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의 표지는 작은 네모들로 빽빽하며 정중앙에 파란 색의 네모가 ‘보통’이라고 보여주고, 하단에 같은 크기의 작은 파란 색 네모들이 줄지어 사다리를 타고 오른 편 제목을 향해 올라가고 있다. 마치 자신들도 ‘보통’에 합류하려는 듯이... 앞면지도 조금씩 다른 크기와 형태의 파란 색 네모들로 가득 차 있으며, 표제지의 윗 상단에는 네모들이 무리지어 있는 가운데 오른 편에 네모들의 여백이 ‘보통’을 만들고 있고. 그 아래 부분에는 그 글자의 거울 이미지가 파란 색 작은 네모들로 채워져 있다. 이 작품의 주조는 흰 배경과 파란 색의 형체이며, 글텍스트가 그림의 정보를 전달한다. 파란 색의 네모가 화자로서 서사를 담당하며 에피소드의 연결은 기-승-전-결의 구조를 보이고 있다.
본문의 첫 장면 왼편에는 가로로 긴 사각형과 그 아래에 한 개의 네모가, 그리고 그 아래에 가로 11개, 세로 10개의 네모들이 사각형 형태로 정렬하고 있다. 드디어 오른 편에 나타난 첫 글텍스트, “안녕, 나는 보통이야.”는 독자를 향한 인사말이다. 이 인사말을 건넨 화자는 같은 네모이지만 그 안에 눈, 코, 입이 그려져 있어 다른 네모들과 구별된다. 그 다음 장면부터는 ‘보통’의 정의와 함께 이 작은 파란색 네모들이 그 정의에 맞게 계속 형태를 바꾸어 정렬하고 있다. 작품 앞부분에서 글텍스트는 “보통”의 정의에 대해 자문자답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서사가 전개될수록 화자는 작가의 목소리로 변화한다. 본문의 각 화면별로 글텍스트와 그림(괄호 안에 묘사함)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화면과 화면 사이는 한 줄로 띄었고 장면과 장면 사이는 indent로 구분하였음.)
보통이 뭐냐고?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 (네모들은 빌딩 안에 정렬되어 있다.)
보통은 그냥 외워야 하는 공식같고 (주사위 모양 안에 정렬되어 있다.)
지루한 반복같아. (여러 개의 책장 모양을 이룬다.)
가끔은 특별하고 (주인공이 무대 위에 있고 무대 아래에는 작은 네모들이 모여 있으며. 무대 위에는 조명 빛과 같은 직선이 그 주인공을 향해 있다.)
남다른 내가 되는 상상을 하지만 (네모가 로켓을 타고 공중으로 올라간다.)
모두 보통으로 살아야 한다며 한 방향을 가리키지. (도로의 표지판에는 흰색의 큰 화살표 위에 “보통 Normal”이라는 글자가 그려져 있다.)
마치 그것이 유일한 행복의 열쇠인 것처럼 (네모들로 이루어진 열쇠모양과 열쇠 구멍)
그저 남들 눈에 맞춰 정해진 시간표에 쫓겨. (안경알이 네모인 안경이 32개가 정렬하고 있다.)
쉬지 않고 달려 (고속도로의 교차로에 네모들이 나란히 달리고 있다.)
보통 중의 하나로 살아가는 매일은 (화면에는 책장이 펼쳐져 있으며 왼편에는 네모들이 책장의 글자처럼 도열해 있고, 오른편에서는 네모들이 사다리를 올라가 그 페이지를 채우고 있다.)
단조로워 보이지만, 몹시 치열하고 (책장의 글자처럼 왼편에 일렬로 늘어선 네모들이 오른편에는 파도 모양으로 바뀌었다.)
무척 복잡해 (네모들이 미로를 따라가고 있다가 흘러나와 오른 편 상자들 위로 올라간다.)
심지어 누가 ‘더’ 보통인지를 저울질하지. (저울 왼편에는 큰 뭉치의 네모들이, 오른편에는 적은 무리의 네모들이 쌓여져 있어 저울은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눈금에 맞추어 재단하고, (12개의 파이 그래프로 네모들이 측정되고 있다.)
나를 숨기고
남과 비교하고 (네모들이 다른 크기의 빌딩 속에 늘어서 있다.)
가능한 모든 기준으로 편을 갈라 (세 개의 가위가 눈금을 따라 파란 색 도화지를 자른다.)
서로를 미워하고 (양편으로 갈라진, 옆얼굴 모양의 두 개의 네모들은 서로를 향해 무엇인가를 말하는 듯 입 부분이 벌어져 있고 벌어진 입모양에서 날카로운 Z지 모양 5개가 서로를 향해 떠돌고 있다.)
실패를 모른 척하지 (저울에 수북히 쌓인 네모들이 저울 밖으로 떨어지고 있다.)
보통은 때로 모든 것을 집어 삼키고 (네모로 이루어진 팩맨 형태의 입속으로 네모, 별, 세모, 마름모, 세모 등 조각들이 빨려 들어가는 듯 하다.)
높다란 벽을 세워 (네모로 이루어진 견고한 벽이 화면을 채우고 있고 작은 원, 세모, 별, 마름모는 바닥에서 그 벽을 올려다보는 듯 하다.)
마침내 완벽한 보통이 되어 마주하는 것은 (주인공 네모가 힘겹게 파란 계단을 오르고 있다.)
완벽한 행복이 아닌 (계단을 끝까지 오른 네모 앞에는 네모로 이루어진 거대한 탑이 서있다.)
거대한 불안의 탑 (주인공은 “답답해 난 누구지 어디까지 가야하나 이것이 내가 원하던 걸까”라고 독백하며 나선형의 탑을 오르고 있다.)
그리고... 수많은 다른 보통들 (이제 높은 탑들을 이루던 네모들은 원, 별표, 세모들로 변형되었다.)
글없는 화면 (주인공 네모가 거대하고 높은 탑에서 떨어진다.)
나도 보통을 원해. 다만, 내가 바라는 보통은 (네모는 계속 추락한다.)
넘어질 때 촘촘히 받쳐 주고 (네모가 하강하는 아래에는 네모들이 모여 그물모양을 이루고 있고 그 네모들은 조금씩 눈, 코, 입의 윤곽을 보여준다.)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높은 다리의 양옆에 두 개의 네모가 마주보고 있다)
선 긋는 보통이 아닌 (왼편에는 그래프 안에 일률적으로 늘어선 네모들이)
자유로운 보통 (오른편에는 부드럽게 물결치는 곡선 위에 네모들이 위치해 있다.)
너의 보통과
나의 보통은 (탑 위에는 원, 사각형, 마름모의 형태로 바뀐 네모들이 가득하다.)
다르면 어때? (탑에서 떨어지고 있는 세모, 왕관, 별, 세모, 말발굽 등의 다양한 모양들은 이제 색채를 띠고 있다.)
우리의 보통은 달라서 아름답고 (이 보통들은 다양한 색채와 모양들로 화면을 채운다.)
함께라면 무엇이든 될 수 있어. (화려한 색채의 무지개 형태를 이룬다.)
뒤면지에서는 각기 다른 형태와 색채로 바뀐 ‘보통’들이 촘촘히 정렬하고 있으며, 왼편에는 작가의 경력과 함께 창작 의도가 적혀 있다.
그리고 뒤표지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평범하지만 특별한 보통의 이야기” 라는 문구는 작품의 메시지를 간결하게 드러낸다.
이 작품의 주제어라고 할 수 있는 보통(normal)의 뜻을 AI에게 물어보니 가장 먼저 일상적인 의미로서 “보통의, 평범한, 정상적인”이라고 알려주고는, 가장 흔하게 쓰이는 뜻은, “특별하거나 이상하지 않고 평소와 같다”라고 답한다. 용례로서는 정상 상태: "체온이 정상(normal)입니다." 평범한 일상: “그저 평범한(normal) 하루였어”를 들고 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의 주제어는 사전적인 의미와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작가는 우리는 모두 보통인 존재이지만 특별한 보통이라는 것을 주장한다. 그는 이야기의 앞 2/3 정도의 많은 분량에서 의인화된 네모를 통해 ‘보통’에 필사적으로 속하고자 하는 우리의 모습과 마침내 완전한 보통이 된 후 맛보게 되는 허무함,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우리의 보통’으로 진행된다. 결국 우리 모두는 보통이지만 특별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들이 보통이 아님을 증명하려고 몸부림치는 모습은 왠지 모를 연민과 불편함을 안겨준다. 왜 그럴까? 이 작품을 맥스 루케이도의 [너는 특별하단다.]와 비교해 보니 그 이유가 확실해 지는 듯하다. [너는 특별하단다.]는 우리 모두는 원래 특별한 존재로서 창조되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누군가를 “나쁜 웜밋”, “좋은 웜밋”이라는 딱지붙이기(labelling)는 인간의 죄성 탓이며, 하나님은 우리 각자를 고유하고 특별한 존재로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우리를 ‘보통’이라고 딱지를 붙이는 자는 인간이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아니다. 우리는 보통 안에서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원래 보통으로 묶일 수 없는 특별한 존재이며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렇게 우리를 지으셨으므로 그것 자체를 증명하려고 애써 노력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앞면지에서 똑같이 작은 파란색 네모로 시작한 보통들이 점점 더 다른 형태와 색채로 바뀌어가며 뒷면지에서는 알록달록 다른 형태와 색채로 변모해 간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눈 여겨 봐야 할 점은 그들이 항상 군집형태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뒷 면지를 가득 채운, 촘촘히 정렬되어 있는 그들은 물리적일 뿐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서로 분리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런데 마지막 문장이면서 결론이기도 한, “함께라면 무엇이든 될 수 있어”에서 “무엇이든”이라는 단어에서 섬뜩함이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일까. 결국 이 보통의 조각들은 작지만 모이면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화려하고 빛나는 작은 조각들의 “무엇이든 될 수 있어.”는 선포는 희망을 안겨주는 것 같지만 그것에서는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민감한 독자라면 작가가 작품의 창작 의도에서 사용한 “편견, 차별, 혐오”라는 단어가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주의에서 즐겨 사용하는 것임을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무리지어 있는 보통의 존재들은 빛나고 유별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존재 의미는 집단으로부터 비롯됨을 함축한다. 보통이지만 특별한 보통들,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이 모순일 수 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을 보통이라고 분류한 자는 바로 자신들이기 때문이다. 그 범주 안에 자신들을 가둬놓고 여전히 자신들은 특별하다고 부르짖는다.
하나님 없는 갇힌 체계 (closed system) 안에서 살아가는 자들은 그들의 창조주이신 인격적이며 초월적인 준거점을 상실한 결과 유물론적 세계관을 택하게 된다. 그들은 하나님을 버린 결과 유대-기독교 가치 위에 세워진 자유 민주주의 대신, 다수의 힘으로 이상세계를 건설할 수 있다는 허망한 꿈을 갖게 된다. 그러나 사회주의, 공산주의가 다수의 보통을 노예로 만들어 버렸다는 사실은 이미 중국, 베네수엘라, 러시아, 북한 등 여러 독재 국가에서 증명된 바이다. 이 예쁜 이 이야기 안에서도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망령이 얼씬거리고 있음이 너무나 안타까울 뿐이다. 그들은 왜 현실을 보지 않으려 하고 여전히 인간의 힘으로 이상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선동, 선전에 미혹되는 것일까? 어쩌면 보통이라는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두려움과 불안정함이 그들의 앞에 드리운 무지개빛 낚시밥을 덥석 물게 하는 것은 아닐까?
특별한 보통? 민아원의 『보통』
이 작품의 표지는 작은 네모들로 빽빽하며 정중앙에 파란 색의 네모가 ‘보통’이라고 보여주고, 하단에 같은 크기의 작은 파란 색 네모들이 줄지어 사다리를 타고 오른 편 제목을 향해 올라가고 있다. 마치 자신들도 ‘보통’에 합류하려는 듯이... 앞면지도 조금씩 다른 크기와 형태의 파란 색 네모들로 가득 차 있으며, 표제지의 윗 상단에는 네모들이 무리지어 있는 가운데 오른 편에 네모들의 여백이 ‘보통’을 만들고 있고. 그 아래 부분에는 그 글자의 거울 이미지가 파란 색 작은 네모들로 채워져 있다. 이 작품의 주조는 흰 배경과 파란 색의 형체이며, 글텍스트가 그림의 정보를 전달한다. 파란 색의 네모가 화자로서 서사를 담당하며 에피소드의 연결은 기-승-전-결의 구조를 보이고 있다.
본문의 첫 장면 왼편에는 가로로 긴 사각형과 그 아래에 한 개의 네모가, 그리고 그 아래에 가로 11개, 세로 10개의 네모들이 사각형 형태로 정렬하고 있다. 드디어 오른 편에 나타난 첫 글텍스트, “안녕, 나는 보통이야.”는 독자를 향한 인사말이다. 이 인사말을 건넨 화자는 같은 네모이지만 그 안에 눈, 코, 입이 그려져 있어 다른 네모들과 구별된다. 그 다음 장면부터는 ‘보통’의 정의와 함께 이 작은 파란색 네모들이 그 정의에 맞게 계속 형태를 바꾸어 정렬하고 있다. 작품 앞부분에서 글텍스트는 “보통”의 정의에 대해 자문자답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서사가 전개될수록 화자는 작가의 목소리로 변화한다. 본문의 각 화면별로 글텍스트와 그림(괄호 안에 묘사함)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화면과 화면 사이는 한 줄로 띄었고 장면과 장면 사이는 indent로 구분하였음.)
뒤면지에서는 각기 다른 형태와 색채로 바뀐 ‘보통’들이 촘촘히 정렬하고 있으며, 왼편에는 작가의 경력과 함께 창작 의도가 적혀 있다.
그리고 뒤표지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평범하지만 특별한 보통의 이야기” 라는 문구는 작품의 메시지를 간결하게 드러낸다.
이 작품의 주제어라고 할 수 있는 보통(normal)의 뜻을 AI에게 물어보니 가장 먼저 일상적인 의미로서 “보통의, 평범한, 정상적인”이라고 알려주고는, 가장 흔하게 쓰이는 뜻은, “특별하거나 이상하지 않고 평소와 같다”라고 답한다. 용례로서는 정상 상태: "체온이 정상(normal)입니다." 평범한 일상: “그저 평범한(normal) 하루였어”를 들고 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의 주제어는 사전적인 의미와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작가는 우리는 모두 보통인 존재이지만 특별한 보통이라는 것을 주장한다. 그는 이야기의 앞 2/3 정도의 많은 분량에서 의인화된 네모를 통해 ‘보통’에 필사적으로 속하고자 하는 우리의 모습과 마침내 완전한 보통이 된 후 맛보게 되는 허무함,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우리의 보통’으로 진행된다. 결국 우리 모두는 보통이지만 특별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들이 보통이 아님을 증명하려고 몸부림치는 모습은 왠지 모를 연민과 불편함을 안겨준다. 왜 그럴까? 이 작품을 맥스 루케이도의 [너는 특별하단다.]와 비교해 보니 그 이유가 확실해 지는 듯하다. [너는 특별하단다.]는 우리 모두는 원래 특별한 존재로서 창조되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누군가를 “나쁜 웜밋”, “좋은 웜밋”이라는 딱지붙이기(labelling)는 인간의 죄성 탓이며, 하나님은 우리 각자를 고유하고 특별한 존재로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우리를 ‘보통’이라고 딱지를 붙이는 자는 인간이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아니다. 우리는 보통 안에서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원래 보통으로 묶일 수 없는 특별한 존재이며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렇게 우리를 지으셨으므로 그것 자체를 증명하려고 애써 노력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앞면지에서 똑같이 작은 파란색 네모로 시작한 보통들이 점점 더 다른 형태와 색채로 바뀌어가며 뒷면지에서는 알록달록 다른 형태와 색채로 변모해 간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눈 여겨 봐야 할 점은 그들이 항상 군집형태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뒷 면지를 가득 채운, 촘촘히 정렬되어 있는 그들은 물리적일 뿐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서로 분리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런데 마지막 문장이면서 결론이기도 한, “함께라면 무엇이든 될 수 있어”에서 “무엇이든”이라는 단어에서 섬뜩함이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일까. 결국 이 보통의 조각들은 작지만 모이면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화려하고 빛나는 작은 조각들의 “무엇이든 될 수 있어.”는 선포는 희망을 안겨주는 것 같지만 그것에서는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민감한 독자라면 작가가 작품의 창작 의도에서 사용한 “편견, 차별, 혐오”라는 단어가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주의에서 즐겨 사용하는 것임을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무리지어 있는 보통의 존재들은 빛나고 유별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존재 의미는 집단으로부터 비롯됨을 함축한다. 보통이지만 특별한 보통들,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이 모순일 수 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을 보통이라고 분류한 자는 바로 자신들이기 때문이다. 그 범주 안에 자신들을 가둬놓고 여전히 자신들은 특별하다고 부르짖는다.
하나님 없는 갇힌 체계 (closed system) 안에서 살아가는 자들은 그들의 창조주이신 인격적이며 초월적인 준거점을 상실한 결과 유물론적 세계관을 택하게 된다. 그들은 하나님을 버린 결과 유대-기독교 가치 위에 세워진 자유 민주주의 대신, 다수의 힘으로 이상세계를 건설할 수 있다는 허망한 꿈을 갖게 된다. 그러나 사회주의, 공산주의가 다수의 보통을 노예로 만들어 버렸다는 사실은 이미 중국, 베네수엘라, 러시아, 북한 등 여러 독재 국가에서 증명된 바이다. 이 예쁜 이 이야기 안에서도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망령이 얼씬거리고 있음이 너무나 안타까울 뿐이다. 그들은 왜 현실을 보지 않으려 하고 여전히 인간의 힘으로 이상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선동, 선전에 미혹되는 것일까? 어쩌면 보통이라는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두려움과 불안정함이 그들의 앞에 드리운 무지개빛 낚시밥을 덥석 물게 하는 것은 아닐까?
현은자 |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 명예교수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 명예교수이며 그림책 평론 작업을 하고 있다. 미국 University of Michigan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1989년부터 2023년까지 성대 아동청소년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2021년부터 웹진 <그림책 베이직>에 '그림책의 세계관' 칼럼을 연재하고 있으며, 그림책 세계관 연구소에서 운영하고 있는 '그림책 세계관 지도사 과정'에서 '그림책의 세계관', '기독 신앙과 그림책 읽기'를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기독교 세계관으로 아동문학보기>, <그림책의 세계관>, 공저로는 <그림책의 이해1, 2>, <그림책과 예술교육>, <세계 그림책의 역사>, <어린이교육전문가가 엄선한 100권의 그림책>, <신앙이 자라는 그림책 읽기>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