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슬아슬한 여행』 모험하는 아이, 도전하는 아이
3월이 되어 아이들이 다시 학교에 갑니다. 새 학년과 새 친구들, 새 교실 등 새롭고도 낯선 무언가에 도전을 해야 하는 아이들과 함께 읽고 싶은 그림책이 있습니다. 바로 앤 조나스의 『아슬아슬한 여행』입니다. 이 그림책은 엄마와 줄곧 학교에 같이 가다 혼자 학교에 가야하는 아이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림책 표지를 보면, 책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는 듯한 두 아이의 앞에 꽃덤불 속에 숨어 있는 호랑이의 모습이 보입니다. 이 책은 앞뒤표지가 하나의 그림으로 연결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독자는 앞표지에서 호랑이를 발견하지만 책을 펼쳐 뒤표지까지 본다면 더 많은 동물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쓰레기봉투 같은 코뿔소와 나무에 숨어 있는 코끼리입니다. 아이들이 가는 길에 왜 이런 동물들이 숨어 있는 것일까요? 책 제목처럼 아슬아슬한 일들이 앞으로 펼쳐질 것 같아 얼른 그림책을 넘겨보고 싶어집니다.
그림책을 열어 표제지를 보면 가방을 메고 있는 한 아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책장을 넘겨 이제 이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아이는 학교에 가려고 엄마의 배웅을 받습니다. ‘엄마가 이제 학교에 데려다 주지 않겠대요.’라는 문장을 보니 아이는 지금까지 엄마와 함께 학교를 갔지만, 오늘은 혼자 학교를 가야하나 봅니다. 그런데 혼자 대문을 나선 아이는 ‘엄마는 우리가 밀림 속에 살고 있다는 걸 몰라서 그래요.’라고 말합니다. 왜 이렇게 말할까 궁금해 그림을 보니 처음에는 하얀색 정원수로 보이던 작은 나무들이 ‘양’처럼 보이기 시작합니다. 책을 넘기니 아이는 뒤를 돌아 배웅하는 엄마와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지만, 독자는 책 표지에 그려진 호랑이가 숨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 칠면조, 악어, 고릴라도 발견할 수 있지요. 이 동물들은 정원수인지, 돌계단인지 아니면 정말 고릴라와 악어인지 헷갈립니다.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독자는 더욱 혼란스럽지만 재미있는 그림과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림책 속 아이는 독자에게 말합니다.
“어디에나 동물이 있고요, 동물들은 나를 봐도 피하지 않아요.”
아이의 말처럼 아이의 시선을 따라가며 책을 읽으면, 독자는 숨어 있는 동물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나무나 돌, 공원 안에 조성된 연못, 쓰레기봉투, 다른집 앞의 정원수와 발코니 등 다양한 장소에서 독자는 진짜 동물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숨은 동물’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혼자 밀림을 여행하던(사실은 학교에가던) 아이가 사막에 들어서기 앞서 친구를 만납니다. 이제 두 아이는 모래언덕 뒤에 있는 동물들에게 들키지 않게 조심하며 사막을 지나고, 강을 건너서, 온갖 동물들을 피하여 마지막 산까지 넘어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바로 학교지요.
그림책을 읽는 것 자체가 독자에게는 즐거운 놀이가 되지만, 그림책 중에는 어떠한 특정한 놀이를 하자고 이야기를 건네는 듯한 책도 있습니다(1). 앤 조나스의 『아슬아슬한 여행』을 읽는 독자는 도시 속에 숨어 있는 동물을 찾는 ‘숨은 그림 찾기’를 하게 됩니다. 이처럼 아이들에게 익숙한 놀이의 양태로 독자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그림책들이 있습니다. 저에게 아이가 그림책 읽기에 흥미가 없는데 어떻게 하면 그림책 읽기를 좋아할 수 있겠냐고 질문하시는 부모님들이 많습니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 저는 이렇게 그림책 속에서 아이들에게 익숙한 놀이를 찾아내고 즐길 수 있는 책들을 소개시켜 드립니다. 앤 조나스의 『아슬아슬한 여행』은 이러한 부모님들이 단연 제일 좋아하고 만족하시는 그림책입니다.
앤 조나스는 독자들이 책을 읽으면서 시각적으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그림책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국내에는 『조각이불』(비룡소, 2001), 『기묘한 왕복여행』(아이세움, 2003), 『바로 또 거꾸로』(비룡소, 2005) 등이 출판이 되었는데, 『기묘한 왕복여행』과 『바로 또 거꾸로』는 특별한 서사가 없지만 독자가 그림을 보는 방향이나 각도에 따라 다른 그림을 볼 수 있는 시각적 착시현상으로 즐거움을 얻는 책 입니다. 그녀는 아이들이 상상력을 뻗어나갈 수 있게 돕는 다양한 방법을 탐구해왔는데 일종의 시각 놀이를 담은 책들을 디자인하는데 큰 매혹을 느꼈다고 하네요(2). 『아슬아슬한 여행』도 그러한 작업의 한 결과물입니다. 그녀는 어느 하나 튀지 않는 흐릿한 수채화를 사용해서 동물들을 주인공 주변의 자연물이나 사물로 적절하게 위장(camouflage)시켰습니다. 그래서 그림책을 읽는 독자는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그냥 넘길 수가 없지요.
새해가 지나 한 살씩 더 먹어서 13살이 된 첫째와, 9살이 된 둘째, 7살이 된 셋째는 함께 이 책을 한참 봅니다. 저는 이 책을 아이들보다 먼저 읽었기때문에 이 책 어디에 어느 동물이 숨어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과 책을 읽으면 그림책 속에 숨어 있는 동물들을 가르쳐주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합니다. 사실 이 책은 이야기가 시작되는 첫 페이지부터 정원수로 위장된 ‘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처음 읽는 아이들은 미처 양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첫 페이지부터 그림을 짚어주며 자세히 보게 해야 하나, 양을 발견할 수 있게 힌트를 줘야 하나 많이 고민이 합니다. 하지만 이런 고민은 책을 읽을 수록 사라집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책을 넘길수록 자연스럽게 위장되거나 숨은 동물들을 찾는데 굉장히 열중하기 때문이지요. 그림책을 마지막까지 읽고 나면 이 책에서 어떤 동물들을 찾을 수 있는지 설명하는 페이지를 만납니다. 무려 36마리나 이 그림책에 숨어 있었습니다. 한번의 책 읽기에서 36마리의 동물을 다 찾지 못한 아이들은 다시 책을 맨 앞으로 돌려 동물들을 찾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처음에는 발견하지 못한 ‘양’을 발견하게 되지요.
어느 날 7살이 된 셋째가 다시 이 책을 책꽂이에서 뽑아내 누나들과 함께 읽었습니다. 셋째가 동물을 발견하면 어릴 때부터 동물에 대한 지식이 풍부했던 큰 누나가 이 동물이 어떤 동물인지 설명을 해줍니다. 그러면 동생들은 그 설명을 듣고 재미있어 자신들이 찾은 다른 동물을 첫째에게 물어봅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며, 저는 아이들이 동물들이 숨어 있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가 집에서 도보로 5분도 안되는 거리에 있지만, 때로는 혼자 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이 책의 주인공 아이도 대문 밖이 밀림으로 느껴질 정도로 혼자 학교에 가는 것이 두려웠던 것 같습니다. 주인공 아이가 사는 도시에 진짜 동물들이 출몰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다만 아이의 눈에 쓰레기봉투도 코뿔소로 보일 만큼 학교를 혼자 가는 것이 무서웠던 것이죠. 저는 작가가 이런 방식으로 주인공 아이의 심리를 표현한 것을 아이들이 알아챘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아이들에게 왜 주인공 아이의 눈에 동물들이 보인 것인지 먼저 물어봤습니다. 7살 아이와 9살 아이는 동물들이 진짜로 도시에 숨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왜 다른 사람들은 동물들을 보지 못했냐고 물어보니, 각자 자신의 일이 바쁘고 동물에게 관심이 없어서라고 대답합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동물을 사랑하는 친구라 진짜 동물들을 알아보고 친구로 삼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분명 주인공은 동물들이 있어서 무섭다고 했는데 그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더니, “당연히 동물이 눈 앞에 있는데 무섭지. 그래도 이 아이처럼 잘 피해가면 돼. 동물을 피해서 살금살금 지나가니까 정말 재미있지.”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13살 아이의 눈에는 이 동물들이 진짜 동물로 보이지는 않았나 봅니다. 13살 아이는 주인공 아이의 눈에만 동물이 보이고, 동물들 자체도 쓰레기봉투나 나뭇가지 등과 비슷한 것으로보아, 주인공 아이가 오해를 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럼 왜 주인공 아이에게는 학교 가는 길에 동물들이 숨어있는 것처럼 보였을지 물으니, 여기에 있는동물들이 대부분 멸종위기 동물인 것으로 봐서 작가가 멸종위기 동물을 보호하자는 마음을 담아 동물들을 위장시켜 표현한 것 같다고 말합니다. 저는 이 대답에 ‘빵!’하고 웃음이 터졌습니다. 이러한 엉뚱한 반응이 평소 동물에 관심이 많던 아이의 성향을 그대로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다른 아이들은 몰라도 13살 첫째 아이는 작가의 의도를 발견해주었으면 하는 욕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첫째 아이랑 산책을 하며 이 그림책에 대해 다시 이야기 했지요. 왜 아이의 눈에 사물이 동물로 보였는지 말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눈에 동물들이 보일 때 그 곳을 지나는 아이의 마음이 어떠할지, 그리고 마지막 학교에 도착했을 때 아이의 마음은 어떻게 변했는지 등 작가의 의도를 생각해볼 수 있도록 유도하는 질문이었지요. 그런데 저희 첫 째는 아이가 두려움에 사물들이 동물로 보였을 것이라는 생각을 끝까지 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답답한 저는 답을 가르쳐 주듯 저의 해석을 아이에게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가 “아~ 그래? 난 전혀 그렇게 생각을 못했네.”라고 대답합니다. 아이랑 더 대화를 해보니, 주인공이 처음에는 학교 가는 것이 두려웠을지라도 점점 재미있어졌을 것이라고 합니다. 동물들에 대한 주인공의 감정도 처음에는 무서웠을 수도 있는데, 나중에는 학교 가는 길을 ‘밀림을 모험한다’고 상상하며 주변의 사물을 동물이라 여기고 놀이하듯 학교를 갔을 것이기에 별로 무섭지 않았을 것 같다고 합니다. 아이의 말을 듣고 다시 그림책을 읽어봅니다.
그림책 초반에 아이가 공원에 다다랐을 때, 약간 무서운 듯 입구의 기둥을 붙잡고 말합니다.
“어떤 동물은 아주 위험해요. 그래도 난 날마다 끄떡없어요. 살아남는 재주가 대단한 거지요.”
저는 ‘살아남는 재주’라고 표현할 정도로 아이가 이 길이 무서운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이들은 주인공 아이가 ‘살아남는 재주’가 뛰어나 무서운 동물들을 피해꿋꿋이 걸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 ‘살아남는 재주’는 주인공의 능력인 것이죠. 동물들이 있지만, 들키지 않고 피해갈 수 있는 능력 말이죠. 독자는 책장을 넘길수록 주인공 아이의 마음이 달라진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동물들을 피해 길을 가는 것이 재미있는 모험으로 바뀐 듯 아이의 표정에 즐거움이 담깁니다. 그리고 결국 학교에 도착했을 때, 아이의 얼굴에서 일을 잘 성취했다는 기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 그림책의 원제는 『The Trek』입니다. 작가가 산악지대나 밀림 등 오지를 여행하거나 걷는 운동을 뜻하는 ‘trek’을 제목으로 한 것으로 보면 작가의 의도를 엄마인 저보다 아이들이 더 잘 찾아낸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는 아이들의 상상력을 풍부하게 도우면서도 아이들 내면의 관심사를 다루는 그림책을 만들고 싶었다고 합니다(3). 이그림책은 시각적 효과로 숨은 동물을 표현함으로 아이들의 상상력을 풍부하게 했고, 혼자 학교를 가야 하는 걱정을 모험하는 즐거움으로 바꾸어 새로운 도전도 해 볼만 하다는 메시지로 아이들의 두려움과 도전 그리고 성장이라는 내면의 관심사를 훌륭히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제 곧 우리 아이들은 다시 학교를 갑니다. 새로운 학기를 시작하며 친구를 잘 사귈 수 있을지, 좋은 선생님을 만날 수 있을지, 새 학년의 공부는 너무 어렵지는 않을지 등의 고민 외에 전염병의 위험까지 더해져 더 많은 걱정을 안고 있는 2022년 3월입니다. 며칠 전 뉴스를 보며 새 학기에 학교에 가는 것을 불안해 하는 우리 아이들과 어떤 CCM 찬양을 함께 들었습니다. 그 찬양은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 우리의 그늘이 되시며 모든 환란을 면하게 하시고 언제나 우리의 모든 출입을 지키신다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두려움과 걱정은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께 맡기고 설레는 마음으로 새로운 가방에 새로운 필기구를 넣으며 3월의 등교길을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파릇한 새싹이 돋고 햇빛이 따스해지는 이 계절에 우리 아이들이 두려움과 걱정은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께 맡기고 새로운 모험에 도전하길 바랍니다.
(1) 현은자, 김현경(2007) 놀이로서의 그림책의 글과 그림 읽기. 유아교육연구 27(2) 261-279
(2) 서남희(2011) 시각놀이로 상상의 날개를 펼쳐봐!-앤 조나스 1 열린어린이 웹진 통권 100호에서 재인용. (http://www.openkid.co.kr/webzine/view.aspx?year=2011&month=03&atseq=1969)
(3) 서남희(2011) 시각 놀이로 상상의 날개를 펼쳐봐!- 앤 조나스 2. 열린어린이 웹진 통권 101호에서 재인용(http://www.openkid.co.kr/webzine/view.aspx?year=2011&month=04&atseq=1987)
|
| 강다혜 | 성균관대학원 아동청소년학과 박사과정 수료 시와 글을 쓰며 책을 좋아하던 저는 국문학을 전공하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총신대 유아교육학과에 입학하였을 때 한편으로는 좌절했지만,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하나님이 내가 제일 잘 하는 곳으로 나를 이끄셨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대학 4년을 보내면서 제가 깨달은 것은 역시 하나님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유아교육의 분야 중에서도 유아문학이 또 그 중에서 그림책이 저에게 가장 즐거웠고 또 적성에 맞았기 때문입니다. 그 후로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에 입학해 현은자 교수님 밑에서 박사과정을 마쳤습니다. 지금은 4명의 자녀와 함께 공기 좋고 초목이 푸르른 경상남도 합천에서 끝나지 않는 집안일과 육아로 정신없이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그림책 속 세계관을 연구하여 다음 세대에 진심으로 추천해줄 수 있는 좋은 그림책을 발견하고 소개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
『아슬아슬한 여행』 모험하는 아이, 도전하는 아이
3월이 되어 아이들이 다시 학교에 갑니다. 새 학년과 새 친구들, 새 교실 등 새롭고도 낯선 무언가에 도전을 해야 하는 아이들과 함께 읽고 싶은 그림책이 있습니다. 바로 앤 조나스의 『아슬아슬한 여행』입니다. 이 그림책은 엄마와 줄곧 학교에 같이 가다 혼자 학교에 가야하는 아이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림책 표지를 보면, 책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는 듯한 두 아이의 앞에 꽃덤불 속에 숨어 있는 호랑이의 모습이 보입니다. 이 책은 앞뒤표지가 하나의 그림으로 연결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독자는 앞표지에서 호랑이를 발견하지만 책을 펼쳐 뒤표지까지 본다면 더 많은 동물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쓰레기봉투 같은 코뿔소와 나무에 숨어 있는 코끼리입니다. 아이들이 가는 길에 왜 이런 동물들이 숨어 있는 것일까요? 책 제목처럼 아슬아슬한 일들이 앞으로 펼쳐질 것 같아 얼른 그림책을 넘겨보고 싶어집니다.
그림책을 열어 표제지를 보면 가방을 메고 있는 한 아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책장을 넘겨 이제 이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아이는 학교에 가려고 엄마의 배웅을 받습니다. ‘엄마가 이제 학교에 데려다 주지 않겠대요.’라는 문장을 보니 아이는 지금까지 엄마와 함께 학교를 갔지만, 오늘은 혼자 학교를 가야하나 봅니다. 그런데 혼자 대문을 나선 아이는 ‘엄마는 우리가 밀림 속에 살고 있다는 걸 몰라서 그래요.’라고 말합니다. 왜 이렇게 말할까 궁금해 그림을 보니 처음에는 하얀색 정원수로 보이던 작은 나무들이 ‘양’처럼 보이기 시작합니다. 책을 넘기니 아이는 뒤를 돌아 배웅하는 엄마와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지만, 독자는 책 표지에 그려진 호랑이가 숨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 칠면조, 악어, 고릴라도 발견할 수 있지요. 이 동물들은 정원수인지, 돌계단인지 아니면 정말 고릴라와 악어인지 헷갈립니다.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독자는 더욱 혼란스럽지만 재미있는 그림과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림책 속 아이는 독자에게 말합니다.
아이의 말처럼 아이의 시선을 따라가며 책을 읽으면, 독자는 숨어 있는 동물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나무나 돌, 공원 안에 조성된 연못, 쓰레기봉투, 다른집 앞의 정원수와 발코니 등 다양한 장소에서 독자는 진짜 동물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숨은 동물’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혼자 밀림을 여행하던(사실은 학교에가던) 아이가 사막에 들어서기 앞서 친구를 만납니다. 이제 두 아이는 모래언덕 뒤에 있는 동물들에게 들키지 않게 조심하며 사막을 지나고, 강을 건너서, 온갖 동물들을 피하여 마지막 산까지 넘어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바로 학교지요.
그림책을 읽는 것 자체가 독자에게는 즐거운 놀이가 되지만, 그림책 중에는 어떠한 특정한 놀이를 하자고 이야기를 건네는 듯한 책도 있습니다(1). 앤 조나스의 『아슬아슬한 여행』을 읽는 독자는 도시 속에 숨어 있는 동물을 찾는 ‘숨은 그림 찾기’를 하게 됩니다. 이처럼 아이들에게 익숙한 놀이의 양태로 독자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그림책들이 있습니다. 저에게 아이가 그림책 읽기에 흥미가 없는데 어떻게 하면 그림책 읽기를 좋아할 수 있겠냐고 질문하시는 부모님들이 많습니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 저는 이렇게 그림책 속에서 아이들에게 익숙한 놀이를 찾아내고 즐길 수 있는 책들을 소개시켜 드립니다. 앤 조나스의 『아슬아슬한 여행』은 이러한 부모님들이 단연 제일 좋아하고 만족하시는 그림책입니다.
앤 조나스는 독자들이 책을 읽으면서 시각적으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그림책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국내에는 『조각이불』(비룡소, 2001), 『기묘한 왕복여행』(아이세움, 2003), 『바로 또 거꾸로』(비룡소, 2005) 등이 출판이 되었는데, 『기묘한 왕복여행』과 『바로 또 거꾸로』는 특별한 서사가 없지만 독자가 그림을 보는 방향이나 각도에 따라 다른 그림을 볼 수 있는 시각적 착시현상으로 즐거움을 얻는 책 입니다. 그녀는 아이들이 상상력을 뻗어나갈 수 있게 돕는 다양한 방법을 탐구해왔는데 일종의 시각 놀이를 담은 책들을 디자인하는데 큰 매혹을 느꼈다고 하네요(2). 『아슬아슬한 여행』도 그러한 작업의 한 결과물입니다. 그녀는 어느 하나 튀지 않는 흐릿한 수채화를 사용해서 동물들을 주인공 주변의 자연물이나 사물로 적절하게 위장(camouflage)시켰습니다. 그래서 그림책을 읽는 독자는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그냥 넘길 수가 없지요.
새해가 지나 한 살씩 더 먹어서 13살이 된 첫째와, 9살이 된 둘째, 7살이 된 셋째는 함께 이 책을 한참 봅니다. 저는 이 책을 아이들보다 먼저 읽었기때문에 이 책 어디에 어느 동물이 숨어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과 책을 읽으면 그림책 속에 숨어 있는 동물들을 가르쳐주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합니다. 사실 이 책은 이야기가 시작되는 첫 페이지부터 정원수로 위장된 ‘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처음 읽는 아이들은 미처 양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첫 페이지부터 그림을 짚어주며 자세히 보게 해야 하나, 양을 발견할 수 있게 힌트를 줘야 하나 많이 고민이 합니다. 하지만 이런 고민은 책을 읽을 수록 사라집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책을 넘길수록 자연스럽게 위장되거나 숨은 동물들을 찾는데 굉장히 열중하기 때문이지요. 그림책을 마지막까지 읽고 나면 이 책에서 어떤 동물들을 찾을 수 있는지 설명하는 페이지를 만납니다. 무려 36마리나 이 그림책에 숨어 있었습니다. 한번의 책 읽기에서 36마리의 동물을 다 찾지 못한 아이들은 다시 책을 맨 앞으로 돌려 동물들을 찾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처음에는 발견하지 못한 ‘양’을 발견하게 되지요.
어느 날 7살이 된 셋째가 다시 이 책을 책꽂이에서 뽑아내 누나들과 함께 읽었습니다. 셋째가 동물을 발견하면 어릴 때부터 동물에 대한 지식이 풍부했던 큰 누나가 이 동물이 어떤 동물인지 설명을 해줍니다. 그러면 동생들은 그 설명을 듣고 재미있어 자신들이 찾은 다른 동물을 첫째에게 물어봅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며, 저는 아이들이 동물들이 숨어 있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가 집에서 도보로 5분도 안되는 거리에 있지만, 때로는 혼자 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이 책의 주인공 아이도 대문 밖이 밀림으로 느껴질 정도로 혼자 학교에 가는 것이 두려웠던 것 같습니다. 주인공 아이가 사는 도시에 진짜 동물들이 출몰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다만 아이의 눈에 쓰레기봉투도 코뿔소로 보일 만큼 학교를 혼자 가는 것이 무서웠던 것이죠. 저는 작가가 이런 방식으로 주인공 아이의 심리를 표현한 것을 아이들이 알아챘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아이들에게 왜 주인공 아이의 눈에 동물들이 보인 것인지 먼저 물어봤습니다. 7살 아이와 9살 아이는 동물들이 진짜로 도시에 숨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왜 다른 사람들은 동물들을 보지 못했냐고 물어보니, 각자 자신의 일이 바쁘고 동물에게 관심이 없어서라고 대답합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동물을 사랑하는 친구라 진짜 동물들을 알아보고 친구로 삼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분명 주인공은 동물들이 있어서 무섭다고 했는데 그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더니, “당연히 동물이 눈 앞에 있는데 무섭지. 그래도 이 아이처럼 잘 피해가면 돼. 동물을 피해서 살금살금 지나가니까 정말 재미있지.”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13살 아이의 눈에는 이 동물들이 진짜 동물로 보이지는 않았나 봅니다. 13살 아이는 주인공 아이의 눈에만 동물이 보이고, 동물들 자체도 쓰레기봉투나 나뭇가지 등과 비슷한 것으로보아, 주인공 아이가 오해를 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럼 왜 주인공 아이에게는 학교 가는 길에 동물들이 숨어있는 것처럼 보였을지 물으니, 여기에 있는동물들이 대부분 멸종위기 동물인 것으로 봐서 작가가 멸종위기 동물을 보호하자는 마음을 담아 동물들을 위장시켜 표현한 것 같다고 말합니다. 저는 이 대답에 ‘빵!’하고 웃음이 터졌습니다. 이러한 엉뚱한 반응이 평소 동물에 관심이 많던 아이의 성향을 그대로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다른 아이들은 몰라도 13살 첫째 아이는 작가의 의도를 발견해주었으면 하는 욕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첫째 아이랑 산책을 하며 이 그림책에 대해 다시 이야기 했지요. 왜 아이의 눈에 사물이 동물로 보였는지 말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눈에 동물들이 보일 때 그 곳을 지나는 아이의 마음이 어떠할지, 그리고 마지막 학교에 도착했을 때 아이의 마음은 어떻게 변했는지 등 작가의 의도를 생각해볼 수 있도록 유도하는 질문이었지요. 그런데 저희 첫 째는 아이가 두려움에 사물들이 동물로 보였을 것이라는 생각을 끝까지 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답답한 저는 답을 가르쳐 주듯 저의 해석을 아이에게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가 “아~ 그래? 난 전혀 그렇게 생각을 못했네.”라고 대답합니다. 아이랑 더 대화를 해보니, 주인공이 처음에는 학교 가는 것이 두려웠을지라도 점점 재미있어졌을 것이라고 합니다. 동물들에 대한 주인공의 감정도 처음에는 무서웠을 수도 있는데, 나중에는 학교 가는 길을 ‘밀림을 모험한다’고 상상하며 주변의 사물을 동물이라 여기고 놀이하듯 학교를 갔을 것이기에 별로 무섭지 않았을 것 같다고 합니다. 아이의 말을 듣고 다시 그림책을 읽어봅니다.
그림책 초반에 아이가 공원에 다다랐을 때, 약간 무서운 듯 입구의 기둥을 붙잡고 말합니다.
저는 ‘살아남는 재주’라고 표현할 정도로 아이가 이 길이 무서운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이들은 주인공 아이가 ‘살아남는 재주’가 뛰어나 무서운 동물들을 피해꿋꿋이 걸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 ‘살아남는 재주’는 주인공의 능력인 것이죠. 동물들이 있지만, 들키지 않고 피해갈 수 있는 능력 말이죠. 독자는 책장을 넘길수록 주인공 아이의 마음이 달라진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동물들을 피해 길을 가는 것이 재미있는 모험으로 바뀐 듯 아이의 표정에 즐거움이 담깁니다. 그리고 결국 학교에 도착했을 때, 아이의 얼굴에서 일을 잘 성취했다는 기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 그림책의 원제는 『The Trek』입니다. 작가가 산악지대나 밀림 등 오지를 여행하거나 걷는 운동을 뜻하는 ‘trek’을 제목으로 한 것으로 보면 작가의 의도를 엄마인 저보다 아이들이 더 잘 찾아낸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는 아이들의 상상력을 풍부하게 도우면서도 아이들 내면의 관심사를 다루는 그림책을 만들고 싶었다고 합니다(3). 이그림책은 시각적 효과로 숨은 동물을 표현함으로 아이들의 상상력을 풍부하게 했고, 혼자 학교를 가야 하는 걱정을 모험하는 즐거움으로 바꾸어 새로운 도전도 해 볼만 하다는 메시지로 아이들의 두려움과 도전 그리고 성장이라는 내면의 관심사를 훌륭히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제 곧 우리 아이들은 다시 학교를 갑니다. 새로운 학기를 시작하며 친구를 잘 사귈 수 있을지, 좋은 선생님을 만날 수 있을지, 새 학년의 공부는 너무 어렵지는 않을지 등의 고민 외에 전염병의 위험까지 더해져 더 많은 걱정을 안고 있는 2022년 3월입니다. 며칠 전 뉴스를 보며 새 학기에 학교에 가는 것을 불안해 하는 우리 아이들과 어떤 CCM 찬양을 함께 들었습니다. 그 찬양은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 우리의 그늘이 되시며 모든 환란을 면하게 하시고 언제나 우리의 모든 출입을 지키신다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두려움과 걱정은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께 맡기고 설레는 마음으로 새로운 가방에 새로운 필기구를 넣으며 3월의 등교길을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파릇한 새싹이 돋고 햇빛이 따스해지는 이 계절에 우리 아이들이 두려움과 걱정은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께 맡기고 새로운 모험에 도전하길 바랍니다.
(1) 현은자, 김현경(2007) 놀이로서의 그림책의 글과 그림 읽기. 유아교육연구 27(2) 261-279
(2) 서남희(2011) 시각놀이로 상상의 날개를 펼쳐봐!-앤 조나스 1 열린어린이 웹진 통권 100호에서 재인용. (http://www.openkid.co.kr/webzine/view.aspx?year=2011&month=03&atseq=1969)
(3) 서남희(2011) 시각 놀이로 상상의 날개를 펼쳐봐!- 앤 조나스 2. 열린어린이 웹진 통권 101호에서 재인용(http://www.openkid.co.kr/webzine/view.aspx?year=2011&month=04&atseq=1987)
강다혜 | 성균관대학원 아동청소년학과 박사과정 수료
시와 글을 쓰며 책을 좋아하던 저는 국문학을 전공하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총신대 유아교육학과에 입학하였을 때 한편으로는 좌절했지만,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하나님이 내가 제일 잘 하는 곳으로 나를 이끄셨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대학 4년을 보내면서 제가 깨달은 것은 역시 하나님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유아교육의 분야 중에서도 유아문학이 또 그 중에서 그림책이 저에게 가장 즐거웠고 또 적성에 맞았기 때문입니다. 그 후로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에 입학해 현은자 교수님 밑에서 박사과정을 마쳤습니다. 지금은 4명의 자녀와 함께 공기 좋고 초목이 푸르른 경상남도 합천에서 끝나지 않는 집안일과 육아로 정신없이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그림책 속 세계관을 연구하여 다음 세대에 진심으로 추천해줄 수 있는 좋은 그림책을 발견하고 소개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