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의 세계관


[특별기고] 누구를 위한 그림책인가? ; 『달 밝은 밤』 과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 같이 보기

2026-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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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그림책인가?


『달 밝은 밤』 과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 같이 보기



현대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중 하나는 단연 "나" 자신이다. 이는 성경이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디모데후서 3:1-2)라고 말한 현상과 맞닿아 있다. 최신 감각을 뽐내는 광고는 "내 마음대로", "끌리는 대로" 살라고 부추긴다. 그림책조차 "내 감정"을 읽어주는 것이 유행이며, "나다움"이 세상의 어떤 가치보다 우위에 있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세상은 미디어를 통해 책을 통해 "내 감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그 어느 때보다 크게 소리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이 "내 감정"이 되는 경향이 있다. 이를 "주정주의(主情主義)"라고 한다. 주정주의란 한마디로 '이성'이나 '의지'보다 '감정(정서)'을 인간의 중심이 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보는 태도나 입장을 말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누구나 알고 있다. 모든 감정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옳은 것"이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나의 사건에서도 모든 사람의 입장과 상황이 제각기 다르기에 느끼는 감정이 다 다르다면, 우리는 무엇을 옳다고 정의할 수 있는가? 우리의 양심이 '감정의 좋음'이 곧 '옳음'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현시대에는 이미 많은 이들의 마음의 왕좌에 "감정"이 앉아있는 듯하다.

이러한 주정주의적 태도는 가정의 해체에도 주요한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한다. 결혼이 신성한 '언약' 위에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 위에 세워지는 '계약'과 같은 위치로 전락하기 쉽기 때문이다. 주정주의가 지배하는 결혼 생활에서는 '내 감정'이 중요한 기준이 된다. 결혼 생활이 서로 믿고, 사랑하고, 책임을 다하며 인내하는 관계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내 감정이 행복하지 않다면 이 가정을 유지할 이유가 없다’는 결론에 너무나 쉽게 도달하게 만든다. 문제는, (설령 그것이 고통스러운 관계를 끝내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을지라도) 그 결론의 여파가 당사자들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이 '사랑'이라고 믿었던 관계에서 태어난 자녀들이, 그 모든 아픔과 상처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나보면, 그 고통스러운 결과를 직접 목격하게 된다. 표현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 문제행동을 보이는 아이들 중 물론 부모의 교육 부재도 있지만, 깨어진 가정의 상처가 아이들의 행동으로 드러나는 것을 너무나 자주 본다. 부모는 자신의 '행복'을 찾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말할지라도, 그 선택의 결과를 감당해야 하는 아이들에게는 실로 우주가 무너지는 것과 같은 경험일 수 있다. 그리고 이 불신과 불안, 미움과 아픔이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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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깨어진 가정을 그린 그림책이 있다. 전미화 작가의 『달 밝은 밤』이다. 이 책의 표지를 펼치면 한 쪽에는(뒷 표지) 달과 함께 어둠이, 한 쪽에는(앞표지) 달과 함께 빛이 존재하고 머리가 덥수룩한 맨발의 사람이 한 손으로 달을 짚고 있다. 무표정한 얼굴에 머리카락을 그리다 번진듯한 물감 얼룩이 얼굴의 어둠을 표현하는 듯하다. 속표지에는 표지에 나왔던 아이가 고개를 무릎에 파묻고 팔은 무릎을 감싸 안고 쪼그려 앉아있다. 옆에는 사진 혹은 그림으로 보이는 두 개의 종이가 바닥에 떨어져있다.

첫 장면은 “아빠는 비틀거린다. 어제도 그랬다.”라는 짧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배경은 하얗고 오른쪽에 아이가 감당하기에 너무 커 보이는 비틀거리는 아빠와 이를 부축하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다음 장면엔 아이가 쪼그려 앉아 달을 보고 있고, 벽처럼 보이는 어두운 부분에 문장이 이어진다. “엄마가 한숨을 쉰다. 나는 달을 본다.” 뒤에 이어지는 장면들은 아빠는 밥 대신 술을 먹고 술에 취해 바보 같이 웃는 모습이 크게 클로즈업 되어 있다. 잇따른 아빠의 등장이지만 아빠의 얼굴은 가려지거나 잘려져서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아빠가 집에 있는 날이 계속됐다.” 하단에 술병들이 늘어져 있는 것을 보여줌으로 아빠가 계속 집에 계신 것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보여주는 듯하다. “엄마가 늦게 들어와 잠만 잤다.” 처음으로 엄마가 등장한다. 엄마는 뒤돌아 누었고, 엄마를 뒤에서 안은 아이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미소가 보인다. 아무 것도 없는 흰 배경이 아무 것도 없는 집의 가난을 보여주는 듯도 하고, 아니면 아이의 세상에서 중요하게 보이는 것들만 보여주는지도 모르겠다. “엄마 아빠가 싸우는 밤이면 나는 달을 본다.” 어두운 하늘에 노랗게 뜬 달은 달무리도 보이지 않고 어둠 속에 덩그러니 떠있으며 마치 눈물을 흘리면 그림이 번지듯 번져있다. “달도 나를 본다.” 이후 엄마는 떠났고 이제 가족은 더 이상 함께 밥을 먹지 않는다. 엄마가 떠난 날 밤 “다시는 술을 먹지 않겠어. 걱정 마. 엄마를 데리고 올 거야!”라고 아빠가 크게 소리치는 장면에서는 주인공 아이는 주먹을 쥐고,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라 있다. 아빠는 술을 끊겠다고 했지만 그 뒤에도 아빠의 손에는 여전히 술병이 들려있다. 시간이 흐르고 아이는 매달 돈을 보내주며 곧 데리러 오겠다는 엄마도 술을 끊겠다는 아빠도 이젠 더 이상 믿지 않는다. 아이는 셋이서 행복하게 찍은 가족사진을 찢어버린다. 그리고 처음으로 아이의 얼굴이 정면으로 클로즈업 되며 “나는 나를 믿을 것이다.”라며 결심에 찬 얼굴이 그려져 있고, 마지막 장면은 앞부분에 달이 빛이 없이 표현된 것과 달리 마치 달이 해처럼 밝아서 주변을 환하게 비추는 듯하게 그리며 “달과 함께 살아갈 것이다”라고 마무리 된다.

이 작품을 처음 만났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 표지의 아름다운 노란색과 달리, 내용은 처참한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 사실주의 그림책이 보여주는 현실이 우리 주변에 실재한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미숙한 아이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이 "나는 나를 믿을 것이다"라는 것일 수밖에 없음도 이해한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질문하게 된다. "이 아이는 어떤 어른으로 자라게 될까?“

누군가는 이 책의 결말을 아이의 “용기”와 “주체적 의지”가 발현된 것이 아닌가? 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나는 나를 믿을 것이다”는 건강한 자립도 주체성의 발현도 아니다. 이는 ‘아무도 믿을 수 없으니, 나만 믿겠다.“라는 불신을 기반으로 한 결심일 뿐이다. 세상을 '신뢰'가 아닌 '불신'을 기반으로 살아가기로 배운 아이는, 타인과 건강한 관계를 맺는 법을 배우기 극히 어렵다. "나를 지킬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믿음은, 세상을 '적' 아니면 '이용 대상'으로 보게 만들 수 있으며, 이는 사회적 고립이나 반사회적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심리적 토대일 뿐이다.

이 결론은 앞서 말한 '감정'만 남은 결론이다. 세상에 대한 불신과 미움, 분노 속에서 유일하게 붙잡을 수 있는 것이 '나'와 '나의 감정'뿐인 상태. 책에서는 “달과 함께 살아갈 것이다.”라고 했지만, 달은 생명체도 아니고 이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존재이다. 결국 이 책이 아이에게 주는 최종 메시지는 "어쩔 수 없는 너의 감정이(불신, 미움, 분노) 옳다."는 것, 즉 이 글의 서두에서 비판했던 '주정주의'의 또 다른 이름이다.

아이들에게 그림책은 세상을 보여주는 “창”이다. 아직 가정 밖의 세상을 모르는 아이들에게 그림책은 세상이 어떠한 곳인지, 나는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문제는 이 중요한 "창"이 아이들에게 줄 영향을 깊이 고려하기보다, 작가의 예술 활동의 일부로만 치부되며 무책임하게 창작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지울 수가 없다. 아마도 작가는 현실에도 존재할 법한 이 알코올 중독자 아빠와 집나간 엄마의 “무책임함”을 우리 사회에 고발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이 대안 없는 고발과 주정주의가 어린 독자들에게 무책임한 행위가 아닌가 되묻고 싶다.

물론 세상은 아름답지만은 않다. 깨어진 가정은 늘어가고, 세상에는 전쟁과 기근이 끊이질 않고 살인, 간음, 탐욕 같은 죄가 만연하다.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어두울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 세상을 전혀 모르는 아이들에게 세상의 어두운 면을 필요 이상으로 강조하거나(세상이 어떠한 곳인지), '나'의 소중함을 '나의 감정'이 소중하다는 의미로 오해하게 만들며(나는 누구인지), '교육적'혹은 ‘긍정적’메시지를 의도적으로 기피하는 흐름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줄 깊은 고민이 부재한 것은 아닌가? 아이들에게 좋은 방향을 제시하고 무엇이 옳은지를 알려주는 것은 불필요한 것인가? 긍정적인 메시지는 너무 진부한가? 오히려 이러한 결론 없는 그림책의 메시지들이 결국 아이들 인생을 불행의 악순환으로 이끌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이 세상에서 앞으로 살아가야 할 아이들에게 어른으로서의 책임은 무엇일까? 무엇을 주어야 이 아이들이 만만치 않은 세상에서 단단하고 멋지게 자신의 삶을 잘 살아갈 수 있을까? 교육자나 아동 관련 종사자들은 누구나 아이들에게 늘 좋은 것을 주고 싶어 한다. 아이들에게 깨어진 가정이 아니라,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가정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 모습대로 살도록 독려하고 싶을 것이다. 나 역시 그것이 가장 이상적인 접근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만약 그런 깨어진 가정의 아이라면, 그처럼 완벽하게 행복한 가정의 모습이 오히려 신기루처럼 느껴지지는 않을까? 실제로 그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무엇일까? 어른들이 읽으면 어린 독자들이 이 책을 읽을까봐 놀라고 충격을 받는 책이지만 『달 밝은 밤』과 비슷한 현실을 마주한 아이들은 이 책에 몰입되어 이 책의 결론을 가슴에 담지 않을까?

그 대안을 고민하고 있을 때 또 하나의 그림책을 만났다. 허은미 작가의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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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는 하얀 배경에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책상에 엎드려 있는 아이가 그려져 있고, 피부는 화가 나서 달아오른 듯 불그스름하다. 발로 찬 듯 실내화는 벗겨져 있고, 흰 옷과 의자에는 아이의 마음처럼 낙서가 되어있다.

면지로 넘어가면 왼쪽 하단에는 일기장처럼 곧 비가 올 것 같은 꾸물대는 날씨에 대한 묘사가 적혀있고, 오른쪽 면에는 대추나무에서 떨어지는 대추들과 함께 주인공처럼 보이는 아이가 색 없이 라인으로만 그려져 있다. 왼쪽의 묘사 마지막 “창문도 덜컹대고”에 이어 아이 옆에는 “내 마음도 덩달아 덜컹거린다.”라고 적혀 있다. 속표지 왼쪽에는 “해바라기 작은도서관 친구들에게”라는 헌사가, 속표지 제목 위에는 비구름이, 아래에는 시골집과 강아지, 달팽이가 그려져 있다.

첫 장면은 할머니와 아빠의 잔소리에 화가 난 듯 주인공 동구가 집을 뛰쳐나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학교에 갔더니 선생님마저 잔소리다. 친구의 물음에 대답한 것뿐인데 오해를 받고 잔소리를 들은 것이다. 텍스트 하단에는 주인공이 억울해하는 표정이 그려져 있고, 하늘에서는 연필이 비처럼 쏟아져 동구를 공격하는 것만 같다. 이어지는 오른쪽 면을 꽉 채운 동구는 목이 꺾인 채 억울해서 눈이 튀어나올 것만 같다. 아침부터 엉망진창인 동구의 마음이 그대로 엉망진창 낙서로 표현되어 있다.

학교가 끝나고 해바라기 도서관에 갔더니, 맨날 오던 아이들이 가족 캠프를 가서 오지 않았는데, 설상가상으로 동생이 읽어달라는 책은 또 엄마 이야기이다. 앞서 등교 장면에 할머니와 아빠만 있었던 것으로 보아, 동구는 엄마가 계시지 않는 모양이다. 동생은 천진난만하게 "왜 나만 엄마가 없냐"며, 읽어달라고 한 불곰책처럼 엄마가 숲으로 도망간 거냐고 물어본다. 바로 그때 친구 지혜가 “야, 그게 뭐 어때서? 난 아빠가 없는데....”라고 답하고, 해바라기 선생님은 눈을 찡긋하며 “얘들아, 난 엄마, 아빠 다 없거든?”이라고 말한다.

간식 시간, 동구는 심술이 잔뜩 나서 동생과 지혜에게 짜증을 내고 밖으로 나간다. 친구와 선생님의 말이 동구의 기분이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 것 같다. 하늘에서는 비가 쏟아지고, 동구의 눈앞은 흐릿해지면서 심술은 울음으로 번진다. 다음 장면은 거칠게 내리는 비가 양쪽 면을 가득 채우고, 그 사이사이에 "우아아아앙”이라는 글자가 보여 동구가 소리치며 울고 있음을 알게 한다. 비가 그친 다음 장면에서 동구는 고개를 숙이며 걸어가고, 엉켜져 있는 실타래 같은 마음이 그 위에 표현되어 있다. 그때 해바라기 선생님이 달려 나와 동구의 머리를 털어주고 옷을 닦아주며, 따뜻한 관심의 말과 함께 집으로 곧장 가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등을 어루만져주는 선생님한테서 문득 엄마 냄새가 난다.

해바라기 도서관을 나온 동구는 아까와는 달리 얼굴 표정도 밝아지고 피부색도 붉은 기가 점점 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집에 가는 길에 만나는 사람들이 동구를 평소와 다르게 대해주고, 동구는 이상하면서도 기분이 좋다. 발밑에 있는 돌을 걷어차며 집으로 가는 동구의 얼굴에는 미소가 보이고, 속표지에 있던 비구름과는 달리 집 위에는 무지개가 떠 있다.

그 다음 장면에서는 여러 개의 초와 폭죽이 양쪽 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동구의 생일날이었던 것이다. 친구와 동생은 케이크를 먹고, 집에는 떡볶이, 옥수수, 치킨 등 먹을 것이 한 가득이다. 이어지는 장면은 동구의 아빠가 동구를 꼬옥 껴안아주는 장면과 함께, 아빠가 동구가 태어나던 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엄마, 아빠는 너를 낳고 참 기뻤어. 을매나 좋았는지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지. 아들 생일 까먹는 못난 아빠를 만나...” 이때 오른쪽 면에 작게 그려진 서랍장 위에는 베트남 전통 모자를 쓴 엄마로 보이는 사람의 액자가 놓여 있다. 다음 장면에는 밝은 표정을 한 동구의 얼굴이 한 면을 가득 매우고, 아빠는 “미안하다, 동구야! 사랑한다, 우리아들!” 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동구가 "지금까지 백 번도 넘게 듣고 싶던 말"이다. 마지막 장면은 동구의 마음처럼 맑게 갠 하늘과 푸른 잔디 위에서 동생, 친구와 힘차게 축구를 하는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작가 소개 위에 작게 그려진 "숨은 이야기"는, 이 모든 것은 우연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아빠가 동구의 생일을 위해 해바라기 선생님과 미리 연락을 한 장면과, 선생님은 비 맞은 동구를 안아주며 몰래 "오늘은 동구가 태어난 날!"이라고 적힌 포스트잇을 붙여 주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림책 속에 나타난 베트남 전통 모자를 쓴 인물의 액자와 나이가 많아 보이는 아빠의 모습에서 주인공 동구는 다문화 가정의 아이로 보이며, 엄마가 계시지 않는다. 엄마의 부재의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엄마의 부재로 인한 아픔과 상처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 동구 생일날의 에피소드에 녹아져 있다.

앞서 언급했던 질문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달 밝은 밤』은 답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반면,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에서는 분명히 제시하는 방향이 있다. 이 책은 주인공의 감정을 받아주면서도, 그 감정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돕는다. 그림책 안에 등장하는 여우비처럼, 쏟아지는 비에 북받쳐 울음을 터트린 동구의 이 감정도 곧 지나갈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리고 자기가 잘 인식하지 못했던 주변인들에 대한 감사를 느끼게 하고, 아빠의 사랑을 확인하며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한다. 아마 동구는 시련이 닥칠 때마다 자신을 사랑해준 사람들과 아빠의 사랑을 확인했던 순간들을 떠올릴 것이다. 이 책은 직설적인 교훈은 제시하지 않지만 “자신의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주변의 사랑과 관계를 통해 상처를 회복하며, 그 단단한 토대를 가지고 시련을 딛고 힘차게 살아가야 한다.”는 분명한 메시지가 담고 있다.

두 그림책은 '깨어진 가정'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졌다. 그러나 전자는 아이를 자기감정에 매몰되게 하고, 후자는 아이가 자기감정에서 빠져나오게 한다. 작가의 의도는 출판사 보도 자료에서 엿볼 수 있다. 『달 밝은 밤』의 경우는 다음과 같다.

“... 아이를 어루만지는 환한 달빛에는 작가가 어른으로서 주변의 어린이들을 향해 보내는 사과와 반성, 진실한 위로의 마음이 담겨 있다. 달은 외롭고 쓸쓸한 아이 곁에 마땅히 있어야 할 어떤 것이다. 성인 독자라면 작가와 함께 아이의 손을 잡고 우리가 달이 되어 주리라 다짐하게 된다는 데에 이 작품의 미덕이 있을 것이다. ... 『달 밝은 밤』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불행에 갇히지 않고 스스로 자라려는 아이의 씩씩한 결단을 응원한다.”

정말 그럴까? 나는 이런 실체 없는 “위로”와 “응원”에 갸우뚱하다. 위로란 따뜻한 말이나 행동으로 괴로움을 덜어주거나 슬픔을 달래주는 것이고, 응원이란 힘을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인데, 이 책의 어떤 메시지가 이 아이를 위로하고 응원하는 걸까? 이 출판사 보도자료도 공감이 되지 않지만, 그렇다면 “어린이 독자는?”이라는 질문이 따라온다. 어린 독자의 반응에 대한 언급은 없는 걸로 보아 어린 독자를 염두에 두지 않은 것 같다. 이 그림책의 결말을 읽으면 마지막 장면이 보여주는 환한 달빛과는 다르게 알 수 없는 답답함과 함께 절망의 어두움이 덮친다.

그렇다면,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어떨까? 출판사의 책 소개는 이렇다.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충청도 작은 마을에서 만난 한 아이의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 작가 허은미는 외롭고 상처받은 아이에게 힘이 되어 줄 마법 같은 말 한마디를 찾아 나섰다. 

... 작가는 이런 편견으로 힘겨운 아이들이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씨앗 같은 이야기’를 완성했다. 어떤 일이 닥쳐도 끄떡하지 않고 힘차게 일어설 수 있는 그런 힘 있는 ‘천하무적의 말 한마디’를 싹 틔운 것이다.

 ..... 짜증나고 억울한 일뿐인 동구의 하루를 보노라면, 어쩐지 짠하고 안쓰럽다. 그러나 작가는 주인공 아이에게 섣부른 위로를 건네지 않는다. 그저 남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고, 동구 자신이 얼마나 사랑받는 존재인지 스스로 발견하길 지켜본다.


“외롭고 상처받은 아이에게 힘이 되어 줄 마법 같은 말 한마디를 찾아 나선” 작가의 진심이 느껴졌다. 주인공 동구는 실제인물과 허구인물이 섞인 캐릭터라고 한다. 작가는 '해바라기 작은도서관'으로 대표되는 실제 현장의 아이들을 보며 깊이 고민했고, 그들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을 것이다. '너희들이 아직은 잘 모르고 지금의 아픔이 너무 크겠지만, 너를 생각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있어. 그리고 부족해 보이더라도 부모님은 너희를 정말 정말 사랑한단다.‘

동구 아빠처럼 표현이 서툰 부모들이 용기 내어 이 말을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혹은 부모가 그 말을 못 해준다면 그림책으로 대신하고 싶었던 마음이리라. 마지막 '숨은 이야기'를 보았을 때는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달 밝은 밤』의 출판사가 말한 '우리가 달이 되어 주리라 다짐'하게 되는 것은, 오히려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을 읽은 후이다. '나도 아이들에게 해바라기 선생님 같은 사람이 되어야지.' 하고 말이다.

정리하자면, 『달 밝은 밤』이 보여주는 창은, 아이가 처한 절망적인 현실을 그대로 비추고, 결국 "나는 나를 믿을 것이다"라는 결론으로 이끈다. 이것은 상처에 대한 공감처럼 보이지만, 실은 아이를 자기 연민과 고립된 '주정주의'라는 감옥에 홀로 가두는 또 다른 방임일 수 있다. 아이가 붙잡은 '달'은 실체가 없으며, 그 결심은 세상을 살아갈 힘이 아닌, 세상을 향한 불신과 분노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반면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아이의 고통스러운 감정을 똑같이 끌어안으면서도, 그 창을 활짝 열어젖힌다. 창밖에는 아이를 위해 보이지 않게 따뜻하게 연대하는 어른들이 있고, 서툴지만 결코 변하지 않는 부모의 사랑("사랑한다, 우리 아들!")이 존재한다.

이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어른들의 진정한 책임이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주어야 할 것은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하는 '눈'만이 아니라, 그 현실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사랑'이라는 단단한 토대이다.  '네 감정이 옳다'고 말해주는 것은 쉽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전해야 할 메시지는, '네 감정이 어떻든, 너는 소중하며 사랑받고 있다'는 흔들리지 않는 진실이다. 이 절망적인 감정의 고리를 끊고 아이를 자기 연민의 늪에서 구해내는 것, 그 방법들을 고민하고 아이들에게 직접 손 내밀어 줄 수 있는 용기야말로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어른의 역할이자, 그림책  작가의 과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윤정민 | 성품 성교육, 생명 존중 교육 강사

캐릭터 애니메이션을 전공하고 10여 년간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세 자녀를 양육하며 다음 세대를 향한 마음을 품게 되어 강사의 길을 걷고 있으며, 현재 초·중·고등학교에서 성품 성교육, 생명 존중 교육, 그리고 그림책 수업을 통해 아이들과 소중한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2025년 『그림책세계관연구소』의 필수과정 <그림책의 세계관>과 <기독 신앙과 그림책 읽기> 과정을 이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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