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의 세계관


우리 가족은 왜 여기 없을까? 『가족의 모양』

2025-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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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은 왜 여기 없을까?  『가족의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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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일종의 정보그림책이라고 할 수 있다. 각 화면마다 한 아이가 등장하여 자신의 가족(?)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성만을 놓고 볼 때 볼로냐 라가지 상을 수상하였던 강경수 작가의 『거짓말같은 이야기』(2011)라는 작품과 유사하다.『거짓말같은 이야기』에서는 화가가 꿈인 대한민국의 소년 앞에 전쟁과 빈곤으로 고통받고 있는 제 3세계의 아이들이 한 명씩 나타나 자신의 비참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주인공은 그들의 이야기에 충격을 받은 나머지 “거짓말이지?”라고 소리치고, 친구들은 모두 “아니, 거짓말 같은 우리의 진짜 이야기란다.”라고 답한다.  

그러나 전미화 작가의 『가족의 모양』의 메시지와 분위기는 『거짓말같은 이야기』와는 사뭇 다르다. 표지에는 볼에 홍조를 띠고 있는 아이가 자고 있는 고양이를 품에 안고 독자를 응시하고 있다. 뒤표지에는 12번째 화면에 등장하는 여아의 모습과 “모양은 달라도 마음은 하나 우리가 만들어가는 가족이야기”라는 문구가 있다. 면지에는 표준국어대사전의 ”가족“이라는 단어의 정의가 다음과 같이 인용되어 있다. “[명사]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 혼인, 혈연, 입양 등으로 이루어진다. 비슷한 말, 식구” 

그런데 이 정의는 대한민국의 건강가정기본법의 그것과 다소 차이가 있다. 건강가정기본법에 따르면 가족은 “혼인, 혈연, 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단위로, 부양, 양육, 보호, 교육 등의 생활공동체이다”라고 정의되어 있기 때문이다. 전자에서는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우선되고 있는 반면, 후자에서는 “부양, 양육, 보호, 교육 등의 생활공동체“의 기능이 덧붙여져 있다. 즉, 후자의 정의가 더 포괄적임을 알 수 있다. 작가가 이것을 모를 리 없었을 텐데 왜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를 선택했는지 궁금해진다.  

표제지에는 ”가족의 모양“이라는 제목 아래에 볼품없는 외양의 강아지가 앞을 보고 앉아 있다. 왜 표제지에 사람이 아닌 강아지만 그려놓았을까. 이 강아지는 세 번째 화면에 다시 등장한다. 그 다음 펼쳐지는 본문에서 작가는 총 16개의 가족의 형태를 소개하고 있다. 이 중에서 친(양)부와 친(양)모의 존재가 글 혹은 그림으로 언급되지 않았음을 괄호 안에 밝혔다.    

 

1. 할머니, 엄마, 아빠, 고모, 동생 둘과 사는 아이 

2. 각각 자신의 부모와 살고 있는 외동 여아와 남아. 이들은 부모는 달라도 남매처럼 지낸다. 

3. 유기견과 함께 사는 아이 (글, 그림에  없음)

4. 주말에만 만나는 아빠와 사는 아이(엄마는 없음)

5. 조부모와 함께 사는 아이 (부모는 없음)

6. 장애가 있는 오빠와 사는 여아 (부모는 없음) 

7. 엄마와 둘이 사는 아이 (아버지는 없음)

8, 엄마가 재혼하여 의붓 아버지와 형과 함께 넷이 사는 남아

9. 다섯 살에 어떤 부부에게 입양된 아이

10. 아버지가 외국인인 다문화 가정의 아이 

11. 누나와 함께 사는 탈북인 가정의 아이(부모는 없음) 

12. 이모와 이모친구와 사는 아이(부모는 없으며 이모와 이모 친구의 관계는 모호함)

13. 아이가 없는 시골에서 자라나는 아이 (부모는 없음)

14. 두 달에 한번 만나는 친엄마가 있는 위탁가정의 아이(아버지는 없음)

15. 고아원에서 사는 아이 (부모 모두 없음)

16. 전쟁난민으로 한국에 들어와 고양이와 함께 사는 아이 (부모는 없음)

 

이 열 여섯 아이들이 살고 있는 공동체 중 3, 13, 14, 15, 16는 표준국어대사전이나 건강가정기본법의 가족의 정의에 해당하지 않는다. 심지어 3은 반려견과 함께 사는 아이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친(양)부모 양측이 그려진 가족은 1, 2, 8번 뿐이다. 그 밖에는 글과 그림 모두에서 부모 양측 모두가 없거나 아니면 어머니 혹은 아버지 한 편만 등장한다. 

이 작품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아이들이 양육되는 다양한 공동체의 형태에 눈을 뜨게 하는 효과가 있겠지만 웬지 찜찜한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현행 법적으로 가족이라고 부를 수 없는 형태가 더 많이 그려져 있거니와 무엇보다도 친부모와 함께 사는 아이는 2번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부부와 미혼 자녀로 구성된 가족”을 뜻하는 핵가족의 비율은 1980년 56.5%에서 2000년 57.8%, 21년에는 43.3% 로 점점 줄어드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가장 보편적인 가족의 형태인 것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핵가족 안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은 이 책을 읽으며 무엇을 생각하게 될까.  

‘가족’이라는 주제를 선택한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전 세계적으로 가족의 형태는 점점 더 다양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이 책에서 소개된 것 외에도 정자 기증으로 태어난 아이들, 대리모로부터 얻은 아이들, 동성애 부모를 둔 아이들, 동거 커플이 낳은 아이들, 비혼으로 낳은 아이들 등, 앞으로 얼마나 더 다양한 형태가 등장할지 모른다. 작가는 대한민국에서도 가족의 개념을 확장시킬 뿐 아니라 그들 역시 행복할 수 있음을 주장하려는 듯 하다. 이 의도는 뒷 면지에서 확인된다. 작가는 뒷 면지에서 앞 면지에 인용되었던 가족의 차가운 법적 정의 대신 가족의 훈훈한 순기능을 다음과 같이 열거하고 있다. “가족은 나한테 행복을 주는 사람이에요. 가족은 아프면 안아줘요. 가족은 맛있을 것을 같이 먹어요. 가족은 슬플 때 달래 줘요. 가족은 서로 웃긴 이야기를 많이 해요. 가족은 무섭지 않게 해 줘요. 가족은 화가 풀릴 때까지 기다려 줘요. 가족은 힘들 때 응원해요. 가족은 칭찬을 잘해 줘요. 가족은 내 말을 끝까지 들어워요. 가족은 그래요.” 누구나 소망하는 가족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이러한 인간관계, 혹은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모두 가족의 범주 안에 넣을 수 있느냐의 문제다.   

최근 들어, 서양 그림책에서 가족의 범주를 확장하려는 시도는 꾸준히 지속되어 왔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서, 1990년에 출판된 [Daddy’s Roommate](M. 윌 호이트 글, 그림)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동성애라는 주제를 다룬 첫 번째 어린이 도서 중 하나로서도 유명하다. 어린 소년이 화자로 등장하는 이 이야기는 "나의 엄마와 아빠는 작년에 이혼했어요."라는 소년의 회상으로부터 시작한다. 아버지가 짐가방을 들고 집을 나간 이후부터 이 소년은 엄마 집과 프랭크라는 남자와 같이 사는 아버지의 집을 왕래하기 시작한다. “WORLD'S BEST MOM”(세계에서 가장 좋은 엄마)이라고 쓰인 앞치마를 입고 있는 어머니는 소년에게 아버지와 프랭크의 관계를 게이라고 알려주고 그 뜻을 묻는 소년에게 게이란 “just one more kind of love”(그저 또 한 종류의 사랑)이라고 설명한다. 프랭크는 친부모처럼 소년을 돌보고 놀아주며. 아버지와 프랭크는 서로 다정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다투기도 하며 여느 부부와 같은 모습으로 살아간다. 마지막  화면의 왼쪽에서 소년은 "아버지와 그의 룸메이트는 매우 행복해요."라고 말하며, 오른쪽 장면에서 소년은 극장 앞에서 아버지와 프랭크 사이에 서서 입장을 기다리면서 독자를 향해 미소 지으며 “And I’m happy too.(그리고 나도 행복해요.)”라고 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끝맺는다.  단순한 스토리, 각 화면 당 한 개의 짧은 문장, 굵은 윤곽선으로 그려진 인물 위주의 그림 등 유아용으로 보이는 작품이지만 그 내용은 심히 도발적이다.    

이 작품은 부모의 이혼과 동성애, 그리고 동성 커플의 자녀라는 복합적인 이슈로 인해 출간되자마자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으며, 많은 학교와 도서관에서 검열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에서 1990년에서 1999년 사이에 가장 도전적인 책 2위에 선정되기도 했으며, 빈약한 서사와 서투른 일러스트레이션에도 불구하고 2009년 게이 문학의 발판을 놓았다 하여  CCBC(Cooperative Chdildren’s Book Center)를 비롯한 유명 서평지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1) 작가는 2000년 출판 10주기를 기념한 판본(edition)에 자신의 창작 목적은 동성 부부의 아이들에게 단순하고 재미있으면서 그들 자신을 볼 수 있는 거울과 같은 책을 제공함과 동시에 전통적인 가족의 어린이들에게는 게이 가족에 대해 교육시키는 것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 문장, 즉 “나도 행복해요.”라는 소년의 진술은 단순한 정보 전달 이상의 것을 전달하고 있다. 즉, 작가는 주인공 소년의 입을 빌어 게이 커플도 얼마든지 남녀 부부 못지않게 행복할 수 있으며 자녀에게도 좋은 가정을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세상에서 가장 좋은 엄마"인 소년의 엄마가 소년에게 게이를 “그저 또 하나의 사랑”이라고 쿨(?)하게 정의하고 있는 장면도 억지스럽다. 즉, 이 작품은 문학 작품이라기 보다 게이 커플을 옹호하는 일종의  선전(propaganda) 도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친부모와 함께 사는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일반적으로 더 행복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경험적으로,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2) 무엇보다 해체된 가족 관계는 아이들에게 신체적, 심리적 불안을 야기한다. 예컨대, 미국의 통계이기는 하지만, 생물학적 아버지의 부재는 더 높은 10대 임신, 알콜 중독, 마약 중독, 고등학교 중퇴, 폭력, 범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3)

이렇듯 서구에서 증명된, 가족 붕괴의 수많은 해악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는 결혼 제도를 약화시키려는 분위기가 만연하다. 미디어에 비춰지는 가족 붕괴의 모습은 이미 위험 수위를 넘어섰으며, 법적, 정치적 상황 역시 심각하다. 2024년 7월 18일 대법원 판결에 의해 동성 커플에게도 사실혼 관계와 동일하게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이 인정되었다. 이는 동성혼 합법화의 물꼬를 터준 것이나 다름없다. 정치권에서는 전통적인 가족 관계를 무너뜨리고자 하는 법안들이 통과되거나 계속 법안으로 상정되거나 거론되고 있다. 이 이슈에서는 여·야간 차이가 없다. 더불어 민주당의 이광희 의원은 동성커플에게도 출산 휴가, 육아 휴직들을 허용하게 될 수 있는 법안을 발의하였고. 국민의 힘 나경원 의원은 정우성, 문가비 비혼 출산 논란에 맞추어 출산율 증진을 위한 “등록동거혼” 제도를 도입하자고 주장하였다.(4) 또한 이기일 보건복지부 1차관도 프랑스의 ‘팍스(PACS)’제도를 언급하며, 비혼 출산이 가능한 가족 형태를 확대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였다. 팍스란 프랑스에서 도입된 시민연대계약으로, 사실혼 관계를 법적으로 인정하는 제도로서, 팍스를 체결한 커플은 일부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는 “팍스가 한국출산율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겠지만 신세대가 자유로운 형태의 가정 구성이 가능하다는 점에선 긍정적 효과가 기대된다” 라고 하여 제도 도입의 목적이 출산율 증가가 아니라 가족 형태의 확대라는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5) 혼전 동거가 출산율 증가는 커녕, 가족 붕괴를 부추김은 미국, 유럽 국가가 증명한 바인데 왜 정치인들은 이 제도를 앞 다투어 도입하려는 것일까. 시류에 편승하는 정치인의 속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들의 행보가 가족 제도의 파괴라는, 문화막시즘의 아젠더(agenda)와 관련된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6)

아이들은 그들의 부모를 선택할 권리가 없는 반면, 그들이 살아갈 가족의 형태는 이기적인 부모와 잘못된 법과 사회 제도가 결정한다. 그렇게 해서 생성된 다양한 형태의 가족 안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그림책 작가들도 이 문제를 공론화할 필요를 감지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회적 문제를 보여줄 때는 항상 ‘어떻게’가 관건이 된다. 예술이 현실의 모방 혹은 반영이라는 예술론은 여러 예술론 중의 하나일 뿐이다. 예술 작품은 현실을 그대로 비춰주는 거울이 아니며 그것 자체가 가능하지 않다. 같은 인물이나 풍경을 찍는 사진도 사진사마다 다른 결과물을 보이기 마련이다. 즉, 실재(reality)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각은 항상 창작 작업에 영향을 미친다.   빅터 프랭클(Victor Frankle)의 [죽음의 수용소에서](Man’s Search for Meaning)(1946) 만큼 그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작품도 없을 것이다.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서 겪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쓴 이 자전적 에세이에서 작가는 인간이 희망과 삶의 의미를 잃지 않는다면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도 견뎌낼 수 있음을 증언하였던 것이다. 

아동문학의 사실주의(realistic fiction) 작가로서 잘 알려진 이브 번팅(Eve Bunting) (1928-2023)은 사회 문제를 자주 다루는 작가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노숙자, 인종갈등, 재혼가정 등의 심각한 문제를 다루면서도 희망과 인간애를 잃지 않는다. 그가 글을 쓰고, 로날드 히믈러(Ronald Himler)가 그린 [Fly away Home](집으로 날아가)(1991)는 공항에서 노숙하는 아버지와 아들을 그린 작품이다. 그들은 공항 경찰에게 잡히지 않도록 눈에 잘 띄지 않는 외모를 하고 터미널을 수시로 옮기며 살아간다. 낮에 아버지는 공항 셔틀버스를 타고 도시로 나가서 청소부 일을 하고 아들은 승객들의 짐을 들어주면서 팁을 받아 돈을 모으면서 언젠가 집도 사고 학교에 갈 수 있는 날을 기다린다. 어느 날 소년은 메인 터미널에 들어온 작은 갈색 새 한 마리를 발견한다. 그 새는 유리벽에 부딪히고 바닥에 떨어지기를 반복하기를 수차례 하던 끝에 드디어 슬라이딩 도어가 열린 틈으로 밖으로 날아간다. 아이는 비상하는 새에게 “집으로 날아가(Fly away home!”)라고 낮게 속삭인다. 공항 터미널에서 아버지와 함께 투명인간처럼 숨죽이며 살아가는 그 소년은 자신도 언젠가 집에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된다. 

『가족의 모양』은 윌호이트의 [Daddy’s Roommate]처럼 두 종류의 독자를 향하고 있는 것 같다. 전통적인 형태가 아닌 가족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에게는 긍정적인 자화상을, 그리고 전통적인 가족의 어린이들에게는 그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전통적인 형태가 아닌 가족에서도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려는 목적을 담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16개의 나레이션(narration)은 감동을 줄만한 서사성을 갖추지 못하고 있으며, 뒷 면지의 글은 가족의 순기능을 나열한 정보 전달에 불과하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염려스러운 것은 이 작품을 읽게 되는 어린이 독자들(성인도 마찬가지겠지만)의 반응이다. 가족 해체의 산물인 공동체와 그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어린이 독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우리는 이 시대에 만연한 가족 해체의 대가는 아무 잘못이 없고 힘없는 아이들이 지불하고 있음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동안 드라마와 영화와 같은 미디어는 성인의 시각에서 이러한 아이들의 모습을 종종 외면하고 왜곡하면서 이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지 않았다. 그러나 그 아이들이 그동안 세상에 드러내지 못했던, 성장기와 성인기까지 지속적으로 겪고 있는 신체적, 정신적 고통이 <Them Before Us.>와 같은 글로벌 아동 인권 운동을 통해 알려지고 있다.(7) 비로소 우리는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진실을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남녀의 결혼이 아이들의 건강, 교육, 복지를 위한 최고의 고유한 조직일 뿐 아니라 국가 구성원의 유대감을 유지시키는 가장 강력한 제도임은 역사가 증명한 바다. 그렇기 때문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문화권에서는 결혼 제도를 유지하기 위한 규범이 존재해 왔던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다음 세대와 국가 공동체를 위해 결혼 문화와 전통적인 가족을 재건하는 것이 문화적, 정치적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한다. 어린이 독자를 염두에 두고 창작 작업을 하는 그림책 작가들도 가족 해체라는 작금의 시류에 편승하는 대신, 결혼과 가족에 대한 진리를 옹호하는 목소리를 내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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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ttps://en.wikipedia.org/wiki/Daddy%27s_Roommate#Summary

(2) K. 피우스트 & S. 매닝. (2021), 아이들은 정말 괜찮을까?현대적 가정에서 . 서울: 도서출판 콜슨

(3) K. 피우스트 & S. 매닝. (2021), 아이들은 정말 괜찮을까?현대적 가정에서 . 서울: 도서출판 콜슨

(4) https://www.chosun.com/politics/assembly/2024/11/30/RPHQRGOY4FAGTIUPRHAQV2N42I

(5) https://www.pennmike.com/news/articleView.html?idxno=96157

(6) https://www.picturebook-basic.com/44/?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12660009&t=board

(7) K. 피우스트 & S. 매닝. (2021), 아이들은 정말 괜찮을까?현대적 가정에서. 서울: 도서출판 콜슨




현은자 |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 명예교수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 명예교수이며 아동문학과 그림책 평론 작업을 하고 있다. 미국 University of Michigan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1989년부터 2023년까지 성대 아동청소년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2021년부터 웹진 <그림책 베이직>에 '그림책의 세계관' 칼럼을 연재하고 있으며, 성균관대학교 생활과학대학연구소 부설 <그림책 전문가 과정>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그림책의 세계관', '기독 신앙과 그림책 읽기'를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기독교 세계관으로 아동문학보기>, <그림책의 세계관>, 공저로는 <그림책의 이해>, <그림책의 그림 읽기>, <세계 그림책의 역사>, <어린이교육전문가가 엄선한 100권의 그림책>, <신앙이 자라는 그림책 읽기>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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