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책은 계속 다시 읽게 돼요” - 영아 그림책 반복 읽기에 대하여
저희 집은 아이들에 4명이나 있다보니, 무엇인가 필요한 것을 구입할 때 꽤 신중하게 됩니다. 유모차, 자전거, 실내 미끄럼틀, 아기띠와 같은 육아용품은 첫째가 어릴 때 사두었던 것을 지금도 쓰고 있기 때문이지요. 심지어 오늘 우리 막내가 어린이집에 입고 간 옷도 첫째가 입던 것 입니다. 그래서 가끔은 언니 오빠가 쓰던 물건만 사용하게 되는 막내에게 미안하기도 합니다. 그림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 막내가 즐겨 읽는 대부분의 영아 그림책도 첫째 아이가 어릴 때 구입했던 것입니다. 첫째와 둘째, 셋째까지 즐겨보던 그림책은 역시나 막내에게도 너무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영아 그림책들은 대부분 그림책의 판형이 작기 때문에 언니들의 책이 있는 책꽂이에 꽂으면 찾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희 집에는 막내 아이만을 위한 작은 책 꽂이가 있답니다.
그림책 연구자로서 아이를 키우며 10년이 넘게 책을 읽어주면서 발견한 재미있는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이가 어리면 어릴 수록 같은 책을 여러 번 본다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이 다양해지기도 하지만, 한번 읽은 그림책은 다시 잘 찾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어릴 때는 분명 100번은 봤을 것 같은 책을 다시 들고 와서 마치 엄마가 처음 읽어준다는 듯이 흥미롭게 집중하며 그림책을 봅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장면이 나오면 깔깔거리고 웃으면서 읽습니다.
제가 부모님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에 갈 때마다 받는 질문이 있습니다.
“아이가 같은 책만 계속 보려고 해요. 독서도 편식이 있나요?”
그런데 영아를 키우시는 부모님들도 이런 질문을 많이 하시곤 합니다. 저는 이 질문을 하신 분들이 영아를 키우신다고 하면 같은 책을 여러 번 보는 것이 ‘괜찮다’고 말합니다. 영아책으로 분류되는 그림책이 일반 그림책에 비해 페이지 수가 작고, 이야기 구조가 단순하기도 하지만, 영아들이 한 두번의 책 읽기로 그 책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영아들은 책 읽기가 거듭되면서 아이는 이전에 발견하지 못했던 것을 계속 발견할 수도 있고, 그 다음에 나올 내용을 미리 알고 있기 때문에 책을 읽으며 그 내용이 나오는 것을 보고 안정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반복되는 책 읽기로 새로운 어휘에 익숙해지고, 이야기의 구조를 이해하는 기본적인 능력을 발달시킬 수도 있지요. 그리고 많은 아이들은 엄마가 책을 읽어주는 목소리가 너무 좋기 때문에 같은 책을 계속 읽어 달라고 하기도 합니다. 이는 책읽기를 통해 아이와 엄마의 유대감과 친밀감이 깊어짐을 의미하기도 하지요. 실제로 많은 학술논문이나 독서에 관한 육아서적에서 그림책의 반복읽기가 아이들에게 다양한 측면에서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밝혀졌지만(1),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들은 내 아이가 다양한 책을 두루두루 읽었으면 하고 생각하십니다. 그래서 오늘은 저희 집 아이들이 좋아하는 영아 그림책을 소개해드리며 반복해서 책을 읽을 때의 이점들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저희 아이들이 좋아하는 영아책은 보리 출판사에 나온 ‘세밀화로 그린 보리 아기 그림책’ 시리즈입니다. 저는 이렇게 낱권으로 출판된 것을 15권으로 세트로 묶어서 판매할 때 구입하였는데, 요즘은 3권을 한 묶음으로 편집하여 출판하고 있습니다. 이 15권을 거의 다 비슷하게 좋아하지만, 그 중에서도 제일 좋아하는 책은 2권 『나도 태워줘』 입니다. 이 시리즈의 특징은 책을 펼쳤을 때 왼쪽은 내러티브가 담겨진 간단한 이야기 진행되고, 오른쪽에는 세밀화로 동식물이나 곤충 등 정보를 보여준다는 점 입니다. 그래서 그림 작가는 세밀화 작가와 그림 작가로 나뉩니다. 『나도 태워줘』는 ‘집에서 기르는 동물’이라는 주제로 기획되었으며, 세밀화를 이태수가 그림은 변정연이 그렸습니다.
표지에는 제목과 함께,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산책을 하는 듯한 엄마의 모습이 보입니다. 이 모자의 뒤로 닭, 오리, 토끼, 강아지, 염소, 돼지, 소 등이 따라가고 있지요. 책장을 넘기면 표제지가 나오고 엄마가 태워주는 유모차에서 앞 쪽으로 손을 뻗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 장면에서 아이에게 ‘아기랑 엄마랑 어디 가지?’라고 물으면 아이의 반응은 참 다양합니다. ‘놀러간다’고 했다가, 자신이 지금 가고 싶은 곳을 간다고 했다가, 익숙한 장소를 대답하기도 하고, 때로는 책 내용을 기억해서 동물들을 만나러 간다고 하기도 하지요. 앞으로의 이야기가 궁금한 아이는 어서 책장을 넘기라고 재촉합니다.
책을 넘기면 이제 아이와 엄마의 이야기 시작됩니다. 줄거리는 단순합니다. 엄마와 산책을 가는데 눈 앞에 닭장 속에 있는 닭의 볏이 보입니다. 글 텍스트는 닭의 울음소리와 함께 “나도 태워 줘”라고 말하고 있지요. 오른편에는 세밀화로 그려진 수탉이 보입니다.
세밀화를 통해 닭의 생김새를 자세히 살펴보고 책장을 넘기면, 왼편에서는 앞장에서 만난 아이와 엄마의 산책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이번에는 엄마가 물 속에 꼬리 깃만 보이는 오리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글 텍스트는 오리의 울음 소리와 함께 “나도 태워 줘.”라고 말하지요. 이때 아이의 유모차를 보면, 앞 장에 있었던 닭이 아이의 뒤에 타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의 재미있는 점이 바로 이것 입니다. 왼쪽 면에 전개되는 간단한 내러티브와 그 내용에 속한 정보를 세밀한 그림으로 제공하는 것입니다. 병렬식으로 전개되는 이 구조가 아이들이 이 그림책을 계속해서 다시 보게 합니다.
처음에 이 그림책을 보는 영아는 왼쪽면에 있는 작은 그림들은 별로 주시하지 않습니다. 글 텍스트를 읽을 수 있는 성인독자들은 책을 읽을 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기에, 당연히 왼쪽 위편에 적혀 있는 글텍스트를 읽으며 왼쪽면에 있는 그림을 봅니다. 하지만 아직 글텍스트를 읽지 못하며, 책의 읽기 방향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영아들은 책을 펼쳤을 때 자신을 사로잡는 그림을 먼저 주시합니다. 그런데 이 그림책은 당연히 오른편에 세밀화로 표현된 그림이 큼지막하게 그려져 있기 때문에 아이들은 엄마가 읽어주는 내러티브를 들으면서도 오른쪽의 그림을 먼저 읽게 되지요. 이 그림책을 두어 번 읽어주더라도 영아는 왼쪽면에 있는 그림을 보는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 책을 읽어주는 성인이 왼쪽 면에 있는 그림을 가리키며 내용을 설명해주어야 영아는 왼쪽의 있는 그림과 이 책의 내러티브에 관심을 갖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이 시리즈는 15권인데, 각 권에서 전개되는 내러티브들이 그냥 모르고 지나가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꽤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방식으로 아이와 책 읽기를 즐길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지금 소개하고 있는 『나도 태워줘』만 해도 그렇습니다. 아이와 엄마가 산책을 하면서 만나는 동물이 처음에는 그 형태를 다 보여주지 않습니다. 마치 까꿍놀이처럼 신체의 일부만 보여주지요. 하지만 전체의 모습은 오른쪽 세밀화 그림으로 볼 수 있지요. 그리고 글텍스트는 먼저 동물의 울음소리를 들려줍니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부모님이라면 동물의 울음소리를 딱딱하고 기계적인 목소리로 “꼬꼬꼭 꼬끼오”라고 읽지 않겠지요? 어떤 부모님은 정말 옆에서 수탉이 우는 것처럼 흉내를 내시기도 할 것입니다. 그럼 당연히 아이는 깔깔 웃으며 이 책을 덮어도 또 읽어 달라 부탁할지도 모릅니다. 저는 이 그림책을 이렇게 읽어줍니다.
“어? 여기에 아기가 있네. 누구지?”
“하린이”
“맞아 우리 하린이구나. 하린아 어디가?”
“교회(저희 시부모님이 교회 사택에 사시기 때문에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좋아하는 막내는 교회 가는 것을 제일 좋아합니다.)”
“어? 그런데 교회를 가다가 누구를 만났어? 여기 누가 숨어 있지?”
“어? 꼬꼬?”
-이때 오른쪽의 세밀화를 살짝 봅니다. 세밀화를 보면 누군지 알 수 있으니까요.-
“꼬꼬꼭 꼬기오, 나도 태워줘. 하린아 꼬꼬 태워 줄거야?”
“응!”
-책장을 넘깁니다-
“어? 하린이 뒤에 누가 타고 있지?”
“꼬꼬”
“아 그렇구나. 꼬꼬가 왜 하린이 뒤에 있지?”
“아까 태워줬잖아”
“맞아. 그런데 이번에는 다른 친구가 있어. 누구지?”
“오리”
“꽥꽥꽥 꽥꽥꽥. 나도 태워줘. 하린아 오리 태워 줄거야?”
“응”
-책장을 넘깁니다.-
이렇게 책을 읽어주면, 아이는 책을 읽을수록 등장인물이 왼쪽 면의 유모차에 탄 아이의 뒤에 타게 된다는 것을 인지하게 됩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부터는 오른쪽 세밀화를 보기 전에, 아이의 뒤에 앞의 그 동물이 타고 있는지 확인하지요. 책장을 넘길 때 그 동물이 타고 있으면 기뻐하며 엄마에게 확인도 시켜 줍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흐를수록 유모차에 타는 동물들이 많아져, 엄마는 유모차를 끌기 힘들지요.
이 장면을 보면 유모차에 닭, 오리, 토끼, 강아지, 염소까지 타고 있는데, 돼지가 등장하며 자신도 태워달라고 하지요. 하지만 이미 유모차에는 많은 동물이 타고 있어 탈 자리도 없어 보이고, 아이까지 내려 엄마와 함께 낑낑거리며 유모차를 밀고 있습니다.
“하린아, 엄마랑 아기랑 뭐해?”
“(유모차를 미는 흉내를 내며) 으~~ 힘들어. 이렇게 해.”
“꿀꿀꿀 꿀꿀꿀. 나도 태워줘. 하린아 돼지도 타고 싶다는데, 태워 줄거야?”
“(고민중) 응.”
“진짜? 어디에 타지?”
그런데 뒷장면을 넘기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바로 그 다음에 등장하는 소가 아이와 엄마를 유모차에 태워준다고 나서기 때문이지요. 이 장면에서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좋아합니다. 문제도 해결되었을 뿐만 아니라 엄마가 자신과 함께 유모차를 타는 것이 너무 재미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오늘 소개하는 <세밀화로 그린 보리 아기 그림책 시리즈>는 한 번의 책읽기로 어린 독자들은 왼쪽면과 오른쪽면의 병렬적 관계가 주는 이점을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이 시리즈가 독자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정보를 세밀화로 표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기에, 당연히 세밀화로 표현된 오른쪽 면이 더 화려하고 보기 좋습니다. 하지만 왼쪽 면에서 이어지는 내러티브는 이 책을 계속해서 다시 읽게 하며, 아이에게 다양한 방식의 책읽기를 통해 독서의 즐거움을 가르쳐 주지요. 언어유희를 사용한 책, ‘꼭꼭 숨어라’와 같은 전래동요 노랫말을 생각나게 하는 책, 의성어와 의태어 표현이 재미있는 책 등 다양한 표현방법으로 오른쪽 면의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저희 아이들은 13살이 된 첫째도 이 책을 읽습니다. 그리고 동생에게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게 책을 읽어줄 수 있는지 고민을 하지요. 동물을 울음소리를 연습하던 첫째가 하루는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엄마, 동물들의 울음소리는 정말 다양해. 닭이랑 오리는 같은 조류인데도 다르고, 염소랑 소는 같은 ‘소목’에 속하는 동물인데 울음소리는 전혀 달라. 물론 생김새도 다르지만, 울음소리도 달라. 하나님은 모든 동물은 각기 다르게 만드셨구나.”
그리고 이 책을 동생에게 읽어주던 7살 셋째는 또 어느 날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하린아, 이렇게 친구들에게 유모차를 양보할 수도 있어야 해. 유모차를 혼자 타면 편하고 좋겠지만, 친구들이랑 같이 타면 다 같이 즐겁거든.”
책을 한번 읽고 나서 그 책을 온전히 이해하고, 그 책을 통해 무엇인가 깨닫는 것이 있다면 참으로 좋겠지만, 사실 한번의 책읽기로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희 그림책 베이직의 많은 글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림책을 꼼꼼하게 읽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그림책은 ‘이 세상은 어떤 곳인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인간다움이란 어떤 것인가’와 더 나아가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윤리적인 차원까지 포함된 예술의 본질적 질문들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그림책을 꼼꼼하게 읽으려면 사실 한 번의 책 읽기로는 부족합니다. 같은 책을 여러 번 글과 그림의 표현과 상호관계까지 곱씹어 가며 읽을 때 ‘그림책 꼼꼼하게 읽기’가 가능하지요. 아이들도 그렇습니다. 여러 번 반복해서 책을 읽을 때, 앞서 읽기에서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되고, 앞서 읽기에서 깨닫지 못했던 것을 깨닫게 되지요.
이제 아이와 책을 읽을 때 한번만 읽고 책장에 넣어두는 것이 아니라, 다음 날 그 책을 다시 펴서 읽어 보시면 어떨까요? 두어 번 그 책을 읽고 나면, 처음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숨겨진 즐거움을 발견하실지도 모릅니다.
(1) 그림책 반복읽기에 관한 논문과 뉴스의 예:
이효원, 문서림, 조희숙(2015) 만 3세 유아들의 그림책 반복적 읽기에 관한 연구. 생태유아교육연구. 제14권 제1호. 1-27쪽
이이슬(2020) 반복적 그림책 읽기 프로그램이 유아의 정서지능 및 마음이론에 미치는 영향. 성균관대학교 석사학위청구논문.
“좋아하는 그림책 반복해서 읽어줘라” 경향신문 2009년 1월 19일자 기사 (https://www.khan.co.kr/article/200901191457165)
| 강다혜 | 성균관대학원 아동청소년학과 박사과정 수료 시와 글을 쓰며 책을 좋아하던 저는 국문학을 전공하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총신대 유아교육학과에 입학하였을 때 한편으로는 좌절했지만,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하나님이 내가 제일 잘 하는 곳으로 나를 이끄셨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대학 4년을 보내면서 제가 깨달은 것은 역시 하나님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유아교육의 분야 중에서도 유아문학이 또 그 중에서 그림책이 저에게 가장 즐거웠고 또 적성에 맞았기 때문입니다. 그 후로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에 입학해 현은자 교수님 밑에서 박사과정을 마쳤습니다. 지금은 4명의 자녀와 함께 공기 좋고 초목이 푸르른 경상남도 합천에서 끝나지 않는 집안일과 육아로 정신없이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그림책 속 세계관을 연구하여 다음 세대에 진심으로 추천해줄 수 있는 좋은 그림책을 발견하고 소개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
“재미있는 책은 계속 다시 읽게 돼요” - 영아 그림책 반복 읽기에 대하여
저희 집은 아이들에 4명이나 있다보니, 무엇인가 필요한 것을 구입할 때 꽤 신중하게 됩니다. 유모차, 자전거, 실내 미끄럼틀, 아기띠와 같은 육아용품은 첫째가 어릴 때 사두었던 것을 지금도 쓰고 있기 때문이지요. 심지어 오늘 우리 막내가 어린이집에 입고 간 옷도 첫째가 입던 것 입니다. 그래서 가끔은 언니 오빠가 쓰던 물건만 사용하게 되는 막내에게 미안하기도 합니다. 그림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 막내가 즐겨 읽는 대부분의 영아 그림책도 첫째 아이가 어릴 때 구입했던 것입니다. 첫째와 둘째, 셋째까지 즐겨보던 그림책은 역시나 막내에게도 너무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영아 그림책들은 대부분 그림책의 판형이 작기 때문에 언니들의 책이 있는 책꽂이에 꽂으면 찾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희 집에는 막내 아이만을 위한 작은 책 꽂이가 있답니다.
그림책 연구자로서 아이를 키우며 10년이 넘게 책을 읽어주면서 발견한 재미있는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이가 어리면 어릴 수록 같은 책을 여러 번 본다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이 다양해지기도 하지만, 한번 읽은 그림책은 다시 잘 찾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어릴 때는 분명 100번은 봤을 것 같은 책을 다시 들고 와서 마치 엄마가 처음 읽어준다는 듯이 흥미롭게 집중하며 그림책을 봅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장면이 나오면 깔깔거리고 웃으면서 읽습니다.
제가 부모님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에 갈 때마다 받는 질문이 있습니다.
“아이가 같은 책만 계속 보려고 해요. 독서도 편식이 있나요?”
그런데 영아를 키우시는 부모님들도 이런 질문을 많이 하시곤 합니다. 저는 이 질문을 하신 분들이 영아를 키우신다고 하면 같은 책을 여러 번 보는 것이 ‘괜찮다’고 말합니다. 영아책으로 분류되는 그림책이 일반 그림책에 비해 페이지 수가 작고, 이야기 구조가 단순하기도 하지만, 영아들이 한 두번의 책 읽기로 그 책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영아들은 책 읽기가 거듭되면서 아이는 이전에 발견하지 못했던 것을 계속 발견할 수도 있고, 그 다음에 나올 내용을 미리 알고 있기 때문에 책을 읽으며 그 내용이 나오는 것을 보고 안정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반복되는 책 읽기로 새로운 어휘에 익숙해지고, 이야기의 구조를 이해하는 기본적인 능력을 발달시킬 수도 있지요. 그리고 많은 아이들은 엄마가 책을 읽어주는 목소리가 너무 좋기 때문에 같은 책을 계속 읽어 달라고 하기도 합니다. 이는 책읽기를 통해 아이와 엄마의 유대감과 친밀감이 깊어짐을 의미하기도 하지요. 실제로 많은 학술논문이나 독서에 관한 육아서적에서 그림책의 반복읽기가 아이들에게 다양한 측면에서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밝혀졌지만(1),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들은 내 아이가 다양한 책을 두루두루 읽었으면 하고 생각하십니다. 그래서 오늘은 저희 집 아이들이 좋아하는 영아 그림책을 소개해드리며 반복해서 책을 읽을 때의 이점들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저희 아이들이 좋아하는 영아책은 보리 출판사에 나온 ‘세밀화로 그린 보리 아기 그림책’ 시리즈입니다. 저는 이렇게 낱권으로 출판된 것을 15권으로 세트로 묶어서 판매할 때 구입하였는데, 요즘은 3권을 한 묶음으로 편집하여 출판하고 있습니다. 이 15권을 거의 다 비슷하게 좋아하지만, 그 중에서도 제일 좋아하는 책은 2권 『나도 태워줘』 입니다. 이 시리즈의 특징은 책을 펼쳤을 때 왼쪽은 내러티브가 담겨진 간단한 이야기 진행되고, 오른쪽에는 세밀화로 동식물이나 곤충 등 정보를 보여준다는 점 입니다. 그래서 그림 작가는 세밀화 작가와 그림 작가로 나뉩니다. 『나도 태워줘』는 ‘집에서 기르는 동물’이라는 주제로 기획되었으며, 세밀화를 이태수가 그림은 변정연이 그렸습니다.
표지에는 제목과 함께,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산책을 하는 듯한 엄마의 모습이 보입니다. 이 모자의 뒤로 닭, 오리, 토끼, 강아지, 염소, 돼지, 소 등이 따라가고 있지요. 책장을 넘기면 표제지가 나오고 엄마가 태워주는 유모차에서 앞 쪽으로 손을 뻗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 장면에서 아이에게 ‘아기랑 엄마랑 어디 가지?’라고 물으면 아이의 반응은 참 다양합니다. ‘놀러간다’고 했다가, 자신이 지금 가고 싶은 곳을 간다고 했다가, 익숙한 장소를 대답하기도 하고, 때로는 책 내용을 기억해서 동물들을 만나러 간다고 하기도 하지요. 앞으로의 이야기가 궁금한 아이는 어서 책장을 넘기라고 재촉합니다.
책을 넘기면 이제 아이와 엄마의 이야기 시작됩니다. 줄거리는 단순합니다. 엄마와 산책을 가는데 눈 앞에 닭장 속에 있는 닭의 볏이 보입니다. 글 텍스트는 닭의 울음소리와 함께 “나도 태워 줘”라고 말하고 있지요. 오른편에는 세밀화로 그려진 수탉이 보입니다.
세밀화를 통해 닭의 생김새를 자세히 살펴보고 책장을 넘기면, 왼편에서는 앞장에서 만난 아이와 엄마의 산책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이번에는 엄마가 물 속에 꼬리 깃만 보이는 오리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글 텍스트는 오리의 울음 소리와 함께 “나도 태워 줘.”라고 말하지요. 이때 아이의 유모차를 보면, 앞 장에 있었던 닭이 아이의 뒤에 타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의 재미있는 점이 바로 이것 입니다. 왼쪽 면에 전개되는 간단한 내러티브와 그 내용에 속한 정보를 세밀한 그림으로 제공하는 것입니다. 병렬식으로 전개되는 이 구조가 아이들이 이 그림책을 계속해서 다시 보게 합니다.
처음에 이 그림책을 보는 영아는 왼쪽면에 있는 작은 그림들은 별로 주시하지 않습니다. 글 텍스트를 읽을 수 있는 성인독자들은 책을 읽을 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기에, 당연히 왼쪽 위편에 적혀 있는 글텍스트를 읽으며 왼쪽면에 있는 그림을 봅니다. 하지만 아직 글텍스트를 읽지 못하며, 책의 읽기 방향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영아들은 책을 펼쳤을 때 자신을 사로잡는 그림을 먼저 주시합니다. 그런데 이 그림책은 당연히 오른편에 세밀화로 표현된 그림이 큼지막하게 그려져 있기 때문에 아이들은 엄마가 읽어주는 내러티브를 들으면서도 오른쪽의 그림을 먼저 읽게 되지요. 이 그림책을 두어 번 읽어주더라도 영아는 왼쪽면에 있는 그림을 보는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 책을 읽어주는 성인이 왼쪽 면에 있는 그림을 가리키며 내용을 설명해주어야 영아는 왼쪽의 있는 그림과 이 책의 내러티브에 관심을 갖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이 시리즈는 15권인데, 각 권에서 전개되는 내러티브들이 그냥 모르고 지나가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꽤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방식으로 아이와 책 읽기를 즐길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지금 소개하고 있는 『나도 태워줘』만 해도 그렇습니다. 아이와 엄마가 산책을 하면서 만나는 동물이 처음에는 그 형태를 다 보여주지 않습니다. 마치 까꿍놀이처럼 신체의 일부만 보여주지요. 하지만 전체의 모습은 오른쪽 세밀화 그림으로 볼 수 있지요. 그리고 글텍스트는 먼저 동물의 울음소리를 들려줍니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부모님이라면 동물의 울음소리를 딱딱하고 기계적인 목소리로 “꼬꼬꼭 꼬끼오”라고 읽지 않겠지요? 어떤 부모님은 정말 옆에서 수탉이 우는 것처럼 흉내를 내시기도 할 것입니다. 그럼 당연히 아이는 깔깔 웃으며 이 책을 덮어도 또 읽어 달라 부탁할지도 모릅니다. 저는 이 그림책을 이렇게 읽어줍니다.
이렇게 책을 읽어주면, 아이는 책을 읽을수록 등장인물이 왼쪽 면의 유모차에 탄 아이의 뒤에 타게 된다는 것을 인지하게 됩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부터는 오른쪽 세밀화를 보기 전에, 아이의 뒤에 앞의 그 동물이 타고 있는지 확인하지요. 책장을 넘길 때 그 동물이 타고 있으면 기뻐하며 엄마에게 확인도 시켜 줍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흐를수록 유모차에 타는 동물들이 많아져, 엄마는 유모차를 끌기 힘들지요.
이 장면을 보면 유모차에 닭, 오리, 토끼, 강아지, 염소까지 타고 있는데, 돼지가 등장하며 자신도 태워달라고 하지요. 하지만 이미 유모차에는 많은 동물이 타고 있어 탈 자리도 없어 보이고, 아이까지 내려 엄마와 함께 낑낑거리며 유모차를 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뒷장면을 넘기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바로 그 다음에 등장하는 소가 아이와 엄마를 유모차에 태워준다고 나서기 때문이지요. 이 장면에서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좋아합니다. 문제도 해결되었을 뿐만 아니라 엄마가 자신과 함께 유모차를 타는 것이 너무 재미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오늘 소개하는 <세밀화로 그린 보리 아기 그림책 시리즈>는 한 번의 책읽기로 어린 독자들은 왼쪽면과 오른쪽면의 병렬적 관계가 주는 이점을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이 시리즈가 독자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정보를 세밀화로 표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기에, 당연히 세밀화로 표현된 오른쪽 면이 더 화려하고 보기 좋습니다. 하지만 왼쪽 면에서 이어지는 내러티브는 이 책을 계속해서 다시 읽게 하며, 아이에게 다양한 방식의 책읽기를 통해 독서의 즐거움을 가르쳐 주지요. 언어유희를 사용한 책, ‘꼭꼭 숨어라’와 같은 전래동요 노랫말을 생각나게 하는 책, 의성어와 의태어 표현이 재미있는 책 등 다양한 표현방법으로 오른쪽 면의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저희 아이들은 13살이 된 첫째도 이 책을 읽습니다. 그리고 동생에게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게 책을 읽어줄 수 있는지 고민을 하지요. 동물을 울음소리를 연습하던 첫째가 하루는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책을 한번 읽고 나서 그 책을 온전히 이해하고, 그 책을 통해 무엇인가 깨닫는 것이 있다면 참으로 좋겠지만, 사실 한번의 책읽기로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희 그림책 베이직의 많은 글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림책을 꼼꼼하게 읽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그림책은 ‘이 세상은 어떤 곳인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인간다움이란 어떤 것인가’와 더 나아가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윤리적인 차원까지 포함된 예술의 본질적 질문들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그림책을 꼼꼼하게 읽으려면 사실 한 번의 책 읽기로는 부족합니다. 같은 책을 여러 번 글과 그림의 표현과 상호관계까지 곱씹어 가며 읽을 때 ‘그림책 꼼꼼하게 읽기’가 가능하지요. 아이들도 그렇습니다. 여러 번 반복해서 책을 읽을 때, 앞서 읽기에서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되고, 앞서 읽기에서 깨닫지 못했던 것을 깨닫게 되지요.
이제 아이와 책을 읽을 때 한번만 읽고 책장에 넣어두는 것이 아니라, 다음 날 그 책을 다시 펴서 읽어 보시면 어떨까요? 두어 번 그 책을 읽고 나면, 처음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숨겨진 즐거움을 발견하실지도 모릅니다.
(1) 그림책 반복읽기에 관한 논문과 뉴스의 예:
이효원, 문서림, 조희숙(2015) 만 3세 유아들의 그림책 반복적 읽기에 관한 연구. 생태유아교육연구. 제14권 제1호. 1-27쪽
이이슬(2020) 반복적 그림책 읽기 프로그램이 유아의 정서지능 및 마음이론에 미치는 영향. 성균관대학교 석사학위청구논문.
“좋아하는 그림책 반복해서 읽어줘라” 경향신문 2009년 1월 19일자 기사 (https://www.khan.co.kr/article/200901191457165)
강다혜 | 성균관대학원 아동청소년학과 박사과정 수료
시와 글을 쓰며 책을 좋아하던 저는 국문학을 전공하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총신대 유아교육학과에 입학하였을 때 한편으로는 좌절했지만,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하나님이 내가 제일 잘 하는 곳으로 나를 이끄셨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대학 4년을 보내면서 제가 깨달은 것은 역시 하나님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유아교육의 분야 중에서도 유아문학이 또 그 중에서 그림책이 저에게 가장 즐거웠고 또 적성에 맞았기 때문입니다. 그 후로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에 입학해 현은자 교수님 밑에서 박사과정을 마쳤습니다. 지금은 4명의 자녀와 함께 공기 좋고 초목이 푸르른 경상남도 합천에서 끝나지 않는 집안일과 육아로 정신없이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그림책 속 세계관을 연구하여 다음 세대에 진심으로 추천해줄 수 있는 좋은 그림책을 발견하고 소개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