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초상: 자바카 스텝토의 『빛나는 아이』

2024-01-16
조회수 643


예술가의 초상:  자바카 스텝토의 『빛나는 아이』


<빛나는 아이> 그림책 자세히 보기


들어가며


‘예술가’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만약 현대 회화로 범위를 좁힌다면? 예를 들어, 고호, 고갱, 피카소, 세잔느, 앤디 워홀… 아마도 그 이미지는 평범한 사람들과는 매우 다를 것이다. 외모, 의상, 생활습관, 인간관계, 정신 세계, 등

자바카 스텝토(Javaka Steptoe) 글, 그림의 『빛나는 아이 Radiant Child』(2017)는  미국의 그래피티(graffiti) 예술가인 장 미셸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iat) (1960-1987)의 삶을 다룬 작품으로서 미국에서 2016년도에 출판되었으며, 2017년에 칼데콧 메달상을 수여하였고, 국내에는 2018년도에 번역, 소개되었다. 작가인 스텝토의 경력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그는 예술가이자, 디자이너이며 이미 유명한 글 작가와 함께 그림책을 제작한 일러스트레이터로서 명성을 얻고 있다. 예술가인 부모 밑에서 성장하였고, 그의 아버지인 존 스텝토(John Steptoe) 역시 칼데콧 명예상(Caldecott Honor)을 두 번 수상한 그림책 작가였다. 그는 <과학과 예술의 진보를 위한 쿠퍼 유니언>(The Cooper Un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 and Art)에서 미술학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미국 도서관 협회>(the American Library Association), <국제 독서 협회>(the International Reading Association), 그리고 비영리단체인 <읽기는 근본적인 것>(Reading is Fundamental) 등 다양한 기관에서 아동 교육을 위해 활약하고 있다. 그의 첫 작품인 『아버지의 품에서 나는 키가 커요: 아버지를 칭송하는 아프리카 미국인(In daddy's arms I am tall: African Americans celebrating fathers)』는 흑인 작가에게 수여하는 코레타 스코트 킹 그림 작가 상(the Coretta Scott King Illustrator Award, 1998)을 비롯하여 여러 도서상을 수상하였다. 

필자가 이 텍스트에 주목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은 칼데콧 메달 수상작이기 때문이다. 칼데콧 상이란 미국에서 출판된, 미국인 그림 작가에게 수여하는 그림책 도서상으로서 1938년 이후로 매년 한 권의 메달 작품과 명예작 1-6작품을 선정해 왔다. 전미도서관협회라는 단체가 수여하는 탓에 칼데콧 라벨은 높은 공신력을 얻고 있으며 미국 내 서점과 도서관에서는 종종 별도의 서가에 이 수상작들을 비치할 정도로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두 번째 이유로는 이 작품 자체가 지닌 장르적 특성을 들 수 있다. 우선, 칼데콧 메달 수상작 중에서 보기 드문, 전기이며, 전기로서는 최초로 유색 인종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다. 마지막으로, 바스키아라는 개인 자체의 문제를 들 수 있다. 그는 20대라는 젊은 나이에 미술계의 스타가 되었으나 그의 삶은 윤리적으로 문제가 많았다. 청소년기부터 마약 남용과 음주, 수많은 남녀 연인들과의 관계 등 무절제한 삶을 살았으며 결국 27세에 약물중독으로 숨졌다. 그런데 어린이 도서에서 전기라는 장르는 일반적으로 다음 세대의 롤모델이 될 수 있는 인물을 다루므로 이 작품의 선정결과는 호기심과 의구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우선 첫 번째 질문과 관련하여 칼데콧 선정 위원회의 위원장인 굴드(R. K. Gould)는 “바스키아의 예술이 복잡함에도 불구하고 스텝토는 그의 매력적인 예술성을 발휘하여 바스키아가 어린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한다.” 라고 평하였으며 이 작품이 칼데콧 메달을 수상하기 전, 2016년-2017년 혼북(Hornbook)[1]과 아마존(Amazon)[2]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온 독자 서평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놀라운 책이다.”, “정말 사랑하는 책이다.”, “아름다운 일러스트가 돋보인다.”, “색이 선명해서 바스키아와 잘 맞는 것 같다.”. “바스키아는 한 장에 담길 수 없기에 더블 스프레드 레이아웃인 것이 마음에 든다.”, “이 책을 1-5학년이라는 연령에 제한하기에는 아깝다. 예술과 이미지, 창의적 과정에 대해 감상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라도 훌륭한 책이다.”, “단순한 전기의 내용이 아니라 경의와 영감에 대한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무거운 내용이지만 영감을 주는 책이다.”, “너무 기대해서 실망했다.”, “바스키아에 대해 알게 된 것이 그리 많지 않다.”,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책이다.”, “바스키아의 그림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의 영혼을 그려낸 책이다.”, “어린 아이들도 ‘성공’을 원한다.”


이번엔 해외 전문서평지 혼북(Hornbook)[4], 커쿠스 리뷰(Kirkus Review)[5] 그리고 퍼블리셔스 위클리(Publishers Weekly)[6]와 같은 전문 서평지에 실린 전문가 서평을 보자.


“스텝토의 작품 스타일은 바스키아의 스타일과 유사한 부분이 있다(선명한 색감, 재료사용 등).”, “스텝토는 바스키아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잘 할 수 있는 적임자이다.”, “스텝토는 바스키아의 유년시절에 초점을 맞추었다.”, “가족환경(어머니의 정신질환과 부모의 고향문화가 작품에 영향을 미친 부분)에 초점을 둔다.”, “수록된 메모들은 바스키아의 삶과 예술에 대한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각 장에서 보이는 문장은 서정성과 예리함을 드러낸다.”, “비극적 요소를 강조하는 대신 바스키아의 탁월함에 초점을 두었다.”


칼데콧 심사위원장과 독자 서평, 그리고 전문가 서평을 종합해 보면, 이 작품이 바스키아의 삶을 그리고 있다는 지적도 있기는 하나 주로 바스키아의 회화의 예술성과 스타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반면, 작품이 전달하는 메시지나 어린이 독자들을 염두에 둔 교훈성을 언급한 서평은 찾아보기 힘들다. “어린 아이들도 ‘성공’을 원한다.”는 반응만이 이 작품이 어린이 독자에게 주는 메시지를 시사한다.

 

작품의 글, 그림, 페리텍스트 읽기


 『빛나는 아이』는 글 텍스트, 그림 이미지, 그리고 페리텍스트가 어우러지는 그림책의 스토리텔링 방식에 충실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17개의 화면에서는 글과 그림의 분업 방식이 돋보인다. 3인칭 서술의 짧고 건조한 문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스키아에게 일어난 사건과 그의 심리상태를 서술한다. 그림 이미지 역시 독자들이 각 장면을 수평 각도의 근거리나 중거리에서 바라보게 하여 객관적 시점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글 텍스트와 그림 이미지는 대체로 보완 관계(complement)를 이룬다. 주목할만한 것은 그림 스타일이 바스키아의 화풍을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작가인 스텝토는 바스키아 회화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질감이 살아있는 나무 조각 위에 바스키아의 스타일을 적절히 섞어서 그림을 그렸다고 밝혔다.[7] 그는 바스키아가 직접 그린 그림을 싣지 않았지만 거의 모든 화면에서 바스키아의 회화 속 상징과 모티프를 표현하였다. 그러나 글에서는 그림으로 그려진 상징과 모티프의 의미를 제공하지 않으므로 독자들이 이 상징들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본 고에서는 바스키아의 전기, 미술 비평서, 비평 논문, 그리고 작가가 창작 후기에 실은 정보를 참고하여 그 시각적 이미지의 의미를 찾고자 하였다. 『표 1』은 화면 단위별로 스토리텔링을 구성하는 글 텍스트와 그림 이미지를 묘사한 것이다.  

『표 1』 『빛나는 아이』의 글텍스트와 그림이미지

화면글텍스트그림이미지
1뉴욕시 브루클린에서 아이들이 놀이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으며 “유명한 예술가를 꿈꾸는 한 소년이 있어요.”라고 주인공을 소개한다.주택가 거리에서 줄넘기를 하고 있는 어린이들의 모습[8]과 다른 아이와 함께 얼음과자를 사먹고 있는 소년 바스키아를 보여준다. 
2장 미셸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때로는 잠도 자지 않으면서 그림을 그린다.그가 작업하는 모습과 벽과 테이블 위에 가득한, 낙서 같은 드로잉을 보여준다.
3그는 밤에도 열심히 그림을 그린다. 그의 회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장 미셸은 단정하거나 깔끔하게 그리지 않았어요. 기존의 그림과 많이 달랐지요. 그의 그림은 엉성하고 예쁘지 않고 때때로 괴상해 보이지만, 왠지 아무튼 멋졌어요(beautiful)[9]그가 밤에도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는 뒷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뒷모습 오른편의 창을 통해 어두운 밤하늘과 불 꺼진 건물들이 보인다.
4바스키아의 예술이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어머니로부터 왔음을 소개한다. 그녀는 디자인, 바느질, 요리, 청소하기를 좋아하였으며 집을 잡지에 나오는 스타일 있는 집같이 꾸며 놓곤 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바닥에 앉아서 아버지가 쓰던 종이에 그림을 그리곤 했다.바스키아는 바닥에 엎드려서 그림을 그리고 있고 그 옆에 어머니가 앉아 있다. 그들은 서로를 보고 있으며 어머니는 격려하듯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다.
5어머니가 그의 예술의 중요한 조력자인 것을 알려준다. 그는 어머니로부터 예술이 시나 극장, 박물관에만 있는 것이 아니며 어린아이들이 거리에서 즐기는 게임과 우리가 말하는 단어들에도 있다는 것을 배웠다. 도시는 그에게 평범한 것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게 했다.왼편에는 건물들이, 오른편에는 차도를 달리는 자동차들이 보인다. 건물들은 수평으로, 차량들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으로 그려져 있어 동적이며 동시에 불안정한 느낌을 준다. 건물 1층에 전당포[10]와 푸줏간의 간판이 보인다.  
6그는 어머니와 함께 미술관에 가서 예술 작품들을 보았고 예술가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유명한 작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배웠다.화면의 중심에는 피카소의 작품인『게르니카』[11]가 크게 위치하고 그 왼편에는  유년기의 그가 어머니의 손을 잡고 그림을 바라보고 있다. 어머니의 시선은 그를 향해 있어서 마치 그에게 작품 설명을 하는 듯하다.
7그는 아버지 제라드가 틀어놓은 재즈 레코드[12]를 들으며 바닥에 앉아 그림을 그렸으며 엄마 마틸드는 아로즈 콘 폴로[13]를 요리하고 그를 “내 사랑(Mi Amor)”[14]이라고 불렀다. 또한 그의 그림에서는 도시가 뿜어내는 에너지와 삶을 느낄 수 있었다.  LP 판을 들고 있는 아버지가 몸을 돌려 바닥에 앉아 있는 그를 보고 있으며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 어머니는 부엌의 문 뒤에서 앞의 거실 쪽을 바라보며 장 미셸을 부르고 있는 듯하다. 그 옆의 아기 침대 안의 아기는 바스키아 쪽을 보고 있다.[15] 오른편 앞쪽에 크게 그려진 바스키아는 바닥에 놓인 그림들을 보고 있다. 한 종이에 쓰인 글자가 “MUSEUM OF METROPOLITAN”이므로 그가 박물관에 관한 그림을 그리는 중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거실 벽과 어머니가 등지고 있는 부엌 벽에는 그의 작품인 듯한 그림 액자와 종이들이 가득히 붙여 있다.  
8그는 시간이 지나면서 예술에 치유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배웠으며 교통사고를 당해서 무섭고 불안할 때 어머니가 신체 해부도 책을 읽어 주었다. 그는 그 그림들을 다 외울 때까지 그렸고 그로 인해 두려움을 극복하게 되었다.병상에 누워 있는 장 미셸[16]에게 그의 어머니가 보여주고 있는 책 표지에는 『그레이 해부도』(gray's anatomy)라는 제목이 쓰여져 있다. 뒷배경에는 그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해골과 뼈, 심장 등의 인체 조직[17]과 차[18]를 그린 드로잉이 몇 점 그려져 있다.
9그가 퇴원한 후 어머니의 정신질환으로 가정이 깨어졌으며, 어머니는 그와 그림을 그리는 대신 창가에 앉아서 새들에게 노래만 불러 주었다. 결국 어머니는 집을 떠나게 되었으며,[19] 그 이후 그는 너무 슬프고 우울했다.바스키아는 창문을 통해 몇 명의 남자들에 이끌려 검은색 병원 차에 오르는 어머니의 모습을 내다보고 있다. 그가 입고 있는 흰색 셔츠의 오른팔에는 그의 회화에 자주 등장하는, 둘로 갈라진 붉은 색 심장이 그려져 있다.
10그는 우울함을 극복하기 위해 열심히 그림을 그렸으나 실패했다. 그는 종종 병원에 있는 어머니를 찾아가 그의 작품을 보여주고 자신의 작품이 언젠가 미술관에 걸리게 될 거라고 말한다. 그는 어머니에게 “나는 유명한 예술가가 될 거예요.”라고 다짐한다.왼편에는 자신의 키에 맞지 않은 높은 테이블과 의자에 앉아 팔에 얼굴을 묻고 있는 그의 뒷모습이, 벽에 붙은 그림에는 붉은 색의 심장 모양과 그 밑에 BROKEN HEART라는 글자가 크게 그려져 있다. 오른편 장면에서 그는 안락의자에 앉아 있는 어머니에게 자신이 그린 그림을 펼쳐 보여주고 있다. 그는 어머니를 바라보고 있으나 그녀는 그저 힘없이 고개를 수그리고 앉아 있을 뿐이다.       
11십대가 된 그는 아버지에게 자신은 아주 유명한 예술가가 될 것이라고 선언하고는 가출하여 뉴욕시의 로어 이스트 사이드(Lower East Side)로 간다. 그곳은 아주 강한 사람들만이 살아남는 곳이다.그가 작은 스케치북과 붓 몇 개, 그리고 빨간 작은 가방을 들고 걷고 있는 번화한 뉴욕 거리는 다양한 인종과 모습의 사람들로 가득하다.  
12그는 친구와 함께 살면서 낮에는 페인트가 잔뜩 묻은 초록색 작업복을 입은 채 소파나 바닥에서 잤으며 그가 가는 곳마다 시를 써 놓은 종이와 콜라주 더미가 사방에 널려 있었다.그는 초록색 작업복을 입고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으며 그 옆에는 책이 쌓여 있고 방 안에는 그림이 가득하다. 그 그림들은 그가 자주 그리던 모티프(해골 모양, 차, 비행기 등)과 글자(주로 SAMO와 연결된)다.
13그는 밤에도 스프레이로 시와 그림들을 그렸으며 작품 밑에 ‘장 미셸’이라는 이름 대신 ‘SAMO’라고 사인했고 사람들은 SAMO가 누군지 궁금해 했다.그는 무릎을 꿇고 건물 벽에 스프레이로 얼굴과 알파벳 A, 그리고 SAMO를 쓰고 있으며 주위에는 밤거리의 여자와 흑인들이 거닐고 있다.[20]  
14SAMO, 즉 그의 회화는 인정받아 거리 모퉁이에서 미술관으로 진출했다. 그는 눈에 보이는 것이라면 뭐든지 그 위에 콜라주하고 그림을 그렸으나 여전히 단정하거나 깔끔하지 않았고 기존의 그림과 많이 달랐다. 하지만 여전히 SAMO의 작품은 멋졌다(beautiful).[21]미술관에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그의 뒷모습과 바닥에 세워놓은 회화 몇 점을 보여준다. 그 회화에는 A.A.P, 자동차, 해골 등의 상징이 그려져 있다.
15그는 TV나 라디오를 최대한 크게 틀어 놓고[22] 혼자 있는 것을 좋아했으며 비싼 옷에 물감을 잔뜩 묻히기도 하고[23] 아무 잡지나 책에서 영감과 소재를 찾기도 하며[24] 밤늦도록 며칠간이나 그림을 그렸다.벽과 바닥에는 그림과 물감통, 붓, 책 등이 흩어져 있다. 그 그림들의 형태는 분명치 않다. 중첩되고 병치되고 혹은 연속되어 모호하다.
16그는 자신의 재능과 방식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으며 사람들은 그를 “빛나고, 길들여지지 않은, 천재적인 아이”라고 찬사를 퍼부었다. 그는 자신을 왕이라고 생각하였으며 그의 회화에 자주 등장하는 왕관 이미지는 자기나 자기가 존경하는 사람을 가리킨다.왼편 장면에서는 그가 자주 사용하던 단어들, ABUELITA, SNAKE, FAMOUS NEGRA ATHLETES,[25]  SALT, 그리고 그가 좋아했던 재즈 연주자의 이름인 CHARLIE PARKER, BILLIE HOLIDAY가 보인다. 그림 중에서 속인 빈 눈과 이빨이 드러난 얼굴 모양[26]이 부각되고 있다. 그리고 오른편 장면에서는 권투 글로브를 낀 두 손으로 황금색 왕관을 들고 웃고 있는 그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의 모습 뒤에는 그의 성공을 알리는 신문 기사의 헤드라인이 가득하다. 그 중에는 “NEW ART NEW MONEY”도 있다.[27]
17예술계의 스타가 된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어머니를 찾아갔다. 그는 그의 삶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를 어머니에게 주었다.  “그는 이제 유명한 예술가이다!”화면 가득히 그려진 사람들(흑인 영웅들과 온갖 종류의 사람들)을 배경으로 오른편에는 그가 어머니의 얼굴에 키스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상으로 화면 단위로 글 텍스트와 그림 이미지를 묘사하였다. 그림의 단어나 이미지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부가적 정보가 필요하지만 작가는 창작 후기에서 그의 회화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세 개의 모티프, 즉 왕관, 눈, 자동차의 의미를 간략히 소개하고 있을 뿐이다. 작가가 바스키아의 회화에 대해 보여주는 평가는 매우 긍정적이다. “여전히 단정하거나 깔끔하지 않았고 기존의 그림과 많이 달랐다. 하지만 여전히 SAMO의 작품은 멋졌다”라고 묘사하며, 이 “멋지다(beautiful)”라는 단어를 3과 14화면에서 두 번 사용하였다.

이 작품의 페리텍스트는 다음과 같다. 앞표지에서 그의 서체를 따라 디자인된 “Radiant Child”라는 단어는 황금빛이며 첫 글자 “R” 주위의 황금빛 선들은 마치 그 글자가 빛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앞표지에는 밝은 노란색 자켓을 입고 있는 순박한 이미지의 소년 바스키아가, 그리고 뒤표지에는 이를 드러내고 자신만만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파란 색 수트 차림의 그의 모습이 담겼다. 앞표지의 배경에는 그가 즐겨 사용한 문자와 건물, 국기, 글자가 적힌 작은 나무 블록 등이 나열되어 있으며, 뒤표지에는 LOV라는, 글자와 형태를 알 수 없는 이미지가 그의 머리 윗부분까지 넓게 펴져 있다. 앞면지에는 왕관의 이미지, 사람 형상의 드로잉과 SALT, SERIOUS ARTIST AT WORK, NAKE 와 같은 단어가 적혀 있다. 두 번째 면지에는 앞니를 모두 드러내고 사선 방향을 보며 크게 웃고 있는 바스키아의 얼굴이 또 한 번 등장한다. 역시 이 초상화 뒤에도 서로 관련성 없는 문자와 왕관 이미지가 두서없이 흩어져 있으며, 그가 즐겨 사용한 자신의 이름 SAMO와 그의 이름의 첫 글자인 JMB가 보인다. 표제지에는 앞의 표지와 동일하게 디자인된, ‘빛나는 아이’라는 제목 아래 중앙에 황금빛 왕관이 그려져 있고 그 아래에 “젊은 예술가인 장-미셸 바스키아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있다.

스텝토는 창작 후기에서 왕관은 바스키아의 회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모티프로서 힘이나 강함, 때로는 타인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도 사용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덧붙여 각 장면에서의 중심 단어들, 예를 들어, BEAUTIFUL, ART, MATILDE, MI AMOR 등과 같은 단어들은 바스키아의 글자체를 따라 디자인되었다.     

주목할만한 것은 이 작품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와 이미지는 그의 어머니와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전체 17개의 화면 가운데 8개의 화면에서 글 텍스트와 그림 이미지에서 ‘어머니’라는 단어가 언급되었다. 즉, 어머니는 그의 창작의 동기와 영감의 원천이었다는 것이다. 그의 어머니는 그와 함께 바닥에 엎드려서 그림을 그렸고, 그를 미술관에 데리고 갔고, 병상에 누워있는 그에게 해부학 책을 읽어 주었다. 그는 틈만 나면 요양소의 엄마를 찾아갔고 평생 엄마를 잊지 못했다. 작가의 의도는 결말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의 삶이라는 중요한 무대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는 비평가의 것도 아니고, 팬의 것도 아니고, 존경하는 예술가의 것도 아니에요. 바로 여왕인 엄마의 자리거든요. 드디어 장 미셸 바스키아는 유명한 예술가가 되었습니다!” 

이 작품의 문학적 장르는 전기이다. 전기라는 문학 장르의 이해는 이 작품을 해석하는 데에도 유용하다. 문학의 장르란 “그 텍스트에 관한 문학적 지식”을 제공함으로써 해석을 도와주기 때문이다.[28] 전기는 사실들만을 수집해서 그것을 스토리의 형태로 서술한다는 측면에서는 문학 양식 중에서 가장 단순해 보이지만 어떤 사실들을 어떻게 서술하느냐라는 면에서 복잡성을 띠게 된다.[29] 전기에서 사실들과 스토리의 조화는 매우 중요하다. 즉, 스토리는 그러한 사실들이 의미하고 상징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진실되고 믿을 수 있는 방식으로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전기가 갖추어야 할 조건을 염두에 두고 이 작품을 다시 읽어보면 몇 가지 아쉬운 부분이 드러난다. 우선 바스키아라는 화가의 예술관이 무엇이었는지 명확하지 않다. 그의 창작 행위의 의도와 목적은 전혀 언급되지 않으며 그가 밤낮으로 낙서 같은 문자와 그림 이미지를 그려내고 있는 행위를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둘째, 바스키아가 뉴욕 맨해탄의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콘크리트 정글” 같은 곳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에 대해서도 별다른 언급이 없다. 물론 그림책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그 당시의 인적, 사회적 배경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는 기대하기 힘들다. 그러나 그의 성공에 큰 몫을 담당한 앤디 워홀(Andy Warhol, 1928-1987)과 같은 동료 화가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점은 이해하기 힘들다. 이는 개인의 성공이나 예술가의 창작 작업이 누구의 도움도 없이 작가의 천재성과 노력으로 인한, 극히 개인적인 행위임을 암시한다. 마지막으로 그의 비극적인 결말은 창작 후기에만 잠깐 언급되었을 뿐 “...유명한 예술가가 되었습니다.”라는 본문의 마지막 문장은 ‘영웅 탄생’의 느낌을 들게 한다.

이 작품은 바스키아의 삶 전체가 아니라 죽기 몇 년 전까지의 인생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므로 부분적인 전기(partial biography)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짧은 인생을 그린 이 작품의 메시지는 매우 분명하다. 마지막 장면의 글 텍스트와 그림 이미지, 그리고 페리텍스트 곳곳에서는 ‘성공’이라는 욕망을 성취한 예술가로서의 바스키아의 이미지가 부각되고 있다. 앞 면지와 뒷 면지를 가득 채운 왕관과 표제지의 황금빛 왕관, 뒷 표지에 그려진 20대의 성공한 바스키아의 초상, 그리고 본문의 마지막 글 텍스트와 ‘빛나는 아이’라는 제목이 그 좋은 증거이다.


바스키아는 어떤 인물인가?


그렇다면 바스키아는 과연 어떤 인물이었으며 그가 단기간에 일약 스타가 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예술사적으로 보았을 때 1980년대 뉴욕은 세계 예술의 중심지였으며 그곳에서는 앤디 워홀 같은 팝아트 화가들이 예술 문화를 주도하면서 미술의 상업화와 고급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바스키아는 뉴욕 한복판에서 자신을 알리기 위해 거리 예술을 선택하였고 그의 자유분방한 구상적 그림은 1978년부터 화단과 비평가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 때 그는 겨우 18세의 청소년이었다.

1996년에 개봉된, 줄리안 슈나벨(Julian Schnabel) 감독[30], 연출의 다큐 영화인 『바스키아』[31]를 통해 우리는 바스키아의 삶을 대략적으로 그려볼 수 있다. 슈나벨 감독은 바스키아의 동료 화가였으므로 그를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었다. 1960년에 뉴욕에서 태어난 바스키아는 아이티 출신 아버지와 푸에르토리코 혈통의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예술적 재능을 보였다. 그러나 그가 8살 때 부모가 이혼하고 어머니가 정신병원에 입원한 후에는 푸에르토리코와 뉴욕을 오가며 생활하다가 15살 때 가출하였으며 1976년부터 남부 맨해튼 지역의 빌딩 벽에 스프레이로 낙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에는 자신의 이름이 아닌 ‘SAMO’라는 이름을 남겼다. 그는 뉴욕의 한 레스토랑에서 당시 유명한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을 우연히 만나 그에게 자신의 그림을 보여주었고 워홀은 그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들은 나중에 함께 작업을 하고 친구이자 연인 관계로 발전되었다.

이 영화는 줄곧 세상적인 성공 뒤에 감추어져 있었던 그의 어둡고 혼란스러웠던 내면 세계를 비춰준다. 1980년대 경제적 성공을 노리던 뉴욕의 수집가, 아트 딜러, 예술가의 모습과 함께 약물에 취해 작업하는 그에게 초점을 맞추며, 그가 가장 믿고 의지한 친구였던 워홀(그에게도 바스키아가 그러한 존재였는지는 의심스럽지만)의 갑작스런 죽음(바스키아는 워홀이 총격으로 사망한 다음 해에 헤로인 중독으로 사망한다), 절친했던 친구들과의 이별, 미술 시장에서의 인기 하락과 함께 급격히 추락해가는 그의 모습을 화면에 담았다.

미술 평론가들은 그의 성공 이면에는 그의 재능과 작품성, 그리고 집념과 의지 외에도 복잡한 요인들이 있었다고 말한다[32]. 그 당시 예술계의 스타였던 워홀과의 인맥, 현대적인 마케팅과 판매망, 언론의 주목, 심지어 그의 때 이른 사망을 부추긴 약물중독도 그의 성공의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33]. 코웬(Cowen)은 그의 책 『상업문화예찬』에서 바스키아의 스타 탄생을 촉발한 미국의 미술품 판매업자와 딜러의 역할을 언급한다[34]. 그 당시 뉴욕의 중개업자들은 아직 진가를 인정받지 못한 젊고 유망한 미술가들을 찾아 금전적 성공을 누리고자 하였으며, 그러한 세속적 욕망은 직간접적으로 뉴욕의 미술 시장을 발전시키는데 기여하였다. 미술평론가인 정윤아도 1980년대 뉴욕의 미술 현장에 역동성을 더한 것은 비주류의 젊은 작가들이었다고 평가한다[35]. 다시 말해 그들은 유색인종이거나 여성 또는 동성애자들로서 미국의 주류사회에 속하지 못했던 사람들이었다.  


작가의 창작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이상과 같은 바스키아에 대한 평판과 미술계의 분위기는 스텝토의 창작 의도를 반증한다. 그는 부정적인 이미지에 가려 제대로 조명 받지 못했던 바스키아라는 인물의 긍정적 측면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즉, 그는 이 작품을 통해 바스키아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바로잡으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이 바스키아를 이해하고자 하는 대신 부정적인 이미지만을 보려 했다고 비판하며 바스키아의 삶에도 아름다운 순간들이 많이 있었지만, 대중은 그것보다 왜곡된, 흑인 예술가라는 이미지를 원했다고 말한다. 결국 그가 이 작품을 창작한 가장 중요한 의도는 흑인 예술가에 대한 편견을 바꾸는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바스키아를 예술가로 이끌어준 어머니의 사랑과 격려, 그의 예술적 열정과 성공하고자 하는 욕망이었다.


 『빛나는 아이』의 세계관


그렇다면 이 서사가 함축하는 세계관은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한다면 로버트 벨라(Robert Bella)가 설명한 표현적 개인주의[36]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개인주의란 개인의 가치, 행동과 표현의 자유와 책임을 옹호하는 것으로서 개인의 자율성을 제일 가치로 삼았던 근대의 산물이기도 하다. 개인주의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각 개인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신념이다[37]. 어느 사회에서나 개인의 욕구를 우선시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세계관으로서의 개인주의는 극히 최근에 나타난 것이다.

개인주의의 전제는 자아가 우주의 궁극적인 실재이며, 각 개인은 자기 충족을 추구해야 하고, 자신의 운명을 통제하며 인간의 가치는 성과로 평가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인간에게 주변 환경에 대한 통제권이 있고, 환경으로부터 독립적이라는 생각은 논리적이지도, 현실적이지도 않다[38]. 우리에게 닥치는 사건과 상황은 우리가 전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존재의 시작은 우리의 통제 밖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살아가면서 우리는 외부 환경으로부터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받게 된다. 그 다음으로 인간의 가치가 인간 외부의 절대적 기준이나 참조점(reference)이 아니라 그가 이룬 성과로 평가된다는 생각은 지극히 위험한 것이다. 현대 예술계에서 나타나는 예술가의 표현적 개인주의는 더욱 위험하다. 작품의 탁월성 여부가 미술 평론가나 아트 딜러와 같은 타인의 평가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될 때 자신의 작품을 인정받지 못하는 예술가는 자신의 삶의 가치와 의미도 잃게 되기 때문이다. 

 『빛나는 아이』는 바스키아가 자신을 우주의 중심에 두는 극단적 개인주의와 더불어 맹목적인 성공주의를 반복해서 보여준다. 그는 어릴 때부터 유명한 예술가가 되고자 하는 열망을 가졌으며 부모를 비롯하여 주위 사람들에게 그것을 숨기지 않았다. “유명한 예술가(a famous artist)”라는 단어가 첫 장면을 비롯하여 본문에 4번(1, 6, 10, 17화면)이나 등장하며 16화면은 그가 성공의 정점에서 타인으로부터 받은 찬사와 더불어 자기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예술가 중의 예술가, 장 미셸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의 방법대로 그림을 그렸어요. 사람들은 그를 ‘빛나고, 길들여지지 않은, 천재적인 아이’라고 불렀어요. 장 미셸은 마음속으로 자기가 왕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장 미셸은 자기나 자기가 존경하는 사람을 그릴 때 왕관을 그려 주었어요.”

이 장면에서 바스키아는 권투 선수의 복장에 글로브를 낀 두 팔로 왕관을 높이 쳐들고 있으며 배경에는 스타 탄생을 알리는 신문 헤드 라인들이 꼴라주되어 있다. 이 장면이 보여주는 표현적 개인주의의 또 다른 모습은 자신의 성취가 오로지 자신의 힘만으로 이루어졌다는 교만함이다. 그러한 자만심과 자기애는 그가 창작한 예술품과 그 개인에 대한 우상 숭배의 위험을 배태하고 있다. 종종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유럽의 대성당에, 미술관의 관객들은 예배드리는 신도에 비유되는[39] 까닭은 현대 예술의 우상 숭배적 성격 때문이다.

『빛나는 아이』는 성공의 정점에 선 바스키아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반면, 표현적 개인주의의 어두운 결말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그의 전기[40]는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갑작스런 성공이 오히려 그의 두려움과 불안감을 증폭시켰다고 증언한다. 바스키아는 성공의 가도를 달릴수록 지나치게 외적인 화려함에 몰두하였고 그와 반비례하여 내적인 삶은 점점 더 피폐해져 갔다. 10대 때부터 시작된 헤로인 중독 증세는 그가 성공의 가도를 달릴수록 점점 더 심해졌으며 그의 엽기적인 낭비벽은 세간의 가십거리가 되기 충분했다. 

그러한 기행의 원인을 그의 자기혐오에 기인한 것이라고 진단하는 사람들도 있다[41]. 흑인으로서 그는 알게 모르게 미국 사회 안에 뿌리박은 인종 차별의 벽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그 때문에 더욱 소외감과 외로움을 겪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즉, 그를 유명하게 만든 퇴폐적인 기행은 때때로 자신의 어두운 내면세계를 숨기기 위해 동원된 것이기도 했다. 또한 아트 딜러들의 마케팅과 수집가들도 그의 기행에 한 몫 하였다[42]. 미술계에서 아트 스타라는 것은 작가의 재능만이 아니라 마케팅의 결과이기도 하다. 아트 스타가 되기 위해서는 예술성과 개성만으로는 부족했다. 좀 더 카리스마가 있고 퇴폐적이고 기상천외하고 성적 매력이 넘치는 이미지가 넘쳐야 했다. 이 이미지의 생산은 수집가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것이기도 하였다.

그가 자신의 비극적 죽음을 예견하고 있었다는 증거도 있다[43]. 바스키아의 회화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동경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가 어렸을 때 어머니와 함께 보았던 『그레이 해부학』에 그려졌던 해골이나 가면 같은 얼굴들, 그리고 해부도들은 작가의 내면에 내재된 불안의 표현이며 더 나아가 자신의 죽음에 대한 예고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모티프들은 그가 죽기 직전 1987-1988년 후기 작품에서 더 자주 다루어졌다[44]. 덧붙여 그가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었는지, 혹은 그것이 그의 기행과 퇴폐적인 행실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푸에르토리코 출신인 그의 어머니가 부두교에 심취했었고 그것을 그에게 숨기지 않은 것으로 보아[45] 그도 어떤 식으로든 그 영향을 받았으리라는 짐작은 해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바스키아의 스타 탄생의 스토리에서 새로운 스타일을 기다리던 80년대 미국 미술계의 분위기도 빼놓을 수 없다[46].

“백인의 미술 세계에서 그는 차별을 받은 거리의 아이들로 양식화되었고, 그의 헤로인 중독은 그의 때 이른 죽음을 염두에 두고 벌이는 공개적 투기를 가열시켰다. 그의 성공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들은 이 흑인 미술가를 순수한 야만인, 순박한 희생자, 그리고 천재적인 아이로 제시하는 판에 박힌 생각을 만들어냈고, 그럼으로써 또 다시 소수의 영웅이라는 신화를 만들었다.”

이렇듯 백인 주류의 미술계가 바스키아에게 투사한 고독한 천재 흑인 예술가의 이미지는 현대인들이 추구하는 예술가의 이미지에 잘 들어맞았다. 그런데 우리가 당연시 여기는 이 이미지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예술가에 대한 현대의 이미지


예술사를 살펴보면 일상생활과 분리된, 심미적인 아름다움의 대상인 ‘예술’이라고 불리는 이 사물은 근대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47]. 물론 18세기 이전에도 미술과 시와 같은 예술 활동과 관련된 담론은 존재하였다. 그 시초는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이다. 그러다가 칸트(Kant, 1724-1804)에 이르러서 문학의 심미적, 쾌락적 개념과 가까운 개념이 형성되었다. 그는 『심미적 판단 비평』에서 예술이 ‘목적이 없는 목적성’ 또는 ‘내적 목적성’을 추구한다고 하여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주장에 발판을 놓았던 것이다. 18세기 이전 사람들도 예술을 감상하며 느끼는 쾌락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으나 칸트는 감상의 목적과 기능이 심미적 쾌락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하는데 필수적인 개념적 도구를 제공해 주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예술관이 시간이 흐르면서 예술을 일상의 삶과 분리된 것으로 만들어 놓았다는 점이다[48]. 사람들이 예술을 너무 높은 위치에 올려놓은 결과 그것은 삶의 현장에서 유리되어 박물관과 미술관에 안치되어 소수의 사람들만 향유하는 대상이 되어 버렸다[49].

예술의 의미 변화와 함께 예술가의 이미지도 변화하였다. 낭만주의는 그러한 경향을 더욱 부추겼다[50]. 낭만주의는 예술가라는 단어를 오직 소수의 영감이 번득이는 개인들에게만 사용한 반면, 다른 직종의 사람들, 즉 학자, 과학자, 성인들, 군인들에게는 그들과 같은 지위를 부여하지 않았다. 이렇듯 예술이 인간의 다른 영역과 구별됨에 따라 예술가는 다른 직종의 사람이나 일반인과는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라는 이미지가 출현하였다. 즉 ‘남과 다른 외모를 보이고 기행을 일삼으며 천재성이 번득이는...’ 등과 같은 현대 예술가의 이미지가 탄생한 것이다. 인상주의가 크게 유행하고 있던 19세기 말경 고갱의 회화가 그 좋은 예이다. 그는 회화의 본질은 재현이 아니라 표현이라고 하였으며 그 이후의 회화는 예술가의 내적 자아의 자유로운 표현으로 간주되었다[51]. 룩매커(Rookmaaker)가 예견하였듯이 이러한 예술관은 예술가들의 삶에도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왔다[52]. 예술이 특별한 사람들의 자기표현으로 간주되자 강력한 독창성과 자아 실현력을 지니지 못한 예술가는 더 이상 인정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표현적 개인주의의 위험은 그것만이 아니다. 자칫 잘못하면 예술가를 영웅의 위치에 올려놓으며 이는 우상 숭배의 형태를 띠게 된다. 우상 숭배는 기독인들이 경계해야 할 가장 큰 죄악이다. 하나님이 출애굽 한 이스라엘인들에게 주신 십계명의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우상 숭배를 금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현대사회의 우상은 금으로 만든 것이 아니다. 대신에 소비주의, 쾌락주의, 개인주의, 성공주의, 다원주의, 또는 이데올로기가 되어 버린 정치적 관용(political correctness) 등이다. 고대의 우상과 현대의 우상 간에는 다음과 같은 유사점이 존재한다. 우선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그 상(像)을 만든다. 그리고는 즉시 그 우상이 살아있다고 여기고 그것에 의지하게 된다. 그 만들어진 창작물이 그것을 만든 주인들을 속박하는 형색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는 자칫 잘못하여 그 우상이 진노할까봐 노심초사하며 두려움 가운데 살아가게 된다. 종국에 우상 숭배자들은 자기들이 만든 그 우상처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코가 있어도 맡지 못하며, 우상을 만드는 자와 그것을 의지하는 자가 다 그와 같으리로다.”(시편 115: 5-8)와 같이 우상에게 속박당하여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잃어버리게 된다[53]. 유명인을 포함하여 평범한 사람들도 권력이나 명예, 타인의 인정, 혹은 그 밖의 다른 것에 전적으로 의지하다가 결국 파멸에 이르는 사례도 적지 않다.

    

나가며


결론적으로, 본 평론은 칼데콧과 같은 어린이 도서상의 선정 기준을 그림책 평가의 표준으로 삼는 태도를 경계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그 선정 기준은 주로 그림과 그림의 서사의 심미성, 독창성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수상작들을 좋은 그림책의 전범(canon)으로 삼는 것도 위험하다. 물론 1938년 칼데콧 상 제정으로 인해 그림책의 예술적 지위가 높아지고 그림책이라는 매체가 문화의 한 영역을 차지하게 된 것은 사실이다. 그 과정에서 여러 탁월한 그림책 작가들이 발굴되고 그들의 작품들이 세대를 걸쳐 그림책 읽기의 즐거움을 선사한 것에 대해 고마움을 표하게 된다. 하지만 최근 칼데콧 상을 비롯하여 다른 국제적인 어린이 도서상들이 점점 더 포스트모더니즘과 문화막시즘에 경도되어 있음도 부인할 수 없다.[54]

그림책은 연령과 지식수준의 경계 없이 다양한 대중들이 함께 향유할 수 있는 문화이다. 그러므로 성경 신자(bible believer)인 기독인들의 그림책 읽기는 비기독교적이거나 반기독교적인 작품들을 분별하고, 복음의 진리를 선포할 수 있는 효과적인 선교 수단이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    




  [ 미주 ]


[1] 본 평론은 아래 논문을 요약한 것임. 현은자, 김주아 (2019). Vanhoozer의 신학적 문화해석에 기초한 자바카 스텝토의 <빛나는 아이>(2016) 해석. 어린이문학교육연구. 20:2. 41-73. 

[2]http://www.hbook.com/2016/11/blogs/calling-caldecott/radiant-child-the-story-of-a-young-jean-michel-basquiat/#_;http://www.hbook.com/2016/11/choosing-books/reviews/review-of-radiant-child-the-story-of-young-artist-jean-michel-basquiat

2)https://www.amazon.com/Radiant-Child-Jean-Michel-Childrens-Literature/product-reviews/0316213888/ref=cm_cr_dp_d_acr_sr?ie=UTF8&reviewerType=avp_only_reviews

[4]http://www.hbook.com/2016/11/choosing-books/reviews/review-of-radiant-child-the-story-of-young-artist-jean-michel-basquiat

[5]https://www.publishersweekly.com/978-0-316-21388-2 

[6]https://www.kirkusreviews.com/book-reviews/javaka-steptoe-2/radiant-child

[7] Steptoe, J. (2016). Radiant child: the story of young artist Jean-Michel Basquiat. New York: Little, Brown and Company.  

[8] 이 게임은 소위 스켈리(Skelly)라고 하는, 도로 위에 마치 낙서처럼 마당을 그리고 병마개 같은 것으로 점수를 따는 일종의 땅따먹기 놀이이다(강현주, 1996).

[9] 원서에서는 이 글자가 그의 글자체를 따라 크게 그려져 있다. 

[10] ‘pawn’이라는 단어는 그의 회화에 종종 등장한다. 

[11] 스텝토는 창작 후기에서 이 작품이 예술을 통해 세상을 바꾸려는 액티비즘 정신을 담은 그림으로 바스키아에게 예술의 힘을 알게 해주었다고 한다.  

[12] 그의 아버지가 즐겨 듣던 재즈 음악은 그의 예술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는 흑인 재즈 음악가들과 자신이 비슷하다고 느꼈으며 “즉흥적 빠른 리듬, 복합적이며 미결된 결말 처리, 미친 듯한 템포, 신경질적이며 도회적 장식부”와 같은 재즈의 특징은 화면에 그려진 장 미셸의 회화에도 반영되고 있다(강현주, 1996: 15).

[13] 이 음식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었으며 뉴욕 아파트에서 연인과 함께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이 요리는 그의 『아로즈 콘 폴로 Arroz con Ploolo』(1981)라는 그림에도 나온다(Clement, 2003).

[14] 스페인어로 “내 사랑”이라는 뜻으로 그 부모의 인종적 배경을 알게 한다.  

[15 바스키아는 이 여동생을 성인이 되어서까지 무척 아꼈다고 한다. 

[16] 그는 7살 때 큰 교통사고를 당해 비장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고 그 때문에 가슴부터 배까지 이어지는 큰 수술자국이 생겼다(Clement, 2003).

[17] 스텝토는 창작 후기에서 어머니의 의도는 아들이 책을 통해 자신의 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이해하라는 것이었을지 모른다고 하며 이 해부도 책은 그의 후기 작품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하였다.  

[18] 교통사고 이후 그의 작품에는 차 그림이 자주 등장한다. 

[19] 바스키아가 퇴원한 후 어머니 마틸드가 정신 병원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그는 자신의 롤모델을 잃어버리게 되었을 뿐 아니라 깊은 상실감을 경험하게 되었으며 이는 그의 이른 죽음을 부추긴 요인이 되기도 한다(Clement, 2003).

[20] 이 장면에서 세이모(SAMO)라는 단어가 처음 나타나며 이 단어는 그가 맨해탄으로 이주한 이후의 장면에서 자주 등장한다.  

[21] 여기에서도 ‘beautiful’이라는 단어는 큰 글자체로 그려져 있다. 

[22] 그는 재즈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작업하곤 하였다. 

[23] 그는 아르마니 정장을 입고 그림을 그리고는 정작 중요한 전시회 개막식 때는 가짜 아프리카 의상을 입고 나타나서 사람들을 웃게 만들기도 하였다고 한다(Clement, 2003).

[24] 그는 신화와 역사, 해부학, 만화책, 신문 등에서 단어들을 찾아 캔버스 위에 적었다(Clement, 2003; 81).

[25] 그는 권투 시합을 좋아하기도 했으나 화가들을 운동선수처럼 취급하는 것을 좋아했으며 어떤 작품 위에는 “유명 흑인 운동선수들”이라고 쓰기도 했다. 친구였던 줄리언 슈나밸과 권투시합을 가지려고 했었다고 한다(Clement, 2003; 197-198).

[26] 이것은 여윈 머리 또는 부패된 해골(untitled-skull)을 암시하며 그의 작품에 내재된 죽음이라는 주제를 보여준다(이경민, 2007).

[27] 1985년 2월 『뉴욕 타임즈 매거진』은 ‘새로운 미술, 새로운 돈-미국 작가의 마케팅’이라는 제목의 표지 기사 아래 바스키아의 성공담을 대서특필하였다(정윤아 2003; 197).

[28] 현은자, 김주아, 국경아 (2018). 존 클라센의『 모자 삼부작』 에 대한 세계관적 접근. 어린이문학교육연구, 19(4), 199-224.; Vanhoozer, K. (2003). 이 텍스트에 의미가 있는가?. [Is there a meaning in this text?]. (김재영 역). 서울: IVP. (원본발간일 1998년)

[29] Winters, C. S. & Schmidt, G. D. (2001). 같은 책 p.293.

[30] J. Schnabel(1951〜)은 80년대에 미국 신표현주의의 핵심 주자였으며 바스키아와 같이 뉴욕에서 활약하였고 『바스키아』와 『밤이 지나기 전에 Before night falls』의 영화 감독을 역임하였다(정윤아, 2007).  

[31] Brant, P.(producer) & Schnabel., J. (director). (1996). Basquiat[motion picture]. USA: Miramax Films. 

[32] 정윤아(2003) 같은 책.; Cowen, T. (2003). 상업문화예찬. [In praise of commercial culture]. (임재서, 이은주 역). 서울: 나누리. (원본발간일 1998년).; Dossi, P. (2007). 이 그림은 왜 비쌀까. [Hype! Kunst und geld]. (김정근, 조이한 역.). 서울: 웅진 지식하우스. (원본발간일 2007년).; Findlay, M. (2015). 예술을 보는 눈. [The value of art]. (이유정 역). 서울: 다빈치. (원본발간일 2012년).

[33] 바스키아의 비극적 죽음도 그의 작품 가격을 올리는데 기여하였다.  

[34] 조지 메이슨 대학의 경제학자이기도 하고 예술 애호가이기도 한 그는 예술과 대중문화에 대한 경제학적 접근을 시도한 많은 논문과 저술을 발표하였다.  

[35] 정윤아(2007). 미술시장의 유혹. 서울: 아트북스. 

[36] Wilkens, S. & Sanford, M. (2013). 은밀한 세계관. [Hidden Worldviews]. (안종희 역). 서울: IVP. (원본발간일 2009년). pp.32-33. 재인용.

[37] Wilkens, S. & Sanford, M. (2013). 같은 책.

[38] Wilkens, S. & Sanford, M. (2013). 같은 책. p.48

[39] Wolterstorff, N. (2010). 행동하는 예술. [Art in Action]. (신국원 역). 서울: IVP. (원본발간일 1987년).; Veith, G. E. (1991). State of the arts: from Bezalel to Mapplethorpe. Wheaton, IL. : Crossway Books. 

[40] Clement, J. (2003). 같은 책.

[41] 정윤아(2003). 같은 책.

[42] 정윤아(2003). 같은 책.

[43] 이경민(2007). 같은 문헌.

[44] 이경민(2007). 같은 문헌.

[45] 그는 연인에게 자신의 엄마가 마법사이고 아이티 섬의 부두교에 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Clement, 2003: 130).

[46] Dossi, P. (2007). 같은 책. p.200.

[47] Brand, H. & Chaplin, A. (2004). 예술과 영혼. 〔Art and soul: signpost for Christians in the arts〕. (김유리, 오윤정 역) 서울: IVP. (원본 발간일 2001년).; Rookmaaker, H. R. (2002). 예술과 기독교. [Art needs no justification]. (김헌수 역). 서울: 두란노. (원본발간일 1978년).; Staniszewski. M. A. (1995).  Believing is Seeing.  New York: Penguin Books.; Wolterstorff, N. (2010). 같은 책.

[48] Brand, H. & Chaplin, A. (2004). 같은 책.; Rookmaaker, H. R. (2002). 같은 책.; Staniszewski. M. A. (1995). 같은 책.

[49] Rookmaaker, H. R. (2002). 같은 책.

[50] Brand, H. & Chaplin, A. (2004). 같은 책.; Rookmaaker, H. R. (2002). 같은 책.

[51] 라영환 (2013). 폴 고갱의 기독교적 이미지 사용에 대한 연구. 신앙과 학문, 18(4), 115-139.

[52] Rookmaaker, H. R. (2002). 같은 책.

[53] Goudzwaard, B. (1987). 현대, 우상, 이데올로기. [Idols of our time]. (김재영 역). 서울: IVP. (원본발간일 1981년). p.24.

[54] 이수형 (2024). 국제적 어린이 도서상에 재현된 문화막시즘.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 박사학위 청구 논문


현은자 |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 명예교수

이화여자대학교 교육학과 졸업 후 Eastern Michigan University 에서 석사, University of Michigan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 어린이문학교육학회 회장 및 한국 기독교 유아교 육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아동 청소년학과 교수이며 사회과학대학 부설 생활과 학 연구소 그림책 전문가 과정에서 “기독신앙과 그림책 읽기”를 강의하고 있으며, <기독교 세계관으로 아동문학보기>, <그림책의 이해>(공저), <그림책과 예술교육>(공저>, <그림책으로 보는 아동과 우리사회>(공저), <100권의 그림책>(공저) 등 그림책 관련 저서가 있다.




6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