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의 세계관
무절제와 방종을 칭송하는 그림책, 배빗 콜 (Babette Cole) 작품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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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ela2022-06-27 16:43
교수님의 글을 읽고, 우리를 둘러싼 환경의 많은 부분이 무절제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재미로 취급되는 행동이 담긴 읽을거리들과 쉽게 접하는 광고들은 우리의 주변에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베빗 콜의 그림책을 자주 접하는 어린이는 재미있는 것을 옳은것 또는 좋은 것으로 인식하게될 우려가 있다고 봅니다.
절제를 배워야할 나이에 재미로 먼저 접하는 무절제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글이었습니다.
늘 한차원 더 깊이 생각하게 해주시는 글에 감사드립니다.
재미로 취급되는 행동이 담긴 읽을거리들과 쉽게 접하는 광고들은 우리의 주변에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베빗 콜의 그림책을 자주 접하는 어린이는 재미있는 것을 옳은것 또는 좋은 것으로 인식하게될 우려가 있다고 봅니다.
절제를 배워야할 나이에 재미로 먼저 접하는 무절제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글이었습니다.
늘 한차원 더 깊이 생각하게 해주시는 글에 감사드립니다.
신혜진2025-02-12 22:53
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반드시 생명과 연결 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성은 소중하고 거룩한 것이라는 개념이 자리잡을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성에 대한 관심과 노출이 점점 더 빨라지고 심각해지는 현 세태를 볼 때, 성격적인 관점에서 자녀들에게 성교육을 어떻게 해야 할 지 가이드 해주는 연령대별 교육 프로그램과 좋은 교재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국경아2025-02-20 02:02
배빗 콜의 이 작품들은 표면적으로 보면 유쾌함이 먼저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동물이나 인간이나 별 차이가 없기 때문에 격식을 차릴 이유도, 필요 이상으로 심각할 필요도 없어집니다.
생명의 탄생이 그러한 것처럼 죽음 역시 인간과 동물의 입장이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기에,
또 지금 생은 인간이지만 다음 생은 어떤 생명으로 태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너무 심각하게 죽음을 받아들일 필요도 없습니다.
즐겁고 유쾌하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행복하게 세상을 살다 가면 그만입니다.
그래서 작가의 이런 관점을 따르다 보면 심각하고 무거웠던 문제도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고 삶 자체가 가벼워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가벼움 끝에는 결국 아무 것도 없는, 공허함이 자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결국 마지막에 자리한 공허함에 대해 생각하다가 정말 우연히 박영선 목사님의 설교집에서 절제에 대한 구절을 보게 되었습니다.
'절제라는 것은 율법주의적으로 이것은 죄다, 아니다 하는 생각으로부터 우리가 어디를 향해서 가야 되고 어느 수준과 목적지까지 가고 있는 사람이라는 방향성을 가진 사람으로의 구별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이런 것을 안한다'는 것은 목표가 아닙니다. 그런 모든 것에서 절제를 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푯대를 향해 나아가는 부단한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절제란 바로 그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박영선 목사님의 절제에 대한 이 정의에 매우 동의가 되면서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절제 역시 이런 의미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리고 배빗 콜의 이 작품들에서 목적성의 상실은 결국 인간으로서 정체성의 상실에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과 동물이 근본적으로 다를 바 없다고 보는 관점에서, 인간으로서의 삶의 목적은 순간의 행복과 기쁨을 추구하며 자유롭게 사는 것 이상이기 힘들겠지요.
평론을 읽으면서 절제에 대해, 목적 없는 삶의 공허와 무절제가 서로의 짝이라는 것을 새롭게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동물이나 인간이나 별 차이가 없기 때문에 격식을 차릴 이유도, 필요 이상으로 심각할 필요도 없어집니다.
생명의 탄생이 그러한 것처럼 죽음 역시 인간과 동물의 입장이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기에,
또 지금 생은 인간이지만 다음 생은 어떤 생명으로 태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너무 심각하게 죽음을 받아들일 필요도 없습니다.
즐겁고 유쾌하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행복하게 세상을 살다 가면 그만입니다.
그래서 작가의 이런 관점을 따르다 보면 심각하고 무거웠던 문제도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고 삶 자체가 가벼워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가벼움 끝에는 결국 아무 것도 없는, 공허함이 자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결국 마지막에 자리한 공허함에 대해 생각하다가 정말 우연히 박영선 목사님의 설교집에서 절제에 대한 구절을 보게 되었습니다.
'절제라는 것은 율법주의적으로 이것은 죄다, 아니다 하는 생각으로부터 우리가 어디를 향해서 가야 되고 어느 수준과 목적지까지 가고 있는 사람이라는 방향성을 가진 사람으로의 구별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이런 것을 안한다'는 것은 목표가 아닙니다. 그런 모든 것에서 절제를 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푯대를 향해 나아가는 부단한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절제란 바로 그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박영선 목사님의 절제에 대한 이 정의에 매우 동의가 되면서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절제 역시 이런 의미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리고 배빗 콜의 이 작품들에서 목적성의 상실은 결국 인간으로서 정체성의 상실에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과 동물이 근본적으로 다를 바 없다고 보는 관점에서, 인간으로서의 삶의 목적은 순간의 행복과 기쁨을 추구하며 자유롭게 사는 것 이상이기 힘들겠지요.
평론을 읽으면서 절제에 대해, 목적 없는 삶의 공허와 무절제가 서로의 짝이라는 것을 새롭게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김혜영2025-02-20 05:59
그림책 베이직을 통해 베빗콜의 작품들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 읽을 때마다 새록새록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분명 그림책을 읽는 독자인 아이들에 대해 생각을 안했을텐데 이러한 그림과 내용을 그리고 쓴 작가는 어떤 것이 아이들에게 유익한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아이들이 알고 싶어하는 모든 것을 알려주는 것이 유익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아이들의 정서적 성숙도애 대한 고려는 한 것일까?
몰려오는 의문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는 것이고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는 것은 그 때에 맞지도 않을뿐더러 본인 자신에게 유익하지도 않습니다.
코믹을 가장한 이런 성적인 내용들이 아이들의 흥미를 자극하고 모든 것이 궁금하고 모험심 가득한 아이들에게 어떤 자극이 될 지에 대해서 염려가 많이 되는 작품이었습니다.
엄마 아빠 이제 아시겠어요? 라는 “엄마가 알을 낳았대”의 문장이나, ‘엄마 아빠는 따로따로 행복하게 살았데요~’라는 “따로따로 행복하게”속 표현들을 볼 때 이 아이들이 과연 아이 다운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순수와 열정, 겸손함과 사랑스러움. 그때에 마음껏 표출되는 아이다운 모습들을 갖고 자라도록 돕는 것은 어른들의 마땅한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배빗콜 작품에서의 아이들은 그런 아이다움을 잃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항상 불편한 모습은 베빗콜 작품속의 어른들의 모습입니다. 어리숙하거나 미련하고 아이들 보다 못하다고 표현이 됩니다. “따로따로 행복하게”에 나오는 부모의 모습은 부모를 걱정하는 아이들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이 본인들의 가정을 드러내느라 이기적으로 싸우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의 마음에 부모가 또 어른들이 어떻게 심겨질까 염려가 될 정도였습니다.
전체적으로 아이들 답지 않은 아이들의 모습, 어른답지 못한 어른의 모습이 무절제함이 바탕에 있기 때문임을 교수님의 평론을 통해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동물이 아닌 사람답게 살고 내가 감정에 휩쓸려 내키는 대로 살지 않게 하는 것이 “하고 싶지만 유익하지 않은 것은 하지 않고 하고 싶지 않지만 유익한 것은 할 수 있는” 절제가 있을 때 가능한 것인데 그림책에서 어른도 아이도 그런 모습들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절제는 사람이 악한 본성을 거슬러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하는, 더 나아가 우리를 창조하신 그분의 성품에 참예하게 하는 필수적인 덕목이 생각됩니다. 자유, 마음대로, 내키는 대로가 좋다고 하는 현대 사회의 풍조를 벗어나 나를 더 나은 나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절제의 유익에 대해 알려주는 책들이 더욱 필요한 것 같습니다.
분명 그림책을 읽는 독자인 아이들에 대해 생각을 안했을텐데 이러한 그림과 내용을 그리고 쓴 작가는 어떤 것이 아이들에게 유익한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아이들이 알고 싶어하는 모든 것을 알려주는 것이 유익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아이들의 정서적 성숙도애 대한 고려는 한 것일까?
몰려오는 의문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는 것이고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는 것은 그 때에 맞지도 않을뿐더러 본인 자신에게 유익하지도 않습니다.
코믹을 가장한 이런 성적인 내용들이 아이들의 흥미를 자극하고 모든 것이 궁금하고 모험심 가득한 아이들에게 어떤 자극이 될 지에 대해서 염려가 많이 되는 작품이었습니다.
엄마 아빠 이제 아시겠어요? 라는 “엄마가 알을 낳았대”의 문장이나, ‘엄마 아빠는 따로따로 행복하게 살았데요~’라는 “따로따로 행복하게”속 표현들을 볼 때 이 아이들이 과연 아이 다운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순수와 열정, 겸손함과 사랑스러움. 그때에 마음껏 표출되는 아이다운 모습들을 갖고 자라도록 돕는 것은 어른들의 마땅한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배빗콜 작품에서의 아이들은 그런 아이다움을 잃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항상 불편한 모습은 베빗콜 작품속의 어른들의 모습입니다. 어리숙하거나 미련하고 아이들 보다 못하다고 표현이 됩니다. “따로따로 행복하게”에 나오는 부모의 모습은 부모를 걱정하는 아이들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이 본인들의 가정을 드러내느라 이기적으로 싸우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의 마음에 부모가 또 어른들이 어떻게 심겨질까 염려가 될 정도였습니다.
전체적으로 아이들 답지 않은 아이들의 모습, 어른답지 못한 어른의 모습이 무절제함이 바탕에 있기 때문임을 교수님의 평론을 통해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동물이 아닌 사람답게 살고 내가 감정에 휩쓸려 내키는 대로 살지 않게 하는 것이 “하고 싶지만 유익하지 않은 것은 하지 않고 하고 싶지 않지만 유익한 것은 할 수 있는” 절제가 있을 때 가능한 것인데 그림책에서 어른도 아이도 그런 모습들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절제는 사람이 악한 본성을 거슬러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하는, 더 나아가 우리를 창조하신 그분의 성품에 참예하게 하는 필수적인 덕목이 생각됩니다. 자유, 마음대로, 내키는 대로가 좋다고 하는 현대 사회의 풍조를 벗어나 나를 더 나은 나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절제의 유익에 대해 알려주는 책들이 더욱 필요한 것 같습니다.
with Chang2025-07-15 08:45
유명 작가의 그림책이라 할지라도 성경의 기준에 따라 내용을 분별하고 해석하는 시각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유머와 상상력으로 전달되는 메시지 속에 절제, 성, 결혼, 죽음 같은 중요한 가치들이 왜곡될 수 있다는 점에서,
부모와 교사는 더욱 깨어 있는 시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남자와 여자의 창조 질서, 결혼의 의미, 죽음 이후의 세계관 등 삶의 본질적 주제들을 기독교 세계관으로 바르게 설명하고
가르치는 책임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이런 분별력을 갖추기 위해선 단순히 책을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더 깊이 연구하고 기독교적 관점으로 스스로를
계속 무장해 가는 과정이 꼭 필요하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그래야 아이들과의 대화 속에서도 진리 위에 선 따뜻한 시선과 건강한 가치관을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으니까요.
아이들에게 유머와 상상력으로 전달되는 메시지 속에 절제, 성, 결혼, 죽음 같은 중요한 가치들이 왜곡될 수 있다는 점에서,
부모와 교사는 더욱 깨어 있는 시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남자와 여자의 창조 질서, 결혼의 의미, 죽음 이후의 세계관 등 삶의 본질적 주제들을 기독교 세계관으로 바르게 설명하고
가르치는 책임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이런 분별력을 갖추기 위해선 단순히 책을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더 깊이 연구하고 기독교적 관점으로 스스로를
계속 무장해 가는 과정이 꼭 필요하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그래야 아이들과의 대화 속에서도 진리 위에 선 따뜻한 시선과 건강한 가치관을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으니까요.
경남2025-07-15 21:47
탄생과 결혼, 그리고 죽음은 인간 삶의 본질적이며 숭고한 주제입니다. 그러나 배빗 콜의 작품에서는 이러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주제들이 솔직함을 넘어 저속하게, 유머를 넘어서 허무하게, 자기다움을 가장한 자기 멋대로의 삶으로 왜곡되어 표현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재미와 유머로 포장된 작품 속에서 소중한 생명의 가치가 본능과 놀이적 행위로 아이들에게 전달된다는 사실은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교수님의 평론을 통해, 하나님의 속성에 반하는 세계관과 우리가 지켜야 할 성품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며, 더욱 기독교적 세계관을 통해 분별력을 키워 나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재미와 유머로 포장된 작품 속에서 소중한 생명의 가치가 본능과 놀이적 행위로 아이들에게 전달된다는 사실은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교수님의 평론을 통해, 하나님의 속성에 반하는 세계관과 우리가 지켜야 할 성품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며, 더욱 기독교적 세계관을 통해 분별력을 키워 나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전보람2025-07-15 23:03
왜 모든 어른은 다들 어린시절을 지나왔음에도 시간이 많이 지나서인지 아니면 제대로 배우지 못해서인지 아니면 못된심보(?)가 있어서 인지 왜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 중요한 것, 도움이 되는 것에 대해 주의깊게 생각하지 못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교사로서 어른으로서 더욱 아이들에게 반드시 올바르고 좋은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가르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어린아이일수록 하나님의 아름답고 바른것들을 즐겁게 가르치는것이 너무도 중요하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유머러스한척 포장된 배빗콜의 그림책을 보며 그저 '재미있으면 괜찮고 오히려 더 쿨(?)하고 멋지다' 라는 것에 치우칠 수 있게 될 것 같습니다. 이 세상 모든것을 성경적 세계관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면 즐겁게, 가볍게, 아무생각 없이, 아주 쉽게 죄로 더욱 빠져들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정민2025-07-17 08:47
정말 유감입니다 ㅠ
요즘 그림책 문화 흐름의 극단에 가 있는 작품들이네요.
작가는 1949년생이고, 이미 이 세상을 떠났는데도 말이죠.
작가의 나이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요즘 어른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상상들인데요.
하나님을 잃어버린 삶은 이렇게 흘러갈 수 밖에 없구나. 다시 실감합니다.
교수님 글을 읽으면서 요즘 아이들에게 부재된 "절제"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공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이 "성"에 대한 무절제한 생각. 행동들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네요.
그림책이라는 이 (심오한) 매체가 결국 "씨앗"의 역할인 것 같습니다.
어린이의 마음 속에, 그리고 읽어주는 부모의 마음 속에 은근히 자리 잡은 씨앗과 같아서
언젠가는 열매 맺게 되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를 깨달은 우리도 좋은 씨앗들을 준비하고 심어야 할 것 같습니다.
요즘 그림책 문화 흐름의 극단에 가 있는 작품들이네요.
작가는 1949년생이고, 이미 이 세상을 떠났는데도 말이죠.
작가의 나이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요즘 어른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상상들인데요.
하나님을 잃어버린 삶은 이렇게 흘러갈 수 밖에 없구나. 다시 실감합니다.
교수님 글을 읽으면서 요즘 아이들에게 부재된 "절제"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공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이 "성"에 대한 무절제한 생각. 행동들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네요.
그림책이라는 이 (심오한) 매체가 결국 "씨앗"의 역할인 것 같습니다.
어린이의 마음 속에, 그리고 읽어주는 부모의 마음 속에 은근히 자리 잡은 씨앗과 같아서
언젠가는 열매 맺게 되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를 깨달은 우리도 좋은 씨앗들을 준비하고 심어야 할 것 같습니다.
김은수2025-08-11 15:19
지금의 우리 사회에 더욱 중요하게 강조되어야 할 부분이 '절제'라고 여겨집니다. 물론 여전히 가난과 결핍이 존재하나 대부분의 어린, 젊은 세대는 물질적 풍요 가운데 살아갑니다. 가정에서의 양육 환경 또한 '통제' 보다는 '자율'이 우선시 되고 '친구 같은 부모' 가 대세가 되어가는 듯해 보이기도합니다. 올바른 권위가 무너진 상태에서는 순종을 할 이유도, 절제를 할 필요도 느끼지 못합니다. 책임과 의무는 다하지 않은 채, 방종에 가까운 권리와 자유만을 외치게 됩니다.
최근 심리학에 대한 강의와 정보가 넘쳐나며, 대학에 갓 입학한 자녀가 심리학 강의를 근거로 부모에게 "엄마아빠가 그렇게 해서 내가 이렇게 된 거잖아!" 라며 따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방학 중 학원 스케줄을 제대로 작성하지 못했다며 가정에서 엄마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는 명문고생과 자기가 맞는 것은 상관없지만 학교에서 폭력을 행사해서 생기부에 흠집이 날까봐 무서워한다는 엄마의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과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구합니다. 그리고 그 뜻이 이루어지는 데 나의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사랑을 흘려보내는 통로로 사용되어지기를 구합니다. 먼저는 이 가정에서 제 아이들에게 올바른 권위와 순종을 가르치는 엄마가 되기를 구합니다. 그 권위와 순종은 만물의 주재이신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이어야 하겠습니다.
최근 심리학에 대한 강의와 정보가 넘쳐나며, 대학에 갓 입학한 자녀가 심리학 강의를 근거로 부모에게 "엄마아빠가 그렇게 해서 내가 이렇게 된 거잖아!" 라며 따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방학 중 학원 스케줄을 제대로 작성하지 못했다며 가정에서 엄마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는 명문고생과 자기가 맞는 것은 상관없지만 학교에서 폭력을 행사해서 생기부에 흠집이 날까봐 무서워한다는 엄마의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과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구합니다. 그리고 그 뜻이 이루어지는 데 나의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사랑을 흘려보내는 통로로 사용되어지기를 구합니다. 먼저는 이 가정에서 제 아이들에게 올바른 권위와 순종을 가르치는 엄마가 되기를 구합니다. 그 권위와 순종은 만물의 주재이신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이어야 하겠습니다.
고진슬2025-08-11 16:54
성령의 열매 중 절제가 가장 마지막에 들어 있는 이유는 그 모든 열매를 맺고도 절제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라고 어릴 때 어머니가 열심히 가르쳐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절제하는 생활에 대해 어릴 때부터 교육을 받고 자랐어도 생활 속에서 절제를 매 순간 실천하며 사는 것은 너무 어렵지만, 이 시대에 너무나 필요하고 또 한 인간이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잘 감당하며 달란트를 잘 발현하기에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절제임을 느낍니다. 요즘 우리 사회는 '자유'라는 이름의 '방종'을 가르치면서 '절제'를 일부러 '무시'하는 사회 풍조가 만연해 있는데 이 가운데 하나인 페미니즘, 건강하지 않은 성관념, 생활습관과 모두 '절제를 절제하는' 모습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천사 중 가장 빼어난 천사였던 루시퍼도 결국 '절제'하지 못하고 '교만'하여 사탄이 되었는데 절제하지 않는 것은 곧 교만, 그리고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무시무시한 죄의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다시금 상기합니다.
김주연2025-08-11 20:09
읽는 내내 계속 맘이 어려웠습니다. 작품 속에서 보여지는 부모의 모습이, 별로 좋아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너저분한 방, 권위없는 이야기들, 그리고 저는 마지막 부분은 어찌보면 아이들이 엄마아빠를 가르치려드는?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어릴적에 엄마가 제가 막 대들면 “지금 네가 어른을 가르치려 들어?”라고 하셨는데 그때는 못된 마음에 엄마가 할 말 없으니까 저러겠지.. 했는데
이제 뭔가 저도 결혼과 가까워지는 나이가 되다보니 정말 바락바락 대드는 모습은 정말… 아니더라구요 ㅎㅎ 학교에서도 선생님들께 대드는 아이들. 순간의 감정을 못 참고 자기가 맞다고 바락바락 우기는 아이들을 보며.. 절제가 정말….가장 중요한게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작가님도 부모님께 어쩌면 상처가 있나? 라는 생각을 하게되었습니다. 혼자 결혼도 안하고 동물들이랑 같이 살다가 죽었다는 이야기에서도 , 그리고 그녀의 작품세계에서도 본받을 만한 어른은 없다는 점에서요. 작가에 대해 불편한 맘이 드는 작품입니다.
어릴적에 엄마가 제가 막 대들면 “지금 네가 어른을 가르치려 들어?”라고 하셨는데 그때는 못된 마음에 엄마가 할 말 없으니까 저러겠지.. 했는데
이제 뭔가 저도 결혼과 가까워지는 나이가 되다보니 정말 바락바락 대드는 모습은 정말… 아니더라구요 ㅎㅎ 학교에서도 선생님들께 대드는 아이들. 순간의 감정을 못 참고 자기가 맞다고 바락바락 우기는 아이들을 보며.. 절제가 정말….가장 중요한게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작가님도 부모님께 어쩌면 상처가 있나? 라는 생각을 하게되었습니다. 혼자 결혼도 안하고 동물들이랑 같이 살다가 죽었다는 이야기에서도 , 그리고 그녀의 작품세계에서도 본받을 만한 어른은 없다는 점에서요. 작가에 대해 불편한 맘이 드는 작품입니다.
김현경2025-08-11 21:51
교수님 평론을 읽으며 배빗 콜의 대표적인 작품들이 정말이지 출생과 결혼, 죽음이라는 삶의 중요한 지점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놀라웠습니다. 가장 '세계관' 다운 주제들을 통해 작가의 세계관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참 반성이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자녀를 기르는 부모로서 나는 아이에게 절제를 소중하게 가르치고 있었는지, 우리 아이의 절제하지 못하는 모습, 제멋대로 하고 싶어하는 모습이 사실은 내가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서 그런 것은 아닌지 반성이 되었습니다.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 그리고 그 영혼을 하나님께서 이 가정에 맡겨주신 것을 생각하며, 하나님 말씀대로 잘 가르쳐야겠다,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를 맺는 나의 삶 뿐 아니라 그런 자녀로 자라나게끔 힘써 부모의 책무를 다해야겠다 다짐해 봅니다.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참 반성이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자녀를 기르는 부모로서 나는 아이에게 절제를 소중하게 가르치고 있었는지, 우리 아이의 절제하지 못하는 모습, 제멋대로 하고 싶어하는 모습이 사실은 내가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서 그런 것은 아닌지 반성이 되었습니다.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 그리고 그 영혼을 하나님께서 이 가정에 맡겨주신 것을 생각하며, 하나님 말씀대로 잘 가르쳐야겠다,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를 맺는 나의 삶 뿐 아니라 그런 자녀로 자라나게끔 힘써 부모의 책무를 다해야겠다 다짐해 봅니다.
우승린2025-08-11 22:15
그림책<엄마가 알을 낳았대>를 먼저 읽고 서평을 보니 세계관을 파악하기 위한 방법 중 한 작가의 여러 작품을 읽어야 그 작가의 세계관이 보임을 더 실감합니다. 성교육 그림책인가보다 싶다가 등장하는 어른들과 상황을 너무 희화화하여 인간의 삶이 가볍다 못해 불쾌하기까지 해서 이런 류의 서평이 있을까 했는데 ‘절제’의 부분으로 다루시어 생각을 확장해 계속 넓혀갑니다.
절제가 성령의 다른 덕목에 스며있을 뿐 하나님과 관련이 없는 유일한 덕목이라는 말이 계속 남습니다. 훈련의 기준은 예수님이요 성령님의 인도로 연합된 여러 덕목들이 오직 ’절제’만 강조되어 있는 그래서 더 절제하지 못하는 현재에 답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
그런 면에서 마지막 ‘그림책이 아이들의 마음을 비옥한 밭과 깨끗한 거울로 만들 수 있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는 교수님의 글에 간절함으로 마음을 보태게 되네요.
절제가 성령의 다른 덕목에 스며있을 뿐 하나님과 관련이 없는 유일한 덕목이라는 말이 계속 남습니다. 훈련의 기준은 예수님이요 성령님의 인도로 연합된 여러 덕목들이 오직 ’절제’만 강조되어 있는 그래서 더 절제하지 못하는 현재에 답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
그런 면에서 마지막 ‘그림책이 아이들의 마음을 비옥한 밭과 깨끗한 거울로 만들 수 있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는 교수님의 글에 간절함으로 마음을 보태게 되네요.
이정아2025-08-12 00:16
성교육 책일까? 결혼을 말하고 싶은 걸까?
갑작스런 부모의 방향성 없는 질문이 담긴 교육 앞에 나 역시 이게 뭘까? 방향성을 잃어버렸다.
아이들의 시선은 티비에 있고, 양육할 상황은 더욱 아닌데. . .
인생의 중요한 지점에 대한 교육은 양육자와 더불어 주변 환경에서 절제시킴에 따라 분위기가 조성된다.
예수님이 한 친구를 침상에 메고 온 친구들을 향한 주변 사람들의 몸짓과 행위를 비난할 때도
어린 아이가 예수님을 향한 발걸음을 금지시킬 때도
예수님의 죽음을 준비한 마리아를 향해서도
무도한 행위와 말을 절제시키셨다.
우리 교육의 현실이 곧 그림책의 현실과 같아 슬프지만, 때로는 냉혹한 현실에 휩쓸리지 않길 바라며
갑작스런 부모의 방향성 없는 질문이 담긴 교육 앞에 나 역시 이게 뭘까? 방향성을 잃어버렸다.
아이들의 시선은 티비에 있고, 양육할 상황은 더욱 아닌데. . .
인생의 중요한 지점에 대한 교육은 양육자와 더불어 주변 환경에서 절제시킴에 따라 분위기가 조성된다.
예수님이 한 친구를 침상에 메고 온 친구들을 향한 주변 사람들의 몸짓과 행위를 비난할 때도
어린 아이가 예수님을 향한 발걸음을 금지시킬 때도
예수님의 죽음을 준비한 마리아를 향해서도
무도한 행위와 말을 절제시키셨다.
우리 교육의 현실이 곧 그림책의 현실과 같아 슬프지만, 때로는 냉혹한 현실에 휩쓸리지 않길 바라며
박유정2025-08-12 00:25
배빗 콜의 그림책 몇 권을 찾아 읽어보며 공통적으로 느낀 점은 아이들이 있는 공간이(그곳이 방이든, 거실 소파이든) 어수선하고 지저분하기까지 하여 정리 정돈이 전혀 되어있지 않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내 멋대로 공주> 시리즈에서는 주인공이 고정관념을 깨고 행동하는 것을 매우 멋진 일인 것처럼 이야기 하고 있었습니다. 이 그림책들의 작가 소개란에 배빗 콜에 대해서 "매우 현대적이고 고정관념을 깨는 독창성으로 주목 받고 있다."고 공통적으로 이야기 하고 있더군요.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은 질서와 규칙(통일성) 안에서 저마다의 아름다움이(다양성) 조화롭게 하나됨을 이루는 세상인데, 하나님이 없는 세상에서는 무질서와 방종이 현대적이고 독창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안타깝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요한복음 15:4~5)에서 말씀하듯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있을 때에 맺어지는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그러므로 절제도 하나님의 성품에 속합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정하신 질서 안에서 일하시고 언약의 하나님이시기에 죄로 망가진 세상 안에서도 그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십니다.절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이 땅에 육신의 몸으로 나타나신(요1:18) 예수님도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요12:27)" , "내가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요12:49)" 라고 말씀하시며 자신의 말과 뜻과 의지를 성부 하나님 안에서 절제(self-control) 하심으로 아버지께 순종함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즉 창조주 하나님이 왕으로 다스리시는 나라에서 피조물에게 허락하신 참된 자유는 사랑의 주권자가 정하신 질서와 경계 안에 거하는 것이라고 성경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어린 아이들이 부모의 올바른 권위 아래에 거하며 순종과 절제를 배우는 일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이신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 기초훈련이 됩니다.
그런데 이런 그림책들에 나타난 부모의 모습을 보면 올바른 권위는 없고, 무질서와 방종을 아이의 자유로운 선택을 위한 권리 또는 아이의 창의성과 독창성으로 환호하고 있기에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분별력 있는 지혜를 얻도록 기도해야할 것입니다.
<내 멋대로 공주> 시리즈에서는 주인공이 고정관념을 깨고 행동하는 것을 매우 멋진 일인 것처럼 이야기 하고 있었습니다. 이 그림책들의 작가 소개란에 배빗 콜에 대해서 "매우 현대적이고 고정관념을 깨는 독창성으로 주목 받고 있다."고 공통적으로 이야기 하고 있더군요.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은 질서와 규칙(통일성) 안에서 저마다의 아름다움이(다양성) 조화롭게 하나됨을 이루는 세상인데, 하나님이 없는 세상에서는 무질서와 방종이 현대적이고 독창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안타깝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요한복음 15:4~5)에서 말씀하듯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있을 때에 맺어지는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그러므로 절제도 하나님의 성품에 속합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정하신 질서 안에서 일하시고 언약의 하나님이시기에 죄로 망가진 세상 안에서도 그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십니다.절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이 땅에 육신의 몸으로 나타나신(요1:18) 예수님도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요12:27)" , "내가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요12:49)" 라고 말씀하시며 자신의 말과 뜻과 의지를 성부 하나님 안에서 절제(self-control) 하심으로 아버지께 순종함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즉 창조주 하나님이 왕으로 다스리시는 나라에서 피조물에게 허락하신 참된 자유는 사랑의 주권자가 정하신 질서와 경계 안에 거하는 것이라고 성경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어린 아이들이 부모의 올바른 권위 아래에 거하며 순종과 절제를 배우는 일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이신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 기초훈련이 됩니다.
그런데 이런 그림책들에 나타난 부모의 모습을 보면 올바른 권위는 없고, 무질서와 방종을 아이의 자유로운 선택을 위한 권리 또는 아이의 창의성과 독창성으로 환호하고 있기에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분별력 있는 지혜를 얻도록 기도해야할 것입니다.
이신애2025-11-24 11:24
이 평론을 읽기 전만 해도 저는 베빗 콜 그림책 주인공들이 장난스럽고 잠깐의 일탈을 꿈꾸는 약간의 해방감을 주는 귀여운 아이들 정도로 인식했습니다. 그녀의 그림체가 워낙 어린아이들 그림처럼 휘갈겨 그린 듯한 가벼운 느낌을 주다보니, 자연스레 ‘가볍고 위트있는 책’이라는 인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평론을 통해 다시 보니, 그 가벼움 뒤에 오히려 매우 강력하고 일관된 그녀의 세계관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베빗 콜 이라는 힌 개인 작가 안에는 그녀가 자라고 활동하던 시대의 거시적인 문화, 즉 전통과 권위를 전복하고 히피, 마약문화,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흐름을 만들었던 어마어마한 반문화 물결을 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온라인 구입 후기들에서, 아이들이 베빗 콜의 작품을 어쩌다 한권 접하는 수준이 아니라 여러권을 동시에 펼쳐두고 읽거나 형제끼리 서로 바꿔 읽기도 하며 반복적으로 접하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교수님 문득 말씀하셨던 것처럼 세트 구성으로 판매되기도 하는데, 이런 걸 보면 그녀의 세계관이 아이들의 내면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강하게 동의를 얻으며 이끌리도록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쩌다 한번 스쳐가는 책이 아니기에 가랑비에 옷 젖듯 아이들의 영과 마음이 절제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살아도 되는 시대사조에 서서히 물들어 갈 가능성이 높겠다는 생각듭니다.
또 평론에 제시된 그림책 3종이 탄생, 결혼, 죽음을 다룬다는 것도 매우 놀랍습니다. 이미 널리 알려지고 배포된 베빗 콜의 이 대표 작품들을 읽을 때는 오히려 캐릭터나 주제에 대해 비판적으로 읽을 수 있는 안전 가이드 질문을 제시 해야겠습니다. 그녀가 평생 작업한 작품이 총 100권이 넘는다고 하고 대부분 80-90년대 그러니까 그녀가 30-40대에 창작한 것들임을 알고 나니, 한참 아기를 낳아 양육할 시기에 자신의 세계관을 그대로 덧입힌 더욱 강력한 주니어들을 세상에 내놓은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녀의 책들은 그녀가 죽은 뒤에도 여전히 수천⦁수만 권씩 전 세계에 팔리고 읽혀지며 아이들 서재와 교육기관, 지역 도서관들에 오래토록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그 보이지 않는 막강한 영향력에서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경각심을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온라인 구입 후기들에서, 아이들이 베빗 콜의 작품을 어쩌다 한권 접하는 수준이 아니라 여러권을 동시에 펼쳐두고 읽거나 형제끼리 서로 바꿔 읽기도 하며 반복적으로 접하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교수님 문득 말씀하셨던 것처럼 세트 구성으로 판매되기도 하는데, 이런 걸 보면 그녀의 세계관이 아이들의 내면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강하게 동의를 얻으며 이끌리도록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쩌다 한번 스쳐가는 책이 아니기에 가랑비에 옷 젖듯 아이들의 영과 마음이 절제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살아도 되는 시대사조에 서서히 물들어 갈 가능성이 높겠다는 생각듭니다.
또 평론에 제시된 그림책 3종이 탄생, 결혼, 죽음을 다룬다는 것도 매우 놀랍습니다. 이미 널리 알려지고 배포된 베빗 콜의 이 대표 작품들을 읽을 때는 오히려 캐릭터나 주제에 대해 비판적으로 읽을 수 있는 안전 가이드 질문을 제시 해야겠습니다. 그녀가 평생 작업한 작품이 총 100권이 넘는다고 하고 대부분 80-90년대 그러니까 그녀가 30-40대에 창작한 것들임을 알고 나니, 한참 아기를 낳아 양육할 시기에 자신의 세계관을 그대로 덧입힌 더욱 강력한 주니어들을 세상에 내놓은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녀의 책들은 그녀가 죽은 뒤에도 여전히 수천⦁수만 권씩 전 세계에 팔리고 읽혀지며 아이들 서재와 교육기관, 지역 도서관들에 오래토록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그 보이지 않는 막강한 영향력에서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경각심을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서정아2025-11-24 21:43
그림책 한 장면 한 장면이 아이들에겐 평생 잊혀지지 않는 이미지로 남겨질 수도 있을 텐데요.
그렇게 아이들의 마음 밭에 씨앗으로 뿌려진 장면들이 그 아이들의 삶에 어떤 열매를 맺게 할 지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질서와 절제의 덕목을 편안하고 가벼운 이미지로 표현한 그림책을 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언젠가 누군가가 '그림책 작가'가 되기 위해 어렸을 때 부터 준비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라고 질문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는 무엇보다 먼저 준비되어야 하는 것이 '바른 가치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공의로우시지만 은혜로우신 하나님의 성품을 누리며, 절제와 질서의 삶을 매일 새롭게 회복하며 살아가는 작가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합니다.
그렇게 아이들의 마음 밭에 씨앗으로 뿌려진 장면들이 그 아이들의 삶에 어떤 열매를 맺게 할 지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질서와 절제의 덕목을 편안하고 가벼운 이미지로 표현한 그림책을 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언젠가 누군가가 '그림책 작가'가 되기 위해 어렸을 때 부터 준비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라고 질문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는 무엇보다 먼저 준비되어야 하는 것이 '바른 가치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공의로우시지만 은혜로우신 하나님의 성품을 누리며, 절제와 질서의 삶을 매일 새롭게 회복하며 살아가는 작가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합니다.
원계실2026-07-14 13:59
엄마가 알을 나았대. (베빗콜 저)
성경적 성교육이 아닌 공교육에서 이뤄지는 포괄적 성교육의 개념으로 보면 이상할 것도 없는 그림책.
학교 현장에서 성교육 연수를 받게 되면 이 책이 꼭 등장하게 된다. 가볍게 풍자하여 비유로 성교육을 쉽게 접근하기 좋은 책으로 소개되면서.
베빗콜 작품에서 나타나는 공통점 중 하나는 유머와 풍자인데, 작품 전체를 감싸는 유머와 풍자는 독자의 비판적 판단을 무디게 만들 수 있으며, 문제점을 제기하는 사람이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효과를 낳기도 한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이 사람의 고유의 존엄은 하나님의 형상에서 따왔기 때문인데 이 책은 성교육의 일환으로 사용되면서 아이들이 궁금해 할 만한 성에 대해 생물학적으로 접근하여 생명의 경이로움을 우스꽝스럽게 만들고 있다.
마지막 장면을 보면 동물과 사람을 거의 동등한 위치에 놓으면서 작품이 마무리된다.
과학적이라는 이유로 포장하여 생명이 만들어지는 모든 과정을 저속한 비유로 설명한다.
기독교적 세계관을 제외하고 보더라도, 생명의 경이로움과 존엄성을 충분히 드러내기보다 생물학적 과정에 집중함으로써 생명에 대한 경외감이 약화되는 인상을 준다. 책 내용 중간중간에 자녀들이 부모의 어설픈 설명과 비유를 무시하면서 가르치듯 하는 대화의 과정은 스킵하더라도 말이다.
성경적 성교육이 아닌 공교육에서 이뤄지는 포괄적 성교육의 개념으로 보면 이상할 것도 없는 그림책.
학교 현장에서 성교육 연수를 받게 되면 이 책이 꼭 등장하게 된다. 가볍게 풍자하여 비유로 성교육을 쉽게 접근하기 좋은 책으로 소개되면서.
베빗콜 작품에서 나타나는 공통점 중 하나는 유머와 풍자인데, 작품 전체를 감싸는 유머와 풍자는 독자의 비판적 판단을 무디게 만들 수 있으며, 문제점을 제기하는 사람이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효과를 낳기도 한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이 사람의 고유의 존엄은 하나님의 형상에서 따왔기 때문인데 이 책은 성교육의 일환으로 사용되면서 아이들이 궁금해 할 만한 성에 대해 생물학적으로 접근하여 생명의 경이로움을 우스꽝스럽게 만들고 있다.
마지막 장면을 보면 동물과 사람을 거의 동등한 위치에 놓으면서 작품이 마무리된다.
과학적이라는 이유로 포장하여 생명이 만들어지는 모든 과정을 저속한 비유로 설명한다.
기독교적 세계관을 제외하고 보더라도, 생명의 경이로움과 존엄성을 충분히 드러내기보다 생물학적 과정에 집중함으로써 생명에 대한 경외감이 약화되는 인상을 준다. 책 내용 중간중간에 자녀들이 부모의 어설픈 설명과 비유를 무시하면서 가르치듯 하는 대화의 과정은 스킵하더라도 말이다.
하은혜2026-07-16 02:35
아이들이 보는 그림책임에도 보고 난 후 꺼림칙함과 기분 나쁨이 계속 되는 것이.. 정말 유감이 맞는 책인 것 같습니다. 유명한 그림 동화책 작가, 세계명작으로 구분되어 있다는 것도 놀랍습니다. 참 많은 사람이 이런 유머를 좋아하는 세상이구나.. 싶어 씁쓸하기도 합니다.
[엄마가 알을 낳았대] 아이들이 아이가 생겨나는 과정을 아이들이 설명하는 부분은, 그 부분만 놓고 보면 유쾌하게 혹은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그려진 것 처럼 보여지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 전에 부모가 아이들에게 아이가 어떻게 생겨나는지 설명하는 내용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유의미함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 , 우연의 일치로만 표현되었고(심미적으로 아름답거나 예쁘게 표현되지도 않았네요), 설명이 끝난 후 동물들이 집 안으로 들어오는 장면에서 우리가 동물과 같다는 것으로 표현되어 인간의 존엄성을 너무 무가치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내 멋대로 공주]에서 첫 페이지 '아가씨'로 지내는게 좋았다거나 '공주가 워낙 예쁘고 부자여서' 왕자들이 결혼하고 싶어한다는 내용서부터 아이들에게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되는 단어이거나 아이들에게 좋지 않은 가치관을 알려주는 내용으로 보입니다. 심지어 공주가 키우는 애완동물들은 괴물에 가까운데, 이건 재미보단 거부감을 주는 요소로 다가옵니다. 결혼의 과정이 마치 숙제처럼 보여지는 것도 안타깝습니다. 마지막에 공주의 뽀뽀로 왕자가 두꺼비로 변하는 모습은.. 그럼 공주가 키우고 있는 동물들은 진짜 동물이 맞는 걸까 의문이 들게도 합니다. 어쩌면 자기 맘대로 산다는 것이 자기 입맛에 맞게 행동하는 여러 남자들과 함께 살고 싶다는 얘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만듭니다.
성경적인 내용이 아니더라도, 생명의 존엄성, 가정의 소중함, 삶에 대한 진지함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텐데, 생명, 가정, 삶을 너무 우습거나 무가치하게 만들어버리는 내용들로 이루어져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어른들도 절제하기가 어려운데, 절제 하는 것이 더 어려운 아이들에게 내멋대로 사는 것이 자유고 그게 옳다고 일러주는 그림책이 널리 알려지는 것은.. 무질서에서 오는 혼란의 세상을 원하는 악의 권세에 맞닿아있는 것 같아서 많은 기도와 분별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같은 마음의 부모와 교사들이 많아지길 소망합니다.
[엄마가 알을 낳았대] 아이들이 아이가 생겨나는 과정을 아이들이 설명하는 부분은, 그 부분만 놓고 보면 유쾌하게 혹은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그려진 것 처럼 보여지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 전에 부모가 아이들에게 아이가 어떻게 생겨나는지 설명하는 내용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유의미함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 , 우연의 일치로만 표현되었고(심미적으로 아름답거나 예쁘게 표현되지도 않았네요), 설명이 끝난 후 동물들이 집 안으로 들어오는 장면에서 우리가 동물과 같다는 것으로 표현되어 인간의 존엄성을 너무 무가치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내 멋대로 공주]에서 첫 페이지 '아가씨'로 지내는게 좋았다거나 '공주가 워낙 예쁘고 부자여서' 왕자들이 결혼하고 싶어한다는 내용서부터 아이들에게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되는 단어이거나 아이들에게 좋지 않은 가치관을 알려주는 내용으로 보입니다. 심지어 공주가 키우는 애완동물들은 괴물에 가까운데, 이건 재미보단 거부감을 주는 요소로 다가옵니다. 결혼의 과정이 마치 숙제처럼 보여지는 것도 안타깝습니다. 마지막에 공주의 뽀뽀로 왕자가 두꺼비로 변하는 모습은.. 그럼 공주가 키우고 있는 동물들은 진짜 동물이 맞는 걸까 의문이 들게도 합니다. 어쩌면 자기 맘대로 산다는 것이 자기 입맛에 맞게 행동하는 여러 남자들과 함께 살고 싶다는 얘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만듭니다.
성경적인 내용이 아니더라도, 생명의 존엄성, 가정의 소중함, 삶에 대한 진지함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텐데, 생명, 가정, 삶을 너무 우습거나 무가치하게 만들어버리는 내용들로 이루어져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어른들도 절제하기가 어려운데, 절제 하는 것이 더 어려운 아이들에게 내멋대로 사는 것이 자유고 그게 옳다고 일러주는 그림책이 널리 알려지는 것은.. 무질서에서 오는 혼란의 세상을 원하는 악의 권세에 맞닿아있는 것 같아서 많은 기도와 분별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같은 마음의 부모와 교사들이 많아지길 소망합니다.
김주경2026-07-17 14:59
초등학교 저학년 때쯤, 교회의 작은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불도 켜지 않은 어두운 방 안에서 처음 읽었던 때가 떠올랐습니다. 지금도 이 책이 기억나는 것을 보면, 그때도 읽으면서 ‘헐, 이게 뭐야’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저는 아직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기 전이었습니다.
그림책을 먼저 읽으며 집이 정말 돼지우리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벽에 돼지 그림이 떡하니 걸려 있어서 조금 웃겼습니다.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정신없는 방을 보면 당장 엄마의 등짝 스매싱이 날아와야 할 것 같은데, 그림책 속 엄마와 아빠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표정이었습니다. 마치 한 지붕 아래에서 함께 살아가는 가족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이 집에는 서로를 돌보고 삶을 질서 있게 만드는 부모의 권위와 책임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의 생활을 돌보고 바른 경계를 세워 주어야 할 부모가 무능하고 어리숙하게 그려진 모습이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칼럼을 읽으며 작가가 생전에 농장에서 동물들을 키우며 살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그림책에 동물들이 많이 등장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동물과 사람이 구분 없이 뒤섞여 사람도 동물처럼 지내는 모습은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절제를 생각하면 에덴동산의 선악과가 떠오릅니다. 선악과는 하나님이 하나님되시고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물임을 기억하게 하는 경계였습니다. 그러나 뱀의 꾀임에 넘어가면서 그 질서는 무너졌습니다. 그래서 절제란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무너진 질서를 회복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림책 속에서 동물과 사람이 구분 없이 뒤섞여 있는 모습과 인간 생명의 잉태를 동물의 교미와 출산과 다르지 않은 것으로 바라보는 듯한 생명관이 안타까웠습니다. 이를 별다른 분별 없이 받아들일 부모와 어린이들을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과 우려도 들었습니다.
요 며칠 타락을 다룬 그림책들을 찾아보며 성을 지나치게 적나라하게 묘사한 그림책이 많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또한 건강한 평등을 말하는 것인지, 젠더 이데올로기의 ‘나다움’을 말하는 것인지 아리송한 그림책들을 보면서 이 시대에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칼럼에서 '어린 아이에게 있어서 성령의 일은 부모와 교사의 몫이다.'라고 한 부분이 와닿습니다. C. S. 루이스가 말했듯 더러운 거울에는 햇빛이 온전히 비칠 수 없습니다. 아이들이 이기적인 감정과 죄악된 본성에 끌려가지 않고, 성령의 도우심 안에서 자신의 욕망을 바르게 다스릴 수 있도록 ‘절제’를 가르쳐야 합니다. 이를 위해 부모와 교사가 먼저 분별의 시선을 갖추고 깨어 있어야 함을 느꼈습니다. 말씀과 분별, 그림책이라는 좋은 도구, 그리고 부모와 교사의 사랑이 담긴 훈련을 통해 아이들의 마음이 하나님의 빛을 밝게 비추는 깨끗한 거울로 가꾸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림책을 먼저 읽으며 집이 정말 돼지우리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벽에 돼지 그림이 떡하니 걸려 있어서 조금 웃겼습니다.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정신없는 방을 보면 당장 엄마의 등짝 스매싱이 날아와야 할 것 같은데, 그림책 속 엄마와 아빠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표정이었습니다. 마치 한 지붕 아래에서 함께 살아가는 가족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이 집에는 서로를 돌보고 삶을 질서 있게 만드는 부모의 권위와 책임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의 생활을 돌보고 바른 경계를 세워 주어야 할 부모가 무능하고 어리숙하게 그려진 모습이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칼럼을 읽으며 작가가 생전에 농장에서 동물들을 키우며 살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그림책에 동물들이 많이 등장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동물과 사람이 구분 없이 뒤섞여 사람도 동물처럼 지내는 모습은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절제를 생각하면 에덴동산의 선악과가 떠오릅니다. 선악과는 하나님이 하나님되시고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물임을 기억하게 하는 경계였습니다. 그러나 뱀의 꾀임에 넘어가면서 그 질서는 무너졌습니다. 그래서 절제란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무너진 질서를 회복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림책 속에서 동물과 사람이 구분 없이 뒤섞여 있는 모습과 인간 생명의 잉태를 동물의 교미와 출산과 다르지 않은 것으로 바라보는 듯한 생명관이 안타까웠습니다. 이를 별다른 분별 없이 받아들일 부모와 어린이들을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과 우려도 들었습니다.
요 며칠 타락을 다룬 그림책들을 찾아보며 성을 지나치게 적나라하게 묘사한 그림책이 많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또한 건강한 평등을 말하는 것인지, 젠더 이데올로기의 ‘나다움’을 말하는 것인지 아리송한 그림책들을 보면서 이 시대에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칼럼에서 '어린 아이에게 있어서 성령의 일은 부모와 교사의 몫이다.'라고 한 부분이 와닿습니다. C. S. 루이스가 말했듯 더러운 거울에는 햇빛이 온전히 비칠 수 없습니다. 아이들이 이기적인 감정과 죄악된 본성에 끌려가지 않고, 성령의 도우심 안에서 자신의 욕망을 바르게 다스릴 수 있도록 ‘절제’를 가르쳐야 합니다. 이를 위해 부모와 교사가 먼저 분별의 시선을 갖추고 깨어 있어야 함을 느꼈습니다. 말씀과 분별, 그림책이라는 좋은 도구, 그리고 부모와 교사의 사랑이 담긴 훈련을 통해 아이들의 마음이 하나님의 빛을 밝게 비추는 깨끗한 거울로 가꾸어지기를 바랍니다.
현은자2026-07-19 16:02
젠더 이데올로기가 언제부터인가 이 사회에 스며들기 시작하여 이제는 표면화되어 노골적으로 미디어를 통해 가르쳐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 그림책은 '책'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경계를 풀게 하지요. 그래서 우리의 일이 더욱 중요하겠지요.
백효진2026-07-18 22:39
그저 유쾌하고 익살스럽게 아이들이 알아야 할 내용을 재미있게 표현했다고 여기며 '한번 읽어봐'라고 아이들에게 전해주면 어쩌나 걱정이 됩니다.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바른 생활습관을 배워야 하는 것이 마땅한데 <엄마가 알을 낳았대>에 등장하는 부모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어보입니다. 어지럽게 널려있는 집안의 모습이며, 부모를 존중하고 공경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동물들을 집안에 무분별하게 들이는 모습도 옳지 않아보입니다. 그림책이 재미있고 유쾌하게 표현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지만 그 유쾌함이 도를 넘어 무분별한 방종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바른 생활습관을 배워야 하는 것이 마땅한데 <엄마가 알을 낳았대>에 등장하는 부모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어보입니다. 어지럽게 널려있는 집안의 모습이며, 부모를 존중하고 공경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동물들을 집안에 무분별하게 들이는 모습도 옳지 않아보입니다. 그림책이 재미있고 유쾌하게 표현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지만 그 유쾌함이 도를 넘어 무분별한 방종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아름2026-07-20 07:30
어떤 마음으로 이 그림책들을 아이들에게 읽어주는지 너무 궁금합니다.
꼭 기독교세계관이 아니더라도 기본적인 성품, 옳고 그름을 놓고 봤을 때 과연 무엇을 기대하며 읽어주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켜야 할 선이 불분명하고, 옳고 그름의 기준이 무너져있는 이 세상이 너무도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질서있게 창조하신 하나님을 따라 우리의 생활 또한 질서있게 나아가야함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하고싶은대로 생각하고, 살아가는 이 세상이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빨간불에는 멈추고, 초록불에는 움직이고의 세상의 질서를 당연시 지키려하듯,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존귀한 형상으로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질서들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멈춰야 할 때를, 가야 할 때를 잘 지키며 지내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꼭 기독교세계관이 아니더라도 기본적인 성품, 옳고 그름을 놓고 봤을 때 과연 무엇을 기대하며 읽어주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켜야 할 선이 불분명하고, 옳고 그름의 기준이 무너져있는 이 세상이 너무도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질서있게 창조하신 하나님을 따라 우리의 생활 또한 질서있게 나아가야함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하고싶은대로 생각하고, 살아가는 이 세상이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빨간불에는 멈추고, 초록불에는 움직이고의 세상의 질서를 당연시 지키려하듯,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존귀한 형상으로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질서들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멈춰야 할 때를, 가야 할 때를 잘 지키며 지내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곽서연2026-07-20 20:36
서평 마지막 부분에
"마음이 온통 잘못되어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자신을 보여주실 수 없습니다."
라는 C.S 루이스의 < 순전한 기독교> 중에 나오는 글이 너무 마음에 와 닿는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이든 현장에서 10년, 20년 일을 하다 보면 공식적인 수치는 아니더라도
개인적인 나름 정확한 통계가 나옵니다. (저에 한해서는)
아이들 교육 현장에 20여년을 있으면서 ' 콩심은데 콩나고 팥심은데 팥난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맞다는 것을 많이 경험하게 되엇습니다.
교육기관에서 성품 교육을 하는 아이들은 안 하는 아이들과 행동과 말에 차이가 있고요.(부모에게 이 차이를 말씀을 드리면 잘 모르시더라구여.)
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근무를 시작했을 때는 신앙심이 없는 상태였어서
<엄마가 알을 낳았대 >,<내 멋대로 공주> 를 보았을 때 뭔가 좀 꺼림직하긴 했지만 유명한 책이라고 하니
'요즘엔 이렇게 가야 하는 건가?' 하면서 심각하게 생각을 안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고 난 후 기준이 생겼어요.
말씀에 어긋나는 것은 옳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요.
<엄마가 알을 낳았대> , <내 멋대로 공주>,<Drop dead> 에서는 아이들에게 어떤 유익을 주는가? 라는 고민(영유아 시기는 옳은 것과 아닌 것을 모두 흡수하는 시기)을 해봅니다.
(무질서한 환경과 그것을 방관하는 듯한 부모의 모습, 공주의 태도와 주변 환경의 무질서 그리고 왕비의 생활 )
현은자 교수님의 '그림책을 해석한다는 것은'을 읽고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특히, K.Vanhoozer의 [ 텍스트에 의미가 있는가]에서 성경해석학의 일반 텍스트 적용 논증.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일반 텍스트에도 적용을 해야 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알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마음이 온통 잘못되어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자신을 보여주실 수 없습니다."
라는 C.S 루이스의 < 순전한 기독교> 중에 나오는 글이 너무 마음에 와 닿는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이든 현장에서 10년, 20년 일을 하다 보면 공식적인 수치는 아니더라도
개인적인 나름 정확한 통계가 나옵니다. (저에 한해서는)
아이들 교육 현장에 20여년을 있으면서 ' 콩심은데 콩나고 팥심은데 팥난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맞다는 것을 많이 경험하게 되엇습니다.
교육기관에서 성품 교육을 하는 아이들은 안 하는 아이들과 행동과 말에 차이가 있고요.(부모에게 이 차이를 말씀을 드리면 잘 모르시더라구여.)
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근무를 시작했을 때는 신앙심이 없는 상태였어서
<엄마가 알을 낳았대 >,<내 멋대로 공주> 를 보았을 때 뭔가 좀 꺼림직하긴 했지만 유명한 책이라고 하니
'요즘엔 이렇게 가야 하는 건가?' 하면서 심각하게 생각을 안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고 난 후 기준이 생겼어요.
말씀에 어긋나는 것은 옳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요.
<엄마가 알을 낳았대> , <내 멋대로 공주>,<Drop dead> 에서는 아이들에게 어떤 유익을 주는가? 라는 고민(영유아 시기는 옳은 것과 아닌 것을 모두 흡수하는 시기)을 해봅니다.
(무질서한 환경과 그것을 방관하는 듯한 부모의 모습, 공주의 태도와 주변 환경의 무질서 그리고 왕비의 생활 )
현은자 교수님의 '그림책을 해석한다는 것은'을 읽고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특히, K.Vanhoozer의 [ 텍스트에 의미가 있는가]에서 성경해석학의 일반 텍스트 적용 논증.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일반 텍스트에도 적용을 해야 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알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강다혜2026-07-20 21:25
베빗콜의 책은 유머적 요소가 많다고 평가되어, 예전에 '그림책에 나타난 유머'와 관련된 연구를 할 때 베빗콜 책을 많이 읽어보았습니다. 그림이 카툰적이라 좀 더 유머러스한 느낌이 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내용은 전혀 유머러스 하지 않습니다. <비밀인데, 너는 아기 때 대머리였대!>에서 마지막 장면은 이야기를 나누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쿵하고 쓰러지시더니 그대로 돌아가시는 모습을 끝이 납니다. 이런 표현이 어느 학자들은 유머러스하다고 하지만, 이러한 블랙 코미디적 요소가 과연 어린 독자들에게도 유머러스할지는 의문입니다. 아니, 물리적 행동에 관련해서 '갑자기 죽었대' 이런 이야기는 아이들을 일시적으로 까르르 웃게 만들 수는 있습니다. 아이들은 "그래서 갑자기 죽었대!!!" 뭐 이런 두서없는 이야기를 마치 좋아하는 것 같은 모양새로 보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재미있는 것인지, 그리고 죽음이라는 문제를 이렇게 황당하게 표현하는 것이 유머러스하다고 가르치는 것 또한 옳은 것인지에 대한 비판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현교수님 논문 중 <모자삼부작>에도 언급된 내용이지만 블랙 코미디라는 장르 자체가 아이들을 위한 장르는 아닙니다. 이는 성인들에 의한, 성인들만 이해할 수 있는, 성인들을 위한 장르이기 때문입니다. 베빗콜의 작품들이 유아교육기관에서 많이 '반편견', '성교육' 자료로 많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걱정됩니다. 그의 작품은 중요한 진리를 극단적으로 단순화해서 '별 것 아닌 가벼운 것' 정도로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하순2026-07-20 21:49
유명한 그림책 작가라는 이유만으로, 혹은 재미있고 창의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내용이 좋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창의성은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선물이지만, 하나님의 창조 질서와 생명의 존엄성을 무너뜨리는 방향으로 사용된다면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생명의 시작점이 되는 부모의 침소를 가볍고 희화화된 웃음거리로 표현한 부분은 매우 불편했습니다. 생명의 탄생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설명하는 것과, 생명과 부부의 관계를 가볍게 희화화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생명은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귀한 선물이며, 그 시작 또한 거룩하고 소중하게 다루어져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또한 평생 열심히 살아온 조부모의 삶을 희화화하여 우스꽝스럽게 묘사하는 장면도 안타까웠습니다. 아이들이 조부모를 공경하고 삶의 지혜를 배우기보다 웃음거리로 받아들이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대 간의 존중과 공경의 가치가 자연스럽게 무너질 수 있다는 점도 우려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이 글을 읽으며 부모와 교사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책을 많이 읽히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책 속에 담긴 가치관과 세계관을 분별할 수 있는 눈을 길러 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우리 자녀 세대가 이런 류의 책들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분별하며 읽을 수 있는 지혜를 갖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최은아2026-07-21 00:53
교수님의 수업을 듣기 전에는 블랙코미디도 해학적으로 어른을 위해 필요한 장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수업 후 그 가벼움이 많은 사람에게 스며들며 생기는 커다란 영향력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과 비슷하기에 더욱 스며드는 듯합니다. '어쩔 수 없는 인간이니까'라는 가벼운 말로요. 이 책에서의 가볍고 무질서한 삶은 세상을 질서있게 만드신 하나님의 창조성과 반대되는 모습이라 제 삶을 돌아보며 회개하는 순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절제는 우리의 절제와 다른 듯합니다. 사람들의 절제가 유혹을 참고 부족해서 참고 자기조절을 해야하는 성질의 것이라면, 하나님의 절제는 우리를 살리기 위해 그분의 무한한 힘과 진노를 스스로 조절하시는 사랑의 절제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열매인 절제는 우리가 맺을 수 없고, 성령님이 함께 해주셔야만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열심을 다하면서도 기도해야하는 이유라 생각합니다.
지민규2026-07-21 02:36
엄마가 알을 낳았대 이 책을 보면서 마지막 장면에
동물들이 우르르 나오며 우리 모두가 똑같다는 멘트를 보며 기겁했습니다.
성경은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로 보지만
진화론은 사람도 동물일 뿐이다. 사람도 결국 본능을 따르는 짐승 중 하나이다는 메시지를 준다고 생각합니다.
평론을 보며 이 작가의 세계관이 얼마나 비성경적인 것으로 뒤죽박죽 범벅되어 있구나.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은 이 작가의 뒤범벅 세계관이 작품들에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는 것이구나. 절감했습니다.
또한 절제에 대한 놀라운 통찰 감사드립니다.
동물들이 우르르 나오며 우리 모두가 똑같다는 멘트를 보며 기겁했습니다.
성경은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로 보지만
진화론은 사람도 동물일 뿐이다. 사람도 결국 본능을 따르는 짐승 중 하나이다는 메시지를 준다고 생각합니다.
평론을 보며 이 작가의 세계관이 얼마나 비성경적인 것으로 뒤죽박죽 범벅되어 있구나.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은 이 작가의 뒤범벅 세계관이 작품들에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는 것이구나. 절감했습니다.
또한 절제에 대한 놀라운 통찰 감사드립니다.
무절제와 방종을 칭송하는 그림책,
배빗 콜 (Babette Cole) 작품 유감
절제(self-control, temperance)는 성령의 9가지 열매 중 마지막 덕목이지만 그 앞의 8가지 열매의 기본이 되는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갈 5: 22-23), 이 모든 품성은 절제를 전제로 하고 있다. 절제란 우리의 악한 본성, 즉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갈 5: 19-21)을 억누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그런 것들을 행하는 자들은 결코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한다고 한 후, 9가지 성령의 열매를 열거한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절제는 다음 세대에게 가르쳐야 하는 가장 핵심적인 덕목으로 여겨졌으며, 최근 긍정 심리학도 절제를 지혜, 용기, 인류애, 정의, 초월과 함께 6가지 미덕 중 하나로 들고 있다(1). 그런데 문제는 절제란 꾸준하고, 때로는 고통스러운 훈련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어릴 때 가르치지 않으면 나이가 들면 들수록 점점 더 배우기 힘들어진다. 절제의 학습은 인간의 본성상 자신만의 노력이 아니라 타인과 사회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이지만, 애석하게도, 우리 사회는 어린 세대에게 절제를 가르치는 데에 매우 서툴 뿐 아니라 큰 제약을 받고 있기도 한다. 자녀가 한 둘밖에 되지 않는 가정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은 거의 왕자님과 공주님 같이 대접받는다. 그러니 학생이 2, 30명도 되지 않는 초등학교 힉급의 교사들이 학생 지도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게다가 최근 학생인권 조례로 인해 학교에서의 학생의 자유와 권리는 절대시되고, 교사의 권위가 약화되고 있는 것도 큰 제약조건이 된다.
그림책은 성품교육을 위한 유용한 매체이지만 절제라는 덕목만을 다루고 있는 그림책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림책 베이직’의 추천도서 목록에서도 성령의 열매 중 ‘절제’로 분류된 그림책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 그 이유는 절제란 다른 덕목들 안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컨대, 누군가를 사랑하고, 화평을 누리고, 인내하고, 신실함을 발휘하는 인물들은 자신의 욕구와 이기심을 누르고 타인과 사회의 유익을 우선시하는 캐릭터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영국의 유명한 그림책 작가인 배빗 콜(1949-2017)의 작품은 절제라는 덕목과는 거리가 매우 먼 것 같다. 그는 영국을 대표하는 아동문학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평가받고 있으며 케이트 그린어웨이 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평론가들은 그의 작품의 장점으로서 뛰어난 유머감각과 더불어 출산, 이혼, 성역할, 죽음 등 그동안 어린이책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았던 주제들을 들고 있다. 그는 생전에 농장에서 동물들을 키우며 살았다고 하는데, 그 때문인지 그의 작품에는 항상 개나 고양이만이 아니라 농장의 동물들과 온갖 형태의 생명체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국내의 어떤 출판사에서 한 질로 묶은 배빗 콜의 대표 그림책 4종 중 『엄마가 알을 낳았대』(Mommy laid an agg)와 『따로 따로 행복하게』(Two of everything)는 아마도 국내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작품일 것이다. 『엄마가 알을 낳았대』는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먼저 번역되었는데, 1990년대 출간 초기부터 성교육을 다룬 책이라 하여 주목받았으며, 국내의 거의 모든 유아교육기관에서 유아 성교육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많은 교사와 부모들은 이 작품이 아기 출산에 대한 유아들의 질문에 사실에 입각한 과학적인 정보를 제공한다고 믿고 있다. 『따로 따로 행복하게』는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겪을지도 모르는 자녀의 죄책감을 덜어주고, 이혼 후 부모와 자녀 모두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이혼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키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이 작품은 이혼 가정에 대한 반편견(anti-bias)용 자료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의 작품을 면밀히 읽어보게 되면 어린이 독자에게 어떤 유익을 줄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갖게 된다. 특히 그의 작품은 절제라는 덕목과는 거리가 멀다. 『엄마가 알을 낳았대』, 『내 멋대로 공주』, 『비밀인데, 너는 아기때 대머리였대』, 이 세 작품의 캐릭터 분석을 통해 그 이유를 밝히도록 하겠다. 『엄마가 알을 낳았대』의 첫 장면에는 부모와 딸, 아들로 구성된 가족이 등장한다. 거실 소파에서 TV 시청 중인 아들과 딸은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거나 눕는 등 편한 자세로 과자를 먹고 있고, 얼굴에는 과자 부스러기들이 덕지덕지 묻어있다. 소파 주위에는 개, 고양이, 새, 등이 소파 위와 언저리에 앉아 있다. 바닥에는 그들이 먹다 버린 과일과 놀다가 내던진 장남감들이 흩어져 있다. 그런 그들 앞에 부모가 나타나고 아버지가 “자, 얘들아, 이제 너희들도 알아야 할 때가 되었어. 아기가 어떻게 생기는지 말이야.”라고 운을 뗀다. 아마도 그들은 이 문제를 아이들에게 알려주려고 준비를 마친 듯 싶다.
그러나 출산에 관한 아버지의 설명은 매우 비과학적이며 신화적이기까지 하다. 여자 아기는 설탕에 온갖 향기로운 것들을 넣어서 만들고, 남아는 달팽이와 강아지 꼬리를 섞어서 만든다던가, 공룡이 아기를 가져다 준다든가 등... 그들의 설명이 다 끝나자 아이들은 “히히히 하하하 호호호 엄마 아빠, 엉터리!...”라고 파안대소하며 자신들이 아기 탄생의 과정을 설명하겠다고 나선다. 종이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벌거벗은 몸을 그리고 정자가 난자로 들어가는 과정, 그리고 두 사람이 이런 저런 방식으로 몸을 합치는 모습, 엄마의 뱃속에 들어간 정자들 중 가장 빠른 정자가 난자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 엄마의 배가 점점 커지고, 마침내 아기가 엄마의 자궁에서 거꾸로 빠져 나오는 모습을 그려낸다. 아이들은 부모에게 “이제 아시겠어요, 엄마, 아빠”라고 책망하듯 말하고 부모들은 얼굴이 벌개져서 어쩔 줄 몰라하는데, 아이들이 거실 문을 활짝 열자 농장의 모든 동물들이 쌍을 이루어 거실로 줄지어 들어온다. 아이들은 더욱 의기양양하여, 부모를 바라보며 “보세요, 모두모두 다 그런걸요”라고 말한다.
인터넷 서평란에는 “성교육을 깜찍하게 다룬 자료” “솔직하고 진실한 성교육“ ”유쾌한 상상력”, “진지하지 않은 형식”등, 호평 일색이다. 영리하게 보일지는 모르나 무절제한 자녀의 모습을 지적하거나 부정적으로 언급한 서평은 보기 힘들다. 부모로 여겨지는 서평자들은 거짓 언술로 아이들을 속이려고 했던 부모보다 정확한 사실을 알고 있는 아이들의 편에 선다. 아이들은 성인이 생각하듯 그런 어리숙한 존재가 아니라는 작가의 관점에 동조하면서...
『내멋대로 공주』로 번역된 『Smarty Pants』는 결혼하기 싫어하는 공주의 소망 성취 스토리인데, 예쁜 공주가 마녀의 저주를 풀고 멋진 왕자와 결혼하여 행복하게 오래오래 산다는 옛이야기의 통념을 뒤집는다. 표지에는 검은색 가죽 자켓과 바지를 입은 공주가 뒷좌석에 공룡을 태우고 바이크를 타고 달려가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 이미지는 핑크색 배경과 아이러니를 이룬다. 본문 첫 장면에 그려진 공주의 모습은 『엄마가 알을 낳았대』의 아이들과 흡사하다. 엎드려서 TV 속 승마하는 여자를 시청하고 있는 공주 주변에는 개, 고양이, 말, 작은 공룡 등이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방바닥에는 양말과 신문, 음료수 깡통, 동물들이 씹다가 버린 듯한 뼛조각, 바나나 껍질 등이 흩어져 있다.
동물들과 함께 자기 마음대로 살고 싶었던 공주에게 어느 날 왕비는 너도 나이가 들었으니 동물들과 놀지 말고 남편감을 찾으라고 훈계한다. 그 후 공주와 결혼하기 위해 사방에서 왕자들이 몰려와 성은 북새통을 이룬다. 공주는 마지못해 “내가 시키는 일을 척척 해내는 사람이 있다면 기꺼이 결혼하겠어요”라고 선포한다. 몰려온 왕자들이 모두 그 과제에서 실패하고 공주가 내심 좋아하고 있을 때 뺀질이 왕자가 나타난다. 그리고 그는 다른 왕자들이 실패한 모든 과업에서 성공한다. 공주는 마지못해 그에게 마법의 뽀뽀를 하고, 그 순간 왕자는 못생긴 두꺼비로 변신하여 성을 떠난다. 그 뒤로 공주와 결혼하겠다는 왕자는 나타나지 않았고, 공주는 동물들과 함께 제멋대로 살면서 오래 오래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 작품에서도 공주는 영리하고 자기 주도성이 있는 캐릭터로 그려지는 반면, 부모인 왕과 왕비는 공주는 왕자와 결혼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인물들이다. 왕비는 백화점에 가서 ‘설설겨 왕자 ’의 허리가 휠 정도로 많은 명품 옷과 구두를 쇼핑하는 쇼핑 중독자의 모습을 보여주며. 그것도 모자라 속옷 코너에서 빨간 색 하트 모양이 그려진 팬티를 관심있게 들여다 본다. 이러한 속물적인 왕비 캐릭터는 외모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 공주와 대조된다. 또한 돈 많은 공주와 결혼하려고 몰려온 왕자들은 겁 많고 연약하고 어리석은 존재들이다. 이러한 주변 캐릭터들로 인해 제멋대로인 공주의 무절제함과 ‘뺀질이’ 왕자에게 보여주었던 신의(信義) 없음(과제를 해결하면 결혼하겠다는 약속을 저버림)과 잔혹함(마법을 사용하여 왕자를 못생긴 두꺼비로 만들어 쫒아버림)과 같은 비윤리적인 행위는 문제시 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비밀인데, 너는 아기때 대머리였대』를 보자. 번역본 제목은 원제인 『Drop Dead』(죽다)와는 의미상으로 매우 거리가 멀다. 이 그림책은 앞선 두 작품만큼 인지도가 높지 않지만 배빗 콜의 작품 중 유일하게 ‘죽음’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면에서 흥미를 끈다. 첫 장면에 등장하는, 턱이 늘어지고 뚱뚱한 조부모는 장례식 의상을 차려입었다. 할머니는 새 깃털로 장식된 검은 색 모자에 검은 드레스, 그리고 할아버지도 흰 와이셔츠에 조끼, 나비 넥타이, 검은 색 양복으로 성장(盛裝))하였다. 이 상황에서 손주들이 느닷없이 나타나 두 분은 왜 대머리에 늙고 주름이 많으냐고 묻는다. 아이들의 질문은 당돌하고 도발적이며, 조부모를 향해 치켜뜬 그들의 눈초리는 마치 범인을 심문하는 심문자(審問者)의 그것과 흡사하다.
당돌하고 예의 없는 아이들의 질문에 조부모는 주저함 없이 자신들의 긴 과거사를 들려준다. “우린 아기 때부터 주름이 많고 대머리였단다!”라고 운을 뗀 후, 영유아기의 자조기술 습득, 아동기의 자전거 타기, 청소년기의 바이크 타기, 위험천만한 화학 실험, 흡연, 몰래 아빠 차 운전하기, 청년기의 이성 교제, 광란의 축제, 성인기의 스턴트 배우직, 영화 촬영장에서의 결혼, 아들의 출산, 노년기의 영화계 은퇴 까지의 스토리를 들려주며, 신체적인 노화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새 일에 대한 욕망은 여전함을 토로한다. 그러더니 둘 다 “꽝”하고 길게 쓰러져, “이처럼 우리가 아무리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하더라도 우린 어느 날 세상을 떠나게 될 거야. 다만 모든 사람들처럼, 그리고 나서 우린 또 다시 태어날지도 몰라! 문어, 커다란 사슴, 아기, 벌레, 양, 유령, 양파 피클, 외계인, 또는 비쩍 마른 두 마리 닭”라고 두서없이 중얼거린 후 손주들에게 “얘들아, 무엇으로 태어나는 게 좋겠니?”라고 묻는다. 페이지를 넘기면 양계장에 갇힌 듯한, 화면 가득 비쩍 마른 닭들이 무심한 표정을 하고 서있다. 그 닭들 가운데에서 할아버지 닭이 팔짱을 끼고 몹시 불만스럽다는 듯이 “세상에나! 도대체 이건 누구의 생각이니?”라고 투덜거린다. 마치 그렇게 환생한 것이 다른 사람의 잘못인 것처럼… 이제 처음으로 할아버지는 자신이 통제하지 못하는 삶을 시작하게 된 셈이다.
이 작품에서도 손주와 조부모는 매우 대조적인 캐릭터로 그려지고 있다. 아이들은 조부모에게 다가와 심문하는 듯한 눈초리로 당돌한 질문을 해대며, 조부모는 그 질문에 무절제와 방종으로 점철된 자신들의 과거를 부끄럼 없이 늘어놓는다. 조부모의 이미지는 희화(戲畫)화된 것이기는 하지만 이 작품이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 증거는 작품의 원제와 복선(伏線)이으로 여겨지는 조부모의 의상, 그리고 죽음과 환생을 그린 마지막 장면이다.
요약하면, 『엄마가 알을 낳았대』, 『제멋대로 공주』, 『비밀인데, 너는 아기때 대머리였대』의 주인공 캐릭터는 공통적으로 무절제와 방종이라는 인성적 공통점을 지닌다. 흥미로운 것은 이 세 작품은 생명의 시작, 결혼, 죽음이라는 삶의 가장 중요한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작가의 세계관을 파악할 수 있는 단초가 된다는 점이다. 『엄마가 알을 낳았대』에서 인간 생명의 잉태는 부부의 가볍고 유쾌한 놀이와도 같은 성행위를 통해 적자 생존의 과정으로 시작되며 그것은 동물의 교미와 출산과 다름 없다는 생명관을 함축하고 있다. 『내 멋대로 공주』는 여성이 제멋대로 살아갈 자유는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며 따라서 그것을 억압하는 모든 것은 제거되어야 마땅하다는 관점을 전달한다. 『비밀인데, 너는 아기 때 대머리였대』는 제어 받지 않고 욕망에 이끌려 살아가는 삶에 대한 풍자를 담고 있다. 즉, 이 세 작품들은 각각 진화론과 유물론, 건강하지 않은 페미니즘, 그리고 동양의 윤회설 등 비성경적인 세계관을 담고 있다.
성령의 열매의 마지막 덕목인 절제는 아마도 하나님의 속성이 존재하지 않는 유일한 덕목일 것이다. 사랑, 희락, 화평, 인내, 자비, 양선, 충성, 온유는 하나님의 속성이지만 절제는 하나님과 관련이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절제할 필요가 없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라고 사도 요한은 말했다(요일 1:5). 절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시는 어떤 것이 아니라 우리가 훈련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일 중 하나가 우리의 죄악된 욕망을 제어할 능력을 주는 것임을 믿는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전(殿)인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께 간구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통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러나 어린 아이에게 있어서 성령의 일은 부모와 교사의 몫이다. C.S.루이스도 『순전한 기독교』에서 “마음이 온통 잘못되어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자신을 보여주실 수 없습니다. 햇빛이 편애를 할 수 없음에도 깨끗한 거울에 비치는 밝기만큼 더러운 거울에 환히 비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p.255)라고 한 바 있다. 기독 부모들은 일찍부터 자녀의 마음을 말씀의 씨가 뿌려질 때 싹을 틔우고 자라게 할 수 있는 좋은 밭으로 만들고, 하나님의 말씀이 밝게 비출 수 있는 깨끗한 거울로 만들어 놓아야 한다. 자신의 악한 욕망과 자기 중심주의를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일은 성품 교육의 기본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림책이 일찍부터 아이들의 마음을 비옥한 밭과 깨끗한 거울로 만들 수 있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기를 소망하는 바이다.
(1) https://ko.wikipedia.org/wiki/%EC%A0%88%EC%A0%9C
현은자 |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 명예교수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 명예교수이며 그림책 평론 작업을 하고 있다. 미국 University of Michigan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1989년부터 2023년까지 성대 아동청소년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2021년부터 웹진 <그림책 베이직>에 '그림책의 세계관' 칼럼을 연재하고 있으며, 그림책 세계관 연구소에서 운영하고 있는 '그림책 세계관 지도사 과정'에서 '그림책의 세계관', '기독 신앙과 그림책 읽기'를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기독교 세계관으로 아동문학보기>, <그림책의 세계관>, 공저로는 <그림책의 이해1, 2>, <그림책과 예술교육>, <세계 그림책의 역사>, <어린이교육전문가가 엄선한 100권의 그림책>, <신앙이 자라는 그림책 읽기>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