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 선생님의 정체는 무엇일까: 강경수의 『고민해결사 펭귄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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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들어가며
그림책 독자의 연령과 범위가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림책의 주 독자는 어린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국내외에서 본격적으로 가시화되고 있는 그림책의 크로스오버(crossover) 현상은 주로 독자층의 외연 확장을 일컫는다. 즉, 텍스트의 내포독자(implied reader)가 어린이가 아니라 성인일 수 있다는 것이다. 어린이보다 성인 독자를 겨냥한 텍스트도 외형적으로는 단순한 서사구조, 의인화된 동물들, 쉬운 어휘, 짧은 문장, 그리고 내용적으로는 모종의 교훈 제공 등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과 매우 유사하다. 그러나 그들 중에는 어린이 독자에게 유익을 줄 수 있을지 의구심을 품게 하는 책들도 있다.
본 평론의 대상인 『고민 해결사 펭귄 선생님』의 강경수 작가는 만화가로 출발하여 다수의 그림책을 창작했고, 『거짓말 같은 이야기』로 2011년 볼로냐 아동 도서전 논픽션 부문에서 라가치상을 수상함으로써 국제적으로 그 역량을 인정받기도 하였다. 『거짓말 같은 이야기』는 『전문가가 선정한 100권의 그림책』이라는 추천 그림책 목록(현은자, 김정준, 연혜민, 김민정, 김현경, 장시경, 2019)에도 실릴 정도로 좋은 평판을 받고 있다. 그런데 그의 최신작인 이 작품은 글과 그림의 기호학적 측면과 독자의 반응, 그리고 작가의 창작 의도의 측면에서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본고에서는 그림책 텍스트, 이 텍스트에 대한 독자의 반응, 그리고 독자의 창작 의도와 이전의 작품들과의 상호텍스트성을 다루어보고자 한다.[1]
II. 그림책 읽기
앞표지에는 책 제목과 함께 주인공인 펭귄 선생님이 책장을 뒤로 하고 독자를 향해 앉아 있다. 면지에는 푸른 주조색을 배경으로 주인공의 다양한 포즈가 그려져 있다. 두 번째 면지에서는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연상케 하는, 보름달이 뜬 컴컴한 하늘을 배경으로, 개구리가 창밖을 내다보며 “내일 펭귄 선생님께 가 봐야겠어.”라고 독백한다. 표제지에는 보름달이 뜬 캄캄한 밤과 마을이 그려져 있다. 본문 첫 장면에서는 펭귄 선생님이 차를 운전하여 높은 언덕 위에 있는 자신의 상담실로 출근한다. 그 다음 화면에서 펭귄은 책상 앞에 앉아 있고, 상담실 벽에 걸린 큰 괘종시계는 열 시를 알리고 있다. 펭귄의 머리는 단정하게 빗겨져 있고 책상 위에는 메모지와 펜, 컵, 책, 스탠드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등 뒤의 벽에는 달력과 함께 몇 개의 액자들이 걸려있다. ‘우리 아들’이라는 글과 함께 작은 펭귄의 사진, 사람의 뇌 구조를 보여주는 그림, 그리고 상담사 자격증이 걸려있으며, 벽 중앙에는 노란색 배경에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 동그라미들이 불규칙적으로 그려져 있는 액자가 걸려있다. 형태가 분명치 않은 그림 오른쪽에는 ‘COSMO’라는 단어가 적힌 액자가 보인다. 상담실 문밖에는 개구리와 악어, 카멜레온, 원숭이, 그리고 곰이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서 있다.
“상담을 시작하겠습니다.”라는 말이 문밖으로 들리자 내담자들은 한 명씩 차례로 상담실에 들어온다. 그리고 긴 의자에 누워 펭귄 선생님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다. 그런데 이 의자는 프로이드(Freud)(1856-1939)가 환자들에게 최면을 걸기 위해 사용했다는 가구와 흡사하게 생겼다. 내담자들의 고민은 이런 것들이다. 개구리는 겨울이 다가오면 자신도 모르게 잠이 쏟아지고, 악어는 자기 이빨이 너무 많은 것 같고, 카멜레온은 기분에 따라 얼굴색이 바뀌고,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지는 악몽을 꾸고, 곰은 이제 연어를 먹기 지겹다고 한다. 그런데 의자 옆에 앉아서 내담자들의 고민을 듣고 있는 펭귄의 태도가 왠지 석연치 않아 보인다. 그는 내담자와 시선을 맞추지 않고, 내담자에게 말을 건네지도 않는다. 대신 다리를 꼬고 앉아 메모지에 무엇인가를 끼적이기도 하고, 팔짱을 끼고 바닥을 바라보기도 하고, 컵의 물을 마시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담을 마친 동물들은 모두 밖에 모여 있다가 마지막 내담자인 곰이 상담실을 나오자 모두 자신의 고민이 해결되었다면서 뛸 듯이 기뻐한다. 신나게 언덕을 내려가는 동물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펭귄 옆에 “고민이란 진심으로 이야기를 들어줄 상대가 필요한 법, 펭귄 선생님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동물들의 고민을 경청했습니다”라는 글이 있다.
흥미로운 것은 동물들이 펭귄 선생님의 상담을 받는 장면마다 문가의 책꽂이 위에 놓인 액자의 알파벳이 차례로 C-O-S-M-O로 바뀌며 다시 ‘COSMO’라는 단어를 만든다는 것이다. 벽시계가 오후 6시가 되었음을 알릴 때 펭귄의 머리는 부스스하고 얼굴빛은 어두우며, 아침에 잘 정돈되어 있던 책상 위의 물건들은 어수선하게 흩어져 있고, COSMO라는 글자가 새겨진 액자는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다. 펭귄의 외모와 주위 사물들의 흐트러진 모습은 온종일 내담자들의 고민을 들어주어야 했던 그의 피로감을 전달하는 듯하다. 그러나 책장을 넘기자 놀라운 반전이 일어난다. 펭귄이 귀에서 귀마개를 ‘뽁’하고 빼며 “퇴근 시간이군”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마지막 장면에서는 “보람찬 하루를 보낸 펭귄 선생님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라는 글과 함께 펭귄이 차의 헤드라이트를 밝히고 귀가하는 모습이 원경으로 그려져 있다.
이 작품에서 글은 동물들이 털어놓는 고민거리를, 그림은 상담실이라는 배경과 펭귄과 내담자 동물들을 그리고 있으므로 글과 그림은 중복되지 않고 보완관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상담하는 상황에서의 그림 이미지는 내담자 옆에 앉아 있는 주인공 펭귄 상담사를 계속 비추고 있지만 그의 태도는 과연 내담자의 고민을 성의 있게 듣고 있는 것일까라는 의구심을 자아낸다. 그리고 결국 그 의구심은 사실로 드러난다. 펭귄 상담사는 이제껏 귀마개를 끼고 내담자들의 말과 고민거리를 전혀 듣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마지막 장면의 “보람찬 하루를 보낸”이라는 글에서 “보람찬”이란 단어의 의미는 그림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자신이 그들의 말을 전혀 듣고 있지 않았을지라도 내담자들이 만족하니 보람을 느꼈다는 것일까.
등장인물들의 관계는 작품을 해석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므로 펭귄과 다른 동물들의 관계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상담소가 자리 잡은 높은 언덕과 내담자들이 사는 아랫마을이라는 지리적 위치는 펭귄과 내담자들의 관계가 수평적이지 않음을 암시한다. 또한 내담자들과 상담사의 행동은 그들의 사회적, 심리적 위계를 함축한다. 내담자들이 모두 아침에 와서 상담소가 문 열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상담실에는 별도의 예약 절차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온종일 자기 차례가 되기를 기다렸다가 순서에 맞춰 한 명씩 들어간다. 벽시계를 보면 상담 시간은 내담자 개인당 약 1-2시간 정도 소요된 것으로 추측된다. 다음 순번인 동물들은 대기실의 작은 창문을 통해 상담실 안을 훔쳐보고 있다. 내담자들은 상담을 마치고도 귀가하지 않고 마지막 차례인 곰이 상담을 마치고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자신의 문제들이 모두 해결되었다고 뛸 듯이 기뻐한다.
마지막으로, 글과 그림의 관계나 메시지로 볼 때 이 작품은 풍자(satire)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제목에서도 보았듯이 이 텍스트는 상담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으나 ‘고민하기’와 ‘상담하기’는 풍자의 대상처럼 다루어지는 듯 하다. 내담자 동물들이 늘어 놓는 고민거리란 본래 그들의 생태에 관한 것이므로 타인은 물론, 심지어 자신들도 어찌할 수 없는 성격의 것이다. 즉, 자신의 특성과 한계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다. 펭귄이 동물들과 눈을 맞추지 않고, 심지어 귀를 막고 있었던 이유는 이러한 상투적인 차원의 고민은 들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라고 펭귄을 옹호할 수 있다. 동물들은 자신들의 고충을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했고, 그저 그것으로 문제는 해결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상담자로서의 펭귄의 행위에는 아무런 윤리적 문제가 없는 것일까.
Ⅲ. 독자들의 반응
필자는 2021년도 1학기에 아동문학을 온라인으로 수강하고 있는 학부 학생 45명과 대학원생 2명, 총 47명에게 이 작품을 읽어주고 서평을 써보라는 과제를 내주었다. 학생들은 그 동안 격주에 한 작품씩, 그간 총 여섯 편의 그림책 서평 과제를 수행한 후이므로 숙련된 그림책 독자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텍스트의 마지막 장면에서의 펭귄의 행위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은 내게는 퍽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그들은 대부분 펭귄에게 배반감과 당혹감을 느꼈다고 언급하기는 했으나, 펭귄의 태도를 부정적이거나 위선적으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펭귄의 행위를 대수롭지 않다는 듯 넘겨 버리거나 유머로 받아들이는 듯 했다.
학생들의 서평 내용을 분석,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학생들은 경청이라는 교훈을 얻었다고 평가했다. “역시 경청의 힘은 대단하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고민을 늘어놓을 때는 아무 소리 하지 않고 묵묵히 들어주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다.” 등이다. 두 번째 반응은 ‘고민’의 본질을 언급한 것이다. 즉, 고민의 해답은 자기 안에 있는 것이니 상담사의 태도는 어차피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결과론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펭귄이 경청은 하지 않았지만, 동물들의 고민은 해결되었으니 펭귄의 태도는 문제 될 것 없다. 귀마개를 꽂고 있을지라도 오랜 시간 동안 그들 옆에 있어 준 펭귄의 태도는 칭찬할 만하다는 서평도 있었다. 심지어 어떤 학생은 이 작품을 통해 작가가 따뜻한 세계관을 가지고 어린이들에게 경청하는 태도와 남을 배려하는 자세를 재미있게 전달하고 있다고 작가를 두둔하였다. 47명의 학생 중 오직 두 명의 대학원 학생과 한 명의 학부 학생만이 펭귄의 위선적 태도를 비판하였다. 즉 대부분의 학생은 펭귄의 거짓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이유를 추론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그림이 보여주는 반전에도 불구하고 경청의 당위성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글과 그림의 비일관성을 알아채지 못했을 가능성. 둘째, 고민 해결사 펭귄 선생님이라는 제목이 주는 선입견, 셋째, 국제적인 상을 받은 강경수 작가의 명성, 마지막으로, 모든 것을 결과론적으로 판단하려는 태도, 즉 수단이 어떠하든 결과가 중요하다는 결과론적인 사고방식 때문인지 모른다.
인터넷 서평란을 살펴보니 부모로 추측되는 독자들은 우리 학생들과 유사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예를 들어, 2021년 10월, 인터넷 서점인 교보문고, yes24, 그리고 알라딘의 서평을 분석한 결과, 총 29건의 서평 중에서 펭귄의 거짓된 행동을 문제 삼은 서평은 세 건뿐이었다. 대부분은 매일 쓸데없는 고민만 하는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는 것과 아이들은 물론 자신도 경청의 힘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반전의 부분은 단순한 유머로 치부하는 듯했다. 만점을 준 서평의 예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퇴근 시간이 되어 퇴근 준비를 하는 펭귄 선생님. 여기서 반전이 나오는데 알고 보니 펭귄선생님이 귀에 귀마개를 꽂고 있었던 것...!! 그럼 동물들의 상담을 듣고 있지 않았던 건가.. 아이들은 이 장면에서 살짝 의아해한다. 어쩐지 펭귄 선생님이 상담을 듣는 표정이 조는(?) 것 같더라니...ㅋ 그러나 중요한 것은 동물들이 속이 시원해지고 기분이 한껏 좋아져서 상담실을 나갔다는 것. 진정으로 중요한 마음의 치유는 어떤 답변을 내려주는 게 아니라 경청해주는 것이 아닐까.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도 그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 많이 회복된다고 들었다.” - 교보문고 (5/5)
“...이 책에는 반전이 있는데 열심히 일한 펭귄 선생님은 6시가 되자 퇴근을 준비한다. 그런데 귀에서 뾱! 하고 귀마개를 빼는것!! 그냥 그저 말없이 동물들의 이야기를 들어줬을 뿐.. 긴 시간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은 동물들은 그 자체로 마음이 가벼워지고 기뻐진 것이다. 내 말을 하지 않고 상대방의 마음을 들어 주는 것. 사람을 살리는 일이란 것을 깨닫는다. 아들이 또 내가 그런 사람이 되길...참 좋은책 입니다. 꼭 읽어보시길 바래요~~~”- yes24 (10.0/10.0)
반면, 오직 세 건의 서평만이 펭귄의 행위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쳤다. 아래 예는 자신의 자녀만이 아니라 자신도 그 반전 부분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내용의 글이다.
“제목과 초반 이야기 설정이 흥미로워 구매했어요. 과연 어떻게 고민을 해결해 줄까 그런데 8살 딸 아이는 펭귄 선생님의 경청이라는 방법이 이해하기는 쉽지 않은 매우 하이코드예요. 경청까지는 뭐 알겠다는데 귀마개는 너무 이상하대요. 웃기지도 공감이 되지도 않습니다. 인상을 찌푸리네요. 제 입장에서도 이건 설명? 의견 나누기가 좀 벅차네요. 작가님의 의도는 뭔지 짐작은 가나 실제 독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하셨는지 궁금한 대목입니다~ - 알라딘 (3.0/5.0)
IV. 작가의 의도
그렇다면 작가의 의도는 무엇일까? 작가는 자신의 창작 의도를 다음과 같이 책의 뒤 면지에 밝혀 놓았다.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고민은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해결할 수 있는 고민은 고민이라고 부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해결하지 못하는 많은 고민으로 걱정하고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서 이 책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럴 때는 펭귄 선생님처럼 말없이 고민을 들어주는 존재에게 이야기하는 것으로 마음이 편해질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런데 이 글에서 “펭귄 선생님처럼 말없이 고민을 들어주는 존재”라는 구절은 전혀 납득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인터넷 서평에서 펭귄이 경청하였다는 지적과 동일하다. 그런데 귀마개를 꽂고서 어떻게 타인의 고민을 경청할 수 있겠는가. 그는 지금 ‘경청’이라는 언어를 오용(誤用)하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독자들은 작가 강경수 작가가 의도한 방식대로 작품을 읽고 있는 듯 하다.
두 번째로, 이 텍스트와 작가가 창작한 다른 텍스트 간에는 높은 상호텍스트성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상호텍스트성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단서는 주인공의 뒷벽에 걸린 액자의“코스모(COSMO)”라는 단어이다. 이것은 강경수 작가의 판타지 첩보 액션 그래픽 노블 시리즈인<코드네임>시리즈에 나타나는,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테러 조직의 이름과 같다. <코드네임> 시리즈는 평범한 소년 ‘강파랑’이 우연히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나 MSG 첩보국의 비밀 첩보원이자 미래의 엄마 바이올렛(코드네임V)을 만나 임무를 수행하는 이야기이다. 코드네임의 네 번째 시리즈인 코드네임R에서는 고민 해결사 펭귄 선생님과 똑같은 외모의 인물이 등장한다. 그의 이름은 ‘닥터 이블P’로 코스모의 보스이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닥터 이블P는 악인이다. 그는 영롱하고 투명한 눈을 가지고 있어서 누구든지 그 앞에서는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싶어지며, 만일 누군가 그의 성질을 건드린다면 목숨을 잃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코드네임> 내에서 닥터 이블 P는 말을 하지 않으며 그를 30년 가까이 모신 최측근이 그에게 수화나 눈으로 소통한다.
<고민 해결사 펭귄 선생님>에서 펭귄 선생님의 상담실 바깥에는 ‘Dr. Penguin’이라고 쓰여있는데 펭귄 선생님과 닥터 이블 P는 외모도 같고, ‘doctor’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어서 두 인물이 같은 캐릭터임을 추측할 수 있다. 이는 내담자들이 고민을 늘어놓을 동안 그가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이유를 설명하는 단서가 된다. 그는 본래 언어로 소통하는 인물이 아니었으며 게다가 남의 고민에 귀를 기울일 정도로 배려심있는 인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상담’은 이 작품의 주요 소재로 사용되고 있으므로 상담에 대한 전문적 견해는 텍스트를 해석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상담의 가장 기본적인 것은 내담자 스스로가 자신의 문제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음을 아는 것이며, 따라서 상담 상황에서 상담자는 내담자를 평가하기보다는 그의 말의 의미를 파악하고 마음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였다.[2] 그렇다면 특정한 상담이론이나 치료 방법보다 상담자라는 요인이 치료에 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러나 상담자에게 요구되는 ‘경청’의 자세와 펭귄 선생님처럼 이야기를 듣는 척하는 행위와는 차이가 크다.
상담에 대한 전문가들의 견해와 대학생들과 인터넷 서평자들이 보인 태도 간에는 매우 큰 간극이 존재한다. 서평자들은 상담사 펭귄이 실제로 경청을 했는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내담자들자신이 고민이 해결되었다고 느끼면 상담이 성공한 것이라고 평가하였다. 즉, 상담에서는 내담자의 즉각적인 만족스러운 ‘느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이는 일반인들의 상담에 대한 통념을 반영한 것일지 모른다. 상담자가 그냥 조용히 들어주기만 해도 문제는 해결된다는... 결국 펭귄의 위선적인 행동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 사회에 편만하게 퍼져있는 결과 위주의 사고방식 때문이 아닐까.
V. 결론
결론적으로 이 작품에는 고민하기와 상담하기라는 행위에 투영된 인간의 실존적 상태를 자조(自嘲)하는 냉소적인(cynical) 분위기와 더불어 방법보다 결과를 우선시 하는, 결과 위주의 사고방식이 내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린이 문학 교육을 위한 독서 자료로서 『고민 해결사 펭귄 선생님』의 가치는 무엇일까. 다시 말해 이 텍스트는 어린이에게 읽어 줄 만한 가치가 있을까? 물론 이런 질문 자체에 대한 반박도 있을 수 있다. 가치 평가는 원천적으로 주관적이어서 그것의 진위를 따질 수 없다는 상대주의적 주장이다. 예를 들어, 예술 작품의 가치는 평론가가 어떤 예술관을 갖느냐에 따라 사뭇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상대주의적 주장은 허용되다 못해 대세가 되고 있는 분위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한 사회나 개인이 수행한 행위의 도덕적 가치는 그의 취향이나 기분대로 정해지지는 것은 아니다. 평가는 필연적으로 일종의 판단이며, 모든 판단은 논리적으로 규범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어린이 도서의 가치판단은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의 목적 안에서 행해져 왔다. 플라토와 같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현대에도 보편 진리와 미덕을 어린이들에게 전수하는 것이 교육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라는 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다중지능이론가이자 심리학자인 가드너 역시 교수법이나 교재는 다를지라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에서 인간 사회가 진실한 것, 아름다운 것, 선한 것을 추구해 왔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즉 어느 시대나 사회에서도 진, 선, 미라는 덕목은 교육의 규범적 지침으로 제시될 수 있다는 것이다.[3]
그렇다면 『고민 해결사 펭귄 선생님』의 예술성 평가에 앞서서 전달하는 메시지가 이러한 규범에 맞는 것인지를 판단할 필요가 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이 작품은 무엇보다 인식론과 윤리적 측면에서 비판의 여지가 많다. 우선, 비록 소수이기는 하지만 인터넷 독자 서평이 보여준 바와 같이 독자들은 해석 과정에서 혼란을 경험할 수 있다. 그림책 읽기는 글에서 그림으로, 그리고 그림에서 글로의 순환적 해석 과정을 거치므로 글과 그림이 전달하는 메시지가 모순적일 때 성인과 어린이 모두 해석의 어려움을 갖게 된다. 그 뿐 아니라 어린이 독자들은 상담에 대해 왜곡된 정보와 태도를 갖게 될 뿐 아니라, 펭귄의 위선적인 행동에도 불구하고 그의 행위가 내담자들에 의해 칭송받는 것을 보며 잘못된 결과론적 가치관을 갖게 될 수 있다. 더우기 작품 뒤 면지에 실린 작가의 변(辯)은 그러한 인식론적, 윤리적 혼란을 부추긴다.
밴후저[4]는 “텍스트에 어떻게 반응할지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나는 실제로 나 자신을 선택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즉, 텍스트에 대한 반응이 인간의 실존적 차원과 관계되어 있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성인들이 어린이에게 본받을만한 롤 모델이 등장하는 작품을 읽어주려고 했던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런데 인터넷 서평을 비롯하여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그림책 홍보 공간에서는 작가와 작품의 수상 경력이 최우선의 추천 기준이 되고 있음은 심히 우려스러운 현상이다. 그림책 작가의 독창성과 예술성이 곧 그 작품의 윤리성을 담보(擔保)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좋은 그림책의 언어는 쉬워 보이지만 결코 경박하지 않으며, 어조는 밝고 유쾌하지만 정직하고 성실하고 진지하다. 진정 어린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창작활동을 하는 작가라면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담아 어린이 독자에게 유익하고 가치있는 것을 전달하고자 하지 않을까.
[1] 이 글은 현은자, 이지운의 『강경수 작가의 고민해결사 펭귄 선생님』(어린이문학교육연구 23: 1, 1-17)을 요약, 수정한 것이다.
[2] 김영근 (2013). 치료적 요인으로서의 상담자 요인에 대한 내담자의 인식 차원. 한국심리학회지: 상담및 심리치료, 25(2), 203-226,
송동림 (2010). 경청에 대한 상담학적 고찰. 신학전망, (168), 60-93.
김도식 (2019). 철학상담에서 철학의 역할. 통일인문학, 77(-), 137-165.
[3] Gardner, H. (2015). 인간은 어떻게 배우는가? [The disciplined mind]. (류숙희 역). 서울: 사회평론.(원본발간일 2000년)
[4] Vanhoozer, K., Anderson, C. A., & Sleasman, M. J. (2009). 문화신학. [Everyday theology]. (윤석인 역). 서울: 부흥과 개혁사. (원본발간일 2007년)
| 현은자 |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 교수 이화여자대학교 교육학과 졸업 후 Eastern Michigan University 에서 석사, University of Michigan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 어린이문학교육학회 회장 및 한국 기독교 유아교 육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아동 청소년학과 교수이며 사회과학대학 부설 생활과 학 연구소 그림책 전문가 과정에서 “기독신앙과 그림책 읽기”를 강의하고 있으며, <기독교 세계관으로 아동문학보기>, <그림책의 이해>(공저), <그림책과 예술교육>(공저>, <그림책으로 보는 아동과 우리사회>(공저), <100권의 그림책>(공저) 등 그림책 관련 저서가 있다. |
펭귄 선생님의 정체는 무엇일까: 강경수의 『고민해결사 펭귄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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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독자의 연령과 범위가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림책의 주 독자는 어린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국내외에서 본격적으로 가시화되고 있는 그림책의 크로스오버(crossover) 현상은 주로 독자층의 외연 확장을 일컫는다. 즉, 텍스트의 내포독자(implied reader)가 어린이가 아니라 성인일 수 있다는 것이다. 어린이보다 성인 독자를 겨냥한 텍스트도 외형적으로는 단순한 서사구조, 의인화된 동물들, 쉬운 어휘, 짧은 문장, 그리고 내용적으로는 모종의 교훈 제공 등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과 매우 유사하다. 그러나 그들 중에는 어린이 독자에게 유익을 줄 수 있을지 의구심을 품게 하는 책들도 있다.
본 평론의 대상인 『고민 해결사 펭귄 선생님』의 강경수 작가는 만화가로 출발하여 다수의 그림책을 창작했고, 『거짓말 같은 이야기』로 2011년 볼로냐 아동 도서전 논픽션 부문에서 라가치상을 수상함으로써 국제적으로 그 역량을 인정받기도 하였다. 『거짓말 같은 이야기』는 『전문가가 선정한 100권의 그림책』이라는 추천 그림책 목록(현은자, 김정준, 연혜민, 김민정, 김현경, 장시경, 2019)에도 실릴 정도로 좋은 평판을 받고 있다. 그런데 그의 최신작인 이 작품은 글과 그림의 기호학적 측면과 독자의 반응, 그리고 작가의 창작 의도의 측면에서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본고에서는 그림책 텍스트, 이 텍스트에 대한 독자의 반응, 그리고 독자의 창작 의도와 이전의 작품들과의 상호텍스트성을 다루어보고자 한다.[1]
II. 그림책 읽기
앞표지에는 책 제목과 함께 주인공인 펭귄 선생님이 책장을 뒤로 하고 독자를 향해 앉아 있다. 면지에는 푸른 주조색을 배경으로 주인공의 다양한 포즈가 그려져 있다. 두 번째 면지에서는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연상케 하는, 보름달이 뜬 컴컴한 하늘을 배경으로, 개구리가 창밖을 내다보며 “내일 펭귄 선생님께 가 봐야겠어.”라고 독백한다. 표제지에는 보름달이 뜬 캄캄한 밤과 마을이 그려져 있다. 본문 첫 장면에서는 펭귄 선생님이 차를 운전하여 높은 언덕 위에 있는 자신의 상담실로 출근한다. 그 다음 화면에서 펭귄은 책상 앞에 앉아 있고, 상담실 벽에 걸린 큰 괘종시계는 열 시를 알리고 있다. 펭귄의 머리는 단정하게 빗겨져 있고 책상 위에는 메모지와 펜, 컵, 책, 스탠드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등 뒤의 벽에는 달력과 함께 몇 개의 액자들이 걸려있다. ‘우리 아들’이라는 글과 함께 작은 펭귄의 사진, 사람의 뇌 구조를 보여주는 그림, 그리고 상담사 자격증이 걸려있으며, 벽 중앙에는 노란색 배경에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 동그라미들이 불규칙적으로 그려져 있는 액자가 걸려있다. 형태가 분명치 않은 그림 오른쪽에는 ‘COSMO’라는 단어가 적힌 액자가 보인다. 상담실 문밖에는 개구리와 악어, 카멜레온, 원숭이, 그리고 곰이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서 있다.
“상담을 시작하겠습니다.”라는 말이 문밖으로 들리자 내담자들은 한 명씩 차례로 상담실에 들어온다. 그리고 긴 의자에 누워 펭귄 선생님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다. 그런데 이 의자는 프로이드(Freud)(1856-1939)가 환자들에게 최면을 걸기 위해 사용했다는 가구와 흡사하게 생겼다. 내담자들의 고민은 이런 것들이다. 개구리는 겨울이 다가오면 자신도 모르게 잠이 쏟아지고, 악어는 자기 이빨이 너무 많은 것 같고, 카멜레온은 기분에 따라 얼굴색이 바뀌고,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지는 악몽을 꾸고, 곰은 이제 연어를 먹기 지겹다고 한다. 그런데 의자 옆에 앉아서 내담자들의 고민을 듣고 있는 펭귄의 태도가 왠지 석연치 않아 보인다. 그는 내담자와 시선을 맞추지 않고, 내담자에게 말을 건네지도 않는다. 대신 다리를 꼬고 앉아 메모지에 무엇인가를 끼적이기도 하고, 팔짱을 끼고 바닥을 바라보기도 하고, 컵의 물을 마시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담을 마친 동물들은 모두 밖에 모여 있다가 마지막 내담자인 곰이 상담실을 나오자 모두 자신의 고민이 해결되었다면서 뛸 듯이 기뻐한다. 신나게 언덕을 내려가는 동물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펭귄 옆에 “고민이란 진심으로 이야기를 들어줄 상대가 필요한 법, 펭귄 선생님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동물들의 고민을 경청했습니다”라는 글이 있다.
흥미로운 것은 동물들이 펭귄 선생님의 상담을 받는 장면마다 문가의 책꽂이 위에 놓인 액자의 알파벳이 차례로 C-O-S-M-O로 바뀌며 다시 ‘COSMO’라는 단어를 만든다는 것이다. 벽시계가 오후 6시가 되었음을 알릴 때 펭귄의 머리는 부스스하고 얼굴빛은 어두우며, 아침에 잘 정돈되어 있던 책상 위의 물건들은 어수선하게 흩어져 있고, COSMO라는 글자가 새겨진 액자는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다. 펭귄의 외모와 주위 사물들의 흐트러진 모습은 온종일 내담자들의 고민을 들어주어야 했던 그의 피로감을 전달하는 듯하다. 그러나 책장을 넘기자 놀라운 반전이 일어난다. 펭귄이 귀에서 귀마개를 ‘뽁’하고 빼며 “퇴근 시간이군”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마지막 장면에서는 “보람찬 하루를 보낸 펭귄 선생님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라는 글과 함께 펭귄이 차의 헤드라이트를 밝히고 귀가하는 모습이 원경으로 그려져 있다.
이 작품에서 글은 동물들이 털어놓는 고민거리를, 그림은 상담실이라는 배경과 펭귄과 내담자 동물들을 그리고 있으므로 글과 그림은 중복되지 않고 보완관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상담하는 상황에서의 그림 이미지는 내담자 옆에 앉아 있는 주인공 펭귄 상담사를 계속 비추고 있지만 그의 태도는 과연 내담자의 고민을 성의 있게 듣고 있는 것일까라는 의구심을 자아낸다. 그리고 결국 그 의구심은 사실로 드러난다. 펭귄 상담사는 이제껏 귀마개를 끼고 내담자들의 말과 고민거리를 전혀 듣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마지막 장면의 “보람찬 하루를 보낸”이라는 글에서 “보람찬”이란 단어의 의미는 그림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자신이 그들의 말을 전혀 듣고 있지 않았을지라도 내담자들이 만족하니 보람을 느꼈다는 것일까.
등장인물들의 관계는 작품을 해석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므로 펭귄과 다른 동물들의 관계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상담소가 자리 잡은 높은 언덕과 내담자들이 사는 아랫마을이라는 지리적 위치는 펭귄과 내담자들의 관계가 수평적이지 않음을 암시한다. 또한 내담자들과 상담사의 행동은 그들의 사회적, 심리적 위계를 함축한다. 내담자들이 모두 아침에 와서 상담소가 문 열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상담실에는 별도의 예약 절차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온종일 자기 차례가 되기를 기다렸다가 순서에 맞춰 한 명씩 들어간다. 벽시계를 보면 상담 시간은 내담자 개인당 약 1-2시간 정도 소요된 것으로 추측된다. 다음 순번인 동물들은 대기실의 작은 창문을 통해 상담실 안을 훔쳐보고 있다. 내담자들은 상담을 마치고도 귀가하지 않고 마지막 차례인 곰이 상담을 마치고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자신의 문제들이 모두 해결되었다고 뛸 듯이 기뻐한다.
마지막으로, 글과 그림의 관계나 메시지로 볼 때 이 작품은 풍자(satire)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제목에서도 보았듯이 이 텍스트는 상담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으나 ‘고민하기’와 ‘상담하기’는 풍자의 대상처럼 다루어지는 듯 하다. 내담자 동물들이 늘어 놓는 고민거리란 본래 그들의 생태에 관한 것이므로 타인은 물론, 심지어 자신들도 어찌할 수 없는 성격의 것이다. 즉, 자신의 특성과 한계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다. 펭귄이 동물들과 눈을 맞추지 않고, 심지어 귀를 막고 있었던 이유는 이러한 상투적인 차원의 고민은 들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라고 펭귄을 옹호할 수 있다. 동물들은 자신들의 고충을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했고, 그저 그것으로 문제는 해결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상담자로서의 펭귄의 행위에는 아무런 윤리적 문제가 없는 것일까.
Ⅲ. 독자들의 반응
필자는 2021년도 1학기에 아동문학을 온라인으로 수강하고 있는 학부 학생 45명과 대학원생 2명, 총 47명에게 이 작품을 읽어주고 서평을 써보라는 과제를 내주었다. 학생들은 그 동안 격주에 한 작품씩, 그간 총 여섯 편의 그림책 서평 과제를 수행한 후이므로 숙련된 그림책 독자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텍스트의 마지막 장면에서의 펭귄의 행위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은 내게는 퍽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그들은 대부분 펭귄에게 배반감과 당혹감을 느꼈다고 언급하기는 했으나, 펭귄의 태도를 부정적이거나 위선적으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펭귄의 행위를 대수롭지 않다는 듯 넘겨 버리거나 유머로 받아들이는 듯 했다.
학생들의 서평 내용을 분석,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학생들은 경청이라는 교훈을 얻었다고 평가했다. “역시 경청의 힘은 대단하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고민을 늘어놓을 때는 아무 소리 하지 않고 묵묵히 들어주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다.” 등이다. 두 번째 반응은 ‘고민’의 본질을 언급한 것이다. 즉, 고민의 해답은 자기 안에 있는 것이니 상담사의 태도는 어차피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결과론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펭귄이 경청은 하지 않았지만, 동물들의 고민은 해결되었으니 펭귄의 태도는 문제 될 것 없다. 귀마개를 꽂고 있을지라도 오랜 시간 동안 그들 옆에 있어 준 펭귄의 태도는 칭찬할 만하다는 서평도 있었다. 심지어 어떤 학생은 이 작품을 통해 작가가 따뜻한 세계관을 가지고 어린이들에게 경청하는 태도와 남을 배려하는 자세를 재미있게 전달하고 있다고 작가를 두둔하였다. 47명의 학생 중 오직 두 명의 대학원 학생과 한 명의 학부 학생만이 펭귄의 위선적 태도를 비판하였다. 즉 대부분의 학생은 펭귄의 거짓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이유를 추론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그림이 보여주는 반전에도 불구하고 경청의 당위성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글과 그림의 비일관성을 알아채지 못했을 가능성. 둘째, 고민 해결사 펭귄 선생님이라는 제목이 주는 선입견, 셋째, 국제적인 상을 받은 강경수 작가의 명성, 마지막으로, 모든 것을 결과론적으로 판단하려는 태도, 즉 수단이 어떠하든 결과가 중요하다는 결과론적인 사고방식 때문인지 모른다.
인터넷 서평란을 살펴보니 부모로 추측되는 독자들은 우리 학생들과 유사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예를 들어, 2021년 10월, 인터넷 서점인 교보문고, yes24, 그리고 알라딘의 서평을 분석한 결과, 총 29건의 서평 중에서 펭귄의 거짓된 행동을 문제 삼은 서평은 세 건뿐이었다. 대부분은 매일 쓸데없는 고민만 하는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는 것과 아이들은 물론 자신도 경청의 힘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반전의 부분은 단순한 유머로 치부하는 듯했다. 만점을 준 서평의 예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반면, 오직 세 건의 서평만이 펭귄의 행위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쳤다. 아래 예는 자신의 자녀만이 아니라 자신도 그 반전 부분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내용의 글이다.
IV. 작가의 의도
그렇다면 작가의 의도는 무엇일까? 작가는 자신의 창작 의도를 다음과 같이 책의 뒤 면지에 밝혀 놓았다.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고민은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해결할 수 있는 고민은 고민이라고 부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해결하지 못하는 많은 고민으로 걱정하고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서 이 책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럴 때는 펭귄 선생님처럼 말없이 고민을 들어주는 존재에게 이야기하는 것으로 마음이 편해질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런데 이 글에서 “펭귄 선생님처럼 말없이 고민을 들어주는 존재”라는 구절은 전혀 납득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인터넷 서평에서 펭귄이 경청하였다는 지적과 동일하다. 그런데 귀마개를 꽂고서 어떻게 타인의 고민을 경청할 수 있겠는가. 그는 지금 ‘경청’이라는 언어를 오용(誤用)하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독자들은 작가 강경수 작가가 의도한 방식대로 작품을 읽고 있는 듯 하다.
두 번째로, 이 텍스트와 작가가 창작한 다른 텍스트 간에는 높은 상호텍스트성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상호텍스트성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단서는 주인공의 뒷벽에 걸린 액자의“코스모(COSMO)”라는 단어이다. 이것은 강경수 작가의 판타지 첩보 액션 그래픽 노블 시리즈인<코드네임>시리즈에 나타나는,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테러 조직의 이름과 같다. <코드네임> 시리즈는 평범한 소년 ‘강파랑’이 우연히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나 MSG 첩보국의 비밀 첩보원이자 미래의 엄마 바이올렛(코드네임V)을 만나 임무를 수행하는 이야기이다. 코드네임의 네 번째 시리즈인 코드네임R에서는 고민 해결사 펭귄 선생님과 똑같은 외모의 인물이 등장한다. 그의 이름은 ‘닥터 이블P’로 코스모의 보스이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닥터 이블P는 악인이다. 그는 영롱하고 투명한 눈을 가지고 있어서 누구든지 그 앞에서는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싶어지며, 만일 누군가 그의 성질을 건드린다면 목숨을 잃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코드네임> 내에서 닥터 이블 P는 말을 하지 않으며 그를 30년 가까이 모신 최측근이 그에게 수화나 눈으로 소통한다.
<고민 해결사 펭귄 선생님>에서 펭귄 선생님의 상담실 바깥에는 ‘Dr. Penguin’이라고 쓰여있는데 펭귄 선생님과 닥터 이블 P는 외모도 같고, ‘doctor’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어서 두 인물이 같은 캐릭터임을 추측할 수 있다. 이는 내담자들이 고민을 늘어놓을 동안 그가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이유를 설명하는 단서가 된다. 그는 본래 언어로 소통하는 인물이 아니었으며 게다가 남의 고민에 귀를 기울일 정도로 배려심있는 인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상담’은 이 작품의 주요 소재로 사용되고 있으므로 상담에 대한 전문적 견해는 텍스트를 해석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상담의 가장 기본적인 것은 내담자 스스로가 자신의 문제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음을 아는 것이며, 따라서 상담 상황에서 상담자는 내담자를 평가하기보다는 그의 말의 의미를 파악하고 마음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였다.[2] 그렇다면 특정한 상담이론이나 치료 방법보다 상담자라는 요인이 치료에 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러나 상담자에게 요구되는 ‘경청’의 자세와 펭귄 선생님처럼 이야기를 듣는 척하는 행위와는 차이가 크다.
상담에 대한 전문가들의 견해와 대학생들과 인터넷 서평자들이 보인 태도 간에는 매우 큰 간극이 존재한다. 서평자들은 상담사 펭귄이 실제로 경청을 했는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내담자들자신이 고민이 해결되었다고 느끼면 상담이 성공한 것이라고 평가하였다. 즉, 상담에서는 내담자의 즉각적인 만족스러운 ‘느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이는 일반인들의 상담에 대한 통념을 반영한 것일지 모른다. 상담자가 그냥 조용히 들어주기만 해도 문제는 해결된다는... 결국 펭귄의 위선적인 행동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 사회에 편만하게 퍼져있는 결과 위주의 사고방식 때문이 아닐까.
V. 결론
결론적으로 이 작품에는 고민하기와 상담하기라는 행위에 투영된 인간의 실존적 상태를 자조(自嘲)하는 냉소적인(cynical) 분위기와 더불어 방법보다 결과를 우선시 하는, 결과 위주의 사고방식이 내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린이 문학 교육을 위한 독서 자료로서 『고민 해결사 펭귄 선생님』의 가치는 무엇일까. 다시 말해 이 텍스트는 어린이에게 읽어 줄 만한 가치가 있을까? 물론 이런 질문 자체에 대한 반박도 있을 수 있다. 가치 평가는 원천적으로 주관적이어서 그것의 진위를 따질 수 없다는 상대주의적 주장이다. 예를 들어, 예술 작품의 가치는 평론가가 어떤 예술관을 갖느냐에 따라 사뭇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상대주의적 주장은 허용되다 못해 대세가 되고 있는 분위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한 사회나 개인이 수행한 행위의 도덕적 가치는 그의 취향이나 기분대로 정해지지는 것은 아니다. 평가는 필연적으로 일종의 판단이며, 모든 판단은 논리적으로 규범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어린이 도서의 가치판단은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의 목적 안에서 행해져 왔다. 플라토와 같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현대에도 보편 진리와 미덕을 어린이들에게 전수하는 것이 교육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라는 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다중지능이론가이자 심리학자인 가드너 역시 교수법이나 교재는 다를지라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에서 인간 사회가 진실한 것, 아름다운 것, 선한 것을 추구해 왔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즉 어느 시대나 사회에서도 진, 선, 미라는 덕목은 교육의 규범적 지침으로 제시될 수 있다는 것이다.[3]
그렇다면 『고민 해결사 펭귄 선생님』의 예술성 평가에 앞서서 전달하는 메시지가 이러한 규범에 맞는 것인지를 판단할 필요가 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이 작품은 무엇보다 인식론과 윤리적 측면에서 비판의 여지가 많다. 우선, 비록 소수이기는 하지만 인터넷 독자 서평이 보여준 바와 같이 독자들은 해석 과정에서 혼란을 경험할 수 있다. 그림책 읽기는 글에서 그림으로, 그리고 그림에서 글로의 순환적 해석 과정을 거치므로 글과 그림이 전달하는 메시지가 모순적일 때 성인과 어린이 모두 해석의 어려움을 갖게 된다. 그 뿐 아니라 어린이 독자들은 상담에 대해 왜곡된 정보와 태도를 갖게 될 뿐 아니라, 펭귄의 위선적인 행동에도 불구하고 그의 행위가 내담자들에 의해 칭송받는 것을 보며 잘못된 결과론적 가치관을 갖게 될 수 있다. 더우기 작품 뒤 면지에 실린 작가의 변(辯)은 그러한 인식론적, 윤리적 혼란을 부추긴다.
밴후저[4]는 “텍스트에 어떻게 반응할지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나는 실제로 나 자신을 선택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즉, 텍스트에 대한 반응이 인간의 실존적 차원과 관계되어 있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성인들이 어린이에게 본받을만한 롤 모델이 등장하는 작품을 읽어주려고 했던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런데 인터넷 서평을 비롯하여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그림책 홍보 공간에서는 작가와 작품의 수상 경력이 최우선의 추천 기준이 되고 있음은 심히 우려스러운 현상이다. 그림책 작가의 독창성과 예술성이 곧 그 작품의 윤리성을 담보(擔保)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좋은 그림책의 언어는 쉬워 보이지만 결코 경박하지 않으며, 어조는 밝고 유쾌하지만 정직하고 성실하고 진지하다. 진정 어린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창작활동을 하는 작가라면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담아 어린이 독자에게 유익하고 가치있는 것을 전달하고자 하지 않을까.
[1] 이 글은 현은자, 이지운의 『강경수 작가의 고민해결사 펭귄 선생님』(어린이문학교육연구 23: 1, 1-17)을 요약, 수정한 것이다.
[2] 김영근 (2013). 치료적 요인으로서의 상담자 요인에 대한 내담자의 인식 차원. 한국심리학회지: 상담및 심리치료, 25(2), 203-226,
송동림 (2010). 경청에 대한 상담학적 고찰. 신학전망, (168), 60-93.
김도식 (2019). 철학상담에서 철학의 역할. 통일인문학, 77(-), 137-165.
[3] Gardner, H. (2015). 인간은 어떻게 배우는가? [The disciplined mind]. (류숙희 역). 서울: 사회평론.(원본발간일 2000년)
[4] Vanhoozer, K., Anderson, C. A., & Sleasman, M. J. (2009). 문화신학. [Everyday theology]. (윤석인 역). 서울: 부흥과 개혁사. (원본발간일 2007년)
현은자 |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 교수
이화여자대학교 교육학과 졸업 후 Eastern Michigan University 에서 석사, University of Michigan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 어린이문학교육학회 회장 및 한국 기독교 유아교 육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아동 청소년학과 교수이며 사회과학대학 부설 생활과 학 연구소 그림책 전문가 과정에서 “기독신앙과 그림책 읽기”를 강의하고 있으며, <기독교 세계관으로 아동문학보기>, <그림책의 이해>(공저), <그림책과 예술교육>(공저>, <그림책으로 보는 아동과 우리사회>(공저), <100권의 그림책>(공저) 등 그림책 관련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