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과 문해력
많은 학부모들이 그림책은 몇 살까지 읽는 것이 좋은지 궁금해합니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 마다 저는 그림책의 예술적 가치를 이야기하며, ‘0세~100세가 읽는 책’이라고 대답을 합니다. 그럼 대부분 이어지는 질문은 이렇지요.
“그럼, 지금 우리 아이가 초등학교 ○학년인데, 그림책만 읽어도 되나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더라도 그림책을 읽는 것은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물론 그림책만 보면 안되겠죠. 아이들은 자신의 독서능력에 따라 점점 글이 많은 책을 읽어야 합니다. 그래야 길고 복잡한 문장도 이해할 수 있고, 글로 설명되는 정보와 지식들을 배울 수 있겠죠. 그럼 그림책은 고학년 아이들에게 어떤 면에서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저는 아이들이 문해력을 쉽고 재미있게 기를 수 있는 유용한 교재가 그림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해력과 비슷한 말로 ‘독해력’이 있는데, 이 둘은 뜻이 비슷하여 차이를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두 단어의 사전적 정의는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입니다. 그런데 국립국어원에서 이 둘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언어 현실에서는 '독해력'이 글을 읽고 그 뜻을 이해하는 능력이라면 '문해력'은 글을 읽고 이해하여 자기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까지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쓰이는 듯합니다. 또한 '문해력'은 '미디어 문해력'처럼 단순히 문자를 기술한 방식의 글보다 포괄적인 범위에서도 쓰이는 듯합니다.”
2021년 EBS에서 기획했던 <당신의 문해력>이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던 PD 김지원씨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현장에서 중고등학생들의 문해력이 떨어져 수업이 진행이 안된다는 호소를 계속 들어왔다고 말합니다.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아이들은 글을 잘 읽는데, 정확하게 그 뜻을 이해하고 사용하는 아이들은 적다네요. 한 예로 ‘사흘’을 모두 읽지만, ‘사흘’이라는 단어에서 ‘사’가 숫자 4를 뜻한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이지요.
다시 그림책 읽기로 돌아가서,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고 한글을 너무 잘 읽는데도 그림책만 읽으려고 한다면, 교사나 부모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저도 이와 같은 고민을 많이 합니다. 저희 집 아이들의 그림책 읽기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림책 읽기와 문해력에 대해 이야기 해봅시다.
저희 집 첫째는 14살입니다. 어릴 때 정말 책을 많이 읽어줬지요. 첫째는 한글을 가르치기도 전에 스스로 떼었고,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담임선생님께 어휘량이 풍부하다는 칭찬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6학년 4월쯤 담임 선생님이 전화를 하셨습니다. 아이들은 새 학년이 되면 3월에 전 학년에서 배웠던 내용에 대해 시험을 치는데, 저희 첫째가 5학년, 6학년의 시험에서 국어 점수를 너무 낮게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 점수를 듣고 저는 충격에 빠졌습니다. 저와 신랑은 그 이유를 따지면서, 우리 아이가 어떤 정보를 취득할 때 글을 읽기 보다 영상을 더 많이 이용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희 아이가 구구단을 외워야 하던 시기 때 한 업체의 구구단송 영상을 몇 번 보더니 구구단을 쉽게 다 외워 버렸지요. 그 뒤로 아이가 학습과 관련된 영상을 본다면, 별로 저지를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저의 양육태도가 결국 저희 아이의 국어능력을 성장하지 못하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희 부부는 아이가 영상으로도 학습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아예 버리고, 컴퓨터와 스마트 기기로 영상을 보는 것을 절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아이의 독서량을 늘리기 위해 노력했지요. 먼저 아이와 함께 서점에 가서 직접 책을 골랐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그 책을 다 읽으면, 책의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그리고 제가 연구하는 그림책도 아이에게 읽혀보았습니다. 제가 그 그림책을 가지고 어떤 연구를 하는지 설명하고, 저희 아이가 연구자의 시선으로 책을 읽을 수 있게 도왔지요.
이렇게 아이와 그림책을 읽다 보면, 의외로 아동문고보다 그림책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최근 아이가 앤서니 브라운의 『겁쟁이 윌리』에 대해서 새롭게 발견한 것이 있다며, 저에게 이것저것 설명을 하였습니다.
이 두 장면은 서로 대조를 이룹니다. 첫 번째 장면은 윌리가 몸을 만들기 전에 불량배 고릴라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모습이고 두 번째 장면은 윌리가 몸을 만들고 나서 그 고릴라들이 밀리를 괴롭히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 두 장면은 같은 구도를 가지고 있지만 시간적 배경에 약간 차이가 있기 때문에 배경의 색이 다릅니다. 저희 아이는 이 배경색의 차이를 윌리의 감정의 차이라고 설명을 하였습니다. 첫 번째의 어두운 배경은 괴롭힘을 당하는 윌리의 상황과 마음을 표현했고, 두 번째의 밝은 배경은 몸을 만든 후 자신감에 넘쳐 자신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윌리의 감정을 표현한 것이라는 거죠. 저희 아이는 이 장면의 테두리색까지 비교를 하였지요. 첫 번째 장면의 테두리는 눈에 띄지 않는 청녹색이지만, 두 번째 장면의 테두리는 빨간색인데, 이는 윌리의 자신감의 차이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했지요.
이 장면은 윌리가 자신의 변한 모습을 거울로 비춰보는 장면인데, 그림 왼편에 탁자 위에는 흑백사진이 놓여 있습니다. 이 흑백사진에는 윌리가 예전의 왜소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는데, 특히 머리 위에 구름이 끼어 있죠. 저희 딸은 이 장면이, 윌리의 몸이 아무리 변하더라도, 예전의 나약한 모습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고 설명을 하였습니다. 이 책의 마지막에서 윌리는 가로등에 부딪히고 습관적으로 미안하다고 사과하데 이는 결국 윌리의 실패를 말한다고 자신은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이 장면이 그러한 결론의 복선을 의미하거나, 겉모습이 변해봤자 예전의 나약함은 그대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며 윌리를 조롱하는 블랙코미디적 역할을 하는 것 같다고 해석을 하였습니다.
둘째 아이는 10살입니다. 둘째는 아직도 아동문고 보다 그림책을 읽기를 더 좋아하지요. 제 책상에 그림책이 있으면 누구보다도 먼저 그 책을 들고 읽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은 과연 그 그림책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책 내용을 물어보니, 생각보다 책의 내용을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요. 그냥 글만 읽었던 것입니다. 그림책은 아동문고 보다 글 텍스트가 적기 때문에 책을 읽기 싫어서 그림책을 읽겠다고 요령을 부리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둘째 아이를 앉혀 놓고 그림을 보며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정혜경의 『오늘도 기다립니다』는 손녀를 기다리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그린 그림책입니다. 저희 둘째가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이 책을 좋아하여 글 텍스트를 줄줄 읊고 다니길래, 저는 이 책의 내용을 저희 아이가 잘 이해하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책을 펼치면 왼편은 손녀의 시각에서 이야기가 전개되고, 오른편은 할아버지의 시각에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그러다 손녀와 할아버지가 만나게 되면 두 이야기가 합쳐져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이 그림책은 왼편과 오른편의 병렬적 이야기 전개에 대해서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글 텍스트가 간결한 것에 비해 그림 텍스트는 풍성한 서사를 전달하고 있기 때문에, 글과 그림의 관계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 그림책의 첫 장면은, 두 집의 잠자리 모습을 비교하는 것입니다. 왼편 아이네 집은 아빠와 엄마 사이에 아이가 함께 잠이 들지만, 오른편 할아버지네 집은 할아버지 혼자 잠이 드십니다. 다음 장으로 넘기면, 그 다음 날 아침 모습이 대조됩니다. 아이네 집은 좀 더 자고 싶은 아이를 엄마와 아빠가 깨우는 모습이지만, 오른편의 할아버지는 이미 잠에서 깨셔서 잠옷도 가지런히 개어 놓으신 후 책을 읽고 계시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글 텍스는 ‘아침잠이 점점 줄어드네요. 덕분에 하루가 깁니다’라고 쓰여 있지요. 그 다음 장면은 아이가 유치원에 가는 모습이, 할아버지는 노인정에 가는 모습이 그려지고, 각자의 일상을 보내는 장면들이 이어집니다. 책을 읽다보면, 할아버지가 왜 혼자 잠이 드는지, 왜 혼자 식사를 하시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바로 할머니께서 돌아가셨기 때문이지요. 그림책에서는 배우자가 죽고 난 후 혼자 독거를 하며 일상을 보내는 노인의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냅니다. 외롭고 쓸쓸한 할아버지가 일상을 살아내는 힘은 손주를 만나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마지막 장면에 손주가 가고 난 다음 다시 잠자리에 드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나오는데, 이때 글 텍스트는 “오늘도 혼자 잠이 듭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나는 기다리는 걸 잘하거든요.”라고 말하고 있지요. 이어지는 뒷면지에는 할아버지댁 소파 위에 인형이 놓여있는데, 손녀와의 즐거운 시간이 그 자리에 여전히 머물고 있는 듯 따뜻한 밝은 빛이 그 주위를 감싸고 있습니다.
둘째 아이와 이 책을 읽으며, 짧은 글 텍스트에서 얻을 수 없는 정보를 그림 텍스트에서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질문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첫 장면에서 할아버지는 혼자 주무신다고 하는데 왜 베개가 2개가 있을까, 할아버지는 잔소리를 왜 그리워하실까, 책 표지의 그림은 할아버지가 무엇을 하는 장면이며, 왜 이 장면을 표지로 사용했을까 등입니다. 처음에는 아이가 대답을 하기 주저하더니, 열심히 그림책을 살펴봅니다. 그리고서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것과, 손녀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 할아버지께서 인형을 뽑고 계신다는 것, 그리고 손녀와의 만남이 지금 할아버지를 가장 기쁘게 하는 것이기에 이를 기다리고 준비하는 것을 표지로 삼았다는 것까지 찾아내었습니다. 제가 둘째에게 할아버지의 기다림이 어때 보이는지 물어보니, “할아버지는 기다림이 즐겁고 재미있을거야. 나도 할아버지 집에 가는 날을 기다리는 것이 좋거든. 기다리는 것은 좀 힘들지만, 그래도 기다리면 그 날이 꼭 오잖아.”라고 말합니다.
저는 첫째와 둘째와의 일을 통해 두 가지를 말하고 싶습니다.
첫째, 그림책 읽기는 문해력을 기르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글과 그림의 관계성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은 복잡한 두뇌 작업을 요구합니다. 글과 그림의 내용이 같은지, 그 대응관계를 살펴야 하고, 대응이 이루어지지 않은 부분은 무엇이, 어떻게, 왜 대응이 되지 않는지를 찾아내서 해석해야 합니다. 이는 우리 아이들이 표면적 의미 속에 숨어 있는 텍스트의 속뜻을 해석해내는 훈련으로서 매우 유용한 교재입니다.
둘째, 하지만 아이 혼자 책을 읽고 끝낸다면 문해력이 쉽게 길러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냥 눈으로 읽고 표면적인 의미를 이해하는 것을 우리는 문해력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어린 독자는 자신이 읽은 텍스트를 정확히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에게 “엄마 이게 무슨 뜻이야?”하고 물어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책을 잘 읽어봐. 잘 읽어보면 답이 있어.”라고 대답하는 부모도 많이 있습니다. 저 또한 그랬지요. 글자를 읽을 줄 아니까 여러 번 반복해서 읽으면 그 뜻을 스스로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자신이 읽은 텍스트가 왜 이렇게 표현되었으며, 무엇을 의도한 것인지 알아내는 것은 어린 독자 혼자서는 어려운 일입니다. 이는 분명 교사나 부모의 가이드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어떤 부모들은 아이들과 그림책을 읽기를 어려워하십니다. 자신이 그림책을 볼 줄 몰라 그림책을 멋지게 해석하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림책 읽기도 사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림책은 아이들을 위한 책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초등학교 몇 학년까지 그림책을 읽어야 하는지, 아동문고로 언제 넘어가야 하는지 고민을 하는 것이지요. 그 이유는 그림책이 ‘쉽다’는 생각이 그 기저에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림책은 쉽습니다. 그림책은 보통 36~40페이지로 제작되고 글과 그림이 같이 있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않아도, 책을 읽고 그 내용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림책은 아직 한글이 익숙하지 않은 독자에게도, 한글은 잘 알지만 조금 더 깊이 있는 시각을 길러내야 하는 독자에게도 모두 사용할 수 있는 포용력도 있습니다. 그러니 글과 그림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면밀하게 살펴본다면 그 뜻을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 번 읽었다고 해서 그 뜻을 다 파악하기는 어려운 그림책이 있을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 번 읽으면 되고, 며칠 뒤, 몇 달 뒤 다시 읽어보면 됩니다. 아이와 함께 ‘이 부분은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겠다. 우리 다음에 다시 읽어보고 고민해보자’라고 덮어 놓고, 무엇인가 해석되지 않은 의문이 남는 책으로 그 그림책을 남겨 놓는 것도 좋습니다. 이러한 질문과 의문들이 우리들의 문해력을 기를 것이고, 또 부모(혹은 교사)와 아이가 더 깊이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 강다혜 | 성균관대학원 아동청소년학과 박사과정 수료 시와 글을 쓰며 책을 좋아하던 저는 국문학을 전공하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총신대 유아교육학과에 입학하였을 때 한편으로는 좌절했지만,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하나님이 내가 제일 잘 하는 곳으로 나를 이끄셨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대학 4년을 보내면서 제가 깨달은 것은 역시 하나님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유아교육의 분야 중에서도 유아문학이 또 그 중에서 그림책이 저에게 가장 즐거웠고 또 적성에 맞았기 때문입니다. 그 후로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에 입학해 현은자 교수님 밑에서 박사과정을 마쳤습니다. 지금은 4명의 자녀와 함께 공기 좋고 초목이 푸르른 경상남도 합천에서 끝나지 않는 집안일과 육아로 정신없이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그림책 속 세계관을 연구하여 다음 세대에 진심으로 추천해줄 수 있는 좋은 그림책을 발견하고 소개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
그림책과 문해력
많은 학부모들이 그림책은 몇 살까지 읽는 것이 좋은지 궁금해합니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 마다 저는 그림책의 예술적 가치를 이야기하며, ‘0세~100세가 읽는 책’이라고 대답을 합니다. 그럼 대부분 이어지는 질문은 이렇지요.
“그럼, 지금 우리 아이가 초등학교 ○학년인데, 그림책만 읽어도 되나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더라도 그림책을 읽는 것은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물론 그림책만 보면 안되겠죠. 아이들은 자신의 독서능력에 따라 점점 글이 많은 책을 읽어야 합니다. 그래야 길고 복잡한 문장도 이해할 수 있고, 글로 설명되는 정보와 지식들을 배울 수 있겠죠. 그럼 그림책은 고학년 아이들에게 어떤 면에서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저는 아이들이 문해력을 쉽고 재미있게 기를 수 있는 유용한 교재가 그림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해력과 비슷한 말로 ‘독해력’이 있는데, 이 둘은 뜻이 비슷하여 차이를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두 단어의 사전적 정의는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입니다. 그런데 국립국어원에서 이 둘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언어 현실에서는 '독해력'이 글을 읽고 그 뜻을 이해하는 능력이라면 '문해력'은 글을 읽고 이해하여 자기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까지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쓰이는 듯합니다. 또한 '문해력'은 '미디어 문해력'처럼 단순히 문자를 기술한 방식의 글보다 포괄적인 범위에서도 쓰이는 듯합니다.”
2021년 EBS에서 기획했던 <당신의 문해력>이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던 PD 김지원씨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현장에서 중고등학생들의 문해력이 떨어져 수업이 진행이 안된다는 호소를 계속 들어왔다고 말합니다.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아이들은 글을 잘 읽는데, 정확하게 그 뜻을 이해하고 사용하는 아이들은 적다네요. 한 예로 ‘사흘’을 모두 읽지만, ‘사흘’이라는 단어에서 ‘사’가 숫자 4를 뜻한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이지요.
다시 그림책 읽기로 돌아가서,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고 한글을 너무 잘 읽는데도 그림책만 읽으려고 한다면, 교사나 부모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저도 이와 같은 고민을 많이 합니다. 저희 집 아이들의 그림책 읽기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림책 읽기와 문해력에 대해 이야기 해봅시다.
저희 집 첫째는 14살입니다. 어릴 때 정말 책을 많이 읽어줬지요. 첫째는 한글을 가르치기도 전에 스스로 떼었고,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담임선생님께 어휘량이 풍부하다는 칭찬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6학년 4월쯤 담임 선생님이 전화를 하셨습니다. 아이들은 새 학년이 되면 3월에 전 학년에서 배웠던 내용에 대해 시험을 치는데, 저희 첫째가 5학년, 6학년의 시험에서 국어 점수를 너무 낮게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 점수를 듣고 저는 충격에 빠졌습니다. 저와 신랑은 그 이유를 따지면서, 우리 아이가 어떤 정보를 취득할 때 글을 읽기 보다 영상을 더 많이 이용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희 아이가 구구단을 외워야 하던 시기 때 한 업체의 구구단송 영상을 몇 번 보더니 구구단을 쉽게 다 외워 버렸지요. 그 뒤로 아이가 학습과 관련된 영상을 본다면, 별로 저지를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저의 양육태도가 결국 저희 아이의 국어능력을 성장하지 못하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희 부부는 아이가 영상으로도 학습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아예 버리고, 컴퓨터와 스마트 기기로 영상을 보는 것을 절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아이의 독서량을 늘리기 위해 노력했지요. 먼저 아이와 함께 서점에 가서 직접 책을 골랐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그 책을 다 읽으면, 책의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그리고 제가 연구하는 그림책도 아이에게 읽혀보았습니다. 제가 그 그림책을 가지고 어떤 연구를 하는지 설명하고, 저희 아이가 연구자의 시선으로 책을 읽을 수 있게 도왔지요.
이렇게 아이와 그림책을 읽다 보면, 의외로 아동문고보다 그림책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최근 아이가 앤서니 브라운의 『겁쟁이 윌리』에 대해서 새롭게 발견한 것이 있다며, 저에게 이것저것 설명을 하였습니다.
이 두 장면은 서로 대조를 이룹니다. 첫 번째 장면은 윌리가 몸을 만들기 전에 불량배 고릴라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모습이고 두 번째 장면은 윌리가 몸을 만들고 나서 그 고릴라들이 밀리를 괴롭히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 두 장면은 같은 구도를 가지고 있지만 시간적 배경에 약간 차이가 있기 때문에 배경의 색이 다릅니다. 저희 아이는 이 배경색의 차이를 윌리의 감정의 차이라고 설명을 하였습니다. 첫 번째의 어두운 배경은 괴롭힘을 당하는 윌리의 상황과 마음을 표현했고, 두 번째의 밝은 배경은 몸을 만든 후 자신감에 넘쳐 자신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윌리의 감정을 표현한 것이라는 거죠. 저희 아이는 이 장면의 테두리색까지 비교를 하였지요. 첫 번째 장면의 테두리는 눈에 띄지 않는 청녹색이지만, 두 번째 장면의 테두리는 빨간색인데, 이는 윌리의 자신감의 차이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했지요.
이 장면은 윌리가 자신의 변한 모습을 거울로 비춰보는 장면인데, 그림 왼편에 탁자 위에는 흑백사진이 놓여 있습니다. 이 흑백사진에는 윌리가 예전의 왜소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는데, 특히 머리 위에 구름이 끼어 있죠. 저희 딸은 이 장면이, 윌리의 몸이 아무리 변하더라도, 예전의 나약한 모습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고 설명을 하였습니다. 이 책의 마지막에서 윌리는 가로등에 부딪히고 습관적으로 미안하다고 사과하데 이는 결국 윌리의 실패를 말한다고 자신은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이 장면이 그러한 결론의 복선을 의미하거나, 겉모습이 변해봤자 예전의 나약함은 그대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며 윌리를 조롱하는 블랙코미디적 역할을 하는 것 같다고 해석을 하였습니다.
둘째 아이는 10살입니다. 둘째는 아직도 아동문고 보다 그림책을 읽기를 더 좋아하지요. 제 책상에 그림책이 있으면 누구보다도 먼저 그 책을 들고 읽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은 과연 그 그림책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책 내용을 물어보니, 생각보다 책의 내용을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요. 그냥 글만 읽었던 것입니다. 그림책은 아동문고 보다 글 텍스트가 적기 때문에 책을 읽기 싫어서 그림책을 읽겠다고 요령을 부리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둘째 아이를 앉혀 놓고 그림을 보며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정혜경의 『오늘도 기다립니다』는 손녀를 기다리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그린 그림책입니다. 저희 둘째가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이 책을 좋아하여 글 텍스트를 줄줄 읊고 다니길래, 저는 이 책의 내용을 저희 아이가 잘 이해하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책을 펼치면 왼편은 손녀의 시각에서 이야기가 전개되고, 오른편은 할아버지의 시각에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그러다 손녀와 할아버지가 만나게 되면 두 이야기가 합쳐져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이 그림책은 왼편과 오른편의 병렬적 이야기 전개에 대해서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글 텍스트가 간결한 것에 비해 그림 텍스트는 풍성한 서사를 전달하고 있기 때문에, 글과 그림의 관계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 그림책의 첫 장면은, 두 집의 잠자리 모습을 비교하는 것입니다. 왼편 아이네 집은 아빠와 엄마 사이에 아이가 함께 잠이 들지만, 오른편 할아버지네 집은 할아버지 혼자 잠이 드십니다. 다음 장으로 넘기면, 그 다음 날 아침 모습이 대조됩니다. 아이네 집은 좀 더 자고 싶은 아이를 엄마와 아빠가 깨우는 모습이지만, 오른편의 할아버지는 이미 잠에서 깨셔서 잠옷도 가지런히 개어 놓으신 후 책을 읽고 계시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글 텍스는 ‘아침잠이 점점 줄어드네요. 덕분에 하루가 깁니다’라고 쓰여 있지요. 그 다음 장면은 아이가 유치원에 가는 모습이, 할아버지는 노인정에 가는 모습이 그려지고, 각자의 일상을 보내는 장면들이 이어집니다. 책을 읽다보면, 할아버지가 왜 혼자 잠이 드는지, 왜 혼자 식사를 하시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바로 할머니께서 돌아가셨기 때문이지요. 그림책에서는 배우자가 죽고 난 후 혼자 독거를 하며 일상을 보내는 노인의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냅니다. 외롭고 쓸쓸한 할아버지가 일상을 살아내는 힘은 손주를 만나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마지막 장면에 손주가 가고 난 다음 다시 잠자리에 드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나오는데, 이때 글 텍스트는 “오늘도 혼자 잠이 듭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나는 기다리는 걸 잘하거든요.”라고 말하고 있지요. 이어지는 뒷면지에는 할아버지댁 소파 위에 인형이 놓여있는데, 손녀와의 즐거운 시간이 그 자리에 여전히 머물고 있는 듯 따뜻한 밝은 빛이 그 주위를 감싸고 있습니다.
둘째 아이와 이 책을 읽으며, 짧은 글 텍스트에서 얻을 수 없는 정보를 그림 텍스트에서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질문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첫 장면에서 할아버지는 혼자 주무신다고 하는데 왜 베개가 2개가 있을까, 할아버지는 잔소리를 왜 그리워하실까, 책 표지의 그림은 할아버지가 무엇을 하는 장면이며, 왜 이 장면을 표지로 사용했을까 등입니다. 처음에는 아이가 대답을 하기 주저하더니, 열심히 그림책을 살펴봅니다. 그리고서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것과, 손녀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 할아버지께서 인형을 뽑고 계신다는 것, 그리고 손녀와의 만남이 지금 할아버지를 가장 기쁘게 하는 것이기에 이를 기다리고 준비하는 것을 표지로 삼았다는 것까지 찾아내었습니다. 제가 둘째에게 할아버지의 기다림이 어때 보이는지 물어보니, “할아버지는 기다림이 즐겁고 재미있을거야. 나도 할아버지 집에 가는 날을 기다리는 것이 좋거든. 기다리는 것은 좀 힘들지만, 그래도 기다리면 그 날이 꼭 오잖아.”라고 말합니다.
저는 첫째와 둘째와의 일을 통해 두 가지를 말하고 싶습니다.
첫째, 그림책 읽기는 문해력을 기르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글과 그림의 관계성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은 복잡한 두뇌 작업을 요구합니다. 글과 그림의 내용이 같은지, 그 대응관계를 살펴야 하고, 대응이 이루어지지 않은 부분은 무엇이, 어떻게, 왜 대응이 되지 않는지를 찾아내서 해석해야 합니다. 이는 우리 아이들이 표면적 의미 속에 숨어 있는 텍스트의 속뜻을 해석해내는 훈련으로서 매우 유용한 교재입니다.
둘째, 하지만 아이 혼자 책을 읽고 끝낸다면 문해력이 쉽게 길러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냥 눈으로 읽고 표면적인 의미를 이해하는 것을 우리는 문해력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어린 독자는 자신이 읽은 텍스트를 정확히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에게 “엄마 이게 무슨 뜻이야?”하고 물어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책을 잘 읽어봐. 잘 읽어보면 답이 있어.”라고 대답하는 부모도 많이 있습니다. 저 또한 그랬지요. 글자를 읽을 줄 아니까 여러 번 반복해서 읽으면 그 뜻을 스스로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자신이 읽은 텍스트가 왜 이렇게 표현되었으며, 무엇을 의도한 것인지 알아내는 것은 어린 독자 혼자서는 어려운 일입니다. 이는 분명 교사나 부모의 가이드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어떤 부모들은 아이들과 그림책을 읽기를 어려워하십니다. 자신이 그림책을 볼 줄 몰라 그림책을 멋지게 해석하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림책 읽기도 사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림책은 아이들을 위한 책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초등학교 몇 학년까지 그림책을 읽어야 하는지, 아동문고로 언제 넘어가야 하는지 고민을 하는 것이지요. 그 이유는 그림책이 ‘쉽다’는 생각이 그 기저에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림책은 쉽습니다. 그림책은 보통 36~40페이지로 제작되고 글과 그림이 같이 있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않아도, 책을 읽고 그 내용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림책은 아직 한글이 익숙하지 않은 독자에게도, 한글은 잘 알지만 조금 더 깊이 있는 시각을 길러내야 하는 독자에게도 모두 사용할 수 있는 포용력도 있습니다. 그러니 글과 그림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면밀하게 살펴본다면 그 뜻을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 번 읽었다고 해서 그 뜻을 다 파악하기는 어려운 그림책이 있을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 번 읽으면 되고, 며칠 뒤, 몇 달 뒤 다시 읽어보면 됩니다. 아이와 함께 ‘이 부분은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겠다. 우리 다음에 다시 읽어보고 고민해보자’라고 덮어 놓고, 무엇인가 해석되지 않은 의문이 남는 책으로 그 그림책을 남겨 놓는 것도 좋습니다. 이러한 질문과 의문들이 우리들의 문해력을 기를 것이고, 또 부모(혹은 교사)와 아이가 더 깊이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강다혜 | 성균관대학원 아동청소년학과 박사과정 수료
시와 글을 쓰며 책을 좋아하던 저는 국문학을 전공하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총신대 유아교육학과에 입학하였을 때 한편으로는 좌절했지만,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하나님이 내가 제일 잘 하는 곳으로 나를 이끄셨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대학 4년을 보내면서 제가 깨달은 것은 역시 하나님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유아교육의 분야 중에서도 유아문학이 또 그 중에서 그림책이 저에게 가장 즐거웠고 또 적성에 맞았기 때문입니다. 그 후로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에 입학해 현은자 교수님 밑에서 박사과정을 마쳤습니다. 지금은 4명의 자녀와 함께 공기 좋고 초목이 푸르른 경상남도 합천에서 끝나지 않는 집안일과 육아로 정신없이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그림책 속 세계관을 연구하여 다음 세대에 진심으로 추천해줄 수 있는 좋은 그림책을 발견하고 소개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