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서니 브라운의 『돼지책』 읽기 [글:김현경]

2022-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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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앤서니 브라운의  『돼지책』 읽기



본 연구의 목적은 오랫동안 국내외에서 사랑받고 있는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 『돼지책』의 세계관을 분석하는 것입니다. 『돼지책』은 ‘돼지’의 상징성이 글과 그림에 풍성하게 녹아 있어 많은 독자가 ‘그림 읽기’를 즐겨 하는 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는 1) 제목과 표지 그림 읽기, 2) 그림책 본문 읽기, 3) 명화 읽기를 통해 이 작품이 투영하고 있는 세계관을 살펴보았습니다.

1.  제목과 표지 그림 읽기

이 책의 원제는 Piggybook으로, 표지 그림을 참조하였을 때, 영어 단어 ‘piggyback’을 연상시킵니다. 옥스퍼드 영한사전에 따르면 ‘piggyback’이란, 명사로 ‘(등에) 업기(어부바), 목말 타기’라는 뜻이며, 동사구로 ‘piggyback on somebody/something’은 ‘~에 업혀가다, 편승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지요. 영어 단어 piggyback을 바탕으로 생각해보면 이 책의 제목인 Piggybook의 표면적인 뜻은 ‘돼지책’이지만 누군가에 업혀 있는, 혹은 편승하는 뜻이 내포돼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책 표지 그림과 더불어 생각해보면 더욱 분명해집니다.

 


그림책의 표지 그림을 보면 Piggybook이라는 제목 아래에 등장인물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가장 아래에 피곳 부인이 있고, 피곳 부인 등 위에 피곳 씨가, 피곳 씨 등 위에 두 아들이 업혀 있습니다. 이들은 여러 면에서 시각적으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인물들의 얼굴 표정을 살펴보면 피곳 부인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는 데 비해, 피곳 씨와 두 아들은 이를 드러내고 활짝 웃거나 미소를 짓고 있으며 두 볼이 약간 상기돼 있습니다.

두 번째로 인물들의 의상을 살펴보면 먼저 피곳 부인의 상의와 치마, 구두의 색상이 푸른 빛이 감도는 낮은 채도의 회색으로 되어 있으며, 이는 피곳 부인의 얼굴 표정과 더불어 우울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피곳 씨의 의상은 윤택이 나는 검정 구두에 파란 양말, 파란 줄무늬 셔츠로 피곳 씨의 얼굴 표정과 더불어 자신감 있고 당당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두 아들은 빨간색 교복 상의를 입고 있으며 양말에 빨간 줄무늬가 곁들여져 있어 힘 있고 활기가 넘쳐 보입니다. 일반적으로 파란색은 두 가지의 대조적인 상징성을 가지고 있어서 이상적이거나 자기 중심적인 의미가 있으면서 동시에, 자기 억제적이고 우울하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파란색이 지니는 모순적인 상징성은 피곳 씨와 피곳 부인의 대조적인 모습에 각각 적용해볼 수 있습니다. 

세 번째로 이들의 배경이 되는 벽지를 보면 아랫부분은 꽃무늬로 장식되어 있지만, 윗부분은 돼지 얼굴로 장식되어 있고, 콘센트의 모양도 절묘하게 돼지 얼굴을 연상시켜 무언가 이상하다, 잘못되었다는 느낌과 함께 코믹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벽지 하단의 꽃무늬는 인물 그림의 하위에 있는 피곳 부인을, 벽지 상단의 돼지 얼굴 무늬는 인물 그림 상위에 있는 피곳 씨 및 두 아들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은 한 가족이지만 벽지의 하단과 상단처럼 각각 분리되어 다르게 보이고 또 무언가 잘못된 것처럼 보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제목과 표지 그림에서 볼 수 있듯 다른 가족들이 피곳 부인의 등에 모두 업혀서(편승해서) 행복하고 자신 있게 혹은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을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그림책 본문 읽기

『돼지책』 안에서는 가족들 모두가 함께 어우러져 있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들은 분리되거나 혹은 대립하여 나타나는데 흥미로운 것은 가족의 위계에 따라 부모/자식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들은 대부분의 장면에서 남자/여자로 나뉘어 등장합니다. 


첫 번째 펼친 면에서 가족이 소개되는 글에는 피곳 씨가 두 아들인 사이먼, 패트릭과 함께 멋진 차고와 멋진 차, 멋진 정원이 있는 멋진 집에 살고 있다고 기술됩니다. 피곳 부인은 글에서 이름이 따로 언급되지 않으며 그저 ‘집 안’에 부인이 있다고만 기술됩니다. 그림에도 멋진 집과 차고 안의 빨간 차를 배경으로 피곳 씨와 두 아들이 정면을 바라보고 서 있지만, 피곳 부인은 그림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한 가족이지만 ‘피곳 씨와 두 아들’, 그리고 ‘피곳 부인’은 집 밖과 집 안에 각각 따로 존재합니다.

두 번째 펼친 면의 식사 자리에서도 가족은 함께 있지 않습니다. 피곳 씨와 두 아들이 빨리 밥을 달라고 소리칠 뿐, 피곳 부인은 말을 하지도 글에서 언급되지도 않습니다. 글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림에서도 피곳 씨와 두 아들의 커다란 입이 강조되어 그려져 있고, 피곳 부인은 아예 등장하지 않습니다. 


세 번째 펼친 면에서야 피곳 부인이 등장하는데, 앞에서 피곳 씨와 두 아들이 비교적 선명하고 다채로운 색상으로 커다란 프레임 안에서 그려졌던 것과는 달리, 피곳 부인은 흐릿한 적갈색과 회색을 주요 색상으로 하여 네 개의 작은 프레임에 나뉘어 그려져 있습니다. 각각의 프레임에서 피곳 부인은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으며 모두 집안일을 하거나 바깥일을 나가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네 번째 펼친 면에서 피곳 씨와 두 아들은 중요한 직장과 중요한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피곳 부인을 부르며 밥을 달라고 합니다. 여기에서도 피곳 부인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다섯 번째 펼친 면에서 피곳 씨와 피곳 부인은 드디어 함께 그려집니다. 그러나 이들은 함께 무언가를 하며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 아닙니다. 피곳 씨는 왼쪽 페이지에, 피곳 부인은 오른쪽 페이지에 따로 떨어져서 등장하며 여러 차원에서 대조를 이룹니다. 왼쪽 페이지의 피곳 씨는 화면이 꽉 차게 커다란 프레임 안에 그려져 있으며, 그 프레임 안에서조차 피곳 씨가 너무 크게 그려져 있어 모습이 다 보이지 않을 정도입니다. 피곳 씨는 양손에 포크와 칼을 들고 이제 막 식사를 시작하고 있고, 피곳 씨의 노란색 나비넥타이와 빨간 도트, 접시 위의 빨간 케첩과 초록색 완두콩, 피곳 씨의 파란 줄무늬 셔츠의 선명하고 밝은 색은 생생하고 유쾌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반면에 오른쪽 페이지는 네 개의 프레임으로 나뉘어 피곳 부인이 작게 여러 번 나타나는데 피곳 부인은 다양한 집안일로 분주한 모습입니다. 피곳 부인은 앞에서처럼 흐릿한 적갈색과 회색을 주요 색상으로 하여 그려져 있고, 여전히 얼굴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왼쪽 면의 피곳 씨와 오른쪽 면의 피곳 부인은 모습도, 하는 일도, 그림의 크기로서 보여지는 존재감도 무척 대조적입니다.

여섯 번째 펼친 면에서는 글 없이 그림만 나타나는데 프레임도 없어서 긴장이 풀어지고 편안한 분위기가 조성됩니다. 저녁 식사를 한 후인지, 피곳 씨와 두 아들뿐 아니라 개와 고양이도 나른하게 쉬고 있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한가로워 보이는 이 장면에 피곳 부인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일곱 번째 펼친 면부터 열 번째 펼친 면에서는 피곳 부인이 사라지면서 피곳 씨와 두 아들이 돼지로 변하고 집안이 돼지우리처럼 변해가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물론 피곳 부인은 글과 그림에서 등장하지 않습니다.


열한 번째 펼친 면은 집안의 더러움과 혼란함이 절정으로 치닫고, 그림 속에서 피곳 씨와 두 아들은 엉덩이만 내민 채 얼굴을 숨기고 엎드려 있습니다. 바로 이곳에서 피곳 부인이 드디어 그림책에 다시 등장하는데 영웅 혹은 구원자의 등장을 나타내듯 빛 가운데 실루엣으로 나타납니다. 

열 두 번째 펼친 면에서는 돼지가 된 피곳 씨와 두 아들이 피곳 부인 앞에 무릎을 꿇은 채로 그려져 있고, 피곳 부인은 한 손에 가방을 들고 다른 한 손은 허리를 짚고 피곳 씨와 두 아들을 내려다보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피곳 부인은 처음으로 얼굴이 제대로 보이고 살며시 미소를 짓고 있으며, 코트 속에 빨간 옷을 입고 있는 것으로 그려져 있어, 그동안 흐린 적갈색으로만 그려졌던 것과는 ‘달라진’ 모습임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피곳 부인의 머리가 검정색 프레임 밖으로 불쑥 나와 있어 틀을 깨고 나온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피곳 부인이 사라졌다가 다시 가족들 앞에 나타난 사건 이후로 피곳 씨와 두 아들은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열 세 번째 펼친 면에서 피곳 씨는 설거지와 다림질을 하고, 두 아들은 침대를 정리합니다. 그러나 피곳 부인은 글에서도 그림에서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열 네 번째 펼친 면에서 왼쪽 페이지에는 피곳 씨와 두 아들이 모두 요리하는 것을 돕고 정말로 즐겼다는 글과 함께 손에 음식을 들고 있는 모습이 그림으로 제시됩니다. 반면 피곳 부인은 이들과 함께하지 않고 오른쪽 페이지에 작업복을 입고 얼굴에 기름때를 묻힌 채로 그려져 있습니다. 글에는 피곳 부인도 행복했다고 언급되어 있습니다. 


열 다섯 번째 펼친 면에서 피곳 부인은 자동차를 수리하는 모습으로 홀로 등장합니다. 이것은 그림책의 맨 첫 장면과 대조됩니다. 처음에 가족이 소개될 때는 피곳 씨와 두 아들이 집 밖에 서 있었고 피곳 부인은 집 안에 있다고만 언급되었습니다. 반면 마지막 장면에서는 피곳 씨와 사이먼, 패트릭이 집 안에 있고, 그림에는 나타나지 않으며, 대신 피곳 부인이 집 밖에서 혼자 자동차 수리를 하는 것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피곳 씨의 ‘중요한’ 회사를 상징하는 파란 색과 두 아들의 ‘중요한’ 학교를 상징하는 빨간 색은 이제 피곳 부인의 바지와 스웨터의 색상으로 그려집니다. 이전 장면에서 보았듯이 피곳 씨와 두 아들은 자켓을 벗는 대신 ‘앞치마’를 두른 것으로 그려졌습니다. 또한 그림책 맨 첫 장면에서 피곳 씨 집의 자랑거리로 소개된 자동차는 그림책 마지막 장면에서 피곳 부인에 의해 수리되고 있습니다. 특히 자동차 번호표를 거꾸로 읽어보면 ‘123 PIGS’라고 적혀 있는데 이것은 자동차가 곧 피곳 씨와 두 아들을 상징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피곳 부인은 단순히 자동차를 수리하는 것이 아니라, 피곳 씨와 두 아들을 고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과 같이 『돼지책』에서 가족들은 피곳 부인의 부재 사건 이전에도, 이후에도 함께 어우러진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대체로 피곳 씨와 두 아들이 함께 등장하고 피곳 부인은 가족들과 분리되어 따로 등장합니다. 가족들은 또한 입고 있는 옷의 색상과 그림의 크기, 상하 위치 등의 다양한 차원에서 대조를 이룹니다. 그리고 이러한 분리와 대조는 남자와 여자라는 성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3. 명화 읽기

『돼지책』에는 두 편의 명화가 차용되고 있습니다. 작가가 특정한 명화를 차용한 것을 단순히 장식적인 용도로만 보기는 어렵습니다. 명화의 주제나 상징을 통해 그림책의 의미가 더 효과적으로 창출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두 편의 명화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조사해 보았습니다. 

(1) 프란스 할스의 <웃고 있는 기사> 


『돼지책』에는 피곳 씨와 두 아들이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소파 위에서 쉬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장면은 글이 제시되지 않은 채로 펼친 면 가득 프레임 없이 그림이 그려져 있어, 피곳 씨와 두 아들의 안락하고 만족스러운 상태를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장면의 왼쪽 상단에서 독자들은 프란스 할스(Frans Hals, 1581~1666)의 <웃고 있는 기사>(The Laughing Cavalier) 그림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프란스 할스는 17세기 네덜란드 미술사 최초의 거장으로 ‘자연스러운 구성과 활력 있는 필치의 초상화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화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할스의 전문 분야는 초상화로 명랑하고 활기찬 분위기가 특징적입니다. 특히 <웃고 있는 기사>는 할스의 작품 중에서도 이례적으로 꼼꼼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왼쪽 소매의 자수에 부와 사랑을 상징하는 다양한 무늬가 있습니다.

“화려한 하얀 레이스 장식의 목깃은 정교하고 사실적으로 묘사되었다. 레이스의 옷을 입고 있는 기사는 상류층 사람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당시 레이스 장식의 옷은 상류층만 입었다. ... 왼쪽 팔 옷소매의 트인 부분에 모자가 씌워진 날개 달린 지팡이는 헤르메스 신을 상징한다. 이 작품에서 헤르메스 신의 지팡이는 재산은 남자다운 미덕의 동반자라는 것을 상징한다.”

“기사는 사실 웃고 있지도 않을뿐더러 기사도 아니다.… 복잡하게 수 놓인 상의와 사치스러운 레이스 칼라와 커프스는 이 사람이 부유한 멋쟁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이 작품은 약혼 초상화였던 것으로 보인다. 소매에 있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횃불, 하트와 화살, 연인의 매듭, 꿀벌 장식은 모두 사랑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옷에 대한 평가가 두드러집니다. 기사의 레이스 달린 옷은 그가 부유한 상류층이라는 것을 보여주며 옷에 새겨진 헤르메스 신의 날개 달린 지팡이는 재산을 상징합니다. 피곳 씨 집에 할스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 것은 피곳 씨의 부유함과 더불어 재산을 중요하게 여기는 삶의 태도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2) 토마스 게인즈버러의 <앤드류 부부>


어느 날 저녁 피곳 씨와 두 아들이 집에 돌아왔을 때 피곳 부인은 집에 없고 쪽지만 남겨져 있었습니다. 이 장면에서 쪽지가 세워져 있던 벽난로 위에 걸려 있는 그림은 토마스 게인즈버러(Thomas Gainsborough, 1727~1788)의 <앤드류 부부>(Mr and Mrs Andrews)로 그림책에는 약간 변형되어 그려졌습니다.

이 작품은 토마스 게인즈버러가 앤드류 부부의 주문을 받고 그린 것으로, 화폭의 반은 초상화에, 반은 풍경화에 할애하고 있는 점이 독특합니다. 앤드류 부부 옆으로 풍경이 넓게 펼쳐지도록 그린 것은 앤드류 부부가 의뢰한 것인지, 작가가 의도한 것인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잘 경작된 곡물 다발과 추수를 끝낸 들판, 자유롭게 풀을 뜯는 양떼와 소떼, 그 뒤로 드넓게 펼쳐진 영지가 이들 부부의 경제적 부유함을 드러내 준다는 점입니다. 

“배경에 희미하게 보이는 서드베리에서 1748년에 결혼했던 앤드류 부부는 그들의 사유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마치 이 신혼부부가 외부인들에게 사유지를 자랑스럽게 보여주는 것처럼,…”

피곳 씨 집의 벽난로 위에 걸려 있는 그림에는 앤드류 씨의 얼굴 대신 돼지 얼굴이 그려져 있고, 앤드류 부인의 모습은 오려져 있습니다. 그림 속 앤드류 부인의 부재는 이야기 속 피곳 부인의 부재를 상징합니다. 

『돼지책』작가는 두 편의 명화를 그림책 속에 배치하여 피곳 씨 가족의 경제적인 부유함과 재산을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를 강조해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먼저 등장한 그림의 원작은 약혼 초상화로 알려져 있고, 뒤에 등장하는 그림의 원작은 결혼을 기념하여 그린 부부 초상화로 알려져 있습니다. 두 그림 모두 결혼을 기념하는 목적으로 그려졌지만 『돼지책』 속 두 번째 그림은 부인의 모습이 오려져 있는 것으로 표현되어 관계의 어긋남을 보여줍니다. 결국 피곳 부인이 떠나게 된 원인은 그림에서 강조되고 있는 피곳 씨 가족의 경제적인 부유함, 재산을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와 관련된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4.    『돼지책』에 담겨 있는 ‘소비주의 세계관’과 ‘페미니즘’

이상의 그림 읽기 결과를 종합하면, 『돼지책』에는 ‘소비주의 세계관’과 ‘페미니즘’이 투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소비주의란 우리의 모든 필요가 물질적 소비로 충족될 수 있다고 보는 세계관으로서 사람들은 물건을 축적하고 사용함으로써 만족감을 느끼고, 돈이 곧 힘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돼지책』의 첫 장면은 피곳 씨에게 멋진 집, 멋진 정원, 멋진 차고와 멋진 차가 있다는 문장으로 피곳 씨 가족을 소개합니다. 또 이들은 아주 중요한 회사와 아주 중요한 학교에 다니느라 아침저녁으로 피곳 부인에게 빨리 밥을 달라고 외칩니다. 이는 소비주의가 드러내는 문제점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것으로서, 한 인간으로서의 존재가 경제적 안정보다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것을 보여줍니다.

두 번째로 페미니즘을 언급할 수 있습니다. 『돼지책』은 분명 가족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만, 그 문제가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회복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가족’의 문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보다는 ‘남자와 여자’의 문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피곳 씨와 두 아들인 남자들이 그림의 상단이나 중앙에 위치하거나 프레임에 꽉 차게 그려졌고 밝고 선명한 원색 중심의 의상으로 표현되었던 반면, 나중에는 피곳 부인이 피곳씨와 두 아들을 내려다보는 위치로 그려지고 빨간색이나 파란색 옷과 같이 밝고 선명한 색상의 옷을 입은 것으로 표현된 것은 자칫 이들의 갈등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는 힘의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대결로 비춰질 수 있습니다. 또한 피곳 씨와 피곳 부인, 두 아들이 한 장면에 함께 어우러지는 조화로운 모습으로 등장하지 않고, 대화와 소통으로 문제를 해결해가려고 하지 않은 점은 남자와 여자의 대립 관계를 부각시킵니다. 

그렇다면 『돼지책』은 과연 독자에게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소비주의에 희생된 가족 구성원을 회복시키기 위해 가족들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여성이 억압받지 않기 위해서는 힘을 길러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일까요? 이 그림책을 어린이에게 읽어줄 때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는 것일까요?

그림책에는 작가가 견지하고 있는 모종의 신념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그림책의 세계관은 독자의 삶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칩니다. 따라서 독자들은 그림책을 읽을 때 그림책에 녹아 있는 세계관을 읽어낼 필요가 있으며, 특히 어린이에게 그림책을 선정해서 읽어주는 역할을 하는 성인은 더욱 그러합니다. 즉, 그림책을 읽는다는 것은 글과 그림 읽기에서 더 나아가 세계관 읽기를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그 세계관이 어린이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지를 숙고하는 것은 어린이의 복지를 책임지고 있는 성인들의 책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출처: 김현경 (2021). 문화해석방법론으로 그림책 세계관 읽기 -앤서니 브라운의 『돼지책』을 중심으로-. 독서아카고라연구, 통권3호, 229-258.



(1) Wilkens, S. & Sanford, M., Hidden Worldviews(2009), 안종희 역, 『은밀한 세계관』, IVP, 2013, 53~74쪽.


김현경  |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 박사과정 수료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영국 캠브릿지 대학교 교육학과 the PLACE 연구소에서 Visiting Scholar를 지냈습니다.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과 미디어에 담긴 세계관 연구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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