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의 세계관


세상을 보는 멋진 방법? 레오 티머스의 『뭐가 보이니?』

2025-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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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멋진 방법? 레오 티머스의 『뭐가 보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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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는 눈을 동그랗게 뜬 곰이 머리에 안경을 얹고 독자들을 응시하고 있다. 책의 제목 “뭐가 보이니?” 아래에 “세상을 보는 멋진 방법에 대하여” 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면지는 곰의 털과 같은 짙은 갈색이다. 표제지에는 화려한 꽃과 식물들로 벽이 장식된 작은 집이 있고, 그 집안에 눈을 동그랗게 뜬 곰이 앉아 있다. 집 밖으로는 책, 가위, 망치, 털 뭉치가 막 내 던져진 참이다. 

본문 첫 화면에서는 그 사물들이 줄 맞춘 듯 나란히 땅바닥에 놓여져 있고, 곰은 그 가운데 서서 “내가 안경을 어디에다 뒀더라? 큰일이네, 안경이 없으면 잘 안보인단 말이야”라고 독백한다. (그런데 사실 그 안경은 곰의 머리 위에 있다.) 안경이 없다고 걱정하던 곰의 얼굴이 돌연 환해지면서 “기린 집에 두고 온 게 분명해.” “그나마 참 다행이지. 그리 멀지 않으니.”라며 기린 집을 향해 걷는다. 버섯을 밟아도 모르는 채 걷던 곰은 별난 반응을 보인다. 줄기가 양 옆으로 갈라진 나무를 보고 “오,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슴이 있네.”라고 하고, 잎이 쌓인 덤불을 보고는 “이 악어는 또 어디서 왔담?” 이라고 하고, 자기의 키보다 더 큰 바위를 보고는 “이건 또 뭐야? 코끼리잖아!”라고 하고, 두 송이의 큰 꽃이 달린 꽃나무를 보고는 “이 홍학도 못 보던 녀석이야.” 라고 한다. 드디어 곰은 간이침대에 눈을 감고 길게 누워있는 기린을 발견하고는, “세상에, 이것 봐, 뱀도 있네.”한다. 그 소리를 들은 기린은 오른 쪽 눈만 반쯤 뜨고는 뜨악한 표정으로 “응 뱀이라고? 난 뱀 아닌데? 라고 응답한다.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서 침대에 걸터앉아 곰을 내려다보고 ”나야, 나라고!“라고 하지만 곰은 ”뱀이 아니라니, 무슨 말이야? 안경이 없으니 앞이 잘 안 보여.”라고 답한다. 그러자 기린은 곰의 머리 위에 얹힌 안경을 집어 들어 곰에게 보여주고 “네 안경, 여기 있는데?”라고 말한다. 곰은 “미안, 안경이 없으니 앞이 잘 안 보여.”라고 응답한다. 그리고 안경을 쓴 곰은 반색하는 얼굴로 “기린이었구나!”라고 소리친다. 그리고는 아직 뜨악한 표정의 기린을 끌어안고 “역시 너희 집에 내 안경이 있을 줄 알았어.”라며 기뻐한다.

그리고는 기린에게 자신이 오는 길에  뿔 달린 사슴, 우툴두툴 악어, 커다란 코끼리, 긴 다리 홍학을 보았다고 자랑한다. 기린이 어리둥절하며 자신은 한 번도 못 보았다고 하자 곰은 이제 안경도 썼으니 바로 찾아서 보여주겠다고 하며 앞장선다. 그러나 꽃을 지날 때 기린은 홍학이 없다고 하고, 큰 바위를 보고는 코끼리가 안 보인다고 하고, 덤불 가운데에서 악어가 어디 있느냐고 하고, 나무를 지나면서 사슴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한다. 그러자 곰은 당황해 하며 “안경이 망가진 건가... ”라며 안경을 벗는다.  그리고는 앞을 가리키면서 “오, 기린아!,  저기 좀 봐! 이젠 너도 보이지! ”사자 세 마리!“라고 소리친다. 기린은 왼쪽 눈을 반 쯤 뜨고 곰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는데, 그곳에는 해바라기처럼 크고 화려한 꽃 세 송이가 피어 있다.   

책장을 덮으면 뒤표지의 하단에 안경을 쓴 곰의 얼굴 윗부분이 보이고, 표지 상단에는 “벨기에의 대표작가 레오 티머스가 들려주는 행복을 발견하는 곰의 특별한 이야기”라는 문구가 있으며(출판사의 카피인 듯 싶다.) 외국 유명 서평지의 리뷰 두 개가 소개되어 있다.: 커커스 리뷰의 “세상을 보는 새로운 방법을 찾는 것에 대한 유머러스하고 즐거운 이야기”, 스쿨 라이브러리 저널의 “레오 티머스라는 눈부시도록 위대한 영광의 인물을 아직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이다.

벨기에 작가인 레오 티머스(1970-)가 창작한 이 작품의 네덜란드어 원제는 [De bril van Beer] (곰의 안경)이며, 영문판에서는 [Bear’s lost glasses] (곰의 잃어버린 안경)이었는데 한국판에서 [뭐가 보이니?]라고 번역되었다. 매우 단순한 서사와 강렬한 일러스트레이션, 그리고 유머가 담긴 이 작품은 2세 이상의 유아에게 적합한 텍스트라고 소개되었지만 그 메시지와 세계관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ChatGPT에게 이 작품의 세계관을 물어보니, “... 단순한 이야기 속에 따뜻하고 철학적인 세계관”이라고 답하면서 이 책이 전달하는 세계관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번호는 내가 달은 것임)

“1. 세계는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이 메시지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는, 관점과 상상력이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를 보여줍니다. 잘못 보았다고 해서 항상 나쁜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2. 불완전함 속의 따뜻함과 수용: 이는 서로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공동체적 세계관을 보여줍니다. 실수조차도 관계를 풍요롭게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어요. 3. 상상력과 창의성의 가치: 곰이 물건을 잘못 보았지만 그 상상은 현실보다 더 기발하고 재밌습니다. 동물들이 그 상상 속에서 기쁨을 찾는 모습은 아이들의 창의적 사고와 유연한 사고방식을 존중하는 세계관과 연결됩니다.”

여기에서 2번, “서로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포용하는...”이라는 해설은 아마도 기린이 곰의 착각을 문제시 하지 않고 있음을 지적하는 듯하다. 

번역판에서 편집자의 해설은 여기에서 더 나아간다. 우선 원문에는 없었던 부제인 “세상을 보는 멋진 방법에 대하여”를 덧붙임으로써 곰이 안경 없이 세상을 볼 때 더 멋진 세상을 경험하게 되었음을 시사한다. 그리고 “이 책을 어린이와 함께 읽는 어른들에게” 주는 글에서는 곰의 보기를 착각(illusion)이라고 칭한다. 곰이 길에서 만난 사물들을 동물들로 착각했고, 기린이 곰의 머리 위에 있었던 안경을 찾아주자 곰이 “역시 내 안경이 네 집에 있을 줄 알았다”라고 하며 자신의 확신을 착각하며 기뻐하고 있다고 묘사한다. 그리고 사물을 동물로 착각하는 곰의 표정에서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고 평한다. 이 편집자의 글에서 ‘착각’이나 ‘행복’은 ChatGPT는 언급하지 않았던 단어이다. 덧붙여 그 편집자는 자신의 그림책관(關)을 피력한다. “성장기에 안경 없는 세상을 경험한 아이들은 지루하고 힘든 현실을 버티고 이겨 낼 힘을 얻습니다... 안경 없는 그 세상이 바로 그림책에 담겨 있습니다... 그림책 읽기는 세상의 즐거운 비밀들을 발견하게 해주고, 발견의 행복을 선사합니다.”

‘착각’, ‘상상력’, ‘창의력’을 언급하는 서평들을 보면서 나는 올리버 색스(Oliver Sacks)(1933-2015)[1]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라는 책이 생각났다. 이 임상 에세이에서 신경학적으로 ‘인식불능증’으로 진단받은 P씨는 시지각은 있지만 그것을 맥락적으로 해석하거나 통합하지 못하는 증상을 보이는 환자이다. 그는 시각 정보는 제대로 받아들이지만, 그것을 인식하는 데에 문제가 생겨 아내를 모자로 착각하기도 한다.[2] 물론 이 짧은 이야기에 담긴  곰의 착각 행위를 P씨와 같은 인식불능증이라고 판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곰의 착각도 일면 P씨의 증상과 유사한 점이 있어 보인다. 그는 안경 없이 나무를 사슴으로, 이파리 덤불을 악어로, 바위를 코끼리로, 꽃을 홍학으로, 기린을 뱀으로 인식한다. 그런데 사물을 동물로 착각한 것과는 달리, 동물인 기린은 동물인 뱀으로 인식한다. 누워있는 기린이 나무, 바위, 덤불, 꽃처럼 사물로서 인식된 것일까. 반면, 안경을 쓸 때는 시각과 인식이 정확하게 작동한다. 문제는 안경이 없을 때 인식되는 세상이 곰에게 더 행복감을 준다는 것이다.      

텍스트 읽기와 ChatGPT와 편집자의 해설에 기초하여 분석할 때 이 작품에 스며든 세계관은 상대주의, PC주의, 낭만주의라고 할 수 있다.

첫째, 상대주의란 모든 것은 절대적인 기준 없이 상황이나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나 철학적 입장이다. 쉽게 말해 진리, 가치, 미덕, 인식 등은 보편적이거나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사람이나 문화, 역사적 맥락 등에 따라 상대적이라는 의미이다.[3] 상대주의를 따르는 자들은 절대 진리 혹은 C.S. 루이스가 도(道)[4]라고 부르는 객관적 가치를 부인하고 각자의 판단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 시력을 교정하기 위해 사용하는 안경을 착용하지 않을 때에만 만족감과 행복을 누리는 곰의 이야기는 상대주의를 투영한다. 이는 고대 이스라엘 사사 시대의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좋은 대로 행하였더라.”(사사기 17: 6; 21: 25)의 현대판 우화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상대주의는 영적 혼란과 도덕적 타락을 낳으며 개인과 국가를 멸망으로 이끈다. 표제지에 그려진, 작은 공간의 집에 꽉 차게 들어앉은 곰의 모습은 진리의 기준 혹은 참조점(reference point)을 잃은 채 자신의 세상에 갇힌 존재를 은유하는 것이 아닐까.   

둘째, PC주의를 들 수 있다. PC란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의 줄임말로서 사회적 소수자나 약자에 대한 차별이나 편견을 줄이기 위해 언어와 행동을 조심하자는 문화나 태도를 말한다.[5] ChatGPT는 이 작품의 가치를 포용, 배려, 공동체성에서 찾는다. 아마도 이러한 판단은 곰의 착각에 침묵하는 기린의 태도에 기인한 것 같다. PC주의는  LGBTQ, 여성, 이민자, 유색인종, 비기독교인, 장애인 등 소수자를 배려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기초 철학은 인간애가 아니라 소위 문화막시즘이라는 좌파 이념이다. 그들은 PC를 강제하는 제도를 만들고, 그것에 반대하는 표현과 언론을 통제한다. 예컨대 편견과 혐오를 조장한다면서 동성애자들의 의학적(청소년기 AIDS의 창궐), 정신적 고통에 대한 정보 노출을 금하고 있으며,[6] 심지어 최근 영국에서는 아프간의 참전 영웅인 51세의 남자가 낙태 클리닉 근처에서 조용히 기도했다는 이유로 체포당하기도 했다.[7] 이렇듯 포용과 배려로 포장된 PC주의는  표현의 자유, 양심의 자유, 신앙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낭만주의를 들 수 있다. 낭만주의의 핵심요소는 감성, 상상력, 자연, 자아, 신비이다.[8]  일반적으로 어린이 도서인 그림책은 성인용 텍스트보다 낭만주의의 핵심요소들을 더 직관적이며 비유적으로 담아내는 경향이 있다. 즉,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없앤다거나 현실보다 환상의 세계를 더 이상적으로 표현한다거나 성인의 세계보다 어린이의 놀이의 세계를 아름답게 그리는 것 등이다. 이 이야기에서 곰은 마지막까지 안경을 벗고 바라보는 착각의 세계 안에서 희열과 만족감을 느낀다. 이처럼 곰의 착각을 미화하는 태도는 지나치게 낭만적인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서 우리는 기린의 역할을 진지하게 평가해 볼 필요가 있다. 곰이 “세상에, 이것 봐, 뱀도 있네.”라고 자기를 뱀으로 착각할 때, 곰이 자기를 끌어안고 “역시 너희 집에 내 안경이 있을 줄 알았어.”라고 흡족해 할 때, 그리고 꽃을 보고 “사자 세 마리!”라고 부를 때 기린의 한쪽 눈은 반쯤 감겨 있다. 즉, 곰의 착각을 바로잡아 주어야 할 결정적인 순간에 뜨악한 태도로 일관한다. 기린의 이러한 침묵이 과연 올바른 것일까. 잃어버린(?) 안경을 찾으러 기린의 집을 찾아가는 것으로 보아 기린은 곰의 절친한 친구라고 추론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혹시 곰의 자존심에 상처를 준다 할지라도 안경을 써야 세상을 정확히 인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 진정한 우애가 아닐까.     

어린이의 학습과 관련하여 이 이야기의 주제인 ‘보기’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다루어보자. 왜냐하면 ‘보기’ 행위는 인간의 학습과정과 어린이 교육에도 중요한 함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한 때 국내에서 베스트셀러이기도 했던 [생각의 탄생](1999/2007)에서 저자인 번스타인 부부(R. Root-Bernstein & M. Root Bernstein)는 생각의 도구 13가지[9] 중에서 첫 번 째로 ‘관찰’을 들고 있다. 그들은 “모든 지식은 관찰에서부터 시작된다.”(p. 58)라고 단언한다. 이때의 관찰은 수동적인 보기가 아니라 적극적인 관찰을 뜻한다. 저자는 만일 우리가 무엇을 주시해야 하는지, 또 어떻게 주시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한다면 주의력을 집중시킬 수 없고 사고(思考)도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관찰력이 생각하기와 얼마나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지를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의 실례를 들어 논증하였다. 예컨대, 빈센트 반 고흐의 목표는 자신이 본 것을 나중에 마음대로 재현할 수 있도록 잘 보는 능력을 갖는 것이었다고 한다. 또한, 글 작가들이 진짜처럼 보이는 플롯의 전개를 위해서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말과 몸짓과 행동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를 잘 관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관찰이란 시각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청각, 촉각, 후각, 미각 등 인간의 모든 감각에 해당한다. 저자들은 생각 도구의 마지막, 열 세 번째인 ‘통합’에서 “생각의 본질은 감각의 지평을 넓히는 것”(p. 396) 이라 주장하며 공감각(synthesis)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리고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경험할 때의 연상적인 공감각현상은 약 절반 정도의 어린이들과 성인 인구의 5-15%의 사람들에게서 일어난다고 보고한다. 그들은 성인과 어린이간의 이러한 차이는 어린 시절의 교육에 기인한다고 추측한다. 즉, 단일 감각적인 경험과 표현에만 집중된 기초교육이 어린이의 자연스러운 연상능력을 위축시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어린 아이는 선천적으로 관찰하기 좋아할 뿐 아니라 성인보다 관찰력이 뛰어나다. 아직 세상에 대한 고정관념과 선입견에 얽매이지 않는 아이들은 성인보다 세상을 훨씬 더 직관적으로, 주의 깊게 본다. 올해로 출간 20주년을 맞는 그림책 [넉점 반](윤석중 글, 이영경 그림)(2005)을 보자. 엄마의 심부름으로 옆집으로 시간을 물어보러 간 아이는 영감님으로부터 “넉 점 반이다”라는 답을 듣고 돌아오는 길에 물먹는 닭을 한참 서서 구경하고, 접시꽃 핀 담장 앞에서 개미 떼를 구경하고, 어디론가 날아가는 고추잠자리를 따라가고, 꽃밭에서 분꽃을 따고 불어보느라 해가 져서 돌아와서는 엄마에게 “엄마 시방 넉 점 반이래”라고 소리친다.

출근길에 아이의 손을 잡고 종종 걸음으로 전철역을 향해 가는 엄마의 모습을 그린 [Wait](A. 포티스 글, 그림)(A. Portis)(2015)라는 작품도 있다. 아이는 엄마의 손에 끌려가면서도 길에서 마주치는 동물과 사람들과 교감한다. 아이는 쪼그리고 앉아 강아지와 눈을 맞추고, 공사장의 레미콘 트럭 아저씨와 인사하고, 오리에게 빵을 주고, 아이스크림 트럭 아저씨와 눈을 맞추고, 어항 속의 금붕어에 놀라워하고, 관목 속 나비를 찾아 손가락에 올려 보고, 입을 크게 열어 떨어지는 빗방울을 맛본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더 조급해진 엄마는 전철을 타기 위해 급히 계단을 올라가고, 전철 출입문이 열리는 순간, 아이는 전철 안으로 들어가려는 엄마의 치마 자락을 끌어당기면서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킨다. 어느덧 비가 개어 맑은 하늘에는 쌍무지개가 걸려있고, 멈춰선 엄마는 아이를 안고 “Yes, Wait.”라며 아이와 함께 빌딩 위의 쌍무지개를  경탄의 눈빛으로 바라본다. 

다시 강조하건데, 과학적으로나 경험적으로 인간이 세상을 학습하는 가장 기초적인 도구는 상상력이 아니라 ‘관찰’이라고 할 수 있다. 사물을 관찰하고 그것의 이름을 익히면서 인간 아기는 세상을 배워간다. 아기가 처음 습득하는 단어가 사물의 이름이라는 것은 신학적으로도 함축하는 바가 크다. 하나님께서 최초의 인간 아담에게 창조세계를 정복하고 지배하라는 사명을 주신(창 1:28) 후 처음 주신 과제는 짐승의 ‘이름 짓기’였다. 아담은 하나님께서 그에게로 데려온 모든 짐승들에게 이름을 지어줌(창 2: 19)으로써 창조 세계의 청지기직을 시작하게 된다. 이름 짓기는 단순한 명칭이 아니라 존재의 의미, 정체성, 소망을 부여하는 것이므로 창조세계를 잘 다스리기 위한 선행 과제가 되었을 것이다. 문득 아담이 짐승들에게 붙여준 이름은 그들의 외모만이 아니라 촉각, 후각, 청각, 미각(?) 등 그의 감각을 총동원한 사인(sign)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번역본의 편집자는 이 그림책을 읽고 부모와 자녀가 역할극을 해 볼 것을 추천하고 있다. 손쉬운 독후 활동이지만 여기에서 이름 바꿔 부르기가 아이들에게 어떤 유익을 줄까. 상상력? 창의력? 차라리 아이와 함께 밖에 나가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세계를 즐겨보자. 생명이 약동하는 이 계절, 길가에 솟아난 한해살이 들풀과 들꽃을 찾아보고, 다투어 피는 꽃들의 향기도 맡아보고, 하루가 다르게 진초록으로 물들어가는 나뭇잎도 만져보고, 새들의 명랑한 노랫소리에도 귀 기울여보자. 가끔은 시간을 내어 수족관에도 가보자. 유리벽 안에서 유유히 헤엄치고 있는 수중 동물들의 형색은 놀랍다 못해 경이롭기까지 하다. 세상 어느 디자이너의 솜씨가 이처럼 독창적일 수 있을까. 기회가 된다면 칠흑같은 밤, 무한대의 우주에서 빛나는 별들의 노래도 들어보자. 그 별들은 약 4000년 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의 징표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광대하고 장엄한 아름다운 창조세계보다 더 놀라운 소식이 있다. 하나님께서 자신이나 천상의 존재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무한한 우주 공간에서 한낱 먼지에 지나지 않는 우리를 위해 이 모든 것을 지으셨다는 것이다. 창조의 정점에 우리가 있다. 그래서 시편 저자는 이렇게 노래했나보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주의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들과 보복자들을 잠잠하게 하려 하심이니이다



  


[1] 올리버 색스는 신경학 전문의로서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옥스퍼드 퀸스 칼리지에서 의학 학위를 받고 미국으로 이주하여 샌프란시스코와 UCLA를 거쳐 미국에서 신경학적 장애를 앓는 사람들에 관한 임상 경험을 문학적인 글로 남긴 사람이다. 이 작품이 임상보고서가 아니라 문학으로서 인정받는 이유는 인간에 대한 존재론적 성찰을 하도록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장애 속에서도 인간의 정체성과 존엄성은 유지되며, 인간은 단순히 기능적 존재 이상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것이다. 그의 자서전과 같은 [Awaking](깨어나기)라는 작품은 로버트 드 니로가 주연한 [사랑의 기적]으로 영화화되기도 하였다.

[2] https://chatgpt.com/c/67f70a76-22e8-8010-b369-2c2b4d5a64d1

[3] ChatGPT

[4] C.S. Lewis 는 그의 책 [인간폐지](1942)에서 이미 유럽에서 부상한 상대주의에 대항하여 절대적 가치가 인간 본연의 모습 안에 드러나 있다고 주장하며 이것을 ‘도’라고 불렀다.

[5] ChatGPT

[6] (376) 차별금지법, 이미 시작된 충격적인 미래 - YouTube

[7] (376) 영국, 침묵 기도했다는 이유만으로 체포 @CGN월드뉴스 (2025.04.09) - YouTube

[8] Chat GPT

[9] 13가지 생각의 도구는 관찰, 형상화, 추상화, 패턴인식, 패턴형성, 유추, 몸으로 생각하기, 감정이입 차원적 사고, 모형만들기, 놀이, 변형, 통합 이다.

  


현은자 |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 명예교수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 명예교수이며 아동문학과 그림책 평론 작업을 하고 있다. 미국 University of Michigan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1989년부터 2023년까지 성대 아동청소년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2021년부터 웹진 <그림책 베이직>에 '그림책의 세계관' 칼럼을 연재하고 있으며, 성균관대학교 생활과학대학연구소 부설 <그림책 전문가 과정>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그림책의 세계관', '기독 신앙과 그림책 읽기'를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기독교 세계관으로 아동문학보기>, <그림책의 세계관>, 공저로는 <그림책의 이해>, <그림책의 그림 읽기>, <세계 그림책의 역사>, <어린이교육전문가가 엄선한 100권의 그림책>, <신앙이 자라는 그림책 읽기>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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