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의 세계관
화난 자녀의 화 풀기: 『소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과 『부루퉁한 스핑키』에 그려진 가족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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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보람2025-07-22 20:10
예전에 몇 번 부족하지만 그림책의 세계관에 대해 배운것들을 교회의 몇몇 분들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그림책 세계관 공부를 함께 했던 적이 있습니다. 교수님의 이 글을 바탕으로 두 책에 대해 같이 읽고 생각해 보았는데 어떤 분들은 선뜻 잘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이 두 책이 주는 의미에 대해 많이 생각을 해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론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던 이유는 가족의 사랑, 의미, 중요성 등에 대한 의미가 많이 바뀌고 기독교인조차도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이 주신 가족을 통한 하나님의 뜻을 많이 잃어버려서 그렇지 않았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스핑키가 계속 화를 풀지 않는 장면에서 엄마들은 다들 자신의 아이들을 생각하며 답답해하고 저 정도면 오히려 훈육으로 혼나야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견도 있었는데 나중에 가만가만 생각할수록 오히려 아이들에게 끝없이 인자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려주고 가족을 통해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알려주는 것이 우리에게 많이 부족하구나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통해 각 가정들이 하나님의 사랑의 모형이 되기를 기도하고 더 그 뜻을 서로 나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정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제가 생각하기론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던 이유는 가족의 사랑, 의미, 중요성 등에 대한 의미가 많이 바뀌고 기독교인조차도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이 주신 가족을 통한 하나님의 뜻을 많이 잃어버려서 그렇지 않았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스핑키가 계속 화를 풀지 않는 장면에서 엄마들은 다들 자신의 아이들을 생각하며 답답해하고 저 정도면 오히려 훈육으로 혼나야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견도 있었는데 나중에 가만가만 생각할수록 오히려 아이들에게 끝없이 인자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려주고 가족을 통해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알려주는 것이 우리에게 많이 부족하구나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통해 각 가정들이 하나님의 사랑의 모형이 되기를 기도하고 더 그 뜻을 서로 나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정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정민2025-07-23 12:10
요즘 들어 가족의 역할과 가족만이 지닐 수 있는 고유한 가치들이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때는 온 가족이 함께 보면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나누며 보던 가족 드라마나 시트콤이 TV에서 자취를 감췄고,
그 자리는 점점 말초적인 쾌락을 자극하는 콘텐츠들로 가득 채워지고 있습니다.
또한 가족에 대한 인식도 변해, 마치 ‘꼭 필요하지 않은 존재’처럼 여기게 만드는 이상한 흐름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 글을 접하지 않았다면, 저는 아마도 소피가 결국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장면을 보며 ‘좋은 결말’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가족이란 ‘기다려주는 존재’라고 받아들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이야기가 제 어린 시절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성인이 되어 돌아본 저의 유년 시절은 ‘방임’과 ‘무관심’이라는 단어로 기억됩니다.
소피도 훗날 성인이 되었을 때,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요?
우리는 지금 ‘가족이란 무엇인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가’를 점점 잃어가고 있습니다.
마치 그걸 배울 수 있는 길 자체가 막혀버린 듯한 느낌입니다.
사실 이 사랑과 지혜는 부모로부터 자연스럽게 물려받는 것인데,
지금의 부모 세대는 그 연결고리가 끊긴 채 방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 또래인 40대 여성들을 보면,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에서 행복한 기억이 없기 때문에
‘이전 세대와는 다르게, 내 방식대로 잘 키워보겠다’는 다짐을 하지만
막상 ‘어떻게’ 키워야 할지는 몰라 헤매고, 결국 자녀와의 관계가 어려워지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됩니다.
저 역시도 한때는 무엇이 올바른 양육인지 몰라, 다큐멘터리를 보고 책을 열심히 읽으며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미디어 속 가족상도 분명 영향력이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진짜 가족’에게서 가족이 무엇인지 배우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가족을 만드신 분, 창조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가장 가족다운 것’을 배우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아는 우리가 '가족이란 무엇인지' 세상에 보여줘야되는 것 같습니다.
한때는 온 가족이 함께 보면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나누며 보던 가족 드라마나 시트콤이 TV에서 자취를 감췄고,
그 자리는 점점 말초적인 쾌락을 자극하는 콘텐츠들로 가득 채워지고 있습니다.
또한 가족에 대한 인식도 변해, 마치 ‘꼭 필요하지 않은 존재’처럼 여기게 만드는 이상한 흐름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 글을 접하지 않았다면, 저는 아마도 소피가 결국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장면을 보며 ‘좋은 결말’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가족이란 ‘기다려주는 존재’라고 받아들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이야기가 제 어린 시절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성인이 되어 돌아본 저의 유년 시절은 ‘방임’과 ‘무관심’이라는 단어로 기억됩니다.
소피도 훗날 성인이 되었을 때,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요?
우리는 지금 ‘가족이란 무엇인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가’를 점점 잃어가고 있습니다.
마치 그걸 배울 수 있는 길 자체가 막혀버린 듯한 느낌입니다.
사실 이 사랑과 지혜는 부모로부터 자연스럽게 물려받는 것인데,
지금의 부모 세대는 그 연결고리가 끊긴 채 방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 또래인 40대 여성들을 보면,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에서 행복한 기억이 없기 때문에
‘이전 세대와는 다르게, 내 방식대로 잘 키워보겠다’는 다짐을 하지만
막상 ‘어떻게’ 키워야 할지는 몰라 헤매고, 결국 자녀와의 관계가 어려워지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됩니다.
저 역시도 한때는 무엇이 올바른 양육인지 몰라, 다큐멘터리를 보고 책을 열심히 읽으며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미디어 속 가족상도 분명 영향력이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진짜 가족’에게서 가족이 무엇인지 배우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가족을 만드신 분, 창조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가장 가족다운 것’을 배우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아는 우리가 '가족이란 무엇인지' 세상에 보여줘야되는 것 같습니다.
with Chang2025-07-23 13:50
스핑키와 소피는 모두 감정을 잘 표현하는 아이들이지만, 그 감정을 마주하는 부모의 반응은 사뭇 다릅니다.
한쪽은 조용히 곁에서 기다려주며 감정을 품어주고, 다른 한쪽은 아이 혼자 감정을 감당하게 하지요.
아이의 감정은 스스로 흘러가도록 둘 수도 있지만, 그 곁에 어떻게 ‘존재하는가’가 부모의 중요한 역할임을 다시금 느낍니다.
아이나 부모, 모두 성향의 차이가 있기에 자율과 통제라는 두 축의 균형을 유지하기란 참 어려운것 같습니다.
지금은 다 자란 두 딸이지만, 어린 시절 아이들의 감정에 충분히 귀 기울여주지 못한 마음이 문득문득 다가올 때면
엄마로서 미안한 마음과 부끄러운 마음이 불쑥 올라오곤 합니다.
부족한 부모였지만 우리의 좋은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필요 적절하게 개입해주셨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교수님께서 풀어주신 섬세한 해석 덕분에 그림책이 전하는 메시지가 더욱 깊이 와 닿았고, 나의 부모됨을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한쪽은 조용히 곁에서 기다려주며 감정을 품어주고, 다른 한쪽은 아이 혼자 감정을 감당하게 하지요.
아이의 감정은 스스로 흘러가도록 둘 수도 있지만, 그 곁에 어떻게 ‘존재하는가’가 부모의 중요한 역할임을 다시금 느낍니다.
아이나 부모, 모두 성향의 차이가 있기에 자율과 통제라는 두 축의 균형을 유지하기란 참 어려운것 같습니다.
지금은 다 자란 두 딸이지만, 어린 시절 아이들의 감정에 충분히 귀 기울여주지 못한 마음이 문득문득 다가올 때면
엄마로서 미안한 마음과 부끄러운 마음이 불쑥 올라오곤 합니다.
부족한 부모였지만 우리의 좋은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필요 적절하게 개입해주셨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교수님께서 풀어주신 섬세한 해석 덕분에 그림책이 전하는 메시지가 더욱 깊이 와 닿았고, 나의 부모됨을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이수형2025-07-23 17:03
최근들어 감정에 대한 교육이 급 부상하고 있어요.
사회*정서 측면에서 감정이 매우 중요하다는 거예요.
이 흐름에 따라 감정을 늘어놓는 그림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알고 표현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림책은 눈에 띄는 것이 주로 색이기에 여러가지 색과 감정을 연결해서 설명합니다.
이런 내용은 몇가지 왜곡과 고정관념을 형성합니다.
1. 어린이가 꼭 알아야할 것, 표현할 것이 감정이다.
과연 그럴까요? 감정보다 중요한 것이 얼마나 많은데요.
자기 조절, 분노를 유머로 표현하는 승화, 분노보다 문제의 원인 찾아 해결하기 등등..
감정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오늘도 정진해야 할 것들이 수 없이 많습니다.
2. 어린이를 억합하는 분노 감정의 원인은 부모이다.
문화막시즘이 팽배한 사회에서 누군가에게 탓을 돌리면 얼마나 편한지...
사리분별이 아직 형성되기 이전의 어린이에게 엄마 또는 아빠 때문이라는 핑계는 어쩜 그리 정당하고 달콤한지 모르겠어요..
부모는 늘 자녀를 위해 전전긍긍하고 제대로된 설명도 못하는 존재가 됩니다.
누구보다 자녀를 생각하고 위하는 분은 부모입니다.
3. 감정의 소재는 쉽고 간단하고 유행의 흥행코드이다.
늘 자녀에게 미안하거나, 잘 키우고 싶은 부모는 감정그림책이 좋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 작가는 이러한 책들이 잘 팔린다고 생각하게됩니다.
이러한 내용의 전제는 감정을 안 받아주는 못난 부모가 등장하지요.
소피와 같은 처지의 아이들이 다수 보여집니다.
왜곡은 교수님께서 잘 지적하신 가족의 모습입니다.
그 관계가 피상적이고 형식적이기만 합니다.
스토리를 떠나 이제 고정관념으로 자리하게됩니다.
불쌍한 아이들.. 이렇게 넘어가는 탄식이 이어집니다.
마치 화가나면 빨강색, 우울한 회색, 불행의 검은색..
(여기서 외면하지만, 이 색들은 좋은 표현도 많아요.)
이런 고정관념과 같이 사회적으로 가족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형성하게 합니다.
즉, 사람들은 소피와 같이 대화 상실(서스팬스가 없는)의 그림책을 현실이라 여기게 되는 것이지요.
이에 반하여, 스핑키는 얼마나 많은 대화가 오고 가는지 모릅니다.
열심히 일다보며, 웃음이 나기도 하구요,, 스핑키의 마음이 잘 느껴집니다.
우리 딸은 스핑키를 보더니 금쪽이라고 해요. 말썽꾸러기에 신경질쟁이 같다는 것이죠..
그런데, 가족들과 대화와 여러 날이 지난 후에 자기 반성을 하는 스핑키를 발견합니다.
소피는 자기반성이 없지요. 이것이 가장 큰 차이라고 여겨집니다.
회개를 하는 주인공은, 관계 개선에 당위성을 줍니다.
그리고 노력하는 주인공을 보면서 인간 행위에 대한 고찰을 하게 됩니다.
그 부분에서 독자(딸)가 사고하는 순간(잠시의 침묵과 엷은 미소)을 보입니다.
좋은 그림책은 보다 수준 높은 인간 행위를 담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제가 글솜씨가 없어서 이렇게 밖에 표현을 못해 아쉽습니다.
사회*정서 측면에서 감정이 매우 중요하다는 거예요.
이 흐름에 따라 감정을 늘어놓는 그림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알고 표현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림책은 눈에 띄는 것이 주로 색이기에 여러가지 색과 감정을 연결해서 설명합니다.
이런 내용은 몇가지 왜곡과 고정관념을 형성합니다.
1. 어린이가 꼭 알아야할 것, 표현할 것이 감정이다.
과연 그럴까요? 감정보다 중요한 것이 얼마나 많은데요.
자기 조절, 분노를 유머로 표현하는 승화, 분노보다 문제의 원인 찾아 해결하기 등등..
감정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오늘도 정진해야 할 것들이 수 없이 많습니다.
2. 어린이를 억합하는 분노 감정의 원인은 부모이다.
문화막시즘이 팽배한 사회에서 누군가에게 탓을 돌리면 얼마나 편한지...
사리분별이 아직 형성되기 이전의 어린이에게 엄마 또는 아빠 때문이라는 핑계는 어쩜 그리 정당하고 달콤한지 모르겠어요..
부모는 늘 자녀를 위해 전전긍긍하고 제대로된 설명도 못하는 존재가 됩니다.
누구보다 자녀를 생각하고 위하는 분은 부모입니다.
3. 감정의 소재는 쉽고 간단하고 유행의 흥행코드이다.
늘 자녀에게 미안하거나, 잘 키우고 싶은 부모는 감정그림책이 좋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 작가는 이러한 책들이 잘 팔린다고 생각하게됩니다.
이러한 내용의 전제는 감정을 안 받아주는 못난 부모가 등장하지요.
소피와 같은 처지의 아이들이 다수 보여집니다.
왜곡은 교수님께서 잘 지적하신 가족의 모습입니다.
그 관계가 피상적이고 형식적이기만 합니다.
스토리를 떠나 이제 고정관념으로 자리하게됩니다.
불쌍한 아이들.. 이렇게 넘어가는 탄식이 이어집니다.
마치 화가나면 빨강색, 우울한 회색, 불행의 검은색..
(여기서 외면하지만, 이 색들은 좋은 표현도 많아요.)
이런 고정관념과 같이 사회적으로 가족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형성하게 합니다.
즉, 사람들은 소피와 같이 대화 상실(서스팬스가 없는)의 그림책을 현실이라 여기게 되는 것이지요.
이에 반하여, 스핑키는 얼마나 많은 대화가 오고 가는지 모릅니다.
열심히 일다보며, 웃음이 나기도 하구요,, 스핑키의 마음이 잘 느껴집니다.
우리 딸은 스핑키를 보더니 금쪽이라고 해요. 말썽꾸러기에 신경질쟁이 같다는 것이죠..
그런데, 가족들과 대화와 여러 날이 지난 후에 자기 반성을 하는 스핑키를 발견합니다.
소피는 자기반성이 없지요. 이것이 가장 큰 차이라고 여겨집니다.
회개를 하는 주인공은, 관계 개선에 당위성을 줍니다.
그리고 노력하는 주인공을 보면서 인간 행위에 대한 고찰을 하게 됩니다.
그 부분에서 독자(딸)가 사고하는 순간(잠시의 침묵과 엷은 미소)을 보입니다.
좋은 그림책은 보다 수준 높은 인간 행위를 담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제가 글솜씨가 없어서 이렇게 밖에 표현을 못해 아쉽습니다.
김현경2025-12-22 19:48
예전에도 이 글을 읽었었는데, 오늘은 이 글을 읽으며 문득 괜히 눈물이 나려고 합니다. ^^; 요즘 저희집에도 스핑키 같은 아이가 한 명 있는데요, 때로는 달래고 때로는 가르치며 하루하루가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교수님 글의 마지막 문장이 제게 너무나 힘이 됩니다. 아이가 좀 더 크고 나면 나중에는 부모의 이 진심을 알겠지요..? 진심으로 아이를 아끼고 끝까지 사랑하는 부모를 기억하고 심신이 건강한 사람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아이로 잘 자라나기를 간절히 기도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많은 가정들이 다양한 가족의 모양보다, 진정한 가족의 사랑, 인내, 소망을 품었으면 좋겠습니다. ^^
이신애2025-12-23 00:32
그동안 <소피가 화나면…>그림책을 읽으며 들었던 여러 의아함과 걱정이 이 평론을 읽고 명확해졌습니다. 이 그림책이 유치원 교사용 연수자료나, 누리과정 교사용 지도서 같은 곳에도 등장했던 것 같데… 주로 감정조절을 하는 방법의 대표적인 책으로 소개되기도 하고, 수업에 연결해서 사용하도록 했던 것 같습니다. 분노 -> 스스로 진정 -> 복귀의 단계로 그려졌기 때문에 좋은 책이라고 착각하기 쉬운 것 같아요. 그치만 실제 내용은 파괴적이고 폭발적인 분노의 표현들, 어린아이 혼자 인적이 드문 곳을 돌아다니며 분노를 삭힌다는 이야기, 아무런 사랑이나 대안도 주지 못한 가족들이 등장하는 책이네요. 이 책을 읽고나면 정말로 아이들이 이렇게 화를 풀러 혼자 나가버리면 어쩌지?싶은 걱정이 들게하는 책이었습니다. 교수님의 질문처럼 소피가 나가있었던 동안 가족들은 태평하게 집에서 뭘 하고 있었던 건지, ‘가족의 역할‘을 관점에 두고 보니 어떤 걱정도 노력도 보여지지 않았네요. 반면 <부루퉁한 스핑키>에는 화가난 막내 아이의 마음을 풀어주려는 가족들의 노력의 모습이 정말 자세히 그려져 있어 보는 내내 피식 웃음이 나고 훈훈해 집니다. 화가 난 아이의 내면의 변화를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보여줄 수 있는지 작가의 지혜와 위트가 빛이 납니다. 저도 어릴적 이 그림책을 가족들과 함께 읽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스핑키의 모습이 자주 화가 나고 토라져서 웅크리고 있던 저의 남동생의 어릴적 모습과 닮아서 어린시절 가족들과의 일화들이 떠오릅니다. 서로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끝내 용납하고 각자의 방법으로 화해하는 가족의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김주경2026-07-22 14:00
너무 사랑스러운 그림책이었습니다. 특히 스핑키의 이름을 가지고 스컹크, 스핑크스라고 놀리는 형제들의 모습이 귀여워서 웃음이 터졌습니다. 스핑키의 이야기 속에서는 다음 문장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아무도 스핑키가 자기만의 생각과 감정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해는커녕, 그런 사실을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것 같았으니까요. 이 세상이 스핑키에게 함부로 대했고, 그래서 스핑키도 이 세상을 싫어하기로 했습니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을 포함해서요. 아참, 동물들만 빼고요.”
많은 사람이 이와 비슷하게 이해받지 못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스핑키보다는 소피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전에 한 TV 프로그램에서 어느 개그우먼이 어린 시절 속상한 일이 있어 가족들 몰래 가출했다가 집으로 돌아왔는데, 가족 구성원이 너무 많아 아무도 자신이 가출한 줄 몰랐다는 웃픈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어린 시절, 제 감정을 혼자 소화하려 애썼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아이는 아이입니다. 아직 자신의 미숙함과 연약함을 혼자 처리하기에는 부족합니다. 혼자 마음을 가라앉힐 시간과 공간이 필요할 때도 있겠지만, 아직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을 처리할 책임까지 전적으로 아이에게 맡긴다면 그것은 건강한 독립을 돕는 일이라기보다 방치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며칠 전 윌프레드 비온의 ‘컨테이너’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온이 말한 컨테이너란 상대방이 아직 처리하지 못한 고통스럽고 혼란스러운 감정을 받아들이고 이해하여, 그것을 상대가 감당하고 생각할 수 있는 형태로 변화시켜 다시 돌려주는 ‘담아주는 그릇’의 역할을 뜻합니다.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조절하는 능력을 내면화할 수 있도록, 어른은 이 과정을 옆에서 도와주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브리서 4장 15절(개역한글)
저는 요즘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자주 묵상합니다. 하나님은 그저 하늘에만 머물러 계시지 않으시고,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느낀 배고픔과 피곤함, 슬픔과 아픔을 똑같이 겪으셨습니다.
우리 역시 어린아이의 자리로 내려가 그 마음에 공감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아이의 연약함을 온전히 안아주고, 구체적으로 마음을 쓰며, 끝까지 보살펴야 합니다. 인간이기에 그 과정은 서툴고, 결심도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입니다. 아이의 감정을 받아주는 일이 너무너무 귀찮게 느껴질 때도 있고, 또다시 실수하고 용서하는 과정을 반복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마음을 내어주는 것, 이것이 진정한 사랑의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무도 스핑키가 자기만의 생각과 감정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해는커녕, 그런 사실을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것 같았으니까요. 이 세상이 스핑키에게 함부로 대했고, 그래서 스핑키도 이 세상을 싫어하기로 했습니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을 포함해서요. 아참, 동물들만 빼고요.”
많은 사람이 이와 비슷하게 이해받지 못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스핑키보다는 소피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전에 한 TV 프로그램에서 어느 개그우먼이 어린 시절 속상한 일이 있어 가족들 몰래 가출했다가 집으로 돌아왔는데, 가족 구성원이 너무 많아 아무도 자신이 가출한 줄 몰랐다는 웃픈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어린 시절, 제 감정을 혼자 소화하려 애썼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아이는 아이입니다. 아직 자신의 미숙함과 연약함을 혼자 처리하기에는 부족합니다. 혼자 마음을 가라앉힐 시간과 공간이 필요할 때도 있겠지만, 아직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을 처리할 책임까지 전적으로 아이에게 맡긴다면 그것은 건강한 독립을 돕는 일이라기보다 방치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며칠 전 윌프레드 비온의 ‘컨테이너’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온이 말한 컨테이너란 상대방이 아직 처리하지 못한 고통스럽고 혼란스러운 감정을 받아들이고 이해하여, 그것을 상대가 감당하고 생각할 수 있는 형태로 변화시켜 다시 돌려주는 ‘담아주는 그릇’의 역할을 뜻합니다.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조절하는 능력을 내면화할 수 있도록, 어른은 이 과정을 옆에서 도와주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브리서 4장 15절(개역한글)
저는 요즘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자주 묵상합니다. 하나님은 그저 하늘에만 머물러 계시지 않으시고,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느낀 배고픔과 피곤함, 슬픔과 아픔을 똑같이 겪으셨습니다.
우리 역시 어린아이의 자리로 내려가 그 마음에 공감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아이의 연약함을 온전히 안아주고, 구체적으로 마음을 쓰며, 끝까지 보살펴야 합니다. 인간이기에 그 과정은 서툴고, 결심도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입니다. 아이의 감정을 받아주는 일이 너무너무 귀찮게 느껴질 때도 있고, 또다시 실수하고 용서하는 과정을 반복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마음을 내어주는 것, 이것이 진정한 사랑의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원계실2026-07-22 15:49
어느 집에나 '스핑키'가 있다.
스핑키 같은 아이에게도 화가 난 상황과 이유는 분명히 있다. 다만 그 이유를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고, 한번 세운 입장을 스스로 거두는 일을 어려워한다. 고집도 제법 세다. 그럼에도 스핑키는 이 시기 아이들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스핑키의 표정과 태도에서 우리 집 2호가 떠올라 여러 번 웃음이 났다.
유아기와 초등 저학년은 감정을 인식하고, 드러내고, 조절하는 일을 충분히 연습해야 하는 시기다. 조절력은 설명으로 생기지 않고 연습으로 자란다. 그리고 그 연습에는 스스로 추스를 시간적 여유가 반드시 필요하다. 아이가 화를 추스르기 어려운 상황에서 어른이 먼저 사과나 화해를 강압적으로 꼭 요구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이 지점에서 『소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을 나란히 놓아 볼 만하다. 두 책은 '화'라는 같은 감정을 다루지만 접근 방법이 다르다. 스타이그는 화난 아이를 둘러싼 가족 쪽에, 몰리 뱅은 아이의 내면 쪽으로 접근한다.
스핑키 가족의 노력은 눈물겹다. 쪽지를 쓰고, 먹을 것을 들이밀고, 급기야 광대까지 부른다. 대부분 실패한다. 그러나 그 실패가 쌓이는 동안 '너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메시지가 아이에게 도달한다. 화를 풀어주려는 노력과 감정의 완충 역할을 그림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소피의 가족은 소피가 스스로 감정을 해결하는 동안 관여하는 바가 보이지 않는다.
자연속에서 스스로 치유하고 화를 다스린 후에 돌아온 소피를 맞아주는 결과론적 지지대의 역할만 감당한 것으로 보인다.
이 지점에서 아쉬움이 보인다. 결과적으로 감정을 추스린 것은 소피 자신이고 가족의 역할은 보이지 않았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4).
앞부분만 붙들면 아이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는 양육이 되고, 뒷부분만 붙들면 감정을 건너뛴 훈계가 된다. 노엽게 하지 않는 것은 아이의 감정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일이고,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는 것은 그 감정을 지나 아이를 다시 관계 안으로 데려오는 일이다.
스핑키 같은 아이에게도 화가 난 상황과 이유는 분명히 있다. 다만 그 이유를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고, 한번 세운 입장을 스스로 거두는 일을 어려워한다. 고집도 제법 세다. 그럼에도 스핑키는 이 시기 아이들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스핑키의 표정과 태도에서 우리 집 2호가 떠올라 여러 번 웃음이 났다.
유아기와 초등 저학년은 감정을 인식하고, 드러내고, 조절하는 일을 충분히 연습해야 하는 시기다. 조절력은 설명으로 생기지 않고 연습으로 자란다. 그리고 그 연습에는 스스로 추스를 시간적 여유가 반드시 필요하다. 아이가 화를 추스르기 어려운 상황에서 어른이 먼저 사과나 화해를 강압적으로 꼭 요구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이 지점에서 『소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을 나란히 놓아 볼 만하다. 두 책은 '화'라는 같은 감정을 다루지만 접근 방법이 다르다. 스타이그는 화난 아이를 둘러싼 가족 쪽에, 몰리 뱅은 아이의 내면 쪽으로 접근한다.
스핑키 가족의 노력은 눈물겹다. 쪽지를 쓰고, 먹을 것을 들이밀고, 급기야 광대까지 부른다. 대부분 실패한다. 그러나 그 실패가 쌓이는 동안 '너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메시지가 아이에게 도달한다. 화를 풀어주려는 노력과 감정의 완충 역할을 그림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소피의 가족은 소피가 스스로 감정을 해결하는 동안 관여하는 바가 보이지 않는다.
자연속에서 스스로 치유하고 화를 다스린 후에 돌아온 소피를 맞아주는 결과론적 지지대의 역할만 감당한 것으로 보인다.
이 지점에서 아쉬움이 보인다. 결과적으로 감정을 추스린 것은 소피 자신이고 가족의 역할은 보이지 않았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4).
앞부분만 붙들면 아이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는 양육이 되고, 뒷부분만 붙들면 감정을 건너뛴 훈계가 된다. 노엽게 하지 않는 것은 아이의 감정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일이고,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는 것은 그 감정을 지나 아이를 다시 관계 안으로 데려오는 일이다.
하은혜2026-07-23 00:31
비슷한 연령의 아이들을 양육하는 입장이다보니 여러모로 감정이입되는 책입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또 다시 저의 양육 태도에 대해 반성하는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모든 일이 다 그러하겠지만, 양육과 가정을 돌보는 일에는 크나 큰 지혜와 온유함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사랑'은 '오래참음' 부터 시작되고, 그것부터 실천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인데, 아이들을 너무 사랑하면서도 오래참는 것부터 잘 되지 않는 부족한 엄마인지라.. 아이들의 감정마저도 통제하거나 아이들의 상황보다 저의 상황이 더 앞서게 됩니다..
스핑키의 화를 풀어주기 위해 온 가족들과 여러 사람이 애를 쓰는 모습에서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오히려 소피처럼 스스로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공간을 가지는 것이 좋아보이기도 할 정도로, 제 마음에는 여유가 없기도 합니다. (소피가 화를 푼 나무가 있는 그 공간이 부러울 정도였네요) 가족들이 소피가 마음을 가정 안에서 잘 풀어낼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주었다면 더 좋았겠지만요.
하지만 또 그렇게 옳은 방향으로 인도한다는 생각에 화푸는 방법을 제시하다보면, 또 다른 통제가 시작되거나 스핑키의 가족들처럼 방향성이 맞지 않아 마음이 더 틀어지게 만들기도 할 것 같아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몇해전부터 양육에 있어 '공감'이 참 큰 화두였고, 제 개인의 성장 과정에 의한 결과(공감에 대한 결핍)으로 저 또한 그 공감의 양육 방법을 따라가려 했었습니다. 하지만 적절한 '공감'과 성경을 통해 가르쳐주어야 할 '절제' 와 '순종' 그 사이에서의 판단은 너무나..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지혜가 정말 필요하고 매 순간 순간 지혜를 구해야 함을 깨닫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결국 저의 교만함과 감정이 더 앞서는 현실이네요..)
하나님께서 처음으로 만들어주신 교회 공동체의 역할을 하고 있는 가족. 가정.. 이 안에서 아이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할 수 있도록, 자신의 감정 또한 하나님께 의탁 드리는 방법을 알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의 언어를 배우고 들을 수 있도록, 부모인 제가 더 말씀 앞에 바로 서야함을 느낍니다. 이 책들을 통해 다시금 결단합니다.
'사랑'은 '오래참음' 부터 시작되고, 그것부터 실천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인데, 아이들을 너무 사랑하면서도 오래참는 것부터 잘 되지 않는 부족한 엄마인지라.. 아이들의 감정마저도 통제하거나 아이들의 상황보다 저의 상황이 더 앞서게 됩니다..
스핑키의 화를 풀어주기 위해 온 가족들과 여러 사람이 애를 쓰는 모습에서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오히려 소피처럼 스스로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공간을 가지는 것이 좋아보이기도 할 정도로, 제 마음에는 여유가 없기도 합니다. (소피가 화를 푼 나무가 있는 그 공간이 부러울 정도였네요) 가족들이 소피가 마음을 가정 안에서 잘 풀어낼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주었다면 더 좋았겠지만요.
하지만 또 그렇게 옳은 방향으로 인도한다는 생각에 화푸는 방법을 제시하다보면, 또 다른 통제가 시작되거나 스핑키의 가족들처럼 방향성이 맞지 않아 마음이 더 틀어지게 만들기도 할 것 같아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몇해전부터 양육에 있어 '공감'이 참 큰 화두였고, 제 개인의 성장 과정에 의한 결과(공감에 대한 결핍)으로 저 또한 그 공감의 양육 방법을 따라가려 했었습니다. 하지만 적절한 '공감'과 성경을 통해 가르쳐주어야 할 '절제' 와 '순종' 그 사이에서의 판단은 너무나..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지혜가 정말 필요하고 매 순간 순간 지혜를 구해야 함을 깨닫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결국 저의 교만함과 감정이 더 앞서는 현실이네요..)
하나님께서 처음으로 만들어주신 교회 공동체의 역할을 하고 있는 가족. 가정.. 이 안에서 아이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할 수 있도록, 자신의 감정 또한 하나님께 의탁 드리는 방법을 알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의 언어를 배우고 들을 수 있도록, 부모인 제가 더 말씀 앞에 바로 서야함을 느낍니다. 이 책들을 통해 다시금 결단합니다.
백효진2026-07-26 15:49
<소피가 화나면, 정말정말 화나면>과 <부루퉁한 스핑키>를 화가 난 아이의 감정 해결에 미치는 가정의 역할이라는 초점으로 살펴보니 가정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볼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화가 나서 씩씩거릴때마다 가족구성원들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아이를 기다려줄 것인가 하는 것이지요. 요즘은 점점 자기 감정은 자기가 알아채고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팽배해지면서 아이의 감정을 무조건 존중하고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맞다라고 이야기하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어릴 때일수록,
내가 느끼는 이 감정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은 너를 사랑하고, 문제를 함께 해결할 준비가 되어 있다 라는 것을 가르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피와 스핑키가 어른이 된 후 만나서 결혼을 한다면 어떤 대화를 나눌지가 궁금합니다 ^^
내가 느끼는 이 감정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은 너를 사랑하고, 문제를 함께 해결할 준비가 되어 있다 라는 것을 가르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피와 스핑키가 어른이 된 후 만나서 결혼을 한다면 어떤 대화를 나눌지가 궁금합니다 ^^
최은아2026-07-27 00:36
교수님의 글을 다시 읽으며 예전에 EBS에서 봤던 유대인의 교육이 떠올랐습니다. 유대인 가정은 대부분 자녀가 아주 많다고 합니다. 대 가족 중 어린 두 자녀를 돌보는 유대인 엄마의 모습이 나왔는데 화를 하나도 안내더라고요. 유대인들은 내 자녀가 메시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자녀양육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화를 낼 수 가 없지요. 영상 속 장면은 동생에게 그림을 빼앗긴 아이가 엄마에게 짜증을 부리고 그런 아이에게 다른 그림을 계속 제안하는 엄마의 모습이 나왔습니다. 결국 아이는 엄마의 사랑을 느꼈는지 그중의 그림을 선택했습니다. 인터뷰에서 엄마는 신이 축복으로 10명의 아이를 주셨는데 거기에 부응하기 위해 평온한 마음과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축복 속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은 얼마나 행복할까요? '엄마도 사람이라 화가나!'가 아니라 신앙으로 인내하는 엄마의 모습이 스핑키 가족들의 노력처럼 느껴졌습니다. 탕자의 비유 속 아버지처럼 꾸짖지 않으시고 상주시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 참 감사합니다. 사람의 감정에 집중하는 교육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에 집중하는 교육이 참 교육임을 다시 한 번 배우게 됩니다.
곽서연2026-07-27 00:40
<소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 > 에서 끝에
'모든 것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 왔어요'
라는 부분에서 정말 모든 것이 제 자리로 돌아왔을 까 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아이들의 기질과 성격에 따라 화를 다스리고 풀리는 시간이 다르겠지만
아이가 달리고, 울고, 자연을 보고,물결을 본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이 되었을 지 의문이 들어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 올수 있을까?
근본적인 것이 해결되지 않으면서 이런 상황이 반복된다면 소피라는 아이는 성인이 되어 행복할까?
그리고 작가는 표지 부분에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방법으로 화를 다스리지요'
라고 했는데 여기서는 '관계'에 관한 것이 중요한 것이지 '화'를 다스리는 것에 대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모든 것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 왔어요'
라는 부분에서 정말 모든 것이 제 자리로 돌아왔을 까 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아이들의 기질과 성격에 따라 화를 다스리고 풀리는 시간이 다르겠지만
아이가 달리고, 울고, 자연을 보고,물결을 본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이 되었을 지 의문이 들어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 올수 있을까?
근본적인 것이 해결되지 않으면서 이런 상황이 반복된다면 소피라는 아이는 성인이 되어 행복할까?
그리고 작가는 표지 부분에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방법으로 화를 다스리지요'
라고 했는데 여기서는 '관계'에 관한 것이 중요한 것이지 '화'를 다스리는 것에 대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이아름2026-07-27 01:29
가장 가깝기에 배려보다는 감정을 마음껏 표현하면서도, 또 가장 가깝기에 더욱 아끼고 배려해야 하는 사람들이 가족인 것 같습니다.
부루퉁한 스핑키 그림책의 첫장면에서 “우리 식구는 말로는 날 사랑한다고 하면서 순 엉터리야. 비록 엄마는 안 그렇지만”의 문장이 너무 좋았습니다.
엄마는 언제나, 늘 스핑키에게 사랑 표현을 했기에 스핑키도 엄마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았습니다.
심통이난 스핑키도, 엄마도, 아빠도,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을 찾고, 사랑을 표현하며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사랑을 가족들에게서 찾고, 느끼는 것이 너무 좋았습니다. 사실은 스핑키도 가족들이 사랑하는 것을 알았기에, 이렇게 말도 안되는 투정을 부릴 수 있었을 거에요.
아무리 힘들고 어렵고 속상하더라도 가족 안에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이해되지 않아도, 답답해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쉬고 있는 요즘 내가 가르쳤던 아이들이 많이 생각나는 요즘입니다. 아이들이 투정을 부리고 고집을 부릴 때, 바른 행동을 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데 더 집중했던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사랑이 먼저임을 알고 있음에도 너무도 정신없고, 바쁘게 흘러가는 교실 속에서는 자꾸 잊게 되고, 당장에 눈앞에 보이는 것들만을 바라본 저를 회개하며,
생각나는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그 무엇보다 사랑이 우선임을 보여줄 수 있는 교사가 되길 다짐합니다.
그리고, 사실 이 사랑은 엄마, 아빠에게서 먼저 받는 아이들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너무나도 바쁜 현대사회에서 사랑을 표현할 시간도, 여력도 없는 각각의 가정들이 회복되어
사랑에 목마른 아이들이 아닌, 엄마아빠의 안정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는 아이들에 되기를 소망합니다.
나 또한 하나님 앞에서 스핑키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명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면 투정부리고 자존심을 내세웠던 저입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온갖 방법으로 하나님의 품으로 돌이키셨고, 그 겹겹이 쌓인 사랑 덕분에 지금의 내가 되었습니다.
나의 삶 속에서 다양한 사건들을 통해 성장해서 이미 성숙해졌다고 생각하면서도 또 생각지 못한 어려움이 있을 때는 넘어지는 나를 보며,
하나님을 더 깊이 묵상하고, 더 깊이 만나는 내가 되기를 고백합니다.
부루퉁한 스핑키 그림책의 첫장면에서 “우리 식구는 말로는 날 사랑한다고 하면서 순 엉터리야. 비록 엄마는 안 그렇지만”의 문장이 너무 좋았습니다.
엄마는 언제나, 늘 스핑키에게 사랑 표현을 했기에 스핑키도 엄마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았습니다.
심통이난 스핑키도, 엄마도, 아빠도,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을 찾고, 사랑을 표현하며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사랑을 가족들에게서 찾고, 느끼는 것이 너무 좋았습니다. 사실은 스핑키도 가족들이 사랑하는 것을 알았기에, 이렇게 말도 안되는 투정을 부릴 수 있었을 거에요.
아무리 힘들고 어렵고 속상하더라도 가족 안에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이해되지 않아도, 답답해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쉬고 있는 요즘 내가 가르쳤던 아이들이 많이 생각나는 요즘입니다. 아이들이 투정을 부리고 고집을 부릴 때, 바른 행동을 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데 더 집중했던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사랑이 먼저임을 알고 있음에도 너무도 정신없고, 바쁘게 흘러가는 교실 속에서는 자꾸 잊게 되고, 당장에 눈앞에 보이는 것들만을 바라본 저를 회개하며,
생각나는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그 무엇보다 사랑이 우선임을 보여줄 수 있는 교사가 되길 다짐합니다.
그리고, 사실 이 사랑은 엄마, 아빠에게서 먼저 받는 아이들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너무나도 바쁜 현대사회에서 사랑을 표현할 시간도, 여력도 없는 각각의 가정들이 회복되어
사랑에 목마른 아이들이 아닌, 엄마아빠의 안정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는 아이들에 되기를 소망합니다.
나 또한 하나님 앞에서 스핑키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명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면 투정부리고 자존심을 내세웠던 저입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온갖 방법으로 하나님의 품으로 돌이키셨고, 그 겹겹이 쌓인 사랑 덕분에 지금의 내가 되었습니다.
나의 삶 속에서 다양한 사건들을 통해 성장해서 이미 성숙해졌다고 생각하면서도 또 생각지 못한 어려움이 있을 때는 넘어지는 나를 보며,
하나님을 더 깊이 묵상하고, 더 깊이 만나는 내가 되기를 고백합니다.
강다혜2026-07-27 17:33
저는 자녀를 많이 키우기 때문에, 아무래도 주변에서 자녀 키우는 것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그 중 가장 빈번한 질문은 "사모님네 아이들은 집에서 안 싸워요?"라고 묻는 것입니다. 저희 집 아이들이 다른 집 아이들에 비해 서로 친밀하게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이나 봅니다. 그래서 그 질문을 받을 때 저는 "저는 아이들이 싸울 때 때려요~~"라고 웃으면서 대답합니다. 제가 때린다고 하면 모두 놀라시는데, 저와 저의 남편은 아이들의 다툼과 아이들이 서로 주고 받는 말에도 굉장히 간섭을 많이하고 지적도 많이 합니다. 그래서 실제로 아이들이 너무 심했다 싶으면 벌도 주고, 정말 심할 때는 손바닥을 한 대씩 때리기도 했습니다. 저의 교육방침을 강조하거나 소개하거나 제가 맞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고,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아이들의 다툼과 갈등에는 부모의 개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성경 교리에서 말하는 전적 타락은 우리 인간이 아담의 선악과 사건 이후로 모든 부분에서 타락했다고 말합니다. 타락한 우리는 사실 스스로 정화시키거나 선해질 수 없습니다. 발달심리에서 성숙주의 이론가들은 어린 아이들은 선하고 아름답게 보기 때문에 가만히 놔두어도 알아서 발달의 시간표에 따라 아이들이 자라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우리 인간은 타락한 존재이기 때문에 개입과 가르침이 없으면 끝도 없이 타락의 구렁텅이로 빠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소피가 화나면...> 그림책에서 부모의 역할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 것에 대한 교수님의 의문은 적절하고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부루퉁한 스핑키>의 가족은 소피네 가족과 조금 다릅니다. 물론 스핑키의 마음을 제대로 보려 하지 않는 부분도 있고, 자신의 관점과 생각에서 스핑키를 위로하려고 하는 모습도 있지만 끝까지 스핑키를 아끼고 계속해서 애정을 보여주기 때문에 갈등이 해결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다른 타인과 갈등이 생기면 시간이 알아서 해결해주겠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거나, 기도하면 하나님이 뚝딱 들어주실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아름다운 관계는 시간을 계속 비비면서 쌓아가야 하는 것 입니다. 하늘에서 갑자기 해결책이 뚝딱 떨어지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지만,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셔서 제자들과 함께 공생애를 보내신 것으로 보면, 분명 직접적으로 오랜시간 인내를 가지고 가르치고 따르고 믿고 의지하고 식사하고 대화하는 시간들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 <부루퉁한 스핑키>의 가족은 소피네 가족과 조금 다릅니다. 물론 스핑키의 마음을 제대로 보려 하지 않는 부분도 있고, 자신의 관점과 생각에서 스핑키를 위로하려고 하는 모습도 있지만 끝까지 스핑키를 아끼고 계속해서 애정을 보여주기 때문에 갈등이 해결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다른 타인과 갈등이 생기면 시간이 알아서 해결해주겠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거나, 기도하면 하나님이 뚝딱 들어주실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아름다운 관계는 시간을 계속 비비면서 쌓아가야 하는 것 입니다. 하늘에서 갑자기 해결책이 뚝딱 떨어지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지만,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셔서 제자들과 함께 공생애를 보내신 것으로 보면, 분명 직접적으로 오랜시간 인내를 가지고 가르치고 따르고 믿고 의지하고 식사하고 대화하는 시간들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민규2026-07-28 02:42
윌리암 스타이그의 그림책들을 보며 여러 모로 감탄하던 차에
부루퉁한 스핑키 책을 보게 되었습니다.
전혀 훈육되지 않은, 자신을 왕으로 생각하는, 자기중심적이고 권위없는 아이와
올바로 훈육하지 않는 비성경적 부모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을 보면서
이 책을 읽는 어린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책 시작부에서 누나는 동생을 스컹크라고 불렀고
아마도 형은 스핑키와 필라델피아가 어디의 수도냐는 문제로 맞네 틀리네 감정싸움이 됐던 것 같고
스핑키는 벨기에의 수도라고 계속 우긴 듯 합니다.
이후에 아버지가 손가락으로 지적하고 훈계하는 듯한 장면이 나옵니다.
훈계를 받는 스핑키의 표정은 반항적입니다. (물론 상황에 따라 억울했을 수도 있지만)
아빠에게 저런 태도로 훈계받도록 훈계가 마무리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빠도 자녀의 마음을 다룰 줄 알아야 하지만 불손한 태도에 대해서는 징계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엄마는 스핑키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한다고 말했고
아빠도 스핑키가 하나도 골낼일이 아니다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럼에도 엄마가 다정하게 스핑키에게 다가오 키스와 사랑표현을 했고
스핑키는 화나게 한 대상이 엄마가 아니었음에도
엄마에게 자신이 화가 났다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합니다.
스핑키의 생각에도 자신을 화나게 한 대상에서 엄마가 제외됨에도
이런 태도를 유지하는 것에 대해서 엄마 역시 적절히 가르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 장면에서는 출근하시는 아빠를 보고 자신에게 사과를 해야 마땅했다는 것처럼
석유 깡통을 발로 뻥 차며 "무슨 아빠가 저래!" 라며
폭력적이고 반항적 태도를 보이며 자녀로서 매우 불손한 모습을 보입니다.
평소에 부모가 얼마나 친구처럼 대했는지 에상이 됩니다.
스핑키는 부모와 자녀의 경계가 모호한 상태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후에도 누나와 형은 스핑키에게 계속 찾아와 사과를 했고
또 제일 친한 친구들이 스핑키에게 다가와 재밌게 해주려고 했는데
스핑키는 친구를 발로 차버렸습니다.
자신이 기분이 나쁘면 이렇게 자신의 기분에 따라
갈등의 대상자도 아닌 제3자에게도 폭력을 써도 되는 줄 아는 아이인 것 같습니다.
친구들이 화나게 한 내용이 없고. 오히려 스핑키가 좋아하는 놀이였다고 나옵니다.
이런 장면을 만약 부모가 봤다면 호되게 징계해서
다시는 친구에게 폭력을 쓰지 않도록 했어야 하는데
책에서는 전혀 심각성도 인지되지 않은 듯 그냥 이야기가 넘어갑니다.
이후에는 아버지가 말씀하시는데 손으로 귀를 막는 행동을 아버지 앞에서 합니다.
이런 오만불손한 태도를 보이는데 아빠는 이것에 대해서도 전혀 지적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할머니까지 오셔서 선물과 다정하게 인사하시는데도
해먹에서 일어나 인사와 감사를 표현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아빠,누나,형 때문에 화가 난 상태이기 때문에
할머니에게조차 이런 불손한 태도를 이어갑니다.
그림책의 마지막에는 스핑키가 화를 간신히 푼 후에
'이후에는 식구들이 스핑키를 훨씬 더 세심하게 베려해줬다'며 책이 끝납니다.
이것이 올바른 성경적인 가정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지...
이런 자녀와 부모의 모습을 본 어린이 독자는 어떤 생각을 할까..
'나도 화가 나면 이럴 수 있는 것이구나. 그리고 좋은 가족이라면 이렇게 내 화를 풀어주는 것이 마땅하구나.
내가 감정적으로 화나면 상관없는 사람들에게도 저럴 수 있는 것이구나..
이렇게 자란 스핑키는 과연 어떤 청소년으로 성장할까?
자기중심적이고 남들이 자기의 기분을 늘 살피고 베려해야만 하고
내가 감정적으로 화가 나면 부모도 상관없고 할머니고 친구도 없는 아이.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잠언 13:24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네가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의 영혼을 스올에서 구원하리라 잠언 23:13~14
부모의 이런 양육태도는 스핑키의 죄성과 성품을 다뤄주지 못하고 스올에서 구원하지 못하게 될 것 같습니다.
아들이 10살 때 친구들에게서 습관적 "짜증난다"는 언어습관을 배워온 적이 있었습니다.
아빠로서 너의 인생이 불행해지지 않도록 그 말을 다시 내뱉으면 체벌하겠다고 경고 후
정말 진지하게 언어습관과 감사습관에 대해서 잘 설명해주었습니다.
감사하게도 매를 대지 않아도 되도록 이후에는 아이가 그런 언어습관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저도 친구같은 아빠가 되는 것이 로망이었습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성경적인 자녀양육에 대해 배워나가면서
자녀양육에 있어서도 정말 비성경적인 양육관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절감했었습니다.
제가 만약 성경적인 자녀양육관을 갖고 있는 작가였다면
어린이 독자로 하여금 어떤 것을 배우게 해줄 수 있을까?
어떻게 스토리 텔링을 바꿔야 했을까?
분명한 건 명확히 선을 알려주는 부모의 모습이 나왔어야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부루퉁한 스핑키 책을 보게 되었습니다.
전혀 훈육되지 않은, 자신을 왕으로 생각하는, 자기중심적이고 권위없는 아이와
올바로 훈육하지 않는 비성경적 부모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을 보면서
이 책을 읽는 어린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책 시작부에서 누나는 동생을 스컹크라고 불렀고
아마도 형은 스핑키와 필라델피아가 어디의 수도냐는 문제로 맞네 틀리네 감정싸움이 됐던 것 같고
스핑키는 벨기에의 수도라고 계속 우긴 듯 합니다.
이후에 아버지가 손가락으로 지적하고 훈계하는 듯한 장면이 나옵니다.
훈계를 받는 스핑키의 표정은 반항적입니다. (물론 상황에 따라 억울했을 수도 있지만)
아빠에게 저런 태도로 훈계받도록 훈계가 마무리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빠도 자녀의 마음을 다룰 줄 알아야 하지만 불손한 태도에 대해서는 징계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엄마는 스핑키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한다고 말했고
아빠도 스핑키가 하나도 골낼일이 아니다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럼에도 엄마가 다정하게 스핑키에게 다가오 키스와 사랑표현을 했고
스핑키는 화나게 한 대상이 엄마가 아니었음에도
엄마에게 자신이 화가 났다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합니다.
스핑키의 생각에도 자신을 화나게 한 대상에서 엄마가 제외됨에도
이런 태도를 유지하는 것에 대해서 엄마 역시 적절히 가르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 장면에서는 출근하시는 아빠를 보고 자신에게 사과를 해야 마땅했다는 것처럼
석유 깡통을 발로 뻥 차며 "무슨 아빠가 저래!" 라며
폭력적이고 반항적 태도를 보이며 자녀로서 매우 불손한 모습을 보입니다.
평소에 부모가 얼마나 친구처럼 대했는지 에상이 됩니다.
스핑키는 부모와 자녀의 경계가 모호한 상태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후에도 누나와 형은 스핑키에게 계속 찾아와 사과를 했고
또 제일 친한 친구들이 스핑키에게 다가와 재밌게 해주려고 했는데
스핑키는 친구를 발로 차버렸습니다.
자신이 기분이 나쁘면 이렇게 자신의 기분에 따라
갈등의 대상자도 아닌 제3자에게도 폭력을 써도 되는 줄 아는 아이인 것 같습니다.
친구들이 화나게 한 내용이 없고. 오히려 스핑키가 좋아하는 놀이였다고 나옵니다.
이런 장면을 만약 부모가 봤다면 호되게 징계해서
다시는 친구에게 폭력을 쓰지 않도록 했어야 하는데
책에서는 전혀 심각성도 인지되지 않은 듯 그냥 이야기가 넘어갑니다.
이후에는 아버지가 말씀하시는데 손으로 귀를 막는 행동을 아버지 앞에서 합니다.
이런 오만불손한 태도를 보이는데 아빠는 이것에 대해서도 전혀 지적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할머니까지 오셔서 선물과 다정하게 인사하시는데도
해먹에서 일어나 인사와 감사를 표현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아빠,누나,형 때문에 화가 난 상태이기 때문에
할머니에게조차 이런 불손한 태도를 이어갑니다.
그림책의 마지막에는 스핑키가 화를 간신히 푼 후에
'이후에는 식구들이 스핑키를 훨씬 더 세심하게 베려해줬다'며 책이 끝납니다.
이것이 올바른 성경적인 가정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지...
이런 자녀와 부모의 모습을 본 어린이 독자는 어떤 생각을 할까..
'나도 화가 나면 이럴 수 있는 것이구나. 그리고 좋은 가족이라면 이렇게 내 화를 풀어주는 것이 마땅하구나.
내가 감정적으로 화나면 상관없는 사람들에게도 저럴 수 있는 것이구나..
이렇게 자란 스핑키는 과연 어떤 청소년으로 성장할까?
자기중심적이고 남들이 자기의 기분을 늘 살피고 베려해야만 하고
내가 감정적으로 화가 나면 부모도 상관없고 할머니고 친구도 없는 아이.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잠언 13:24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네가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의 영혼을 스올에서 구원하리라 잠언 23:13~14
부모의 이런 양육태도는 스핑키의 죄성과 성품을 다뤄주지 못하고 스올에서 구원하지 못하게 될 것 같습니다.
아들이 10살 때 친구들에게서 습관적 "짜증난다"는 언어습관을 배워온 적이 있었습니다.
아빠로서 너의 인생이 불행해지지 않도록 그 말을 다시 내뱉으면 체벌하겠다고 경고 후
정말 진지하게 언어습관과 감사습관에 대해서 잘 설명해주었습니다.
감사하게도 매를 대지 않아도 되도록 이후에는 아이가 그런 언어습관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저도 친구같은 아빠가 되는 것이 로망이었습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성경적인 자녀양육에 대해 배워나가면서
자녀양육에 있어서도 정말 비성경적인 양육관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절감했었습니다.
제가 만약 성경적인 자녀양육관을 갖고 있는 작가였다면
어린이 독자로 하여금 어떤 것을 배우게 해줄 수 있을까?
어떻게 스토리 텔링을 바꿔야 했을까?
분명한 건 명확히 선을 알려주는 부모의 모습이 나왔어야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김하순2026-07-28 09:14
이 글을 통해 『소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과 『뿔뚱한 스핀키』 두 작품 속 가족의 역할을 비교해 보며, 그동안 제가 그림책을 얼마나 표면적으로만 읽어왔는지 깊이 성찰하게 되었습니다.
첫째, 예술성에 매료되어 텍스트 속 메시지를 놓쳤던 저의 읽기를 깨달았습니다.
저 역시 『소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을 읽었을 때, 소피가 숲으로 달려가 나무에 올라가고 바람을 느끼며 자연 속에서 스스로 화를 다스리는 아름다운 그림과 연출에 마음을 빼앗겼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작 소피가 화가 났을 때 보여준 가족들의 무관심하고 방관하는 듯한 태도에 대해서는 깊이 들여다보지 못하고 지나쳤습니다. 교수님의 분석을 통해 그림책의 화려한 예술성에만 매료되면 그 안에 숨겨진 본질적인 메시지와 한계를 놓칠 수 있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둘째, '가족이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참된 의미를 보게 되었습니다.
아직 읽어보지 못했던 『뿔뚱한 스핀키』 이야기를 통해 참된 가족의 역할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스핀키가 화가 났을 때, 진심으로 염려하며 나무 밑으로 찾아오고, 담요를 덮어주며 기분을 돌리기 위해 애쓰는 가족들의 세심한 사랑과 정성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결국 그 정성에 마음을 열고 출구 전략을 세우는 스핀키의 모습을 보며, 자녀가 화가 났을 때 품어주고 배려하는 가족의 전인적인 돌봄이 한 아이를 심신이 건강한 사람으로 자라나게 하는 바탕이 됨을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번 아티클을 통해 그림책에 담긴 함축적 의미와 세계관을 신중하게 분별하고, 단순한 표면 읽기를 넘어 텍스트의 심층을 읽어내는 전문가적 안목을 길러야겠다고 다짐합니다. 귀한 통찰을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첫째, 예술성에 매료되어 텍스트 속 메시지를 놓쳤던 저의 읽기를 깨달았습니다.
저 역시 『소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을 읽었을 때, 소피가 숲으로 달려가 나무에 올라가고 바람을 느끼며 자연 속에서 스스로 화를 다스리는 아름다운 그림과 연출에 마음을 빼앗겼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작 소피가 화가 났을 때 보여준 가족들의 무관심하고 방관하는 듯한 태도에 대해서는 깊이 들여다보지 못하고 지나쳤습니다. 교수님의 분석을 통해 그림책의 화려한 예술성에만 매료되면 그 안에 숨겨진 본질적인 메시지와 한계를 놓칠 수 있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둘째, '가족이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참된 의미를 보게 되었습니다.
아직 읽어보지 못했던 『뿔뚱한 스핀키』 이야기를 통해 참된 가족의 역할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스핀키가 화가 났을 때, 진심으로 염려하며 나무 밑으로 찾아오고, 담요를 덮어주며 기분을 돌리기 위해 애쓰는 가족들의 세심한 사랑과 정성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결국 그 정성에 마음을 열고 출구 전략을 세우는 스핀키의 모습을 보며, 자녀가 화가 났을 때 품어주고 배려하는 가족의 전인적인 돌봄이 한 아이를 심신이 건강한 사람으로 자라나게 하는 바탕이 됨을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번 아티클을 통해 그림책에 담긴 함축적 의미와 세계관을 신중하게 분별하고, 단순한 표면 읽기를 넘어 텍스트의 심층을 읽어내는 전문가적 안목을 길러야겠다고 다짐합니다. 귀한 통찰을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화난 자녀의 화 풀기:
『소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과 『부루퉁한 스핑키』에 그려진 가족의 역할
그림책에서 가장 자주 다루어지는 주제는 가족 관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화가 난 자녀가 중심 캐릭터가 되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작품들을 비교해 보면 가족 관계에서의 흥미로운 차이가 드러난다. 이번 칼럼에서는 몰리 뱅(Molly Bang)(1943-)의 『소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와 윌리암 스타이그(William Steig)의 『부루퉁한 스핑키』를 비교해 보고자 한다.
『소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
작가 몰리 뱅은 대학에서 프랑스어를 전공하고 1965년부터 일본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일본어를 공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후 기자로 일하다가 그 직업이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원래 원하던 어린이책의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다. 그는 지금껏 30권이 넘는 그림책을 쓰고 그렸으며 이 책(1999/2013)(When Sophie’s Feelings Are Really, Really hurt)과 다른 두 작품(『할머니와 딸기 도둑』, 『열, 아홉, 여덟』)은 칼데콧 명예상을 받았고, 2011년에는 어린이의 사회적·정서적 안정을 돕는 아동문학 작가로 인정받아 루시 대니얼 상을 받기도 했다.[1] 소피를 그린 일련의 작품들, 『소피가 속상하며, 너무너무 속상하며』, 『소피는 할 수 있어, 진짜진짜 할 수 있어』가 계속 발표되면서 소피라는 소녀는 그의 대표 캐릭터가 되었다. 이 작품들은 부모나 교사들로부터 어린이의 심리를 잘 묘사했다는 측면에서 큰 호평을 받고 있으며, 전문서평가들은 주로 선, 색채와 같은 미술적인 요소가 어떻게 소피의 기분을 표현하고 있는가에 관심을 기울인다.[2]
『소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의 표지에는 파란 눈의 소녀가 무엇에 화가 났는지 입을 앙 다물고 있고 바탕 화면은 불타는 오렌지 색으로 채색되어 있다. 바로 이 소녀가 책 제목의 소피라는 것은 금방 알수 있다. 이 작품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소피가 고릴라 인형과 신나게 놀고 있을 때 언니가 자기 차례라고 그 고릴라를 뺏아아 간다. 둘이 고릴라 인형을 움켜쥐고 옥신각신 싸우고 있을 때 엄마가 “이제 언니 차례다, 소피”하며 언니 편을 들고, 인형을 /뺏긴 소피는 트럭 위로 엎어진다. 그 다음 장면에서 소피의 얼굴은 클로즈업되고 소피의 파란 눈은 동그래져 있고, 콧구멍은 크게 부풀었고, 앙 다문 입은 조금 삐뚤어졌다. 양 갈래로 묶은 머리는 귀 위로 솟구쳐 올라가고 배경 색은 핏빛으로 붉게 물든다. “이런 소피가 진짜 화가 났어요!”
그 다음 장면은 “소피가 쾅쾅 발을 굴러요. 악 소리를 질러요. 뭐든지 닥치는 대로 부숴버리고 싶어요“라는 글 텍스트와 함께 소피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발을 구르고 있고, 그 뒤에 붉게 그려진 소피의 큰 그림자는 소피의 내면에서 솟구쳐오르는 파괴 충동을 표현하는 듯 하다. 소피 그림자의 주먹 부분에 ”와장창“이라는, 거칠고 크게 쓰여진 의성어가 쓰여져 있다. 그 소리에 화면 오른 편에 앉아 있던 고양이도 머리를 번쩍 들고 소피를 바라본다. 드디어 소피는 ”뻘겋게 시뻘겋게 소리쳐요” 이 장면에서 “으아아아“라는 시뻘건 고함 소리는 불기둥처럼 하늘로 날아가고 그 바람에 온갖 가구와 장난감, 문방구류가 허공으로 날라간다. 그 안에 자기 고릴라 인형을 빼앗아간 언니도 보인다. 그것도 모자라 그 다음 장에서 소피는 막 분출하는 화산에 비유되어 그려진다. 콧구멍이 한껏 열린 얼굴의 소피의 몸 주변에는 분노의 열기를 표현하는 듯한 노랗고 붉은 선의 물결이 그려져 있고, 오른 편에는 거칠게 화염을 뿜어내는 화산의 이미지 위에 화산이 분출하는 “화아아앙”하는 글자가 그려져 있다.
그 다음 장에서 소피는 현관문을 “콰당”하고 여닫고 굵은 나무들이 울창하고 고사리가 가득한 어두운 숲속으로 내달린다. 달리고, 달리고, 달리던 소피는 조금 안정을 되찾고 고개를 숙이고는 훌쩍거린다. 주변의 숲속 나무들과 나무 아래 고사리들도 소피의 기분에 동조하는 듯 옆으로 누워 있다. 이제 그림의 붉은 색조는 녹색과 갈색으로 바뀌어 있다. 이제 소피는 안정을 되찾고 주위를 둘러보며 바위, 나무, 고사리를 보고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듣는다. 옆으로 한껏 기울어져 있는 늙은 너도밤나무를 발견한 소피는 그 위로 기어 올라가 나무 둥치를 끌어안고 먼 바다를 바라본다. 소피는 산들바람을 느끼고 일렁이는 물결을 바라본다. 넓은 바다를 바라보자 한결 기분이 나아진 소피는 나무에서 내려와 집으로 향한다. 소피가 현관문을 열고 “다녀왔습니다!”라고 인사하자 식구들이 소피를 반긴다. 현관 앞의 매트에는 “Welcome”이라는 글자가 그려져 있다. 그 다음 장면에서는 가족들이 탁자 주위에 둘러 앉아 있다. 탁자 위에는 소피가 들어올 때 소피 언니가 맞추고 있던 퍼즐이 거의 다 완성되어 있고, 엄마는 소피의 언니를, 아빠는 소피를 안고, 고릴라 인형은 따로 의자에 앉혀 놓았다. “모든 것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어요.” 마지막 장면에서 소피는 이젤에 놓인 캔버스 위에 집 주위의 나무와 집 안의 식구들을 그리고 있다. “소피도 이제 더는 화가 나지 않아요.” 이렇게 해서 집으로 돌아온 소피는 다시 안정을 되찾고 예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온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소피가 현관문을 박차고 밖으로 뛰쳐나간 뒤에 식구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소피는 상당히 긴 시간 혼자 분을 삭이며 밖에 있었다. 사실 둘 이상의 자녀가 있는 집에서 물건으로 인해 다툼이 일어나는 일은 흔하다. 그리고 부모가 그것에 대해 잘못된 판단을 내려 한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일도 종종 일어난다. (소피의 경우도 그런 경우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그 일로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난 소피에게는 놀잇감에 걸려 넘어지는 불운도 더해졌다. 그 바람에 소피의 분노는 극에 달한다. 소피가 분노를 표출하고 가라앉히는 과정에서 부모의 역할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은 소피가 집을 뛰쳐 나갈 때에도 아무런 대처도 하지 않았으며, 스스로 분을 풀고 귀환한 소피를 환영했을 뿐이다. 그 동안 식구들이 소피에 대해 염려했다는 증거는 찾기 힘들다. 그저 소피가 돌아오기를 참고 기다려 준 것인지, 아니면 소피가 이렇게 극도로 화를 표출한 것이 처음이 아니었던 것인지... 결국 “소피는 이제 더는 화가 나지 않아요.”라고 이야기는 마무리 되지만 이 문장의 의미 또한 모호하다. 소피가 이 일로 인해 더 이상 화를 내지 않았다는 것인지, 아니면 그 이후에도 소피가 화날 일이 없었다는 것인지...
『부루퉁한 스핑키』
<부루퉁한 스핑키> 자세히 보기
이 소피의 가족과 대조적인 모습이 윌리암 스타이그(1907-2003)의 『부루퉁한 스핑키』에 그려져 있다. 윌리암 스타이그는 2003년도에 95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왕성하게 다수의 그림책을 창작하였고 1970년에 『당나귀 실베스터와 요술 조약돌』로 칼데콧 메달을 수상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림책 작가가 되기 전 『뉴스위크』에서 만화가로서의 경력을 쌓은 작가답게 그는 이 작품에서도 코믹한 분위기로 스핑키 가족의 모습을 그려낸다.
이 이야기에서 스핑키가 화가 난 이유는 면지와 표제지에 그려진 누나, 형, 아버지와의 말(놀림, 꾸중)에 기인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본문의 첫 장면에서 스핑키 역시 집에서 나와 풀밭에 배를 깔고 엎드리고는 식구들에게 불평을 터뜨린다. 제일 먼저 누나가 와서 별명을 불렀다고 미안해하고, 형이 와서 얼렁뚱땅 농담을 하며 점심 먹으러 들어오라고 달래지만 그는 그들에게 등을 돌리고는 나무 위로 올라간다. 스핑키 부모가 창문으로 이 모습을 지켜보다가 엄마는 자신이 그와 얘기해 보겠다고 하지만, 아빠는 저러다 제 풀에 지칠 거라며 그냥 두라고 한다. 어두워질 무렵 엄마가 해먹에 누워있는 스핑키에게 사랑한다고 하고 담요를 덮어주고 뽀뽀를 했지만 그의 마음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다. 다음 날 아침, 아빠가 일하러 나갈 때 집 뒤에 숨어 있던 그는 아빠가 모른 척하며 가버리자 깡통을 발로 차며 불만을 늘어놓는다. 정오에 엄마가 해먹에 누워있는 그에게 음식을 가져오지만 스핑키는 쳐다보지도 않고 갑자기 모두들 자신에게 친절해 졌다고 생각한다. 그는 엄마 앞에서는 음식을 외면한 듯 했지만 엄마가 접시를 가지러 왔을 때 정작 자기가 좋아하는 도넛과 포도는 먹어 치운 후였다. 스핑키는 계속 집 주변의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지만 누나와 형은 그를 찾아내고 말문을 열게 하려고 애쓴다. 누나, 형, 엄마가 각기 이런 저런 방법으로 스핑키를 달래려고 노력했지만 소용이 없다.
서커스단이 집 앞을 지나갈 때에도 스핑키는 해먹에 앉아 눈길도 돌리지 않으면서 “무슨 식구들이 이래! 처음에는 내 기분을 망쳐 놓더니 이제 와서 서커스단이나 구경하라고!” 라고 툴툴거린다. 스핑키 친구들이 와서 그의 기분을 돌리려고 애쓰지만 헛수고일 뿐이다. 식구들이 광대 아저씨까지 동원하여 그를 웃기려 하자 그는 마침내 화를 풀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자존심 때문에 그렇게 할 수도 없다. 결국 스핑키는 식구들을 위한 깜짝 이벤트를 준비하기로 하고 광대 옷을 입고는 아침 식사에 식구들을 초대한다. 그 다음 장면에서 스핑키는 아버지의 품 안에 안겨 있고 글은 이렇게 끝맺는다. “그 다음부터 식구들은 스핑키를 훨씬 더 세심하게 배려해 주었어요. 그게 그리 오래 못 가는 게 탈이지만.”
가볍고 코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글과 그림 모두 등장인물 각각의 심리를 매우 세심하게 그려내고 있다. 스핑키가 화가 난 이유는, 소피와는 달리 어떤 물건에 대한 소유욕이나 신체적 피해 때문이 아니었다. 순전히 누나, 형, 아빠의 언어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골이 잔뜩 나서 그들을 외면하고 있는 스핑키, 이런 저런 방법으로 그를 달래려고 애쓰는 가족들과 친구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스핑키의 무시와 거부, 결국 이틀에 걸쳐 이어지는 식구들의 관심과 정성에 화를 풀 출구 전략을 세우는 스핑키, 그리고 스핑키의 깜짝쇼가 빚어낸 유쾌한 결말까지, 스핑키 가족이 빚어내는 이 모든 일련의 사건들은 독자들을 내내 미소짓게 한다.
두 작품에서 가족의 역할
소피와 스핑키의 가족은 여러 측면에서 비교된다. 소피가 화난 이유는 인형 때문이었지만 스핑키가 화가 난 이유는 가족의 언어 때문이었다. 그리고 소피가 화를 푸는 과정에서 가족의 역할은 거의 없었으나 스핑키의 가족은 전심으로 스핑키를 염려하고 그의 기분을 돌이키려고 애썼다. 게다가 그 결말은 인생의 통찰을 담고 있기까지 하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말로 상처를 준 후 후회하고 반성하지만 얼마 안 가 그 결심은 잊혀지고 똑같은 실수를 거듭한다. 그렇게 우리는 실수하고, 사과하고, 용서하고, 용서받으며 살아가기를 반복한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 식구들은 스핑키를 훨씬 더 세심하게 배려해 주었어요. 그게 그리 오래 못 가는 게 탈이지만.”이라는 화자의 서술에 공감하며 미소짓게 된다. 이 사건 이후에 스핑키는 어떻게 되었을까. 때로는 식구로부터 원하는 만큼의, 혹은 기대하던 방식의 배려를 받지 못해 화가 날 때도 있겠지만 심신이 건강한 사람으로 자라날 것이다. 그의 곁에는 그를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해주는 가족과 이웃들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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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은자 |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 명예교수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 명예교수이며 그림책 평론 작업을 하고 있다. 미국 University of Michigan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1989년부터 2023년까지 성대 아동청소년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2021년부터 웹진 <그림책 베이직>에 '그림책의 세계관' 칼럼을 연재하고 있으며, 그림책 세계관 연구소에서 운영하고 있는 '그림책 세계관 지도사 과정'에서 '그림책의 세계관', '기독 신앙과 그림책 읽기'를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기독교 세계관으로 아동문학보기>, <그림책의 세계관>, 공저로는 <그림책의 이해1, 2>, <그림책과 예술교육>, <세계 그림책의 역사>, <어린이교육전문가가 엄선한 100권의 그림책>, <신앙이 자라는 그림책 읽기>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