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을 통해 본 아동 돌봄(caring)의 의미 [글:국경아]

2022-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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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책을 통해 본 아동 돌봄(caring)의 의미



인간다운 삶은 생존 이상의 것을 필요로 합니다. 그 중 하나로 거론되는 것이 돌봄(caring) 인데요. Harrison(2012)는 영어의 'care‘에 ’돌봄‘과 ’걱정‘의 의미가 함께 있다고 말합니다. 사실 돌아보면 우리의 삶은 자기 자신을 포함해서 누군가를 신경 쓰고 걱정하고 사랑하고 돌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돌봄이 인간 삶의 필수 조건이라고 하는 Harrison(2012)(1), 권의섭(2015)(2) 등의 주장은 충분히 수긍이 갑니다. 또한 돌봄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최초의 소명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아담에게 창조세계로서 정원-에덴동산을 돌보고 경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착안하여 본 연구에서는 정원을 소재로 한 그림책들을 평론하며 돌봄의 본질을 기독교적으로 살펴보고 이를 아동 돌봄에게 적용했을 때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야 할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특히 아동의 자율성이 강조되며 아동교육에 있어서 성인의 개입이 꺼려지는 분위기도 감지되는 요즘의 상황에서 아동에게 적절한 돌봄을 제공하는 것이 아동의 복지를 책임지고 있는 성인의 책임이자 권리임을 논의하고자 합니다.


1. 정원의 인문학적 의미

1) 정원의 어원적 의미


정원은 역사적으로는 동.서양 모두 실용적인 목적을 위한 텃밭 개념에서 출발했습니다. 동양, 서양 모두 격리된 구역, 구별된 구역이라는 의미가 공통으로 들어있고 특히 서구에서 정원을 뜻하는 단어들인 영어 garden, 독일어 garten, 프랑스어 jardin 등은 원래 히브리어 gan과 oden 또는 eden의 합성어로서, gan은 울타리 또는 둘러싸는 공간이나 둘러싸는 행위를 의미하며 oden은 즐거움이나 기쁨을 의미합니다. 서구권에서는 성경의 에덴 동산이 최초의 정원으로 여겨집니다.


2) 정원의 인문학적 의미 - 구별된 곳, 구별된 사람들


『용서의 정원』은 로런 톰프슨이 글을 쓰고 크리스티 헤일이 그림을 그렸으며 2018년 시공주니어에서 출판되었습니다.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 이슬람교와 기독교 사이의 분쟁을 치유하고자 만들어진 실제 ‘용서의 정원’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작품으로, 계곡의 개울을 사이에 둔 두 마을이 이유도 모른 채 오랫동안 적대 관계에 있다가 자신에게 돌을 던진 소년을 용서하기로 결심하는 한 소녀에 의해 용서의 정원이 만들어진다는 내용입니다.

『용서의 정원』은 정원을 소재로 한 그림책이지만 실제로 꽃과 나무 등 정원의 식물을 심고 가꾸는 장면은 한 장면에만 등장하고 그보다는 정원을 만들기로 결심하는 소녀의 마음의 변화가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또한 정원을 만든 이후에도 정원의 외적인 아름다움보다는 정원 안에 들어가기로 결심하는 사람들이 거기에서 무엇을 하는지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즉 『용서의 정원』은 정원 자체보다는 정원을 통해 변화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지요.

특히 장면 S11은 정원의 의미를 잘 보여주는데 소녀와 마을 사람들은 돌을 하나씩 쌓아서 정원의 벽을 만드는 것으로 정원의 첫 단계를 시작합니다. 정원의 벽, 즉 다른 곳과 구별되는 장소로서 정원의 울타리를 만드는 것이지요. 앞서 정원의 어원에 구별된 장소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는 것을 말했었는데 『용서의 정원』은 바로 정원의 이런 성격을 뚜렷하게 보여줍니다. 바깥 세상과 구별된 장소로서 정원은 그 안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휴식을 제공하고 관조와 성찰을 통해 새롭게 세계를 돌아보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Harrison(2012)는 뉴욕시의 홈리스들이 주변의 자잘한 물건들을 가져와 자신들만의 구별된 장소로서 정원을 만든 일화를 소개하며 집이 없는 그들조차 세상과 잠시 구별되는 장소를 본능적으로 만들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정원은 이처럼 주변에 대해 경계를 그어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어, 그곳을 소란한 세상의 고요한 정지점으로 만드는 기능을 합니다.

『용서의 정원』 S11


또한 이 장면은 정원 안에서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는지도 잘 보여줍니다.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증오와 분노 앞에서 주저하는 사람들에게, 소녀는 일단 정원 안으로 들어와서 거기에서 함께 얘기하고 해결책을 찾아보자고 합니다. 이미 해결책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정원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그 안에서 함께 새로운 시각을 회복하고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지요. 바깥 세상과 구별되지만 엄연히 그 세상 속에 존재하고 있는 이런 공간이 가진 인문학적 힘에 대해 Hrrison(2012)은 ‘가장 나쁜 충동에서 현실을 구원하기 위해 문화적, 윤리적, 시민적 덕목을 가꿀 수 있는 곳은 지상의, 자기 안의, 혹은 사회 집단 가운데에 있는 한 뼘의 땅’이라고 평합니다. 새로움은 거대한 정복에서가 아니라 자신에게서, 자신 주변의 작은 곳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정원의 이러한 속성은 성경에서 하나님이 당신의 나라를 건설해 가는 역사와 묘하게도 닮아 있습니다. 아브라함에서 시작하여 이스라엘 12지파로, 그리고 신약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교회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 가는 역사는 구별된 한 사람에서 한 민족으로, 그리고 온 교회로 확장되어 가는 역사입니다. 교회의 역사는 이 세상 속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으나 구별됨으로 인해 자신과 주변을 거룩하게 만드는 역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돌봄의 성경적 본질- 인간의소명


『지하정원』은 지하철역을 청소하는 청소부 모스 아저씨의 수고와 돌봄을 통해 더럽던 지하철 역사가 생명력을 회복하고 이 생명력이 그 주변 전체로 퍼지는 이야기로, 조선경 작가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으며 보림 출판사에서 2005년에 출판되었습니다.

『지하정원』은 돌봄의 본질이 어떤 것인지 여실히 보여줍니다. 모스 아저씨가 쓰레기 더미에서 발견한 작은 나무를 돌보며 걱정하는 모습에서, 자신의 청소구역이 아닌데도 악취의 근원을 찾아 터널 안으로 들어가 그곳을 청소하며 버려진 공간을 돌보는 모습에서,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작은 나무를 날마다 정성껏 가꾸고 돌보는 모습에서, 그리고 모스 아저씨가 돌본 그 나무의 생명력이 영향력을 미쳐 그 주변 전체가 푸른 생명력으로 회복되는 모습에서 우리는 돌봄의 근본적 동기와 그 결과를 보게 됩니다.

『지하정원』 S14
 
『지하정원』 S15

 
‘돌보다’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관심을 가지고 보살피다’로, ‘도와주다’, ‘보호하다’, ‘보살피다’와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Harrison(2012)는 영어의 'care‘에 ’돌봄‘과 ’걱정‘의 의미가 함께 있으며, 일평생 누군가를(자신을 포함해서) 신경 쓰고 걱정하고 돌보고 사랑하는 인간의 삶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나아가 그는 돌봄을 인간 존재의 본질적 요건 중 하나라고 합니다. 권의섭(2015)도 인간은 누구나 배려의 갈망을 가지고 있고 배려 없이는 생존과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없다고 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삶의 조건이 생존이라는 기본 욕구를 넘어선 ‘인간다움’의 상태, 인간이 갈구하는 사회적, 미학적, 생태적 충족감과 관련이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누군가를 걱정하고 돌보는 것이 인간 존재의 본질적 요건이라는 이들의 관점은 충분히 납득되고 수긍이 가는 것입니다. 또한 돌봄은 성경에서 하나님이 최초의 인간 아담에게 주신 최초의 소명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에덴 동산을 돌보고 다스리게 하셨는데 창세기 2:5의 “여호와 하나님 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עבד, 개역한 글 경작할) 사람도 없었으므로~”와 창세기 2:15의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עבד, 개역 한글 다스리며) 지키게(שׁמר) 하시고”에서 보듯 5절의 ‘갈-’과 15절의 ‘경작하다’는 히브리어의 같은 어근 ‘아바드(עבד)’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바드’는 ‘일하다’(창 30:26)라는 기본 의미 외에도 ‘갈다, 경작하다’(창 2:5), ‘봉사하다’(창 29:25), ‘다스리다’(신28:39), ‘힘쓰다’(신 5: 13)등 다양한 의미를 가집니다. 또한 15절의 ‘지키다’의 어근은 ‘솨마르(שׁמר)’인데 이는 ‘살피다’(욥13:27), ‘보존하다’(시 86:2), ‘주관하다’(왕하 22:14)등의 뜻으로, 애정을 가지고 잘 보살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를 종합하면, 하나님은 구별된 구역으로서 에덴을 만드시고 그 곳을 인간이 경작하며 돌보게 하셨는데, 그 돌봄은 힘써 일하고 보존하며 다스림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즉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땅을 돌보고 다스리는 자로 부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돌보고 다스림의 목적은 그 다스리는 땅, 다스림의 대상이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거룩한 것으로 변화하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부여받은 이 다스림의 권위는 억압이 아니라 돌보고 양육하는 의미가 있으며 권위를 부여받은 왕적인 책임, 목자의 책임을 동반하는 개념을 가집니다. 따라서 인간이 하나님께 받은 돌봄의 소명은, 권능을 부여받았으되 그 권능을 자신의 소욕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돌봄의 대상을 가꾸기 위해 자발적인 수고를 하며 그 수고를 통해 하나님의 아름다운 통치가 임하게 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하정원』에서 모스 아저씨가 자발적인 수고를 통해 죽어가는 작은 생명을 돌보고 더러워진 장소를 가꾸는 모습은 돌봄의 선한 동기를 잘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선한 수고가 주변으로 퍼져 생명력 가득한 푸른 공간으로 변화하는 모습에서 돌봄의 결과가 어떠한 것인지를 잘 볼 수 있습니다.


3. 성경적인 아동 돌봄의 모습 - 정원사 리디아


『리디아의 정원』은 경제 불황으로 도시의 외삼촌 댁에서 더부살이를 하게 된 소녀 리디아가 황량한 주변에 정원을 가꾸며 그 공간과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변화시키는 내용으로, 사라 스튜어트가 글을 쓰고 데이비드 스몰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사라 스튜어트와 데이비드 스몰은 부부 작가로 함께 여러 권의 그림책을 냈는데 이들의 작품에는 여성 주인공들이 많이 등장하고 주로 자연친화적인 관점이 녹아 있습니다. 때문에 이들의 작품을 에코페미니즘으로 분석한 선행연구들이 존재합니다. 『리디아의 정원』 역시 소녀가 주인공이며 자연친화적인 삶의 태도를 지향하고 있고 주인공 리디아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인물 역시 여성인 할머니입니다. 그런데 작품을 자세히 살펴보면 에코페미니즘 외에도 다르게 볼 수 있는 관점이 존재합니다.

리디아의 정원에서 독자들에게 가장 인상 깊은 점은 아무래도 주인공 리디아로 인해 외삼촌의 삭막한 가게가 아름다운 꽃들의 생명력 가득한 공간으로 변화하고 그 곳을 드나드는 손님들이 행복해지는 모습, 그리고 가게 경영에만 매달려 있던 외삼촌이 리디아를 위해 하루 휴가를 내고, 리디아가 다시 고향집으로 돌아갈 때는 첫 만남 때와 달리 리디아를 꼭 안아주는 모습, 즉 리디아로 인해 그 공간은 물론 주변 사람들이 변화하는 점일 것입니다. 당연히 리디아가 관심의 초점이 될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리디아가 가진 이런 삶의 태도, 주변을 변화시키는 힘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리디아의 정원』은 리디아가 고향에 있는 가족들에게 보내는 편지글로 글 텍스트가 이루어져 있는데 S13, 즉 리디아가 외삼촌을 위해 준비한 옥상 정원의 깜짝 공개를 앞두고 가족들에게 보내는 편지글에서 중요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장면의 글 텍스트에서 리디아는 ‘저는 엄마, 아빠, 할머니께서 저에게 가르쳐주신 아름다움을 다 담아내려고 노력했습니다’라고 합니다. 플롯 전개상 가장 절정에 해당하는 장면을 앞두고 리디아가 가족에게 보내는 이 편지글에서 그녀는 꽤나 비장한 마음으로 자신의 정원을 공개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배운 아름다움이 모두 자신의 윗 세대인 부모와 할머니에게서 왔다고 고백합니다. 이 문장은, 그녀가 비록 가족들과 떨어져 있지만 가족들과 함께 하는 삶에서 직접 배운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여전히 그녀의 삶 속에 녹아들어 함께 하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이에 따라 리디아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할머니 역시 에코페미니즘의 관점으로 볼 것만이 아니라 리디아의 윗 세대를 대표하는 노인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실제로 노인은 삶의 지혜와 경륜을 가지고 아동 주인공을 도와주고 지지하는 역할로 작품들에서 종종 등장하곤 합니다. 결국 리디아는 가족이라는 테두리 내에서 윗 세대의 보호 속에서 할머니, 부모와 상호작용하며 가르침을 받고 그 가르침이 삶 속으로 스며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리디아의 정원』 S13
『리디아의 정원』 면지


이는 신앙공동체 안에서 어린이가 자신의 믿음을 키워가는 것과 유사한 성격을 가집니다. 물론 회심과 성화는 1차적으로 개인과 하나님의 관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어린이가 신앙공동체에 참여하여 부모 및 믿음의 선배가 가진 고백적 신앙을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것으로 형성하고 재구성하기 때문입니다.

『리디아의 정원』은 앞 뒤 면지의 그림을 통해서도 본문의 플롯 전개를 돕고 있는데 앞 뒤면지의 비교에서 재미있는 변화가 보입니다. 책의 앞 면지는 리디아가 고향을 떠나기 전 모습으로, 밭에서 자신이 거둔 농작물을 할머니에게 무릎을 꿇고 드리고 있는데 리디아와 할머니가 둘 다 같은 페이지에 그려져 있습니다. 뒤 면지에서는 고향에 다시 돌아온 리디아가 할머니와 나란히 앞을 향하며 꽃씨를 뿌리고 있고 리디아는 왼쪽 페이지에, 할머니는 오른쪽 페이지에 각각 자라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뒤 면지에서의 이러한 구도 변화와 리디아의 자세 변화, 즉 할머니와 대등한 자세로 한 쪽 페이지를 오롯이 차지하며 꽃씨를 뿌리고 있는 리디아의 모습은, 집을 떠나 외삼촌 댁에서 자신의 힘으로 주변을 변화시키고 돌아온 리디아의 성장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리디아의 이런 성장은, 그녀가 그녀의 부모, 할머니에게서 아름다운 것들을 배우고 그것을 담아내려고 노력했다는 S11을 함께 고려할 때, 바로 리디아 자체가 윗 세대가 키워내고 피워낸 꽃씨라고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을 새싹에 비유한 것이나 자식농사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동이야말로 윗 세대가 키워내야하는 가장 소중한 나무이고, 성인들은 그들이 온전히 성장할 수 있는 아름다운 정원을 제공해 줘야 할 책임이 있음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합니다.


4. 나오며


서론에서도 언급했듯이 최근의 교육 이론과 교육 현장에서는 아동의 자율권과 성인의 권위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습니다. 그러나 고금을 막론하고 성인은 아동에게 돌봄을 제공함으로써 그들의 성장과 복지에 기여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앞서 살펴본 세 권의 그림책은 우리가 아동들에게 어떤 자세로 돌봄을 제공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돌봄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를 시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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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Robert Pogue Harrison(2012). 정원을 말하다. 고양 : 나무도시
(2) 권의섭(2015). 포스트모던 시대의 인성교육의 방향과 실천. 새한철학회 발표논문집. 2015(11), 13-37.



  • 용서의 정원
    (The Forgiveness Garden)
  • 그림작가 크리스티 헤일 
  • 글작가 로런 톰프슨 
  • 번역 손성화 
  • 페이지 36 쪽
  • 출판사 시공주니어
    발행일 2018-01-15

지하 정원

그림작가 조선경
글작가 조선경
페이지 31 쪽
출판사 보림
발행일 2005-06-06


리디아의 정원
(The Gardener)

그림작가 데이비드 스몰(David Small)
글작가 사라 스튜어트(Sarah Stewart)
번역 이복희
페이지 36 쪽
출판사 시공주니어
발행일 2022-03-11








국경아  |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 대학원

성대 아동청소년학과에서 그림책을 공부하며 석사를 받고 박사 수료 중에 있습니다. 글과 그 림의 풍성함을 갖춘 그림책이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 빛으로 나아가는 데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기를 소망하며 그림책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특히 그림책으로 청소년들을 만나기를 소망하 며 좋은 그림책을 만나고 그 안에 담긴 세계관을 공부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논문으로 <환경 정보 그림책의 내용과 형식 분석>, <존 클라센의 모자 삼부작에 대한 세계관적 접근>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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