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의 세계관


토미 웅거러의 소녀들: 제랄다(『제랄다와 거인』), 티파니(『세 강도』), 알뤼메트(『성냥팔이 소녀 알뤼메트』)

2022-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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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미 웅거러의 소녀들:  

제랄다(『제랄다와 거인』), 티파니(『세 강도』), 알뤼메트(『성냥팔이 소녀 알뤼메트』)



토미 웅거러(Tomy Ungerer, 1931-2019)는 그림책 이외에도 회화, 조각, 포스터, 장난감 디자인, 건축 디자인 등 예술 전방위에서 두각을 나타낸 예술가이다. 그의 수상경력은 매우 화려하다. 1962년에는 뉴욕 타임즈 올해의 최고 일러스트레이티드북, 1990년에는 프랑스 정부의 레지옹 도뇌르 훈장, 1998년에는 아동문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을 수상하였고, 2000년에는 유럽 의회의 어린이 교육 대사로 임명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명성에 걸맞게 그의 책은 어린이용을 포함하여 28개의 언어로 140종이 번역되었으며 그의 대표작인 『곰인형 오토』는 독일과 프랑스에서 초등학교 교과서가 되었다. 

그의 그림책에 대한 국내의 평가는 주로 인성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이루어졌다.(1) ‘타인을 향한 포용과 환대’ 라든가 ‘배려, 존중, 협력, 나눔, 질서, 효’ 등과 같은 덕목이 포함되어 있다 하여 어린이 교육을 위한 텍스트로도 사용되고 있다. 또한 그의 그림책은 무거운 주제를 특유의 익살과 유머, 풍자로 녹여낸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그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를 한 개의 단어로 요약한다면 ‘전복’(subversion)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기대하지 않았던 것을 기대하라’라는 그의 모토에도 잘 드러나 있다.(2)

본 평론에서는 『세 강도』(1963/1995), 『제랄다와 거인』(1970/2000), 『성냥팔이 소녀 알뤼메트』(1974/2011)를 예로 들어 이 주제를 심도있게 다루어보고자 한다. 이 세 작품을 선정한 이유는 그들 간에 다음과 같은 매우 흥미로운 유사성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1) 주인공은 ‘티파니’, ‘제랄다’, ‘알뤼메트’라는 이름의 소녀들이다. (2) 그들은 홀 부모와 고아와 같은 결손가정 출신이다. (3) 알뤼메트를 제외하고 티파니와 제랄다는 주류사회와는 고립된 곳에서 가족 혹은 공동체를 이루는 것으로 결론을 맺는다. (4) 티파니와 제랄다의 가족 형태는 다른 종과의 결혼, 혹은 그들만의 공동체라는 특이한 모습을 띠고 있으며, 알뤼메트는 구조대라는 공동체를 이끌게 된다. (5) 소녀 주위의 성인들은 대부분 폭력적이거나, 사납거나, 어리석거나, 멍청하거나, 이기적이거나, 위선적인, 비도덕적인 인물들로 그려진다. (6) 성인 캐릭터들은 서사가 진행되면서 이타적인 인물로 변화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태도의 변화는 오로지 소녀들 덕분이다.

그럼, 가장 먼저 출판된 『세 강도』의 서사를 글과 그림을 통해 살펴보기로 하자. 표지 그림에는 제목과 같이 세 강도가 그려져 있다. 검은 모자와 망토를 두른 그들은 언뜻 보면 세쌍둥이처럼 똑같아 보이지만 각자의 모자와 시선에서의 미세한 차이로 인해 각기 독립적인 인격체임을 드러낸다. 그들의 검은 모자에 그려진 선의 숫자와 위치가 다르고, 좌측 강도의 눈동자는 왼편을, 가운데는 정면을, 그리고 우측 강도의 눈동자는 오른편을 주시하고 있다. 그들은 지금 주도면밀하게 주위를 경계하고 있는 듯 보인다. 푸른색 배경, 검은색 모자와 뒤표지까지 연이은 검은 망토, 게다가 핏빛과도 같은 도끼의 빨간 양날은 매우 강렬한 대비를 이룬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옛날 옛날에 무시무시한 강도 세 사람이 있었대....” 옛 이야기의 시작과 같은 전지적 시점의 서술과 원경과 중경, 그리고 근경이 교차되는 객관적 시점의 그림은 독자가 이 이야기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거리를 두고 보게 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본문의 전반부는 강도들이 티파니를 만나기 전의 행각을 그리고 있으며, 후반부는 티파니를 만난 후의 선행으로 이어진다. 강도들은 보름달이 뜬 컴컴한 한밤중에 각각 나팔총, 후춧가루 발사기, 도끼를 이용하여 여행객들을 공격하고 위협하여 물건을 빼앗아 높은 산 위의 동굴에 은닉해 놓았다. 그러던 중 그들은 티파니라는 고아를 만나게 된다.  이 소녀는 심술궂은 숙모네로 살러 가던 참이라 오히려 강도를 만나게 되어 기뻤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의 티파니는 어린 소녀라기보다는 장난감 인형처럼 왜소하게 그려졌다. 강도는 그녀를 망토로 소중하게 감싸고 그들의 동굴로 데려갔다.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깬 티파니가 강도들의 보물함을 보고 “이게 다 뭐에 쓰는 거예요?”라고 묻자 강도들은 난감해졌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보물의 용도를 생각해 본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후 그들은 길을 잃은 아이, 불행한 아이, 버려진 아이들을 닥치는 대로 데려왔다. 펼침면에 그려진, 몇 개의 마차에 나누어 강도를 따라고 있는 많은 아이들은 손을 들고 기뻐하고 있다. 길가에서는 그 행렬을 거나하게 취한 어떤 남자가 보고 있다. 아이들을 데려온 강도들은 그동안 모아놓은 돈으로 모두 함께 살 수 있는 성을 구입했다. 강도의 모자와 망토와 같은 디자인의(심지어 모자 위의 줄무늬도 세 강도의 것과 같다), 붉은 색 옷을 똑같이 입고 새 집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줄지어 들어가는 아이들은 명랑하고 행복해 보인다. 이 소문은 온 나라에 퍼져서 날마다 강도네 문가에는 제 발로 찾아온 아이와 누군가 데려다 놓은 아이들이 놓였다. 자라난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결혼하여 성 근처에 집을 지어 살게 되었으며, 뾰족 지붕이 있는 높은 탑 세 개를 지어서 양아버지인 세 강도를 기렸다.

이번에는 『제랄다와 거인』(원 제목은 『제랄다의 거인』임)을 살펴보자. 표지에는 오른손에 찻잔을 들고 왼편에는 날 선 짧은 손칼을 들고 있는 거인이 위 아래 치아가 다 보일 정도로 입 을 크게 벌리고 있고, 그의 품 안에는 금발의 소녀가 해맑은 얼굴로 그를 올려다 보고 있다. 두 사람의 모순된 태도와 표정은 이들의 관계에 대해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표제지의 그림에는 성문이 그려져 있고 그 성문 위에는 포크와 나이프가 그려진 문장(紋章)이 걸려있다.   

첫 장면은 『세 강도』와 같이 주인공인 거인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옛날에 사람을 잡아먹는 거인이 혼자 외로이 살고 있었습니다. 사람 잡아먹는 거인들이 대부분 그렇듯, 이는 날카롭고, 수염은 가시처럼 뽀죽뾰죽, 코는 큼지막했어요. 물론, 기다란 칼도 갖고 있었고요. 괴팍스런 성미에, 먹성은 엄청났답니다.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것은요, 아침밥으로 어린아이를 잡아먹는 것이었어요.” 그림은 글보다 더 무시무시하다. 앞서 표지에 그려졌던 거인은 지금 피묻은 날카로운 칼을 들고 있고, 그 칼 아래에는 나무 상자에 갇혀 쇠창살을 부여잡고 있는 어린아이의 가녀린 두 손이 보인다. 아마도 이 아이가 거인의 아침밥인 듯 하다. 거인의 소개가 끝난 후 화자는 거인이 날마다 마을로 와서 아이들을 잡아가는 통에 마을은 공포의 도가니가 되었다고 서술한다. 다음 펼침면은 위와 아래로 나누어져 아비규환의 마을 모습을 보여준다. 땅 위에서는 거인이 매고 가는 망태기 안에서 발버둥치는 듯한 아이의 팔이 보이고 옆에는 엄마인 듯 싶은 여자가 졸도하여 쓰러져있다. 아이들이 사라진 학교 앞에는 교사가 하릴없이 앉아 있으며, 부모는 밖을 내다보며 서둘러 건물 지하로 내려가는 사다리 입구를 닫고 있다. 땅 아래에는 건물 지하에 숨어 있는 아이들과 아이들이 숨을 곳을 만드느라 헛간의 벽을 부수고 있는 남자가 그려져 있다.

아이들이 숨어버리자 거인은 매일 반복되는 빈약한 식사로 인해 성이 나기 시작했다. 다음 장면에서는 주인공인 제랄다와 그 아버지가 등장한다. 아버지는 침대에 누워있고 음식을 가져오고 있는 제랄다에게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다. 글 텍스트는 이렇게 제랄다의 가정을 소개한다. “농부는 일 년에 한 번 읍내로 나가 감자와 곡식, 고기와 생선을 팔았습니다.” 이 첫 문장은 그들이 외 딴 곳에 살고 있어 무시무시한 거인과 마을의 소동을 알지 못하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아버지는 제랄다에게 점심에 제랄다가 만들어준 사과 만두를 너무 많이 먹어 몸이 안좋으니 다음 날 읍내에는 네가 대신 가달라고 부탁한다. 그런데 아버지의 핑계는 왠지 석연치 않다. 왜냐하면 그의 긴 코는 붉고, 침대 아래에는 술병같이 생긴 병이, 그리고 침대 옆 탁자에는 술을 마실 때 사용되었을 듯 싶은 컵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는 제랄다의 사과 만두가 아니라 과한 음주로 인해 누워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그의 침대 머리맡에는 십자가가, 오른편 액자에는 검은 띠를 두른 여성의 초상화가 달려있다. 

제랄다는 아버지 대신 다음 날 새벽에 수레에 음식을 잔뜩 싣고 읍내로 가게 되었다. 오랜만에 사람의 냄새를 맡게 된 거인은 기뻐서 허둥대다가 바위에서 떨어져 발목이 삐고 코피를 흘리며 정신을 잃었다. 제랄다는 코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거인의 코피를 닦아주고 거인이 배가 고프다며 어린 아이의 고기를 읖조리는 소리를 듣고 수레에 실은 식재료로 요리하여 거인에게 먹였다. 제랄다의 음식맛에 반한 거인은 제랄다에게 자기를 따라와 요리를 해준다면 자신의 성에 있는 많은 금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제랄다는 그 제안을 승낙하고 아버지가 사온 제일 좋은 식재료로 거인의 식탁에 매일 각양각색의 엄청난 양의 요리를 올렸다. 이웃에 사는 여자 거인, 남자 거인들을 초대하여 음식을 대접하니 이 식인 거인들도 아이들을 먹고 싶은 생각이 싹 달아났다. 

이제 마을은 평화를 되찾았다. 숨어있던 아이들은 밖으로 나오고 거인은 마을로 내려와 아이들에게 막대 사탕을 나눠 주었다. 아름다운 처녀로 성장한 제랄다와 거인은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살았다. 마지막 장면이 보여주는 그 가정의 모습은 제랄다가 갓난 아기를 안고, 말쑥해진 거인이 아기에 손을 얹고 있으며, 아기의 손 윗 형제인 듯한 세 명의 자녀들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다. 그런데 한 가지 괴이한 것은 뒷짐 진 아들이 들고 있는 포크와 나이프이다. 이 아이는 지금 등 뒤로 포크와 나이프를 숨기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그는 이것으로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마지막으로 『성냥팔이 소녀 알뤼메트』를 보자. 이 작품은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를 패러디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표지에는 남루한 옷을 입은 소녀가 왼손에 그녀의 키만큼 크고 팔 두께만큼 큰 성냥개비를 들고 있다. 눈가에는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져 있고 긴 머리카락은 손질되지 않은 듯 늘어져 있어서 이 소녀의 물리적, 심리적 상황을 짐작케 한다. 그녀는 그림틀 속에 갇혀있는데, 이는 그녀가 들고 있는 성냥갑을 닮았다. 면지에서는 앤디 워홀의 그림처럼 표지의 그림이 반복되어 그려져 있는데, 이는 성냥이 얼마든지 대체 가능한 사물이라는 것을 시사하는 듯 하다. 그림틀 밑에는 프랑스어로 ‘성냥’이라는 뜻의 “ALLUMETTE”라는 단어가 적혀있다. 네모난 그림틀은 알뤼메트의 증명사진처럼 보이기도 한다. 표제지에는 달팽이가 그려진 성냥갑이 있는데 달팽이의 솟아있는 두 눈은 성냥개비처럼 보인다. 

본문은 소녀의 소개로부터 시작한다. “누더기 소녀 알뤼메트는 부모님도 없고 살 집도 없었습니다.”. 글 텍스트와 함께 그림을 보면 소녀가 가진 것은 그녀가 걸치고 있는, 상체만 겨우 가린 남루한 짧은 스커트와 성냥갑들뿐이다. 다음 장면에서 화자는 “알뤼메트는 커다란 쓰레기통을 뒤져 끼니를 때우고 남의 집 현관 앞에서 비바람을 피하다가 버려진 자동차 안에 들어가 잠을 잤어요...”고 서술한다. 컴컴한 밤에 쓰레기통 안에서 가시만 남은 생선과 뼛조각을 들고 기뻐하고 있는 소녀의 주변에는 고양이만한 몸집의 쥐들이 돌아다닌다. 두 문이 뜯기고 후드는 열려 있는, 버려진 차 밖으로 너부러져 있는 남자의 두 다리가 보인다. 뜯겨진 차 문으로 가림벽을 한 판자집의 빨랫줄에는 여자의 속옷이 걸려있다. 쓰레기통, 쥐, 말라서 죽어버린 나무, 부서진 울타리, 버려진 차, 판자집, 빨래줄에 걸린 허름한 속옷 등 소녀가 살아가는 뒷골목은 가난과 함께 자연물과 인공물의 쇠락해가는 이미지로 가득하다.

추운 겨울이 오고 크리스마스가 다가왔지만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고 분주하게 돌아다닐 뿐 누구 하나 알뤼메트에게는 눈길을 돌리지 않았다. 알뤼메트는 제과점의 유리창에 코를 박고 그 안에 있는 케이크를 바라보다가 주인에게 쫓겨나고, 공사장에서 추위를 견디기 위해 성냥불로 불을 피웠다가 소방차가 몰려오는 바람에 도망친다. 기진맥진해진 알뤼메트는 주저앉아 간절히 기도했다 “제발 살려주세요. 조금만 더 살게 해 주세요. 케이크가 얼마나 맛있는지, 아니면 칠면조 고기나 햄 한 조각이 얼마나 맛있는지 알 수 있을 때까지만이라도 살게 해 주세요. 정말 정말 소원에요. 오 제발! ” 그리고 시계탑이 밤 열두 시를 알리는 순간 번개가 번쩍하고 천둥이 치더니만 그가 소원했던 모든 것이 하늘에서 마구 쏟아졌다. 먹을 것과 담요와 깃털, 세발자전거, 그 밖의 온갖 잡동사니가 땅바닥에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집에서 돈을 세고 있던 제과점 라크루트씨 부부는 값나가는 물건들을 잡으려고 집밖으로 뛰쳐나갔다가 봉변을 당하고 만다. 다음 날 아침 알뤼메트는 우체부 아저씨를 만나고 그와 함께 하늘에서 쏟아진 선물들을 도시의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도시의 권력자들은 이 일을 탐탁히 여기지 않았고 군대까지 출동시켰다가 그 원인이 작은 소녀라는 것을 깨닫고 머쓱해진다. 그 동안 제과점 주인 부부는 알뤼메트에게 용서를 구하고 알뤼메트와 함께 물건을 정리하여 자기 창고에 보관한다. 그 다음부터 부자들이 물건을 기부하기 시작하고 라크루트씨 창고는 구조대의 본부가 되고 자원봉사자들이 전 세계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가게 되었다. 이제 알뤼메트는 구조대의 지도자로 성장했고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정도로 행복했다.  



그럼 이 세 작품에 그려진 가족, 성인, 소녀의 이미지를 차례대로 분석해 보기로 하자. 


가족


앞서 잠깐 언급한 것처럼 이 세 명의 소녀들은 결손가정 출신이다. 제랄다는 홀아버지와 함께 생활하며, 티파니는 고아가 되어 숙모에게 맡겨질 운명이었고, 알뤼메트는 처음부터 그냥 고아로 등장한다. 그들은 또한 사회적으로도 고립되어 있다. 제랄다와 아버지는 무시무시한 거인 소문을 듣지 못할 정도로 외딴 농촌에서 살고 있으며, 숙모집으로 가는 티파니는 동행자나 돌봐주는 사람 없이 혼자 마차에 타고 있다. 알뤼메트는 사람들이 북적이는 도시에 살고 있으나 그의 삶의 터전은 더럽고 냄새나는 도시의 뒷골목이다. 

결론에서 그들이 이루는 가족 역시 전통적인 가족의 이미지와는 매우 거리가 멀다. 『세 강도』에서 아이들이 강도들의 도움으로 성장하여 가정을 이루게 되지만 이를 해피엔딩으로 평가하는 것은 재고해 볼 문제다. 아이들이 모두 제복과도 같은 옷을 입고 줄지어서 성으로 들어가는 모습, 자기들끼리 결혼하여 그들만의 공동체를 건설한 모습, 그리고 그 마을에 세워진, 강도들을 기리는 세 개의 높은 탑은 전통적인 가족 공동체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식인 거인을 따라간 제랄다는 나이 들어 거인과 결혼하고 자녀도 낳아 가족을 이루지만 한 자녀는 여전히 식인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 장면은 이종(異種) 결합에 드리워진 그림자로 해석될 수 있다. 알뤼메트는 고아로 시작하지만 여전히 혼자 생활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러나 진작부터 그녀는 부모나 가족을 원하지 않았다. 그녀는 부모와 집을 구하는 대신, 그저 생존을 위해, 그리고 맛있는 음식 맛을 보게 해달라고 빌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구조대의 지도자가 된 것으로 만족했다.  

덧붙여, 해피엔딩의 플롯을 이끈 모티프에서도 흥미로운 공통점이 발견된다. 티파니와 세 강도를 따라간 아이들은 부모나 보호자의 따뜻한 보호와 사랑 대신 세 강도의 물질로 인해 행복한 삶을 살게 되었으며, 제랄다는 거인이 자기 집으로 가서 요리를 해주면 많은 돈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거인의 성에 들어가게 되었고, 알뤼메트는 기적처럼 하늘에서 쏟아진 온갖 재화들과 그리고 부자들의 기부금으로 인해 구조대를 조직할 수 있었다. 즉, 세 작품 모두 주인공들이 맛보게 된 행복은 심리적인 것이 아니라 물질적인 자원에 기인한 것이었다. 


성인의 이미지


『세 강도』의 글과 그림에 등장하는 성인은 여행객, 강도, 그리고 숙모이다. 마차의 바퀴를 쳐부수는 도끼는 충분히 위협적일 수 있지만, 후추가루 발사기와 나팔총은 익살스러워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도들에게 습격당한 여행객들은 저항을 포기하고 속수무책으로 재물을 빼앗긴다. 또한 강도들은 폭력적이고 비도덕적이고 어리석기도 하다. 그들은 여행자의 재물을 강탈하여 은닉해 놓았지만 티파니의 질문을 받고 당황한다. 타파니의 숙모는 시각적으로 그려지지 않았지만 글을 통해 ‘사악한’ (wicked) 캐릭터로 소개된다. 아이들이 탄 마차 행렬을 나무 밑에 앉아 술통을 끼고 보고 있던 남자는 알콜중독자같은 인상을 준다. 또한 세 강도가 아이들에게 보금자리를 제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강탈한 재물 덕분이었지만 이에 대한 반성이나 뉘우침은 찾아 볼 수 없다. 오히려 그들은 마을의 아이들로부터 길이 존경받는 인물로 남는다.   

제랄다의 아버지는 무책임하고 절제력이 부족한 캐릭터로 보인다. 다음날이 일년에 한번 열리는 장날임에도 불구하고 그 전날 낮의 음주로 인해 어린 제랄다를 대신 장에 내보낸다. 그리고 자영농이었던 그는 거인의 돈으로 제랄다에게 필요한 식재료를 조달하여 제랄다와 함께 미식가가 된 거인의 식탐을 채우는, 거인성의 일군이 된다. 거인이 마을로 내려와 아이들을 잡아갈 때 보이는 마을 사람들의 태도도 비겁하기 짝이 없다. 그들은 사랑하는 자녀들을 지키기 위해 목숨 걸고 거인에 대항하는 대신 아이들을 지하실이나 땅밑에 숨기기 바빴다. 학교 교사들은 학교 앞 의자에서 이 비극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며 하릴없이 앉아 있을 뿐이다. 식인 거인은 사악하고 잔인하지만 서두르다 바위 위에서 떨어지는 어수룩함도 보인다. 그가 제랄다로 인해 식인 습성을 버린 후에도 아이들을 포획하여 잡아먹었던 과거의 악행을 뉘우치거나 마을 사람들에게 용서를 빌지 않았다. 그가 한 선행이라고는 마을의 아이들에게 막대사탕을 하나씩 나눠준 것뿐이다. 오히려 그는 출처가 수상한 재물 덕분으로 요리 솜씨가 좋고 외모도 아름다운 제랄다와 결혼하고 가정을 가지게 되었으니 『세 강도』와 마찬가지로 그의 악행은 비난받기는커녕 보상을 받은 모양새를 취한다. 

알뤼메트의 주변에 그려진 성인들 중 제과점 주인, 우체부, 시장의 캐릭터를 살펴보도록 하자. 제과점 주인은 인정머리 없고 탐욕스러운 캐릭터로 그려지지만, 알뤼메트의 기도가 가져온 기적을 보고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빈다. 우체부는 선량하기는 하나 하늘에서 떨어진 곰 인형을 엉겁결에 끌어안고는 두려움에 떠는 소심하고 겁많은 인물이다. 시장은 가난한 사람이 알뤼메트가 주는 선물을 받으려고 행렬을 이루자 어떤 선동가가 나타났는가 오해하여 군대까지 출동시킨다. 그러나 그 소동의 원인이 어린 소녀라는 것을 깨닫고 대중들 앞에서 연설할 기회를 갖고자 했으나 그의 연설을 듣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우리 사회에도 존재하는 위선적인 권력자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소녀들의 이미지


소녀들의 나이는 불확실하나 미성년자인 것은 확실하다. 이들은 소녀라는 성과 연령 외에도 주류사회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공통을 갖는다. 티파니는 고아이며, 제랄다는 외딴 시골에, 그리고 고아인 알뤼메트는 도시의 뒷골목에서 산다. 그러나 그들은 용기있고, 야심있고, 독립적이고, 이타적이며, 어떤 성인보다도 지혜롭다. 티파니는 강도를 만났을 때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강도의 소굴로 들어가서도 보물함의 용도를 묻는 당돌함을 보인다. 제랄다 역시 사납게 생긴 거인을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거인의 제안을 승낙하여 거인성에 들어간다. 알뤼메트는 도시의 어둡고 더러운 뒷골목에서 혼자 잠자리를 찾고 음식 찌꺼기를 먹으며 생존해 나간다. 

그 외에도 각 소녀는 나름대로의 강점이 있다. 티파니는 통찰력이 있으며, 제랄다는 훌륭한 요리 솜씨를, 그리고 알뤼메트는 전 세계적으로 기부금을 모으고 빈민 구조대를 창설할 정도의 훌륭한 리더십을 갖추고 있다. 그들의 장점은 그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성인에 대해 배려심이 많고 관대하며 포용력이 있다. 티파니는 강도의 악행과 어리석음을 나무라지 않고 그들을 선행으로 이끌며, 제랄다는 식인 거인을 동정하며, 알뤼메트는 자신을 혐오하던 제과점 주인을 용서하고 그도 구조대의 일익을 담당하게 하며, 소심하고 겁많은 우체부도 빈민 구조대에 초대한다. 더 나아가 사회의 기득권층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그녀의 일에 동참하게 만든다. 마지막 장면에서 알뤼메트는 누추한 짧은 스커트 대신 팔을 가리는 회색 브라우스와 검은색 긴 스커트를 입고 발코니에 나와 천둥 번개치는 하늘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브라우스의 색은 회색 하늘과, 스커트의 색은 검은 구름과 일치한다. 기적을 베풀어주었던 하늘과 교감하는 그녀는 세상의 어느 권력자들보다도 더 큰 힘을 지닌 것처럼 보인다.  


세 소녀의 이야기에 투영된 전복의 이데올로기


‘전복’의 사전적 정의는 “차나 배 따위가 뒤집힘, 혹은 사회 체제가 무너지거나 정권 따위를 뒤집어엎음”이다.(3) 유사어로는 ‘destruct’, ‘destroy’가 있으며 그것의 반대말은 ‘건설하다’이다. 아동문학 평론에서 전복이라는 단어는 주로 성인과 어린이의 힘의 관계를 뒤집는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성인과 어린이의 힘의 관계를 전복시킨 대표적인 캐릭터는 스웨덴의 아동문학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1907-2002)(4)의 『삐삐 롱스타킹』(1945)의 주인공 소녀 삐삐일 것이다. 삐삐는 동거인도 없이 혼자 마을 밖에서 살지만, 힘이 세고 자유분방하며 항상 신나는 모험을 즐기고 못된 어른들을 골려주기도 한다. 마을의 권력자들이 강요하는 사회적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즐겁게 살아가는 소녀의 모습은 성인보다 높고 우월해 보인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사범대학 교수인 마리아 니콜라예바(Maria Nikolajeva)와 같은 포스트모던 평론가는 『삐삐 롱스타킹』에 대해서 찬사를 쏟아낸다.(5) 그런데 삐삐 롱스타킹과 티파니, 제랄다, 알뤼메트의 캐릭터는 놀랄 만큼 유사하지 않은가? 심지어 알뤼메트는 도시 뒷골목의 쓰레기통을 뒤지던 고아였으나 빈자와 약자, 전쟁 피해자를 돕는 전 세계적인 구조대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녀의 이미지는 프리드리히 니체가 추구했던 초인(超人)의 면모를 투영하는 듯 하다. 

어린이문학 평론가들이 토미 웅거러의 세 소녀와 같이 서구 사회의 전통과 질서에 맞서는 어린이 캐릭터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20세기부터 유럽과 미국 사회의 지성계와 문화를 지배하기 시작한 문화막시즘 이데올로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막시즘이란 종전의 경제적 막시즘에 대체하고자 막시즘 이론가들이 개발한, 변형된 K. 막스(K.Marx)의 혁명이론으로서 동성애, 젠더 이데올로기, 급진적 페미니즘, 프리섹스, 다문화주의, 가정의 해체를 꾀한다. 문화막시즘은 1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과 미국에 널리 퍼지기 시작했으며, 미국에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세워진 사회연구소의 막시스트들이 히틀러를 피해 1923년 뉴욕으로 건너감으로써 전파되기 시작했다. 2차 세계대전 후 대부분의 문화막시스트 학자들은 유럽으로 돌아와 영향력을 넓혔으나 마르쿠제만 미국에 남아 계속 그 이론을 가르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6) 토미 웅거러의 세 작품이 프랑스에서 출판된 1960-70년대가 문화막시스트들이  주도했던 프랑스의 68운동 전후라는 점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간 유럽의 문화막시즘을 연구해 온 정일권은 21세기 들어 유럽에서는 문화막시즘이 황혼기에 들어섰다고 지적한다.(7) 20세기 후반 사회민주주의를 추진했던 독일과 프랑스, 영국 등이 그 부작용을 현실적으로 체험하면서 21세기에 접어들어서는 문화막시즘의 정치적 토양이었던 사회주의 노선을 포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유럽 정신은 문화막시즘의 일탈적 사유로부터 점차 벗어나 건강하고 시민적인 일상의 철학과 사유를 재발견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는 김대중 정부 때인 2000년경 좌파 이론가들이 문화막시즘을 우리나라로 유입한 후 사회 전반에 반지성적이며 비도덕적인 문화를 퍼뜨리고 있다. 유럽에서는 저물어가고 있는 시대사조가 최근 들어 부쩍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이유로는 지난 5년간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좌파 정권의 비호와 지원을 들 수 있다. 그들은 올해 9월부터 12월 9월까지 100일간의 정기국회에서 가정 해체를 조장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과 건강가족기본법개정안을 통과시키려고 전력을 다하고 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문화막시즘이 퀴어문화 축제, 영화, 책, 웹툰, 드라마 등 문화 영역을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언론조차 이들의 영향권 아래 놓여있어 많은 국민들이 그 법안들의 해악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문화막시즘의 목표는 2000년간 서구 사회가 유지하고 있던 유럽의 전통문화와 기독교 문화를 말살하는 것이다. 그들은 백인 남성은 권력자로, 여성과 아동은 약자로 분류하며, 후자가 전자에게 대항하도록 촉구하고, 궁극적으로는 가족의 해체를 추구한다. 포괄적 차별금지법과 건강가족기본법개정안은 동성애자와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하여, 마치 인권을 옹호하는 선한 법처럼 보이지만 실은 전체주의 독재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매우 사악한 수단일 뿐이다. 가족이 해체되면 부모의 보살핌과 교육을 받지 못하게 된 어린이들이 정부의 통제하에 들어가게 됨으로써 그들이 원하는 전체주의 사회 건설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토미 웅거러의 작품에서는 문화막시즘의 망령(亡靈)이 어른거린다. 처음부터 주인공들은 결손가정 출신으로 그려지며, 결말에서도 남성과 여성이 결혼하여 자녀를 출산하는 대신, 대안(代案)적인 공동체가 제시된다. 『제랄다와 거인』에서는 인간과 식인 거인과의 이종결합, 『세 강도』에서는 전체주의 사회, 혹은 교주가 이끄는 이단 종교집단과 같은 공동체, 그리고 『성냥개비 소녀 알뤼메트』에서는 ‘초인’과도 같은 능력을 지닌 독신 여성의 등장이다. 그러나 그들이 찾은 행복이 그들이 탈취한 것이든, 기부받은 것이든 그들이 비난하는 기득권층의 재화 덕분이라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결론적으로, 자신의 쾌락 추구가 아니라 어린이를 위해 그림책을 읽는 사람들은 작품의 수상 경력이나 언론과 출판사, 인터넷 서평, 혹은 전문가의 평론을 비판없이 수용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화려한 수상경력은 작품의 오독(誤讀)을 부추길 위험성이 높다. 외국의 유명 어린이 도서상은 그림책이 독립적인 예술 작품으로서 인정받는 데 기여한 반면, 반기독교적 시대 정신을 퍼뜨리는 데 일조하고 있다.(8) 우리가 “이 시대를 본받지 말아야”(롬 12:2)할 삶의 영역 중에서 어린이 도서 영역은 너무나 중요하다. 지금 대한민국의 그림책 문화는 문화막시즘이 왕성하게 열매 맺는 비옥한 토양이 되어 어린 영혼들을 좀먹고 있기 때문이다.      



(1)  나선희. (2020). 환대의 가능성-토미 웅거러의 그림책을 중심으로. 동화와 번역, 40, 43-68.
(2)  박유진 (2017). 토미 웅거러(Tomi Ungerer) 그림책에 나타난 아동 등장인물의 인성적 특성 분석. 동아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청구논문.
      Tomi Ungerer - Official Website 
(3)  표준국어대사전, 2020
(4)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어린이 도서상은 우리 나라 백희나 작가가 2021년 수상함으로써 대중의 인지도가 높아지기도 했다. 
(5)   Nikolajeva, M. (2012). 힘과 목소리, 주체성-어린이 문학에 나타난. [Power, voice and subjectivity in literature for young readers]. (고선주 역). 파주: 교문사. (원본발간일 2009
(6)  정일권(2020). 문화막시즘의 황혼.
(7)  정일권(2020). 문화막시즘의 황혼.
(8)  이수형, 현은자 (2022). Astrid Lindgren Memorial Award 수상 그림책의 세계관 분석. 어린이문학교육연구.  23: 2, 203-229




현은자 |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 교수

이화여자대학교 교육학과 졸업 후 Eastern Michigan University 에서 석사, University of Michigan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 어린이문학교육학회 회장 및 한국 기독교 유아교 육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아동 청소년학과 교수이며 사회과학대학 부설 생활과 학 연구소 그림책 전문가 과정에서 “기독신앙과 그림책 읽기”를 강의하고 있으며, <기독교 세계관으로 아동문학보기>, <그림책의 이해>(공저), <그림책과 예술교육>(공저>, <그림책으로 보는 아동과 우리사회>(공저), <100권의 그림책>(공저) 등 그림책 관련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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