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에게 좋은 그림책은 무엇인가?:
세계관적 접근 [1]

1. 들어가며
30년전인 1995년 ‘한국어린이문학교육연구회’(한국어린이문학교육학회’의 전신)의 설립 동기는 어린이 문학 교육을 연구하기 위함이었다. 학회 명칭인, 어린이+문학+교육에서도 나타나듯이, 학회 창립자들은 주로 유아교육, 아동학 전공자였으므로 ‘유아’ 보다는 좀 더 연령의 폭이 넓은 ‘어린이’(출생-초등 저학년)을 염두에 두었으며, 연구 대상으로는 주로 어린 연령이 접하는 그림책 형태의 도서를 다루게 되었고, ’교육‘이라는 단어는 가치 지향적인 함의를 지니는 만큼 바람직한 방향으로 어린이를 이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 학회는 순수하게 어린이문학만 연구하는 다른 학회들과는 설립 동기가 달랐다고 볼 수 있다.
이 자리에서 새삼스럽게 학회 명칭을 거론하는 이유는 다른 유·아동교육 관련 학회와의 차별성을 부각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과거 30년 동안 그리고 그 이전에도 유·아동과 관련된 학회가 수없이 창립되었으며 우리 학회원들도 아마 이런 학회에 두 개 이상 속해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한 와중에도 우리 학회는 ‘어린이문학교육’이라는 고유성을 꽤 잘 유지해 왔을 뿐 아니라, 연구 활동의 외연(外宴) 확장에도 적극적이었던 것 같다. 구성원 대부분이 유아교육 전공자이지만 문학과 조형예술의 조합인 그림책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예술교육과 미디어교육, 그림책 창작, 출판까지 연구 영역을 넓히게 되었고, 교육 현장도 그림책 교육이 이루어지는 다양한 장소(유아교육, 초등교육기관, 사설학원, 대안학교, 방과후 프로그램, 지역사회 교육프로그램 등)까지 이어졌다. 더 나아가 학회 회원이 KBBY [IBBY(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1]의 한국지부]의 임원진으로 활동하면서 효율적으로 학회와 KBBY, 두 기관의 협업이 이루어지고 국제적 교류도 활발해 졌다. 학회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학회지도 창간 이래 거의 한 회도 거르거나 지연되지 않고 발간일에 맞추어 출판되고 있는데, 이는 다른 학회의 사정과 비교해 볼 때 대단한 성과라 아니할 수 없다. 그래서 필자는 이 학회의 일원이라는 것이 항상 자랑스럽다.
2. 본 강연의 목적
지금 전 세계는 정치, 문화, 과학기술 측면에서 대 격변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학회도 시대 변화에 발맞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던 것 같다. 작년 학회의 주제가 AI(artificial intelligence)였던 것이 그 증거가 될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어떻게 변하던[2] 어린이에게 읽혀줄 만한 문학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일은 교육자의 책무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원론적인 문제를 다루어보기 위해 우선 학회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있는 이론적, 실천적 이슈를 몇 가지 짚어 보고. 강연의 주제인, 세계관적으로 그림책을 보는 것에 관한 논의를 통해 조금이나마 어린이문학교육에 이론적 기여를 하고자 한다.
다른 연구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동안 필자를 비롯한 대학의 연구자들이 수행한 그림책 이론 연구는 대부분 영미권의 연구물들에 의존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해외에서도 그림책이라는 텍스트 자체가 학술 연구 대상으로 여겨진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며 따라서 국내의 대학원에서도 그 역사가 20여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들은 대부분 우리 학회의 구성원이었고 마리아 니콜라예바와 페리 노들만[2]과 같은 서구의 연구서와 논문을 접하면서 학술적인 연구를 진행해 왔다. 서양학자들의 연구서가 그림책 연구의 불모지라고 할 수 있는 국내 연구에 크게 공헌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는 그들의 이론과 저작물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실천적 측면에서, 그림책 문화 지형도에도 큰 변화가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다시 말해서 그림책의 교육적 측면보다 활용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점점 더 두드러지는 것 같다. 물론 학회원 대부분이 유아동교육 전문가들이다 보니 처음부터 어린이의 발달심리와 학습과 연결시키려는 필요성이 우선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초기의 번역 그림책들은 대부분 그림책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교육성 높은 작품들이었으므로 유아 교사들은 이 작품들을 교육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방법과 교육적 효과를 위해 읽어주는 방법 등에 주로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이제 활용의 측면에서 그림책을 향유하는 사람들은 유아교육자나 초등 학교교사들처럼 교육현장에 있는 전문가들만이 아니다. 점점 더 많은 성인 독자들이 상담, 치료, 코칭, 숲해설, 원예, 요리와 같은 삶의 다양한 분야에서도 그림책을 활용하고 있다. 그림책의 글과 그림의 기호학적 결합이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강력한 도구임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림책의 실천적 적용을 목적으로 그림책에 접근할 때의 문제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성급하게 유용성을 추구하다 보면 텍스트의 의미 ‘해석’을 소홀히 할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인지도가 높고 예술성이 높다고 인정받는 텍스트일수록 은유적, 함축적으로 메시지와 세계관을 담고 있으므로 제대로 읽지 않으면 오독(誤讀)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림책 이론가들은 우리의 그림책 문화를 주도하고 있는 실천가들에게 적용이나 활용 이전에 정확한 해석이 선행되어야 함을 주지 시킬 필요가 있다.
세 번째는 그림책의 독자에 대한 인식과 관련된 것이다. 그림책의 ‘이중독자’ 혹은 그림책의 독자는 ‘0세부터 100세’까지라는, 그림책 독자 연령의 외연 확장은 그림책 창작과 출판, 소비를 활성화하는 데에 기여하고 있지만, 그 때문에 정작 어린이 독자에게 적합한 작품이 무엇인지를 분별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노력이 필요해 진 것 같다. 도서관 사서와 부모들만 그러한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이 이슈는 정부나 민간 단체의 그림책 선정 작업 가운데에서 공식적으로 불거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정부에서 주도하는 ‘세종도서’ 선정 작업에서 ‘그림책’으로 분류되어 심사대상 리스트에 포함되는 도서 중에 어린이 독자보다는 성인의 감성에 맞는 것, 성인의 시각으로 쓰여진 작품들이 다수 눈에 띈다. 일반인이 운영하는 홈페이지의 추천도서 선정 작업에서도 그러한 문제가 제기되곤 한다. 예를 들어, ‘그림책 박물관’ 홈페이지의 추천 도서 작업을 위해 매달 심사하는 70-80종의 신간들 중에서 정작 ‘좋은 책’리스트에 올릴만한 작품은 10여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물론 문학적, 예술적 측면에서 수준이 낮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포독자의 불확실성도[3] 주요한 근거가 되곤 한다.
사실 이 세 번째 이슈와 앞의 두 개의 이슈는 밀접히 관련되어 있는 것이기도 하다. 60년대 이후 서구의 대학은 포스트모더니즘에 경도되어 왔다. 미국과 유럽에서 학위를 취득한 교수들은 그들이 배운 것을 국내에 전수하게 된다. 마치 조선시대에 중국에서 받아들인 유학(儒學) 중에서도 성리학이 주류를 이루었던 것처럼... 그런데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인본주의를 더욱 극단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사조이므로 그들에게 진리가 무엇인가는 관심사가 아니다. 절대 진리가 사라진 곳에는 상대주의만이 남고 진리 자체의 추구보다는 기존에 진리라고 여겨져 왔던 것에 대한 의심과 회의가 주류를 이루게 된다. 이에 따라 서구의 그림책 이론가들은 “어린이에게 좋은 그림책이란 무엇인가”라는 가치론적 측면의 질문 대신, 그림책의 글과 그림이 어떻게 상호 결합하여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독자의 공감을 끌어내는지와 같은 기호학적, 심리학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학원 과정에서 종종 교재로 사용되는 M. 니콜라예바의 [How Picturebooks Work](2001)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것이다.
3. 그림책에 대한 기독교 세계관적 조망
필자는 현재 ‘그림책베이직’이라는 웹진에 격월로 쓰고 있는 평론에서 소위 ‘그림책에 대한 세계관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이 연구 주제에 집중하는 첫 번째 이유는 성경을 절대 진리로 믿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 때문이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는 성경 신자(Bible believer)라면 삶의 모든 영역을 성경의 기초 위에 두고자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세계관(worldview)을 형성한다.
세계관이란 단어 그대로 인간과 세상(world)을 보는 총체적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이나 사회가 어떤 세계관을 견지하고 있는가를 알아볼 수 있는 가장 단순한 방법은 그 개인, 혹은 사회가 다음 서너 가지 질문에 대해 어떤 답을 하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이 세상은 어떤 곳인가? 이 세상에 문제가 있다면 그 원인은 무엇인가? 나(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나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물론 이러한 존재론적이며 윤리적인 질문들에 대한 답은 한 두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 대부분은 이러한 존재론적 질문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살고 있으므로 그 답들은 표면적이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 상충될 수도 있다. 그래서 S. 윌킨스(Steve Wilkens)와 M. 샌포드(Mark Sanford)는 그것을 ‘은밀한 세계관’(hidden worldview)이라고 칭했던 것이다.[4] 따라서 그 세계관이 어떤 것인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개인 혹은 사회의 사유 방식과 행위에 대한 면밀한 관찰과 체계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믿고,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면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은 당연히 성경에 기초한 것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창조(creation: 6일간의 '매우 좋았던' 창조 역사), 타락(fall: 인간의 타락으로 인한 창조세계의 왜곡), 구속(redemption: 예수님의 구속사역으로 인한 회복) 그리고 성화(sanctification: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가기)와 영화(glorification: 천국에서의 영원한 삶)라는 기독교 세계관의 틀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에게 기독교 세계관 공부가 필수적인 이유이다. 그러나 성경은 일상적인 삶과 학자들의 연구 활동을 위한 구체적인 지침을 제공해 주지는 않으므로 기독 학자들은 기독교 세계관의 틀 안에서 하나님이 주신 문화명령(cultural mandate)(창세기 1장 28절)에 따라 자신의 연구(research)와 교수(teaching)의 규범적인 방향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다행히 적잖은 기독 학자들의 ‘기독교 세계관’ 연구는 철학, 인문학, 사회과학, 예술, 자연과학 등 모든 학문 영역에서 지적 체계를 제공해 왔으며 필자도 그 시혜자 중의 하나인 셈이다. 그러나 아직 어린이가 주독자라고 할 수 있는 그림책이라는 도서를 기독교 세계관적으로 조망한 연구는 해외에서도 찾기 힘들다. 앞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그림책’이라는 도서가 대학에서 본격적인 학술 대상으로 여겨진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기 때문이다.
예술로서의 그림책에 대한 세계관적 접근은 철학자이자 신학자, 미학자, 교육이론가인 N. 월터스토프(Wolterstorf)의 이론에 기초하고 있다. 그는 예술작품은 작가의 “세계 투영”(world projection)이자 “행위”(action)라고 하면서 예술 작품에는 작가의 관심사만이 아니라 그가 견지하고 있는 세계관이 투영되고 있으며 그것은 관객에게 어떤 모종의 행위를 한다고 정의한 바 있다.
그의 이론에 따라 그림책에 대한 세계관적 접근을 아주 단순하게 서술한다면, “How” 아니라 “What”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How”의 접근이란 그림책을 ‘사용’하여 무엇인가를 할 것인가에 집중하는 태도인 반면, “What”의 접근은 이 텍스트는 ‘무엇인가’를 묻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주제나 메시지를 파악하려는 시도도 What 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지만 세계관적 관점은 이상의 것을.요구한다. 다시 말해, 텍스트의 깊은 읽기(thick description)을 통해 표면 의미가 아니라 심층 의미에 도달하려고 하는 것이다.
세계관 연구의 방법론은 각 예술과 문화영역마다 다를 수 있다. 왜냐하면 예술이란 그 메시지와 세계관을 은유적, 함축적으로 표현하며 그 형식은 장르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림책 읽기의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필자는 그 동안 문학 비평가인 R. Lyken, 예술비평가인 E. J. Beith, 또한 문화해석자이자 해석학자인 K. Vanhoozer 등의 연구들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다. 그런데 어떤 방법론을 사용하든지 그림책 읽기에서 가장 우선되는 것은 ‘관찰’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텍스트의 글과 그림, 페리텍스트를 촘촘하게 읽어내는 것이다. 그 다음에 그림책이라는 매체에 대한 이해와 문학적 지식(literary knowledge), 그리고 성경 지식과 교리(doctrine),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4. 그림책의 세계관 평론의 예
필자의 작업은 2021년 12월부터 매월, 혹은 격월로 그림책 박물관에서 발행하고 있는 웹진인 <그림책 베이직> 의 ‘그림책 세계관’ 에 칼럼 형태로 소개되어 있다. 처음에는 국내 독자들에게 인지도가 높은 외국 작가의 작품들(존 버닝햄, 앤소니 브라운, 토미 웅거러, 배빗 콜, 윌리암 스타이그, 바바라 쿠니 등)이 주 평론 대상이었으나 지난 최근에는 근간(近刊) 번역 외국 작품과 한국 작가들의 작품들도 다루고 있다. 평론의 대상이 된 작품들을 세계관의 분석결과에 따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문화막시즘
19-20세기의 막시즘이 문화 영역으로 파고 들어간 것으로서 서구의 이성주의, 가족 중심의 전통과 이것을 뒷받침해온 유대-기독교의 가치관을 무너뜨리고자 하는 이념이다. 남성과 여성,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전복시키고, 가정을 해체하고 전체주의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목적이다.
앤소니 브라운 <고릴라>
토미 웅거러 <세 소녀 이야기>
전미화 <가족의 모습>
2) 허무주의
서구문화가 유대-기독교 가치와 절대 진리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결과 나타난, 목적도 없고 가치도 없는 공허한 삶으로 인한 고통의 느낌을 보여주는 세계관이다. 허무주의의 대표 문학으로는 카뮈의 <시지프의 신화>,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등을 들 수 있다. 그림책과 허무주의는 낯선 조합인 듯 싶지만 우리에게 친숙한 작품들에서도 종종 허무주의의 분위기를 발견하게 된다.
존 버닝햄의 <지각대장 존>, <셜리 시리즈>
다비드 칼리 <나는 기다립니다>
케빈 행크스 <조금만 더 기다려>
존 클라센의 <모자 삼부작>
3) PC주의
PC란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의 줄임말로서 사회적 소수자나 약자에 대한 차별이나 편견을 줄이기 위해 언어와 행동을 조심하자는 문화나 태도이다. PC주의는 LGBTQ, 여성, 이민자, 유색인종, 비기독교인, 장애인 등 소수자의 차별방지를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기초 철학은 인간애가 아니라 소위 문화막시즘이라는 좌파 이념이다. DEI(diversity:다양성 Equity:형평성, Inclusion: 포용성)정책을 앞세워 표현의 자유, 양심의 자유, 신앙의 자유를 억압하고 다수에 대한 역차별을 초래한다.
이향안 <뒤로 뒤로 달리기>
레오 티머스의 <뭐가 보이니>
4) 유물론
19세기 챨스 다윈의 진화론은 우주와 인간의 기원을 하나님의 창조 사역 대신 자연론적인 가정을 채택함으로써 유물론적 사고의 기초를 놓았다. 이에 따라 인간의 존엄성을 지지할 수 있는 기반을 잃게 되고 인간은 동물 혹은 물질에 불과하다는 세계관이 형성되었다. 유물론적 인간관은 문화막시즘의 기초가 되고 있으므로 문화 전반에 막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국 배빗 콜의 작품 대부분은 유물론적 사유방식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이것이다.
배빗 콜 <엄마가 알을 낳았대>
5. 나가며
그림책에 대한 기독교 세계관적 접근은 그림책 텍스트에 투영되어 있는 세계관을 분석하고 비판하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적 대안을 제공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문화막시즘과 그것이 정책화된 PC주의는 수천 년간 유대-기독교에 기초를 두고 발전해 온 서구의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무너뜨리고 있다. 그들의 목적은 교회와 가정을 해체하고 궁극적으로는 사회주의, 공산주의, 그리고 결국은 전체주의 국가를 수립하는 것이다. 지금 이 시대의 전쟁은 무기를 들고 전쟁터에서 치루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기초를 둔 자유민주주의와 그것을 파괴하려는 전체주의의 체제 전쟁이며, 본질적으로는 진리와 반진리가 싸우고 있는 영적 전쟁이다. 지난 9월에 암살당한 미국 청년보수주의의 리더인 챨리 커크가 감당했던 싸움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림책 문화 안에서도 반진리의 세력들은 이미 넓고 깊게 스며들고 있다. 적잖은 예술가들이 그림책 창작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각종 국내외 도서상과 금전적인 보상이라는 유인책도 있겠지만, 그림책의 기호학적 속성이 그들에게 창작의 영감을 제공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들은 독자에게 해석의 자유를 허용한다면서 이 시대 사조에 편승한 작품들을 창작하고 있는 듯 싶다.
반진리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진리를 용기있게 선포하는 그리스도인일 것이다. 그림책으로 무엇인가를 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신이 처한 자리가 어디이건 (부모, 교사, 사서, 작가, 편집자, 출판사 등) 그림책의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치열한 영적 전쟁을 볼 수 있는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믿음의 공동체와 함께 하는 말씀 읽기와 기도, 그리고 끊임없는 배움의 자세와 행동을 동반한다. 원고를 마무리하며, 바울 선생님이 빌립보 성도들에게 권면한 이 말씀을 나누고 싶다.
“형제들아, 무엇이든지 진실한 것과 무엇이든지 정직한 것과 무엇이든지 의로운 것과 무엇이든지 순수한 것과 무엇이든지 사랑스러운 것과 무엇이든지 좋은 평판이 있는 것과 덕이 되는 것과 칭찬이 되는 것이 있거든 이런 것들을 곰곰이 생각하라.”(KJB 빌 4: 8)
[1] 2025년 한국어린이문학교육학회 창립 30주년 추계학술대회 기조강연
[2] M. Nikolayeva (2001/2011) How Picturebooks Work. 그림책을 보는 눈. 서정숙 외 역. 서울:마루벌.
[3] P. Nodelman (1996/2001) The Pleasures of Children’s Picturebooks. 어린이문학의 즐거움. 김서정 역. 서울:시공주니어.
[4] S. Wilkens & M. 샌포드. (2001/2013) [은밀한 세계관]. 안종희 역. 서울: IVP.
 | 현은자 |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 명예교수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 명예교수이며 그림책 평론 작업을 하고 있다. 미국 University of Michigan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1989년부터 2023년까지 성대 아동청소년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2021년부터 웹진 <그림책 베이직>에 '그림책의 세계관' 칼럼을 연재하고 있으며, 그림책 세계관 연구소에서 운영하고 있는 '그림책 세계관 지도사 과정'에서 '그림책의 세계관', '기독 신앙과 그림책 읽기'를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기독교 세계관으로 아동문학보기>, <그림책의 세계관>, 공저로는 <그림책의 이해1, 2>, <그림책과 예술교육>, <세계 그림책의 역사>, <어린이교육전문가가 엄선한 100권의 그림책>, <신앙이 자라는 그림책 읽기> 등 다수가 있다. |
어린이에게 좋은 그림책은 무엇인가?:
세계관적 접근 [1]
1. 들어가며
30년전인 1995년 ‘한국어린이문학교육연구회’(한국어린이문학교육학회’의 전신)의 설립 동기는 어린이 문학 교육을 연구하기 위함이었다. 학회 명칭인, 어린이+문학+교육에서도 나타나듯이, 학회 창립자들은 주로 유아교육, 아동학 전공자였으므로 ‘유아’ 보다는 좀 더 연령의 폭이 넓은 ‘어린이’(출생-초등 저학년)을 염두에 두었으며, 연구 대상으로는 주로 어린 연령이 접하는 그림책 형태의 도서를 다루게 되었고, ’교육‘이라는 단어는 가치 지향적인 함의를 지니는 만큼 바람직한 방향으로 어린이를 이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 학회는 순수하게 어린이문학만 연구하는 다른 학회들과는 설립 동기가 달랐다고 볼 수 있다.
이 자리에서 새삼스럽게 학회 명칭을 거론하는 이유는 다른 유·아동교육 관련 학회와의 차별성을 부각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과거 30년 동안 그리고 그 이전에도 유·아동과 관련된 학회가 수없이 창립되었으며 우리 학회원들도 아마 이런 학회에 두 개 이상 속해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한 와중에도 우리 학회는 ‘어린이문학교육’이라는 고유성을 꽤 잘 유지해 왔을 뿐 아니라, 연구 활동의 외연(外宴) 확장에도 적극적이었던 것 같다. 구성원 대부분이 유아교육 전공자이지만 문학과 조형예술의 조합인 그림책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예술교육과 미디어교육, 그림책 창작, 출판까지 연구 영역을 넓히게 되었고, 교육 현장도 그림책 교육이 이루어지는 다양한 장소(유아교육, 초등교육기관, 사설학원, 대안학교, 방과후 프로그램, 지역사회 교육프로그램 등)까지 이어졌다. 더 나아가 학회 회원이 KBBY [IBBY(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1]의 한국지부]의 임원진으로 활동하면서 효율적으로 학회와 KBBY, 두 기관의 협업이 이루어지고 국제적 교류도 활발해 졌다. 학회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학회지도 창간 이래 거의 한 회도 거르거나 지연되지 않고 발간일에 맞추어 출판되고 있는데, 이는 다른 학회의 사정과 비교해 볼 때 대단한 성과라 아니할 수 없다. 그래서 필자는 이 학회의 일원이라는 것이 항상 자랑스럽다.
2. 본 강연의 목적
지금 전 세계는 정치, 문화, 과학기술 측면에서 대 격변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학회도 시대 변화에 발맞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던 것 같다. 작년 학회의 주제가 AI(artificial intelligence)였던 것이 그 증거가 될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어떻게 변하던[2] 어린이에게 읽혀줄 만한 문학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일은 교육자의 책무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원론적인 문제를 다루어보기 위해 우선 학회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있는 이론적, 실천적 이슈를 몇 가지 짚어 보고. 강연의 주제인, 세계관적으로 그림책을 보는 것에 관한 논의를 통해 조금이나마 어린이문학교육에 이론적 기여를 하고자 한다.
다른 연구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동안 필자를 비롯한 대학의 연구자들이 수행한 그림책 이론 연구는 대부분 영미권의 연구물들에 의존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해외에서도 그림책이라는 텍스트 자체가 학술 연구 대상으로 여겨진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며 따라서 국내의 대학원에서도 그 역사가 20여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들은 대부분 우리 학회의 구성원이었고 마리아 니콜라예바와 페리 노들만[2]과 같은 서구의 연구서와 논문을 접하면서 학술적인 연구를 진행해 왔다. 서양학자들의 연구서가 그림책 연구의 불모지라고 할 수 있는 국내 연구에 크게 공헌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는 그들의 이론과 저작물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실천적 측면에서, 그림책 문화 지형도에도 큰 변화가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다시 말해서 그림책의 교육적 측면보다 활용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점점 더 두드러지는 것 같다. 물론 학회원 대부분이 유아동교육 전문가들이다 보니 처음부터 어린이의 발달심리와 학습과 연결시키려는 필요성이 우선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초기의 번역 그림책들은 대부분 그림책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교육성 높은 작품들이었으므로 유아 교사들은 이 작품들을 교육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방법과 교육적 효과를 위해 읽어주는 방법 등에 주로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이제 활용의 측면에서 그림책을 향유하는 사람들은 유아교육자나 초등 학교교사들처럼 교육현장에 있는 전문가들만이 아니다. 점점 더 많은 성인 독자들이 상담, 치료, 코칭, 숲해설, 원예, 요리와 같은 삶의 다양한 분야에서도 그림책을 활용하고 있다. 그림책의 글과 그림의 기호학적 결합이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강력한 도구임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림책의 실천적 적용을 목적으로 그림책에 접근할 때의 문제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성급하게 유용성을 추구하다 보면 텍스트의 의미 ‘해석’을 소홀히 할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인지도가 높고 예술성이 높다고 인정받는 텍스트일수록 은유적, 함축적으로 메시지와 세계관을 담고 있으므로 제대로 읽지 않으면 오독(誤讀)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림책 이론가들은 우리의 그림책 문화를 주도하고 있는 실천가들에게 적용이나 활용 이전에 정확한 해석이 선행되어야 함을 주지 시킬 필요가 있다.
세 번째는 그림책의 독자에 대한 인식과 관련된 것이다. 그림책의 ‘이중독자’ 혹은 그림책의 독자는 ‘0세부터 100세’까지라는, 그림책 독자 연령의 외연 확장은 그림책 창작과 출판, 소비를 활성화하는 데에 기여하고 있지만, 그 때문에 정작 어린이 독자에게 적합한 작품이 무엇인지를 분별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노력이 필요해 진 것 같다. 도서관 사서와 부모들만 그러한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이 이슈는 정부나 민간 단체의 그림책 선정 작업 가운데에서 공식적으로 불거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정부에서 주도하는 ‘세종도서’ 선정 작업에서 ‘그림책’으로 분류되어 심사대상 리스트에 포함되는 도서 중에 어린이 독자보다는 성인의 감성에 맞는 것, 성인의 시각으로 쓰여진 작품들이 다수 눈에 띈다. 일반인이 운영하는 홈페이지의 추천도서 선정 작업에서도 그러한 문제가 제기되곤 한다. 예를 들어, ‘그림책 박물관’ 홈페이지의 추천 도서 작업을 위해 매달 심사하는 70-80종의 신간들 중에서 정작 ‘좋은 책’리스트에 올릴만한 작품은 10여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물론 문학적, 예술적 측면에서 수준이 낮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포독자의 불확실성도[3] 주요한 근거가 되곤 한다.
사실 이 세 번째 이슈와 앞의 두 개의 이슈는 밀접히 관련되어 있는 것이기도 하다. 60년대 이후 서구의 대학은 포스트모더니즘에 경도되어 왔다. 미국과 유럽에서 학위를 취득한 교수들은 그들이 배운 것을 국내에 전수하게 된다. 마치 조선시대에 중국에서 받아들인 유학(儒學) 중에서도 성리학이 주류를 이루었던 것처럼... 그런데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인본주의를 더욱 극단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사조이므로 그들에게 진리가 무엇인가는 관심사가 아니다. 절대 진리가 사라진 곳에는 상대주의만이 남고 진리 자체의 추구보다는 기존에 진리라고 여겨져 왔던 것에 대한 의심과 회의가 주류를 이루게 된다. 이에 따라 서구의 그림책 이론가들은 “어린이에게 좋은 그림책이란 무엇인가”라는 가치론적 측면의 질문 대신, 그림책의 글과 그림이 어떻게 상호 결합하여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독자의 공감을 끌어내는지와 같은 기호학적, 심리학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학원 과정에서 종종 교재로 사용되는 M. 니콜라예바의 [How Picturebooks Work](2001)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것이다.
3. 그림책에 대한 기독교 세계관적 조망
필자는 현재 ‘그림책베이직’이라는 웹진에 격월로 쓰고 있는 평론에서 소위 ‘그림책에 대한 세계관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이 연구 주제에 집중하는 첫 번째 이유는 성경을 절대 진리로 믿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 때문이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는 성경 신자(Bible believer)라면 삶의 모든 영역을 성경의 기초 위에 두고자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세계관(worldview)을 형성한다.
세계관이란 단어 그대로 인간과 세상(world)을 보는 총체적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이나 사회가 어떤 세계관을 견지하고 있는가를 알아볼 수 있는 가장 단순한 방법은 그 개인, 혹은 사회가 다음 서너 가지 질문에 대해 어떤 답을 하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이 세상은 어떤 곳인가? 이 세상에 문제가 있다면 그 원인은 무엇인가? 나(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나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물론 이러한 존재론적이며 윤리적인 질문들에 대한 답은 한 두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 대부분은 이러한 존재론적 질문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살고 있으므로 그 답들은 표면적이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 상충될 수도 있다. 그래서 S. 윌킨스(Steve Wilkens)와 M. 샌포드(Mark Sanford)는 그것을 ‘은밀한 세계관’(hidden worldview)이라고 칭했던 것이다.[4] 따라서 그 세계관이 어떤 것인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개인 혹은 사회의 사유 방식과 행위에 대한 면밀한 관찰과 체계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믿고,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면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은 당연히 성경에 기초한 것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창조(creation: 6일간의 '매우 좋았던' 창조 역사), 타락(fall: 인간의 타락으로 인한 창조세계의 왜곡), 구속(redemption: 예수님의 구속사역으로 인한 회복) 그리고 성화(sanctification: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가기)와 영화(glorification: 천국에서의 영원한 삶)라는 기독교 세계관의 틀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에게 기독교 세계관 공부가 필수적인 이유이다. 그러나 성경은 일상적인 삶과 학자들의 연구 활동을 위한 구체적인 지침을 제공해 주지는 않으므로 기독 학자들은 기독교 세계관의 틀 안에서 하나님이 주신 문화명령(cultural mandate)(창세기 1장 28절)에 따라 자신의 연구(research)와 교수(teaching)의 규범적인 방향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다행히 적잖은 기독 학자들의 ‘기독교 세계관’ 연구는 철학, 인문학, 사회과학, 예술, 자연과학 등 모든 학문 영역에서 지적 체계를 제공해 왔으며 필자도 그 시혜자 중의 하나인 셈이다. 그러나 아직 어린이가 주독자라고 할 수 있는 그림책이라는 도서를 기독교 세계관적으로 조망한 연구는 해외에서도 찾기 힘들다. 앞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그림책’이라는 도서가 대학에서 본격적인 학술 대상으로 여겨진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기 때문이다.
예술로서의 그림책에 대한 세계관적 접근은 철학자이자 신학자, 미학자, 교육이론가인 N. 월터스토프(Wolterstorf)의 이론에 기초하고 있다. 그는 예술작품은 작가의 “세계 투영”(world projection)이자 “행위”(action)라고 하면서 예술 작품에는 작가의 관심사만이 아니라 그가 견지하고 있는 세계관이 투영되고 있으며 그것은 관객에게 어떤 모종의 행위를 한다고 정의한 바 있다.
그의 이론에 따라 그림책에 대한 세계관적 접근을 아주 단순하게 서술한다면, “How” 아니라 “What”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How”의 접근이란 그림책을 ‘사용’하여 무엇인가를 할 것인가에 집중하는 태도인 반면, “What”의 접근은 이 텍스트는 ‘무엇인가’를 묻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주제나 메시지를 파악하려는 시도도 What 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지만 세계관적 관점은 이상의 것을.요구한다. 다시 말해, 텍스트의 깊은 읽기(thick description)을 통해 표면 의미가 아니라 심층 의미에 도달하려고 하는 것이다.
세계관 연구의 방법론은 각 예술과 문화영역마다 다를 수 있다. 왜냐하면 예술이란 그 메시지와 세계관을 은유적, 함축적으로 표현하며 그 형식은 장르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림책 읽기의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필자는 그 동안 문학 비평가인 R. Lyken, 예술비평가인 E. J. Beith, 또한 문화해석자이자 해석학자인 K. Vanhoozer 등의 연구들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다. 그런데 어떤 방법론을 사용하든지 그림책 읽기에서 가장 우선되는 것은 ‘관찰’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텍스트의 글과 그림, 페리텍스트를 촘촘하게 읽어내는 것이다. 그 다음에 그림책이라는 매체에 대한 이해와 문학적 지식(literary knowledge), 그리고 성경 지식과 교리(doctrine),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4. 그림책의 세계관 평론의 예
필자의 작업은 2021년 12월부터 매월, 혹은 격월로 그림책 박물관에서 발행하고 있는 웹진인 <그림책 베이직> 의 ‘그림책 세계관’ 에 칼럼 형태로 소개되어 있다. 처음에는 국내 독자들에게 인지도가 높은 외국 작가의 작품들(존 버닝햄, 앤소니 브라운, 토미 웅거러, 배빗 콜, 윌리암 스타이그, 바바라 쿠니 등)이 주 평론 대상이었으나 지난 최근에는 근간(近刊) 번역 외국 작품과 한국 작가들의 작품들도 다루고 있다. 평론의 대상이 된 작품들을 세계관의 분석결과에 따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문화막시즘
19-20세기의 막시즘이 문화 영역으로 파고 들어간 것으로서 서구의 이성주의, 가족 중심의 전통과 이것을 뒷받침해온 유대-기독교의 가치관을 무너뜨리고자 하는 이념이다. 남성과 여성,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전복시키고, 가정을 해체하고 전체주의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목적이다.
2) 허무주의
서구문화가 유대-기독교 가치와 절대 진리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결과 나타난, 목적도 없고 가치도 없는 공허한 삶으로 인한 고통의 느낌을 보여주는 세계관이다. 허무주의의 대표 문학으로는 카뮈의 <시지프의 신화>,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등을 들 수 있다. 그림책과 허무주의는 낯선 조합인 듯 싶지만 우리에게 친숙한 작품들에서도 종종 허무주의의 분위기를 발견하게 된다.
3) PC주의
PC란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의 줄임말로서 사회적 소수자나 약자에 대한 차별이나 편견을 줄이기 위해 언어와 행동을 조심하자는 문화나 태도이다. PC주의는 LGBTQ, 여성, 이민자, 유색인종, 비기독교인, 장애인 등 소수자의 차별방지를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기초 철학은 인간애가 아니라 소위 문화막시즘이라는 좌파 이념이다. DEI(diversity:다양성 Equity:형평성, Inclusion: 포용성)정책을 앞세워 표현의 자유, 양심의 자유, 신앙의 자유를 억압하고 다수에 대한 역차별을 초래한다.
4) 유물론
19세기 챨스 다윈의 진화론은 우주와 인간의 기원을 하나님의 창조 사역 대신 자연론적인 가정을 채택함으로써 유물론적 사고의 기초를 놓았다. 이에 따라 인간의 존엄성을 지지할 수 있는 기반을 잃게 되고 인간은 동물 혹은 물질에 불과하다는 세계관이 형성되었다. 유물론적 인간관은 문화막시즘의 기초가 되고 있으므로 문화 전반에 막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국 배빗 콜의 작품 대부분은 유물론적 사유방식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이것이다.
5. 나가며
그림책에 대한 기독교 세계관적 접근은 그림책 텍스트에 투영되어 있는 세계관을 분석하고 비판하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적 대안을 제공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문화막시즘과 그것이 정책화된 PC주의는 수천 년간 유대-기독교에 기초를 두고 발전해 온 서구의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무너뜨리고 있다. 그들의 목적은 교회와 가정을 해체하고 궁극적으로는 사회주의, 공산주의, 그리고 결국은 전체주의 국가를 수립하는 것이다. 지금 이 시대의 전쟁은 무기를 들고 전쟁터에서 치루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기초를 둔 자유민주주의와 그것을 파괴하려는 전체주의의 체제 전쟁이며, 본질적으로는 진리와 반진리가 싸우고 있는 영적 전쟁이다. 지난 9월에 암살당한 미국 청년보수주의의 리더인 챨리 커크가 감당했던 싸움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림책 문화 안에서도 반진리의 세력들은 이미 넓고 깊게 스며들고 있다. 적잖은 예술가들이 그림책 창작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각종 국내외 도서상과 금전적인 보상이라는 유인책도 있겠지만, 그림책의 기호학적 속성이 그들에게 창작의 영감을 제공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들은 독자에게 해석의 자유를 허용한다면서 이 시대 사조에 편승한 작품들을 창작하고 있는 듯 싶다.
반진리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진리를 용기있게 선포하는 그리스도인일 것이다. 그림책으로 무엇인가를 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신이 처한 자리가 어디이건 (부모, 교사, 사서, 작가, 편집자, 출판사 등) 그림책의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치열한 영적 전쟁을 볼 수 있는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믿음의 공동체와 함께 하는 말씀 읽기와 기도, 그리고 끊임없는 배움의 자세와 행동을 동반한다. 원고를 마무리하며, 바울 선생님이 빌립보 성도들에게 권면한 이 말씀을 나누고 싶다.
“형제들아, 무엇이든지 진실한 것과 무엇이든지 정직한 것과 무엇이든지 의로운 것과 무엇이든지 순수한 것과 무엇이든지 사랑스러운 것과 무엇이든지 좋은 평판이 있는 것과 덕이 되는 것과 칭찬이 되는 것이 있거든 이런 것들을 곰곰이 생각하라.”(KJB 빌 4: 8)
[1] 2025년 한국어린이문학교육학회 창립 30주년 추계학술대회 기조강연
[2] M. Nikolayeva (2001/2011) How Picturebooks Work. 그림책을 보는 눈. 서정숙 외 역. 서울:마루벌.
[3] P. Nodelman (1996/2001) The Pleasures of Children’s Picturebooks. 어린이문학의 즐거움. 김서정 역. 서울:시공주니어.
[4] S. Wilkens & M. 샌포드. (2001/2013) [은밀한 세계관]. 안종희 역. 서울: IVP.
현은자 |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 명예교수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 명예교수이며 그림책 평론 작업을 하고 있다. 미국 University of Michigan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1989년부터 2023년까지 성대 아동청소년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2021년부터 웹진 <그림책 베이직>에 '그림책의 세계관' 칼럼을 연재하고 있으며, 그림책 세계관 연구소에서 운영하고 있는 '그림책 세계관 지도사 과정'에서 '그림책의 세계관', '기독 신앙과 그림책 읽기'를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기독교 세계관으로 아동문학보기>, <그림책의 세계관>, 공저로는 <그림책의 이해1, 2>, <그림책과 예술교육>, <세계 그림책의 역사>, <어린이교육전문가가 엄선한 100권의 그림책>, <신앙이 자라는 그림책 읽기>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