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의 글과 그림, 그리고 소리
<훈민정음 ㄱㄴㄷ> 자세히보기
저희 집 셋째인 1학년 아들은 아직 한글을 배우는 중입니다. 우리 아들이 다니는 초등학교는 작은 시골 마을에 위치한, 병설유치원 친구들까지 합하여 전교생이 70명도 채 안되는 학교입니다. 신입생 11명 중 한글을 완벽하게 뗀 친구가 많지 않아 담임 선생님께서는 국어교육과정에 맞춰 천천히 한글을 가르치십니다. 요즘 우리 아들은 선생님이 주신 자음자와 모음자가 합쳐진 한글기본음절표를 보고 읽기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하루는 엄마인 저와 가, 갸, 거, 겨를 읽고 다음 날은 누나들과 나, 냐, 너, 녀를 읽고 어제는 아빠와 다, 댜, 더, 뎌를 읽었지요.
그러다 한번씩은 받침 없는 글자 위주로 만든 『무시무시 마녀가 이사 와!』(1)라는 그림책도 읽어봅니다. 이 그림책은 사자, 오소리, 너구리, 토끼, 거미, 개구리와 같은 동물들이 사는 ‘어서오라 아파트’에 무시무시 마녀가 이사온다는 소식으로 시작되지요. 처음에는 엄마와 아이가 주고 받으며 읽는 파트가 나옵니다. 엄마가 먼저 책을 읽으면 아이가 이어서 읽는 방식인데, 아이가 읽는 부분은 엄마가 읽은 내용과 크게 차이 나지 않습니다. 거의 엄마가 읽은 말을 되풀이해서 따라하는 방식이지요. 하지만 저희 아들에게는 아직 글자들이 눈에 익지 않기 때문에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손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짚어주며 읽어도 아이는 자신이 읽는 부분에서 글자를 쉽게 인식하고 읽어내지 못하더라구요. 엄마가 한 번 읽어주었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차례가 되면 그 글자가 무엇인지 기억해내고 생각해내느라 시간이 꽤 걸립니다.
아이: (‘사자’를 읽어야 하는데) 어.. 이 글자 어디서 봤는데…
엄마: 엄마도 읽어줬었어. 무슨 글자지?
아이: 음…. (한참을 고민한다)
엄마: 우선 이 글자는 ㅅ(시옷)이랑 ㅏ(아)가 합쳐져 있잖아.
아이: (그래도 모르는 듯) …
엄마: 이 책 전체 그림에서 이 글자가 어디어디 써 있는지 봐봐. 그럼 힌트가 있을거야.
아이: (그제서야 그림책의 그림을 본다. 그러다 문득 사자 그림 옆에 ‘사자’라는 글씨를 찾아낸다.) 아! 사자!
엄마: 그 다음에는 어떤 동물의 이름일까?
아이: (그림을 슬쩍 보니, 사자와 가까운 곳에 오소리가 그려져 있다.) (자신없는 목소리로) 오소리?
엄마: 맞아. 잘했어. 그 다음에는?
아이: 너구리, 여우, 거미, 토끼, 개구리
아이는 그림의 순서와 동물이름을 나타내는 글자의 순서가 같음을 찾아내고, 신나서 동물의 이름을 말합니다. 하지만 곧 다시 힘들어지지요. 왜냐하면 더이상 그림에서 힌트를 찾아내는 것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다시 엄마의 소리와 글자의 관계에 대해서 집중을 합니다. 그렇게 아이는 엄마의 소리와 글자가 일대일로 연관이 있으며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익히게 되지요. 그렇게 책을 다 읽고 나면, 아이는 한 권을 다 읽었다는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다시 읽기는 싫어했습니다. 이유를 물으니, “공부 다 했는데, 왜 또 해?” 합니다.
다음 날 저는 공부처럼 느껴지지 않으면서도 아이와 한글 이야기를 해볼 수 없을까 싶어 다른 책을 꺼냈습니다. 바람하늘지기에서 기획하고 노정임이 글을 썼으며, 안경자가 그림을 그린 『꽃이랑 소리로 배우는 훈민정음 ㄱㄴㄷ』(2)는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원리에 따라 아이들에게 우리나라의 소리와 글자를 가르쳐주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그래서 책의 내용이 시작하기 전, 글자의 모양을 외우기보다 소리를 먼저 익힐 수 있도록 하라는 당부가 적혀 있습니다. 책을 펼치니, ‘기역은 강자의 처음 나는 소리와 같아요.’라는 텍스트와 함께 강아지풀이 그려져 있습니다. 집 근처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풀이라, 아이가 반가워합니다. 그 다음 장을 넘기니 ㄲ(쌍기역)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기역을 나란히 쓰면 꽃자의 처음 나는 소리와 같아요.’라는 텍스트 옆에는 꽃마리가 그려져 있습니다. 그 다음 장은 ㅋ(키읔) 입니다. ‘키읔은 콩자의 처음 나는 소리와 같아요.’라는 텍스트와 함께 콩꽃이 그려져 있었지요. 이쯤 되니 아들은 책표지를 다시 살펴봅니다.
아이: 엄마, 이 꽃. 앞에서 봤던 꽃인데
엄마: 그래? 어느 꽃이지
아이: 아까 내가 예쁘다고 한 꽃이네.
아이와 이 책을 읽기 전 표지를 같이 보면서, 왜 책 표지에 꽃이 그려져 있는지, 꽃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꽃이 제일 예쁜지 등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제 아이는 앞으로 표지에 있던 꽃들이 언제 나올지, 이 꽃 이름이 무엇일지 궁금해합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마지막 장에 전체 꽃이 모두 그려져 있는데, 이 장면의 꽃들을 다시 앞에서 찾아보며 어떤 꽃인지 확인하는데 꽤 많은 시간을 쏟았습니다. 다 읽고 나서 하는 말이,
아이: 와 꽃 잘 배웠다.
엄마: 이 책에서 꽃에 대해 배웠어?
아이: 응. 꽃 많이 배웠어. 꽃 너무 예쁘다. 그런데 나 토끼풀 본 적 있어. 그리고 하늘나리는 우리 집에 있는 꽃이잖아. 민들레도 많이 있고. 그리고 애기통풀은 이름이 너무 웃겨.
그래서 저는 한참을 아이와 꽃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책을 덮었습니다. 이 책은 그동안 아이가 배운 한글 자음의 순서와 약간 다릅니다. 보통 우리는 ㄱ(기역)을 배우고 나면 ㄴ(니은)을 배우는데, 이 책은 ㄱ(기역) 다음에 ㄲ(쌍기역)이 나오고 그 뒤로 ㅋ(키읔), ㄷ(디귿), ㄸ(쌍디귿), ㅌ(티읕)이 나온 다음에서야 ㄴ(니은)이 나옵니다. 아이는 이 책에서 한글의 소리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음에도, 이 책이 한글 자음자를 가르쳐주는 책이 아닌 꽃 이름을 가르쳐주는 책으로 느껴지나 봅니다 . 『꽃이랑 소리로 배우는 훈민정음 ㄱㄴㄷ』은 『훈민정음 ㄱㄴㄷ』(책과함께, 2009)의 개정판으로 도서출판 웃는돌고래에서 ‘자연이 키우는 아이’ 시리즈로 낸 첫 책입니다. 이 책의 출판 목적이 첫째는 세종대왕의 한글창제 원리에 따라 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것이고 둘째는 아이가 자연에 관심을 갖는 것이라면 저희 아이는 두번째 목적만 달성된 셈인 것 같습니다. 이 글의 텍스트는 일관되게 각 자음자의 소리가 어떤 소리와 같은지를 설명하지만, 저희 아이는 꽃의 이름만 기억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것이 시간이 꽤 걸리는 것에 지쳐가고 있을 때 즈음의 일입니다. 저희 집에는 『아침에 기도해요』(3)라는 작은 손모양의 기도책이 있습니다. 첫 아이가 어릴 때 샀던 책이라 많이 낡고 달았지요. 요즘은 5살된 막내가 늘 손에 들고 다니지요. 어느 날 막내가 다시 이 책을 자기 책상 구석에서 꺼내 아빠에게 읽어 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아빠 주위로 셋째 아들과 막내 딸이 모여듭니다. 아빠가 첫 장을 펼치고 읽습니다.
“예수님, 맑고 밝은 아침을 주셔서 고마워요. 오늘 하루도 저를 지켜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예수님, 아침에 일어나면 몹시 쉬가 마려워요. 그런데 화장실에 혼자 가기 싫어요. 예수님, 혼자서도 화장실에 가는 아이가 되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 책은 어른 손보다 작은 크기로 초등학교에 갓 올라간 저희 셋째아이 손과 비슷한 크기입니다. 그림책을 펼치면 두 손바닥을 하늘로 향한 모양이 되며 그 안에는 아이가 아침에 일어나서 겪는 일상적인 일들을 두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기도문이 나오지요.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올리는 기도, 화장실에 관한 것, 아침 밥에 관한 것, 양치에 관한 것에 대해 기도하고 어린이집에 가며 엄마와 떨어지기 싫은 마음까지도 하나님께 아뢰고 나면, 오늘 하루를 자신의 기도대로 보내게 해주신 예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아빠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이라고 할 때마다 두 아이는 큰 소리로 같이 아멘을 외칩니다.
6개 펼침면으로 이루어진 작은 책이기에 금새 책을 다 읽었습니다. 이제 막내는 첫째 언니에게 가지고 가서 읽어 달라 합니다. 첫째 언니도 다 읽자 이제 둘째 언니에게 갑니다. 이번에도 금새 책읽기가 끝났습니다. 그러자 이제 셋째가 동생에게 말합니다 “이번에는 오빠가 읽어줄께.”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저와 남편은 조용히 아들의 책읽기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들은 마치 글자를 다 아는 아이처럼 줄줄줄 매끄럽게 책을 읽습니다. 예를 들어 첫 장에 ‘맑고 밝은 아침을’과 같은 것도 ‘맑은’ 혹은 ‘밝은’ 하나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맑고 밝은 아침을’이라고 읽습니다. 저와 남편은 순간 눈이 마주쳤지만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이 놀라운 상황을 지켜보았습니다. 마지막까지 유창하게 그림책을 읽은 아들은 동생에게 오빠가 읽어줄테니 언제든지 책을 가지고 오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합니다. 앞 서 『무시무시 마녀가 이사 와!』 책을 읽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한글의 난이도나 내용으로만 따지면 이 책이 훨씬 더 어려운 책인데 말입니다.
아들의 모습을 상기하며 그림책 읽기와 글과 그림의 관계에 대해 잠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첫번째로 말씀드린 『무시무시 마녀가 이사 와!』를 읽을 때 아들은 엄마가 먼저 읽어주는 소리를 듣고 글자와 연결시키려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그림 안에서 힌트를 찾아 글자를 읽기도 했지요. 하지만 이는 아이에게 조금은 힘든 ‘공부’였습니다. 그래서 다음 번에 다시 이 책을 읽을 때 조금 읽기가 수월해지기는 하였지만, 유창하게 읽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두번째로 말씀드린 『꽃이랑 소리로 배우는 훈민정음 ㄱㄴㄷ』는 한글의 모양을 외우려고 하기보다 소리를 먼저 익히게 하기 위한 책인데, 아쉽게도 저희 아이는 그림에 더욱 집중하여 글자와 소리와의 상관관계는 생각하지 못하였지요. 그림은 글자를 익히는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이 책을 앞 선 책보다는 재미있어 하였지요. 마지막 책인 『아침에 기도해요』는 책 자체는 소책자이지만 그래도 위의 두 책보다 한글의 어휘수준이 높고 읽어야 하는 글텍스트의 양도 많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이 책의 내용을 3번 반복해서 들었을 때 그 자리에서 텍스트를 다 외워 버렸고, 너무나도 쉽게 이 책을 읽어냈습니다. 물론 글자를 읽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림은 어이질 내용이 어떤 내용인지 기억해내는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 책을 더 쉽게 익히고 기억한다는 것은 책의 내용이 평소 아이의 삶이나 기도내용과 관련이 깊으며,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고 있다는 배경이 크게 작용했겠지요.(4)
이번에 소개해 드린 저희 아들의 그림책 읽기는 우리에게 3가지 그림책의 특징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합니다.
첫번째는 그림책은 글과 그림이 함께 어우러져서 의미를 전달하는 책이라는 그림책의 매체적 특징입니다. 어느 그림책이든 그 책이 전달하고 싶은 의미는 글과 그림이라는 두 가지 코드가 동시에 독자에게 전달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글자도 읽어야 하지만 그림도 읽어야 하지요. 특히 그림은 글이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에 대해 독자에게 계속해서 힌트를 줍니다.
두번째는 그림책은 우리에게 재미도 주지만 가르침도 준다는 것입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그림책이 무엇인가 독자에게 가르침을 주려고 하는 것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며 싫어합니다. 문학은 즐거움을 주는 것이 원천이기에, 무엇이든 문학을 이용해 가르침을 전달하면 좋은 문학이 아니라고 평가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책을 통해 지식과 정보를 얻습니다. 그렇기에 어떠한 책이 재미보다 가르침에 비중이 더 좋다고 해서 그것이 좋다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어찌 보면 어불성설입니다. 그림책 중에서 정보책 같은 경우는 특정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목적을 가진 책입니다. 그래서 저도 아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기 위해 한글 그림책을 찾고 읽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현장에서 아이들을 지도하고 가르치는데 문학은 훌륭한 매체이며 보조재입니다. 아이들에게 양치질의 필요성을 가르치는데 많은 교사들은 충치로 고생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양치질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세번째는 독자가 가지고 있는 배경지식은 확실히 그림책을 읽고 이해하는데 더 수월함을 주며, 독자에게 흥미를 더해주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저희 아들이 기도책의 글자를 읽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림을 보고 그림책을 읽은 것은 맞습니다. 그리고 기독교적 배경지식이 아이가 이야기를 듣고 기억하고 다시 구성해내는데 큰 도움이 되었으며, 반복해서 이 책을 읽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아들에게 한글을 더 가르쳐야 해서 한글 그림책을 계속해서 찾아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제가 고려해야할 것이 늘었습니다. 그것은 글과 그림의 관계, 그리고 읽어주는 사람의 소리가 아들의 한글 익히기에 얼마나 도움을 주는가에 대한 고민과 아들이 가지고 있는 배경지식과 흥미입니다. 오늘도 아이들의 책읽기에 흥미와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열심히 그림책을 찾고 계신 많은 분들을 응원합니다. 화이팅!
(1) 『받침 없는 한글 동화- 무시무시 마녀가 이사 와!』 글 이미애, 그림 주세영, 한빛에듀, 2022
(2) 『꽃이랑 소리로 배우는 훈민정음 ㄱㄴㄷ』 바람하늘지기 기획, 노정임 글, 안경자 그림, 웃는돌고래, 2011
(3) 『아침에 기도해요』 편집부 지음, 전하리 그림, 아가페, 2004
(4) 박경미(2004) 글 없는 성경 그림책를 가지고 기독유아와 비기독유아의 반응을 비교하여 분석하였습니다. 글 없는 성경그림책을 유아가 읽고 이야기를 구성하여 검사자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실험이었는데, 기독교 선행지식을 가진 기독유아가 비기독유아에 비해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을 더 잘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 글 없는 성경 그림책을 활용한 기독유아와 비기독유아의 이야기 구성력 비교. 성균관대학교 석사학위논문.
| 강다혜 | 성균관대학원 아동청소년학과 박사과정 수료 시와 글을 쓰며 책을 좋아하던 저는 국문학을 전공하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총신대 유아교육학과에 입학하였을 때 한편으로는 좌절했지만,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하나님이 내가 제일 잘 하는 곳으로 나를 이끄셨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대학 4년을 보내면서 제가 깨달은 것은 역시 하나님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유아교육의 분야 중에서도 유아문학이 또 그 중에서 그림책이 저에게 가장 즐거웠고 또 적성에 맞았기 때문입니다. 그 후로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에 입학해 현은자 교수님 밑에서 박사과정을 마쳤습니다. 지금은 4명의 자녀와 함께 공기 좋고 초목이 푸르른 경상남도 합천에서 끝나지 않는 집안일과 육아로 정신없이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그림책 속 세계관을 연구하여 다음 세대에 진심으로 추천해줄 수 있는 좋은 그림책을 발견하고 소개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
그림책의 글과 그림, 그리고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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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집 셋째인 1학년 아들은 아직 한글을 배우는 중입니다. 우리 아들이 다니는 초등학교는 작은 시골 마을에 위치한, 병설유치원 친구들까지 합하여 전교생이 70명도 채 안되는 학교입니다. 신입생 11명 중 한글을 완벽하게 뗀 친구가 많지 않아 담임 선생님께서는 국어교육과정에 맞춰 천천히 한글을 가르치십니다. 요즘 우리 아들은 선생님이 주신 자음자와 모음자가 합쳐진 한글기본음절표를 보고 읽기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하루는 엄마인 저와 가, 갸, 거, 겨를 읽고 다음 날은 누나들과 나, 냐, 너, 녀를 읽고 어제는 아빠와 다, 댜, 더, 뎌를 읽었지요.
그러다 한번씩은 받침 없는 글자 위주로 만든 『무시무시 마녀가 이사 와!』(1)라는 그림책도 읽어봅니다. 이 그림책은 사자, 오소리, 너구리, 토끼, 거미, 개구리와 같은 동물들이 사는 ‘어서오라 아파트’에 무시무시 마녀가 이사온다는 소식으로 시작되지요. 처음에는 엄마와 아이가 주고 받으며 읽는 파트가 나옵니다. 엄마가 먼저 책을 읽으면 아이가 이어서 읽는 방식인데, 아이가 읽는 부분은 엄마가 읽은 내용과 크게 차이 나지 않습니다. 거의 엄마가 읽은 말을 되풀이해서 따라하는 방식이지요. 하지만 저희 아들에게는 아직 글자들이 눈에 익지 않기 때문에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손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짚어주며 읽어도 아이는 자신이 읽는 부분에서 글자를 쉽게 인식하고 읽어내지 못하더라구요. 엄마가 한 번 읽어주었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차례가 되면 그 글자가 무엇인지 기억해내고 생각해내느라 시간이 꽤 걸립니다.
아이는 그림의 순서와 동물이름을 나타내는 글자의 순서가 같음을 찾아내고, 신나서 동물의 이름을 말합니다. 하지만 곧 다시 힘들어지지요. 왜냐하면 더이상 그림에서 힌트를 찾아내는 것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다시 엄마의 소리와 글자의 관계에 대해서 집중을 합니다. 그렇게 아이는 엄마의 소리와 글자가 일대일로 연관이 있으며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익히게 되지요. 그렇게 책을 다 읽고 나면, 아이는 한 권을 다 읽었다는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다시 읽기는 싫어했습니다. 이유를 물으니, “공부 다 했는데, 왜 또 해?” 합니다.
다음 날 저는 공부처럼 느껴지지 않으면서도 아이와 한글 이야기를 해볼 수 없을까 싶어 다른 책을 꺼냈습니다. 바람하늘지기에서 기획하고 노정임이 글을 썼으며, 안경자가 그림을 그린 『꽃이랑 소리로 배우는 훈민정음 ㄱㄴㄷ』(2)는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원리에 따라 아이들에게 우리나라의 소리와 글자를 가르쳐주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그래서 책의 내용이 시작하기 전, 글자의 모양을 외우기보다 소리를 먼저 익힐 수 있도록 하라는 당부가 적혀 있습니다. 책을 펼치니, ‘기역은 강자의 처음 나는 소리와 같아요.’라는 텍스트와 함께 강아지풀이 그려져 있습니다. 집 근처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풀이라, 아이가 반가워합니다. 그 다음 장을 넘기니 ㄲ(쌍기역)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기역을 나란히 쓰면 꽃자의 처음 나는 소리와 같아요.’라는 텍스트 옆에는 꽃마리가 그려져 있습니다. 그 다음 장은 ㅋ(키읔) 입니다. ‘키읔은 콩자의 처음 나는 소리와 같아요.’라는 텍스트와 함께 콩꽃이 그려져 있었지요. 이쯤 되니 아들은 책표지를 다시 살펴봅니다.
아이와 이 책을 읽기 전 표지를 같이 보면서, 왜 책 표지에 꽃이 그려져 있는지, 꽃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꽃이 제일 예쁜지 등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제 아이는 앞으로 표지에 있던 꽃들이 언제 나올지, 이 꽃 이름이 무엇일지 궁금해합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마지막 장에 전체 꽃이 모두 그려져 있는데, 이 장면의 꽃들을 다시 앞에서 찾아보며 어떤 꽃인지 확인하는데 꽤 많은 시간을 쏟았습니다. 다 읽고 나서 하는 말이,
그래서 저는 한참을 아이와 꽃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책을 덮었습니다. 이 책은 그동안 아이가 배운 한글 자음의 순서와 약간 다릅니다. 보통 우리는 ㄱ(기역)을 배우고 나면 ㄴ(니은)을 배우는데, 이 책은 ㄱ(기역) 다음에 ㄲ(쌍기역)이 나오고 그 뒤로 ㅋ(키읔), ㄷ(디귿), ㄸ(쌍디귿), ㅌ(티읕)이 나온 다음에서야 ㄴ(니은)이 나옵니다. 아이는 이 책에서 한글의 소리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음에도, 이 책이 한글 자음자를 가르쳐주는 책이 아닌 꽃 이름을 가르쳐주는 책으로 느껴지나 봅니다 . 『꽃이랑 소리로 배우는 훈민정음 ㄱㄴㄷ』은 『훈민정음 ㄱㄴㄷ』(책과함께, 2009)의 개정판으로 도서출판 웃는돌고래에서 ‘자연이 키우는 아이’ 시리즈로 낸 첫 책입니다. 이 책의 출판 목적이 첫째는 세종대왕의 한글창제 원리에 따라 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것이고 둘째는 아이가 자연에 관심을 갖는 것이라면 저희 아이는 두번째 목적만 달성된 셈인 것 같습니다. 이 글의 텍스트는 일관되게 각 자음자의 소리가 어떤 소리와 같은지를 설명하지만, 저희 아이는 꽃의 이름만 기억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것이 시간이 꽤 걸리는 것에 지쳐가고 있을 때 즈음의 일입니다. 저희 집에는 『아침에 기도해요』(3)라는 작은 손모양의 기도책이 있습니다. 첫 아이가 어릴 때 샀던 책이라 많이 낡고 달았지요. 요즘은 5살된 막내가 늘 손에 들고 다니지요. 어느 날 막내가 다시 이 책을 자기 책상 구석에서 꺼내 아빠에게 읽어 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아빠 주위로 셋째 아들과 막내 딸이 모여듭니다. 아빠가 첫 장을 펼치고 읽습니다.
“예수님, 맑고 밝은 아침을 주셔서 고마워요. 오늘 하루도 저를 지켜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예수님, 아침에 일어나면 몹시 쉬가 마려워요. 그런데 화장실에 혼자 가기 싫어요. 예수님, 혼자서도 화장실에 가는 아이가 되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 책은 어른 손보다 작은 크기로 초등학교에 갓 올라간 저희 셋째아이 손과 비슷한 크기입니다. 그림책을 펼치면 두 손바닥을 하늘로 향한 모양이 되며 그 안에는 아이가 아침에 일어나서 겪는 일상적인 일들을 두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기도문이 나오지요.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올리는 기도, 화장실에 관한 것, 아침 밥에 관한 것, 양치에 관한 것에 대해 기도하고 어린이집에 가며 엄마와 떨어지기 싫은 마음까지도 하나님께 아뢰고 나면, 오늘 하루를 자신의 기도대로 보내게 해주신 예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아빠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이라고 할 때마다 두 아이는 큰 소리로 같이 아멘을 외칩니다.
6개 펼침면으로 이루어진 작은 책이기에 금새 책을 다 읽었습니다. 이제 막내는 첫째 언니에게 가지고 가서 읽어 달라 합니다. 첫째 언니도 다 읽자 이제 둘째 언니에게 갑니다. 이번에도 금새 책읽기가 끝났습니다. 그러자 이제 셋째가 동생에게 말합니다 “이번에는 오빠가 읽어줄께.”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저와 남편은 조용히 아들의 책읽기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들은 마치 글자를 다 아는 아이처럼 줄줄줄 매끄럽게 책을 읽습니다. 예를 들어 첫 장에 ‘맑고 밝은 아침을’과 같은 것도 ‘맑은’ 혹은 ‘밝은’ 하나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맑고 밝은 아침을’이라고 읽습니다. 저와 남편은 순간 눈이 마주쳤지만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이 놀라운 상황을 지켜보았습니다. 마지막까지 유창하게 그림책을 읽은 아들은 동생에게 오빠가 읽어줄테니 언제든지 책을 가지고 오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합니다. 앞 서 『무시무시 마녀가 이사 와!』 책을 읽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한글의 난이도나 내용으로만 따지면 이 책이 훨씬 더 어려운 책인데 말입니다.
아들의 모습을 상기하며 그림책 읽기와 글과 그림의 관계에 대해 잠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첫번째로 말씀드린 『무시무시 마녀가 이사 와!』를 읽을 때 아들은 엄마가 먼저 읽어주는 소리를 듣고 글자와 연결시키려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그림 안에서 힌트를 찾아 글자를 읽기도 했지요. 하지만 이는 아이에게 조금은 힘든 ‘공부’였습니다. 그래서 다음 번에 다시 이 책을 읽을 때 조금 읽기가 수월해지기는 하였지만, 유창하게 읽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두번째로 말씀드린 『꽃이랑 소리로 배우는 훈민정음 ㄱㄴㄷ』는 한글의 모양을 외우려고 하기보다 소리를 먼저 익히게 하기 위한 책인데, 아쉽게도 저희 아이는 그림에 더욱 집중하여 글자와 소리와의 상관관계는 생각하지 못하였지요. 그림은 글자를 익히는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이 책을 앞 선 책보다는 재미있어 하였지요. 마지막 책인 『아침에 기도해요』는 책 자체는 소책자이지만 그래도 위의 두 책보다 한글의 어휘수준이 높고 읽어야 하는 글텍스트의 양도 많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이 책의 내용을 3번 반복해서 들었을 때 그 자리에서 텍스트를 다 외워 버렸고, 너무나도 쉽게 이 책을 읽어냈습니다. 물론 글자를 읽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림은 어이질 내용이 어떤 내용인지 기억해내는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 책을 더 쉽게 익히고 기억한다는 것은 책의 내용이 평소 아이의 삶이나 기도내용과 관련이 깊으며,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고 있다는 배경이 크게 작용했겠지요.(4)
이번에 소개해 드린 저희 아들의 그림책 읽기는 우리에게 3가지 그림책의 특징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합니다.
첫번째는 그림책은 글과 그림이 함께 어우러져서 의미를 전달하는 책이라는 그림책의 매체적 특징입니다. 어느 그림책이든 그 책이 전달하고 싶은 의미는 글과 그림이라는 두 가지 코드가 동시에 독자에게 전달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글자도 읽어야 하지만 그림도 읽어야 하지요. 특히 그림은 글이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에 대해 독자에게 계속해서 힌트를 줍니다.
두번째는 그림책은 우리에게 재미도 주지만 가르침도 준다는 것입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그림책이 무엇인가 독자에게 가르침을 주려고 하는 것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며 싫어합니다. 문학은 즐거움을 주는 것이 원천이기에, 무엇이든 문학을 이용해 가르침을 전달하면 좋은 문학이 아니라고 평가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책을 통해 지식과 정보를 얻습니다. 그렇기에 어떠한 책이 재미보다 가르침에 비중이 더 좋다고 해서 그것이 좋다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어찌 보면 어불성설입니다. 그림책 중에서 정보책 같은 경우는 특정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목적을 가진 책입니다. 그래서 저도 아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기 위해 한글 그림책을 찾고 읽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현장에서 아이들을 지도하고 가르치는데 문학은 훌륭한 매체이며 보조재입니다. 아이들에게 양치질의 필요성을 가르치는데 많은 교사들은 충치로 고생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양치질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세번째는 독자가 가지고 있는 배경지식은 확실히 그림책을 읽고 이해하는데 더 수월함을 주며, 독자에게 흥미를 더해주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저희 아들이 기도책의 글자를 읽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림을 보고 그림책을 읽은 것은 맞습니다. 그리고 기독교적 배경지식이 아이가 이야기를 듣고 기억하고 다시 구성해내는데 큰 도움이 되었으며, 반복해서 이 책을 읽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아들에게 한글을 더 가르쳐야 해서 한글 그림책을 계속해서 찾아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제가 고려해야할 것이 늘었습니다. 그것은 글과 그림의 관계, 그리고 읽어주는 사람의 소리가 아들의 한글 익히기에 얼마나 도움을 주는가에 대한 고민과 아들이 가지고 있는 배경지식과 흥미입니다. 오늘도 아이들의 책읽기에 흥미와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열심히 그림책을 찾고 계신 많은 분들을 응원합니다. 화이팅!
(1) 『받침 없는 한글 동화- 무시무시 마녀가 이사 와!』 글 이미애, 그림 주세영, 한빛에듀, 2022
(2) 『꽃이랑 소리로 배우는 훈민정음 ㄱㄴㄷ』 바람하늘지기 기획, 노정임 글, 안경자 그림, 웃는돌고래, 2011
(3) 『아침에 기도해요』 편집부 지음, 전하리 그림, 아가페, 2004
(4) 박경미(2004) 글 없는 성경 그림책를 가지고 기독유아와 비기독유아의 반응을 비교하여 분석하였습니다. 글 없는 성경그림책을 유아가 읽고 이야기를 구성하여 검사자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실험이었는데, 기독교 선행지식을 가진 기독유아가 비기독유아에 비해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을 더 잘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 글 없는 성경 그림책을 활용한 기독유아와 비기독유아의 이야기 구성력 비교. 성균관대학교 석사학위논문.
강다혜 | 성균관대학원 아동청소년학과 박사과정 수료
시와 글을 쓰며 책을 좋아하던 저는 국문학을 전공하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총신대 유아교육학과에 입학하였을 때 한편으로는 좌절했지만,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하나님이 내가 제일 잘 하는 곳으로 나를 이끄셨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대학 4년을 보내면서 제가 깨달은 것은 역시 하나님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유아교육의 분야 중에서도 유아문학이 또 그 중에서 그림책이 저에게 가장 즐거웠고 또 적성에 맞았기 때문입니다. 그 후로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에 입학해 현은자 교수님 밑에서 박사과정을 마쳤습니다. 지금은 4명의 자녀와 함께 공기 좋고 초목이 푸르른 경상남도 합천에서 끝나지 않는 집안일과 육아로 정신없이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그림책 속 세계관을 연구하여 다음 세대에 진심으로 추천해줄 수 있는 좋은 그림책을 발견하고 소개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