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의 서사적 배경이 된 '비' [글:박락원]

2021-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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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의 서사적 배경이 된 '비'



인간의 삶에서 ‘비’는 빛과 공기와 더불어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인 자연요소입니다. 그렇다면 문학과 예술의 가치를 모두 지닌 그림책에서 이러한 ‘비’는 과연 어떻게 그려지고 있을까요?

그림책에서 배경(Setting)은 사건이 벌어지는 세계의 상황과 본질을 설정해주는 중요한 서사적 요소입니다. 그림책 배경으로서의 ‘비’가 나타난 창작과 번역 그림책 97종을 분석한 결과 ‘비’의 서사적 역할은 다음과 같이 5가지로 분류할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 플롯 전개 돕기에서 배경으로서의 ‘비’는 플롯의 촉매 역할을 하면서 등장인물 또는 독자에게 시공간적으로 변화되는 배경을 제공하고 새로운 경험을 제공합니다. 플롯 전개 돕기 는 배경으로서의 ‘비’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역할로서 무려 61종의 그림책에서 나타났습니다. 우선, 이 범주에서는 등장인물이 ‘비’를 만나 자연의 섭리를 느끼는 경우가 가장 많이 발 견됩니다. Uri Shulevitz의 『비 오는 날』(1969)에서 등장하는 소녀가 그림책의 시작부터 끝까지 비 오는 풍경과 소리를 감상하고 자연의 생명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죠.

그림 1. 비 오는 날 (Uri Shulevitz, 1969)


또, 이 범주에서는 ‘비’를 좋아하는 어린이들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비’가 놀이 재료가 되면서 아이들에게 수많은 창의적인 세계를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비야 놀자』(유명금, 2017)에서는 엄마와 함께 우산을 쓰고 빗속에서 즐겁게 노는 건이의 모습에서 이러한 특성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림 2. 비야 놀자 (유명금, 2017)


아빠와 피자놀이(William Steig, 1998)에서는 ‘비’가 내리자 피트는 밖에서 공놀이를 할 수 없게 되자 엄청 속상해합니다. 그러나 이 비 때문에 오히려 피트는 아빠와 집에서 즐거운 피자놀이를 하게 되지요. 이렇게 ‘비’는 주인공에게 처음에는 장애물이었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새로운 경험과 가족과의 추억을 선사하기도 합니다.


그림 3. 아빠와 피자놀이 (William Steig, 2018)


한편, 『이까짓 거!』(박현주, 2019)에서는 ‘비’가 등장인물이 자아를 발견하거나 성숙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주인공 여자아이는 비가 내리자 슬픔과 외로움을 느낍니다. 다른 친구와는 달리 자신은 우산을 가지고 데리러 올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친구 준호와 빗속에서 달리기를 신나게 하면서 ‘비’로 인해 느끼던 슬픔에서 즐거움으로 감정의 변화를 경험합니다. 해당 범주에서의 등장인물들은 ‘비’로 인해 내면적 갈등을 겪어내면서 내면적 성숙을 경험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림 3. 이까짓 거! (박현주, 2019)


두 번째, 장르 드러내기에서는 등장인물이 현실 세계에서 판타지 세계로 가는 통로로서 ‘비’ 가 등장하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빗방울이 톡톡톡』(한지아, 2010)에서는 ‘비’가 내리자 예린이의 신기한 상상놀이가 시작됩니다. 물고기, 돌고래와 함께 신나게 바다에서 놀던 예린이는 비가 그치자 아쉽게도 상상놀이에서 현실 세계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림 4. 빗방울이 톡톡톡 (한지아, 2010)


세 번째 ‘비’의 역할은 분위기 자아내기입니다. 여기에 해당하는 그림책들은 독자에게 특정한 정서적 반응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비’를 배경으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이와사키 치히로는 『비 오는 날 집 보기』(1968)에서 엄마를 기다리는 여자아이의 외롭고 슬픈 감정을 ‘비’를 배경으로 하면서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비’의 부정적 정서만 그림책에서 나타나는 건 아닙니다. 기쁨과 즐거움이 드러난 그림책도 많이 있습니다. 『즐거운 비』(김향수, 서세옥, 2006)에서는 아이도 어른도 흥에 겨워 덩실덩실 비와 어울려 춤을 추고 있습니다. 먹물 기법을 통해 생동감 있게 ‘비’를 연출하면서 사람들의 즐거운 분위기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림 5. 비오는 날의 집보기 (이와사키 치히로 1968)


그림 6. 즐거운 비 (김향수, 서세옥 2006)


네 번째, 배경에 등장하는 ‘비’는 형태나 세기가 변하기도 하고 드라마의 배우처럼 등장인물과 대화를 나누기도 합니다. ‘비’가 의인화되어 하나의 캐릭터가 된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안효림의 『너는 누굴까』(2017)에서는 빗방울이 물방울처럼 표현되지 않고 사람의 형태로 그려집니다. 빗방울이 우산에 떨어지고 튕겨 나가는 것을 아이들이 트램펄린에서 뛰어노는 모습처럼 작가가 생동감 있게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림 7. 너는 누굴까 (안효림 2017)


다섯 번째, 마지막 범주는 그림 속 글씨로 배경에서 ‘비’가 나타나고 있는 경우입니다. 여기에서는 알파벳이나 한글로 표현되는 ‘비’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글자가 그림처럼 표현되는 ‘타이포그래피’는 『한글 비가 내려요』(김지연, 2014)에서 한글 자음을 비처럼 표현하는 데에서도 등장합니다. 책 제목에서도 드러나지만 그림에서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한글 자음이 ‘비’를 연상시키는 파란 계열의 색감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림 5. 한글 비가 내려요 (김지연, 2014)


이상으로 그림책 배경으로서의 ‘비’를 살펴보았습니다. 그 결과 그림책에서 ‘비’는 양면적 모습을 보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비’가 긍정적으로 그려질 때는 ‘비’에서 노는 것을 좋아하는 순진무구한 아이들의 모습을 그림책에서 만날 수 있는 반면, 부정적으로 그려질 때는 그림책만의 특별한 매력을 선사합니다. 영화 <살인의 추억(2003)>이나 소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처럼 다른예술장르에서 ‘비’가 배경으로 사용될 때는 작품이 끝날 때까지 암울하고 쓸쓸한 부정적 정서가 유지됩니다. 이와 달리 대부분의 그림책에서는 ‘비’로 인해 생긴 위기가 어린 주인공이 성장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고 좋은 친구 또는 가족과 함께 귀중한 추억과 뜻깊은 경험을 쌓게 되는 이야기로 전개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본 연구에서도 그림책은 아이들의 삶에 강력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제공한다는 것을 또 한 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처: 박락원, 현은자 (2021). 그림책 배경으로서의 ‘비’의 역할. 어린이문학교육연구, 22(3), 23-50.




박락원 | 성균관대학원 아동청소년학과 석사과정

대학에서 날씨를 공부하고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아동청소년학과 아동문학 석사과정에 다니고 있습니다. 다양한 날씨가 그림책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연구하고 분석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현재 3살 아들을 키우며 동화 작가와 그림책 서평 에세이 작가의 꿈도 함께 키우고 있습니다. 2020년 삶의 향기 동서문학상에서 『나는야 임진각 독수리』 동화로 맥심상을 수상하였고, 올해 <어린이문학교육연구>에 ‘그림책 배경으로서의 ‘비’의 역할‘을 게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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