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코미누스』 다섯수레

2022-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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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 29.5, 세로 33cm의 커다란 판형에 밀도력이 돋보이는 표지그림입니다. 그림책이 소개되기 전부터 우리나라 일러스트레이터들 사이에 존재감을 드러내었던 ‘레베카 도트르메르’가 직접 글을 쓴 그림책입니다. 그녀는 1971년 프랑스 남부에서 태어났으며 프랑스에서 가장 사랑받는 그림책 작가 중 한 명으로 작품성과 흥행성을 동시에 거머쥔 작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2008년 『공주백과사전』이 처음 소개되었고, 페이퍼컷팅 기법을 활용한 그림책의 예술세계를 보여준 2005년 『레베카의 작은 극장』이 있습니다. 

책 표지를 보면 책제목인 『자코미누스』 아래에 작은 텍스트로 '달과 철학을 사랑한 토끼'라고 적혀 있고 큼지막한 토끼가 물끄러미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습니다. 30센티가 넘는 그림책을 양쪽으로 펼치니 넓은 면지에 연필선이 그대로 드러나는 섬세한 스케치로 34개의 의인화된 동물캐릭터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각각의 캐릭터에는 번호가 붙어져 있고, 그림 하단에는 번호에 따른 동물들의 이름과 간단한 소개가 되어 있습니다. 표지에서 보았던 그 토끼를 떠올리며 ‘자코미누스’를 찾아보려 애써보았지만 도저히 찾을 수가 없어 하단의 이름 목록을 살펴보았습니다. 자코미누스는 4번이군요. 스케치 그림 속 4번 동물을 찾습니다. ‘아! 너가 자코미누스구나!' 수많은 캐릭터로 채워져 있는 펼침 그림에서 주인공 '자코미누스' 를 찾아가며 읽기 위해서는 매우 꼼꼼한 그림책 읽기를 요구합니다. 하지만 충분한 시간과 에너지를 집중해서 글과 그림 텍스트를 찬찬히 들여다 보면 어느 순간 많은 것들이 보이는 그림책입니다. 



첫 장에서는 태어나 처음으로 나들이를 나온 갓난 아기 자코미누스가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있습니다. '이분이 엄마이고, 아빠이고 할머니이시구나! 면지에서는 어디에서 뭘하고 있었던 인물들이지?' 하며 살펴보니 아빠는 체스판을 구경하고 있고, 엄마는 멀리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남편을 바라보고 있으며 할머니는 책을 읽어주는 아가통 엄마 뒷편에 서계시는 군요. 이렇게 본문과 면지를 왔다갔다 넘기며 번호를 대조해서 살펴보면 그 인물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독자로 하여금 주인공 뿐만아니라 이름이 언급된 모든 주변 인물들을 적극적으로 살피도록 이끌기에 주인공 자코미누스의 인생을 더욱 넓고 깊게 조망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예를 들어 ‘무엇보다 폴리카르프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없었지. 세자르와 아가통, 뷔롱과 레옹, 나폴레옹하고도. 아무리 괴로워도 몇 시간씩 영어 공부를 해야 했거든.’ 이라는 문장을 읽었을 때 각각의 인물들을 면지그림에서 확인해야 ‘폴리카르프’는 돼지친구이고 ‘아카통’은 염소친구인 것을 알 수 있고, 그러고 난 후에야 본문의 그림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림 속 자코미누스를 찾아내며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갓난아기가 자라 소년이 되고, 군인이 되고, 아버지가 되고, 늙어 노인이 될 때까지의 인생의 궤적을 엿볼 수 있습니다.

‘달과 철학을 사랑한 토끼’라는 제목에 호기심이 생겨 해당 내용을 찾아봅니다. 자코미누스는 종종 달나라 여행을 다녀옵니다. 즉 달을 상상하는 시간이 많았던 것이죠. 어느 날의 작은 추락 사고도 달나라 여행 때문이었습니다. 이후로 자코미누스는 한쪽 다리를 절뚝거리며 걷게 되었습니다. 자코미누스에게는 두 나라 말을 할 줄 아는, 수다스럽고 철학적인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자코미누스는 할머니처럼 철학적이고 싶었기 때문에 친구들을 포기하고 영어책을 펼쳐 듭니다. 덕분에 영어를 빠르게 배울 수 있었고, 시간이 남아서 러시아어, 이탈리아어, 코르시카어, 페르시아어, 키빌리아어까지 배웁니다. 아마도 많은 책을 읽으며 철학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을 것입니다.

세상의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큰 배를 타고 멀리 가보기도 하고, 승리도 하고 패배도 하였습니다. 또 어릴 때 친구였던 두스를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아름다운 가정도 이루지요. 하지만 그 이후에는 치열한 삶의 열차에 올라탄 듯 철학 같은 걸 할 시간이 별로 없었다고 고백합니다. 때론 모든 것이 짜증스러워 버럭 화를 내기도 했지만 다행히 조금씩 나아졌습니다. 자신이 아버지라는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원래의 훌륭한 모습을 되찾았고, 말수는 여전히 적었지만 친구들과 함께 하는 기쁨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지 않았답니다. 그는 성장했습니다. 그것은 멋진 일이었지요.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자코미누스는 이제 노인이 되었습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을 때. 아무도 미리 알 수 없는 그 날이 왔습니다. 자코미누스는 문득 생각합니다. 소박한 삶이었지만 자기 일을 잘 해내었기에 만족한다고, 힘든 시간도 있었지만 내 삶을 사랑했다고, 또한 늙음이야말로 정말로 겪어 볼 가치가 있었다고 고백하며 죽음을 맞이합니다. 갓난 아기로 태어난 자코미누스의 인생이 이렇게 마무리되며 한 권의 그림책이 끝납니다. 영웅적이지고 않고, 업적도 없는 평범한 인생일지라도 죽음의 순간에 후회없이 눈을 감을 수 있다면 성공한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 페이지에 자코미우스가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평안하게 눈을 감고 누워 있습니다. 철학을 사랑했던 자코미우스다운 죽음입니다. 하지만 이 죽음이 정말 끝일까요?

오늘날 가장 큰 갈등은 유신론과 자연주의의 갈등이라고 합니다. 유신론은 한마디로 우주를 창조한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믿음이며 자연주의는 자연적인 원인만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현대 과학자들은 우주의 물리적 구조는 목적과 설계에 관한 분명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러시모어산에 있는 네 명의 대통령 얼굴의 바위를 보며 침식작용에 의한 우연의 일치로 결론 내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듯이, 우주의 구조는 이와 비교할 수 없는 우연이 수없이 반복되어야 가능한 것이라고 합니다.[1] 이렇듯 우주가 분명한 설계를 드러내고 있다면 우리가 다 이해할 수는 없을지라도 전능한 지적 설계자가 있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 논리적일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죽음 이후의 영원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하루가 영원과 맞대어 있음을 믿으며 살아갑니다. 그런 사람들은 마지막 한 페이지가 더 필요할 것입니다. 천군천사들이 그 영혼을 맞이하며 저 천국문을 향하는 모습으로 말이지요. 


[1] 찰스 콜슨, 낸시 피어시 공저 (2002) 『그리스도인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  45쪽, 105-114쪽



  • 자코미누스(Les riches heures de Jacominus Gainsborough)
  • 그림작가 레베카 도트르메르
  • 글작가 레베카 도트르메르 
  • 번역 이경혜
  • 페이지 56 쪽
  • 출판사 다섯수레
  • 발행일 2022-01-05




임해영 | 그림책박물관 운영

일러스트레이터들을 위한 산그림 (picturebook-illust.com)을 운영하고 있으며, 다음세대에게 아름다운 그림책을 전하기 위하여 그림책을 역사적으로 정리하는 그림책박물관 (picturebook-museum.com)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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