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 의사 드소토 선생님의 악당 대처법
<치과 의사 드소토 선생님> 자세히 보기 <아프리카에 간 드소토 선생님> 자세히 보기
인생길을 걷다 보면 결코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가령, 내가 어렵게 베푼 도움에 감사나 보답은 커녕, 도리어 나를 해하려 하는 ‘배은망덕’한 자라던가, ‘종로서 빰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식으로 누군가 자신이 당한 일로 인해 아무 잘못도 없는 내게 분풀이하려는 자와의 만남이 그것이다. 이런 일을 당할 때 우리는 즉각적으로 그자에 대한 배반감과 분노가 치솟게 되고, 때로는 그런 일의 단초를 제공한 제 3자를 원망하게 된다.
그런 사건이 그림책에서도 벌어진다. 그림책 애독자라면 누구나 윌리암 스타이그(William Steig)(1907-2003)의 작품을 한 개 이상은 읽어보았을 것이다. 그의 대표작인 『당나귀 실베스터와 요술조약돌』를 비롯하여, 『아빠와 함께 피자놀이를』, 『부루퉁한 핑키부』, 『용감한 아이린』 등, 흥미진진하고 유쾌한 서사, 글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카툰(cartoon) 스타일의 코믹한 그림, 그리고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긴 그의 작품들은 읽고 또 읽어도 깊은 울림을 준다. 이번엔 꽤 오래전에 출판된, 『치과의사 드소토 선생님』(Doctor De Soto)(1982/1995)과 『아프리카에 간 드소토 선생님』(Doctor De Soto goes to Africa)(1992/2005)을 다시 읽어보고자 한다. 참고로, 이 두 작품에 『아모스와 보리스』(Amos and Boris)(1971/1996)를 더하면 ‘생쥐 삼부작’이 된다.
윌리암 스타이그의 흥미진진하고 유쾌한 서사, 글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카툰(cartoon) 스타일의 코믹한 그림, 그리고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긴 그의 작품들은 읽고 또 읽어도 깊은 울림을 준다
제목이 알려주듯 『치과의사 드소토 선생님』과 『아프리카에 간 드소토 선생님』에서는 치과의사 드소토 선생님이 주인공이다. 그런데 생쥐 삼부작에서 가장 먼저 출판된 『아모스와 보리스』의 생쥐 아모스와 치과의사 드소토 선생님의 캐릭터는 여러모로 매우 유사하다. 이 두 인물은 의인화된 작은 생쥐라는 외형만이 아니라 호기심, 모험정신, 용기, 지혜, 세심함, 책임감, 인내심, 담대함 등과 같은 특성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독자들은 바다를 모험했던 아모스가 성장하여 결혼하고 치과의사라는 직업을 갖게 된 것이 아닐까 추론하기도 한다. 그런데 생쥐 아모스와 드소토 선생님의 이름은 다르다. 아모스의 성(姓)(last name)도 원래 de Soto인데 생략한 것이 아닐까 추측하게도 되지만, 『아프리카로 간 드소토 선생님』에서 그의 이름은 버나드 드소토 선생님라고 밝히고 있으니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이 두 인물의 관계에 대해서는 조금 후에 다루어 보기로 하고 지금은 치과의사 드소토 선생님과 악당과의 만남에 초점을 맞추어 읽어 보고자 한다.
『치과 의사 드소토 선생님』과 『아프리카로 간 드소토 선생님』은 전지적 화자와 수평적 시점으로 서술되어 있어서 독자들은 이야기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객관적으로 읽고 즐기며 평가하게 된다. 주인공은 당연히 드소토 선생님이지만 그의 부인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매우 작은 생쥐 드소토 선생이 큰 동물들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부인의 도움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첫 장면은 이렇게 시작된다. “치과 의사 드소토 선생님은 이 고치는 솜씨가 아주 좋았어요. 그래서 늘 환자들이 줄을 섰지요. 선생님은 자기와 몸집이 비슷한 두더지나 얼룩다람쥐 같은 동물들은 치과 의자에 앉혔고요, 몸집이 큰 동물들은 바닥에 앉혔어요. 그러면 선생님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치료해 주었어요.” 그림에는 돼지 아줌마가 입을 크게 벌리고 있고 그의 입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드소토 선생이 앞니를 치료하고 사다리 밑에서는 아내가 쟁반에 치과 기구들을 받쳐 들고 남편을 올려다 보고 있다. 그보다 더 큰 몸집의 동물들은 큰 소파와 치과용 기구가 마련되어 있는 좀 더 큰 방으로 가야 한다. 그곳에서 드소토 선생은 아내가 당겨주는 도르래를 타고 올라가 매달린 채 환자 입 안으로 들어가 치료해 준다. 이렇게 어려운 작업 조건에도 불구하고 그는 동물들이 아프지 않게 치료를 잘 해주었으므로 특히 큰 동물에게 인기가 높았다.
『아모스와 보리스』의 생쥐 아모스와 치과의사 드소토 선생님의 캐릭터는 여러모로 매우 유사하다. 이 두 인물은 의인화된 작은 생쥐라는 외형만이 아니라 호기심, 모험정신, 용기, 지혜, 세심함, 책임감, 인내심, 담대함 등과 같은 특성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양복을 잘 차려입은 여우가 턱에 붕대를 친친 감고 병원 아래에서 엉엉 울면서 이를 치료해 달라고 애원한다. 아마도 그는 드소토 선생님이 자신같은 육식동물은 치료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를 내려다 본 선생은 병원 앞에 쓴 간판을 상기시키고 치료를 거부하지만, 동정심 많은 아내의 권유를 받아들여 들어오라고 한다. 단숨에 계단을 뛰어 올라온 여우는 드소토 부부 앞에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으고 통사정을 한다. 드소토 선생은 여우의 입안으로 들어가 썩은 냄새가 나는 어금니를 빼고 새 이를 만들어 넣기로 한다. 그런데 선생이 치료하고 있는 동안 여우는 입안에 맛있는 생쥐가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니 먹고 싶어 턱이 바들바들 떨릴 지경이었다. 여우의 생각을 눈치챈 선생은 “입 벌려요”라고 호통을 치고, 부인도 “더 크게 벌려요!”라고 소리친다. 마취 가스를 흡입한 여우는 눈을 감고 잠에 빠져서도 “날로 먹으면 정말 맛있을 거야. 소금을 솔솔 뿌리고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채로 포도주랑 꿀꺽하면...”라고 잠꼬대하며 그의 시커먼 욕구를 드러낸다. 위험을 느낀 선생은 부인이 건네준 기다란 막대를 여우의 입 사이에 끼워서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고, 썩은 이에 실을 붙들어 매고 부인과 함께 도르래를 돌려 여우의 이를 뽑아낸다.
여우는 집으로 돌아가면서 “내일 치료가 끝나고, 의사 선생님을 잡아 먹으면 나쁜 일일까, 아닐까?”라며 윤리적 갈등에 빠진다. 여우의 속내를 간파한 드소토 선생님과 부인은 그의 치료 여부를 두고 고민에 빠진다. 부인이 여우가 왜 자신을 도와주는 우리들을 잡아먹겠느냐고 반문하자, 선생님은 “왜냐하면 바로 여우이기 때문이지! 여우는 원래 교활하니까”라고 답한다. 부부는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다가 잠든다. 다음 날 아침 여우는 결국 자신의 욕구를 따르기로 결정하고 명랑한 얼굴로 치과를 방문한다. 드소토 선생 부부는 여우의 이 속에 금니를 넣어주고, 한번 바르면 죽을 때까지 이가 아프지 않는 신약(실은 강력한 접착제)을 여우의 치아에 발라준다. 위 아래 이가 붙어서 입을 열 수 없게 된 여우는 서투른 발음으로 겨우 인사 치레를 하고 비틀비틀 계단을 내려간다. 그의 뒷모습을 내려다보며 드소토 부부는 서로 입 맞추며 기뻐하고 그 날 하루는 쉬기로 한다.
여우는 집으로 돌아가면서 “내일 치료가 끝나고, 의사 선생님을 잡아 먹으면 나쁜 일일까, 아닐까?”라며 윤리적 갈등에 빠진다. 여우의 속내를 간파한 드소토 선생님과 부인은 그의 치료 여부를 두고 고민에 빠진다.
그로부터 10년 후 출간된 『아프리카에 간 드소토 선생님』에도 여우 못지않은 악당이 등장한다. 그런데 전 작품과는 달리 이 이야기는 아내(드보라), 코끼리(무담보), 원숭이(홍키통키)의 이름을 밝히고 있다. 이 이야기는 “버나드 드소토 선생님은 백 년에 하나 날까 말까 한 최고의 치과 의사예요.”라고 시작한다. 어느 날 저녁 드소토 부부가 축음기로 카루소의 노래를 들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그의 마지막 작품이자 자서전과 같은 그림책인 『모든 사람이 모자를 쓰고 있었을 때(When everybody wore a hat)』(2003)에도 음악 애호가였던 그의 아버지가 카루소의 노래를 같은 축음기로 듣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아프리카에 사는 코끼리 무담보로부터 전보를 받게 된다. 그 안에는 속히 방문하여 치아를 치료해 달라는 간청과 더불어 치료비로 금화 만 닢도 주겠다는 제안이 담겨 있었다.
드소토 부부는 처음으로 외국 여행을 하게 되어 너무 기뻐하며 곧 가겠다고 회신한다. 그들은 배를 타고 무담보가 사는 다브완에 도착하여 부두에서 기다리고 있는 무담보의 형 아디바의 등에 올라 무담보의 집으로 간다. 선생은 무담보의 썩은 어금니를 다른 이로 바꾸기로 하고 드보라는 무담보의 엄니 조각으로 새 이를 만들겠다고 한다. 무담보가 엄니를 내놓기를 주저하자 드보라는 엄니 대신 자연사 박물관에 있는 바다코끼리의 엄니를 깎아 사용하기로 한다. 부부는 아파서 소리 지르는 무담보를 치료하고, 나머지는 다음날로 미룬 채 일단 무담보 부인의 작은 바늘꽂이에서 잠을 청한다.
그런데 한밤중에 붉은 털 원숭이 홍키통크가 몰래 들어와 자고 있는 드소토를 잡아간다. 홍키통크는 과거에 무담보가 여럿이 보는 앞에서 자기를 바보라고 부른 일로 인해 앙심을 품고 있던 차, 드소토를 납치하여 무담보에게 복수를 하려는 것이었다. 홍키통크는 드소토를 밀림 속 깊은 곳의 비밀 장소에 매달아 놓은 새장에 밀어 넣고 나뭇잎으로 가려놓는다. 드소토 선생이 “당신에게는 이럴 만한 법적인 권리가 없소!”라고 소리치지만 홍키통크는 대꾸는 커녕 무척 즐거워하며 밀림 속으로 사라진다. 새장에 갇힌 드소토는 그저 “바보 같으니라고!”라고 중얼거리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기 아내 걱정으로 인해 안절부절하게 된다. 같은 시간에 드보라도 사라진 남편으로 인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드소토는 가엾은 무담보도 걱정하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무담보는 심한 고통으로 인해 눈물을 흘리며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다브완 주민들이 총동원되어 드소토 선생님을 찾으러 다니지만 그가 외치는 목소리는 너무 작아 그들에게 들리지 않는다. 5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드소토는 기진하여 죽음의 위기를 맞게 된다. 그러나 그는 사랑하는 아내를 다시 못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력을 다해 새장의 창살을 벌리고 탈출한다. 한밤중에 아내의 이름을 부르며 비칠비칠 걷던 드소토 선생님은 바위에 걸려 넘어지는 바람에 발목이 부러져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게 된다. “드소토 선생님은 땅바닥에 누워서 아내의 이름을 부르고 또 불렀어요. 그리고 아프라카라면 두 번 다시 듣고 싶지도 보고 싶지도 않다고 생각했어요.” 다행히 수색대가 우연히 그 길을 지나가다가 그를 발견하고 들것에 실어서 데려온다. 드소토와 부인은 재회의 기쁨을 키스로 나누고 부인은 휠체어에 탄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무담보의 입안에 들어가 그의 이를 치료해 준다. 새로운 어금니를 갖게 된 무담보 부부는 너무 좋아 덩실덩실 춤을 추고, 드소토 선생님에게 약속했던 치료비를 준다. 부부는 드소토의 다리가 다 나으면 그 돈으로 멋진 세상을 보러 가기로 마음을 모은다.
해피 앤딩으로 끝나는 이 두 이야기에 등장하는 악당은 치과를 방문한 이름 없는 여우와 원숭이 홍키통키다. 여우와 원숭이의 악행은 그 경중(輕重)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여우는 의사로서의 소명감을 발휘하여 자신을 치료해 준 드소토 선생님을 잡아먹으려는 음모를 품었다. 다행히 부부의 지혜로 인해 부부도 살고 여우도 치료를 받기는 했지만 여우는 처음 치과를 찾아올 때부터 마지막까지 비열하고 교활한 캐릭터로 일관하였다. 원숭이는 무담보에게 품은 앙심을 애꿎은 드소토에게 풀고자 했고, 그의 유치한 복수심으로 인해 드소토 선생은 하마터면 굶어 죽을 뻔 했다. 원숭이는 처음부터 드소토 선생을 죽일 마음은 없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구조대가 밀림 깊숙한 곳에 매달린 새장의 위치를 알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고, 게다가 드소토 선생님의 구조 요청 목소리는 너무 작아 그들에게 들리지 않았다. 자칫 잘못하면 드소토 선생은 그냥 밀림 속에서 굶어 죽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이런 악당들에게 대처하는 드소토 선생의 언행은 사못 놀랍다. 첫째, 그는 자신의 안위보다 의사로서의 사명감에 충실했다. 여우가 찾아왔을 때 드소토 선생은 간판에 내건 원칙대로 그를 치료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치료 중 여우의 악한 의도를 발견하였을 때 즉시 치료를 중단할 수 있었으며, 더 나아가 다른 치명적인 방식으로(치아를 붙게 하는 것 정도가 아니라) 여우에게 복수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내일 여우를 못 들어오게 하면 어떨까요?”라는 부인의 제안에 “난 일을 한번 시작했다 하면 끝을 내는 성격이오. 우리 아버지도 그렇게 하셨고.”라고 답한다.
그런데 이런 악당들에게 대처하는 드소토 선생의 언행은 사못 놀랍다. 첫째, 그는 자신의 안위보다 의사로서의 사명감에 충실했다. “내일 여우를 못 들어오게 하면 어떨까요?”라는 부인의 제안에 “난 일을 한번 시작했다 하면 끝을 내는 성격이오. 우리 아버지도 그렇게 하셨고.”라고 답한다.
게다가 그는 순진한 아내가 여우의 잠꼬대를 듣고도 왜 자기를 도와준 우리들을 해치겠느냐고 반문할 때 “왜냐하면 바로 여우이기 때문이지! 여우는 원래 교활하니까.”라고 단언한다. 그는 여우의 악한 의도를 윤리적 차원에서 평가하기보다 육식동물인 그의 천성(天性) 탓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아프리카에서 아무 잘못도 없이 봉변을 당한 선생은 원숭이 홍키통키에게 무담보의 힘을 빌어 보복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 죄책감 없이 자기를 매달아 두고 가버린 원숭이를 향해 드소토 선생님이 한 것이라고는 “바보 같으니라고!”라는, 탄식같은 중얼거림 뿐이었다. 그 후에도 그는 결코 원숭이를 비난하거나 그런 일의 단초를 제공한 무담보 코끼리를 원망하지 않았다.
이렇듯 드소토 선생은 자신의 목숨을 노린 자를 비난하거나 보복하거나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에게 악한 일을 한 자들의 행위를 천성이나 어리석음의 탓으로 돌릴 뿐이다. 드소토 선생의 이런 성품을 어디서 온 것일까. 아까 잠깐 비추었듯이 그의 성실함과 소명의식은 한번 시작한 일은 끝내고야 말았던 그의 아버지로부터 비롯된 것일지 모른다. 즉, 그의 아버지가 그의 롤모델(role model)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그의 부부 관계이다. 그들은 일심동체(一心同體)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아름다운 부부라고 할 수 있다. 드소토 선생과 드보라는 도전정신과 용기, 협업 능력, 환자에 대한 긍휼함과 헌신 등에서 서로 뒤지지 않았다. 게다가 좋은 일이 있으면 항상 키스로 기쁨을 나누는 등 각별한 부부애를 숨기지 않았다. 서로에 대한 극진한 애정과 소명감과 일로 인한 보람과 즐거움을 누리며 살고 있는 드소토 부부의 삶은 이미 땅에서의 천국과 같은 것이 아닐까. 이렇듯 매일 천국의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 안에는 타인에 대한 비난이나 미움, 원망, 복수심 따위는 스며들 자리가 없을지 모른다.
이렇듯 드소토 선생은 자신의 목숨을 노린 자를 비난하거나 보복하거나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에게 악한 일을 한 자들의 행위를 천성이나 어리석음의 탓으로 돌릴 뿐이다. 드소토 선생의 이런 성품을 어디서 온 것일까.
마지막으로, 이 작품 안에 직조된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1]을 놓칠 수 없다. 아까 잠깐 언급한 바와 같이 치과의사 드소토 선생님의 인성은 『아모스와 보리스』에서 바다 여행을 준비하던 아모스와 오버랩된다. 아모스는 바닷가에 살면서 매일 바다를 보며 바다 저편을 궁금해하다가 항해를 준비한다. 밤에는 공부하고 낮에 배를 만들며, 항해에 필요한 물품을 준비하고, 항해일을 정확하게 계산하여 배를 띄운다. 생쥐 삼부작 마지막 작품인 『아프리카로 간 드소토 선생님』에서 드소토 부부가 배의 갑판에 나란히 앉아 있는 장면 역시 『아모스와 보리스』 이야기의 후속편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자신이 만든 조각배를 타고 밤바다를 즐기던 아모스가 갑작스런 풍랑으로 인해 죽을 고비를 맞았던 바다를 이제는 드소토 부부가 갑판의 비치 의자에 앉아 느긋이 즐기고 있다. 게다가 바다 위에 떠 오른, 물을 뿜으며 숨쉬는 고래는 웬지 아모스와 헤어진 고래 보리스가 아모스와의 재회를 기뻐하는 듯하다. 무담보 코끼리 역시 친숙한 캐릭터이다. 갑작스런 허리케인으로 인해 아모스가 사는 바닷가로 떠밀려 와 해변에서 죽음을 기다리던 보리스를 구해준 인물은 다름 아닌, 이름 없는 두 마리 코끼리였다. 그런데 『아프리카로 간 드소토 선생님』에서 드소토 부부는 무담보 코끼리 부부의 초청을 받고 아프리카로 가게 된다. 드소토 선생이 보리스를 살려준 코끼리 부부에게 그 은혜를 갚을 수 있게 된 것일까. 물론 무담보로부터 사례비를 받기는 했지만...
많은 사례비를 받은 드소토 부부는 이제부터 멋진 세상을 여행할 수 있게 되었다. 만일 바다 너머의 세상을 동경하며 홀로 모험을 떠났던 아모스가 드소토 선생이 맞다면, 이제 그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인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세상 구경을 마음껏 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아모스와 드소토선생이 동일 인물인지 여부는 독자 각자의 판단에 맡기기로 하고, 다만, 이 호기심과 용기 충만한 작은 생쥐 부부가 어디에서 무슨 모험을 하게 될지 자못 궁금해진다
[1] 텍스트와 텍스트 사이의 모든 상호관계를 포함하는 개념
| 현은자 |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 명예교수 이화여자대학교 교육학과 졸업 후 Eastern Michigan University 에서 석사, University of Michigan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 어린이문학교육학회 회장 및 한국 기독교 유아교 육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아동 청소년학과 교수이며 사회과학대학 부설 생활과 학 연구소 그림책 전문가 과정에서 “기독신앙과 그림책 읽기”를 강의하고 있으며, <기독교 세계관으로 아동문학보기>, <그림책의 이해>(공저), <그림책과 예술교육>(공저>, <그림책으로 보는 아동과 우리사회>(공저), <100권의 그림책>(공저) 등 그림책 관련 저서가 있다. |
치과 의사 드소토 선생님의 악당 대처법
<치과 의사 드소토 선생님> 자세히 보기 <아프리카에 간 드소토 선생님> 자세히 보기
인생길을 걷다 보면 결코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가령, 내가 어렵게 베푼 도움에 감사나 보답은 커녕, 도리어 나를 해하려 하는 ‘배은망덕’한 자라던가, ‘종로서 빰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식으로 누군가 자신이 당한 일로 인해 아무 잘못도 없는 내게 분풀이하려는 자와의 만남이 그것이다. 이런 일을 당할 때 우리는 즉각적으로 그자에 대한 배반감과 분노가 치솟게 되고, 때로는 그런 일의 단초를 제공한 제 3자를 원망하게 된다.
그런 사건이 그림책에서도 벌어진다. 그림책 애독자라면 누구나 윌리암 스타이그(William Steig)(1907-2003)의 작품을 한 개 이상은 읽어보았을 것이다. 그의 대표작인 『당나귀 실베스터와 요술조약돌』를 비롯하여, 『아빠와 함께 피자놀이를』, 『부루퉁한 핑키부』, 『용감한 아이린』 등, 흥미진진하고 유쾌한 서사, 글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카툰(cartoon) 스타일의 코믹한 그림, 그리고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긴 그의 작품들은 읽고 또 읽어도 깊은 울림을 준다. 이번엔 꽤 오래전에 출판된, 『치과의사 드소토 선생님』(Doctor De Soto)(1982/1995)과 『아프리카에 간 드소토 선생님』(Doctor De Soto goes to Africa)(1992/2005)을 다시 읽어보고자 한다. 참고로, 이 두 작품에 『아모스와 보리스』(Amos and Boris)(1971/1996)를 더하면 ‘생쥐 삼부작’이 된다.
제목이 알려주듯 『치과의사 드소토 선생님』과 『아프리카에 간 드소토 선생님』에서는 치과의사 드소토 선생님이 주인공이다. 그런데 생쥐 삼부작에서 가장 먼저 출판된 『아모스와 보리스』의 생쥐 아모스와 치과의사 드소토 선생님의 캐릭터는 여러모로 매우 유사하다. 이 두 인물은 의인화된 작은 생쥐라는 외형만이 아니라 호기심, 모험정신, 용기, 지혜, 세심함, 책임감, 인내심, 담대함 등과 같은 특성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독자들은 바다를 모험했던 아모스가 성장하여 결혼하고 치과의사라는 직업을 갖게 된 것이 아닐까 추론하기도 한다. 그런데 생쥐 아모스와 드소토 선생님의 이름은 다르다. 아모스의 성(姓)(last name)도 원래 de Soto인데 생략한 것이 아닐까 추측하게도 되지만, 『아프리카로 간 드소토 선생님』에서 그의 이름은 버나드 드소토 선생님라고 밝히고 있으니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이 두 인물의 관계에 대해서는 조금 후에 다루어 보기로 하고 지금은 치과의사 드소토 선생님과 악당과의 만남에 초점을 맞추어 읽어 보고자 한다.
『치과 의사 드소토 선생님』과 『아프리카로 간 드소토 선생님』은 전지적 화자와 수평적 시점으로 서술되어 있어서 독자들은 이야기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객관적으로 읽고 즐기며 평가하게 된다. 주인공은 당연히 드소토 선생님이지만 그의 부인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매우 작은 생쥐 드소토 선생이 큰 동물들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부인의 도움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첫 장면은 이렇게 시작된다. “치과 의사 드소토 선생님은 이 고치는 솜씨가 아주 좋았어요. 그래서 늘 환자들이 줄을 섰지요. 선생님은 자기와 몸집이 비슷한 두더지나 얼룩다람쥐 같은 동물들은 치과 의자에 앉혔고요, 몸집이 큰 동물들은 바닥에 앉혔어요. 그러면 선생님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치료해 주었어요.” 그림에는 돼지 아줌마가 입을 크게 벌리고 있고 그의 입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드소토 선생이 앞니를 치료하고 사다리 밑에서는 아내가 쟁반에 치과 기구들을 받쳐 들고 남편을 올려다 보고 있다. 그보다 더 큰 몸집의 동물들은 큰 소파와 치과용 기구가 마련되어 있는 좀 더 큰 방으로 가야 한다. 그곳에서 드소토 선생은 아내가 당겨주는 도르래를 타고 올라가 매달린 채 환자 입 안으로 들어가 치료해 준다. 이렇게 어려운 작업 조건에도 불구하고 그는 동물들이 아프지 않게 치료를 잘 해주었으므로 특히 큰 동물에게 인기가 높았다.
그런데 어느 날 양복을 잘 차려입은 여우가 턱에 붕대를 친친 감고 병원 아래에서 엉엉 울면서 이를 치료해 달라고 애원한다. 아마도 그는 드소토 선생님이 자신같은 육식동물은 치료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를 내려다 본 선생은 병원 앞에 쓴 간판을 상기시키고 치료를 거부하지만, 동정심 많은 아내의 권유를 받아들여 들어오라고 한다. 단숨에 계단을 뛰어 올라온 여우는 드소토 부부 앞에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으고 통사정을 한다. 드소토 선생은 여우의 입안으로 들어가 썩은 냄새가 나는 어금니를 빼고 새 이를 만들어 넣기로 한다. 그런데 선생이 치료하고 있는 동안 여우는 입안에 맛있는 생쥐가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니 먹고 싶어 턱이 바들바들 떨릴 지경이었다. 여우의 생각을 눈치챈 선생은 “입 벌려요”라고 호통을 치고, 부인도 “더 크게 벌려요!”라고 소리친다. 마취 가스를 흡입한 여우는 눈을 감고 잠에 빠져서도 “날로 먹으면 정말 맛있을 거야. 소금을 솔솔 뿌리고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채로 포도주랑 꿀꺽하면...”라고 잠꼬대하며 그의 시커먼 욕구를 드러낸다. 위험을 느낀 선생은 부인이 건네준 기다란 막대를 여우의 입 사이에 끼워서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고, 썩은 이에 실을 붙들어 매고 부인과 함께 도르래를 돌려 여우의 이를 뽑아낸다.
여우는 집으로 돌아가면서 “내일 치료가 끝나고, 의사 선생님을 잡아 먹으면 나쁜 일일까, 아닐까?”라며 윤리적 갈등에 빠진다. 여우의 속내를 간파한 드소토 선생님과 부인은 그의 치료 여부를 두고 고민에 빠진다. 부인이 여우가 왜 자신을 도와주는 우리들을 잡아먹겠느냐고 반문하자, 선생님은 “왜냐하면 바로 여우이기 때문이지! 여우는 원래 교활하니까”라고 답한다. 부부는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다가 잠든다. 다음 날 아침 여우는 결국 자신의 욕구를 따르기로 결정하고 명랑한 얼굴로 치과를 방문한다. 드소토 선생 부부는 여우의 이 속에 금니를 넣어주고, 한번 바르면 죽을 때까지 이가 아프지 않는 신약(실은 강력한 접착제)을 여우의 치아에 발라준다. 위 아래 이가 붙어서 입을 열 수 없게 된 여우는 서투른 발음으로 겨우 인사 치레를 하고 비틀비틀 계단을 내려간다. 그의 뒷모습을 내려다보며 드소토 부부는 서로 입 맞추며 기뻐하고 그 날 하루는 쉬기로 한다.
그로부터 10년 후 출간된 『아프리카에 간 드소토 선생님』에도 여우 못지않은 악당이 등장한다. 그런데 전 작품과는 달리 이 이야기는 아내(드보라), 코끼리(무담보), 원숭이(홍키통키)의 이름을 밝히고 있다. 이 이야기는 “버나드 드소토 선생님은 백 년에 하나 날까 말까 한 최고의 치과 의사예요.”라고 시작한다. 어느 날 저녁 드소토 부부가 축음기로 카루소의 노래를 들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그의 마지막 작품이자 자서전과 같은 그림책인 『모든 사람이 모자를 쓰고 있었을 때(When everybody wore a hat)』(2003)에도 음악 애호가였던 그의 아버지가 카루소의 노래를 같은 축음기로 듣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아프리카에 사는 코끼리 무담보로부터 전보를 받게 된다. 그 안에는 속히 방문하여 치아를 치료해 달라는 간청과 더불어 치료비로 금화 만 닢도 주겠다는 제안이 담겨 있었다.
드소토 부부는 처음으로 외국 여행을 하게 되어 너무 기뻐하며 곧 가겠다고 회신한다. 그들은 배를 타고 무담보가 사는 다브완에 도착하여 부두에서 기다리고 있는 무담보의 형 아디바의 등에 올라 무담보의 집으로 간다. 선생은 무담보의 썩은 어금니를 다른 이로 바꾸기로 하고 드보라는 무담보의 엄니 조각으로 새 이를 만들겠다고 한다. 무담보가 엄니를 내놓기를 주저하자 드보라는 엄니 대신 자연사 박물관에 있는 바다코끼리의 엄니를 깎아 사용하기로 한다. 부부는 아파서 소리 지르는 무담보를 치료하고, 나머지는 다음날로 미룬 채 일단 무담보 부인의 작은 바늘꽂이에서 잠을 청한다.
그런데 한밤중에 붉은 털 원숭이 홍키통크가 몰래 들어와 자고 있는 드소토를 잡아간다. 홍키통크는 과거에 무담보가 여럿이 보는 앞에서 자기를 바보라고 부른 일로 인해 앙심을 품고 있던 차, 드소토를 납치하여 무담보에게 복수를 하려는 것이었다. 홍키통크는 드소토를 밀림 속 깊은 곳의 비밀 장소에 매달아 놓은 새장에 밀어 넣고 나뭇잎으로 가려놓는다. 드소토 선생이 “당신에게는 이럴 만한 법적인 권리가 없소!”라고 소리치지만 홍키통크는 대꾸는 커녕 무척 즐거워하며 밀림 속으로 사라진다. 새장에 갇힌 드소토는 그저 “바보 같으니라고!”라고 중얼거리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기 아내 걱정으로 인해 안절부절하게 된다. 같은 시간에 드보라도 사라진 남편으로 인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드소토는 가엾은 무담보도 걱정하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무담보는 심한 고통으로 인해 눈물을 흘리며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다브완 주민들이 총동원되어 드소토 선생님을 찾으러 다니지만 그가 외치는 목소리는 너무 작아 그들에게 들리지 않는다. 5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드소토는 기진하여 죽음의 위기를 맞게 된다. 그러나 그는 사랑하는 아내를 다시 못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력을 다해 새장의 창살을 벌리고 탈출한다. 한밤중에 아내의 이름을 부르며 비칠비칠 걷던 드소토 선생님은 바위에 걸려 넘어지는 바람에 발목이 부러져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게 된다. “드소토 선생님은 땅바닥에 누워서 아내의 이름을 부르고 또 불렀어요. 그리고 아프라카라면 두 번 다시 듣고 싶지도 보고 싶지도 않다고 생각했어요.” 다행히 수색대가 우연히 그 길을 지나가다가 그를 발견하고 들것에 실어서 데려온다. 드소토와 부인은 재회의 기쁨을 키스로 나누고 부인은 휠체어에 탄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무담보의 입안에 들어가 그의 이를 치료해 준다. 새로운 어금니를 갖게 된 무담보 부부는 너무 좋아 덩실덩실 춤을 추고, 드소토 선생님에게 약속했던 치료비를 준다. 부부는 드소토의 다리가 다 나으면 그 돈으로 멋진 세상을 보러 가기로 마음을 모은다.
해피 앤딩으로 끝나는 이 두 이야기에 등장하는 악당은 치과를 방문한 이름 없는 여우와 원숭이 홍키통키다. 여우와 원숭이의 악행은 그 경중(輕重)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여우는 의사로서의 소명감을 발휘하여 자신을 치료해 준 드소토 선생님을 잡아먹으려는 음모를 품었다. 다행히 부부의 지혜로 인해 부부도 살고 여우도 치료를 받기는 했지만 여우는 처음 치과를 찾아올 때부터 마지막까지 비열하고 교활한 캐릭터로 일관하였다. 원숭이는 무담보에게 품은 앙심을 애꿎은 드소토에게 풀고자 했고, 그의 유치한 복수심으로 인해 드소토 선생은 하마터면 굶어 죽을 뻔 했다. 원숭이는 처음부터 드소토 선생을 죽일 마음은 없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구조대가 밀림 깊숙한 곳에 매달린 새장의 위치를 알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고, 게다가 드소토 선생님의 구조 요청 목소리는 너무 작아 그들에게 들리지 않았다. 자칫 잘못하면 드소토 선생은 그냥 밀림 속에서 굶어 죽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이런 악당들에게 대처하는 드소토 선생의 언행은 사못 놀랍다. 첫째, 그는 자신의 안위보다 의사로서의 사명감에 충실했다. 여우가 찾아왔을 때 드소토 선생은 간판에 내건 원칙대로 그를 치료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치료 중 여우의 악한 의도를 발견하였을 때 즉시 치료를 중단할 수 있었으며, 더 나아가 다른 치명적인 방식으로(치아를 붙게 하는 것 정도가 아니라) 여우에게 복수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내일 여우를 못 들어오게 하면 어떨까요?”라는 부인의 제안에 “난 일을 한번 시작했다 하면 끝을 내는 성격이오. 우리 아버지도 그렇게 하셨고.”라고 답한다.
게다가 그는 순진한 아내가 여우의 잠꼬대를 듣고도 왜 자기를 도와준 우리들을 해치겠느냐고 반문할 때 “왜냐하면 바로 여우이기 때문이지! 여우는 원래 교활하니까.”라고 단언한다. 그는 여우의 악한 의도를 윤리적 차원에서 평가하기보다 육식동물인 그의 천성(天性) 탓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아프리카에서 아무 잘못도 없이 봉변을 당한 선생은 원숭이 홍키통키에게 무담보의 힘을 빌어 보복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 죄책감 없이 자기를 매달아 두고 가버린 원숭이를 향해 드소토 선생님이 한 것이라고는 “바보 같으니라고!”라는, 탄식같은 중얼거림 뿐이었다. 그 후에도 그는 결코 원숭이를 비난하거나 그런 일의 단초를 제공한 무담보 코끼리를 원망하지 않았다.
이렇듯 드소토 선생은 자신의 목숨을 노린 자를 비난하거나 보복하거나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에게 악한 일을 한 자들의 행위를 천성이나 어리석음의 탓으로 돌릴 뿐이다. 드소토 선생의 이런 성품을 어디서 온 것일까. 아까 잠깐 비추었듯이 그의 성실함과 소명의식은 한번 시작한 일은 끝내고야 말았던 그의 아버지로부터 비롯된 것일지 모른다. 즉, 그의 아버지가 그의 롤모델(role model)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그의 부부 관계이다. 그들은 일심동체(一心同體)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아름다운 부부라고 할 수 있다. 드소토 선생과 드보라는 도전정신과 용기, 협업 능력, 환자에 대한 긍휼함과 헌신 등에서 서로 뒤지지 않았다. 게다가 좋은 일이 있으면 항상 키스로 기쁨을 나누는 등 각별한 부부애를 숨기지 않았다. 서로에 대한 극진한 애정과 소명감과 일로 인한 보람과 즐거움을 누리며 살고 있는 드소토 부부의 삶은 이미 땅에서의 천국과 같은 것이 아닐까. 이렇듯 매일 천국의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 안에는 타인에 대한 비난이나 미움, 원망, 복수심 따위는 스며들 자리가 없을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 안에 직조된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1]을 놓칠 수 없다. 아까 잠깐 언급한 바와 같이 치과의사 드소토 선생님의 인성은 『아모스와 보리스』에서 바다 여행을 준비하던 아모스와 오버랩된다. 아모스는 바닷가에 살면서 매일 바다를 보며 바다 저편을 궁금해하다가 항해를 준비한다. 밤에는 공부하고 낮에 배를 만들며, 항해에 필요한 물품을 준비하고, 항해일을 정확하게 계산하여 배를 띄운다. 생쥐 삼부작 마지막 작품인 『아프리카로 간 드소토 선생님』에서 드소토 부부가 배의 갑판에 나란히 앉아 있는 장면 역시 『아모스와 보리스』 이야기의 후속편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자신이 만든 조각배를 타고 밤바다를 즐기던 아모스가 갑작스런 풍랑으로 인해 죽을 고비를 맞았던 바다를 이제는 드소토 부부가 갑판의 비치 의자에 앉아 느긋이 즐기고 있다. 게다가 바다 위에 떠 오른, 물을 뿜으며 숨쉬는 고래는 웬지 아모스와 헤어진 고래 보리스가 아모스와의 재회를 기뻐하는 듯하다. 무담보 코끼리 역시 친숙한 캐릭터이다. 갑작스런 허리케인으로 인해 아모스가 사는 바닷가로 떠밀려 와 해변에서 죽음을 기다리던 보리스를 구해준 인물은 다름 아닌, 이름 없는 두 마리 코끼리였다. 그런데 『아프리카로 간 드소토 선생님』에서 드소토 부부는 무담보 코끼리 부부의 초청을 받고 아프리카로 가게 된다. 드소토 선생이 보리스를 살려준 코끼리 부부에게 그 은혜를 갚을 수 있게 된 것일까. 물론 무담보로부터 사례비를 받기는 했지만...
많은 사례비를 받은 드소토 부부는 이제부터 멋진 세상을 여행할 수 있게 되었다. 만일 바다 너머의 세상을 동경하며 홀로 모험을 떠났던 아모스가 드소토 선생이 맞다면, 이제 그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인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세상 구경을 마음껏 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아모스와 드소토선생이 동일 인물인지 여부는 독자 각자의 판단에 맡기기로 하고, 다만, 이 호기심과 용기 충만한 작은 생쥐 부부가 어디에서 무슨 모험을 하게 될지 자못 궁금해진다
[1] 텍스트와 텍스트 사이의 모든 상호관계를 포함하는 개념
현은자 |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 명예교수
이화여자대학교 교육학과 졸업 후 Eastern Michigan University 에서 석사, University of Michigan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 어린이문학교육학회 회장 및 한국 기독교 유아교 육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아동 청소년학과 교수이며 사회과학대학 부설 생활과 학 연구소 그림책 전문가 과정에서 “기독신앙과 그림책 읽기”를 강의하고 있으며, <기독교 세계관으로 아동문학보기>, <그림책의 이해>(공저), <그림책과 예술교육>(공저>, <그림책으로 보는 아동과 우리사회>(공저), <100권의 그림책>(공저) 등 그림책 관련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