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 소년』 땅꼬마와 까마귀 소년
얼마 전 초등학교 6학년 큰 딸의 가방에서 야시마 타로의 『까마귀 소년』을 발견했습니다. 왜 이 그림책을 학교에 들고 가냐고 물으니, 교장 선생님께서 6학년 친구들 몇 명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문학수업을 하자고 하셨답니다. 그런데 첫 수업이 이 그림책이라네요. 문학수업에서 아이들이 이 책을 가지고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 너무 궁금하여 바쁘게 등교준비를 하는 아이를 붙잡고 나중에 집에 와서 오늘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꼭 엄마에게 말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합니다.
드디어 아이들이 하나 둘 돌아오는 오후가 되었습니다. 조금 일찍 돌아온 7살 아들에게 이 책을 살짝 내밀며 함께 보자고 말을 건냈습니다. 한 참 변신 로보트와 영웅이야기에 빠져 있는 아들은 책 표지를 보고 제목을 읽어주자, 이 아이가 까마귀 영웅으로 변신을 해 악당을 물리치는 이야기냐고 물어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물어보니, 표지의 아이가 악당과 싸우기 위해 자신의 로보트를 부르는 것 같다고 하네요. 이 아이는 분명 힘이 세고 멋있을 거라고 합니다. 책 표지에는 당당하고 자신만만한 얼굴로 입을 벌리고 무언가 말하는 듯한 아이의 얼굴이 그려져 있지요. 저희 아들은 표지 전면에 나오는 아이의 당찬 얼굴에 매료되어, 왼쪽 아래 나무에 앉은 까마귀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목이 『까마귀 소년』인데 까마귀는 어디 있냐고 물어보니, 저 멀리서 날아오고 있겠지 합니다. 그러다 순간 저희 아들은 책 표지에 그려진 아이의 입과 가까운 곳에서 까마귀를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생각한 까마귀 로보트가 아닌 작고 초라한 모습의 까마귀에 실망을 한 것 같은 얼굴입니다. 그러면서 “뭐 작아도 강할거야.”라고 혼자 읊조립니다.
그런데 책장을 넘겨 이야기가 시작되면 저희 아들이 예상했던 내용과는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지요. 그림책 속 화자는 학교 간 첫 날 학교 마룻바닥 밑에 숨어있는 누구도 알지 못하는 작은 아이를 소개합니다. 모두가 그저 ‘땅꼬마’라고 부르는 아이지요. 이 아이는 선생님도 무서워하고 친구들도 무서워하여 아무하고도 어울리지 못합니다. 게다가 늘 뒤쳐지고 꼴찌라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외톨이가 됩니다. 글 텍스트에서 땅꼬마가 보기 싫은 것들을 보지 않으려고 사팔뜨기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고 하자, 저희 아들은 바로 땅꼬마를 놀리는 친구들을 쳐다봅니다. 그러며 친구들이 놀려서 땅꼬마가 너무 속상했겠다고 말합니다. 자기 반에 자꾸 울기만 하는 울보가 있다고 하네요. 그래서 그 친구가 왜 자꾸 우는지 물었더니 장난감을 자기만 가지고 놀려고 해서 다른 친구들이 싫어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 아들도 그 친구가 싫다고 하네요. 저는 아들에게 그 친구가 울 때 너는 어떻게 했냐고 물어보았습니다. 놀랍게도 그림책 속 아이들을 가르키며 이렇게 놀린 것 같다고 말합니다. 왜 이런 행동을 했냐고 물으니, 그 친구가 우는 소리가 너무 싫어서 그랬다네요. 사실 지금 울보라고 말하는 친구는 저희 아들이 꽤 좋아하던 친구입니다. 그래서 예전에 네가 그 친구를 좋아하지 않았냐고 물으니, 잠시 후 조그마한 목소리로 요즘 함께 놀아주지도 않고, 또 그 친구가 울 때 놀려서 미안한 것 같다고 말합니다. 이때부터 저희 아들은 책을 더욱 집중해서 읽습니다. 아직 한글을 모르기때문에 엄마가 글 텍스트를 읽어주면, 열심히 그림을 보지요.
땅꼬마는 혼자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터득합니다. 여러 방법 중 하나는 운동장에 앉아 온갖 소리를 듣는 것이지요. 이 장면에서 저는 아들에게 땅꼬마가 어떤 소리를 듣고 있을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저희 아들은 친구들이 자신을 놀리는 소리를 땅꼬마가 듣고 있다고 대답을 합니다. 보통 그림책은 글과 그림이 같이 있기 때문에, 글 텍스트가 나오는 곳의 그림을 먼저 살피게 됩니다. 제가 읽은 글 텍스트는 땅꼬마가 어떤 소리를 듣는다고 설명하고 있지는 않지요. 다만 멀리서 나는 소리도 듣고, 가까이에서 나는 소리도 듣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글 텍스트 위의 그림에는 혼자 앉아 있는 땅꼬마 위로 마차를 몰거나, 장작을 패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러한 소리들이 들릴 것이라고 말하는 아이의 대답을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글씨를 아직 모르는 아들의 눈에는 벌써 그 다음 펼침면의 땅꼬마를 놀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먼저 들어왔나 봅니다.
드디어 이제 이소베 선생님이 등장합니다. 이 선생님은 땅꼬마와 친구들이 6학년이 되던 해 새로 부임하신 얼굴에 늘 웃음기가 가시지 않는 다정한 분이시지요. 이소베 선생님의 등장으로 그동안 땅꼬마를 설명하던 화자의 뉘앙스가 조금씩 달라집니다. 이제 화자는 이소베 선생님의 시선으로 땅꼬마를 새롭게 조명합니다. 학교 뒷산에 머루와 돼지 감자의 서식처를 알고 꽃에 대해 박식한 땅꼬마를 발견하게 되지요. 그리고 땅꼬마의 그림과 붓글씨를 칭찬하고, 땅꼬마와 자주 이야기를 나누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땅꼬마가 학예회 무대에 올랐을 때, 글 텍스트에서는 땅꼬마를 ‘멍청이’라고 비하하는 표현과 땅꼬마가 까마귀 소리를 낸다는 이소베 선생님 말에 황당해 하는 청중의 모습이 묘사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저희 아들은 땅꼬마가 분명 잘 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무엇을 잘 할거 같은데?”라고 물으니 “당연히 까마귀 소리지.”라고 합니다. 그래서 까마귀 소리를 흉내내는 것이 무대에서 할 만큼 멋있는 것일까 물으니, 당연히 너무너무 멋있는 장기일 거라고 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었더니, 이 아이는 원래부터 까마귀 소리를 잘 내는 능력이 있었는데 그것을 이소베 선생님만 알았던 것이라고 하네요. 까마귀 소리로 어딘가에 있을 악당을 물리칠 수 있을 만큼 멋진 아이였다고 하네요. 그래서 처음부터 이 아이가 멋진 아이일 것이라고 생각했냐고 물으니, 처음에는 몰랐는데 이소베 선생님이 나오고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빨리 어떻게 까마귀 소리를 내는지 궁금하니 그만 물어보고 책장을 넘겨서 읽어 달라고 조릅니다. 그래서 그 다음 장면을 펼칩니다. 엄마인 저는 저희 아들의 눈에서 또 자신의 예상과는 다른 내용이 펼쳐졌기에 실망하는 눈빛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글 텍스트를 읽어주며 바로 알에서 갓 깬 새끼 까마귀 소리가 어떤 것일까 물어보았습니다. 저희 아들은 조금의 고민도 없이 바로 흉내를 냅니다. 이어서 먹이를 바라보고 있는 엄마 까마귀 소리와 사냥감을 눈 앞에 둔 아빠 까마귀 소리도 흉내 내어 봅니다. 아침에 우는 까마귀와 마을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을 때 우는 까마귀, 마지막으로 즐겁고 행복할 때 까마귀 소리까지 흉내 낸 저희 아들의 눈은 어느새 반짝이고 있습니다. 그러다 땅꼬마가 사는 집의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글 텍스트에서 설명하는 ‘목구멍 깊은 곳에서 아주 별난 소리’가 어떤 소리일지 물으니,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가슴을 쭉 펴고 두 팔을 벌린 뒤 지금까지 내던 소리보다 훨씬 큰 목소리로 “까악까악”하고 흉내를 냅니다. 그래서 왜 이렇게 흉내를 냈냐고 물으니, 까마귀가 드디어 땅꼬마가 사는 집에 왔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그래서 이 집이 어떠냐고 물어보니 아주 아름다운 나무와 아름다운 풀과 아름다운 집이 있는데, 집 뒤쪽으로 나무가 다 탄 것으로 보아 아주 큰 어려움을 이겨낸 것 같다고 말합니다. 사실 저희 아들이 가르킨 부분은 벗나무와 고목을 표현한 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저희 아들은 땅꼬마가 까마귀와 함께 힘을 합쳐 큰 불을 껐기 때문에 나무가 타서 잎이 없는 것이며, 산불의 흔적으로 붉은 빛이 잔해로 남아 있는 것이라네요.
땅꼬마의 무대가 끝난 뒤 이소베 선생님은 땅꼬마가 어떻게 이런 소리를 배우게 되었는지를 설명합니다. 그러자 이를 본 아이들과 어른들은 눈물을 흘리지요. 아이들은 땅꼬마를 못살게 군 것이 미안해서 울었고, 어른들은 외톨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여섯 해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 먼 길을 걸어 학교를 온 땅꼬마에게 감동을 받아 코를 훌쩍입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왜 사람들이 울었는지에 대해 아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저희 아들은 까마귀 소리가 너무 멋있어서 울었던 것이라고 하네요. 그래서 글 텍스트를 가르키며 “여기서는 아이들이 못살게 굴었던 것이 생각나서 울었다고 하는데?”하고 물으니, “이렇게 멋진 친구를 못살게 굴었으니까 미안하지”라고 합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아까 울보라고 불렀던 친구 이름을 꺼내봅니다. “그런데 OO이는 어떤 친구야? 울보야?”라고 물으니, “아니, 나랑 원래 친한 친구야. 조금 울기는 하는데 이제 울어도 잘 놀거야. 원래 우리는 서로 좋아하고 친하니까.”라고 합니다.
그 뒤 땅꼬마는 유일하게 6년 개근상을 받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남자 아이들은 집안일을 돕느라 읍내에서 종종 만납니다. 땅꼬마도 숯을 팔려 읍내에 왔는데, 이제 그를 ‘땅꼬마’라고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대신 모두 ‘까마귀 소년’이라고 부릅니다.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화자는 그동안의 목소리와 또 조금 달라진 뉘앙스로 까마귀 소년을 소개합니다. 까마귀 소년이 마치 어른처럼 어깨를 떡 펴고 뚜벅뚜벅 걷는다고 말하지요. 분명 이 아이는 키가 작아 땅꼬마라고 불렸는데, 이제는 그 어떤 남자아이 보다 더 어른스러운 모습을 까마귀 소년에게서 발견한 것입니다. 이 장면에 대한 저희 아들의 감상을 물어보기 위해 왜 땅꼬마가 어른스럽다고 했을까라고 물었더니, 바로 “까마귀 소년! 땅꼬마 아니고 까마귀 소년이잖아”라고 말합니다. 마치 호통을 치는 듯한 말투에 놀라 얼떨결에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답니다. 이런 우리 아들의 반응에 내가 어떤 질문을 하려 했는지 까먹고, 마지막 문장을 읽어 주었습니다. 책을 다 읽은 뒤, 이 책이 어떠했냐고 묻자, 아들은 당연히 재미있었지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왜 재미있었냐고 물으니, 까마귀 소년이 악당을 물리치고 까마귀의 능력으로 이렇게 저렇게 날아서 사람들을 도와주어서 그렇다네요. 그래서 그런 내용은 책에 없었던 것 같다고 물으니, 이 책이 바로 그런 내용이라고 엄마는 그것도 모르냐고 하네요. 그러면서 책을 앞으로 돌려 책 표지에 그려진 까마귀 소년을 보여줍니다.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치켜 들어 큰 소리를 까마귀를 부르는 듯한 당당한 모습의 까마귀 소년 얼굴이 저에게 보입니다. 그 얼굴을 다시 보니, ‘아~ 처음부터 땅꼬마가 아닌 까마귀 소년이었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보통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따돌림 받고 놀림 받는 외톨이였던 땅꼬마를 애정 어린 관심으로 지켜 봐주어 친구들과 마을 사람들에게 ‘까마귀 소년’으로 인정받게 한 이소베 선생님에게 감동을 받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교사의 모습이나 역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 이 그림책을 예로 들곤 하지요. 아들과 책을 다 읽은 후 조금 뒤에 6학년인 큰 딸이 돌아왔습니다. 저는 딸이 집에 들어오자마자 문학수업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물었습니다. 그러니 딸 아이는 신발도 안 벗고, 까마귀 소년이 왕따 당할 아이가 아닌데 왕따를 당해서 안타까웠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기네 반에도 별로 인기가 없고 친구들이 잘 안 놀아주는 아이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네요. 자신은 그 아이에게도 분명 멋진 장점이 있음을 알고 있답니다. 하지만 그 친구를 싫어하는 아이들은 장점을 보고도 알아주지 않거나 인정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까마귀 소년은 굉장히 먼 산골에 사는데도 6년 동안 학교를 한 번도 빠지지 않을 만큼 성실한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놀리는 아이들에게 화를 내지 않는 착한 마음도 있습니다. 게다가 머루와 돼지감자의 서식처나 꽃에 대해서도 많이 아는 것으로 보아 자연을 사랑하고 많이 아끼는 아이일 것 같답니다. 그런데 이러한 장점과 능력을 친구들이 몰라서 6년동안 외롭게 지냈던 것이 안타까웠다고 합니다. 저는 큰 아이에게 혹시 이소베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당연히 이소베 선생님 이야기도 나누었답니다. 아이들은 그나마 까마귀 소년을 이소베 선생님이 알아봐 주어 다행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답니다. 그런데 지금 엄마랑 다시 이야기를 해보니, 우리반 아이들도 이소베 선생님 같아져야 한다고 하네요. 그래서 무슨 뜻인지 물으니, “이소베 선생님은 까마귀 소년을 처음부터 까마귀 소년으로 알아봐 준 사람이잖아”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모두 까마귀 소년이지요. 그런데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때론 땅꼬마가 되기도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도 하고 속상하게도 하지만, 언제든지 그 관계는 변화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바로 까마귀 소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사는 ‘학교’라는 사회는 안타깝게도 땅꼬마가 된 아이가 혼자만의 힘으로 까마귀 소년이 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든 땅꼬마가 보이면 이소베 선생님이 되어주면 됩니다. 우리 아이들이 서로에게 이소베 선생님이 되어 주어 즐겁고 행복한 까마귀의 울음소리만 들리는 학교를 기대해봅니다.
| 강다혜 | 성균관대학원 아동청소년학과 박사과정 수료 시와 글을 쓰며 책을 좋아하던 저는 국문학을 전공하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총신대 유아교육학과에 입학하였을 때 한편으로는 좌절했지만,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하나님이 내가 제일 잘 하는 곳으로 나를 이끄셨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대학 4년을 보내면서 제가 깨달은 것은 역시 하나님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유아교육의 분야 중에서도 유아문학이 또 그 중에서 그림책이 저에게 가장 즐거웠고 또 적성에 맞았기 때문입니다. 그 후로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에 입학해 현은자 교수님 밑에서 박사과정을 마쳤습니다. 지금은 4명의 자녀와 함께 공기 좋고 초목이 푸르른 경상남도 합천에서 끝나지 않는 집안일과 육아로 정신없이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그림책 속 세계관을 연구하여 다음 세대에 진심으로 추천해줄 수 있는 좋은 그림책을 발견하고 소개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
『까마귀 소년』 땅꼬마와 까마귀 소년
얼마 전 초등학교 6학년 큰 딸의 가방에서 야시마 타로의 『까마귀 소년』을 발견했습니다. 왜 이 그림책을 학교에 들고 가냐고 물으니, 교장 선생님께서 6학년 친구들 몇 명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문학수업을 하자고 하셨답니다. 그런데 첫 수업이 이 그림책이라네요. 문학수업에서 아이들이 이 책을 가지고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 너무 궁금하여 바쁘게 등교준비를 하는 아이를 붙잡고 나중에 집에 와서 오늘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꼭 엄마에게 말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합니다.
드디어 아이들이 하나 둘 돌아오는 오후가 되었습니다. 조금 일찍 돌아온 7살 아들에게 이 책을 살짝 내밀며 함께 보자고 말을 건냈습니다. 한 참 변신 로보트와 영웅이야기에 빠져 있는 아들은 책 표지를 보고 제목을 읽어주자, 이 아이가 까마귀 영웅으로 변신을 해 악당을 물리치는 이야기냐고 물어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물어보니, 표지의 아이가 악당과 싸우기 위해 자신의 로보트를 부르는 것 같다고 하네요. 이 아이는 분명 힘이 세고 멋있을 거라고 합니다. 책 표지에는 당당하고 자신만만한 얼굴로 입을 벌리고 무언가 말하는 듯한 아이의 얼굴이 그려져 있지요. 저희 아들은 표지 전면에 나오는 아이의 당찬 얼굴에 매료되어, 왼쪽 아래 나무에 앉은 까마귀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목이 『까마귀 소년』인데 까마귀는 어디 있냐고 물어보니, 저 멀리서 날아오고 있겠지 합니다. 그러다 순간 저희 아들은 책 표지에 그려진 아이의 입과 가까운 곳에서 까마귀를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생각한 까마귀 로보트가 아닌 작고 초라한 모습의 까마귀에 실망을 한 것 같은 얼굴입니다. 그러면서 “뭐 작아도 강할거야.”라고 혼자 읊조립니다.
그런데 책장을 넘겨 이야기가 시작되면 저희 아들이 예상했던 내용과는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지요. 그림책 속 화자는 학교 간 첫 날 학교 마룻바닥 밑에 숨어있는 누구도 알지 못하는 작은 아이를 소개합니다. 모두가 그저 ‘땅꼬마’라고 부르는 아이지요. 이 아이는 선생님도 무서워하고 친구들도 무서워하여 아무하고도 어울리지 못합니다. 게다가 늘 뒤쳐지고 꼴찌라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외톨이가 됩니다. 글 텍스트에서 땅꼬마가 보기 싫은 것들을 보지 않으려고 사팔뜨기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고 하자, 저희 아들은 바로 땅꼬마를 놀리는 친구들을 쳐다봅니다. 그러며 친구들이 놀려서 땅꼬마가 너무 속상했겠다고 말합니다. 자기 반에 자꾸 울기만 하는 울보가 있다고 하네요. 그래서 그 친구가 왜 자꾸 우는지 물었더니 장난감을 자기만 가지고 놀려고 해서 다른 친구들이 싫어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 아들도 그 친구가 싫다고 하네요. 저는 아들에게 그 친구가 울 때 너는 어떻게 했냐고 물어보았습니다. 놀랍게도 그림책 속 아이들을 가르키며 이렇게 놀린 것 같다고 말합니다. 왜 이런 행동을 했냐고 물으니, 그 친구가 우는 소리가 너무 싫어서 그랬다네요. 사실 지금 울보라고 말하는 친구는 저희 아들이 꽤 좋아하던 친구입니다. 그래서 예전에 네가 그 친구를 좋아하지 않았냐고 물으니, 잠시 후 조그마한 목소리로 요즘 함께 놀아주지도 않고, 또 그 친구가 울 때 놀려서 미안한 것 같다고 말합니다. 이때부터 저희 아들은 책을 더욱 집중해서 읽습니다. 아직 한글을 모르기때문에 엄마가 글 텍스트를 읽어주면, 열심히 그림을 보지요.
땅꼬마는 혼자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터득합니다. 여러 방법 중 하나는 운동장에 앉아 온갖 소리를 듣는 것이지요. 이 장면에서 저는 아들에게 땅꼬마가 어떤 소리를 듣고 있을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저희 아들은 친구들이 자신을 놀리는 소리를 땅꼬마가 듣고 있다고 대답을 합니다. 보통 그림책은 글과 그림이 같이 있기 때문에, 글 텍스트가 나오는 곳의 그림을 먼저 살피게 됩니다. 제가 읽은 글 텍스트는 땅꼬마가 어떤 소리를 듣는다고 설명하고 있지는 않지요. 다만 멀리서 나는 소리도 듣고, 가까이에서 나는 소리도 듣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글 텍스트 위의 그림에는 혼자 앉아 있는 땅꼬마 위로 마차를 몰거나, 장작을 패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러한 소리들이 들릴 것이라고 말하는 아이의 대답을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글씨를 아직 모르는 아들의 눈에는 벌써 그 다음 펼침면의 땅꼬마를 놀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먼저 들어왔나 봅니다.
드디어 이제 이소베 선생님이 등장합니다. 이 선생님은 땅꼬마와 친구들이 6학년이 되던 해 새로 부임하신 얼굴에 늘 웃음기가 가시지 않는 다정한 분이시지요. 이소베 선생님의 등장으로 그동안 땅꼬마를 설명하던 화자의 뉘앙스가 조금씩 달라집니다. 이제 화자는 이소베 선생님의 시선으로 땅꼬마를 새롭게 조명합니다. 학교 뒷산에 머루와 돼지 감자의 서식처를 알고 꽃에 대해 박식한 땅꼬마를 발견하게 되지요. 그리고 땅꼬마의 그림과 붓글씨를 칭찬하고, 땅꼬마와 자주 이야기를 나누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땅꼬마가 학예회 무대에 올랐을 때, 글 텍스트에서는 땅꼬마를 ‘멍청이’라고 비하하는 표현과 땅꼬마가 까마귀 소리를 낸다는 이소베 선생님 말에 황당해 하는 청중의 모습이 묘사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저희 아들은 땅꼬마가 분명 잘 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무엇을 잘 할거 같은데?”라고 물으니 “당연히 까마귀 소리지.”라고 합니다. 그래서 까마귀 소리를 흉내내는 것이 무대에서 할 만큼 멋있는 것일까 물으니, 당연히 너무너무 멋있는 장기일 거라고 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었더니, 이 아이는 원래부터 까마귀 소리를 잘 내는 능력이 있었는데 그것을 이소베 선생님만 알았던 것이라고 하네요. 까마귀 소리로 어딘가에 있을 악당을 물리칠 수 있을 만큼 멋진 아이였다고 하네요. 그래서 처음부터 이 아이가 멋진 아이일 것이라고 생각했냐고 물으니, 처음에는 몰랐는데 이소베 선생님이 나오고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빨리 어떻게 까마귀 소리를 내는지 궁금하니 그만 물어보고 책장을 넘겨서 읽어 달라고 조릅니다. 그래서 그 다음 장면을 펼칩니다. 엄마인 저는 저희 아들의 눈에서 또 자신의 예상과는 다른 내용이 펼쳐졌기에 실망하는 눈빛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글 텍스트를 읽어주며 바로 알에서 갓 깬 새끼 까마귀 소리가 어떤 것일까 물어보았습니다. 저희 아들은 조금의 고민도 없이 바로 흉내를 냅니다. 이어서 먹이를 바라보고 있는 엄마 까마귀 소리와 사냥감을 눈 앞에 둔 아빠 까마귀 소리도 흉내 내어 봅니다. 아침에 우는 까마귀와 마을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을 때 우는 까마귀, 마지막으로 즐겁고 행복할 때 까마귀 소리까지 흉내 낸 저희 아들의 눈은 어느새 반짝이고 있습니다. 그러다 땅꼬마가 사는 집의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글 텍스트에서 설명하는 ‘목구멍 깊은 곳에서 아주 별난 소리’가 어떤 소리일지 물으니,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가슴을 쭉 펴고 두 팔을 벌린 뒤 지금까지 내던 소리보다 훨씬 큰 목소리로 “까악까악”하고 흉내를 냅니다. 그래서 왜 이렇게 흉내를 냈냐고 물으니, 까마귀가 드디어 땅꼬마가 사는 집에 왔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그래서 이 집이 어떠냐고 물어보니 아주 아름다운 나무와 아름다운 풀과 아름다운 집이 있는데, 집 뒤쪽으로 나무가 다 탄 것으로 보아 아주 큰 어려움을 이겨낸 것 같다고 말합니다. 사실 저희 아들이 가르킨 부분은 벗나무와 고목을 표현한 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저희 아들은 땅꼬마가 까마귀와 함께 힘을 합쳐 큰 불을 껐기 때문에 나무가 타서 잎이 없는 것이며, 산불의 흔적으로 붉은 빛이 잔해로 남아 있는 것이라네요.
땅꼬마의 무대가 끝난 뒤 이소베 선생님은 땅꼬마가 어떻게 이런 소리를 배우게 되었는지를 설명합니다. 그러자 이를 본 아이들과 어른들은 눈물을 흘리지요. 아이들은 땅꼬마를 못살게 군 것이 미안해서 울었고, 어른들은 외톨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여섯 해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 먼 길을 걸어 학교를 온 땅꼬마에게 감동을 받아 코를 훌쩍입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왜 사람들이 울었는지에 대해 아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저희 아들은 까마귀 소리가 너무 멋있어서 울었던 것이라고 하네요. 그래서 글 텍스트를 가르키며 “여기서는 아이들이 못살게 굴었던 것이 생각나서 울었다고 하는데?”하고 물으니, “이렇게 멋진 친구를 못살게 굴었으니까 미안하지”라고 합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아까 울보라고 불렀던 친구 이름을 꺼내봅니다. “그런데 OO이는 어떤 친구야? 울보야?”라고 물으니, “아니, 나랑 원래 친한 친구야. 조금 울기는 하는데 이제 울어도 잘 놀거야. 원래 우리는 서로 좋아하고 친하니까.”라고 합니다.
그 뒤 땅꼬마는 유일하게 6년 개근상을 받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남자 아이들은 집안일을 돕느라 읍내에서 종종 만납니다. 땅꼬마도 숯을 팔려 읍내에 왔는데, 이제 그를 ‘땅꼬마’라고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대신 모두 ‘까마귀 소년’이라고 부릅니다.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화자는 그동안의 목소리와 또 조금 달라진 뉘앙스로 까마귀 소년을 소개합니다. 까마귀 소년이 마치 어른처럼 어깨를 떡 펴고 뚜벅뚜벅 걷는다고 말하지요. 분명 이 아이는 키가 작아 땅꼬마라고 불렸는데, 이제는 그 어떤 남자아이 보다 더 어른스러운 모습을 까마귀 소년에게서 발견한 것입니다. 이 장면에 대한 저희 아들의 감상을 물어보기 위해 왜 땅꼬마가 어른스럽다고 했을까라고 물었더니, 바로 “까마귀 소년! 땅꼬마 아니고 까마귀 소년이잖아”라고 말합니다. 마치 호통을 치는 듯한 말투에 놀라 얼떨결에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답니다. 이런 우리 아들의 반응에 내가 어떤 질문을 하려 했는지 까먹고, 마지막 문장을 읽어 주었습니다. 책을 다 읽은 뒤, 이 책이 어떠했냐고 묻자, 아들은 당연히 재미있었지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왜 재미있었냐고 물으니, 까마귀 소년이 악당을 물리치고 까마귀의 능력으로 이렇게 저렇게 날아서 사람들을 도와주어서 그렇다네요. 그래서 그런 내용은 책에 없었던 것 같다고 물으니, 이 책이 바로 그런 내용이라고 엄마는 그것도 모르냐고 하네요. 그러면서 책을 앞으로 돌려 책 표지에 그려진 까마귀 소년을 보여줍니다.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치켜 들어 큰 소리를 까마귀를 부르는 듯한 당당한 모습의 까마귀 소년 얼굴이 저에게 보입니다. 그 얼굴을 다시 보니, ‘아~ 처음부터 땅꼬마가 아닌 까마귀 소년이었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보통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따돌림 받고 놀림 받는 외톨이였던 땅꼬마를 애정 어린 관심으로 지켜 봐주어 친구들과 마을 사람들에게 ‘까마귀 소년’으로 인정받게 한 이소베 선생님에게 감동을 받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교사의 모습이나 역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 이 그림책을 예로 들곤 하지요. 아들과 책을 다 읽은 후 조금 뒤에 6학년인 큰 딸이 돌아왔습니다. 저는 딸이 집에 들어오자마자 문학수업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물었습니다. 그러니 딸 아이는 신발도 안 벗고, 까마귀 소년이 왕따 당할 아이가 아닌데 왕따를 당해서 안타까웠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기네 반에도 별로 인기가 없고 친구들이 잘 안 놀아주는 아이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네요. 자신은 그 아이에게도 분명 멋진 장점이 있음을 알고 있답니다. 하지만 그 친구를 싫어하는 아이들은 장점을 보고도 알아주지 않거나 인정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까마귀 소년은 굉장히 먼 산골에 사는데도 6년 동안 학교를 한 번도 빠지지 않을 만큼 성실한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놀리는 아이들에게 화를 내지 않는 착한 마음도 있습니다. 게다가 머루와 돼지감자의 서식처나 꽃에 대해서도 많이 아는 것으로 보아 자연을 사랑하고 많이 아끼는 아이일 것 같답니다. 그런데 이러한 장점과 능력을 친구들이 몰라서 6년동안 외롭게 지냈던 것이 안타까웠다고 합니다. 저는 큰 아이에게 혹시 이소베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당연히 이소베 선생님 이야기도 나누었답니다. 아이들은 그나마 까마귀 소년을 이소베 선생님이 알아봐 주어 다행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답니다. 그런데 지금 엄마랑 다시 이야기를 해보니, 우리반 아이들도 이소베 선생님 같아져야 한다고 하네요. 그래서 무슨 뜻인지 물으니, “이소베 선생님은 까마귀 소년을 처음부터 까마귀 소년으로 알아봐 준 사람이잖아”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모두 까마귀 소년이지요. 그런데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때론 땅꼬마가 되기도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도 하고 속상하게도 하지만, 언제든지 그 관계는 변화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바로 까마귀 소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사는 ‘학교’라는 사회는 안타깝게도 땅꼬마가 된 아이가 혼자만의 힘으로 까마귀 소년이 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든 땅꼬마가 보이면 이소베 선생님이 되어주면 됩니다. 우리 아이들이 서로에게 이소베 선생님이 되어 주어 즐겁고 행복한 까마귀의 울음소리만 들리는 학교를 기대해봅니다.
강다혜 | 성균관대학원 아동청소년학과 박사과정 수료
시와 글을 쓰며 책을 좋아하던 저는 국문학을 전공하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총신대 유아교육학과에 입학하였을 때 한편으로는 좌절했지만,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하나님이 내가 제일 잘 하는 곳으로 나를 이끄셨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대학 4년을 보내면서 제가 깨달은 것은 역시 하나님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유아교육의 분야 중에서도 유아문학이 또 그 중에서 그림책이 저에게 가장 즐거웠고 또 적성에 맞았기 때문입니다. 그 후로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에 입학해 현은자 교수님 밑에서 박사과정을 마쳤습니다. 지금은 4명의 자녀와 함께 공기 좋고 초목이 푸르른 경상남도 합천에서 끝나지 않는 집안일과 육아로 정신없이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그림책 속 세계관을 연구하여 다음 세대에 진심으로 추천해줄 수 있는 좋은 그림책을 발견하고 소개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