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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에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희망차고 아름다운 이야기 『엘라와 파도』

2023-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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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에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희망차고 아름다운 이야기



판화와 콜라주 기법으로 아름다운 그림과 이야기를 선보이며 전 세계 그림책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독일 작가 브리타 태켄트럽의 그림책 <엘라와 파도>를 소개합니다. 작년 4월에 출간되자마자 8월에 우리나라에 번역된 작품입니다. 그녀는 1993년부터 30여 년간 100여권의 그림책을 작업하며 조용히 자기만의 세계로 전 세계 독자들을 초대합니다. 2016년 볼로냐 라가치상을 수상한 이후 큰 사랑을 받으며 국내에 번역된 그림책만 39권입니다. 다른 작가의 글에 그림을 그리기도 하지만 대부분 글과 그림을 함께 작업하는데, 소외된 이웃에 대한 따뜻한 사랑과 자연에 대한 경이로움,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와 가치를 밝고 건강한 감성으로 풀어내어 잔잔하면서도 깊은 감동을 줍니다. 그림책에 담긴 미학과 미덕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어지는 시대에 그녀의 작품은 시간이 흐를수록 빛을 발하는 것 같습니다. 그림의 표현도 탁월하고 유니크한 면이 있습니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집중하기 위해 인물과 배경을 단순화 하거나 과감히 생략하는 형태를 갖지만 겹겹이 레이어를 쌓은 듯한 깊이감 있고 세밀하게 표현된 색감은 들여다볼수록 아름답고 매력적입니다.

온통 하늘색으로 물든 표지는 노란색 돛을 단 작은 돛단배를 등에 싣고 가는 커다란 고래 한 마리가 꽉 채우고 있습니다. 고래는 정다운 표정으로 자기 등을 의지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아이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 아이는 자기의 배가 고래 등에 의지해 나아가고 있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얀 새가 밝혀주는 불빛을 향해 손을 뻗치며 씩씩하게 나아가고 있습니다. 표지를 넘기면 돛단배의 노란색이 면지를 가득 채우고, 한 장을 더 넘기면 속표지처럼 다시 한번 제목과 돛단배가 등장합니다. 이번에는 아이가 배의 가장 앞에 서서 당당히 허리를 펴고 새를 따라갑니다. 바다 물결은 잔잔하고 해가 떴는지 반짝이고 있습니다. 또 한 장을 넘기니 이제야 진짜 표제지가 나옵니다. 이번에는 새가 보이지 않습니다. 돛단배에 가만히 앉아 바닥만 바라보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위태로워 보입니다. 하얀 새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왼쪽 면에 불빛을 밝히며 아이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바다의 가장 깊고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서 엘라는 어둠에 둘러싸여 홀로 작은 배를 타고 있습니다. 바람은 그쳤고, 바다는 고요합니다. 목적지를 잃은 돛은 내려져 있고 엘라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무심히 바다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물 밑에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나를 지나가야 한단다. 엘라.”

“어떻게? 나를 어디로 데려가려는 거야?”

“네가 스스로 알아 내렴”


어둡고 차가운 망망대해 거대한 바다에 홀로 떠있던 엘라는 일어서서 돛을 붙잡습니다. 그리고 돛을 펼칩니다. 이때 저 멀리 어디선가 작고 하얀 새 한 마리가 노란 불빛을 밝히며 다가옵니다. 걱정과 두려움으로 가득했던 엘라에게 불빛 하나를 건네주며 “내가 함께 할게. 넌 용기를 내기만 하면 돼"라고 말하며 앞서 날아갑니다. 바람이 쌩쌩, 작은 배에 불었습니다. 천둥 번개도 칩니다. 엘라는 산만한 파도 위로 아래로 떠밀렸습니다.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곳으로 나아갑니다. 온통 어둡기만 한 바다 위로 작은 돌고래들이 그 외로운 길을 함께 해줍니다. 엘라가 힘겹게 파도에 맞설 때 돌고래들은 파도 타는 법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합니다.


“파도를 막을 수는 없지만,

파도 타는 법을 배울 수는 있어.

이렇게 넘는 거야.

한 번에 하나씩.”


엘라가 돌고래에게 배운 지혜대로 파도를 하나씩 넘고 있을 때, 바다 깊은 곳에서부터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나를 지나갈 수 없을걸. 나는 거대하고 끝없이 캄캄하니까.” 깊은 바닷속에서 무언가 떠오르는 것이 보이자 엘라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습니다.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아무 힘이 없어 보이는 엘라의 모습이 안쓰럽기만 합니다. 형체를 알 수 없이 몽글몽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수백 마리의 찬란한 빛을 품은 해파리들이었습니다. 해파리들이 바다 밑에서 환한 빛을 비추며 이렇게 말합니다.


“포기하지 마, 엘라. 우리가 길을 밝혀 줄게.”


형체도 실체도 없는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밀려올 때, 내 인생의 파도를 함께 넘어주는 그 빛. 그 빛을 당신은 가지고 있나요? 눈물이 나올 만큼 아름답고 소망 가득한 노래가 들리시나요? 엘라는 바로 그 빛을 품고 있었습니다. 엘라가 해파리들의 응원을 힘입어 나아가고 있을 때 커다란 고래가 나타나 이렇게 말합니다.


파도의 크기는 두려움의 크기와 같아.

지금은 너무 벅차 보이는 일도

지나고 나면 훨씬 작게 느껴질 거야.”


표지에서 보았던 장면이 펼쳐집니다. 고래는 든든한 등에 잠시 작은 돛단배를 태워 줍니다. 그리고 담담히 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바다는 어둡고 무서울 수도 있지만,

새로운 곳으로 이끌어 줄 수도 있어.

나는 오랫동안 바다에서 헤엄쳐서 알지.

네가 혼자가 아니라는 걸 말이야.

기다려 보면 알게 될 거야…”


구름이 걷히기 시작하고 고래는 언제 떠났는지 엘라 혼자 바다를 헤쳐 나아갑니다. 이제는 혼자서도 파도를 탈 수 있게 되었지요. 엘라는 일어서서 처음으로 앞을 바라봅니다. 처음 속표지에서 보았던 바로 그 당당한 엘라의 모습입니다. 어둡기만 하던 바다가 조금씩 푸른빛으로 물들어 갑니다. 그 다음 장을 펼치자~~ 세상에~~ 탄성이 나오며 잠시 숨을 멈춥니다. 바다는 작은 불빛을 단 돛단배들로 가득합니다. 저마다 암흑 속에서 파도와의 싸움을 이겨낸 수많은 아이들이 자기의 돛단배를 이끌고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한 명 한 명을 품에 안아주고 싶습니다. “잘했어. 수고했어. 너무 대견하다. 자랑스럽다. 우리 아이들~~””

고래는 알고 있었습니다. 엘라는 혼자가 아니었던 것을, 그리고 우리 모두는 같은 길을 가고 있습니다. 하늘은 개고 밝고 커다란 태양이 바다 한가운데 떠오릅니다. 모두 함께 새로운 땅으로 나아갑니다. 이미 도착한 아이들이 맞으러 달려나옵니다. 손에 손을 붙잡고 축하하며 기뻐합니다. 태양이 떠오르고 새 날이 시작합니다. 2023년 한 해를 시작하며 우리 모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새로운 길을 향합니다. 거대한 파도를 만나게 될 수도 있고, 도무지 잠잠해지지 않을 것 같은 폭풍우를 만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파도를 넘는 법을 배웠기에 새로운 파도도 견딜 수 있습니다. 너무 큰 파도가 밀려오나요? 그러나 위기가 기회이고, 고난이 축복임을 믿습니다. 

파도가 밀려와도 은혜이고, 잠잠해져도 은혜임을 고백하며 나의 돛단배에 불을 밝히며 주어진 길을 갑니다. 우리를 붙잡는 모든 두려움을 이겨낼 힘을 주시고 지혜를 주실 분은 오직 아버지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며 눈앞의 파도와 상황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눈을 들어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시편 23편 4~6절)



임해영 | 그림책박물관 운영

일러스트레이터들을 위한 산그림 (picturebook-illust.com)을 운영하고 있으며, 다음세대에게 아름다운 그림책을 전하기 위하여 그림책을 역사적으로 정리하는 그림책박물관 (picturebook-museum.com)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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