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소원 『세 나무 이야기』
『세 나무 이야기』 그림책 자세히보기
2024년 1월 월트디즈니는 “Wish”라는 영화를 개봉하여 전 세계적으로 큰 흥행을 거뒀습니다. 이 영화의 제작을 맡은 사람들은 그동안 디즈니에서 만든 영화의 장면들을 사무실 책상에 붙여 놓고, 디즈니 영화의 중심 된 생각이 무엇인지 고민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다 그들은 ‘별에게 소원을 빈다’라는 공통점을 찾았고, 결국 모든 디즈니 영화들을 아우를 수 있는 ‘Wish’라는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고 하네요. 이 영화는 ‘소원’이 우리의 삶에 굉장히 중요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소원’은 아름답고 귀한 것이며,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힘과 즐거움과 소망을 주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요. 그래서 우리는 그 소원이 이루어지기 위해 날마다 노력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다 보면 몇 가지 의문이 듭니다. 모든 소원이 다 좋은 것일까요? 그리고 모든 소원은 다 이루어져야 할까요?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방과 후, 4명의 아이들은 앞다투어 저에게 자신의 소원을 이야기 합니다. 저녁메뉴는 무엇인지, 어린이날에는 어떤 선물을 줄 것인지 등을 물으며 은근슬쩍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제가 들어줄 수 있는지 떠 봅니다. 자신의 소원 중 엄마가 이루어 주지 못할 것 같은 것은 밤에 자기전에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아룁니다.
“내일 짝을 바꾸는데, ㅇㅇ랑 짝이 되게 해주세요.”
“내일 수행평가를 보는데 잘 보게 해주세요.”
“엄마가 자전거를 사주게 해주세요.”
때론 너무 큰 소리로 기도를 하여, 이 기도가 하나님께 하는 것인지 엄마인 저에게 하는 것인지 헷갈릴 때도 있지요. 저는 아이들을 무척 사랑하지만, 아이들의 소원을 모두 들어줄 수는 없습니다. 그럴 때면 왜 소원을 들어주지 못하는지 아이들에게 설명을 하지요. 만약 아이가 새로운 자전거를 원한다면, 지금 타는 자전거의 상태나 아이의 신체발달 정도, 그리고 경제적인 비용 등을 고려하여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경우 아이들은 지금 당장 그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아 서운한 마음이 들 수 있지만, 그래도 마음을 추스르고 이해를 합니다. 하지만 영화 “Wish”는 소원의 ‘내용’이나 그 소원이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해서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나의 소원이 이루어지는가 그렇지 않은가, 혹 누가 나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을 방해하는가에 집중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그림책 『세 나무 이야기』의 내용과 상반됩니다.
엘레나 파스퀼리가 글을 쓰고 소피 윈드햄이 그림을 그린 그림책 『세 나무 이야기』에는 아름다운 소원을 품고 살아가는 세 나무가 나옵니다. 세 나무는 차가운 겨울밤, 별이 반짝이는 하늘을 보며 꿈을 꿉니다. 첫 번째 나무는 부자 나무가 되어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석을 담는 상자가 되고 싶다고 말합니다. 두 번째 나무는 힘센 나무가 되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왕이 타는 배가 되고 싶다고 합니다. 세 번째 나무는 그냥 이 자리에서 하나님이 계신 하늘과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이 자신의 소원이라고 말합니다. 여러 해가 지나 이 세 나무는 나무꾼에 의해 잘리게 됩니다. 첫 번째 나무는 부자 나무가 될 거라 기대했고, 두 번째 나무는 왕께 인사하러 가길 원했지만, 세 번째 나무는 자신이 잘리는 순간 나의 꿈은 사라졌다며 울어버립니다.
첫 번째 나무는 목수에게 가서 근사한 상자로 변했지만, 보석상자가 아닌 튼튼한 여물통이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더럽고 캄캄한 곳에서 살아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탓하며 울 수밖에 없었지요. 하지만 어느 날, 여관 주인은 한 남자와 여자의 쉴 자리를 만들기 위해 동물들을 옮기고, 가장 깨끗한 짚을 여물통에 깔아주었습니다. 그러고는 갓난아기를 뉘었습니다. 이때 첫 번째 나무는 깨닫습니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석을 담은 상자가 되었다는 것을...
두 번째 나무는 배 짓는 목수에게 갔습니다. 이 나무로 만들어진 배는 저녁이 되면 어부들을 태우고 남보랏빛 바다에 나가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두 번째 나무는 초라한 사람들만 태우게 되었다며 실망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거센 폭풍이 불고 커다란 파도가 배를 향해 밀려왔지요. 그때 배 안의 한 남자가 일어나 파도에게 “잠잠하라”라고 소리치자 바다는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이때 두 번째 나무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왕을 태운 배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세 번째 나무는 아무렇게나 잘려 버려졌다가 어느 날 십자가로 만들어집니다. 잔인한 손들이 한 남자를 십자가에 억지로 눕히고, 손과 발에 못을 박았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남자는 어둡고 쓸쓸한 언덕 꼭대기에서 죽었습니다. 그런 후 십자가가 된 세 번째 나무 역시 텅 빈 채 버려졌지요. 해가 질 때마다 언덕 위의 나무는 너무 슬펐습니다. 그러던 어느 눈부신 새벽, 십자가에 죽었던 남자가 기적처럼 다시 살아났습니다. 남자를 죽게 한 십자가는 이제 ‘생명의 나무’가 되었습니다. 이때 세 번째 나무는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영원히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나무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림책 『세 나무 이야기』에는 소원을 품었던 세 그루의 나무가 나옵니다. 그들의 소원 역시 아름답고 귀했지만, 그들의 소원은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독자는 그들의 소원이 그들 자신도 상상하지 못하고 꿈조차 꾸지 못했던 가장 멋진 방식으로 결국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이 책을 아이들에게 읽어주려고 마음 먹었을 때, 살짝 걱정을 했습니다. 이 세 나무의 소원이 이루어진 방식이나 그 결과에 아이들이 동의하지 않고 의문을 제기 한다면 어떻게 설명해주어야 할지 고민했지요.
“하민아, 이 그림책에서 나무들의 소원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해?”
“응. 이루어졌잖아.”(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설명중)
“그런데 이 나무들이 처음 가졌던 소원이랑은 좀 다르잖아.”
“응. 근데 처음 소원은 내 욕심만 있었던 거고, 진짜 이루어진 소원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니까 더 좋지.”
“왜 더 좋다고 생각해?”
“아니~ 내가 어떻게 하나님보다 똑똑해? 나보다 하나님이 더 똑똑하고, 또 나도 하나님이 만들었으니까, 당연히 내 생각보다 하나님 생각이 더 훌륭하지. 그러니까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진 소원이 더 훌륭한거지. 엄마는 엄마 생각이 더 좋은 거 같아, 하나님 생각이 더 좋은 거 같아?”
앞서 언급했던 영화 “Wish”는 소원이 이루어 지는지의 결과와 혹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하게 방해하는 세력이 있다면 그 세력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영화에서 말하는 대로 그림책 『세 나무 이야기』를 본다면, 세 나무의 소원이 이루어지지 못하게 한 세력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세 나무의 뜻과 달랐기에 그들의 인생은 그들의 처음 소망과 달리 흘러갔으니까요. 하지만 우리가 자신의 소원만을 따라 산다면, 그 인생이 아름답고 평안할까요? 소원은 우리가 어떻게 인생을 살아갈 것인지 방향을 설정해주지만, 그것은 최종적인 인생의 목표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위와 같은 질문에 답을 할 때 우리는 망설일 수 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감정이나 욕망에 앞선 선택을 할 경우 어떤 결과를 얻게 될지 쉽게 유추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중요한 선택을 할 때에 도움을 줄 누군가를 찾기도 합니다. 자신의 생각이나 결정이 온전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생은 우리를 잘 아는 누군가의 다정한 이끌림과 인도가 있어야 더욱 풍성해지고 아름다워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림책 『세 나무 이야기』에서 세 나무의 인생을 이끌어 결국 그들의 소원을 이루신 하나님은 대적하고 맞서 싸워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를 가장 잘 알고 이해하는 다정한 손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소원이 성취되는 방식이 내가 기대하던 방식이 아니더라도, 하나님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놀라운 방법으로 역사하십니다. 가정의 달인 5월, 지금도 우리 가정을 아름답게 가꾸시며 우리의 소원을 온전하게 이루시는 하나님을 가만히 느껴보는 순간이 가득하길 바랍니다.
| 강다혜 | 성균관대학교 생활과학연구소 연구원 대학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하여 아동문학으로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지금은 성균관대학교 생활과학연구소 부설 그림책 전문가과정에서 "그림책과 유아동교육"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
참된 소원 『세 나무 이야기』
『세 나무 이야기』 그림책 자세히보기
2024년 1월 월트디즈니는 “Wish”라는 영화를 개봉하여 전 세계적으로 큰 흥행을 거뒀습니다. 이 영화의 제작을 맡은 사람들은 그동안 디즈니에서 만든 영화의 장면들을 사무실 책상에 붙여 놓고, 디즈니 영화의 중심 된 생각이 무엇인지 고민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다 그들은 ‘별에게 소원을 빈다’라는 공통점을 찾았고, 결국 모든 디즈니 영화들을 아우를 수 있는 ‘Wish’라는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고 하네요. 이 영화는 ‘소원’이 우리의 삶에 굉장히 중요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소원’은 아름답고 귀한 것이며,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힘과 즐거움과 소망을 주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요. 그래서 우리는 그 소원이 이루어지기 위해 날마다 노력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다 보면 몇 가지 의문이 듭니다. 모든 소원이 다 좋은 것일까요? 그리고 모든 소원은 다 이루어져야 할까요?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방과 후, 4명의 아이들은 앞다투어 저에게 자신의 소원을 이야기 합니다. 저녁메뉴는 무엇인지, 어린이날에는 어떤 선물을 줄 것인지 등을 물으며 은근슬쩍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제가 들어줄 수 있는지 떠 봅니다. 자신의 소원 중 엄마가 이루어 주지 못할 것 같은 것은 밤에 자기전에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아룁니다.
때론 너무 큰 소리로 기도를 하여, 이 기도가 하나님께 하는 것인지 엄마인 저에게 하는 것인지 헷갈릴 때도 있지요. 저는 아이들을 무척 사랑하지만, 아이들의 소원을 모두 들어줄 수는 없습니다. 그럴 때면 왜 소원을 들어주지 못하는지 아이들에게 설명을 하지요. 만약 아이가 새로운 자전거를 원한다면, 지금 타는 자전거의 상태나 아이의 신체발달 정도, 그리고 경제적인 비용 등을 고려하여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경우 아이들은 지금 당장 그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아 서운한 마음이 들 수 있지만, 그래도 마음을 추스르고 이해를 합니다. 하지만 영화 “Wish”는 소원의 ‘내용’이나 그 소원이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해서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나의 소원이 이루어지는가 그렇지 않은가, 혹 누가 나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을 방해하는가에 집중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그림책 『세 나무 이야기』의 내용과 상반됩니다.
엘레나 파스퀼리가 글을 쓰고 소피 윈드햄이 그림을 그린 그림책 『세 나무 이야기』에는 아름다운 소원을 품고 살아가는 세 나무가 나옵니다. 세 나무는 차가운 겨울밤, 별이 반짝이는 하늘을 보며 꿈을 꿉니다. 첫 번째 나무는 부자 나무가 되어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석을 담는 상자가 되고 싶다고 말합니다. 두 번째 나무는 힘센 나무가 되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왕이 타는 배가 되고 싶다고 합니다. 세 번째 나무는 그냥 이 자리에서 하나님이 계신 하늘과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이 자신의 소원이라고 말합니다. 여러 해가 지나 이 세 나무는 나무꾼에 의해 잘리게 됩니다. 첫 번째 나무는 부자 나무가 될 거라 기대했고, 두 번째 나무는 왕께 인사하러 가길 원했지만, 세 번째 나무는 자신이 잘리는 순간 나의 꿈은 사라졌다며 울어버립니다.
첫 번째 나무는 목수에게 가서 근사한 상자로 변했지만, 보석상자가 아닌 튼튼한 여물통이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더럽고 캄캄한 곳에서 살아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탓하며 울 수밖에 없었지요. 하지만 어느 날, 여관 주인은 한 남자와 여자의 쉴 자리를 만들기 위해 동물들을 옮기고, 가장 깨끗한 짚을 여물통에 깔아주었습니다. 그러고는 갓난아기를 뉘었습니다. 이때 첫 번째 나무는 깨닫습니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석을 담은 상자가 되었다는 것을...
두 번째 나무는 배 짓는 목수에게 갔습니다. 이 나무로 만들어진 배는 저녁이 되면 어부들을 태우고 남보랏빛 바다에 나가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두 번째 나무는 초라한 사람들만 태우게 되었다며 실망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거센 폭풍이 불고 커다란 파도가 배를 향해 밀려왔지요. 그때 배 안의 한 남자가 일어나 파도에게 “잠잠하라”라고 소리치자 바다는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이때 두 번째 나무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왕을 태운 배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세 번째 나무는 아무렇게나 잘려 버려졌다가 어느 날 십자가로 만들어집니다. 잔인한 손들이 한 남자를 십자가에 억지로 눕히고, 손과 발에 못을 박았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남자는 어둡고 쓸쓸한 언덕 꼭대기에서 죽었습니다. 그런 후 십자가가 된 세 번째 나무 역시 텅 빈 채 버려졌지요. 해가 질 때마다 언덕 위의 나무는 너무 슬펐습니다. 그러던 어느 눈부신 새벽, 십자가에 죽었던 남자가 기적처럼 다시 살아났습니다. 남자를 죽게 한 십자가는 이제 ‘생명의 나무’가 되었습니다. 이때 세 번째 나무는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영원히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나무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림책 『세 나무 이야기』에는 소원을 품었던 세 그루의 나무가 나옵니다. 그들의 소원 역시 아름답고 귀했지만, 그들의 소원은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독자는 그들의 소원이 그들 자신도 상상하지 못하고 꿈조차 꾸지 못했던 가장 멋진 방식으로 결국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이 책을 아이들에게 읽어주려고 마음 먹었을 때, 살짝 걱정을 했습니다. 이 세 나무의 소원이 이루어진 방식이나 그 결과에 아이들이 동의하지 않고 의문을 제기 한다면 어떻게 설명해주어야 할지 고민했지요.
앞서 언급했던 영화 “Wish”는 소원이 이루어 지는지의 결과와 혹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하게 방해하는 세력이 있다면 그 세력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영화에서 말하는 대로 그림책 『세 나무 이야기』를 본다면, 세 나무의 소원이 이루어지지 못하게 한 세력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세 나무의 뜻과 달랐기에 그들의 인생은 그들의 처음 소망과 달리 흘러갔으니까요. 하지만 우리가 자신의 소원만을 따라 산다면, 그 인생이 아름답고 평안할까요? 소원은 우리가 어떻게 인생을 살아갈 것인지 방향을 설정해주지만, 그것은 최종적인 인생의 목표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위와 같은 질문에 답을 할 때 우리는 망설일 수 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감정이나 욕망에 앞선 선택을 할 경우 어떤 결과를 얻게 될지 쉽게 유추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중요한 선택을 할 때에 도움을 줄 누군가를 찾기도 합니다. 자신의 생각이나 결정이 온전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생은 우리를 잘 아는 누군가의 다정한 이끌림과 인도가 있어야 더욱 풍성해지고 아름다워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림책 『세 나무 이야기』에서 세 나무의 인생을 이끌어 결국 그들의 소원을 이루신 하나님은 대적하고 맞서 싸워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를 가장 잘 알고 이해하는 다정한 손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소원이 성취되는 방식이 내가 기대하던 방식이 아니더라도, 하나님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놀라운 방법으로 역사하십니다. 가정의 달인 5월, 지금도 우리 가정을 아름답게 가꾸시며 우리의 소원을 온전하게 이루시는 하나님을 가만히 느껴보는 순간이 가득하길 바랍니다.
강다혜 | 성균관대학교 생활과학연구소 연구원
대학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하여 아동문학으로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지금은 성균관대학교 생활과학연구소 부설 그림책 전문가과정에서 "그림책과 유아동교육"을 강의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