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그림책 읽기


그림책과 독후활동, 그리고 아이들의 반응 - 이수지 경계 삼부작 그림책에 대한 아동 반응

2022-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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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과 독후활동, 그리고 아이들의 반응 

- 이수지 경계 삼부작 그림책에 대한 아동 반응 -




저는 지난 8월에 한 도서관에서 “여름아, 읽자!”라는 주제로 초등학교 고학년(3~6학년)의 독서프로그램을 3일동안 운영해달라는 의뢰를 받았습니다. 올 해 그림책 작가 이수지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을 수상한 것을 계기로 그녀의 그림책이 많이 읽혀지고 있기에, 저는 이번 독서 프로그램의 주제를 ‘이수지의 그림책 살펴보기’로 잡았지요. 첫째날은 그림책과 관련된 여러가지 상(賞)에 대해서 설명해주고, 그 중에서도 가장 권위 있다고 칭송 받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을 이번에 이수지가 수상했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상의 역대 수상자들의 작품을 아이들과 함께 살펴 보았습니다. 그런 후 아이들에게 이수지 작가의 그림책 전권을 제공해주고 이 중에서 한 권 씩 골라 조별로 그 작품을 분석해보게 했습니다. 둘째날은 이수지 그림책 중 경계 삼부작으로 불리는 『거울속으로』(2003/2009), 『파도야 놀자』(2008/2009), 『그림자 놀이』(2010/2010)를 같이 살펴보고, 이 세 그림책에서 이수지 작가가 시도했던 그림책 안의 보이지 않는 경계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 나누었지요. 그리고 나서 아이들에게 이와 같이 ‘경계’가 존재하는 그림책을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세번째 날은 그림책 『여름이 온다』(2021)를 가지고 수업을 했습니다. 이 책은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을 표현한 것이지요. 그래서 아이들과 ‘여름’을 들으며 그림책을 감상한 후 이 곡을 작가가 어떻게 표현했는지 살펴본 뒤 함께 이 곡을 들으며 여러가지 재료를 가지고 ‘여름’을 표현해보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오늘은 둘째 날에 수업했던 경계선 3부작에 대한 아이들의 반응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아이들은 그림책 안의 보이지 않는 경계의 역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거울속으로』(2003/2009), 『파도야 놀자』(2008/2009), 『그림자 놀이』(2010/2010)는 그림책을 만들 때 생기는 ‘제본 선’에 대한 이수지의 고민에서 시작된 책입니다. 그녀는 이 세 그림책을 작업한 작업노트를 출간했는데,  그 책에 이 그림책들을 기획하게 된 의도가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림책도 ‘책’이기에 면지, 속표지, 책등 등 파라텍스트 뿐만 아니라 종이의 재질이나 감촉, 책장을 넘기는 방향 등의 물리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고, 이것이 독자에게 은연중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림책 작가들에게는 중요한 그림은 가운데에 그리지 않는 규칙이 있다고 합니다. 만약 정중앙에 그림을 그리면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제본으로 인해 그 형태가 어그러지거나 중요한 장면이 제본 안쪽으로 숨겨질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수지는 그림책이 지니는 이러한 물리적은 특성을 살려서 그림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규칙을 아예 ‘작정하고’ 안 지키면 어떨까요? 분명한 제본 선을 없는 셈 치지 말고 그 존재를 차라리 인정하고 시작하면 어떨까요? 오히려 책이 묶이는 그 지점을 이용해서 책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요? 책이란 물건을 구성하는 물리적 요소가 이야기의 일부가 되면 어떨까요? 책 그 자체가 책을 보는 경험의 일부가 되면 어떨까요? (이수지, 2011/10쪽)


이러한 의도로 기획된 3가지 그림책은 표지를 덮으면 모두 같은 크기입니다. 『거울속으로』는 제본선을 긴 세로축으로 두고 책을 펼치며, 『파도야 놀자』는 세로축을 짧게 해서 책을 넓게 펼칩니다. 그리고 『그림자 놀이』는 책을 90도 기울여 책장을 아래에서 위로 넘기며 책을 읽도록 구성했습니다.

  

그림 1 이수지 경계 삼부작 표지

 

그림 2 각 그림책 펼침 방법 예시


각 그림책의 줄거리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먼저 『거울속으로』에는 무릎을 감싸 안은 모습으로 쪼그린 채 앉아 있는 여자 아이가 등장합니다. 이 아이는 오른쪽 면에 앉아 있었는데, 책을 넘기니 왼쪽면에 이 아이와 똑같은 생김새와 행동을 하는 아이가 등장합니다. 이 두 아이는 서로를 보고 놀랍니다. 처음에는 서로 의식하면서도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지만 곧 마주본 그 둘은 서로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합니다. 두 아이의 마음이 가까워질수록 책의 제본선을 경계로 나비문양이 크고 아름답게 생겨납니다. 그러다가 이 두 아이는 책의 제본선 안으로 겹쳐지며 사라집니다. 완전히 두 아이가 사라지고 난 후 다시 아이들이 나타났는데 무언가 다른 변화가 생깁니다. 이 둘은 더이상 마주보며 같은 행동을 하지 않고 각기 다른 행동을 하기 시작합니다. 왼쪽 면에 있는 아이는 오른쪽 면에 있는 아이를 불러 뭔가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그 둘의 의견이 서로 같지 않은 모양입니다. 둘은 곧 토라집니다. 왼쪽 면에 있는 아이가 오른쪽 면의 아이를 밀어 냅니다. 그러자 이 아이는 왼쪽 면의 아이의 거울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그 거울은 뒤로 넘어가 깨지고 맙니다. 왼쪽 면의 아이는 아무것도 없는 오른쪽 면을 시무룩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다시 처음 장면과 같은 모습으로 무릎을 안고 쪼그리고 앉습니다. 

『파도야 놀자』의 표지에는 바다에서 파도를 마주보고 서 있는 여자 아이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 아이는 엄마와 함께 바닷가로 뛰어 옵니다. 엄마의 뒤편으로는 갈매기 5마리가 보입니다. 아이는 책의 제본선을 중심으로 왼편에 그려져 있는데 이 곳은 별다른 색이 없이 흑백으로 표현되어 있고, 오른편에는 파란색으로 표현된 파도가 그려져 있지요. 아이는 파도에게 다가갑니다. 파도도 아이에게 다가오지만 이상하게 책의 제본선을 넘어오지는 못합니다. 아이가 제본선을 중심으로 왼쪽에서 계속 파도를 골려 대도, 파도의 크기가 커지더라도 파도는 제본선을 넘어오지 못합니다. 그러다 아이는 제본선으로 자신의 팔을 뻗습니다. 제본선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이상하게 아이의 손이 그려져 있지 않지만, 아이의 머리 위에 있는 갈매기는 이 제본선을 넘어 파랗게 물들기 시작합니다. 

그 다음 장면에서 아이는 경계선을 넘어 파도가 있는 오른쪽으로 가서 파도와 함께 신나게 놀지요. 하지만 굉장히 큰 파도가 아이에게 다가오자 아이는 왼쪽으로 도망을 갑니다. 파도가 경계선을 넘어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아이는 파도를 향해 의기양양 혀를 내밀고 놀리기까지 하죠. 그런데 아이의 예상과는 다르게 파도는 경계선을 넘어 아이를 덮쳐버립니다. 파도에 흠뻑 젖고 나자 경계선은 이제 허물어진 듯합니다. 아이가 있던 왼편과 파도가 있던 오른편이 모두 파란색으로 뒤덮이지요. 아이는 파도가 주고 간 조개껍데기를 주우며 행복해합니다. 엄마가 오자 아이는 엄마와 함께 돌아가며 파도를 향해 손을 흔듭니다. 

세번째 책인 『그림자 놀이』는 책을 아래에서 위로 열도록 만들어졌는데, 이는 그림자가 우리의 발 아래인 땅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지요. 이 그림책의 위쪽은 아이가 있는 현실의 세계고 아래쪽은 그림자의 세계입니다. 한 아이가 창고에서 그림자 놀이를 합니다. 아이가 손으로 새 모양을 만드니, 그림자 세계에서는 한 마리 새가 생겨나는데 이를 시작으로 아이의 상상놀이가 시작됩니다. 낡은 워커 부츠를 들고 상자 위에서 뛰어내리는 아이의 그림자는 숲에 사는 한 마리 여우가 됩니다. 아이가 청소기를 들고 춤을 추자 그림자의 세계는 코끼리와 손을 잡고 있는 이국의 공주처럼 보이지요. 아이의 상상이 진행될수록 현실 세계인 위쪽면은 점점 그림이 사라지고, 그림자의 세계인 아래쪽은 그림이 더욱 풍성해집니다. 그러다 여우 그림자가 현실세계로 올라와 아이를 놀래키자 아이는 다른 그림자들의 도움을 받아 그림자의 세상으로 내려가 그림자가 됩니다. 그리고 다른 그림자들과 함께 괴물과 같은 형상을 만들어 여우에게 맞서지요. 이에 놀란 여우가 울음을 터트리니 그림자들은 여우를 안타깝게 생각하고 달래줍니다. 그러면서 위쪽은 현실, 아래쪽은 그림자의 세상이었던 경계가 허물어지며 모두 그림자의 세계로 통일이 되지요. 하지만 “저녁 먹자”라는 엄마의 목소리에 아이의 상상놀이는 멈추게 됩니다. 아이는 그림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밖에 나갔는데, 아래쪽 그림자의 세계에서 ‘딸깍!’하고 불이 켜집니다. 아이는 없지만 그림자들은 자신의 세상에서 그들만의 놀이를 계속해 나갑니다.

저는 초등학교 아이들과 이번 독서프로그램에서 둘째날의 수업을 가장 기대했습니다. 세 작품 하나하나 이야기하고 분석할 거리가 많지만, 그보다 여기서 표현된 ‘경계선’을 아이들은 어떻게 이해하고 반응할지 궁금했기 때문이지요. 이 날 아이들은 초등학교 2학년 1명, 3학년 2명, 5학년 1명, 6학년 3명 총 7명이 참석을 했는데 모두 여자 아이들이었습니다. 저는 아이들과 책을 읽으며 가운데 경계선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각 그림책에서 가운데 경계선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지를 생각해보게 했지요. 우선 아이들은 경계선을 중심으로 한쪽은 현실세계이고 다른 한쪽은 환상세계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3권의 그림책에서 경계선의 의미와 역할이 다르고, 그렇기에 전개되는 이야기의 성격도 달라진다고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먼저 『거울속으로』는 경계선 밖의 세상은 ‘거울’속 세상이고, 거울에 비치는 아이는 ‘나’이지만, 나는 그 거울속의 자아와 결국 화합하지 못하고 그를 밀어냅니다. 그래서 급기야는 그 자아가 무너지게 만들죠. 『파도야 놀자』에서는 경계선을 중심으로 파도와 아이가 대치를 이루었지만, 아이가 용기를 가지고 그 세계에 들어가자 그 세계와 화합을 하고 결국은 그 세계에서 받은 영향을 안고 자신의 세계로 돌아갑니다. 『그림자 놀이』에서 경계는 현실과 그림자를 나누는데 현실세계의 아이는 상상속에서 환상세계와 연합을 하며 즐겁게 놀다가 현실세계로 돌아오지만, 아이가 없어도 환상의 세계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계속해 나간다는 결말을 가지고 있지요. 

저는 8절 도화지를 가지고 북아트 기법 중 하나인 책접기를 통해 앞표지와, 뒤표지, 그리고 펼침면이 3면 나올 수 있는 책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펼침면 3개를 완성하고 앞표지와 뒤표지를 꾸미게 했지요. 몇몇 아이들의 작품을 함께 감상해보도록 합시다. 



이 작품은 6학년 학생 작품입니다. 『거울속으로』를 바탕으로 그림책을 만들었지요. 작품 안에 여자 아이와 남자 아이가 등장하는데, 여자 아이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를 보고 반가워하지만, 갑자기 다가온 남자아이는 이를 보고 경계를 하죠. 거울에 비친 그림자를 보면 왼쪽 편 아이들과 다른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이 작품을 그린 아이는 남자 아이가 자신과 닮은 존재가 싫어 소리를 질렀고, 그 소리에 거울이 넘어가서 깨져버렸다고 설명하였습니다. 뒤표지에는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는 글을 썼습니다. 


이 작품은 2학년 아이의 작품입니다. 첫번째 펼침면은 가운데 제본선을 경계로 왼쪽과 오른쪽의 세상이 다르며, 등장인물들은 땅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장면이라고 합니다. 두번째 펼침면은 땅 속이 배경인데, 이 땅 속에서 자신과 닮은 거울 속의 존재를 만났다고 하네요. 하지만 세번째 펼침면을 보면 곧 서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다투다가 결국 오른쪽의 거울이 넘어가 깨져버렸습니다. 뒤표지에도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거울을 밀면 어떤 거울이라도 깨져…”라고 쓰여 있습니다. 


이 작품은 6학년 아이가 만든 것입니다. 이 아이는 『그림자 놀이』와 같이 위 아래로 펼치는 책을 만들었는데, 가운데 경계선을 기준으로 위와 아래의 색이 대비를 이루지요. 위쪽은 빨간빛의 세상이고 아래쪽은 파란빛의 세상입니다. 그런데 두번째 펼침면에서 보면, 아래쪽으로 조금씩 빨간빛이 옮겨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세번째 펼침면에서는 『그림자 놀이』 그림책처럼 위쪽에 있는 아이가 아래로 내려와 있으며 위의 빨간빛과 아래의 파란빛이 섞인 보라빛 세상으로 통합이 되었지요.  

아이들의 작품을 보면, 아이들이 어느 그림책에 영향을 받았는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거울속으로』를 바탕으로 작품을 만든 아이들은 마지막에 소통이나 통합 혹은 화합이 없이 경계선 바깥의 상대에게 적의를 느끼거나, 그 상대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파괴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는 것입니다. 이 아이들은 분명 경계선을 중심으로 양쪽의 등장인물은 서로의 거울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작품을 만든 것이지요. 그런데 왜 이 아이들은 거울은 곧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파괴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을까요? 


“이 경계선을 중심으로 왼쪽은 누구고, 오른쪽은 누구니?”

“왼쪽은 주인공이고, 오른쪽은 거울에 비친 주인공의 모습이예요.”

“너는 왜 거울이 깨지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니?”

“이 주인공이 거울이 자기를 따라하는 것을 싫어해서요.”

“누가 나를 따라하는 것이 싫으니?”

“음… 뭐 꼭 싫은 것은 아닌데요, 이수지 『거울속으로』에서도 거울을 밀어서 깨뜨리잖아요. 그 그림책에서 여자 아이는 거울이 자기를 따라하지 않아서 싫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그것을 저도 따라했어요.”


독후활동이란 보통 책을 읽고 그 책에 대한 아동의 반응을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해내는 것을 말하지요. 그래서 독서프로그램을 할 때는 책을 읽고 책의 내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넘어 다른 활동을 연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독후활동은 아이들이 책을 통해 느끼고 경험한 것을 확장시킨다는 것이 일반적인 학자들의 생각입니다. 저는 이번 수업을 통해서 그림책이 가지고 있는 물리적인 특성에 대해 아이들과 생각해보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제본선을 경계로 삼고 표현된 이수지의 세 작품은 굉장히 효과적인 매체가 될 것이라고 생각을 했지요. 하지만 이번 수업을 통해 저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와 마주쳤습니다. 그것은 아이들의 수용능력과 그에 따른 반응입니다. 그림책을 본 아이들의 가장 즉각적인 반응은 그림책 내용을 ‘수용’하는 것이며 독후활동을 통해 수용된 생각들은 더욱 확장되었습니다. 

피아제에 따르면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들은 형식적 조작기에 속합니다. 형식적 조작기는 추론능력과 비판적 사고력이 왕성하게 발달하는 시기입니다. 하지만 그림책을 보는 아이들은 그 책에 대한 비판적인 생각이나 고민을 하기보다 우선은 무조건적으로 그 내용을 수용하게 됩니다. 『거울속으로』에서 여자아이가 거울을 밀어내고 혼자 남는 장면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아이들은 이 상황에 대해서 불편하게 생각했습니다. 상대방을 밀어낸 이유가 그리 대단하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에 따라 내보인 적의가 상대방에게 나쁜 영향을 미쳤기에 이는 바람직한 모습은 아닌 것 같다고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그런데 막상 경계선을 가진 그림책을 만들어보자고 했을 때, 아이들은 자신들이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를 가지고 고민을 하기 보다 그림책에서 자신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던 것을 그대로 따라하는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아이들 작품 중 세번째도 자세히 보면, 그림책 『그림자 놀이』의 주인공이 경계선을 넘어가 아래 그림자의 세계에 동화되었던 것을 그대로 수용해서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아이에게는 주인공이 현실세계를 벗어나 환상세계와 동화된 것이 강한 인상을 남겼던 것 같습니다. 여기에 소개하지 않았지만, 『파도야 놀자』를 바탕으로 그림책을 만든 아이들도 있었는데 이들은 그저 책의 내용을 일부 따라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림책은 글과 그림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 아이들에게 전달합니다. 저는 이번 수업을 통해 다시 한번 그림책을 통해 독자에게 전달되는 이미지가 굉장히 중요함을 느꼈습니다. 그림책의 독자가 가장 오래 기억하는 것은 그림 이미지이며 특히 어렸을 때 접한 이미지는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또한 글과 그림이 함께 만들어낸 심상은 굉장히 매력적이기에 아이들은 이를 자신도 모르게 수용하여 다시 자신의 방식으로 모방합니다. 분명 그 작품을 비판적인 눈으로 분석을 했는데도, 그 아름다운 이미지는 아이들로 하여금 따라하고 싶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때론 그것이 우리에게 기능적으로 유용한지, 도덕적으로 올바른지 등을 따지지 않고 그저 우리에게 욕망을 가지게 한 것을 원하고 따라하려고 하는 욕구를 보이지요. 영웅 이야기에 푹 빠진 저희 집 7살 아들도 매일같이 소파와 침대 및 가구들 사이사이를 정신없이 뛰어다닙니다. 높은 곳에서 뛰면 다칠 수 있다, 가구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면 상처가 나기 쉽다고 아무리 가르치고, 실제로 자신이 다쳐도 영웅처럼 되고 싶기 때문에 계속 이들을 흉내내지요. 그렇기에 자신의 눈에 보이는 이미지들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이를 내면화하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조금 더 교육적인 책임감을 느껴야 합니다. 특히 그림책의 글과 그림을 면밀하게 살펴 이 책이 아이에게 어떤 심상을 남길 것인지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신중히 생각해 봐야겠지요. 

뇌리에 강하게 박힌 심상과 내러티브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다시 한번 살펴 자신의 사고를 정립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독서의 기술이지요. 그림책을 읽는 아이들은 책의 제목이나 표지 등을 보고 그림책에 흥미를 느껴 자신이 읽을 책을 선택하기도 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경우 어른들에게 추천을 받습니다. 이러한 어른들은 여러 단체에서 발행하는 추천도서 목록을 참고하거나 작가의 유명세나 수상 이력, 세간의 독자평을 보고 아이들에게 책을 골라줍니다. 하지만 때로는 직접 어른인 우리가 먼저 책을 읽고 그 책에서 주는 이미지와 심상들을 비판적으로 고려해 본 뒤 아이들에게 추천할 것들을 골라보면 어떨까요? 아이에게 먹을 음식의 영양소와 유통기한을 꼼꼼히 따지는 부모의 마음이면 그림책도 면밀하게 살펴볼 수 있을 것입니다. 



(1) 이수지(2011) 이수지의 그림책 -현실과 환상의 경계 그림책 삼부작- 서울:비룡소
(2) 현은자, 김정준, 연혜민, 김민정, 김현경, 장시경(2019) 어린이 교육 전문가가 엄선한 100권의 그림책 CUP

            

강다혜 | 성균관대학원 아동청소년학과 박사과정 수료

시와 글을 쓰며 책을 좋아하던 저는 국문학을 전공하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총신대 유아교육학과에 입학하였을 때 한편으로는 좌절했지만,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하나님이 내가 제일 잘 하는 곳으로 나를 이끄셨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대학 4년을 보내면서 제가 깨달은 것은 역시 하나님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유아교육의 분야 중에서도 유아문학이 또 그 중에서 그림책이 저에게 가장 즐거웠고 또 적성에 맞았기 때문입니다. 그 후로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에 입학해 현은자 교수님 밑에서 박사과정을 마쳤습니다. 지금은 4명의 자녀와 함께 공기 좋고 초목이 푸르른 경상남도 합천에서 끝나지 않는 집안일과 육아로 정신없이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그림책 속 세계관을 연구하여 다음 세대에 진심으로 추천해줄 수 있는 좋은 그림책을 발견하고 소개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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