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창작 프로그램을 매개로한 그림책 치료
「DANS MOI」(1) 는 2007년에 출간한 프랑스 그림책이다. 글 작가는 De Alex Cousseau이고 그림 작가 Kitty Crowther이다. 그림책의 특성은 프랑스 글을 읽을 수 없어도 그림 텍스트가 남긴 공간에서 시의 은유적 섬세함과 존재에 대한 사유를 끌어낼 수 있다.(2) DANS MOI는 자신과의 만남에 대한 시적 텍스트, 두려움에 대한 정서, 질문을 찾고 직면해야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본 연구는 「DANS MOI」의 그림책을 중학생들에게 사유의 촉진을 위한 매개로 제공하고 이를 응용하여 그림책을 창작하는데 목적이 있다. 그림책을 창작한 후 그림책 속에 나타난 자신의 이야기를 말로 풀어냄으로써 자신의 문제를 직면케 하고 이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다. 창작은 모방에서 시작한다고 하지만 그림책을 그려보지 않은 중학생들에게 백지상태에서 그림책을 창작한다는 것은 어려운 과정이다. 「DANS MOI」의 그림책은 프로그램 참여 중학생들에게 그림책 창작에 대한 통찰력과 자기들만의 접근 방법을 구성하는데 통찰력을 줄 수 있다. 그림책 창작을 통한 치료 프로그램은 참여자들에게 자신도 인지하기 어려웠던 문제를 외부로 표현하고 자신의 문제를 깨닫는 동시에 미학적 체험을 통해 문제해결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Heidegger가 제시한 현상학적 순환 방법으로 연구참여자들의 체험의 의미와 구조를 해석하고자 한다. Heidegger에 의하면 해석은 세계에 대한 선이해를 바탕으로 전체 의미의 맥락 속에서 이루어지며 이해는 선이해의 구조 속에서보다 깊어진 의미를 찾는 것이다.(3) 본 연구에서 프로그램 참여자들은 이미 자신에 대한 선이해를 지니고 있다. 그 선이해는 어렴풋하고 확실하지 않지만 그림책 창작 과정을 통해 더욱 확실해질 수 있다. 또한 자기 이해 속에서 그들은 어려움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고 생명력과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그림책은 삶과 생명의 가치를 이야기한다.(4) 그림책은 기존의 그림책이든 또는 타인의 작품을 모방하여 응용한 그림책이든 심리적 취약성을 지니고 있는 프로그램 참여자들에게 자신의 삶과 생명에 대한 의미를 재구성하고 자기의 길을 찾아가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림책과 창작은 반드시 탁월할 필요는 없다. 그림책의 창작은 ‘활동’ 그 자체에 의미가 있으며 연구참여자는 그림책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구성한다. 이는 능동적이고 예술적인 창조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일부 연구자는 이를 표현예술치료의 한 방편이라고 하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자기경험을 그림으로 나타내고 삶의 이야기를 재구성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이해할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연구참여자들의 프로그램 참여 경험에 대한 단순한 사실보다는 그들이 그림책 창작 과정에서 어떤 의미를 발굴했는지 보고자 했으며 현상학적 연구방법으로 접근하였다. 현상학적 연구방법은 개인의 주관적 체험을 주제로 하고 그 체험 속에서 개인들이 경험한 것과 구성한 의미를 중요시한다.(5) 이 과정에서 연구참여자들의 자기에 대한 이해는 심화될 수 있다.
그림책 창작 프로그램의 구성과 진행
본 프로그램의 목적은 연구참여자들이 자기 이해를 통한 문제의 자기 평가와 스스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프로그램 구성 원리는 Hynes & Hynes-Berry(6) 의 독서치료 4가지 과정(인식, 이해 및 고찰, 병치, 자기적용)을 적용하여 수정 보완하였다.
단계 | 회기 | 주제 | 활동내용 | 과정 |
1 | 1 | 만남 | 연구자와 연구참여자들 간의 라포 형성 및 흥미 유발을 통한 집단의 역동성 형성하기 | 인식 |
2 |
2 | 3 | 자기 이해 | 자기 명함 만들기 과거에 대한 재평가와 미래에 대한 계획을 구체화하기 구술을 통해 사유하기 | 이해 및 고찰 |
3 | 4 | 유대와 결속 | 『봄봄봄』 노래 가사를 바꿔 그림으로 은유하기 | 병치 |
4 | 5 | 그림책 이해 창작의 명료화 | 그림책 이해 및 『DANS MOI』그림책을 응용한 자기이야기 표출 | 자기적용 |
5 | 6 | 그림책 창작 '내 안의 나' | 나만의 스토리 구성하기 그림책 그림 그리기 |
7 |
8 | 그림에 대한 내러티브 구술 |
자료분석
그림에 대한 해석은 연구참여자들의 상호주관성을 확보하고 그 토대 위에서 진행해 나갔다. 연구참여자들의 그림을 독서치료 전문가의 입장에서 의미와 내용을 해석하였고 이를 각 연구참여자에게 제시한 후 연구참여자의 주관적 해석을 청취했으며 이를 반영하였다. 이러한 접근은 연구자의 주관적 판단과 선이해를 내려놓고 연구참여자와 지평의 융합을 이루기 위한 시도이다. 이는 합의적 질적분석(Consensual Qualitative Research; CQR) 모델(7) 로써 연구자와 연구참여자의 의견이 합치가 이뤄졌을 때 그 토대 위에서 해석을진행하는 것이다. 심층 인터뷰 자료는 연구참여자들의 구술 중 의미가 있거나 중요한 부분을 분절하여 이를 주제화하였고 그림의 해석과 순환의 관계 속에서 일치되는 부분에 중점을 두고 이를 해석하였다. 자료의 기술과 해석 과정은 연구자와 연구참여자의 순환, 그림과 구술 자료의 순환 과정을 거쳐서 이뤄졌다. 본 논고에서는 본 프로그램에 참여한 6명 중 주요 2명의 연구참여자가 창작한 그림책 내용과 이에 대한 해석을 기술하였다.
연구참여자들의 개별 경험
1. 연구참여자 A
연구참여자 A는 여학생이다. 그의 특성 및 해소 문제는 다음과 같다. 그는 부모로부터 지지받지 못하고 학교 성적이 하위권에 머물고 있었다. 그로 인해 내면의 분노를 지녔고 특히 성적이 낮다는 이유로 자신의 진로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연구참여자 A의 내면은 <그림 1>처럼 검은 망토를 쓴 정체불명의 존재에 포위된 것으로 분석된다. 그림에는 4개의 검은 망토를 쓴 존재가 연구참여자를 에워싸고 있다. 연구참여자 A는 이러한 상황을 이상한 나무와 건물로 표현된 불안의 세계 속에서 자신을 옥죄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하지만 <그림 3>에서는 나무 주변에 돌과 새를 그리고 있다. 돌과 새는 그에게 친근하면서도 위로를 주는 존재이다. 연구참여자 A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해석을 하였다.
“이상한 건물은 제가 무서워하는 거예요. 나보다 키 크고 또 언제 무너질지도 모르잖아요. 근데 건물 속에는 나무가 있었는데 나무는 파랗고 나무속에는 새들이 살잖아요. 그 새들은 공격하지도 않고 그냥 나를 좋아해요.”(연구참여자 A)
연구참여자 A는 나무로부터 위로를 받았지만 <그림 4>에서 보는 것처럼 거대한 거인이 출현한다. 그에게 있어서 거인은 자신이 생각하지 못한 커다란 불안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연구참여자 A는 성적에 대한 불안은 물론 진로에 대한 불안을 지니고 있었는데 노력하여 성적을 조금 향상시키고 개선이 일어나자 진로라는 또 다른 불안이 자신에게 엄습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음에 <그림 5>에서 꼬마 주인공이 늪에 떨어진 거인을 구출해 주는 그림이 등장한다. 이는 자신이 포기했던 진로를 다시 설정하고 희망을 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림 6>처럼 거인은 꼬마에게 역습을 가한다. 거인은 꼬마를 집어삼켰고 <그림 7>에서 꼬마는 뼈만 남은 거인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저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는데 공부를 못해서 선생님이 될 수 없을 거라고 포기 했어요. 선생님 되기가 너무 어렵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아예, 제 진로를 생각하지 않을 때가 편했는데… 진로가 생기고 그것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힘이 들었어요.”(연구참여자 A)
연구참여자 A는 어렵게 설정한 진로가 자신의 능력으로는 성취할 수 없다고 지레짐작하고 실망하였다. 거인의 몸속에 갇힌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림 8>에서 그는 입에서 피 같은 물질을 흘렸다. 그 피는 육체적인 취약함이 아니라 분노였다. 드디어 <그림 9>에서 거인은 꼬마에게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한다. 분노를 통해 거인으로 상징되는 진로 불안을 잠재웠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림 10>처럼 거인에게 돌이 되라는 명령을 하였다. 돌은 자신에게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는 무능한 존재이다. 연구참여자는 진로 불안을 무능한 돌로 형상화시켰지만, 또다시 자신에 대한 미안함이 있었다. 마지막은 꼬마가 숲에 있는 모든 생명을 포용하는 것으로 구술하였다. 모든 생명을 끌어 모은다는 것은 자신의 부정적인 사고와 정서를 치유할 수 있는 긍정적인 치유 자원으로 끌어 모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자신을 옥죄이던 내면의 불안을 극복하는 것으로 보인다.
“포기하니깐 엄마, 아빠한테 미안하고 나한테도 미안하고 친구들도 다 미안해요. 미안함은 가지고 살면 안 될 것 같아요, 힘들지만 내 꿈을 다시 꾸기로 했어요.”(연구참여자 A)
2. 연구참여자 B
연구참여자 B는 남학생이다. 그의 특성 및 해소 문제는 다음과 같다. 그는 부모의 소득 수준이 낮고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심하게 당했다. 그는 자신의 상황에 대한 불만으로 폭력적 성향이 생성되었다고 구술했으며 자신의 폭력성을 해소하고자 하였다. 폭력적 성향으로 인해 학교에서 제재를 받거나 친구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경험하였다. 그는 자기 문제가 폭력임을 인지했다. 그 폭력성을 해소하는 그림을 그리고자 하였다. <그림 2>은 연구참여자 A의 그림과 유사하게 공장이 등장하고 검은 망토를 쓴 사람들이 등장한다. 검은 망토를 쓴 사람들은 울고 있었다. 연구참여자 A의 검은 망토는 불안하고 우울한 존재였지만 연구참여자 B의 검은 망토를 쓴 사람은 자신의 폭력으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들이다.
"저희 반 친구들하고 학원 친구들은 저한테 맞은 얘들이 많아요. 저 앞에서 운 애들도 있지만 안 운애도 있어요. 그래도 안 운애들은 창피해서 안 울었지, 남몰래 울었을 거예요. 지금, 생각하면 미안해요.”(연구참여자 B)
<그림 3>는 까마귀와 부엉이가 등장한다. 까마귀는 그의 폭력에 희생당한 피해자들의 분노를 의미한다. 그 분노는 자신을 노려보는 것으로 표현된다. 이에 비해 나무 아래 부엉이는 다양한 색채로 표현되고 예쁘게 그려졌다. 연구참여자 B에게는 자신의 폭력에 피해를 본 사람도 있지만, 자신에게 사랑을 주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저한테 맞은 얘들은 속으로 원망하고 저에게 복수하고 싶은 애들도 있을 거예요. 그래도 내가 모든 사람을 때린 것은 아니에요. 좋아하는 친구도 있고…, 나한테 좋은 말해 주는 친구도 있어요.”(연구참여자 B)
<그림 4>에서 꼬마는 강가에 있는 거인을 만났다. 거인은 자기의 투사라고 할 수 있다. 키는 크지만 못생겼고 손에는 프라이팬을 들고 있다. 프라이팬은 무기라기보다는 연구참여자가 하고 싶은 직업의 상징이다. 그는 대통령의 요리사가 되는 것이 꿈이다. 대통령의 요리사가 되기 위해서 공부를 열심히 해야만 하고 자신의 안에 있는 폭력을 순치하고자 하였다.
“프라이팬을 들고 있는 거인은 저예요. 저는 나중에 요리사가 돼서 대통령에게 음식을 해 주고 싶어요. 저는 체격은 큰데 남들이 못생겼다고 놀려요.”(연구참여자 B)
<그림 5>에서는 연구참여자 B가 거인과 싸우는 장면이 등장한다. 거인은 깊은 물에 빠졌지만 꼬마는 밧줄로 거인을 끌어 올렸다. 이것은 자기 내면에 있는 자기에 대한 애착을 의미한다. 비록, 폭력적이고 잘 생기지 못하고 놀림을 받기도 하지만 그래도 또 다른 자기의 모습이다. 연구참여자 B는 이렇듯 자기로 투사된 거인과 결투를 하고 구원하면서 내면의 나를 발견하게 된다.
“남들이 못생겼다고 그러고, 그래도 나는 나를 사랑해야 하니깐… 그림에서 밧줄은요. 나를 놓치고 싶지 않은 거예요.” (연구참여자 B)
<그림 6 >은 꼬마 아이에게 구출된 거인이 다시 물에 빠져 죽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런데 거인이 물에 빠진 것은 무게 때문이었다. 이러한 표현은 연구참여자 B가 자신이 폭력 때문에 잘못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 폭력을 단절하려는 것이다. 물은 회복을 의미하기도 한다. 과거의 폭력적인 나를 죽이고 비폭력적인 나를 만든 통과의례의 자리라고 할 수 있다.
“저는 싸우는 것 때문에 많이 잘못될 수 있어요. 나도 알아요. 어떤 친구들은 남자답고 멋있다고 얘기하는데, 영화에서도 보면 폭력적인 사람은 다 망하잖아요, 나중에. 총에 맞아 죽고….” (연구참여자 B)
<그림 7>은 거인의 소생이다. 부활한 거인은 프라이팬을 버리고 칼과 총을 들었다. 이는 자신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폭력의 지속성과 공포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림 8>은 더 강해진 폭력과의 싸움이다. 그는 죽지 않는다는 거인의 약점을 찾아냈고 그 약점을 공략하여 이겼다. 그리고 <그림 9>처럼 거인은 소멸하였다. 연구참여자 B는 거인이 뇌출혈로 사망했다고 그렸고 머리에 칼을 꽂았다. 그리고 약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을 이미 표현하였다. 연구참여자 B는 이미 자신의 폭력에 약점과 한계가 있음을 인지하였다. 이는 폭력성에 대한 성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림에는 뇌출혈로 인한 사망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폭력에 대한 자기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폭력은 남자다움의 상징으로 여겼지만, 그것을 잔인함,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이라고 인지의 구도를 바꾼 후 폭력을 버리고자 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친구들이 뭐라고 하였고 선생님은 그래도 나는 남자답다. 그래서 나를 아무도 건드리지 못한다. 그런 생각을 했는데요. 제가 폭력에서 벗어나려면 이런 생각을 바꾸는 것이 좋겠어요. 선생님도 아빠도 그런 말을 해요. 폭력은 비겁하다고요. 그래서 저는 폭력은 남자다움이 아니라 비겁한 거로 생각했어요.”(연구참여자 B)
논의 및 결론
프로그램 참여자들은 「DANS MOI」 그림책을 매개로 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만들었다. 본 연구에서 「DANS MOI」 그림책은 하나의 원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연구참여자들은 그 원본을 그대로 모사하는 대신, 원본과는 다른 내적 이미지를 창출하였다. 프랑스 사회학자 Baudrillard에 의하면 이는 시뮬라크르(simulacra)와 시뮬라시옹(simulation)의 구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개인들이 원본을 보고 이를 모사하는 복사본을 만든다는 전통적 관념을 해체하였다. 그는 시뮬라시옹을 원본보다 더 원본답고 또 다른 실체를 만드는 작용으로 이야기하였다.(8)
프로그램 참가자들의 그림책 작품은 모두 시뮬라크르라고 할 수 있다. 시뮬라크르는 하이퍼리얼리티(Hyper-reality)로써 하나의 기호를 또 다른 기호로 대체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것이기 때문이다.(9) 연구참여자들의 구술에 따르면 그들의 부적응의 문제는 학교상담, 집단프로그램 참여 등에 의해 해결되지 못하였다. Baudrillard의 표현에 의하면 그 이유는 원본이 아닌 다른 버전을 생산하려는 노력 없이 그 원본만을 재현하고 개선시키려는 것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10) 본 연구에서 프로그램 연구참여자들은 자신이 스스로 그림책을 창작하면서 자신의 문제, 즉 원본과는 다른 자신들만의 세계를 창조해 나갔다. 시뮬라크르에 있어서 더 이상 원본은 의미가 없다. 결국 그림책 치료의 일환으로서 시도된 그림책 창작은 부정적인 원본을 무의미하게 하고 긍정적인 시뮬라크르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DANS MOI」그림책에는 괴물이 등장한다. 통상적으로 괴물은 두렵고 무서운 존재이며 회피하고 싶은 존재이다. 하지만 괴물이나 악마와 같은 비현실적 존재는 개인의 상상력과 함께 낯설게 하기라는 장치를 통해 은폐되었던, 또는 당연시되던 문제들에 질문을 던진다. 괴물이나 두려운 존재를 통한 그림책 치료는 러시아의 형식 이론가 Shklovsky가 간파한 ‘낯설게 하기’ 전략의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는 Shklovsky의 예술 창작 이론으로서 관행적으로 익숙한 세계를 낯선 시각으로 관조하고 다시 이를 재구성 하는 것이다.(11) 친숙한 캐릭터나 보편적 이야기는 텍스트의 수용자들에게 친근감과 함께 더욱 쉬운 이해의 기반을 제공하지만, 이것은 지루함을 유발할 수 있다. 자신의 문제에 대한 긴장감 또는 예술적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서는 낯설게 하기 기법이 요구된다. 본 프로그램 참여자들은 괴물 그림책을 본 순간 공포와 불안보다는 흥미를 느꼈고 그 괴물을 내면의 자기 또는 자기 문제의 원인, 극복해야 할 대상 등으로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문제를 그림책으로 풀어나갔다. 이러한 결과는 그림책 치료의 방향과 목표에 새로운 시사점을 제공한다. 특히 그림책 창작은 안전한 환경에서 괴물을 직면할 기회를 이끌어 줄 수 있다. 자신을 보호하면서 자기 내면의 부정적인 면을 직관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Heidegger의 존재와 시간(Seit Und Zeit)에 의하면 예술 창작 활동은 자신의 주관적 의식을 외부에 객관적으로 드러내는 행위도 아니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모사하는 행위도 아니다. 예술 창작 행위는 현존재의 자기존재 정립 방식으로써 이 세상에 자기다움을 선언하고 공포(公布)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12) 특히 상업 미술이 아닌 그림책 창작과 같은 치료적 접근은 억눌리거나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서 자기의 세계를 은닉하고 있는 개인들에게 용기를 불어 준다. 또한 이 세계의 존재 방식을 드러내는 행위를 하도록 촉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그림책 치료는 단순한 미적 체험이나 자기 성찰을 넘어 자기 자신을 해방하는 행위이며 존재를 정립시키는 실존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존재 정립을 하기 위해서는 의미 구성이 매우 중요하다. 현상계에 존재하는 모든 대상 중 오직 인간만이 그 의미를 물을 수 있는 존재이다.(13)
그림책 창작 프로그램 또는 치유프로그램은 이와 같은 시간의 구조 속에서 자신에 대한 의미를 묻고 이를 탐구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존재의 물음은 자연스럽게 시간과 함께 공간 속에서도 이루어진다.(14) 프로그램에 참여한 중학생들이 체험한 공간은 그림책 속의 공간이 아니라 바로, 자신 삶의 공간이었다. 즉 연구참여자들은 그림책을 창작함으로써 자신 삶의 공간을 다시 살펴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림책 치료는 결국 그림책이 제공하는 다양한 공간들을 삶의 메타포로 하여 개인들에게 일상생활을 영유하게 한다. 또한 자신의 공간을 점검하고 성찰 할 수 있게 만드는 도구라고 할 수 있다.
출처 : 지상선, 현은자(2022). 청소년의 방과후학교 그림책 창작 프로그램을 매개로 한 그림책 치료에 대한 현상학적 연구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22(6), 369-385. [주요 프로그램 및 논의 발췌]
[1] 알렉스 쿠소. (2020). 내 안에 내가 있다 (신혜은 역), 서울: 바람의아이들. (원전출판 2007).
[2] 지상선. (2021). 청소년 범죄자들의 내면아이 그림책치료 프로그램 연구, 矯正硏究, 31(1), 63-90.
[3] 권경선. (2021). 유아의 그림책 읽기에 대한 의미이해 : 해석학적 순환과정을 중심으로. 가천대학교 일반대학원 국내박사.
[4] 현은자. (2017). 그림책 해석의 영성적 접근: 은혜 개념을 중심으로. 어린이문학교육연구, 18(3), 21-42.
[5] 이남인. (2014). 현상학과 질적연구, 응용 현상학의 한 지평, 서울: 한길사.
[6] Hynes and Hynes-Berry. (1994). Biblio/Poetry. therapy, the interactive process: A handbook. St. Cloud,. MN: North Star Press of St. Cloud Inc.
[7] Hill, C. E. (2012). Introduction to Consensual Qualitative Research. In Hill, C. E. (Ed), Consensual Qualitative Research: A Practical Resource for Investigating Social Science Phenomena(pp.3-20), Washington, D.C: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8] Baudrillard, J. (2001). 시뮬라시옹 (하태환 역). 서울: 민음사(원전출판 1985).
[9] 이강석. (2020). 영화 속 시뮬라시옹을 통한 영화 트렌드의 탐색적 연구.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20(9), 424-429.
[10] Baudrillard, J. (2001). 시뮬라시옹 (하태환 역). 서울: 민음사(원전출판 1985).
[11] 이수정. (2014). 낯설게하기(Defamiliarization)에 대한 이해와 교육적 의미. 교육철학연구, 36(2),145-168, 2014.
[12] 조홍준. (2018). 하이데거 예술론에서 시간의 의미 : 『존재와 시간』, 「시간과 존재」 그리고 「예술작품의 근원」을 중심으로. 현대유럽철학연구, 1권(50),호, 31-63.
[13] 칸트. (2003). 실천이성비판(박정하 역),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철학사상(원전출판 1788).
[14] 하이데거. (1998). 존재와 시간(이기상 역), 김제: 까치(원전출판 1927).
| 지상선 |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 박사졸업 인생은 걸어다니는 그림책이라고 믿고 있는 아이 같은 엄마입니다. 오늘도 성장할 수 있는 내일을 매일 꿈꾸고 있습니다. 20년 이상 강남에서 그림책 사고력, 그림책 논술, 그림책 독서치료를 하고 있습니다. 자아에 관심이 있어서 자아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박사학위 논문은 '그림책을 이용한 자아상태 활성화 프로그램 참여 대학생들의 경험에 대한 질적연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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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창작 프로그램을 매개로한 그림책 치료
「DANS MOI」(1) 는 2007년에 출간한 프랑스 그림책이다. 글 작가는 De Alex Cousseau이고 그림 작가 Kitty Crowther이다. 그림책의 특성은 프랑스 글을 읽을 수 없어도 그림 텍스트가 남긴 공간에서 시의 은유적 섬세함과 존재에 대한 사유를 끌어낼 수 있다.(2) DANS MOI는 자신과의 만남에 대한 시적 텍스트, 두려움에 대한 정서, 질문을 찾고 직면해야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본 연구는 「DANS MOI」의 그림책을 중학생들에게 사유의 촉진을 위한 매개로 제공하고 이를 응용하여 그림책을 창작하는데 목적이 있다. 그림책을 창작한 후 그림책 속에 나타난 자신의 이야기를 말로 풀어냄으로써 자신의 문제를 직면케 하고 이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다. 창작은 모방에서 시작한다고 하지만 그림책을 그려보지 않은 중학생들에게 백지상태에서 그림책을 창작한다는 것은 어려운 과정이다. 「DANS MOI」의 그림책은 프로그램 참여 중학생들에게 그림책 창작에 대한 통찰력과 자기들만의 접근 방법을 구성하는데 통찰력을 줄 수 있다. 그림책 창작을 통한 치료 프로그램은 참여자들에게 자신도 인지하기 어려웠던 문제를 외부로 표현하고 자신의 문제를 깨닫는 동시에 미학적 체험을 통해 문제해결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Heidegger가 제시한 현상학적 순환 방법으로 연구참여자들의 체험의 의미와 구조를 해석하고자 한다. Heidegger에 의하면 해석은 세계에 대한 선이해를 바탕으로 전체 의미의 맥락 속에서 이루어지며 이해는 선이해의 구조 속에서보다 깊어진 의미를 찾는 것이다.(3) 본 연구에서 프로그램 참여자들은 이미 자신에 대한 선이해를 지니고 있다. 그 선이해는 어렴풋하고 확실하지 않지만 그림책 창작 과정을 통해 더욱 확실해질 수 있다. 또한 자기 이해 속에서 그들은 어려움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고 생명력과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그림책은 삶과 생명의 가치를 이야기한다.(4) 그림책은 기존의 그림책이든 또는 타인의 작품을 모방하여 응용한 그림책이든 심리적 취약성을 지니고 있는 프로그램 참여자들에게 자신의 삶과 생명에 대한 의미를 재구성하고 자기의 길을 찾아가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림책과 창작은 반드시 탁월할 필요는 없다. 그림책의 창작은 ‘활동’ 그 자체에 의미가 있으며 연구참여자는 그림책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구성한다. 이는 능동적이고 예술적인 창조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일부 연구자는 이를 표현예술치료의 한 방편이라고 하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자기경험을 그림으로 나타내고 삶의 이야기를 재구성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이해할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연구참여자들의 프로그램 참여 경험에 대한 단순한 사실보다는 그들이 그림책 창작 과정에서 어떤 의미를 발굴했는지 보고자 했으며 현상학적 연구방법으로 접근하였다. 현상학적 연구방법은 개인의 주관적 체험을 주제로 하고 그 체험 속에서 개인들이 경험한 것과 구성한 의미를 중요시한다.(5) 이 과정에서 연구참여자들의 자기에 대한 이해는 심화될 수 있다.
그림책 창작 프로그램의 구성과 진행
본 프로그램의 목적은 연구참여자들이 자기 이해를 통한 문제의 자기 평가와 스스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프로그램 구성 원리는 Hynes & Hynes-Berry(6) 의 독서치료 4가지 과정(인식, 이해 및 고찰, 병치, 자기적용)을 적용하여 수정 보완하였다.
흥미 유발을 통한 집단의 역동성 형성하기
과거에 대한 재평가와 미래에 대한 계획을 구체화하기
구술을 통해 사유하기
그림책 그림 그리기
자료분석
그림에 대한 해석은 연구참여자들의 상호주관성을 확보하고 그 토대 위에서 진행해 나갔다. 연구참여자들의 그림을 독서치료 전문가의 입장에서 의미와 내용을 해석하였고 이를 각 연구참여자에게 제시한 후 연구참여자의 주관적 해석을 청취했으며 이를 반영하였다. 이러한 접근은 연구자의 주관적 판단과 선이해를 내려놓고 연구참여자와 지평의 융합을 이루기 위한 시도이다. 이는 합의적 질적분석(Consensual Qualitative Research; CQR) 모델(7) 로써 연구자와 연구참여자의 의견이 합치가 이뤄졌을 때 그 토대 위에서 해석을진행하는 것이다. 심층 인터뷰 자료는 연구참여자들의 구술 중 의미가 있거나 중요한 부분을 분절하여 이를 주제화하였고 그림의 해석과 순환의 관계 속에서 일치되는 부분에 중점을 두고 이를 해석하였다. 자료의 기술과 해석 과정은 연구자와 연구참여자의 순환, 그림과 구술 자료의 순환 과정을 거쳐서 이뤄졌다. 본 논고에서는 본 프로그램에 참여한 6명 중 주요 2명의 연구참여자가 창작한 그림책 내용과 이에 대한 해석을 기술하였다.
연구참여자들의 개별 경험
1. 연구참여자 A
연구참여자 A는 여학생이다. 그의 특성 및 해소 문제는 다음과 같다. 그는 부모로부터 지지받지 못하고 학교 성적이 하위권에 머물고 있었다. 그로 인해 내면의 분노를 지녔고 특히 성적이 낮다는 이유로 자신의 진로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연구참여자 A의 내면은 <그림 1>처럼 검은 망토를 쓴 정체불명의 존재에 포위된 것으로 분석된다. 그림에는 4개의 검은 망토를 쓴 존재가 연구참여자를 에워싸고 있다. 연구참여자 A는 이러한 상황을 이상한 나무와 건물로 표현된 불안의 세계 속에서 자신을 옥죄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하지만 <그림 3>에서는 나무 주변에 돌과 새를 그리고 있다. 돌과 새는 그에게 친근하면서도 위로를 주는 존재이다. 연구참여자 A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해석을 하였다.
“이상한 건물은 제가 무서워하는 거예요. 나보다 키 크고 또 언제 무너질지도 모르잖아요. 근데 건물 속에는 나무가 있었는데 나무는 파랗고 나무속에는 새들이 살잖아요. 그 새들은 공격하지도 않고 그냥 나를 좋아해요.”(연구참여자 A)
연구참여자 A는 나무로부터 위로를 받았지만 <그림 4>에서 보는 것처럼 거대한 거인이 출현한다. 그에게 있어서 거인은 자신이 생각하지 못한 커다란 불안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연구참여자 A는 성적에 대한 불안은 물론 진로에 대한 불안을 지니고 있었는데 노력하여 성적을 조금 향상시키고 개선이 일어나자 진로라는 또 다른 불안이 자신에게 엄습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음에 <그림 5>에서 꼬마 주인공이 늪에 떨어진 거인을 구출해 주는 그림이 등장한다. 이는 자신이 포기했던 진로를 다시 설정하고 희망을 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림 6>처럼 거인은 꼬마에게 역습을 가한다. 거인은 꼬마를 집어삼켰고 <그림 7>에서 꼬마는 뼈만 남은 거인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저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는데 공부를 못해서 선생님이 될 수 없을 거라고 포기 했어요. 선생님 되기가 너무 어렵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아예, 제 진로를 생각하지 않을 때가 편했는데… 진로가 생기고 그것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힘이 들었어요.”(연구참여자 A)
연구참여자 A는 어렵게 설정한 진로가 자신의 능력으로는 성취할 수 없다고 지레짐작하고 실망하였다. 거인의 몸속에 갇힌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림 8>에서 그는 입에서 피 같은 물질을 흘렸다. 그 피는 육체적인 취약함이 아니라 분노였다. 드디어 <그림 9>에서 거인은 꼬마에게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한다. 분노를 통해 거인으로 상징되는 진로 불안을 잠재웠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림 10>처럼 거인에게 돌이 되라는 명령을 하였다. 돌은 자신에게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는 무능한 존재이다. 연구참여자는 진로 불안을 무능한 돌로 형상화시켰지만, 또다시 자신에 대한 미안함이 있었다. 마지막은 꼬마가 숲에 있는 모든 생명을 포용하는 것으로 구술하였다. 모든 생명을 끌어 모은다는 것은 자신의 부정적인 사고와 정서를 치유할 수 있는 긍정적인 치유 자원으로 끌어 모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자신을 옥죄이던 내면의 불안을 극복하는 것으로 보인다.
“포기하니깐 엄마, 아빠한테 미안하고 나한테도 미안하고 친구들도 다 미안해요. 미안함은 가지고 살면 안 될 것 같아요, 힘들지만 내 꿈을 다시 꾸기로 했어요.”(연구참여자 A)
2. 연구참여자 B
연구참여자 B는 남학생이다. 그의 특성 및 해소 문제는 다음과 같다. 그는 부모의 소득 수준이 낮고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심하게 당했다. 그는 자신의 상황에 대한 불만으로 폭력적 성향이 생성되었다고 구술했으며 자신의 폭력성을 해소하고자 하였다. 폭력적 성향으로 인해 학교에서 제재를 받거나 친구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경험하였다. 그는 자기 문제가 폭력임을 인지했다. 그 폭력성을 해소하는 그림을 그리고자 하였다. <그림 2>은 연구참여자 A의 그림과 유사하게 공장이 등장하고 검은 망토를 쓴 사람들이 등장한다. 검은 망토를 쓴 사람들은 울고 있었다. 연구참여자 A의 검은 망토는 불안하고 우울한 존재였지만 연구참여자 B의 검은 망토를 쓴 사람은 자신의 폭력으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들이다.
"저희 반 친구들하고 학원 친구들은 저한테 맞은 얘들이 많아요. 저 앞에서 운 애들도 있지만 안 운애도 있어요. 그래도 안 운애들은 창피해서 안 울었지, 남몰래 울었을 거예요. 지금, 생각하면 미안해요.”(연구참여자 B)
<그림 3>는 까마귀와 부엉이가 등장한다. 까마귀는 그의 폭력에 희생당한 피해자들의 분노를 의미한다. 그 분노는 자신을 노려보는 것으로 표현된다. 이에 비해 나무 아래 부엉이는 다양한 색채로 표현되고 예쁘게 그려졌다. 연구참여자 B에게는 자신의 폭력에 피해를 본 사람도 있지만, 자신에게 사랑을 주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저한테 맞은 얘들은 속으로 원망하고 저에게 복수하고 싶은 애들도 있을 거예요. 그래도 내가 모든 사람을 때린 것은 아니에요. 좋아하는 친구도 있고…, 나한테 좋은 말해 주는 친구도 있어요.”(연구참여자 B)
<그림 4>에서 꼬마는 강가에 있는 거인을 만났다. 거인은 자기의 투사라고 할 수 있다. 키는 크지만 못생겼고 손에는 프라이팬을 들고 있다. 프라이팬은 무기라기보다는 연구참여자가 하고 싶은 직업의 상징이다. 그는 대통령의 요리사가 되는 것이 꿈이다. 대통령의 요리사가 되기 위해서 공부를 열심히 해야만 하고 자신의 안에 있는 폭력을 순치하고자 하였다.
“프라이팬을 들고 있는 거인은 저예요. 저는 나중에 요리사가 돼서 대통령에게 음식을 해 주고 싶어요. 저는 체격은 큰데 남들이 못생겼다고 놀려요.”(연구참여자 B)
<그림 5>에서는 연구참여자 B가 거인과 싸우는 장면이 등장한다. 거인은 깊은 물에 빠졌지만 꼬마는 밧줄로 거인을 끌어 올렸다. 이것은 자기 내면에 있는 자기에 대한 애착을 의미한다. 비록, 폭력적이고 잘 생기지 못하고 놀림을 받기도 하지만 그래도 또 다른 자기의 모습이다. 연구참여자 B는 이렇듯 자기로 투사된 거인과 결투를 하고 구원하면서 내면의 나를 발견하게 된다.
“남들이 못생겼다고 그러고, 그래도 나는 나를 사랑해야 하니깐… 그림에서 밧줄은요. 나를 놓치고 싶지 않은 거예요.” (연구참여자 B)
<그림 6 >은 꼬마 아이에게 구출된 거인이 다시 물에 빠져 죽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런데 거인이 물에 빠진 것은 무게 때문이었다. 이러한 표현은 연구참여자 B가 자신이 폭력 때문에 잘못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 폭력을 단절하려는 것이다. 물은 회복을 의미하기도 한다. 과거의 폭력적인 나를 죽이고 비폭력적인 나를 만든 통과의례의 자리라고 할 수 있다.
“저는 싸우는 것 때문에 많이 잘못될 수 있어요. 나도 알아요. 어떤 친구들은 남자답고 멋있다고 얘기하는데, 영화에서도 보면 폭력적인 사람은 다 망하잖아요, 나중에. 총에 맞아 죽고….” (연구참여자 B)
<그림 7>은 거인의 소생이다. 부활한 거인은 프라이팬을 버리고 칼과 총을 들었다. 이는 자신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폭력의 지속성과 공포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림 8>은 더 강해진 폭력과의 싸움이다. 그는 죽지 않는다는 거인의 약점을 찾아냈고 그 약점을 공략하여 이겼다. 그리고 <그림 9>처럼 거인은 소멸하였다. 연구참여자 B는 거인이 뇌출혈로 사망했다고 그렸고 머리에 칼을 꽂았다. 그리고 약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을 이미 표현하였다. 연구참여자 B는 이미 자신의 폭력에 약점과 한계가 있음을 인지하였다. 이는 폭력성에 대한 성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림에는 뇌출혈로 인한 사망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폭력에 대한 자기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폭력은 남자다움의 상징으로 여겼지만, 그것을 잔인함,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이라고 인지의 구도를 바꾼 후 폭력을 버리고자 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친구들이 뭐라고 하였고 선생님은 그래도 나는 남자답다. 그래서 나를 아무도 건드리지 못한다. 그런 생각을 했는데요. 제가 폭력에서 벗어나려면 이런 생각을 바꾸는 것이 좋겠어요. 선생님도 아빠도 그런 말을 해요. 폭력은 비겁하다고요. 그래서 저는 폭력은 남자다움이 아니라 비겁한 거로 생각했어요.”(연구참여자 B)
논의 및 결론
프로그램 참여자들은 「DANS MOI」 그림책을 매개로 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만들었다. 본 연구에서 「DANS MOI」 그림책은 하나의 원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연구참여자들은 그 원본을 그대로 모사하는 대신, 원본과는 다른 내적 이미지를 창출하였다. 프랑스 사회학자 Baudrillard에 의하면 이는 시뮬라크르(simulacra)와 시뮬라시옹(simulation)의 구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개인들이 원본을 보고 이를 모사하는 복사본을 만든다는 전통적 관념을 해체하였다. 그는 시뮬라시옹을 원본보다 더 원본답고 또 다른 실체를 만드는 작용으로 이야기하였다.(8)
프로그램 참가자들의 그림책 작품은 모두 시뮬라크르라고 할 수 있다. 시뮬라크르는 하이퍼리얼리티(Hyper-reality)로써 하나의 기호를 또 다른 기호로 대체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것이기 때문이다.(9) 연구참여자들의 구술에 따르면 그들의 부적응의 문제는 학교상담, 집단프로그램 참여 등에 의해 해결되지 못하였다. Baudrillard의 표현에 의하면 그 이유는 원본이 아닌 다른 버전을 생산하려는 노력 없이 그 원본만을 재현하고 개선시키려는 것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10) 본 연구에서 프로그램 연구참여자들은 자신이 스스로 그림책을 창작하면서 자신의 문제, 즉 원본과는 다른 자신들만의 세계를 창조해 나갔다. 시뮬라크르에 있어서 더 이상 원본은 의미가 없다. 결국 그림책 치료의 일환으로서 시도된 그림책 창작은 부정적인 원본을 무의미하게 하고 긍정적인 시뮬라크르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DANS MOI」그림책에는 괴물이 등장한다. 통상적으로 괴물은 두렵고 무서운 존재이며 회피하고 싶은 존재이다. 하지만 괴물이나 악마와 같은 비현실적 존재는 개인의 상상력과 함께 낯설게 하기라는 장치를 통해 은폐되었던, 또는 당연시되던 문제들에 질문을 던진다. 괴물이나 두려운 존재를 통한 그림책 치료는 러시아의 형식 이론가 Shklovsky가 간파한 ‘낯설게 하기’ 전략의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는 Shklovsky의 예술 창작 이론으로서 관행적으로 익숙한 세계를 낯선 시각으로 관조하고 다시 이를 재구성 하는 것이다.(11) 친숙한 캐릭터나 보편적 이야기는 텍스트의 수용자들에게 친근감과 함께 더욱 쉬운 이해의 기반을 제공하지만, 이것은 지루함을 유발할 수 있다. 자신의 문제에 대한 긴장감 또는 예술적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서는 낯설게 하기 기법이 요구된다. 본 프로그램 참여자들은 괴물 그림책을 본 순간 공포와 불안보다는 흥미를 느꼈고 그 괴물을 내면의 자기 또는 자기 문제의 원인, 극복해야 할 대상 등으로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문제를 그림책으로 풀어나갔다. 이러한 결과는 그림책 치료의 방향과 목표에 새로운 시사점을 제공한다. 특히 그림책 창작은 안전한 환경에서 괴물을 직면할 기회를 이끌어 줄 수 있다. 자신을 보호하면서 자기 내면의 부정적인 면을 직관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Heidegger의 존재와 시간(Seit Und Zeit)에 의하면 예술 창작 활동은 자신의 주관적 의식을 외부에 객관적으로 드러내는 행위도 아니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모사하는 행위도 아니다. 예술 창작 행위는 현존재의 자기존재 정립 방식으로써 이 세상에 자기다움을 선언하고 공포(公布)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12) 특히 상업 미술이 아닌 그림책 창작과 같은 치료적 접근은 억눌리거나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서 자기의 세계를 은닉하고 있는 개인들에게 용기를 불어 준다. 또한 이 세계의 존재 방식을 드러내는 행위를 하도록 촉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그림책 치료는 단순한 미적 체험이나 자기 성찰을 넘어 자기 자신을 해방하는 행위이며 존재를 정립시키는 실존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존재 정립을 하기 위해서는 의미 구성이 매우 중요하다. 현상계에 존재하는 모든 대상 중 오직 인간만이 그 의미를 물을 수 있는 존재이다.(13)
그림책 창작 프로그램 또는 치유프로그램은 이와 같은 시간의 구조 속에서 자신에 대한 의미를 묻고 이를 탐구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존재의 물음은 자연스럽게 시간과 함께 공간 속에서도 이루어진다.(14) 프로그램에 참여한 중학생들이 체험한 공간은 그림책 속의 공간이 아니라 바로, 자신 삶의 공간이었다. 즉 연구참여자들은 그림책을 창작함으로써 자신 삶의 공간을 다시 살펴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림책 치료는 결국 그림책이 제공하는 다양한 공간들을 삶의 메타포로 하여 개인들에게 일상생활을 영유하게 한다. 또한 자신의 공간을 점검하고 성찰 할 수 있게 만드는 도구라고 할 수 있다.
출처 : 지상선, 현은자(2022). 청소년의 방과후학교 그림책 창작 프로그램을 매개로 한 그림책 치료에 대한 현상학적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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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선 |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 박사졸업
인생은 걸어다니는 그림책이라고 믿고 있는 아이 같은 엄마입니다. 오늘도 성장할 수 있는 내일을 매일 꿈꾸고 있습니다. 20년 이상 강남에서 그림책 사고력, 그림책 논술, 그림책 독서치료를 하고 있습니다. 자아에 관심이 있어서 자아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박사학위 논문은 '그림책을 이용한 자아상태 활성화 프로그램 참여 대학생들의 경험에 대한 질적연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