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난 자녀의 화 풀기:
『소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과 『부루퉁한 스핑키』에 그려진 가족의 역할
<소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 자세히 보기
그림책에서 가장 자주 다루어지는 주제는 가족 관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화가 난 자녀가 중심 캐릭터가 되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작품들을 비교해 보면 가족 관계에서의 흥미로운 차이가 드러난다. 이번 칼럼에서는 몰리 뱅(Molly Bang)(1943-)의 『소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와 윌리암 스타이그(William Steig)의 『부루퉁한 스핑키』를 비교해 보고자 한다.
『소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
작가 몰리 뱅은 대학에서 프랑스어를 전공하고 1965년부터 일본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일본어를 공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후 기자로 일하다가 그 직업이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원래 원하던 어린이책의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다. 그는 지금껏 30권이 넘는 그림책을 쓰고 그렸으며 이 책(1999/2013)(When Sophie’s Feelings Are Really, Really hurt)과 다른 두 작품(『할머니와 딸기 도둑』, 『열, 아홉, 여덟』)은 칼데콧 명예상을 받았고, 2011년에는 어린이의 사회적·정서적 안정을 돕는 아동문학 작가로 인정받아 루시 대니얼 상을 받기도 했다.[1] 소피를 그린 일련의 작품들, 『소피가 속상하며, 너무너무 속상하며』, 『소피는 할 수 있어, 진짜진짜 할 수 있어』가 계속 발표되면서 소피라는 소녀는 그의 대표 캐릭터가 되었다. 이 작품들은 부모나 교사들로부터 어린이의 심리를 잘 묘사했다는 측면에서 큰 호평을 받고 있으며, 전문서평가들은 주로 선, 색채와 같은 미술적인 요소가 어떻게 소피의 기분을 표현하고 있는가에 관심을 기울인다.[2]
『소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의 표지에는 파란 눈의 소녀가 무엇에 화가 났는지 입을 앙 다물고 있고 바탕 화면은 불타는 오렌지 색으로 채색되어 있다. 바로 이 소녀가 책 제목의 소피라는 것은 금방 알수 있다. 이 작품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소피가 고릴라 인형과 신나게 놀고 있을 때 언니가 자기 차례라고 그 고릴라를 뺏아아 간다. 둘이 고릴라 인형을 움켜쥐고 옥신각신 싸우고 있을 때 엄마가 “이제 언니 차례다, 소피”하며 언니 편을 들고, 인형을 /뺏긴 소피는 트럭 위로 엎어진다. 그 다음 장면에서 소피의 얼굴은 클로즈업되고 소피의 파란 눈은 동그래져 있고, 콧구멍은 크게 부풀었고, 앙 다문 입은 조금 삐뚤어졌다. 양 갈래로 묶은 머리는 귀 위로 솟구쳐 올라가고 배경 색은 핏빛으로 붉게 물든다. “이런 소피가 진짜 화가 났어요!”
그 다음 장면은 “소피가 쾅쾅 발을 굴러요. 악 소리를 질러요. 뭐든지 닥치는 대로 부숴버리고 싶어요“라는 글 텍스트와 함께 소피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발을 구르고 있고, 그 뒤에 붉게 그려진 소피의 큰 그림자는 소피의 내면에서 솟구쳐오르는 파괴 충동을 표현하는 듯 하다. 소피 그림자의 주먹 부분에 ”와장창“이라는, 거칠고 크게 쓰여진 의성어가 쓰여져 있다. 그 소리에 화면 오른 편에 앉아 있던 고양이도 머리를 번쩍 들고 소피를 바라본다. 드디어 소피는 ”뻘겋게 시뻘겋게 소리쳐요” 이 장면에서 “으아아아“라는 시뻘건 고함 소리는 불기둥처럼 하늘로 날아가고 그 바람에 온갖 가구와 장난감, 문방구류가 허공으로 날라간다. 그 안에 자기 고릴라 인형을 빼앗아간 언니도 보인다. 그것도 모자라 그 다음 장에서 소피는 막 분출하는 화산에 비유되어 그려진다. 콧구멍이 한껏 열린 얼굴의 소피의 몸 주변에는 분노의 열기를 표현하는 듯한 노랗고 붉은 선의 물결이 그려져 있고, 오른 편에는 거칠게 화염을 뿜어내는 화산의 이미지 위에 화산이 분출하는 “화아아앙”하는 글자가 그려져 있다.
그 다음 장에서 소피는 현관문을 “콰당”하고 여닫고 굵은 나무들이 울창하고 고사리가 가득한 어두운 숲속으로 내달린다. 달리고, 달리고, 달리던 소피는 조금 안정을 되찾고 고개를 숙이고는 훌쩍거린다. 주변의 숲속 나무들과 나무 아래 고사리들도 소피의 기분에 동조하는 듯 옆으로 누워 있다. 이제 그림의 붉은 색조는 녹색과 갈색으로 바뀌어 있다. 이제 소피는 안정을 되찾고 주위를 둘러보며 바위, 나무, 고사리를 보고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듣는다. 옆으로 한껏 기울어져 있는 늙은 너도밤나무를 발견한 소피는 그 위로 기어 올라가 나무 둥치를 끌어안고 먼 바다를 바라본다. 소피는 산들바람을 느끼고 일렁이는 물결을 바라본다. 넓은 바다를 바라보자 한결 기분이 나아진 소피는 나무에서 내려와 집으로 향한다. 소피가 현관문을 열고 “다녀왔습니다!”라고 인사하자 식구들이 소피를 반긴다. 현관 앞의 매트에는 “Welcome”이라는 글자가 그려져 있다. 그 다음 장면에서는 가족들이 탁자 주위에 둘러 앉아 있다. 탁자 위에는 소피가 들어올 때 소피 언니가 맞추고 있던 퍼즐이 거의 다 완성되어 있고, 엄마는 소피의 언니를, 아빠는 소피를 안고, 고릴라 인형은 따로 의자에 앉혀 놓았다. “모든 것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어요.” 마지막 장면에서 소피는 이젤에 놓인 캔버스 위에 집 주위의 나무와 집 안의 식구들을 그리고 있다. “소피도 이제 더는 화가 나지 않아요.” 이렇게 해서 집으로 돌아온 소피는 다시 안정을 되찾고 예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온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소피가 현관문을 박차고 밖으로 뛰쳐나간 뒤에 식구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소피는 상당히 긴 시간 혼자 분을 삭이며 밖에 있었다. 사실 둘 이상의 자녀가 있는 집에서 물건으로 인해 다툼이 일어나는 일은 흔하다. 그리고 부모가 그것에 대해 잘못된 판단을 내려 한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일도 종종 일어난다. (소피의 경우도 그런 경우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그 일로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난 소피에게는 놀잇감에 걸려 넘어지는 불운도 더해졌다. 그 바람에 소피의 분노는 극에 달한다. 소피가 분노를 표출하고 가라앉히는 과정에서 부모의 역할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은 소피가 집을 뛰쳐 나갈 때에도 아무런 대처도 하지 않았으며, 스스로 분을 풀고 귀환한 소피를 환영했을 뿐이다. 그 동안 식구들이 소피에 대해 염려했다는 증거는 찾기 힘들다. 그저 소피가 돌아오기를 참고 기다려 준 것인지, 아니면 소피가 이렇게 극도로 화를 표출한 것이 처음이 아니었던 것인지... 결국 “소피는 이제 더는 화가 나지 않아요.”라고 이야기는 마무리 되지만 이 문장의 의미 또한 모호하다. 소피가 이 일로 인해 더 이상 화를 내지 않았다는 것인지, 아니면 그 이후에도 소피가 화날 일이 없었다는 것인지...
『부루퉁한 스핑키』
<부루퉁한 스핑키> 자세히 보기
이 소피의 가족과 대조적인 모습이 윌리암 스타이그(1907-2003)의 『부루퉁한 스핑키』에 그려져 있다. 윌리암 스타이그는 2003년도에 95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왕성하게 다수의 그림책을 창작하였고 1970년에 『당나귀 실베스터와 요술 조약돌』로 칼데콧 메달을 수상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림책 작가가 되기 전 『뉴스위크』에서 만화가로서의 경력을 쌓은 작가답게 그는 이 작품에서도 코믹한 분위기로 스핑키 가족의 모습을 그려낸다.
이 이야기에서 스핑키가 화가 난 이유는 면지와 표제지에 그려진 누나, 형, 아버지와의 말(놀림, 꾸중)에 기인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본문의 첫 장면에서 스핑키 역시 집에서 나와 풀밭에 배를 깔고 엎드리고는 식구들에게 불평을 터뜨린다. 제일 먼저 누나가 와서 별명을 불렀다고 미안해하고, 형이 와서 얼렁뚱땅 농담을 하며 점심 먹으러 들어오라고 달래지만 그는 그들에게 등을 돌리고는 나무 위로 올라간다. 스핑키 부모가 창문으로 이 모습을 지켜보다가 엄마는 자신이 그와 얘기해 보겠다고 하지만, 아빠는 저러다 제 풀에 지칠 거라며 그냥 두라고 한다. 어두워질 무렵 엄마가 해먹에 누워있는 스핑키에게 사랑한다고 하고 담요를 덮어주고 뽀뽀를 했지만 그의 마음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다. 다음 날 아침, 아빠가 일하러 나갈 때 집 뒤에 숨어 있던 그는 아빠가 모른 척하며 가버리자 깡통을 발로 차며 불만을 늘어놓는다. 정오에 엄마가 해먹에 누워있는 그에게 음식을 가져오지만 스핑키는 쳐다보지도 않고 갑자기 모두들 자신에게 친절해 졌다고 생각한다. 그는 엄마 앞에서는 음식을 외면한 듯 했지만 엄마가 접시를 가지러 왔을 때 정작 자기가 좋아하는 도넛과 포도는 먹어 치운 후였다. 스핑키는 계속 집 주변의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지만 누나와 형은 그를 찾아내고 말문을 열게 하려고 애쓴다. 누나, 형, 엄마가 각기 이런 저런 방법으로 스핑키를 달래려고 노력했지만 소용이 없다.
서커스단이 집 앞을 지나갈 때에도 스핑키는 해먹에 앉아 눈길도 돌리지 않으면서 “무슨 식구들이 이래! 처음에는 내 기분을 망쳐 놓더니 이제 와서 서커스단이나 구경하라고!” 라고 툴툴거린다. 스핑키 친구들이 와서 그의 기분을 돌리려고 애쓰지만 헛수고일 뿐이다. 식구들이 광대 아저씨까지 동원하여 그를 웃기려 하자 그는 마침내 화를 풀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자존심 때문에 그렇게 할 수도 없다. 결국 스핑키는 식구들을 위한 깜짝 이벤트를 준비하기로 하고 광대 옷을 입고는 아침 식사에 식구들을 초대한다. 그 다음 장면에서 스핑키는 아버지의 품 안에 안겨 있고 글은 이렇게 끝맺는다. “그 다음부터 식구들은 스핑키를 훨씬 더 세심하게 배려해 주었어요. 그게 그리 오래 못 가는 게 탈이지만.”
가볍고 코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글과 그림 모두 등장인물 각각의 심리를 매우 세심하게 그려내고 있다. 스핑키가 화가 난 이유는, 소피와는 달리 어떤 물건에 대한 소유욕이나 신체적 피해 때문이 아니었다. 순전히 누나, 형, 아빠의 언어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골이 잔뜩 나서 그들을 외면하고 있는 스핑키, 이런 저런 방법으로 그를 달래려고 애쓰는 가족들과 친구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스핑키의 무시와 거부, 결국 이틀에 걸쳐 이어지는 식구들의 관심과 정성에 화를 풀 출구 전략을 세우는 스핑키, 그리고 스핑키의 깜짝쇼가 빚어낸 유쾌한 결말까지, 스핑키 가족이 빚어내는 이 모든 일련의 사건들은 독자들을 내내 미소짓게 한다.
두 작품에서 가족의 역할
소피와 스핑키의 가족은 여러 측면에서 비교된다. 소피가 화난 이유는 인형 때문이었지만 스핑키가 화가 난 이유는 가족의 언어 때문이었다. 그리고 소피가 화를 푸는 과정에서 가족의 역할은 거의 없었으나 스핑키의 가족은 전심으로 스핑키를 염려하고 그의 기분을 돌이키려고 애썼다. 게다가 그 결말은 인생의 통찰을 담고 있기까지 하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말로 상처를 준 후 후회하고 반성하지만 얼마 안 가 그 결심은 잊혀지고 똑같은 실수를 거듭한다. 그렇게 우리는 실수하고, 사과하고, 용서하고, 용서받으며 살아가기를 반복한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 식구들은 스핑키를 훨씬 더 세심하게 배려해 주었어요. 그게 그리 오래 못 가는 게 탈이지만.”이라는 화자의 서술에 공감하며 미소짓게 된다. 이 사건 이후에 스핑키는 어떻게 되었을까. 때로는 식구로부터 원하는 만큼의, 혹은 기대하던 방식의 배려를 받지 못해 화가 날 때도 있겠지만 심신이 건강한 사람으로 자라날 것이다. 그의 곁에는 그를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해주는 가족과 이웃들이 있으니까…
[1] http://www.yes24.com/24/AuthorFile/Author/129883
[2] http://www.yes24.com/Product/Goods/72234174
| 현은자 |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 교수 이화여자대학교 교육학과 졸업 후 Eastern Michigan University 에서 석사, University of Michigan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 어린이문학교육학회 회장 및 한국 기독교 유아교 육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아동 청소년학과 교수이며 사회과학대학 부설 생활과 학 연구소 그림책 전문가 과정에서 “기독신앙과 그림책 읽기”를 강의하고 있으며, <기독교 세계관으로 아동문학보기>, <그림책의 이해>(공저), <그림책과 예술교육>(공저>, <그림책으로 보는 아동과 우리사회>(공저), <100권의 그림책>(공저) 등 그림책 관련 저서가 있다. |
화난 자녀의 화 풀기:
『소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과 『부루퉁한 스핑키』에 그려진 가족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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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에서 가장 자주 다루어지는 주제는 가족 관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화가 난 자녀가 중심 캐릭터가 되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작품들을 비교해 보면 가족 관계에서의 흥미로운 차이가 드러난다. 이번 칼럼에서는 몰리 뱅(Molly Bang)(1943-)의 『소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와 윌리암 스타이그(William Steig)의 『부루퉁한 스핑키』를 비교해 보고자 한다.
『소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
작가 몰리 뱅은 대학에서 프랑스어를 전공하고 1965년부터 일본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일본어를 공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후 기자로 일하다가 그 직업이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원래 원하던 어린이책의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다. 그는 지금껏 30권이 넘는 그림책을 쓰고 그렸으며 이 책(1999/2013)(When Sophie’s Feelings Are Really, Really hurt)과 다른 두 작품(『할머니와 딸기 도둑』, 『열, 아홉, 여덟』)은 칼데콧 명예상을 받았고, 2011년에는 어린이의 사회적·정서적 안정을 돕는 아동문학 작가로 인정받아 루시 대니얼 상을 받기도 했다.[1] 소피를 그린 일련의 작품들, 『소피가 속상하며, 너무너무 속상하며』, 『소피는 할 수 있어, 진짜진짜 할 수 있어』가 계속 발표되면서 소피라는 소녀는 그의 대표 캐릭터가 되었다. 이 작품들은 부모나 교사들로부터 어린이의 심리를 잘 묘사했다는 측면에서 큰 호평을 받고 있으며, 전문서평가들은 주로 선, 색채와 같은 미술적인 요소가 어떻게 소피의 기분을 표현하고 있는가에 관심을 기울인다.[2]
『소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의 표지에는 파란 눈의 소녀가 무엇에 화가 났는지 입을 앙 다물고 있고 바탕 화면은 불타는 오렌지 색으로 채색되어 있다. 바로 이 소녀가 책 제목의 소피라는 것은 금방 알수 있다. 이 작품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소피가 고릴라 인형과 신나게 놀고 있을 때 언니가 자기 차례라고 그 고릴라를 뺏아아 간다. 둘이 고릴라 인형을 움켜쥐고 옥신각신 싸우고 있을 때 엄마가 “이제 언니 차례다, 소피”하며 언니 편을 들고, 인형을 /뺏긴 소피는 트럭 위로 엎어진다. 그 다음 장면에서 소피의 얼굴은 클로즈업되고 소피의 파란 눈은 동그래져 있고, 콧구멍은 크게 부풀었고, 앙 다문 입은 조금 삐뚤어졌다. 양 갈래로 묶은 머리는 귀 위로 솟구쳐 올라가고 배경 색은 핏빛으로 붉게 물든다. “이런 소피가 진짜 화가 났어요!”
그 다음 장면은 “소피가 쾅쾅 발을 굴러요. 악 소리를 질러요. 뭐든지 닥치는 대로 부숴버리고 싶어요“라는 글 텍스트와 함께 소피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발을 구르고 있고, 그 뒤에 붉게 그려진 소피의 큰 그림자는 소피의 내면에서 솟구쳐오르는 파괴 충동을 표현하는 듯 하다. 소피 그림자의 주먹 부분에 ”와장창“이라는, 거칠고 크게 쓰여진 의성어가 쓰여져 있다. 그 소리에 화면 오른 편에 앉아 있던 고양이도 머리를 번쩍 들고 소피를 바라본다. 드디어 소피는 ”뻘겋게 시뻘겋게 소리쳐요” 이 장면에서 “으아아아“라는 시뻘건 고함 소리는 불기둥처럼 하늘로 날아가고 그 바람에 온갖 가구와 장난감, 문방구류가 허공으로 날라간다. 그 안에 자기 고릴라 인형을 빼앗아간 언니도 보인다. 그것도 모자라 그 다음 장에서 소피는 막 분출하는 화산에 비유되어 그려진다. 콧구멍이 한껏 열린 얼굴의 소피의 몸 주변에는 분노의 열기를 표현하는 듯한 노랗고 붉은 선의 물결이 그려져 있고, 오른 편에는 거칠게 화염을 뿜어내는 화산의 이미지 위에 화산이 분출하는 “화아아앙”하는 글자가 그려져 있다.
그 다음 장에서 소피는 현관문을 “콰당”하고 여닫고 굵은 나무들이 울창하고 고사리가 가득한 어두운 숲속으로 내달린다. 달리고, 달리고, 달리던 소피는 조금 안정을 되찾고 고개를 숙이고는 훌쩍거린다. 주변의 숲속 나무들과 나무 아래 고사리들도 소피의 기분에 동조하는 듯 옆으로 누워 있다. 이제 그림의 붉은 색조는 녹색과 갈색으로 바뀌어 있다. 이제 소피는 안정을 되찾고 주위를 둘러보며 바위, 나무, 고사리를 보고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듣는다. 옆으로 한껏 기울어져 있는 늙은 너도밤나무를 발견한 소피는 그 위로 기어 올라가 나무 둥치를 끌어안고 먼 바다를 바라본다. 소피는 산들바람을 느끼고 일렁이는 물결을 바라본다. 넓은 바다를 바라보자 한결 기분이 나아진 소피는 나무에서 내려와 집으로 향한다. 소피가 현관문을 열고 “다녀왔습니다!”라고 인사하자 식구들이 소피를 반긴다. 현관 앞의 매트에는 “Welcome”이라는 글자가 그려져 있다. 그 다음 장면에서는 가족들이 탁자 주위에 둘러 앉아 있다. 탁자 위에는 소피가 들어올 때 소피 언니가 맞추고 있던 퍼즐이 거의 다 완성되어 있고, 엄마는 소피의 언니를, 아빠는 소피를 안고, 고릴라 인형은 따로 의자에 앉혀 놓았다. “모든 것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어요.” 마지막 장면에서 소피는 이젤에 놓인 캔버스 위에 집 주위의 나무와 집 안의 식구들을 그리고 있다. “소피도 이제 더는 화가 나지 않아요.” 이렇게 해서 집으로 돌아온 소피는 다시 안정을 되찾고 예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온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소피가 현관문을 박차고 밖으로 뛰쳐나간 뒤에 식구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소피는 상당히 긴 시간 혼자 분을 삭이며 밖에 있었다. 사실 둘 이상의 자녀가 있는 집에서 물건으로 인해 다툼이 일어나는 일은 흔하다. 그리고 부모가 그것에 대해 잘못된 판단을 내려 한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일도 종종 일어난다. (소피의 경우도 그런 경우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그 일로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난 소피에게는 놀잇감에 걸려 넘어지는 불운도 더해졌다. 그 바람에 소피의 분노는 극에 달한다. 소피가 분노를 표출하고 가라앉히는 과정에서 부모의 역할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은 소피가 집을 뛰쳐 나갈 때에도 아무런 대처도 하지 않았으며, 스스로 분을 풀고 귀환한 소피를 환영했을 뿐이다. 그 동안 식구들이 소피에 대해 염려했다는 증거는 찾기 힘들다. 그저 소피가 돌아오기를 참고 기다려 준 것인지, 아니면 소피가 이렇게 극도로 화를 표출한 것이 처음이 아니었던 것인지... 결국 “소피는 이제 더는 화가 나지 않아요.”라고 이야기는 마무리 되지만 이 문장의 의미 또한 모호하다. 소피가 이 일로 인해 더 이상 화를 내지 않았다는 것인지, 아니면 그 이후에도 소피가 화날 일이 없었다는 것인지...
『부루퉁한 스핑키』
<부루퉁한 스핑키> 자세히 보기
이 소피의 가족과 대조적인 모습이 윌리암 스타이그(1907-2003)의 『부루퉁한 스핑키』에 그려져 있다. 윌리암 스타이그는 2003년도에 95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왕성하게 다수의 그림책을 창작하였고 1970년에 『당나귀 실베스터와 요술 조약돌』로 칼데콧 메달을 수상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림책 작가가 되기 전 『뉴스위크』에서 만화가로서의 경력을 쌓은 작가답게 그는 이 작품에서도 코믹한 분위기로 스핑키 가족의 모습을 그려낸다.
이 이야기에서 스핑키가 화가 난 이유는 면지와 표제지에 그려진 누나, 형, 아버지와의 말(놀림, 꾸중)에 기인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본문의 첫 장면에서 스핑키 역시 집에서 나와 풀밭에 배를 깔고 엎드리고는 식구들에게 불평을 터뜨린다. 제일 먼저 누나가 와서 별명을 불렀다고 미안해하고, 형이 와서 얼렁뚱땅 농담을 하며 점심 먹으러 들어오라고 달래지만 그는 그들에게 등을 돌리고는 나무 위로 올라간다. 스핑키 부모가 창문으로 이 모습을 지켜보다가 엄마는 자신이 그와 얘기해 보겠다고 하지만, 아빠는 저러다 제 풀에 지칠 거라며 그냥 두라고 한다. 어두워질 무렵 엄마가 해먹에 누워있는 스핑키에게 사랑한다고 하고 담요를 덮어주고 뽀뽀를 했지만 그의 마음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다. 다음 날 아침, 아빠가 일하러 나갈 때 집 뒤에 숨어 있던 그는 아빠가 모른 척하며 가버리자 깡통을 발로 차며 불만을 늘어놓는다. 정오에 엄마가 해먹에 누워있는 그에게 음식을 가져오지만 스핑키는 쳐다보지도 않고 갑자기 모두들 자신에게 친절해 졌다고 생각한다. 그는 엄마 앞에서는 음식을 외면한 듯 했지만 엄마가 접시를 가지러 왔을 때 정작 자기가 좋아하는 도넛과 포도는 먹어 치운 후였다. 스핑키는 계속 집 주변의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지만 누나와 형은 그를 찾아내고 말문을 열게 하려고 애쓴다. 누나, 형, 엄마가 각기 이런 저런 방법으로 스핑키를 달래려고 노력했지만 소용이 없다.
서커스단이 집 앞을 지나갈 때에도 스핑키는 해먹에 앉아 눈길도 돌리지 않으면서 “무슨 식구들이 이래! 처음에는 내 기분을 망쳐 놓더니 이제 와서 서커스단이나 구경하라고!” 라고 툴툴거린다. 스핑키 친구들이 와서 그의 기분을 돌리려고 애쓰지만 헛수고일 뿐이다. 식구들이 광대 아저씨까지 동원하여 그를 웃기려 하자 그는 마침내 화를 풀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자존심 때문에 그렇게 할 수도 없다. 결국 스핑키는 식구들을 위한 깜짝 이벤트를 준비하기로 하고 광대 옷을 입고는 아침 식사에 식구들을 초대한다. 그 다음 장면에서 스핑키는 아버지의 품 안에 안겨 있고 글은 이렇게 끝맺는다. “그 다음부터 식구들은 스핑키를 훨씬 더 세심하게 배려해 주었어요. 그게 그리 오래 못 가는 게 탈이지만.”
가볍고 코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글과 그림 모두 등장인물 각각의 심리를 매우 세심하게 그려내고 있다. 스핑키가 화가 난 이유는, 소피와는 달리 어떤 물건에 대한 소유욕이나 신체적 피해 때문이 아니었다. 순전히 누나, 형, 아빠의 언어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골이 잔뜩 나서 그들을 외면하고 있는 스핑키, 이런 저런 방법으로 그를 달래려고 애쓰는 가족들과 친구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스핑키의 무시와 거부, 결국 이틀에 걸쳐 이어지는 식구들의 관심과 정성에 화를 풀 출구 전략을 세우는 스핑키, 그리고 스핑키의 깜짝쇼가 빚어낸 유쾌한 결말까지, 스핑키 가족이 빚어내는 이 모든 일련의 사건들은 독자들을 내내 미소짓게 한다.
두 작품에서 가족의 역할
소피와 스핑키의 가족은 여러 측면에서 비교된다. 소피가 화난 이유는 인형 때문이었지만 스핑키가 화가 난 이유는 가족의 언어 때문이었다. 그리고 소피가 화를 푸는 과정에서 가족의 역할은 거의 없었으나 스핑키의 가족은 전심으로 스핑키를 염려하고 그의 기분을 돌이키려고 애썼다. 게다가 그 결말은 인생의 통찰을 담고 있기까지 하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말로 상처를 준 후 후회하고 반성하지만 얼마 안 가 그 결심은 잊혀지고 똑같은 실수를 거듭한다. 그렇게 우리는 실수하고, 사과하고, 용서하고, 용서받으며 살아가기를 반복한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 식구들은 스핑키를 훨씬 더 세심하게 배려해 주었어요. 그게 그리 오래 못 가는 게 탈이지만.”이라는 화자의 서술에 공감하며 미소짓게 된다. 이 사건 이후에 스핑키는 어떻게 되었을까. 때로는 식구로부터 원하는 만큼의, 혹은 기대하던 방식의 배려를 받지 못해 화가 날 때도 있겠지만 심신이 건강한 사람으로 자라날 것이다. 그의 곁에는 그를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해주는 가족과 이웃들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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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은자 |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 교수
이화여자대학교 교육학과 졸업 후 Eastern Michigan University 에서 석사, University of Michigan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 어린이문학교육학회 회장 및 한국 기독교 유아교 육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아동 청소년학과 교수이며 사회과학대학 부설 생활과 학 연구소 그림책 전문가 과정에서 “기독신앙과 그림책 읽기”를 강의하고 있으며, <기독교 세계관으로 아동문학보기>, <그림책의 이해>(공저), <그림책과 예술교육>(공저>, <그림책으로 보는 아동과 우리사회>(공저), <100권의 그림책>(공저) 등 그림책 관련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