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그림책 읽기


생명을 위한 희생: 가장 중요한 가치

2022-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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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위한 희생 : 가장 중요한 가치




7살 셋째 아이가 어느 날 유치원에서 그림책 한 권을 빌려왔습니다. 그 책은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소설가인 박완서가 글을 쓰고 『만년 샤쓰』(길벗어린이, 2019)와 『준치 가시』(창비, 2006)을 그린 김세현의 『7년동안의 잠』(어린이작가정신, 2015)입니다. 


“이 책을 왜 빌려왔어?”

“너무 재미있어서”

“이 책이 왜 재미있었는데?”

“(표지의 그림을 가르키며) 이게 개미인데, 봐봐 재밌잖아.”

“이 책 읽어본 적 있어?”

“전에 선생님이 읽어줬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빌렸어. 원래 공룡책 빌리려고 했는데, 다른 친구가 안 봤다고 빌려간다고 해서 이 책을 빌렸어. 너무 재밌었거든.”


아이에게 이 책의 어느 부분이 재미있었냐고 물어보니, 이 책의 줄거리를 줄줄 이야기 합니다. 그러더니, 이제 엄마가 다시 읽어주라고 합니다. 엄마랑 같이 읽으면 더 재미있다고 제 무릎위에 털썩 앉습니다. 

아이와 함께 책 표지를 봅니다. 짙은 고동색 배경 가운데에 하얀 원이 있고, 그 원 안에 어떤 곤충이 얼굴을 들이밀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이미 읽은 아이는 이 곤충이 누구인지 알고 있지만, 제가 누구냐고 물어보길 기다립니다. 그래서 누구인지 물어봐주니, 더듬이가 2개나 있는 개미라고 말해주네요. 그러면서 먹이를 발견해 눈이 “띠용~”하고 커진 것이라고 덧붙입니다. 책장을 넘깁니다. 면지에는 양면 가득 가는 세필 붓으로 적은 듯한 글일 적혀 있는데 힘과 개성이 넘치는 필체 위로 한 마리 개미가 보입니다. 아직 한글을 잘 알지 못하는 우리 아이에게 이 글은 그저 어떠한 무늬로 보이는 것 같습니다. 면지의 그림에 대해 물어보자, 단번에 개미를 가르키며, “아까 표지에서 나왔던 개미야. 먹이를 찾으러 가는 거야.”라고 말합니다. 서지사항 페이지에는 작가에 대한 소개와 함께 글작가의 사진이 실려 있습니다. 아이는 그 사진을 꼭 짚어내며 “엄마, 이 사람이 이 책을 지은 거야. 엄청 잘 지었어. 엄청 재밌거든”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아이에게 왜 이 책은 그리 재미있는 것일까요?

표제지를 지나 드디어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한 마리 개미가 정말 큰 먹이를 발견했습니다. 자신의 몸집에 비하면 수십배에 달하는 크기인데, 싱싱하기까지 합니다. 여태까지 보아 온 그 무엇과도 비길 수가 없는 엄청난 크기였습니다. 요새 개미 마을에는 먹을 것이 없어 마을 자체를 옮겨야 하나 고민이 많은데, 마침 이 어린 개미가 마을에 있는 모든 광을 채우고도 남을 먹이를 발견한 것입니다. 


“여기는 어디야?”

“개미들이 사는 집이지. 이 개미들이 다 가족인데, 여기 더듬이로 서로 말을 하는 거야. 지금 ‘먹을 것을 발견했대.’, ‘어 정말? 우리 같이 가보자.’, ‘엄청 큰 먹이래.’, ‘배고파 얼른 먹고 싶다.’ 막 이렇게 말하고 있는거야. 그리고 다 같이 아까 그 작은 개미가 발견한 먹이를 찾으러 가는 거야.”

“(여왕개미를 가르키며) 근데 이 개미는 누구아?”

“여왕개미지. 그래서 이렇게 날개가 있잖아. 다른 개미들은 날개가 없어. 여왕개미 부하거든.”


이 책을 읽으며, 유치원 선생님이 가르쳐 주셨는지 아이는 개미의 생태에 대한 지식이 있습니다. 더듬이로 의사를 전달한다는 것, 개미들이 모여 산다는 것, 여왕개미에 대한 것 등입니다. 아이와 함께 책을 계속 읽습니다. 어린 개미가 발견한 먹이를 찾아 모든 개미들이 줄지어 먹이가 있는 곳으로 향합니다. 드디어 먹이가 있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어린 개미의 말대로 굉장히 크고 싱싱한 먹이였습니다. 아직 살아있는지 두꺼운 갑옷 속에서 열심히 꿈틀 거리고 있는게 보였습니다. 

 

“엄마, 이렇게 커도 개미는 다 먹을 수 있어. 이렇게 모든 개미가 다 와서 먹이를 덮는 거야. 그럼 개미가 작아도 어떤 먹이든 다 먹을 수 있어. 개미들이 더 쎄!”


아이의 말처럼 먹이는 아무리 그 크기가 커도 금새 새카만 개미 덩어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늙은 개미가 이 먹이가 ‘매미’라는 것을 알아챕니다. 개미들은 자신들이 땀 흘려 일할 때 시원한 나무 그늘에서 온종일 노래나 부르는 팔자 좋은 놈이 왜 여기에 이러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그래서 매미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개미도 있지요. 그 때 늙은 개미는 매미가 왜 여기에 이러한 모습으로 있는지 설명을 해줍니다. 그리고 매미의 크기를 가늠하곤 이미 5년, 혹은 7년은 족히 여기서 참고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지요. 그런데 개미들에게는 7년이 어떤 시간인지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 그들이 살아온 동안의 몇 곱절이나 되기 때문이지요. 저희 아이가 마침 7살입니다. 아이에게 네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자랄 동안 매미가 땅 속에서 웅크리고 있었다고 설명해줍니다. 하지만 저희 아이도 그 기간이 얼마만큼의 시간인지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기나 긴 배고픔 끝에 겨우 발견한, 모두가 다 배부르게 먹고도 남아 개미 마을에 광을 다 채우고도 남을 엄청난 크기의 먹이 앞에서 개미들은 의견이 분분해집니다. 자신들처럼 먹이를 위해 노력을 하는 것도 아니고 기껏 나무에서 노래를 부르기 위한 기다림이 뭐가 그리 대단하냐고 비아냥 거리는 개미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한 철의 노래를 위해 7년이나 어둠과 외로움 속에서 자기의 재주를 갈고 닦은 것을 대단하게 생각하는 개미들도 있었지요. 그러한 개미들은 매미의 노래 덕분에 힘겨운 노동 가운데 위안을 얻고 잠시 쉼과 여유를 갖을 수 있었으며 그제서야 여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깨달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다 잡은 먹이를 눈 앞에서 놔주기란 쉽지 않지요. 어떠한 개미들은 이것이 매미가 아닐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이게 정말 매미라면 햇빛을 찾아 땅 위로 나갈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지금 여기서 자기들에게 잡혀 버렸으니까요. 그때, 늙은 개미가 자신들이 있는 곳이 딱딱한 시멘트가 뒤덮인 콘크리트 도로 밑이라는 것을 상기시킵니다. 그래서 이 매미가 저 큰 몸집으로는 도저히 비집고 나갈 틈이 없으며, 자신들이 계속 식량난에 허덕이는 것도 이 콘크리트 천장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하지요. 늙은 거미는 드디어 결단을 내립니다. 이 매미를 부드러운 천장이 있는 곳으로 옮겨주기로 한 것이죠. 다시 말하면, 자신들이 이 먹이를 포기하겠다는 것입니다. 개미들은 먹이를 광이 있는 마을과 반대쪽으로 끌어 보긴 처음입니다.    

 


“엄마, 이것 봐봐. 이제 매미한테 다리가 나와. 처음에는 개미들이 힘들게 옮겨줬는데, 이제 매미가 자기 다리로 걷는 거야.”

“와! 그러네. 매미 다리가 나왔구나.”

“응. 이제 매미가 하늘을 날아갈 거거든.”

“그런데 왜 개미들이 매미를 도와주는 거야? 매미를 도와주면 개미들은 먹이를 못 먹어서 배가 고프잖아.”

“엄마, 그것도 몰라? 당연히 매미가 생명이니까 그러지. 개미들이 매미가 생명이라서 살려주는 거잖아. 7년이나 땅 속에서 기다렸는데, 이제 나무로 가서 맴맴 해야하니까 살려줬지. 우리 맨날 여름에 맴맴 들렸잖아. 기억나지?”

“그럼, 이 개미들은 매미를 도와줄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우리가 배고프지만 그래도 너를 살려줄께. 너는 생명이니까 했겠지.”


드디어 개미들이 매미를 나무 밑으로 옮겨 주었습니다. 매미는 이제 개미들을 뿌리치고 저 혼자 힘으로 나무로 기어올랐습니다. 그리고 개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껍질을 벗고 빛나는 날개를 펴 하늘로 날아올라갔습니다. 개미들은 먹이를 영영 놓쳤으나 매미의 앞 날을 축복해주었지요. 



“너는 어디가 제일 재미있었어?”

“당연히 여기지.”

“왜?”

“매미가 드디어 하늘로 날라 갔잖아. 여기 개미들이 매미한테 인사하는 거야. ‘나무에 가서 잘 살아.’, ‘독수리 같은 무서운 새한테 먹히지마.’, ‘이제 노래 잘 불러.’, ‘건강하게 잘 살아.’ 이렇게 인사하고 있어.”

“그런데 이제 개미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배고프지 않을까?”

“매미가 개미들한테 먹이가 있는 곳을 가르쳐 줄거야.”

“만약 그렇지 않으면?”

“그래도 뭐 할 수 없지. 생명이 더 소중하니까. 개미들은 생명을 살렸으니까 자신들이 배고픈 것도 참고 괜찮다고 생각할거야. 봐봐, 이렇게 매미한테 인사하고 있다니까.”


뒤에 이어지는 뒷면지에서 이번에는 개미들이 뒤쪽을 돌아보며 줄지어 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아이는 개미들이 아까 떠나간 매미를 찾고 있었는데, 마침 매미의 노래소리가 들려서 멈추고 그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 면지에는 앞 면지에 이어서 그림책의 글 텍스트가 적혀 있습니다. ‘매미가 덩치가 많이 커도 개미들이 이 먹이를 해치울 수 있다’, ‘겨우 노래나 부르기 위해 7년이나 땅 속에서 기다렸느냐’, ‘자신들이 힘들에 일할 때 나무 그늘에서 노래를 부른 매미는 자신들을 놀리는 것 같았다’라고 말하며 매미를 살려 주기 싫었던 개미들의 주장이 적혀 있지요. 작가가 여기에 이를 적어 놓은 것은 오히려 반어적으로 이 이야기의 주제를 부각시키기 위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개미들의 희생의 가치가 얼마나 큰 것인지, 그리고 개미들의 입장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늙은 개미의 말에 순종하여 ‘생명’을 지켜낸 것이 얼마나 값어치 있는 것인지 알려주려는 것이겠지요. 

우리 아이는 이 책을 6월이나 7월 한참 나뭇가지 사이사이에서 매미의 울음소리가 들리기시작했을 때, 유치원 수업의 일환으로 읽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이 책을 읽으며 개미나 매미의 생태에 대해서 배우고, 이를 관찰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 바깥활동을 하였던 것 같습니다. 아이가 책을 다 읽고 나가서 매미를 찾으러 다녔던 이야기를 한참 저에게 들려주었거든요. 그런데 몇 개월이 지나서도 이 책을 기억하고 재미있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이 책을 통해 우리 아이가 ‘매미’와 ‘개미’라는 여름 곤충의 생태를 배웠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는 생명을 위해 자신들의 이익을 기꺼이 희생한 개미들의 이야기에 큰 감동을 받은 것이지요. 

아이와 함께 책을 읽다보면, 아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토론 주제들이 많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연령이 어린 아이는 그러한 토론의 장으로 이끄는 것 자체가 쉽지 않지요. 그렇기에 그림책 전체에 흐르는 전반적인 중심 생각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그 중심 생각이 아이들의 마음에 남기 때문입니다. 아이와 책을 읽고 무엇이 기억에 남았는지 물었을 때, “모르겠어. 그냥 책이 끝났어.” 혹은 “이 책은 왜 이렇게 끝나지? 뒤에 내용이 더 없어?”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특히 열린 결말로 끝나는 포스트모던의 특징을 갖고 있는 그림책을 읽을 때 이런 반응을 하지요. 이러한 책들은 읽을 때는 아이에게 재미를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읽고 난 뒤에는 딱히 남는 것이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어떤 책은 함께 읽는 어른들도 주제를 찾기 힘들어 ‘그래서 뭐 어떻게 하라는 거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거지?’라는 생각이 드는 책도 있지요. 그러한 책이 다양한 미술적 기법을 사용했고, 아동의 심리를 잘 반영했다고 평가를 받더라도, ‘이 책이 내 아이를 더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아닐까?’라고 고민이 되기도 합니다. 읽는 순간에만 재미를 창출하고, 책을 다 읽은 독자에게 삶에 대한 작은 통찰도 남기지 않는 책이 많은 요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혹은 ‘타인을 위한 희생’을 전달하는 이 책의 중심 생각은 참으로 선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림책은 글과 그림으로 동시에 무언가를 독자에게 전달하는 책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부모나 교사가 그림책을 통해 가르치고 싶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내용을 아이가 배우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그림책은 자신의 자아를 찾는 내용이 주된 내용인데 주인공들이 귀신이지요. 그래서 그 책을 읽은 아이는 ‘자아 찾기’라는 내용이 자신이 이해하기에 다소 어렵다 보니, 귀신 캐릭터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여 그림책에 나온 귀신을 흉내내기도 합니다. 이렇듯 그림책은 우리에게 선한 본성을 일깨워 주기도 하지만, 악한 본성을 일깨우기도 합니다. 이렇게 교사와 부모의 의도와는 다르게 아동에게 교육되는 ‘보이지 않는 교육’들이 있기에, 그림책을 선정하고 분별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떤 가치를 가르치고 싶나요? 그림책이 아동의 어떠한 본성을 일깨우길 바라나요? 이 세상에는 대를 이어서 지켜져야 할 중요하고 아름다운 가치와 진리가 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급격하게 변하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처한 상황과 그들의 생각에 따라 서로 것을 주장한다 하여도 변하지 않는 가치는 존재합니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그 가치와 진리를 가르치고 전달하는 몫은 어른들에게 있습니다. 그림책이 아이들의 선한 마음을 지켜내고 올바른 생각을 전파하는 통로로 사용되길 바랍니다. 








강다혜 | 성균관대학원 아동청소년학과 박사과정 수료

시와 글을 쓰며 책을 좋아하던 저는 국문학을 전공하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총신대 유아교육학과에 입학하였을 때 한편으로는 좌절했지만,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하나님이 내가 제일 잘 하는 곳으로 나를 이끄셨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대학 4년을 보내면서 제가 깨달은 것은 역시 하나님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유아교육의 분야 중에서도 유아문학이 또 그 중에서 그림책이 저에게 가장 즐거웠고 또 적성에 맞았기 때문입니다. 그 후로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에 입학해 현은자 교수님 밑에서 박사과정을 마쳤습니다. 지금은 4명의 자녀와 함께 공기 좋고 초목이 푸르른 경상남도 합천에서 끝나지 않는 집안일과 육아로 정신없이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그림책 속 세계관을 연구하여 다음 세대에 진심으로 추천해줄 수 있는 좋은 그림책을 발견하고 소개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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