려 동생에게 가르쳐줍니다. 오늘 38개월(만3세, 올해 한국나이로 5살)된 막내가 이 그림책을 보다가 ㅅ 장면에서 상어가 나오는 그림을 가르킵니다.


엄마, 상어가 물고기 꼬리를 물어요. 

아 그러네. 상어가 물고기 꼬리를 물었네. 

물고기 아프겠다. 

(옆에서 셋째 하민이가) 이건 ‘시옷’이야. 

시옷이 뭐야?

이건 시옷을 표현 한거야. (그림을 따라 손가락으로 ㅅ을 쓴다). 이렇게 하면 시옷이야. 이건 한글이야. 


 만 5세 2학기가 되면 유치원에서도 한글에 대한 접근을 시작하기에 저희 아이도 유치원에서 한글과 관련된 여러 활동을 하였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적어보거나, 친구 혹은 가족의 이름도 적어보고, 여러 사물의 이름도 적어오는 경우도 있었지요. 하지만 활동지를 가져온 날 무엇을 적은 것이냐고 물어보면, 자신의 이름 외에는 잘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모든 배움에는 때가 있기에, 저희 아이도 글자에 관심을 가지게 될 날이 자연스럽게 찾아올 것이라 여겼는데, 그런 날은 그냥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지속적인 사랑의 관심이 있어야 오는 것인가 봅니다. 그동안 집안일을 비롯한 여러 잡다한 일로 아이와 책읽기를 미뤄두었는데, 그러한 저희 핑계와 변명이 우리 아아가 글자에 관심을 갖게 되는 날을 뒤로 늦춘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 마저 들었습니다. 요즘 저는 도서관이나 서점을 뒤져서 ㄱㄴㄷ 그림책을 계속 찾고 있습니다. 아직 모든 자음을 다 익히지 못했기도 했지만, 글자 공부하자고 하면 아직도 “싫어, 놀고 싶어”라고 외치는 저희 아들이 조금은 더 재미있게 한글을 익혔으면 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한글 교재를 펼치면 공부한다고 생각하지만 ㄱㄴㄷ 그림책을 펼치면 저희 아들은 한걸음에 달려와 제 무릎 위에 앉거든요. 어쩌면 저에게도 이 시간은 사랑하는 아들과 단둘이 시간을 보내며 마음껏 사랑을 해줄 수 있는 시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강다혜 | 성균관대학원 아동청소년학과 박사과정 수료

시와 글을 쓰며 책을 좋아하던 저는 국문학을 전공하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총신대 유아교육학과에 입학하였을 때 한편으로는 좌절했지만,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하나님이 내가 제일 잘 하는 곳으로 나를 이끄셨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대학 4년을 보내면서 제가 깨달은 것은 역시 하나님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유아교육의 분야 중에서도 유아문학이 또 그 중에서 그림책이 저에게 가장 즐거웠고 또 적성에 맞았기 때문입니다. 그 후로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에 입학해 현은자 교수님 밑에서 박사과정을 마쳤습니다. 지금은 4명의 자녀와 함께 공기 좋고 초목이 푸르른 경상남도 합천에서 끝나지 않는 집안일과 육아로 정신없이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그림책 속 세계관을 연구하여 다음 세대에 진심으로 추천해줄 수 있는 좋은 그림책을 발견하고 소개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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