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의 세계관
[특별기고] 누구를 위한 그림책인가? ; 『달 밝은 밤』 과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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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혜2026-08-14 14: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종 야곱아 내가 너와 함께 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흩었던 그 나라들은 다 멸할지라도 너는 사라지지 아니하리라 (예레미야 46:28a)" 오늘 읽은 말씀 중 일부인데, 칼럼을 읽으며 생각이 나서 적어봅니다.
백성들이 계속해서 불순종하고 하나님과 멀어지며, 칼럼에서 언급하신 주정주의의 삶을 살지만,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택하신 백성과의 언약을 어떻게든 지키시려는 모습을 보며 그 크신 사랑에 감사와 회개의 고백이 나오더라구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겠다고 해놓고 정작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응답을 전하면 거짓이라 하고 불순종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들을 '오만한자'라고 여기셨습니다.
비록 불순종에 대한 벌은 주실지라도 결코 멸하지 않으시고 다시 회복을 주신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
깨어진 가정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그 세상이 자신을 흩으고 멸하는 것처럼 느껴질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그 어떤 상황에서도, 당신의 자녀를 먹이시고 살리시는 그 하나님을 만나기만을 소망합니다.
또한 계속해서 하나님의 자리를 없애려는 이 세상의 오만한 풍조 속에서, 나 또한 귀 닫고 오만함의 길로 빠져들지 않도록,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오만한 길을 전해주지 않도록 계속해서 주님의 말씀안에 거하고자 노력해야겠습니다.
백성들이 계속해서 불순종하고 하나님과 멀어지며, 칼럼에서 언급하신 주정주의의 삶을 살지만,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택하신 백성과의 언약을 어떻게든 지키시려는 모습을 보며 그 크신 사랑에 감사와 회개의 고백이 나오더라구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겠다고 해놓고 정작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응답을 전하면 거짓이라 하고 불순종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들을 '오만한자'라고 여기셨습니다.
비록 불순종에 대한 벌은 주실지라도 결코 멸하지 않으시고 다시 회복을 주신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
깨어진 가정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그 세상이 자신을 흩으고 멸하는 것처럼 느껴질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그 어떤 상황에서도, 당신의 자녀를 먹이시고 살리시는 그 하나님을 만나기만을 소망합니다.
또한 계속해서 하나님의 자리를 없애려는 이 세상의 오만한 풍조 속에서, 나 또한 귀 닫고 오만함의 길로 빠져들지 않도록,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오만한 길을 전해주지 않도록 계속해서 주님의 말씀안에 거하고자 노력해야겠습니다.
강다혜2026-08-15 22:44
이 글에서 '위기의 가정'을 소재로 한 두 그림책을 보여주시면서 비교를 해주셔서 저에게 참 유익했습니다. 분명 우리 사회에는 위기 가정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세상의 교육은 위기 가정이 많기 때문에 위기 가정의 아이들을 배려해서 흔히 말하는 '일반적인 가정(친부모가 모두 살아 있고, 아이와 함께 사는)'의 모습을 가르치지 못하게 합니다. 초등학교의 가정 조사서에는 '엄마'/ '아빠'라는 말 대신 보호자 혹은 주 양육자 라는 말로 다 바뀌었습니다. 아이들 교과서에서는 가족의 정의가 사라지고, 아이들은 가정이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대해서도 사실 제대로 배우고 있지 못합니다. 그런데 제가 만났던 위기가정 아이들은 정말 일반적인 가정에 대해서 배울 기회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그 아이들은 일반적인 가정을 어떻게 이룰 수 있는지를 배워야 자신이 가정을 세울 시기나 나이가 되었을 때, 참고하여 아름다운 가정을 세우기 위해 노력을 할텐데... 배운 적이 없으니 결혼 상대를 어떻게 골라야하는지, 어떤 가정이 아름다운 가정의 모습인지 알 수 없어 힘들어합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가정의 형태, 그리고 그 형태의 바른 모습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분명 우리 주변에는 위기 가정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럼 그림책은 이 위기 가정들을 소재로 무엇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까요?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고, 이러한 위기 가정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알고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것을 그림책을 통해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그림책들이 결국 주장하고 가르치는 것이 무엇인지는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글에서 필자가 지적하신 것처럼 <달 밝은 밤>은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절망된 현실에 함께 슬퍼하다가 나 자신의 분노의 감정에 기대 살라는 허무주의적 세계관이 보입니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 자신의 감정대로 세상을 인지하게 하는 주정주의는 결국 불안전하고 타락한 우리 인간을 신뢰하기 때문에 허무주의로 귀결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위기가정 속에서 자라더라도 아빠에게 사랑을 받고 있으며, 그렇기에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갈 희망과 추구할 방향이 있다는 것을 시사해주고 있습니다. 이 두 그림책을 비교해주셔서, 우리가 어떤 그림책을 가지고 아이들과 함께 이 시대를 인지하고 인식하며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르쳐줄 그림책을 고를 수 있는 시각을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분명 우리 주변에는 위기 가정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럼 그림책은 이 위기 가정들을 소재로 무엇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까요?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고, 이러한 위기 가정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알고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것을 그림책을 통해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그림책들이 결국 주장하고 가르치는 것이 무엇인지는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글에서 필자가 지적하신 것처럼 <달 밝은 밤>은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절망된 현실에 함께 슬퍼하다가 나 자신의 분노의 감정에 기대 살라는 허무주의적 세계관이 보입니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 자신의 감정대로 세상을 인지하게 하는 주정주의는 결국 불안전하고 타락한 우리 인간을 신뢰하기 때문에 허무주의로 귀결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위기가정 속에서 자라더라도 아빠에게 사랑을 받고 있으며, 그렇기에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갈 희망과 추구할 방향이 있다는 것을 시사해주고 있습니다. 이 두 그림책을 비교해주셔서, 우리가 어떤 그림책을 가지고 아이들과 함께 이 시대를 인지하고 인식하며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르쳐줄 그림책을 고를 수 있는 시각을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주경2026-08-16 15:57
달 밝은 밤의 마지막 장면에서 달이 마치 해처럼 스스로 빛을 내는 것처럼 환하게 그려진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달은 스스로 빛을 낼 수 없습니다. 다른 빛을 받아 반사하는데, 이 장면을 읽으며 아이가 이제는 누구에게도 기대거나 타인에 의해 흔들리지 않고 혼자 힘으로 빛나는 존재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한 것처럼 느껴져서 안타까웠습니다. 아무도 믿을 수 없어서 자기 자신만 믿겠다고 결심하는 아이를 안아주고 싶었습니다.
반면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을 쓴 허은미 작가가 외롭고 상처받은 아이에게 힘이 되어 줄 마법 같은 말 한마디를 찾고자 했다는 이야기가 와닿았습니다.
어린아이들에게는 좋은 길을 제시해주고 지도해주는 어른이 꼭 필요합니다. 그들은 아직 자신과 세상을 충분히 이해하고 판단하는 힘이 부족하기 떄문입니다. 한 아이의 등을 어루만져줄 수 있는 어른들이 많아지기를 소망합니다.
반면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을 쓴 허은미 작가가 외롭고 상처받은 아이에게 힘이 되어 줄 마법 같은 말 한마디를 찾고자 했다는 이야기가 와닿았습니다.
어린아이들에게는 좋은 길을 제시해주고 지도해주는 어른이 꼭 필요합니다. 그들은 아직 자신과 세상을 충분히 이해하고 판단하는 힘이 부족하기 떄문입니다. 한 아이의 등을 어루만져줄 수 있는 어른들이 많아지기를 소망합니다.
원계실2026-08-16 16:30
달 밝은 밤/ 전미화 글·그림/ 창비)
알코올 중독 아빠와 집을 나간 엄마 사이에서 위태로운 아이가 "나는 나를 믿을 거야"라며 두 주먹을 쥐고, 하늘의 달이 그 위를 환히 비추며 끝난다.
깨어진 가정의 상처를 미화 없이 응시한 점은 진실하다. 다만 성경은 자기 마음을 믿는 것을 지혜가 아닌 미련함이라 한다(잠언 28:26).
무너진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너 자신을 믿으라"가 아니라 배신하지 않는 신실한 누군가다(시편 27:10).
달은 제 3자의 위치에서 그 자리에 놓였으나 상징으로만 보인다.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 허은미 글, 조은영 그림/ 나는별
같은 물음을 정반대로 푼다.
엄마의 부재로 결핍을 안은 아홉 살 동구를, 아빠와 온 마을 어른들의 사랑이 감싼다.
아이들이 무엇보다 듣고 싶어 하는 말은 "사랑해"다. 동구도 결국 그 한마디로 회복해 갈 것이다.
회복탄력성에서도 의미 있는 어른의 돌봄과 사랑으로 깨어진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성공 이유를 설명한 것과 같다. (카우아이섬의 아이들 40년 종단연구)
사랑은 늘 누군가를 통해 흐른다. 우리가 먼저 사랑 받았기에 사랑하듯이(요한일서 4:19).
결핍이 있는 가정에서 아이는 무엇으로 다시 서는가?
'달 밝은 밤'은 "스스로 빛이 되라" 하고,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우리가 네 빛이 되어 주마" 한다.
기독교 세계관이 손들어 주는 쪽은 후자라고 생각이 든다.
알코올 중독 아빠와 집을 나간 엄마 사이에서 위태로운 아이가 "나는 나를 믿을 거야"라며 두 주먹을 쥐고, 하늘의 달이 그 위를 환히 비추며 끝난다.
깨어진 가정의 상처를 미화 없이 응시한 점은 진실하다. 다만 성경은 자기 마음을 믿는 것을 지혜가 아닌 미련함이라 한다(잠언 28:26).
무너진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너 자신을 믿으라"가 아니라 배신하지 않는 신실한 누군가다(시편 27:10).
달은 제 3자의 위치에서 그 자리에 놓였으나 상징으로만 보인다.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 허은미 글, 조은영 그림/ 나는별
같은 물음을 정반대로 푼다.
엄마의 부재로 결핍을 안은 아홉 살 동구를, 아빠와 온 마을 어른들의 사랑이 감싼다.
아이들이 무엇보다 듣고 싶어 하는 말은 "사랑해"다. 동구도 결국 그 한마디로 회복해 갈 것이다.
회복탄력성에서도 의미 있는 어른의 돌봄과 사랑으로 깨어진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성공 이유를 설명한 것과 같다. (카우아이섬의 아이들 40년 종단연구)
사랑은 늘 누군가를 통해 흐른다. 우리가 먼저 사랑 받았기에 사랑하듯이(요한일서 4:19).
결핍이 있는 가정에서 아이는 무엇으로 다시 서는가?
'달 밝은 밤'은 "스스로 빛이 되라" 하고,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우리가 네 빛이 되어 주마" 한다.
기독교 세계관이 손들어 주는 쪽은 후자라고 생각이 든다.
이아름2026-08-17 01:31
말씀을 묵상할 때 ‘나’를 묵상하게 되면 자기 연민에 빠지게 되기에, ‘하나님’을 묵상해야 한다고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때, 나를 일으키시는 참된 생명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진정한 회복이, 진정한 은혜가 시작될 것입니다. 나를 바라보게 하는 것 중에 하나가 ‘감정’인 것 같습니다.
감정에 압도되지 않고, 감정이 나를 지배하지 않고, 나를 지배하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그렇게 나아가도록 돕는 것!이 필요한 세상입니다.
어린이들에게도, 어른들에게도.
윤정민 선생님께서 말씀 하신 것처럼 이미 상처받은 아이들이 현실을 딛고 일어 설 수 있는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한데,,
그 빈자리를 자꾸만 세상의 것으로 채워가려고 하기에 더 어려운 현실을 맛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 사랑을 부모에게서 받을 수 없다면, 그 누구의 사랑보다 큰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워가도록 돕는 우리의 책임을 다하는 어른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때, 나를 일으키시는 참된 생명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진정한 회복이, 진정한 은혜가 시작될 것입니다. 나를 바라보게 하는 것 중에 하나가 ‘감정’인 것 같습니다.
감정에 압도되지 않고, 감정이 나를 지배하지 않고, 나를 지배하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그렇게 나아가도록 돕는 것!이 필요한 세상입니다.
어린이들에게도, 어른들에게도.
윤정민 선생님께서 말씀 하신 것처럼 이미 상처받은 아이들이 현실을 딛고 일어 설 수 있는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한데,,
그 빈자리를 자꾸만 세상의 것으로 채워가려고 하기에 더 어려운 현실을 맛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 사랑을 부모에게서 받을 수 없다면, 그 누구의 사랑보다 큰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워가도록 돕는 우리의 책임을 다하는 어른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김하순2026-08-17 10:54
약 3년 전부터 감정을 읽어주고 공감해 주는 것의 긍정적인 면만이 아니라, 오히려 아이를 자기 감정에 빠지게 하고, 결국에는 그 감정의 올무에 가두고 있다는 걸 확인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리고 교수님이 써 놓으신 것처럼, 성경에 말세에 자기를 사랑하는 풍조가 나타난다 했는데, 바로 감정육아가 가져올 결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이 교육을 받고 자란 아이들이 사회의 허리가 될때. 어떤일들이 벌어질지 걱정하던 중이었습니다.
감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걸 ‘주정주의’라고 부른다는 것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르네상스 이후 인간의 이성을 최고의 선으로 여기던 풍조가 이제 감정으로 옮겨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주정주의적 태도가 가정 해체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할 수 있다는 대목은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어서 눈을 크게 뜨고 읽어보았습니다.
주정주의는 결혼이 신성한 언약 위에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 위에 세워진 계약과 같은 위치로 전락하고, ‘내가 행복하지 않다면 이 가정을 유지할 이유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대목을 읽으면서 교수님의 시선은 결국 또 아이들에게로 향하고 있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교수님의 비평의 글을 읽다보면 늘 아이들이 있었다는 걸 감지하게 되더라구요. 어른들이 최선이라고 생각하여 내린 선택 때문에 아픔과 상처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아이들. 교수님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그 아이들의 아픔과 고통에 대한 생각이 가득 차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달 밝은 밤』은 ' 주인공 아이가 처한 현실이 내가자랐던 가정의 모습과 너무나 닮았네'라고 생각하며 읽어보았던 책입니다
우리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습니다. 술을 끊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하시고 술 끊는 약까지 사서 드셨지만 결국 끊지 못하셨습니다. 우리 집은 장독대가 깨지고 유리창이 깨지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저는 학교에 가 있어도 집이 걱정되어 수업에 몰입할 수 없었고, 늘 어머니가 불쌍하고 걱정되어 마음을 졸이며 살았습니다.
『달 밝은 밤』은 저의 이야기나 다름없습니다.
아니 달밝은 밤보다 더 아프고 더 불안하고 마음조리는 나날들이었습니다만, 이 책을 읽을 때 그 시절의 감정이 크게 살아나지는 않았습니다. 아마 20년 전에 읽었다면 많이 울었을지도 모르지만, 이번에는 비교적 무덤덤하게 읽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나를 믿을 것이다.' 라는 것은 건강한 자립이나 주체성의 발현이 아니라 '아무도 믿을 수 없으니 나만 믿겠다'는 불신을 기반으로 한 결심이라는 교수님의 비평을 읽으면서 혼자 읽을때 그냥 스쳐 지나갔던 이 책의 결론에 주목하게 되었고 '그렇다면 나는 어린 시절에 어떤 결론을 내렸었지?' 하고 회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림책 처럼 달이 휘영청 밝은 깊은 밤 새벽 두~세기경 깊은 잠에 빠진 옆집 아저씨의 창문 앞에 서서
'도와주세요' 이 말을 하고 싶어서 손을 내밀었다가 거두기를 반복하다가 차마 문을 두드리지 못하고 밝은달을 쳐다보며
‘하나님, 제가 이다음에 크면 저처럼 알코올 중독 때문에 고통당하는 아이들을 위해 살 거예요. 이런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될 거예요. 하나님, 도와주세요.’ 라고 기도했었던, 그동안 잊고 지냈던 수많은 밤들이 50여 년의 시간을 건너 되살아나더라구요.
나는 ‘나를 지킬 사람은 나밖에 없어’라고 결론 내리지 않았구나. 그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도 언젠가 나와 같은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어른이 되게 해달라고 하나님 안에서 희망과 소망을 붙잡고 있었구나.'
교수님의 비평글이 50여 년전 저의 선택을
지지해주는것 같아 위로가 되더군요.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에 대한 비평을 읽으면서는 또 저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 때문에 집 안이 쓰나미가 지나간 것처럼 황량해진 날들이 많았지만, 저에게는 저를 믿어주는 어른들이 있었습니다.
담임 선생님은 제게 “너희 어머니는 참 훌륭하신 분이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교회에 가면 목사님과 사모님, 전도사님들이 “하순이는 참 훌륭한 사람이다”라고 말해 주셨습니다.
생각해 보니 저는 그런 가정에서 살면서도 ‘나는 불쌍한 아이야’, ‘나는 불행한 아이야’라고 생각한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불안했고, 걱정했고, 늘 조마조마했지만 저는 참 씩씩한 아이였습니다. 이제야 알것 같습니다. 주변의 선생님들과 교회의 어른들이 저에게 보여주었던 사랑과 신뢰의 말이 저를 그렇게 자라게 했다는걸.
그래서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에서 동구가 선생님의 따뜻한 사랑과 아빠의 “사랑한다, 우리 아들”이라는 말을 통해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는 이야기가 더욱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주어야 할 것은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하는 눈만이 아니라 현실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사랑이라는 단단한 토대이다.”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작품의 결말이 어뗳게 내려지고 있는가?'하는것이 아주 중요하다는 깨달음과 '희망과 소망을 주는 결말이어야한다'는 책임도 깨닫고 있던중이었는데, 저렇게 알콜중독같이 무겁고 암담한 현실문제에 대해 희망적인 결론을 낸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써야 하는 것인지 궁금했었는데. [내가 듣고 싶은 말]과 [ 달밝은 밤]을 비교해주신것과 나의 어린시절에 대한 회상으로
'아, 이렇게 쓰면 되겠구나.'하는 답을 얻게 되어서 참 기뻤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으면서 저의 어린시절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살아온 삶이 그림책의 소재구나. 그림책을 쓸 수 있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는 삶의 현장 속에 나를 두셨구나. 『달 밝은 밤』보다 더 리얼한 이야기가 바로 내가 살아온 삶 속에 있었네.'
그리고 이제 조금 알 것 같습니다.
현실을 단순히 고발하거나 아이의 아픔과 감정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도 아이가 무엇을 붙잡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그림책 쓰기가 어떤것인지를.
'그림책은 세상을 보여주는 창이다. 자기 집밖에 모르는 아이들에게 그림책은 세상이 어떤 곳인지, 나는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현실의 문제를 고발하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특히 아직 세상을 잘 모르는 아이들에게 절망적인 현실을 보여준 뒤 아무런 대안도 제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이들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
이 글이 칼이 되어 제 가슴에 꽂혔습니다.
그동안 가랑비에 옷 젖듯이 젖어들고 있었지만
이 글을 읽으면서 더 질실하게 다가오네요.
'진실로 현 교수님은 상처받은 아이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해주는 진짜 아이들을 사랑하는 분이구나'
그리고 진짜 아이들을 위한다게 어떻게 하는것인지, 특히 아픈 아이들을 위한다는 사실주의
아동문학가들을 보는 눈이 조금씩 열려지는게
너무 기쁘고 감사합니다.
이제 서서히, 그동안 제가 살아왔던 이야기들을 그림책으로 담아내는 시도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 비평의 글이었습니다.
그리고 교수님이 써 놓으신 것처럼, 성경에 말세에 자기를 사랑하는 풍조가 나타난다 했는데, 바로 감정육아가 가져올 결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이 교육을 받고 자란 아이들이 사회의 허리가 될때. 어떤일들이 벌어질지 걱정하던 중이었습니다.
감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걸 ‘주정주의’라고 부른다는 것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르네상스 이후 인간의 이성을 최고의 선으로 여기던 풍조가 이제 감정으로 옮겨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주정주의적 태도가 가정 해체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할 수 있다는 대목은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어서 눈을 크게 뜨고 읽어보았습니다.
주정주의는 결혼이 신성한 언약 위에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 위에 세워진 계약과 같은 위치로 전락하고, ‘내가 행복하지 않다면 이 가정을 유지할 이유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대목을 읽으면서 교수님의 시선은 결국 또 아이들에게로 향하고 있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교수님의 비평의 글을 읽다보면 늘 아이들이 있었다는 걸 감지하게 되더라구요. 어른들이 최선이라고 생각하여 내린 선택 때문에 아픔과 상처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아이들. 교수님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그 아이들의 아픔과 고통에 대한 생각이 가득 차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달 밝은 밤』은 ' 주인공 아이가 처한 현실이 내가자랐던 가정의 모습과 너무나 닮았네'라고 생각하며 읽어보았던 책입니다
우리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습니다. 술을 끊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하시고 술 끊는 약까지 사서 드셨지만 결국 끊지 못하셨습니다. 우리 집은 장독대가 깨지고 유리창이 깨지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저는 학교에 가 있어도 집이 걱정되어 수업에 몰입할 수 없었고, 늘 어머니가 불쌍하고 걱정되어 마음을 졸이며 살았습니다.
『달 밝은 밤』은 저의 이야기나 다름없습니다.
아니 달밝은 밤보다 더 아프고 더 불안하고 마음조리는 나날들이었습니다만, 이 책을 읽을 때 그 시절의 감정이 크게 살아나지는 않았습니다. 아마 20년 전에 읽었다면 많이 울었을지도 모르지만, 이번에는 비교적 무덤덤하게 읽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나를 믿을 것이다.' 라는 것은 건강한 자립이나 주체성의 발현이 아니라 '아무도 믿을 수 없으니 나만 믿겠다'는 불신을 기반으로 한 결심이라는 교수님의 비평을 읽으면서 혼자 읽을때 그냥 스쳐 지나갔던 이 책의 결론에 주목하게 되었고 '그렇다면 나는 어린 시절에 어떤 결론을 내렸었지?' 하고 회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림책 처럼 달이 휘영청 밝은 깊은 밤 새벽 두~세기경 깊은 잠에 빠진 옆집 아저씨의 창문 앞에 서서
'도와주세요' 이 말을 하고 싶어서 손을 내밀었다가 거두기를 반복하다가 차마 문을 두드리지 못하고 밝은달을 쳐다보며
‘하나님, 제가 이다음에 크면 저처럼 알코올 중독 때문에 고통당하는 아이들을 위해 살 거예요. 이런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될 거예요. 하나님, 도와주세요.’ 라고 기도했었던, 그동안 잊고 지냈던 수많은 밤들이 50여 년의 시간을 건너 되살아나더라구요.
나는 ‘나를 지킬 사람은 나밖에 없어’라고 결론 내리지 않았구나. 그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도 언젠가 나와 같은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어른이 되게 해달라고 하나님 안에서 희망과 소망을 붙잡고 있었구나.'
교수님의 비평글이 50여 년전 저의 선택을
지지해주는것 같아 위로가 되더군요.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에 대한 비평을 읽으면서는 또 저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 때문에 집 안이 쓰나미가 지나간 것처럼 황량해진 날들이 많았지만, 저에게는 저를 믿어주는 어른들이 있었습니다.
담임 선생님은 제게 “너희 어머니는 참 훌륭하신 분이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교회에 가면 목사님과 사모님, 전도사님들이 “하순이는 참 훌륭한 사람이다”라고 말해 주셨습니다.
생각해 보니 저는 그런 가정에서 살면서도 ‘나는 불쌍한 아이야’, ‘나는 불행한 아이야’라고 생각한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불안했고, 걱정했고, 늘 조마조마했지만 저는 참 씩씩한 아이였습니다. 이제야 알것 같습니다. 주변의 선생님들과 교회의 어른들이 저에게 보여주었던 사랑과 신뢰의 말이 저를 그렇게 자라게 했다는걸.
그래서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에서 동구가 선생님의 따뜻한 사랑과 아빠의 “사랑한다, 우리 아들”이라는 말을 통해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는 이야기가 더욱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주어야 할 것은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하는 눈만이 아니라 현실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사랑이라는 단단한 토대이다.”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작품의 결말이 어뗳게 내려지고 있는가?'하는것이 아주 중요하다는 깨달음과 '희망과 소망을 주는 결말이어야한다'는 책임도 깨닫고 있던중이었는데, 저렇게 알콜중독같이 무겁고 암담한 현실문제에 대해 희망적인 결론을 낸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써야 하는 것인지 궁금했었는데. [내가 듣고 싶은 말]과 [ 달밝은 밤]을 비교해주신것과 나의 어린시절에 대한 회상으로
'아, 이렇게 쓰면 되겠구나.'하는 답을 얻게 되어서 참 기뻤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으면서 저의 어린시절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살아온 삶이 그림책의 소재구나. 그림책을 쓸 수 있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는 삶의 현장 속에 나를 두셨구나. 『달 밝은 밤』보다 더 리얼한 이야기가 바로 내가 살아온 삶 속에 있었네.'
그리고 이제 조금 알 것 같습니다.
현실을 단순히 고발하거나 아이의 아픔과 감정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도 아이가 무엇을 붙잡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그림책 쓰기가 어떤것인지를.
'그림책은 세상을 보여주는 창이다. 자기 집밖에 모르는 아이들에게 그림책은 세상이 어떤 곳인지, 나는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현실의 문제를 고발하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특히 아직 세상을 잘 모르는 아이들에게 절망적인 현실을 보여준 뒤 아무런 대안도 제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이들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
이 글이 칼이 되어 제 가슴에 꽂혔습니다.
그동안 가랑비에 옷 젖듯이 젖어들고 있었지만
이 글을 읽으면서 더 질실하게 다가오네요.
'진실로 현 교수님은 상처받은 아이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해주는 진짜 아이들을 사랑하는 분이구나'
그리고 진짜 아이들을 위한다게 어떻게 하는것인지, 특히 아픈 아이들을 위한다는 사실주의
아동문학가들을 보는 눈이 조금씩 열려지는게
너무 기쁘고 감사합니다.
이제 서서히, 그동안 제가 살아왔던 이야기들을 그림책으로 담아내는 시도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 비평의 글이었습니다.
곽서연2026-08-18 09:10
"All a child needs is one adult to believe in him"
라는 말은 슐로모 칼리바흐가 한 말인데
" 아이에게는 자신을 믿어주는 어른 한 사람만 있어도 된다."
로 번역이 될 수 있습니다.
아이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림책은 이런 역할을 해야 된다고 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라는 말씀을 실현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라는 말은 슐로모 칼리바흐가 한 말인데
" 아이에게는 자신을 믿어주는 어른 한 사람만 있어도 된다."
로 번역이 될 수 있습니다.
아이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림책은 이런 역할을 해야 된다고 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라는 말씀을 실현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누구를 위한 그림책인가?
『달 밝은 밤』 과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 같이 보기
현대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중 하나는 단연 "나" 자신이다. 이는 성경이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디모데후서 3:1-2)라고 말한 현상과 맞닿아 있다. 최신 감각을 뽐내는 광고는 "내 마음대로", "끌리는 대로" 살라고 부추긴다. 그림책조차 "내 감정"을 읽어주는 것이 유행이며, "나다움"이 세상의 어떤 가치보다 우위에 있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세상은 미디어를 통해 책을 통해 "내 감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그 어느 때보다 크게 소리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이 "내 감정"이 되는 경향이 있다. 이를 "주정주의(主情主義)"라고 한다. 주정주의란 한마디로 '이성'이나 '의지'보다 '감정(정서)'을 인간의 중심이 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보는 태도나 입장을 말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누구나 알고 있다. 모든 감정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옳은 것"이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나의 사건에서도 모든 사람의 입장과 상황이 제각기 다르기에 느끼는 감정이 다 다르다면, 우리는 무엇을 옳다고 정의할 수 있는가? 우리의 양심이 '감정의 좋음'이 곧 '옳음'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현시대에는 이미 많은 이들의 마음의 왕좌에 "감정"이 앉아있는 듯하다.
이러한 주정주의적 태도는 가정의 해체에도 주요한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한다. 결혼이 신성한 '언약' 위에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 위에 세워지는 '계약'과 같은 위치로 전락하기 쉽기 때문이다. 주정주의가 지배하는 결혼 생활에서는 '내 감정'이 중요한 기준이 된다. 결혼 생활이 서로 믿고, 사랑하고, 책임을 다하며 인내하는 관계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내 감정이 행복하지 않다면 이 가정을 유지할 이유가 없다’는 결론에 너무나 쉽게 도달하게 만든다. 문제는, (설령 그것이 고통스러운 관계를 끝내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을지라도) 그 결론의 여파가 당사자들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이 '사랑'이라고 믿었던 관계에서 태어난 자녀들이, 그 모든 아픔과 상처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나보면, 그 고통스러운 결과를 직접 목격하게 된다. 표현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 문제행동을 보이는 아이들 중 물론 부모의 교육 부재도 있지만, 깨어진 가정의 상처가 아이들의 행동으로 드러나는 것을 너무나 자주 본다. 부모는 자신의 '행복'을 찾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말할지라도, 그 선택의 결과를 감당해야 하는 아이들에게는 실로 우주가 무너지는 것과 같은 경험일 수 있다. 그리고 이 불신과 불안, 미움과 아픔이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여기, 깨어진 가정을 그린 그림책이 있다. 전미화 작가의 『달 밝은 밤』이다. 이 책의 표지를 펼치면 한 쪽에는(뒷 표지) 달과 함께 어둠이, 한 쪽에는(앞표지) 달과 함께 빛이 존재하고 머리가 덥수룩한 맨발의 사람이 한 손으로 달을 짚고 있다. 무표정한 얼굴에 머리카락을 그리다 번진듯한 물감 얼룩이 얼굴의 어둠을 표현하는 듯하다. 속표지에는 표지에 나왔던 아이가 고개를 무릎에 파묻고 팔은 무릎을 감싸 안고 쪼그려 앉아있다. 옆에는 사진 혹은 그림으로 보이는 두 개의 종이가 바닥에 떨어져있다.
첫 장면은 “아빠는 비틀거린다. 어제도 그랬다.”라는 짧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배경은 하얗고 오른쪽에 아이가 감당하기에 너무 커 보이는 비틀거리는 아빠와 이를 부축하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다음 장면엔 아이가 쪼그려 앉아 달을 보고 있고, 벽처럼 보이는 어두운 부분에 문장이 이어진다. “엄마가 한숨을 쉰다. 나는 달을 본다.” 뒤에 이어지는 장면들은 아빠는 밥 대신 술을 먹고 술에 취해 바보 같이 웃는 모습이 크게 클로즈업 되어 있다. 잇따른 아빠의 등장이지만 아빠의 얼굴은 가려지거나 잘려져서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아빠가 집에 있는 날이 계속됐다.” 하단에 술병들이 늘어져 있는 것을 보여줌으로 아빠가 계속 집에 계신 것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보여주는 듯하다. “엄마가 늦게 들어와 잠만 잤다.” 처음으로 엄마가 등장한다. 엄마는 뒤돌아 누었고, 엄마를 뒤에서 안은 아이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미소가 보인다. 아무 것도 없는 흰 배경이 아무 것도 없는 집의 가난을 보여주는 듯도 하고, 아니면 아이의 세상에서 중요하게 보이는 것들만 보여주는지도 모르겠다. “엄마 아빠가 싸우는 밤이면 나는 달을 본다.” 어두운 하늘에 노랗게 뜬 달은 달무리도 보이지 않고 어둠 속에 덩그러니 떠있으며 마치 눈물을 흘리면 그림이 번지듯 번져있다. “달도 나를 본다.” 이후 엄마는 떠났고 이제 가족은 더 이상 함께 밥을 먹지 않는다. 엄마가 떠난 날 밤 “다시는 술을 먹지 않겠어. 걱정 마. 엄마를 데리고 올 거야!”라고 아빠가 크게 소리치는 장면에서는 주인공 아이는 주먹을 쥐고,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라 있다. 아빠는 술을 끊겠다고 했지만 그 뒤에도 아빠의 손에는 여전히 술병이 들려있다. 시간이 흐르고 아이는 매달 돈을 보내주며 곧 데리러 오겠다는 엄마도 술을 끊겠다는 아빠도 이젠 더 이상 믿지 않는다. 아이는 셋이서 행복하게 찍은 가족사진을 찢어버린다. 그리고 처음으로 아이의 얼굴이 정면으로 클로즈업 되며 “나는 나를 믿을 것이다.”라며 결심에 찬 얼굴이 그려져 있고, 마지막 장면은 앞부분에 달이 빛이 없이 표현된 것과 달리 마치 달이 해처럼 밝아서 주변을 환하게 비추는 듯하게 그리며 “달과 함께 살아갈 것이다”라고 마무리 된다.
이 작품을 처음 만났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 표지의 아름다운 노란색과 달리, 내용은 처참한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 사실주의 그림책이 보여주는 현실이 우리 주변에 실재한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미숙한 아이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이 "나는 나를 믿을 것이다"라는 것일 수밖에 없음도 이해한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질문하게 된다. "이 아이는 어떤 어른으로 자라게 될까?“
누군가는 이 책의 결말을 아이의 “용기”와 “주체적 의지”가 발현된 것이 아닌가? 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나는 나를 믿을 것이다”는 건강한 자립도 주체성의 발현도 아니다. 이는 ‘아무도 믿을 수 없으니, 나만 믿겠다.“라는 불신을 기반으로 한 결심일 뿐이다. 세상을 '신뢰'가 아닌 '불신'을 기반으로 살아가기로 배운 아이는, 타인과 건강한 관계를 맺는 법을 배우기 극히 어렵다. "나를 지킬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믿음은, 세상을 '적' 아니면 '이용 대상'으로 보게 만들 수 있으며, 이는 사회적 고립이나 반사회적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심리적 토대일 뿐이다.
이 결론은 앞서 말한 '감정'만 남은 결론이다. 세상에 대한 불신과 미움, 분노 속에서 유일하게 붙잡을 수 있는 것이 '나'와 '나의 감정'뿐인 상태. 책에서는 “달과 함께 살아갈 것이다.”라고 했지만, 달은 생명체도 아니고 이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존재이다. 결국 이 책이 아이에게 주는 최종 메시지는 "어쩔 수 없는 너의 감정이(불신, 미움, 분노) 옳다."는 것, 즉 이 글의 서두에서 비판했던 '주정주의'의 또 다른 이름이다.
아이들에게 그림책은 세상을 보여주는 “창”이다. 아직 가정 밖의 세상을 모르는 아이들에게 그림책은 세상이 어떠한 곳인지, 나는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문제는 이 중요한 "창"이 아이들에게 줄 영향을 깊이 고려하기보다, 작가의 예술 활동의 일부로만 치부되며 무책임하게 창작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지울 수가 없다. 아마도 작가는 현실에도 존재할 법한 이 알코올 중독자 아빠와 집나간 엄마의 “무책임함”을 우리 사회에 고발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이 대안 없는 고발과 주정주의가 어린 독자들에게 무책임한 행위가 아닌가 되묻고 싶다.
물론 세상은 아름답지만은 않다. 깨어진 가정은 늘어가고, 세상에는 전쟁과 기근이 끊이질 않고 살인, 간음, 탐욕 같은 죄가 만연하다.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어두울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 세상을 전혀 모르는 아이들에게 세상의 어두운 면을 필요 이상으로 강조하거나(세상이 어떠한 곳인지), '나'의 소중함을 '나의 감정'이 소중하다는 의미로 오해하게 만들며(나는 누구인지), '교육적'혹은 ‘긍정적’메시지를 의도적으로 기피하는 흐름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줄 깊은 고민이 부재한 것은 아닌가? 아이들에게 좋은 방향을 제시하고 무엇이 옳은지를 알려주는 것은 불필요한 것인가? 긍정적인 메시지는 너무 진부한가? 오히려 이러한 결론 없는 그림책의 메시지들이 결국 아이들 인생을 불행의 악순환으로 이끌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이 세상에서 앞으로 살아가야 할 아이들에게 어른으로서의 책임은 무엇일까? 무엇을 주어야 이 아이들이 만만치 않은 세상에서 단단하고 멋지게 자신의 삶을 잘 살아갈 수 있을까? 교육자나 아동 관련 종사자들은 누구나 아이들에게 늘 좋은 것을 주고 싶어 한다. 아이들에게 깨어진 가정이 아니라,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가정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 모습대로 살도록 독려하고 싶을 것이다. 나 역시 그것이 가장 이상적인 접근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만약 그런 깨어진 가정의 아이라면, 그처럼 완벽하게 행복한 가정의 모습이 오히려 신기루처럼 느껴지지는 않을까? 실제로 그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무엇일까? 어른들이 읽으면 어린 독자들이 이 책을 읽을까봐 놀라고 충격을 받는 책이지만 『달 밝은 밤』과 비슷한 현실을 마주한 아이들은 이 책에 몰입되어 이 책의 결론을 가슴에 담지 않을까?
그 대안을 고민하고 있을 때 또 하나의 그림책을 만났다. 허은미 작가의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이다.
표지에는 하얀 배경에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책상에 엎드려 있는 아이가 그려져 있고, 피부는 화가 나서 달아오른 듯 불그스름하다. 발로 찬 듯 실내화는 벗겨져 있고, 흰 옷과 의자에는 아이의 마음처럼 낙서가 되어있다.
면지로 넘어가면 왼쪽 하단에는 일기장처럼 곧 비가 올 것 같은 꾸물대는 날씨에 대한 묘사가 적혀있고, 오른쪽 면에는 대추나무에서 떨어지는 대추들과 함께 주인공처럼 보이는 아이가 색 없이 라인으로만 그려져 있다. 왼쪽의 묘사 마지막 “창문도 덜컹대고”에 이어 아이 옆에는 “내 마음도 덩달아 덜컹거린다.”라고 적혀 있다. 속표지 왼쪽에는 “해바라기 작은도서관 친구들에게”라는 헌사가, 속표지 제목 위에는 비구름이, 아래에는 시골집과 강아지, 달팽이가 그려져 있다.
첫 장면은 할머니와 아빠의 잔소리에 화가 난 듯 주인공 동구가 집을 뛰쳐나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학교에 갔더니 선생님마저 잔소리다. 친구의 물음에 대답한 것뿐인데 오해를 받고 잔소리를 들은 것이다. 텍스트 하단에는 주인공이 억울해하는 표정이 그려져 있고, 하늘에서는 연필이 비처럼 쏟아져 동구를 공격하는 것만 같다. 이어지는 오른쪽 면을 꽉 채운 동구는 목이 꺾인 채 억울해서 눈이 튀어나올 것만 같다. 아침부터 엉망진창인 동구의 마음이 그대로 엉망진창 낙서로 표현되어 있다.
학교가 끝나고 해바라기 도서관에 갔더니, 맨날 오던 아이들이 가족 캠프를 가서 오지 않았는데, 설상가상으로 동생이 읽어달라는 책은 또 엄마 이야기이다. 앞서 등교 장면에 할머니와 아빠만 있었던 것으로 보아, 동구는 엄마가 계시지 않는 모양이다. 동생은 천진난만하게 "왜 나만 엄마가 없냐"며, 읽어달라고 한 불곰책처럼 엄마가 숲으로 도망간 거냐고 물어본다. 바로 그때 친구 지혜가 “야, 그게 뭐 어때서? 난 아빠가 없는데....”라고 답하고, 해바라기 선생님은 눈을 찡긋하며 “얘들아, 난 엄마, 아빠 다 없거든?”이라고 말한다.
간식 시간, 동구는 심술이 잔뜩 나서 동생과 지혜에게 짜증을 내고 밖으로 나간다. 친구와 선생님의 말이 동구의 기분이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 것 같다. 하늘에서는 비가 쏟아지고, 동구의 눈앞은 흐릿해지면서 심술은 울음으로 번진다. 다음 장면은 거칠게 내리는 비가 양쪽 면을 가득 채우고, 그 사이사이에 "우아아아앙”이라는 글자가 보여 동구가 소리치며 울고 있음을 알게 한다. 비가 그친 다음 장면에서 동구는 고개를 숙이며 걸어가고, 엉켜져 있는 실타래 같은 마음이 그 위에 표현되어 있다. 그때 해바라기 선생님이 달려 나와 동구의 머리를 털어주고 옷을 닦아주며, 따뜻한 관심의 말과 함께 집으로 곧장 가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등을 어루만져주는 선생님한테서 문득 엄마 냄새가 난다.
해바라기 도서관을 나온 동구는 아까와는 달리 얼굴 표정도 밝아지고 피부색도 붉은 기가 점점 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집에 가는 길에 만나는 사람들이 동구를 평소와 다르게 대해주고, 동구는 이상하면서도 기분이 좋다. 발밑에 있는 돌을 걷어차며 집으로 가는 동구의 얼굴에는 미소가 보이고, 속표지에 있던 비구름과는 달리 집 위에는 무지개가 떠 있다.
그 다음 장면에서는 여러 개의 초와 폭죽이 양쪽 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동구의 생일날이었던 것이다. 친구와 동생은 케이크를 먹고, 집에는 떡볶이, 옥수수, 치킨 등 먹을 것이 한 가득이다. 이어지는 장면은 동구의 아빠가 동구를 꼬옥 껴안아주는 장면과 함께, 아빠가 동구가 태어나던 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엄마, 아빠는 너를 낳고 참 기뻤어. 을매나 좋았는지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지. 아들 생일 까먹는 못난 아빠를 만나...” 이때 오른쪽 면에 작게 그려진 서랍장 위에는 베트남 전통 모자를 쓴 엄마로 보이는 사람의 액자가 놓여 있다. 다음 장면에는 밝은 표정을 한 동구의 얼굴이 한 면을 가득 매우고, 아빠는 “미안하다, 동구야! 사랑한다, 우리아들!” 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동구가 "지금까지 백 번도 넘게 듣고 싶던 말"이다. 마지막 장면은 동구의 마음처럼 맑게 갠 하늘과 푸른 잔디 위에서 동생, 친구와 힘차게 축구를 하는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작가 소개 위에 작게 그려진 "숨은 이야기"는, 이 모든 것은 우연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아빠가 동구의 생일을 위해 해바라기 선생님과 미리 연락을 한 장면과, 선생님은 비 맞은 동구를 안아주며 몰래 "오늘은 동구가 태어난 날!"이라고 적힌 포스트잇을 붙여 주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림책 속에 나타난 베트남 전통 모자를 쓴 인물의 액자와 나이가 많아 보이는 아빠의 모습에서 주인공 동구는 다문화 가정의 아이로 보이며, 엄마가 계시지 않는다. 엄마의 부재의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엄마의 부재로 인한 아픔과 상처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 동구 생일날의 에피소드에 녹아져 있다.
앞서 언급했던 질문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달 밝은 밤』은 답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반면,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에서는 분명히 제시하는 방향이 있다. 이 책은 주인공의 감정을 받아주면서도, 그 감정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돕는다. 그림책 안에 등장하는 여우비처럼, 쏟아지는 비에 북받쳐 울음을 터트린 동구의 이 감정도 곧 지나갈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리고 자기가 잘 인식하지 못했던 주변인들에 대한 감사를 느끼게 하고, 아빠의 사랑을 확인하며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한다. 아마 동구는 시련이 닥칠 때마다 자신을 사랑해준 사람들과 아빠의 사랑을 확인했던 순간들을 떠올릴 것이다. 이 책은 직설적인 교훈은 제시하지 않지만 “자신의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주변의 사랑과 관계를 통해 상처를 회복하며, 그 단단한 토대를 가지고 시련을 딛고 힘차게 살아가야 한다.”는 분명한 메시지가 담고 있다.
두 그림책은 '깨어진 가정'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졌다. 그러나 전자는 아이를 자기감정에 매몰되게 하고, 후자는 아이가 자기감정에서 빠져나오게 한다. 작가의 의도는 출판사 보도 자료에서 엿볼 수 있다. 『달 밝은 밤』의 경우는 다음과 같다.
“... 아이를 어루만지는 환한 달빛에는 작가가 어른으로서 주변의 어린이들을 향해 보내는 사과와 반성, 진실한 위로의 마음이 담겨 있다. 달은 외롭고 쓸쓸한 아이 곁에 마땅히 있어야 할 어떤 것이다. 성인 독자라면 작가와 함께 아이의 손을 잡고 우리가 달이 되어 주리라 다짐하게 된다는 데에 이 작품의 미덕이 있을 것이다. ... 『달 밝은 밤』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불행에 갇히지 않고 스스로 자라려는 아이의 씩씩한 결단을 응원한다.”
정말 그럴까? 나는 이런 실체 없는 “위로”와 “응원”에 갸우뚱하다. 위로란 따뜻한 말이나 행동으로 괴로움을 덜어주거나 슬픔을 달래주는 것이고, 응원이란 힘을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인데, 이 책의 어떤 메시지가 이 아이를 위로하고 응원하는 걸까? 이 출판사 보도자료도 공감이 되지 않지만, 그렇다면 “어린이 독자는?”이라는 질문이 따라온다. 어린 독자의 반응에 대한 언급은 없는 걸로 보아 어린 독자를 염두에 두지 않은 것 같다. 이 그림책의 결말을 읽으면 마지막 장면이 보여주는 환한 달빛과는 다르게 알 수 없는 답답함과 함께 절망의 어두움이 덮친다.
그렇다면,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어떨까? 출판사의 책 소개는 이렇다.
“외롭고 상처받은 아이에게 힘이 되어 줄 마법 같은 말 한마디를 찾아 나선” 작가의 진심이 느껴졌다. 주인공 동구는 실제인물과 허구인물이 섞인 캐릭터라고 한다. 작가는 '해바라기 작은도서관'으로 대표되는 실제 현장의 아이들을 보며 깊이 고민했고, 그들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을 것이다. '너희들이 아직은 잘 모르고 지금의 아픔이 너무 크겠지만, 너를 생각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있어. 그리고 부족해 보이더라도 부모님은 너희를 정말 정말 사랑한단다.‘
동구 아빠처럼 표현이 서툰 부모들이 용기 내어 이 말을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혹은 부모가 그 말을 못 해준다면 그림책으로 대신하고 싶었던 마음이리라. 마지막 '숨은 이야기'를 보았을 때는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달 밝은 밤』의 출판사가 말한 '우리가 달이 되어 주리라 다짐'하게 되는 것은, 오히려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을 읽은 후이다. '나도 아이들에게 해바라기 선생님 같은 사람이 되어야지.' 하고 말이다.
정리하자면, 『달 밝은 밤』이 보여주는 창은, 아이가 처한 절망적인 현실을 그대로 비추고, 결국 "나는 나를 믿을 것이다"라는 결론으로 이끈다. 이것은 상처에 대한 공감처럼 보이지만, 실은 아이를 자기 연민과 고립된 '주정주의'라는 감옥에 홀로 가두는 또 다른 방임일 수 있다. 아이가 붙잡은 '달'은 실체가 없으며, 그 결심은 세상을 살아갈 힘이 아닌, 세상을 향한 불신과 분노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반면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아이의 고통스러운 감정을 똑같이 끌어안으면서도, 그 창을 활짝 열어젖힌다. 창밖에는 아이를 위해 보이지 않게 따뜻하게 연대하는 어른들이 있고, 서툴지만 결코 변하지 않는 부모의 사랑("사랑한다, 우리 아들!")이 존재한다.
이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어른들의 진정한 책임이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주어야 할 것은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하는 '눈'만이 아니라, 그 현실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사랑'이라는 단단한 토대이다. '네 감정이 옳다'고 말해주는 것은 쉽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전해야 할 메시지는, '네 감정이 어떻든, 너는 소중하며 사랑받고 있다'는 흔들리지 않는 진실이다. 이 절망적인 감정의 고리를 끊고 아이를 자기 연민의 늪에서 구해내는 것, 그 방법들을 고민하고 아이들에게 직접 손 내밀어 줄 수 있는 용기야말로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어른의 역할이자, 그림책 작가의 과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윤정민 | 성품 성교육, 생명 존중 교육 강사
캐릭터 애니메이션을 전공하고 10여 년간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세 자녀를 양육하며 다음 세대를 향한 마음을 품게 되어 강사의 길을 걷고 있으며, 현재 초·중·고등학교에서 성품 성교육, 생명 존중 교육, 그리고 그림책 수업을 통해 아이들과 소중한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2025년 『그림책세계관연구소』의 필수과정 <그림책의 세계관>과 <기독 신앙과 그림책 읽기> 과정을 이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