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의 세계관
경계 안의 삶이 누리는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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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uly2022-02-08 16:12
글을 읽으며 경계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자유라는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정말 우리사회는 트랜스휴먼의 꿈을 지향하며 나아가는 듯하다는 말씀에 깊이 동감합니다.
특히 저는 동물을 키우는 입장이다보니 여러 관계 중 인간과 동물의 바람직한 관계 설정을 늘 고민하곤 합니다.
요즘 우리사회에서 반려동물은 인간의 가족의 하나로 인식되고 여겨지는데, 이러한 변화도 경계 없는 삶을 반영하는 한 부분이라고 느껴졌습니다.
동물과 인간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며 나타난 반려동물 문화 안에는 인간의 욕망과 욕심의 발현으로 희생되는 여러 동물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런 현실에서 인간과 동물이 맺어야 할 바람직한 경계와 관계에 대한 해답을 글을 통해 성찰하게 됩니다.
치치, 아모스와 보리스, 그리고 물고기도 결국엔 자신의 자리에서 자유를 되찾은 것 처럼, 경계는 우리에게 자유라는 가치를 선사한다는 점을 배우게 된 유익한 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특히 저는 동물을 키우는 입장이다보니 여러 관계 중 인간과 동물의 바람직한 관계 설정을 늘 고민하곤 합니다.
요즘 우리사회에서 반려동물은 인간의 가족의 하나로 인식되고 여겨지는데, 이러한 변화도 경계 없는 삶을 반영하는 한 부분이라고 느껴졌습니다.
동물과 인간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며 나타난 반려동물 문화 안에는 인간의 욕망과 욕심의 발현으로 희생되는 여러 동물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런 현실에서 인간과 동물이 맺어야 할 바람직한 경계와 관계에 대한 해답을 글을 통해 성찰하게 됩니다.
치치, 아모스와 보리스, 그리고 물고기도 결국엔 자신의 자리에서 자유를 되찾은 것 처럼, 경계는 우리에게 자유라는 가치를 선사한다는 점을 배우게 된 유익한 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혜경2022-10-25 13:24
요즘 다양성과 인권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옳고그름 안전과 위험의 경계를 허물고 있습니다. 동성애나 성소수자를 권리로 해석해주는 어리석은 교육을 아이들에게 주입하여 위험을 더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타고난 것, 본질적인 것은 가장 기초적인 것이며 우리의 생명을 더욱 활기차게 해주며 하나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기초를 버리고 찾아 떠나는 자유는 순간의 즐거움일수 있지만 거짓 자유이며
착각이라는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주지 않는다면 슬픈 일입니다. 가치관 교육이 우리 자녀에게 꼭 적용되기를 기도하며
더 일깨워주는 말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타고난 것, 본질적인 것은 가장 기초적인 것이며 우리의 생명을 더욱 활기차게 해주며 하나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기초를 버리고 찾아 떠나는 자유는 순간의 즐거움일수 있지만 거짓 자유이며
착각이라는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주지 않는다면 슬픈 일입니다. 가치관 교육이 우리 자녀에게 꼭 적용되기를 기도하며
더 일깨워주는 말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twinkleLee 민옥2025-01-20 13:08
부모의 양육자 유형에서도 방임형과 코칭형의 구분은 경계이다.
방임형과 코칭형은 자녀를 자유롭게 한다는 점이 공통적이기 때문에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는 질문을 받곤 한다.
방임형은 경계가 없이 자유롭게 행동하게 버려두지만 코칭형은 경계를 주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축구 또한 그렇다. 정해진 선 안에서는 얼마든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지만 선 밖을 넘어가면 안 된다.
경계가 없으면 결국 대소동과 혼란이 초래된다.
치치가 멋진 모습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기관사 짐과 조수 몰리 아저씨가 항상 치치를 닦고 기름질 해 주었기 때문이다.
지금 나의 모습 또한 하나님의 창조질서 안에서 돌보심이 있기 때문이다.
치치를 통해 나의 연약함을, 감사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물고기, 아모스와 보리스 그리고 나와 우리 모두는
경계 안에서 각자의 자리에 있을 때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방임형과 코칭형은 자녀를 자유롭게 한다는 점이 공통적이기 때문에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는 질문을 받곤 한다.
방임형은 경계가 없이 자유롭게 행동하게 버려두지만 코칭형은 경계를 주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축구 또한 그렇다. 정해진 선 안에서는 얼마든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지만 선 밖을 넘어가면 안 된다.
경계가 없으면 결국 대소동과 혼란이 초래된다.
치치가 멋진 모습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기관사 짐과 조수 몰리 아저씨가 항상 치치를 닦고 기름질 해 주었기 때문이다.
지금 나의 모습 또한 하나님의 창조질서 안에서 돌보심이 있기 때문이다.
치치를 통해 나의 연약함을, 감사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물고기, 아모스와 보리스 그리고 나와 우리 모두는
경계 안에서 각자의 자리에 있을 때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정민2025-01-20 15:41
저는 세 권 중 말괄량이 기관차 치치만 읽었는데요, 교수님의 글을 먼저 접해서 "경계 안에서 누리는 자유"라는 개념을 가지고 그림책을 읽었습니다.
책을 펼치고 처음부터 좀 의아했던 부분이 면지에 분명 교회처럼 보이는 곳에 십자가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교회가 아닌가? 갸우뚱 했는데, 결국 뒷 쪽에 사람들이 교회 탑에 오르는 장면이 나오고,
십자가가 희미하게 그려져 있더라구요. 그리고 책 맨 마지막 장면에도 교회탑 부분만 그려져 있는 부분이 있구요,
그리스도의 율법(마5:17), 진리를 주신 하나님을 인간이 떠났을 때를 비유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현 시대는 나에게 무언가를 "강요"하면 안된다고 생각하니까요, 인간으로 지켜야 할 것들을 이야기하면 그것을 오히려 나의 자유를 제한하는 악(惡)으로 표현하는 세상.
부모의 잔소리가 인권 침해라고 배우고,
진리는 존재하지 않고 내 생각이 옳고, 내 감정을 선(善)이라고 표현하는 시대이니까요.
과연 그 안에 진정한 자유와 행복이 있는지 의문입니다.
치치가 본인이 만들어진 목적으로 마땅히 해야 하는 일들을 버리고, 자신을 "뽐내고"싶어서 "자유"(?)를 찾아 떠났던 마음처럼,
우리들 마음 안에도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신 목적이 아닌,(하나님이 주인이 아닌)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뽐내고"싶은 마음이
어떤 결과들을 초래하는지 생각해보게 합니다. 치치가 길을 잃고 모든 것이 엉망이 되고 혼란스러웠던 것처럼 하나님 없는 인생도 실제로 마찬가지입니다.
치치의 마지막 고백이 아이들이 볼 때는 "재미없어."라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인생의 정답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세계의 질서 안에서 내가 만들어진 목적을 누리는 것이 곧 자유이고 행복입니다.
책을 펼치고 처음부터 좀 의아했던 부분이 면지에 분명 교회처럼 보이는 곳에 십자가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교회가 아닌가? 갸우뚱 했는데, 결국 뒷 쪽에 사람들이 교회 탑에 오르는 장면이 나오고,
십자가가 희미하게 그려져 있더라구요. 그리고 책 맨 마지막 장면에도 교회탑 부분만 그려져 있는 부분이 있구요,
그리스도의 율법(마5:17), 진리를 주신 하나님을 인간이 떠났을 때를 비유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현 시대는 나에게 무언가를 "강요"하면 안된다고 생각하니까요, 인간으로 지켜야 할 것들을 이야기하면 그것을 오히려 나의 자유를 제한하는 악(惡)으로 표현하는 세상.
부모의 잔소리가 인권 침해라고 배우고,
진리는 존재하지 않고 내 생각이 옳고, 내 감정을 선(善)이라고 표현하는 시대이니까요.
과연 그 안에 진정한 자유와 행복이 있는지 의문입니다.
치치가 본인이 만들어진 목적으로 마땅히 해야 하는 일들을 버리고, 자신을 "뽐내고"싶어서 "자유"(?)를 찾아 떠났던 마음처럼,
우리들 마음 안에도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신 목적이 아닌,(하나님이 주인이 아닌)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뽐내고"싶은 마음이
어떤 결과들을 초래하는지 생각해보게 합니다. 치치가 길을 잃고 모든 것이 엉망이 되고 혼란스러웠던 것처럼 하나님 없는 인생도 실제로 마찬가지입니다.
치치의 마지막 고백이 아이들이 볼 때는 "재미없어."라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인생의 정답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세계의 질서 안에서 내가 만들어진 목적을 누리는 것이 곧 자유이고 행복입니다.

jihye2025-01-20 23:12
의인화된 치치와 물고기, 아모스와 보리스를 보며 인간의 연약함과 같다고 느꼈습니다. 경험과 지식의 유한성으로 인해 자신이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절대 깨닫거나 미리 알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약함 또는 미련함이라고 보여집니다.
물고기가 편안히 자유를 누리며 사는 연못은 곧 에덴동산과 같이 하나님이 마련하신 온전한 자유의 세계인데 하나님과 같이 되려 하고, 오히려 내가 하나님 되려 하는 죄성이 스스로의 자유 경계를 무너트리는 결과를 초래함을 보게 됐습니다.
'말괄량이 기관차 치치'에서 치치는 짐 아저씨가 날마다 돌보아 주었기 때문에 빛날 수 있었지만 이것을 자신의 의로 착각하고 돋보이기 위해 탈출을 감행합니다. 현재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인데 마치 그것을 나의 의인양, 나의 면류관인양 드러내고 싶어하진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그럼에도 치치가 돌아와 기뻐 춤추며 치치를 맞아주고 사랑해 주는 것이 곧 하나님의 마음이고, 돌아온 탕자의 아버지 마음이라 여겨집니다.
물고기가 편안히 자유를 누리며 사는 연못은 곧 에덴동산과 같이 하나님이 마련하신 온전한 자유의 세계인데 하나님과 같이 되려 하고, 오히려 내가 하나님 되려 하는 죄성이 스스로의 자유 경계를 무너트리는 결과를 초래함을 보게 됐습니다.
'말괄량이 기관차 치치'에서 치치는 짐 아저씨가 날마다 돌보아 주었기 때문에 빛날 수 있었지만 이것을 자신의 의로 착각하고 돋보이기 위해 탈출을 감행합니다. 현재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인데 마치 그것을 나의 의인양, 나의 면류관인양 드러내고 싶어하진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그럼에도 치치가 돌아와 기뻐 춤추며 치치를 맞아주고 사랑해 주는 것이 곧 하나님의 마음이고, 돌아온 탕자의 아버지 마음이라 여겨집니다.
백효진2025-01-21 00:59
<말괄량이 기관차 치치>의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부분에 '나의 아들 아리스에게'라는 글귀와 기차레일을 둥글게 만들고 기차놀이를 하던 한 아이가 어딘가에서 비춰오는 한줄기 빛을 올려다보는 그림이 등장합니다.
이 부분을 보며 저는 '교훈이 너무 드러나는 책은 싫어!'라고 생각하는 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무언가 가르치려는 시도가 느껴질 때, 내가 틀렸고 공감받지 못하며 무시당한다는 생각으로 연결되는 것을 보면서 이것이 바로 경계를 허물고 싶어하는 죄성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말괄량이 기관차 치치도 물고기도 아모스도 현실에 만족하고 감사하기보다는 단순한 호기심을 마음에 품고 점점 키워낸 결과 이길 수 없는 욕구가 되어 결국 침범해서는 안되는 영역에 발을 디디게 된 것이 아닐까?
하지만 어쩌면 그 영역 너머를 다녀왔기에 물고기는 물고기인 것을 알게 되고, 아모스와 보리스는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기억하는 것만으로 행복할 수 있으며 치치도 지금하는 일이 제일 재미있고 의미있는 일임을 알게 된 것일테니 그 호기심 또한 값지다고 말해주어야 할 것인가 고민하게 됩니다.
그러나 또. 경계를 넘지 않고도 지금 내게 주어진 것이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신 가장 좋은 자리임을 모두가 다 깨닫고 감사하며 살아간다면. 이런 재미있는 그림책이 나오지 않았을수도 있었겠다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머리속에 그득합니다.
이 부분을 보며 저는 '교훈이 너무 드러나는 책은 싫어!'라고 생각하는 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무언가 가르치려는 시도가 느껴질 때, 내가 틀렸고 공감받지 못하며 무시당한다는 생각으로 연결되는 것을 보면서 이것이 바로 경계를 허물고 싶어하는 죄성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말괄량이 기관차 치치도 물고기도 아모스도 현실에 만족하고 감사하기보다는 단순한 호기심을 마음에 품고 점점 키워낸 결과 이길 수 없는 욕구가 되어 결국 침범해서는 안되는 영역에 발을 디디게 된 것이 아닐까?
하지만 어쩌면 그 영역 너머를 다녀왔기에 물고기는 물고기인 것을 알게 되고, 아모스와 보리스는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기억하는 것만으로 행복할 수 있으며 치치도 지금하는 일이 제일 재미있고 의미있는 일임을 알게 된 것일테니 그 호기심 또한 값지다고 말해주어야 할 것인가 고민하게 됩니다.
그러나 또. 경계를 넘지 않고도 지금 내게 주어진 것이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신 가장 좋은 자리임을 모두가 다 깨닫고 감사하며 살아간다면. 이런 재미있는 그림책이 나오지 않았을수도 있었겠다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머리속에 그득합니다.
옥희진2025-01-2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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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와 보리스>를 혼자 읽었을 때는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경계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맞는 삶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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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을 창작하는 사람으로서 책을 만들 때 세상의 기준이 아닌,
이 책이 하나님 나라에 어떤 유익이 될 수 있을지, 그리고 하나님의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해 먼저 고민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아모스와 보리스>를 혼자 읽었을 때는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경계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맞는 삶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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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을 창작하는 사람으로서 책을 만들 때 세상의 기준이 아닌,
이 책이 하나님 나라에 어떤 유익이 될 수 있을지, 그리고 하나님의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해 먼저 고민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yunkyung2025-01-21 09:24
부르심을 알지 못하면 내게 주어진 은혜를 모르고, 은혜를 모르면 내 삶에 감사할 수 없고, 감사가 없으면 온전한 자유를 누릴 수 없기에 경계를 넘는 것만이 자신이 자유를 누릴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고기는 물고기야> 그림책에서 물고기가 자신에게 주어진 가장 좋은 곳인 물 안 세상을 잊은 채 물 밖 세상에 대한 동경으로 온 힘을 다해 둑으로 뛰어올랐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경계 안에 거한다는 것은 창조 섭리 안에 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내용이 와 닿았습니다.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시고 오늘도 내게 가장 좋은 것, 선한 것들을 허락하신 그 분의 은혜에 감사함으로 지금, 여기에서 주어진 자유를 온전히 누리길 소망 합니다.
<물고기는 물고기야> 그림책에서 물고기가 자신에게 주어진 가장 좋은 곳인 물 안 세상을 잊은 채 물 밖 세상에 대한 동경으로 온 힘을 다해 둑으로 뛰어올랐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경계 안에 거한다는 것은 창조 섭리 안에 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내용이 와 닿았습니다.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시고 오늘도 내게 가장 좋은 것, 선한 것들을 허락하신 그 분의 은혜에 감사함으로 지금, 여기에서 주어진 자유를 온전히 누리길 소망 합니다.
전보람2025-07-22 21:45
[경계 안에 거한다는 것은 생명을 유지한다는 것, 그 이상의 가치를 뜻합니다. 그것은 ‘자유’입니다.]
경계를 허물고 경계를 뛰어넘는 것이 '이상적인 자유'를 누리는 것이라는 착각 속에 오랜 세월을 살아온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주제는 사춘기 때부터 다른사람보다 특별해지고 싶어했던 저를 힘들게 했던 것 같습니다. 분명히 경계를 따르는 것이 그리스도 인의 모습이 맞다고 생각하지만 방종과 진정한 자유를 구분하지 못하는 어리석음 안에서 결국 참된 자유를 얻지 못하고 방황하고 세상과 타협하고 진리와 멀어지는 삶을 살아왔던 지난날이 안타깝고 후회도 됩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다른 무엇보다도 다음세대에게 진짜 즐거운 자유, 진짜 유익이 되는 상상의 힘을 가르쳐주는 교사가 되고 싶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경계를 허물고 경계를 뛰어넘는 것이 '이상적인 자유'를 누리는 것이라는 착각 속에 오랜 세월을 살아온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주제는 사춘기 때부터 다른사람보다 특별해지고 싶어했던 저를 힘들게 했던 것 같습니다. 분명히 경계를 따르는 것이 그리스도 인의 모습이 맞다고 생각하지만 방종과 진정한 자유를 구분하지 못하는 어리석음 안에서 결국 참된 자유를 얻지 못하고 방황하고 세상과 타협하고 진리와 멀어지는 삶을 살아왔던 지난날이 안타깝고 후회도 됩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다른 무엇보다도 다음세대에게 진짜 즐거운 자유, 진짜 유익이 되는 상상의 힘을 가르쳐주는 교사가 되고 싶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with Chang2025-07-23 13:34
세 그림책을 통해 풀어낸 이 글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질서와 ‘경계’ 안에서 비로소 누릴 수 있는 자유를 깊이 있게 조명해주었습니다. 경계를 넘는 것이 곧 자유라는 시대의 목소리와 달리, 진리이신 하나님 안에 머물 때 참 자유가 주어진다는 요한복음 8장 32절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물고기는 물고기이기에, 치치는 기관차이기에, 보리스는 고래이기에 아름다운 존재지요.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맞는 자리를 허락하시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피어날 수 있도록 경계를 주셨음을 깨닫습니다. 이 글을 통해 자유와 질서, 존재와 정체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기술의 혁신이 거듭되는 시대지만 창조의 진리를 잊지말라는 메세지로 받겠습니다..
우승린2025-12-01 13:16
경계 안에 머문다는 것은 내가 누구인지를 잘 아는 것이자 나의 소명을 아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내가 물고기 인지, 기관차인지, 뭍에 사는 생쥐인지 아니면 바다에 사는 고래인지를 아는 것이 자유를 누리는 첫 출발점인 것 같습니다. 인생에서 경계를 모를 때 우리는 건강을 잃기도 하고, 관계가 무너지기도 하며, 인생의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됨도 경험합니다. 인간이기에 진정한 행복과 자유를 위해서는 주님이 꼭 필요함을 사람들은 왜 모를까 싶은 안타까움이 많이 드네요 교통 신호만 보아도 우리에게 질서와 안녕이라는 행복과 자유를 주는 것이 이 신호라는 룰과 경계인데 말입니다…
이신애2025-12-01 14:31
경계를 이탈해 죽을 뻔했지만 기가 막힌 은혜로 다시 살게 되는 이야기,
스스로가 빚어낸 혼란에서 질서의 자리로 다시 돌아오게 되는 이야기,
모든 것이 섭리 안에 있음을 깨닫게 하는 이야기-
이러한 이야기들이 아이들 마음속에 심겨질 때, 그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신뢰할 수 있는 내적인 기초가 되어줄 것이라 믿습니다.
그림책 속에서 이러한 빛나는 이야기를 발견하도록 이끌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들의 마음에 이런 이야기를 심어주는 부모와 교사로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스스로가 빚어낸 혼란에서 질서의 자리로 다시 돌아오게 되는 이야기,
모든 것이 섭리 안에 있음을 깨닫게 하는 이야기-
이러한 이야기들이 아이들 마음속에 심겨질 때, 그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신뢰할 수 있는 내적인 기초가 되어줄 것이라 믿습니다.
그림책 속에서 이러한 빛나는 이야기를 발견하도록 이끌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들의 마음에 이런 이야기를 심어주는 부모와 교사로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서정아2025-12-01 18:36
생각의 지경을 넓혀주는 글 잘 읽었습니다.
분명 어떤 컨디션 안에서만 살 수 있는 존재로 지음받은 존재인데 그 경계를 거부하고 있는 인간들의 모습을 다시 보게되네요.
현대의 문화속에 '절대적인 진리'는 이미 거부되어 사라진 지 오래되었고, 그렇게 자신의 기원을 잃어버린 인간들이 만들어 내는 창작물은 길을 찾는 이들을 더 혼란스럽게 할 뿐인 것 같습니다. 그 혼란은 가장 기초적인 예술인 그림책 영역에도 들어와 이제 막 걸음마 하는 아이들이 길을 나서기도 전에 길을 잃는 상황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길을 떠나기 전에 "나는 누구인가?" 를 먼저 확인해야 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분명 어떤 컨디션 안에서만 살 수 있는 존재로 지음받은 존재인데 그 경계를 거부하고 있는 인간들의 모습을 다시 보게되네요.
현대의 문화속에 '절대적인 진리'는 이미 거부되어 사라진 지 오래되었고, 그렇게 자신의 기원을 잃어버린 인간들이 만들어 내는 창작물은 길을 찾는 이들을 더 혼란스럽게 할 뿐인 것 같습니다. 그 혼란은 가장 기초적인 예술인 그림책 영역에도 들어와 이제 막 걸음마 하는 아이들이 길을 나서기도 전에 길을 잃는 상황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길을 떠나기 전에 "나는 누구인가?" 를 먼저 확인해야 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김현경2025-12-01 19:44
저는 몇년 전 이 글을 처음 읽었을 때는 마음이 좀 답답했었습니다. 나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는 현실의 벽 같은 이미지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치 "넌 안 돼~"라는 말을 듣는 것처럼 좀 슬프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몇년 사이 여러 일들을 겪고 이 글을 다시 보니 내게 주어진 경계는 나를 억압하는 한계가 아니라, 나를 보호하려는 울타리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사논문을 마치고 한껏 들떠있던 저는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여러가지 기대에 부풀었습니다. 그런데 박사졸업을 한 후 이 문이 열리는가 싶더니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닫히고, 저 문이 열리는가 싶었는데 역시 예기치 못한 일들로 닫히는 일을 반복해서 경험하게 됐습니다. 처음엔 이게 무슨 일이지 어리둥절했는데, 차차 나를 너무나 잘 아시는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시는구나 하는 보호의 손길이 느껴져서 감사했습니다.
저는 태어날 때 위험하게 태어났다고 합니다. 병원에서는 아기나 산모 중에 선택해야한다고 했고 아마 아기가 살지 못할 거라고 예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빠가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간신히 준비해두신 인큐베이터가 무색하게도 인큐베이터 없이 숨도 잘 쉬고 잘 살아남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연약한 육체를 지니고 있지만 그런 나를 꼭 보내셔야만 했던 이유, 하나님의 계획이 있나보다 하고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연약한 육체가 아쉬울 때도 있지만, 약한 나를 통해 강한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볼때면 참으로 이것이 은혜구나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지으신 그대로 감사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앞으로도 나를 돌보시고 보호하실 주님께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제가 경계안의 자유를 누리는 삶에 감사하며 살아가길 바랍니다.
그런데 몇년 사이 여러 일들을 겪고 이 글을 다시 보니 내게 주어진 경계는 나를 억압하는 한계가 아니라, 나를 보호하려는 울타리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사논문을 마치고 한껏 들떠있던 저는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여러가지 기대에 부풀었습니다. 그런데 박사졸업을 한 후 이 문이 열리는가 싶더니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닫히고, 저 문이 열리는가 싶었는데 역시 예기치 못한 일들로 닫히는 일을 반복해서 경험하게 됐습니다. 처음엔 이게 무슨 일이지 어리둥절했는데, 차차 나를 너무나 잘 아시는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시는구나 하는 보호의 손길이 느껴져서 감사했습니다.
저는 태어날 때 위험하게 태어났다고 합니다. 병원에서는 아기나 산모 중에 선택해야한다고 했고 아마 아기가 살지 못할 거라고 예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빠가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간신히 준비해두신 인큐베이터가 무색하게도 인큐베이터 없이 숨도 잘 쉬고 잘 살아남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연약한 육체를 지니고 있지만 그런 나를 꼭 보내셔야만 했던 이유, 하나님의 계획이 있나보다 하고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연약한 육체가 아쉬울 때도 있지만, 약한 나를 통해 강한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볼때면 참으로 이것이 은혜구나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지으신 그대로 감사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앞으로도 나를 돌보시고 보호하실 주님께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제가 경계안의 자유를 누리는 삶에 감사하며 살아가길 바랍니다.
경계 안의 삶이 누리는 자유
지금 우리 사회는 ‘경계(boundary) 없는 삶’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듯합니다. 참과 거짓, 선과 악, 진리와 비진리, 남성과 여성, 가족과 비가족, 아버지와 어머니, 인간과 동물, 실제 세계와 가상 세계 등. 우리 삶의 기초를 흔들고 있는 이 ‘경계 없음’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는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 너희 눈이 열리고 너희가 신들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시느니라”(KJV 창 3: 5)라는 사탄의 거짓말에 속아 선악과를 먹고 자신들도 신과 같이 되고자 하였습니다. 그 결과 본래 영생을 누리도록 창조되었던 인간은 생명 나무로의 접근이 금지되고 낙원에서 추방되어 먼지로 돌아가는 슬픈 운명을 맞게 되었습니다. 이제 현대의 과학기술은 인간이 기계가 되고 기계가 인간이 된다는 트랜스휴먼(trans-human)의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인공 지능과 나노 기술, 로봇 기술의 힘을 빌려 인간의 경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새로워 보이지만 결코 새것이라 할 수 없는 이 모험 이야기는 결국 어떤 결말을 가져올까요?
버지니아 리 버튼의 『말괄량이 기관차 치치』, 레오 리오니의 『물고기는 물고기야』, 윌리암 스타이그의 『아모스와 보리스』는 모두 그림책의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작품들입니다. 이 세 이야기는 문학적으로 몇 가지 특성을 공유합니다. 우선 모험 모티프(motif)라는, 픽션의 대표적인 문학적 전략입니다. 여기에서 주인공은 한두 가지의 심리적 결핍을 경험하며,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해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합니다. 따라서 이 이동은 신체적인 것만이 아니라 심리적, 혹은 사회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 공통점은 의인화된 캐릭터입니다. 기관차라는 기계, 호수에서 사는 물고기와 올챙이(후에 개구리가 되는), 그리고 육지 동물인 생쥐와 해양 동물인 고래입니다. 서사에 등장하는 의인화된 캐릭터는 그것이 동식물과 같은 생명체든, 아니면 사물이든 간에 인간의 속성을 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간 체험의 중요한 측면을 이야기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이야기들은 말하는 자와 보는 자, 모두 3인칭 시점이므로 독자들은 등장인물의 생각과 행동을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말괄량이 기관차 치치>자세히 보기
『말괄량이 기관차 치치』의 주인공은 기관차 치치입니다. 이 작품은 흑백의 목탄화로 그려져 투박해 보이지만 그림은 거의 모든 장면이 대각선 구도를 사용하고 있어 속도감과 역동감을 자아내며, 글 텍스트 또한 기찻길처럼 보이게 하는, 아이코노텍스트(iconotext)의 효과를 십분 발휘하는 작품입니다. 이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여기 꼬마 기관차가 있어요. 이름은 치치라고 하지요. 치치는 새까맣고 반짝반짝 빛나는, 예쁘고 귀여운 기관차랍니다.” 그런데 사실 치치가 이렇게 멋진 모습을 할 수 있는 이유는 기관사 짐과 조수 몰리 아저씨가 항상 치치를 닦고 기름칠해 주었기 때문이지요.
어느 날 치치는 자신이 혼자 달린다면 훨씬 더 빨리 달릴 수 있고 모든 사람이 자신만 쳐다보면서 자신의 멋진 외모에 감탄할 것이라고 상상합니다. 그래서 다음 날 아저씨들이 카페에서 차를 마시면서 쉬고 있을 때 냅다 도망치기 시작합니다. 치치가 건널목의 신호도 무시하고 내달리는 바람에 철로 옆의 사람들과 건널목을 건너던 차들 모두 넘어지고 부딪히며 대소동이 벌어집니다. 다리를 건너다 탄수차를 잃어버리기까지 한 치치는 몇십 년 동안 기차가 오가지 않은, 아주 오래된 낡은 기찻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치치는 자신에게 동력을 제공할 탄수차도 없어 오르막길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동안 짐 아저씨는 사람들과 동물들의 도움을 받아 치치를 찾아내고 큰 역으로 데려옵니다. 짐과 몰리 아저씨는 치치에게 다친 곳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춥니다. 치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짐 아저씨에게 말합니다. “아저씨, 이제 다시는 도망하지 않을게요. 도망쳐 봤자, 별로 재미도 없더라구요. 앞으로는 사람들을 가득 채운 객차랑, 짐을 잔뜩 실은 화차를 끌며 작은 마을에서 대도시까지 왔다 갔다, 왔다 갔다만 할 거예요.”
<물고기는 물고기야> 자세히 보기
레오 리오니의 『물고기는 물고기야』는 ‘교훈을 주기 위한 짧은 이야기’인 우화로 분류되는 작품입니다. 물고기와 개구리의 대화 위주인 글과 경쾌하고 강렬한 원색의 꼴라주 그림은 언어적이며 시각적인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주인공인 물고기와 올챙이는 연못에서 사이좋게 살고 있는 친구입니다. 그런데 점점 시간이 지나자 올챙이는 몸에서 다리가 나오더니 개구리가 되어 그 연못을 떠나버렸습니다. 개구리가 없는 동안 어른이 된 물고기는 친구 개구리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합니다. 어느 날 개구리가 행복한 얼굴로 연못으로 돌아와 세상에 나가 신기한 것들을 많이 보았다며 자랑을 늘어놓습니다. 날개와 다리가 둘 달리고 깃털이 알록달록한 새, 다리가 네 개이고 뿔이 달리고 풀을 뜯어 먹고 분홍색 젖이 달린 젖소, 남자, 여자, 아이들과 같은 사람... 자신의 인식의 틀에 따라 나름대로 그 형상들의 이미지를 상상하던 물고기는 호기심을 억누를 길 없어 온 힘을 다해 둑으로 뛰어오릅니다. 그러나 물 밖에 떨어진 물고기는 곧 숨을 쉴 수도, 몸을 움직일 수도 없어 숨만 헐떡거리는 신세가 됩니다. 마침 근처에서 놀고 있던 개구리가 물고기를 발견하고 다시 연못 속으로 밀어 넣어 줍니다. 정신을 차린 물고기는 개구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네 말이 맞았어. 물고기는 물고기야!”
<아모스와 보리스> 자세히 보기
『아모스와 보리스』는 위대한 스토리텔러(great storyteller)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윌리암 스타이그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사랑받는 작품입니다. 바닷가에 사는 생쥐 아모스는 매일 바다를 바라보며 바다 저 멀리에 어떤 세계가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는 주도면밀하게 항해를 준비하고 만조가 되기를 기다려 바다로 떠납니다. 바다의 신비와 아름다움에 푹 빠져 있던 아모스는 갑작스러운 파도 때문에 배와 준비물을 모두 잃고 망망대해에 혼자 남겨집니다. 바다에 떠서 하룻밤을 넘기고 다음 날 낮이 되자 살 소망이 없어진 아모스는 자신의 죽음과 죽음 이후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때 큰 고래 보리스가 등장하여 아모스를 구해주고, 아모스는 이제 모험은 실컷 했으니 보리스에게 집으로 데려가 달라고 합니다(사실 보리스는 전 세계 고래들의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길을 떠난 참이었지요).
아모스의 집으로 향하는 길에서 그들은 서로의 꿈과 비밀을 나누며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갑니다. 아모스는 집으로 돌아오고, 그들은 각자 뭍과 물에서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그런데 어느날 바다에 사나운 폭풍 허리케인이 불어닥쳐서 이번엔 보리스가 아모스가 사는 해변으로 밀려옵니다. 태풍의 피해를 살펴보려고 바닷가로 나온 아모스가 몸이 말라 죽게 된 보리스를 발견합니다. 친구를 구하기 위해 아모스는 가장 큰 코끼리 두 마리에게 부탁해 보리스를 바닷속으로 굴려 넣습니다. 목숨을 건진 보리스는 “바닷속 감촉이 얼마나 좋은지 제대로 알려면 바다 밖으로 나가보지 않으면 안 돼. 그렇고 말고, 고래라면”이라고 중얼거리고 바다 깊은 곳으로 헤엄쳐 갔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작별인사를 하는 주인공을 대신하여 서술자는 이렇게 이야기를 맺습니다. “아모스와 보리스는 서로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 하지만, 서로를 절대로 잊지 않으리란 것도 알고 있었어.”
이 세 작품은 모험, 죽음, 구원자, 집을 떠남, 돌아옴과 같은 문학의 모티프를 반복합니다. 주인공들은 다른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상상에 이끌려 모험을 감행합니다. 그러나 낯선 세상에서 그들은 위기의 순간을 맞게 되고, 다행히 구원자를 만나 생명을 건지게 됩니다. 거추장스런 객차와 화차를 떼어버리고 자신을 뽐내기 위해 일탈을 감행한 치치, 자신이 만들어 낸 뭍의 이미지에 이끌려 뭍으로 뛰어 오른 물고기, 바다 너머 세상을 동경하여 항해를 시작한 아모스, 그리고 자신의 의지가 아닌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해변으로 떠밀려 온 보리스. 그들이 자신의 경계를 벗어난 이유는 다양하지만 모두 자신의 집에 돌아와 안정감과 만족감과 기쁨을 되찾습니다. 생명을 나눈 아모스와 보리스에게 이별은 분명히 슬픈 일이었겠지만 성숙해진 그들은 그들의 우정을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기고 헤어집니다.
경계 안에 거한다는 것은 생명을 유지한다는 것, 그 이상의 가치를 뜻합니다. 그것은 ‘자유’입니다. 치치는 정해진 선로 위에서 자유롭게 달릴 수 있게 되었고, 물고기는 연못 속에서 마음껏 헤엄칠 수 있게 되었고, 아모스와 보리스는 각자 자신들의 삶의 터전에서 행복한 삶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유는 때로는 물리적인 생명보다 더 소중한 가치를 지닙니다. 자유 없는 생명은 노예나 종과 같은 굴종의 삶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류의 역사는 자유를 얻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친 고귀한 인물들을 칭송하는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경계 안에 거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질서 안에 거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에덴동산에서의 일탈 이후 그 선(線)을 넘으려는 시도는 수없이 재현되었습니다. 급기야 19세기에 등장한 진화론이 과학의 이름으로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허물어트리자 인간이라는 존재는 하나님 형상의 담지자(image bearer of God)가 아니라 우연의 소산물로 여겨졌습니다. 그 다음에는 인간의 성(性)의 경계가 무너져 기존의 성을 가리키던 남(男)과 여(女))라는 단어는 언어유희의 놀이감이 되어 LGBTQ를 비롯한 수십 개의 명칭으로 치환되었습니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사람, 밤낮으로 성정체성이 변하는 사람, 의료기술의 힘으로 다른 성(性)이 된 사람, 남성이지만 여성으로 불리기를 원하는 사람, 그리고 그 반대의 존재 등. 그런데 만일 인간이 우연의 산물이라면 성(性)이 무엇이든, 인간이 동물이 되든, 기계가 되든, 심지어 돌이 되든 매한가지가 아닐까요?
그림책의 이야기는 줄거리가 간결하므로 그 주제가 더욱 선명한 형태로 드러납니다. 기관차와 물고기와 쥐와 고래가 엮어내는 이 비유의 이야기들은 여느 학자의 글보다도 간명하게 인간됨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함축합니다. 우리는 버지니아 리 버튼이 1943년 그의 작품 『작은 집 이야기』의 칼데콧 수상 연설에서 한 이 말을 오랫동안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장 기초적인 것은 항상 가장 중요하며, 좋은 예술은 확실히 기초적인 것이다. 아동도서라는 미디어를 통해 어린 마음에 인상을 주는 것은 어린이에게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진실된 개념을 줄 수 있는 가장 가능한, 좋은 일이다"(1).
(1) Elleman, B. (2004). The picture-book story in twentieth-century America westport. In Pavonetti, L. M. (Eds.), Children’s literature remembered: issues, trends, and favorite books (pp. 27-38). CO: Libraries Unlimited.
현은자 |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 교수
이화여자대학교 교육학과 졸업 후 Eastern Michigan University 에서 석사, University of Michigan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 어린이문학교육학회 회장 및 한국 기독교 유아교 육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아동 청소년학과 교수이며 사회과학대학 부설 생활과 학 연구소 그림책 전문가 과정에서 “기독신앙과 그림책 읽기”를 강의하고 있으며, <기독교 세계관으로 아동문학보기>, <그림책의 이해>(공저), <그림책과 예술교육>(공저>, <그림책으로 보는 아동과 우리사회>(공저), <100권의 그림책>(공저) 등 그림책 관련 저서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