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브리엘 뱅상의 『에르네스트와 셀레스틴 시리즈』 에 나타난 좋은 부모됨 (good parenting) [글:채송아]

2022-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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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뱅상의 『에르네스트와 셀레스틴 시리즈』 에 나타난 좋은 부모됨 (good parenting)



현대 사회에서 가족을 정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다양한 형태와 유형의 가족이 계속 출현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간이 가족이라는 ‘관계’ 속에서 성장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부모가 자녀의 전 생애에 걸쳐 의식주 제공, 정서적 유대감 형성, 사회화 교육 등 많은 중요한 역할을 통해 자녀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말처럼 부모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좋은 부모란 어떤 부모일까요? 아이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경험하는 문학이자 예술 작품인 그림책에서는 좋은 부모의 모습을 어떻게 그리고 있을까요?

본 연구에서는 좋은 부모의 모습을 살펴보고자 가브리엘 뱅상의 『에르네스트와 셀레스틴』 시리즈 22권을 연구 대상으로 선택했습니다. 이 작품에는 꼬마 쥐 셀레스틴과 듬직한 곰 에르네스트라는 종(種)이 다른,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인물이 함께 가족을 이루고 있습니다. 비록 두 인물은 혈연관계가 아니지만, 가족의 본질에 접근하고 있으며 특히 셀레스틴을 돌보는 양육자 에르네스트의 모습에서 많은 선행연구들이 제시한 ‘좋은 부모됨’의 모습을 충분히 살펴볼 수 있습니다.  『에르네스트와 셀레스틴』 시리즈에서 보여주는 부모됨의 모습은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1. 무조건적 사랑을 보이는 부모의 모습입니다. 

에르네스트는 셀레스틴에게 자신의 굳건한 사랑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려고 애씁니다. 그 ‘사랑’은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에르네스트의 언어와 스킨십을 통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 어디에서, 어떻게 태어났는지 궁금한 셀레스틴은 진실을 알고 싶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두렵기도 합니다. 그러한 마음을 읽은 에르네스트는 셀레스틴의 두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고 눈빛을 맞춥니다. 그 ‘눈빛’을 맞추기 위해 늘 자신의 몸을 낮춥니다. ‘진실’을 알려주기로 하고 그녀의 출생 궁금증에 대한 질문들 하나하나에 답을 해줄 때는 정서적으로 불안해하는 셀레스틴을 위해 자신의 손, 팔 그리고 온 가슴으로 자세를 바꿔가며 따뜻하게 안아줍니다.


그림1. 셀레스틴이 알고 싶은 사실 (2001) 


셀레스틴은 『미술관에서』, 『미로』, 『너무 무서워』에서 서로 헤어져 찾지 못하고 가슴을 쓸어 내릴 만큼 두려운 상황에 직면합니다. 하지만 안전하게 다시 돌아온 셀레스틴에게 에르네스트는 자신이 얼마나 놀랐는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화를 내거나 묻지 않습니다. 오로지 온화한 눈빛으로 셀레스틴을 품에 안고 “그래그래 됐어, 이젠 괜찮아.”라고 말하며 자신의 사랑을 표현합니다. 

셀레스틴의 옆에는 자신의 존재 자체를 사랑해주고 지원해주는 에르네스트가 항상 존재합니다. 에르테스트는 “우리 사랑스러운 셀레스틴!”, “우리 귀여운 셀레스틴!”이라고 늘 언어로 그의 사랑을 표현합니다. 아낌없는 사랑으로 아이에게 안전 기지가 되어주는 부모의 모습입니다.     


 그림2. 숲속 오두막 (1999) 


2.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부모의 모습입니다. 

부모가 자녀와 삶을 공유하는 시간은 아이에게 전 생애에 걸쳐 소중하게 기억될 보이지 않는 유산을 남겨주는 것입니다. 『비 오는 날의 소풍』 에서는 에르네스트와 함께 소풍을 갈 준비를 하며 한껏 상기된 모습의 셀레스틴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이런 날에 비가 내립니다. 실망하는 셀레스틴에게 에르네스트는 “우리, 비가 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거야.”라는 멋진 제안을 하며 함께 준비한 텐트에서 선글라스와 모자까지 쓰고 직접 만들어온 샌드위치를 먹으며 진정한 소풍을 즐깁니다. 

그림3. 비 오는 날의 소풍 (1982)


『크리스마스 파티』에서는 어려운 경제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셀레스틴이 원하는 파티를 준비하기 위해 ‘함께’, 크리스마스트리에 장식할 그림을 그리고, 길거리에 버려진 물건들 중 쓸모있는 물건을 찾아 집안을 온통 크리스마스 파티 분위기가 물씬 나게 꾸밉니다. ‘함께’하는 시간은 놀이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함께 쓰레기통을 뒤지는 일도 하나의 ‘놀이’로 둔갑합니다. 


그림4. 조세핀 고모의 방 (1987)


에르네스트는 ‘셀레스틴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힘이 생긴다.’라고 말하며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고 함께 하려고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함께하는 그 시간을 행복해한다는 것입니다.


3.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하는 부모의 모습입니다. 

여기에서 효과적인 의사소통은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고 진정성 있는 소통을 한다는 의미입니다. 우선 아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존중하는 모습을 들 수 있습니다. 『시메옹을 잃어버렸어요』에서 셀레스틴이 아끼는 애착 인형 ‘시메옹’을 잃어버렸을 때, 에르네스트는 추운 겨울밤, 인형을 찾기 위해 길을 헤매기도 하고 장난감 가게에서 비슷한 인형을 찾기도 합니다. 결국, 셀레스틴이 원하는 같은 시메옹을 만들기 위해 에르네스트는 밤새 바느질 작업을 합니다. 셀레스틴에게 잃어버렸으니 소용이 없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느낄 상실감에 대해 공감하고 배려하는 모습입니다. 

또한, 에르네스트는 셀레스틴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태도를 보입니다. 에르네스트는 어른이라는 이유로 혹은 덩치가 크다고 해서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강요하거나 가르치려 하지 않습니다. 『크리스마스트리』에서는 자신이 셀레스틴에게 해주고 싶은 형태의 크리스마스 파티와 선물이 있지만, 셀레스틴이 진정으로 원하는 파티가 에르네스트와 단둘이 눈밭에서 보내는 것임을 깨닫고 “그래 좋아. 그렇게 하자”라고 말합니다. 무엇보다 에르네스트는 셀레스틴의 생각과 감정을 읽기 위해 최대한 그녀의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듣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진정한 관심과 사랑의 표현으로 ‘너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있어.’를 표현하는 것이겠죠.

 

그림5. 크리스마스트리 (1995)


뿐만 아니라 그는 셀레스틴을 진정성 있게 격려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자신의 연주에 맞춰 노래하는 셀레스틴에게 “대체 어디에서 그렇게 사랑스러운 노래들을 배웠니?”라고 말하기도 하고 미로에 들어가는 문 앞에서 선뜻 발을 떼지 못하는 셀레스틴에게 자신을 믿고 들어오라는 듯한 몸짓으로 무릎까지 살짝 구부린 자세로 셀레스틴을 향해 두 팔을 뻗기도 합니다. 


4. 아이에게 바람직한 모델링이 되는 부모의 모습입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거울과 같은 존재이지요. 부모의 행동하는 모습 그대로를 여과 없이 받아들이고 모방하기 때문입니다. 에르네스트가 일상생활에서 타인을 배려하는 태도, 긍정적인 문제 해결 방식의 태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태도를 보여줌으로써 셀레스틴은 자연스럽게 에르네스트의 행동, 가치, 믿음 그리고 표정까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배우게 됩니다. 

『숲속 오두막』에서는 에르네스트와 셀레스틴이 공들여 만들어 놓은 오두막에 노숙자가 잠시 지내겠다며 쪽지를 남깁니다. 자신의 공간을 침해받았다는 생각에 실망하는 셀레스틴과 달리 에르네스트는 노숙자를 위해 음식과 그가 필요하다고 쪽지로 요구하는 물건들까지 준비합니다. 셀레스틴은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먼저 노숙자에게 무엇이 필요할지 생각하기에 이릅니다.

앞서 제시했던 『비 오는 날의 소풍』에서 에르네스트의 “비가 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거야”라는 제안은 직면한 문제에 대해 사고 전환을 하는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멋진 아이디어였지요. 에르네스트가 “소풍가는 날 왜 하필 비가 오는 거야!”하고 날씨를 원망했다면, 셀레스틴의 기분이 회복되기도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문제에 대해 부정적으로 접근하는 모습만 보여주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림6. 비 오는 날의 소풍 (1982)  


어른이라고 해서, 부모라고 해서 항상 완벽할 수는 없겠죠? 에르네스트는 자신이 잘못한 행동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거리 음악가의 연주 음악을 듣고 고향과 어머니에 대한 ‘향수’로 온통 머릿속이 가득 차게 된 에르네스트가 집안일도 하지 않고 셀레스틴도 살피지 않자 셀레스틴은 이를 무척 속상해합니다. 하지만 에르네스트는 셀레스틴에게 ‘아직 넌 어려서 이해 못 할 거야.’라고 하지 않습니다. 대신 자신의 가슴에 안고 “미안해, 셀레스틴. 아저씨가 잘못했어.”라며 자신의 행동에 대해 마음을 다해 사과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셀레스틴에게 어른, 아이 상관없이 사람이 실수하면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는 태도를 가르칩니다. 


그림7. 추억의 노래 (1998)


이상으로 가브리엘 뱅상의 『에르네스트와 셀레스틴』 그림책 시리즈에서 나타난 ‘좋은 부모됨’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작품이 그리고 있는 ‘좋은 부모됨’의 모습은 크게 두 가지의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우선 작품의 두 주인공이 혈연관계로 맺어진 가족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부모-자녀 관계, 더 나아가 인간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성찰하게 합니다. 에르네스트의 일관되고 조건 없는 사랑 안에서 셀레스틴은 의존적인 존재에서 점점 독립적인 개체로 성장해 나갑니다. 그 다음으로 본 연구는 그림책 매체의 교육적 가치를 재확인합니다. 『에르네스트와 셀레스틴』 그림책 시리즈를 자녀와 함께 읽는 동안 부모들은 좋은 부모의 롤모델을 제공받게 됩니다. 


출처 : 채송아, 현은자(2020), 가브리엘 뱅상의 <에르네스트와 셀레스틴> 시리즈에 나타난 좋은 부모됨(good parenting). 어린이문학교육연구 21(1), 1-28.





채송아 |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 석사졸업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항공사에서 오랫동안 마케터로 일했습니다. 다양한 예술 세계를 보여주는 그림책에 매료되어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아동문학 석사 학위를 받고 현재는 그림책으로 소통하는 그림책 연구가, 테라피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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