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의 세계관
나무 인형들이 들려주는 창조 이야기 윌리암 스타이그의 『노랑이와 분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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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옥2025-05-18 22:58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하나님의 택함이 아니라 부모님이 계시기 때문에 태어난다고 얘기한다. 물론 이 말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부모님을 통해 우리를 태어나게 하신분은 하나님인데 우리는 그 사실을 자주 혹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또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그저 우연의 결과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많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우연히 ~~했기 때문에'라는 말을 자주 내뱉는다. 그런데 과연 내가 겪는 일에 우연이라는게 있을까? 어떤 일의 원인을 찾아가다 보면 결코 우연이라는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노랑이처럼 '~~해서 ~~했을 것이다' 라는 가설은 나의 생각일뿐 그것이 어떤 진리일 수 없다. 그냥 그렇게 믿고 싶을 뿐인 것이다. 내 마음 속에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없기 때문에 어떤 다른 대상을 찾는 일에 열심히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다양한 여러 매체들로 사람의 사고가 짧아졌다는 위의 글처럼 우리가 사고할 수 있는 생각의 힘을 잃는다면 하나님이 우리의 창조주 되심을 믿을 수 있을까? 이 모든 것이 마음의 문제라 지적하신 교수님 말처럼 우리의 주인은 창조주 하나님 한분 뿐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 마음의 주인이 바뀌는 순간 나는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더욱더 하나님의 말씀으로 분별할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 책은 단순히 진화론과 창조론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어디에 두어야 하며 하나님의 창조사역이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 그 어떤한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놀라운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됐다.
윤정민2025-05-19 22:30
노랑이와 분홍이는 그림책 베이직 사이트를 통해 알게 되었고, "보편 진리를 간명하게 전달하는!!" 다시 봐도 정말 놀랍고 탁월한 그림책인 것 같습니다.
이런 그림책을 늘 찾고 있기도 하지만, 창조주의 아름다우심 전지전능하심의 아주아주 작은 조각이라도 담는 이런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아름답고 예쁘나 우리를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고, 허무주의에 빠지게 하고, 하나님을 오해하게 하고, 인간의 존재 가치를 떨어뜨리는...
그런 책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것에 문화에 얼마나 많이 녹아져 있는지...) 그림책 세계관을 공부하면서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그런데.. "좋은 책"을 생각할 때..
"성인의 입장에서는 좋은 가치를 담고 있는 것 같은데, 아이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추상적인 단어들을 사용해서 아이들이 지루해 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책들은 어떻게 바라봐야할까.."고민이 좀 있습니다.
노랑이와 분홍이처럼 간결하고 재밌고, 진리를 담고 있으면 너무 좋을텐데요!
비기독교적 세계관의 책들만 보다가 노랑이와 분홍이를 보니 뭔가 씻겨나가는 기분이네요. ㅎ
이런 그림책을 늘 찾고 있기도 하지만, 창조주의 아름다우심 전지전능하심의 아주아주 작은 조각이라도 담는 이런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아름답고 예쁘나 우리를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고, 허무주의에 빠지게 하고, 하나님을 오해하게 하고, 인간의 존재 가치를 떨어뜨리는...
그런 책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것에 문화에 얼마나 많이 녹아져 있는지...) 그림책 세계관을 공부하면서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그런데.. "좋은 책"을 생각할 때..
"성인의 입장에서는 좋은 가치를 담고 있는 것 같은데, 아이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추상적인 단어들을 사용해서 아이들이 지루해 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책들은 어떻게 바라봐야할까.."고민이 좀 있습니다.
노랑이와 분홍이처럼 간결하고 재밌고, 진리를 담고 있으면 너무 좋을텐데요!
비기독교적 세계관의 책들만 보다가 노랑이와 분홍이를 보니 뭔가 씻겨나가는 기분이네요. ㅎ
이수형2025-05-19 23:06
창조와 진화를 믿는 두 부류에 관한 멋진 통찰을 제공하는 그림책과 교수님의 해설입니다. 노랑이의 인식론적 허무주의는 진화를 믿는 자들이 피할 수 없는 굴레인것 같습니다. 결국 진화론 관련 과학자들은 창조를 믿으며 회심하거나, 창조론에 진화적 특성을 넣어 가설을 만들기를 시도합니다. 이런 현상은 창조론이 과학자가 생각해도 완벽하기 때문이겠지요. Chat GPT가 몇몇 회심한 과학자들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어요. 여기에는 유전자 게놈을 만든 과학자도. 천체 우주를 탐구한 과학자도. 진화 생물학자와 미생물학자도 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사실입니다. 그만큼 과학은 불완전하고 허술한 가설들의 모음이라는 증거이며, 노랑이의 변명과 다르지 않을것입니다.
< 진화론을 연구하거나 과학적 배경을 가진 후 기독교 신앙으로 회심한 학자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출처 : Chat GPT)
1. 프랜시스 콜린스 (Francis Collins)
미국의 유전학자로서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이끈 인물입니다. 대학원 시절까지 무신론자였으나, 환자와의 대화를 계기로 신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C.S.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를 읽고 기독교로 회심했습니다. 그는 『신의 언어』라는 저서를 통해 과학과 신앙의 조화를 주장하며, 유신 진화론(BioLogos)을 제안했습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21226 참고
2. 데이비드 랙 (David Lack)
영국의 진화생물학자로서 갈라파고스핀치에 대한 연구로 유명합니다. 그는 기독교 신앙을 유지하면서도 진화론을 받아들였으며, 『진화 이론과 기독교 신앙』이라는 저서를 통해 과학과 신앙의 조화를 모색했습니다.
3. 휴 로스 (Hugh Ross)
캐나다 출신의 천체물리학자로서, 어릴 적부터 과학에 관심이 많았으며, 다양한 종교 경전을 읽은 후 성경의 과학적 설명에 감명을 받아 기독교로 개종했습니다. 그는 우주의 팽창과 빅뱅 이론을 통해 신의 존재를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4. 다렐 R. 포크 (Darrel R. Falk)
미국의 유전학자로서, 생물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BioLogos 재단의 전 회장이었습니다. 그는 『과학과의 평화』라는 저서를 통해 과학과 기독교 신앙의 조화를 주장하며, 유신 진화론을 지지합니다.
5. 리처드 G. 콜링 (Richard G. Colling)
미국의 미생물학자로서, 『무작위 설계자』라는 저서를 통해 진화론과 기독교 신앙의 조화를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재직 중이던 대학에서 일반 생물학 강의에서 배제되는 등의 논란을 겪었습니다.
이러한 학자들은 과학과 신앙이 상충하지 않으며, 오히려 서로를 보완할 수 있다는 관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사례는 과학과 신앙의 조화를 모색하는 데 있어 유익한 참고가 될 수 있습니다.
---------------(GPT)
아쉬운 과학자들 GPT소개이기에 과학자에서 신학자로 완전히 변한 알리스터 맥그래스를 추가합니다.
참고
https://naver.me/50Jhl3A8
https://naver.me/Fql1H6ZJ
< 진화론을 연구하거나 과학적 배경을 가진 후 기독교 신앙으로 회심한 학자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출처 : Chat GPT)
1. 프랜시스 콜린스 (Francis Collins)
미국의 유전학자로서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이끈 인물입니다. 대학원 시절까지 무신론자였으나, 환자와의 대화를 계기로 신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C.S.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를 읽고 기독교로 회심했습니다. 그는 『신의 언어』라는 저서를 통해 과학과 신앙의 조화를 주장하며, 유신 진화론(BioLogos)을 제안했습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21226 참고
2. 데이비드 랙 (David Lack)
영국의 진화생물학자로서 갈라파고스핀치에 대한 연구로 유명합니다. 그는 기독교 신앙을 유지하면서도 진화론을 받아들였으며, 『진화 이론과 기독교 신앙』이라는 저서를 통해 과학과 신앙의 조화를 모색했습니다.
3. 휴 로스 (Hugh Ross)
캐나다 출신의 천체물리학자로서, 어릴 적부터 과학에 관심이 많았으며, 다양한 종교 경전을 읽은 후 성경의 과학적 설명에 감명을 받아 기독교로 개종했습니다. 그는 우주의 팽창과 빅뱅 이론을 통해 신의 존재를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4. 다렐 R. 포크 (Darrel R. Falk)
미국의 유전학자로서, 생물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BioLogos 재단의 전 회장이었습니다. 그는 『과학과의 평화』라는 저서를 통해 과학과 기독교 신앙의 조화를 주장하며, 유신 진화론을 지지합니다.
5. 리처드 G. 콜링 (Richard G. Colling)
미국의 미생물학자로서, 『무작위 설계자』라는 저서를 통해 진화론과 기독교 신앙의 조화를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재직 중이던 대학에서 일반 생물학 강의에서 배제되는 등의 논란을 겪었습니다.
이러한 학자들은 과학과 신앙이 상충하지 않으며, 오히려 서로를 보완할 수 있다는 관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사례는 과학과 신앙의 조화를 모색하는 데 있어 유익한 참고가 될 수 있습니다.
---------------(GPT)
아쉬운 과학자들 GPT소개이기에 과학자에서 신학자로 완전히 변한 알리스터 맥그래스를 추가합니다.
참고
https://naver.me/50Jhl3A8
https://naver.me/Fql1H6ZJ
이수형2025-05-20 02:21
@정민
유신진화론이란 결과는 비록 이상하지만, 기독교를 믿게된 그 사실은 유효하죠. 본문에 크리스천투데이 기사를 참고해주세요. 반면, 정민쌤 설명과 같은 변종들도 우리가 예의 주시하고 걸러내야하는 사실도 맞습니다. 쳇GPT의 한계로 저정도 설명이 되었네요. 아래 링크는 유신진화론은 창조론이 아니라는 크리스천투데이 기사입니다. 이것도 참고 ^^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61504
hyojin2025-05-19 23:33
큰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때 기독학교에 들어가게 되어 면접을 보았습니다. 왜 기독학교에 진학하려고하느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원숭이가 사람이 되었다는 진화론을 믿어야하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싶지 않아요"라는 아이의 대답에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이들도 고민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성경을 열고 첫페이지에서 나오는 창조에 대한 말씀이 아이들이 읽는 정보그림책과 달라서 혼란스러울수도 있겠고, 또 신앙이 적당히 희석되고 타협되는 첫번째 현장이 될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창조론을 지지하는 이와같은 그림책이 아이들에게 더 많이 읽혀져야겠습니다.
어쩌면 성경을 열고 첫페이지에서 나오는 창조에 대한 말씀이 아이들이 읽는 정보그림책과 달라서 혼란스러울수도 있겠고, 또 신앙이 적당히 희석되고 타협되는 첫번째 현장이 될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창조론을 지지하는 이와같은 그림책이 아이들에게 더 많이 읽혀져야겠습니다.
yunkyung2025-05-20 07:05
그림책 속 노랑이의 모습을 통해 진화론 적 입장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명쾌하게 보여주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림책을 읽고 난 뒤, 마음 한편에 시원함을 느끼면서도 다윈의 진화론이 단순히 생물학적 범위를 넘어 시간이 흐르며 인간의 삶 전반을 지배하는 세계관으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에 탄식이 나옵니다. 특히 전에 없던 물질적 풍요를 누리던 시대에 등장한 진화론을 지지하며 창조 주 하나님을 배제하려는 세상의 모습은 지금의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지요.
죄로 인해 ‘우연’을 진리로 가장한 것에 더하여 왜곡된 세계관들이 진리의 자리를 앞다투는 이 시대에 영적 시야를 밝히는 도구로 「노랑이와 분홍이」와 같은 탁월한 그림책이 많이 창작되어 쓰이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이들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는 말씀이 진리임을 깨닫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죄로 인해 ‘우연’을 진리로 가장한 것에 더하여 왜곡된 세계관들이 진리의 자리를 앞다투는 이 시대에 영적 시야를 밝히는 도구로 「노랑이와 분홍이」와 같은 탁월한 그림책이 많이 창작되어 쓰이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이들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는 말씀이 진리임을 깨닫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with Chang2025-07-04 13:32
윌리엄 스타이그 작가의 『노랑이와 분홍이』를 통해 창조와 존재의 본질에 대해 다시금 깊이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짧고 소박한 그림책 속에서도 창조주의 손길과 인간 존재의 근원을 날카롭게 질문하고 드러낼 수 있다는 사실에 감동했습니다.
이 작품에서 노랑이와 분홍이의 대화를 통해 진화론과 창조론의 본질적인 차이를 쉽고도 명쾌하게 보여주는 통찰이 놀라웠습니다.
무엇보다 스타이그 작가는 그림책 작가이기 이전에 세상의 가치관과 타협하지 않는 용기 있는 크리스천이었기에, 이러한 신앙적 세계관을 작품에 자연스럽게 녹여낼 수 있었음을 배웁니다.
저 역시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밝히고, 그분과 동행하며 감사하는 피조물로서의 삶을 살 것을 다짐합니다.
귀한 가르침에 깊이 감사드리며,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더욱 확장되길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짧고 소박한 그림책 속에서도 창조주의 손길과 인간 존재의 근원을 날카롭게 질문하고 드러낼 수 있다는 사실에 감동했습니다.
이 작품에서 노랑이와 분홍이의 대화를 통해 진화론과 창조론의 본질적인 차이를 쉽고도 명쾌하게 보여주는 통찰이 놀라웠습니다.
무엇보다 스타이그 작가는 그림책 작가이기 이전에 세상의 가치관과 타협하지 않는 용기 있는 크리스천이었기에, 이러한 신앙적 세계관을 작품에 자연스럽게 녹여낼 수 있었음을 배웁니다.
저 역시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밝히고, 그분과 동행하며 감사하는 피조물로서의 삶을 살 것을 다짐합니다.
귀한 가르침에 깊이 감사드리며,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더욱 확장되길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전보람2025-07-08 22:55
그림책에 대해 알고 공부하게 된 후로 저는 윌리엄 스타이그의 팬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자신있게 말하는 용기와 위트있는 표현, 짧은 이야기속에도 깊게 전해지는 감동이 윌리엄 스타이그의 매력이 아닌가 싶습니다. 노랑이와 분홍이 책은 복잡하지도 어렵지도 않게 너무 당연하다는 듯 진화론이 잘못된 것임을 알려줍니다. 왜 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창조와 진화에 대해 이렇게 쉽게 말하지 못하고 어려운 이야기로만 뱅뱅 돌며 얘기했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노랑이가 나름 열심히(?) 계속 생각해내는 허무한 상상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 생각해보며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손경남2025-07-09 05:03
그림책 속에 담긴 작가의 세계관이 어떠한지에 따라, 진리가 이 세상에 어떻게 선포되고 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윌리엄 스타이그의 『노랑이와 분홍이』를 통해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말씀을 기독교인들은 절대적인 진리로 믿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이 진리를 과학적 관점에서 설명 가능한 하나의 가설로 격하시키며, 창조론과 진화론 사이의 논쟁을 계속 이어가고 있습니다.
“나나 너처럼 복잡하고 완벽한 걸 누가 만들 수 있겠니?”라고 말하던 노랑이는, 자신의 존재가 복잡하고 완벽하다고 여기지만, 동시에 그런 자신이 고작 우연히 생겨났다고 말합니다. 또한 여러 질문에 답할 수 없다며 어떤 것은 영원한 비밀로 남겨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모습에서 우리는, 자기 존재를 완벽하다고 자부하면서도 그것이 우연의 산물이라고 믿는 노랑이의 말 속에 담긴 모순과 이율배반을 보게 됩니다.
반면, “분명히 누군가 우리를 만들었을 거야”라고 말하는 분홍이는, 오히려 자신의 존재를 더 가치 있고 완전하며, 창조주에게 소중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진리는 논쟁할 만큼 복잡하지 않으며, 오히려 단순하고 명료한 것임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 장면이었습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짧은 이야기 속에 진리를 명확하고 재미있게, 그리고 쉽게 전해준 윌리엄 스타이그 작가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신애2025-11-14 15:02
이 평론을 읽으며, 이 짧은 책과 평론을 통해 무신론, 진화론이라는 믿음을 선택한 사람들의 민낯을 보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찾아 책의 표지를 바라보며 나는 어떤 캐릭터(성품)을 지닌 사람으로 이 땅위에 서 있을지 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분홍이가 가진 성품에서 감동이 되는 점들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1. 믿음있는 자의 여유와 자유
작품 속 노랑이와 분홍이 두 캐릭터는 모두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처음엔 알지 못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태도는 극명히 달랐습니다.
처음엔, 우리 존재에 대해 먼저 사색하고 질문하며 답을 찾으려는 노랑이의 모습이 기특하고 더 똑똑해 보였지만, 결국 그는 허우적대기만 할 뿐 진실에 조금도 가까이 가지 못했습니다.
반면,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분홍이는 ‘짧고 직관적인 답’을 내리는 의심이 없는 캐릭터였습니다. 오히려 노랑이의 '우연'이란 설명에 웃음이 터지거나, 노랑이의 현란한 설명에 중간 중간 간략한 질문들로 논리의 헛점을 짚어냅니다. 이렇듯 분홍이는 믿음 위에 서 있는 ‘여유’와 ‘자유’를 지닌 모습이었습니다.
2. 마음이 청결한 자의 반응
분홍이는 노랑이를 보는 순간, 즉시 자신들이 누군가의 훌륭한 작품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창조자를 지각하는 즉각적인 반응은 마음이 깨끗한 자의 모습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5:8)’라는 말씀처럼, 분홍이는 분명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복이 있는 청결한 성품을 지닌 것이 확실합니다.
인간이 단순히 포유류의 한 종류에서 분화되어온 동물이라면, 우리는 사람 안에서 그렇게 아름답고 신비로운 하나님의 창조하심을 발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태어난 지 70일 되던 날 아기가 처음으로 저를 보고 ‘깔깔’ 웃던 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먹고 자고 눈만 껌뻑거리던 50cm 남짓한 작은 몸 안에 인격과 영혼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마주했을 때 느낀 신비로운 충격은 하나님의 창조하심을 엿볼 수 있는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아기가 자라나는 모습을 보면 그 작은 존재 안에 설계해두신 하나님의 신비로움을 계속해서 보게 됩니다.
3.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
분홍이의 성품처럼 간결하고 어린아이 같이 의심없는 믿음을 지닐 때, 오히려 진실과 진리에 가까운 사람이 될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가끔 저는 예수님이 정말 여전히 살아계신지 의심이 들거나 나도 모르는 사이 하나님을 잊기도 합니다. 마치 목각인형이 그것을 만든 인간을 이해하지 못하듯 사람 역시도 하나님을 부분적으로 아는 것에 그칩니다. 그렇기에 분홍이가 지녔던 의심없는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 즉 '간결한 믿음'을 지닌자가 되기를 기도하게 됩니다. 분홍이처럼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을 정확하게 알지는 못해도, 하나님이 계심을 의심 없이 믿는 자세야말로 그를 진실의 자리에 머물게 해 준 ‘성품’이었다는 사실을 다시금 되새깁니다.
그리고 이 책을 찾아 책의 표지를 바라보며 나는 어떤 캐릭터(성품)을 지닌 사람으로 이 땅위에 서 있을지 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분홍이가 가진 성품에서 감동이 되는 점들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1. 믿음있는 자의 여유와 자유
작품 속 노랑이와 분홍이 두 캐릭터는 모두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처음엔 알지 못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태도는 극명히 달랐습니다.
처음엔, 우리 존재에 대해 먼저 사색하고 질문하며 답을 찾으려는 노랑이의 모습이 기특하고 더 똑똑해 보였지만, 결국 그는 허우적대기만 할 뿐 진실에 조금도 가까이 가지 못했습니다.
반면,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분홍이는 ‘짧고 직관적인 답’을 내리는 의심이 없는 캐릭터였습니다. 오히려 노랑이의 '우연'이란 설명에 웃음이 터지거나, 노랑이의 현란한 설명에 중간 중간 간략한 질문들로 논리의 헛점을 짚어냅니다. 이렇듯 분홍이는 믿음 위에 서 있는 ‘여유’와 ‘자유’를 지닌 모습이었습니다.
2. 마음이 청결한 자의 반응
분홍이는 노랑이를 보는 순간, 즉시 자신들이 누군가의 훌륭한 작품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창조자를 지각하는 즉각적인 반응은 마음이 깨끗한 자의 모습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5:8)’라는 말씀처럼, 분홍이는 분명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복이 있는 청결한 성품을 지닌 것이 확실합니다.
인간이 단순히 포유류의 한 종류에서 분화되어온 동물이라면, 우리는 사람 안에서 그렇게 아름답고 신비로운 하나님의 창조하심을 발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태어난 지 70일 되던 날 아기가 처음으로 저를 보고 ‘깔깔’ 웃던 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먹고 자고 눈만 껌뻑거리던 50cm 남짓한 작은 몸 안에 인격과 영혼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마주했을 때 느낀 신비로운 충격은 하나님의 창조하심을 엿볼 수 있는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아기가 자라나는 모습을 보면 그 작은 존재 안에 설계해두신 하나님의 신비로움을 계속해서 보게 됩니다.
3.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
분홍이의 성품처럼 간결하고 어린아이 같이 의심없는 믿음을 지닐 때, 오히려 진실과 진리에 가까운 사람이 될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가끔 저는 예수님이 정말 여전히 살아계신지 의심이 들거나 나도 모르는 사이 하나님을 잊기도 합니다. 마치 목각인형이 그것을 만든 인간을 이해하지 못하듯 사람 역시도 하나님을 부분적으로 아는 것에 그칩니다. 그렇기에 분홍이가 지녔던 의심없는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 즉 '간결한 믿음'을 지닌자가 되기를 기도하게 됩니다. 분홍이처럼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을 정확하게 알지는 못해도, 하나님이 계심을 의심 없이 믿는 자세야말로 그를 진실의 자리에 머물게 해 준 ‘성품’이었다는 사실을 다시금 되새깁니다.
김현경2025-11-16 21:29
와아~ 선생님 글을 보고 저도 새로운 시각으로 그림책을 다시 읽어보았어요. 두 인물의 성격이 매우 대조적으로 보이네요. 특히 노랑이가 어떻게든 설명이 되게끔 해보려고 계속 말을 이어가다 보니 분홍이보다 발화량이 훨씬 많은 것을 보게 되네요. 확실히 진리는 단순한 것 같아요. ^^
이신애2025-11-17 15:16
@김현경
선생님 공감해주셔서 감사드려요!^^ 정말 노랑이의 압도적 발화량 덕분에 분홍이의 단순한 모습이 돋보이게 되었네요~ 바쁘게 움직이는 노랑이에 비해 분홍이 제스쳐나 몸짓에서도 여유가 느껴지는 것 같아요🤣
이신애2025-11-16 14:19
감사합니다 교수님^^ 문득 두 캐릭터가 창조와 진화에 치열한 토론을 보여줬던 두 학자, 리처드 도킨스와 존레녹스의 모습을 닮은 것 같아 신기하네요! 이런 소중한 책을 선별해 소개해주시고 깊은 통찰을 제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현경2025-11-16 22:39
"그들은 정말 몰랐을까..?"
며칠 전, 역사에 관심이 깊어진 아이를 위해 기차를 타고 경주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신라의 천년 고도였던 경주의 수많은 유물과 유적은 (당연하겠지만) 불교 문화를 반영하고 있었기에 아이에게 설명해 주는 일이 참 쉽지 않았습니다. 냉담하게 또는 과격하게 반응하는 아이에게 "신라 사람들은 하나님을 몰랐으니까, 불교를 믿었기 때문에 저런 걸 만들었던 거야." 라는 설명이 반복되면서 '내가 지금 누구를 변호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떠올랐던 질문이, '그들은 정말 몰랐을까..?' 였습니다.
그림책에서 노랑이와 분홍이는 '우리가 여기에서 무얼 하고 있는 건지', 또, '어쩌다 여기 있게 된 건지' 모르겠다며 "우리는 누구지?" 하고 질문합니다.
그러나 그림책과 달리 성경 창세기에 등장하는 첫 사람인 아담은 아마도 자신이 누구이고 왜 지음을 받았는지 알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아담을 에덴에 두시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를 알려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왜 그림책 속 노랑이와 분홍이처럼 "우리는 누구지?" 와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일까요?
교수님께서 글에서 지적하신대로, 누구든지 창조세계를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으나, 인간의 죄성 때문에 혹은 진화론자들의 세뇌 때문에 많은 이들이 여전히 자신의 정체성을 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에 더하여 한 가지를 더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바로 '가르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엘리의 자식들은 아버지가 제사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잘 알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아버지의 훈계를 받아들이지 않은 아들들의 죄성 가득한 마음도 문제이지만) 신라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노아의 아들들인 셈과 함과 야벳으로부터 사람들이 온 땅에 퍼졌다면, 한반도에 거주하게 된 사람들도 당연히 그들의 후손일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처음에는 모두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우리는 누구인지, 하나님이 왜 우리를 만드시고 이땅에 보내셨는지 가르치지 않았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던 것 같습니다.
부모와 교사가 잘 가르치지 않으면 전수되지 않고, 전수되지 않으면 다음 세대는 모를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따라서 우리 어른들이 먼저 하나님의 창조에 대해, 우리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하고, 다음 세대에게 열심히 가르쳐야 합니다. 가르치지 않으면, 다음 세대가 아니라 '다른 세대'가 됩니다.
며칠 전, 역사에 관심이 깊어진 아이를 위해 기차를 타고 경주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신라의 천년 고도였던 경주의 수많은 유물과 유적은 (당연하겠지만) 불교 문화를 반영하고 있었기에 아이에게 설명해 주는 일이 참 쉽지 않았습니다. 냉담하게 또는 과격하게 반응하는 아이에게 "신라 사람들은 하나님을 몰랐으니까, 불교를 믿었기 때문에 저런 걸 만들었던 거야." 라는 설명이 반복되면서 '내가 지금 누구를 변호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떠올랐던 질문이, '그들은 정말 몰랐을까..?' 였습니다.
그림책에서 노랑이와 분홍이는 '우리가 여기에서 무얼 하고 있는 건지', 또, '어쩌다 여기 있게 된 건지' 모르겠다며 "우리는 누구지?" 하고 질문합니다.
그러나 그림책과 달리 성경 창세기에 등장하는 첫 사람인 아담은 아마도 자신이 누구이고 왜 지음을 받았는지 알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아담을 에덴에 두시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를 알려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왜 그림책 속 노랑이와 분홍이처럼 "우리는 누구지?" 와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일까요?
교수님께서 글에서 지적하신대로, 누구든지 창조세계를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으나, 인간의 죄성 때문에 혹은 진화론자들의 세뇌 때문에 많은 이들이 여전히 자신의 정체성을 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에 더하여 한 가지를 더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바로 '가르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엘리의 자식들은 아버지가 제사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잘 알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아버지의 훈계를 받아들이지 않은 아들들의 죄성 가득한 마음도 문제이지만) 신라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노아의 아들들인 셈과 함과 야벳으로부터 사람들이 온 땅에 퍼졌다면, 한반도에 거주하게 된 사람들도 당연히 그들의 후손일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처음에는 모두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우리는 누구인지, 하나님이 왜 우리를 만드시고 이땅에 보내셨는지 가르치지 않았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던 것 같습니다.
부모와 교사가 잘 가르치지 않으면 전수되지 않고, 전수되지 않으면 다음 세대는 모를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따라서 우리 어른들이 먼저 하나님의 창조에 대해, 우리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하고, 다음 세대에게 열심히 가르쳐야 합니다. 가르치지 않으면, 다음 세대가 아니라 '다른 세대'가 됩니다.
이유미2025-11-17 18:26
굵직한 문제를 이렇게 단순하고 간결하게 표현한 윌리엄 스타이그의 통찰에 감탄했습니다.
싱거워보이기도, 조금은 심심해보이기도 하는 내용속에 창조론과 진화론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툭 던져주었습니다 .
바쁜 세상속에 파묻혀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그래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조차 모르며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 하나님을 사랑하고, 살아계심을 믿고 있다며 나의 믿음을 확신했지만 사실은 아직도 나를 죽이지 못한채 자만감에 빠져있음도 일깨워 주었습니다.
존재의 근원을 묻고 있는 노랑이와 분홍이의 질문들이 깊게 다가왔습니다. 수많은 노랑이와 분홍이 들이 대치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존재의 근원을 어디에서 찾느냐에 따라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름답게 변할수도 있고. 추하게 변해갈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인지에 정신도 번쩍 들었습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부분들에 대해 다시 한번 고찰해보며 깊게 들여다 보아야겠습니다.
단순히 나만 알고 있어야 하는 문제가 아니며 나의 개인적인 종교적 문제가 아님을 인지하고 나니 그림책의 질문들이 더욱 가슴깊이 파고 들며 긴 여운과 숙제를 남깁니다.
싱거워보이기도, 조금은 심심해보이기도 하는 내용속에 창조론과 진화론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툭 던져주었습니다 .
바쁜 세상속에 파묻혀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그래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조차 모르며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 하나님을 사랑하고, 살아계심을 믿고 있다며 나의 믿음을 확신했지만 사실은 아직도 나를 죽이지 못한채 자만감에 빠져있음도 일깨워 주었습니다.
존재의 근원을 묻고 있는 노랑이와 분홍이의 질문들이 깊게 다가왔습니다. 수많은 노랑이와 분홍이 들이 대치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존재의 근원을 어디에서 찾느냐에 따라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름답게 변할수도 있고. 추하게 변해갈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인지에 정신도 번쩍 들었습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부분들에 대해 다시 한번 고찰해보며 깊게 들여다 보아야겠습니다.
단순히 나만 알고 있어야 하는 문제가 아니며 나의 개인적인 종교적 문제가 아님을 인지하고 나니 그림책의 질문들이 더욱 가슴깊이 파고 들며 긴 여운과 숙제를 남깁니다.
서정아2025-11-17 22:48
짧은 그림책 한 권이 담고 있는 메세지가 이렇게 넓고 깊군요.
그 넓고 깊은 사유의 길잡이가 되는 글을 써 주신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요새는 창조론과 진화론 외에 유신진화론 이라는 해석이 기독 교회들 안에서 꽤 많이 공유되고 공감되고 있다고 해요.
'하나님께서 진화를 이용해 세상을 창조하셨다'라는 해석인데
한국 교회 내 특히 젊은 목사님들이나 청년들도 적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하니
기독교인으로서 바른 기준을 가지고 판단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되더라고요.
아마도 그 기준이란 성경이 전하고 있는 핵심 메세지, 그러니까 복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원 사역이 되지 않을까 하는데요.
유신 진화론은 그런 측면에서 복음을 훼손시킬(어쩌면 이미 훼손하고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진화라는 방법을 통해 세상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고생대, 중셍데, 신생대에 걸친 지질 주상도를 인정하고, 그 오랜 세월도 인정하교,
당연히 아담과 하와도 하나님께서 직접 지으신 최초의 인류가 아니라, 진화된 수 많은 사람들 중에서 선택받은 인간이라고 해석하기도 하고요.
이 뿐 아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이 정말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일까?를 의심하고 다른 해석을 하기도 하고,
그렇다면 예수는 왜 이 세상에 오신 것일까?에 대한 해석도 기존에 기독교에서 말하고 있는 해석과 다르기도 하고,
그 수 많은 우연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주가 이 우주 하나로는 안되니 아마도 수 많은 우주가 있을 것이다라고 진지하게 생각하기도 하고
그렇다면 하나님은 그 많은 우주에 다 예수를 보냈을 것이라고도 하는,
과연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기독교 진리 맞나? 의심하지 않을 수 없더라구요.
하나님께서 오랜 세월 진화라는 과정을 통해 세상을 창조하셨다면
앞으로 올 새 하늘과 새 땅도 진화라는 과정을 통해 만드실까요?
때에 따라 변하는 시대의 사조와 과학 이론에 성경을 맞추려니 이런 가설이 생겨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 넓고 깊은 사유의 길잡이가 되는 글을 써 주신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요새는 창조론과 진화론 외에 유신진화론 이라는 해석이 기독 교회들 안에서 꽤 많이 공유되고 공감되고 있다고 해요.
'하나님께서 진화를 이용해 세상을 창조하셨다'라는 해석인데
한국 교회 내 특히 젊은 목사님들이나 청년들도 적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하니
기독교인으로서 바른 기준을 가지고 판단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되더라고요.
아마도 그 기준이란 성경이 전하고 있는 핵심 메세지, 그러니까 복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원 사역이 되지 않을까 하는데요.
유신 진화론은 그런 측면에서 복음을 훼손시킬(어쩌면 이미 훼손하고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진화라는 방법을 통해 세상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고생대, 중셍데, 신생대에 걸친 지질 주상도를 인정하고, 그 오랜 세월도 인정하교,
당연히 아담과 하와도 하나님께서 직접 지으신 최초의 인류가 아니라, 진화된 수 많은 사람들 중에서 선택받은 인간이라고 해석하기도 하고요.
이 뿐 아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이 정말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일까?를 의심하고 다른 해석을 하기도 하고,
그렇다면 예수는 왜 이 세상에 오신 것일까?에 대한 해석도 기존에 기독교에서 말하고 있는 해석과 다르기도 하고,
그 수 많은 우연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주가 이 우주 하나로는 안되니 아마도 수 많은 우주가 있을 것이다라고 진지하게 생각하기도 하고
그렇다면 하나님은 그 많은 우주에 다 예수를 보냈을 것이라고도 하는,
과연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기독교 진리 맞나? 의심하지 않을 수 없더라구요.
하나님께서 오랜 세월 진화라는 과정을 통해 세상을 창조하셨다면
앞으로 올 새 하늘과 새 땅도 진화라는 과정을 통해 만드실까요?
때에 따라 변하는 시대의 사조와 과학 이론에 성경을 맞추려니 이런 가설이 생겨나지 않았나 싶습니다.
우승린2025-11-18 05:11
정말 이 그림책의 간결하지만 강력한 메세지에 책을 여러번 읽었습니다. 이렇게도 심오한 주제를 표현할 수 있구나 하구요.
윌리엄 스타이그의 다른 책도 한권 찾아 보면서 그의 무해한 상상력과 위트에 다른 책들도 읽어봐야지 하고 슬쩍 그의 팬이 될것 같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어느 성령이 충만한 날에는 세상 모든 것이 내게 말을 걸고 그 아름다움에 감동이 밀려오는 경험을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하는 것 같습니다. 제게도 자연이 주는 선물을 느끼고 만끽하며 주님을 찬양할 수 없다고 고백한 경험이 많은데요. 그렇게 자연에 일반계시로 드러내신 하나님이 분명한데도, 분홍이의 말에 설득되지 않을 수 없음에도 노랑이는 답이 어딘가에 있을 거라면서 일단 분홍이의 말을 인정하지 않듯이 우리의 죄성은 진실을 거부부터 하기에 바쁜것을 직접 눈으로 보는 것 같았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며 부유하는 요즘 시대의 노랑이가 점점 그 덩치를 키우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안타깝습니다.
정말 기도밖에는 없는지 알려달라 기도하게 되는 부분이자, 제가 이 수업을 듣는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윌리엄 스타이그의 다른 책도 한권 찾아 보면서 그의 무해한 상상력과 위트에 다른 책들도 읽어봐야지 하고 슬쩍 그의 팬이 될것 같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어느 성령이 충만한 날에는 세상 모든 것이 내게 말을 걸고 그 아름다움에 감동이 밀려오는 경험을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하는 것 같습니다. 제게도 자연이 주는 선물을 느끼고 만끽하며 주님을 찬양할 수 없다고 고백한 경험이 많은데요. 그렇게 자연에 일반계시로 드러내신 하나님이 분명한데도, 분홍이의 말에 설득되지 않을 수 없음에도 노랑이는 답이 어딘가에 있을 거라면서 일단 분홍이의 말을 인정하지 않듯이 우리의 죄성은 진실을 거부부터 하기에 바쁜것을 직접 눈으로 보는 것 같았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며 부유하는 요즘 시대의 노랑이가 점점 그 덩치를 키우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안타깝습니다.
정말 기도밖에는 없는지 알려달라 기도하게 되는 부분이자, 제가 이 수업을 듣는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나무 인형들이 들려주는 창조 이야기
윌리암 스타이그의 『노랑이와 분홍이』
내가 그림책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보편 진리를 간명하게 전달하는 그 힘 때문이다. 이 점에서 윌리암 스타이그(1907-2003)는 단연 독보적인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시사 만화가의 경력을 쌓고 있던 그는 이순(耳順)이 넘은 60세에 그림책 창작에 입문하였다. 풍부한 삶의 경험 때문인지 그의 작품은 가족애, 사랑, 우정, 용서, 성실, 인내, 의로움, 충성됨과 같은 덕목과 더불어 삶과 죽음에 대한 인간 존재론적 주제까지 담고 있다. 진지한 철학적 사유를 요구하는 이러한 주제들은 위대한 이야기꾼(great storyteller)라는 그의 별명에 걸맞게 의인화된 동식물과 사물이 등장하는 코믹한 만화풍의 그림과 유머러스한 글에 녹아 들어가 통찰과 감동을 선사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노랑이와 분홍이』(Yellow & Pink)(1984/2005)를 소개해 볼까 한다.
표지에는 『노랑이와 분홍이』라는 제목 아래에 두 개의 나무 인형이 풀밭에 서서 위를 바라보고 있다. 왼편에는 몸과 모자가 노란색으로 칠해진 홀쭉하고 콧수염이 난 나무 인형이 오른 손을 턱밑에 대고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듯 서있고, 오른편에는 역시 몸과 모자가 분홍색인 통통한 나무 인형이 두 팔을 내려뜨리고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들 뒤에는 큰 나무가 한 그루 서 있고, 그보다 더 멀리 양옆으로는 나무들이 두세 그루씩 서 있다. 그들이 발을 딛고 서 있는 곳은 풀이 듬성듬성 나 있는 풀밭이다. 면지는 노랑이와 같은 샛노란 색지이며 그 다음 장에는 한가롭게 모이를 쪼아먹고 있는 두 마리 닭들과 날아가는 새 아래에 노란색 나무다리와 분홍색 나무다리가 나란히 놓여 있다. 한 장 더 넘겨 두 번째 표제지에는 그 다리들의 주인인 노랑이와 분홍이가 풀밭에 엎드려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이 장면에서도 노랑이는 왼팔을 턱에 괴고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듯 하다.
이 서사에서 사용된 3인칭 화법과 시점은 독자들로 하여금 두 인형들의 모습과 대화를 거리를 두어 보게 하는 효과를 낳는다. 본문의 글은 이렇게 시작된다. “어느 날, 작은 나무 인형 둘이 오래된 신문지 위에 누워서 햇볕을 쬐고 있었어. 땅달막하고 뚱뚱한 인형은 분홍이고, 길쭉하고 호리호리한 인형은 노랑이었어. 그날은 덥고 조용했지. 둘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그 다음 장에서 노랑이가 일어나 앉아 손을 턱에 괴고는 옆에 누워있는 분홍이를 쳐다보며 묻는다. “우리 아는 사이니?”(Do I know you?). 그러자 분홍이가 “아닌 거 같은데”라고 답하고는 자신도 몸을 일으켜 앉아 노랑이와 시선을 맞춘다. 그러자 노랑이가 분홍이에게 자신들이 뭘하고 있는 건지 혹시 아느냐고 묻자 분홍이가 자신도 왜 여기에 있는지 기억이 안 난다고 답한다.
그 후 그들의 대화는 왜 자신들이 그곳에 있는가라는 주제로 이어진다. 그들 주위에서는 닭들이 바쁘게 모이를 쪼고 있고 저 멀리 젖소들이 조용히 모여 있다. 노랑이가 분홍이에게 어떻게 우리가 여기에 있게 되었는지 궁금해서 견딜 수 없다고 하며 우리가 누구냐고 묻자 분홍이는 노랑이를 훑어보고 그의 모습이 훌륭하다고 생각하면서 누군가 자신들을 만들었을 것[1]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노랑이는 자신들처럼 복잡하고 완벽한 것을 누가 만들 수 있겠느냐며 분홍이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리고는 연이어 누가 자기들을 만든 건지 어떻게 자기들이 모를 수 있겠느냐, 그리고 만약 누가 자기들을 만들었다면 설명도 없이 왜 그냥 내버려 두었겠느냐며 자신들은 그냥 우연히 생겨난 것이라고 단정한다. 그러자 분홍이는 자기가 들은 말을 믿을 수 없어서 배를 잡고 마구 웃기 시작하면서 자신들같이 움직이고 숨쉬고, 걷는 정교한 존재들이 어떻게 그냥 만들어지겠느냐, 그건 터무니 없다(preposterous)고 반박한다.
노랑이는 분홍이에게 웃지 말고 생각해 보라고 하면서 진지한 얼굴로 천년이나 백만 년, 아마 이백오십만 년 정도의 충분한 시간이면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자 분홍이도 태도를 바꾸어 진지하게 그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며 우리가 어떻게 그냥 생겨날 수가 있는지 그 과정을 설명해보라고 요구한다. 그러자 노랑이는 앞으로 걸어가며 돌멩이를 옆으로 걷어차고는 조금 자신 없는 어조로 설명하기 시작한다. 이제부터 그의 설명은 상상 주머니 안에서 전개된다. 나무에서 나뭇가지 하나가 부러져서 마침 그 아래 있던 날카로운 바위 위로 떨어졌는데 그 한쪽 끝이 쪼개져서 다리가 생겼다. 그리고 겨울이 되어 그 나무 조각이 얼어버렸는데 얼음 때문에 입이 벌어졌고, 나무 조각이 태풍에 날려서 부딪치고, 깨지고, 스치고 하면서 모양이 잡혔다, 또 바람에 날리는 모래 때문에 나무껍질이 매끄러워졌을 거다, 오랫동안 언덕 아래 내팽개쳐져 있었던 그 나무 조각에 어느 날 번개가 쳐서 팔과 손가락과 발가락이 만들어졌을 거다, 등.
그 설명을 듣고 있던 분홍이가 그럼 눈이랑 귀랑 콧구멍은 어떻게 생긴 거냐고 묻자 노랑이는 돌 위에 걸터앉아서 생각하더니 더욱 자신 없는 어조로 눈은 벌레 혹은 딱따구리, 아니면 우박 때문에 생겨났을지 모른다고 답한다. 분홍이가 서서 뒷짐을 쥐고 단호한 태도로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딱따구리가 만든 구멍으로 보고 들을 수 있는 거냐고 묻자, 노랑이는 이번에는 분홍이를 보지 않고 “이 멍텅구리야. 그러라고 눈이랑 귀가 있는 거지. 그거 말고 또 뭘 할 수 있겠어? 저기 있는 젖소들은 큰 눈으로 보고, 여기 개미들은 쪼그만 눈으로 본다고, 그리고 우리는 이 구멍으로 보는 거야.”라고 답한다. 노랑이의 비논리적인 순환논법(循環論法)[2]에 분홍이가 “알았어. 우선은 네 말이 옳다고 치자.”라고 하더니 노랑이를 똑바로 바라보며 반문하기 시작한다. 그런 이상한 일들이 어떻게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일어나서 우리 둘이 생겼느냐, 나뭇가지가 떨어져서 바위에 부딪히고,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번개에 맞고 딱따구리가 쪼아서 구멍이 뚫리는 일들이 어떻게 우리 둘에게 똑같이 일어날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노랑이는 이번에는 바위에 한쪽 다리를 올리고 두 팔을 무릎에 괴고 땅을 바라보며 백만년 정도의 긴 시간이면 똑같은 일이 두 번도 넘게 일어날 수 있다고 답한다.
분홍이가 이번엔 “하지만 너랑 나는 왜 이렇게 다르지?”라고 묻자 노랑이는 분홍이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자신이 말하려는 것이 바로 그것이라고 소리치며 “이건 모두 우연이야. 너랑 나는 아마 다른 종류의 나무일거다. 너는 어쩌면 부드럽고 무딘 언덕 위로 굴러 떨어졌는지 모른다” 고 소리친다. 분홍이는 노랑이를 흥미로운 눈길로 쳐다보면서 그럼, 왜 우리는 이렇게 칠이 된 거야? 라고 묻자 노랑이는 자리에서 몇 바퀴나 빙글빙글 돌면서 더 자신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색은 자신들이 언덕을 구를 때, 아니면 누군가 쏟아놓은 물감 위를 굴러서 입혀진 것이라고 말꼬리를 흐린다. 분홍이가 그럼 어떻게 너의 단추 세 개는 검은 색으로, 내 단추 세 개는 하얀 물감으로 말끔하게 색칠이 되었느냐고 집요하게 반문하자 노랑이는 잠시 조용하더니 나무 둥치에 기대어 머리를 긁적이며 “나는 모든 질문에 대답할 수 없어. 어떤 것들은 비밀로 남아 있어야만 할 거야. 어쩌면 영원히 말이야.”라고 말꼬리를 흐린다. 바로 그때 머리가 텁수룩한 아저씨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풀밭을 가로질러 걸어오더니 분홍이와 노랑이를 집어서 이리저리 훑어보고는 “잘 말랐군.”이라고 하고는 둘을 겨드랑이에 끼우고 오던 길로 돌아간다. 노랑이가 분홍이에게 “이 사람 누구야?”라고 묻지만 분홍이도 누군지 알 수 없었다며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그는 누구일까? 이제는 독자가 답을 할 차례이다.
작은 나무 인형들은 지금 인간의 ‘기원’을 다루고 있는 중이다. 노랑이는 진화론을, 분홍이는 창조론을 대변하고 있다. 노랑이의 설명은 진화론적 사유의 핵심 내용을 담고 있다. 자신들이 우연하게 만들어졌으며 그 일이 가능하기 위해 아주 긴 시간이 소요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분홍이는 창조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지만 “분명히 누군가 우리를 만들었을거야”라는 단순명료한 답을 통해 창조론을 지지하고 있는 입장임을 드러낸다. 이 우주와 인간의 기원에 대한 설명은 진화론이 아니면 창조론, 둘 중의 하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진화론자들은 창조론을 믿는 사람들은 신화를 믿는 비이성적인 사람이라고 폄하하면서 자신들야말로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두 인형들의 대화는 창조론이 아니라 진화론이 터무니없는 가설임을 드러낸다. 관절이 몇 개 밖에 되지 않는 나무 인형이라 할지라도 어떻게 우연히 만들어질 수 있겠는가? 노랑이처럼 무엇인가가 우연히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얼마나 비논리적인지는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알 수 있다. 미국 사우스 다코타주에는 미국 대통령 네 명(조지 워싱턴, 토마스 제퍼슨, 아브라함 링컨, 테어도어 루스벨트)의 얼굴이 새겨진 러시모어산이 있다. 단단한 화강암에 얼굴 높이가 18미터에 이르는 이 조각의 기원에 대해서는 세 가지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첫 번째는 우연히 만들어졌다, 두 번째는 자연 현상(비, 바람, 눈 등의 풍화과정)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리고 세 번째는 누군가 그것을 계획하고 조각하였을 것이다. 이 중에서 첫 번째나 두 번째가 맞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미친 사람이 아니면 바보로 여겨질 것이다. 더 나아가 밤 하늘에 떠 있는 그 수많은 별들의 기원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호주 국립대학의 천문학자들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망원경을 사용하여 별의 총수가 7조 곱하기 1백억개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 숫자는 세계의 모든 해변과 사막에 있는 모래 알갱이의 수보다 10배나 많은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역시 현대의 망원경으로 볼 수 있는 범위 내의 별의 총수이므로 별의 실제 수는 무한대일 수 있다고 한다.[3] 그러면 이 별들의 생성과 한치 오차없는 질서있는 운행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우주가 어떤 한 점에서부터 탄생한 후 지금까지 팽창하여 오늘의 우주에 이르렀다는 빅뱅 이론이라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면 그 최초의 한 점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4]
진화론에서는 인간의 기원이 단세포 동물인 아메바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주장한다. 그 아메바가 그들이 창안한 진화의 법칙에 의해 원숭이로, 유인원으로, 그리고 사람으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긴 시간이라 할지라도 아메바가 원숭이로, 원숭이가 유인원으로, 그리고 인간으로 진화했다는 설명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최초의 아메바는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그리고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원숭이는 왜 아직 사람으로 진화하지 않고 원숭이 그대로 남아 있는가?
서구에서도 1850년대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은 당연히 하나님께서 인간과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믿고 있었다. 1700년대에 이신론[5]이 등장했지만 이신론자들 역시 하나님이 창조주임은 믿었다. 그런데 다윈의 진화론은 하나님을 인간의 삶에서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는 매우 좋은 이론적 근거를 제공했다. 1859년에 출판된 다윈의 『종의 기원』은 총 여섯 번에 걸쳐 개정되었으며 ‘진화’(evolution)이라는 단어는 6판에서 단 한 번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는 다윈이 생명이 특정한 목적과 방향성을 가지고 발전된다는 의미의 ‘진화’라는 단어보다 ‘변이를 동반한 유전’이라는 표현을 선호했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정작 다윈 자신은 이 진화론의 허점을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의 이론에 열광하였다. 그 당시는 과학 기술과 산업혁명의 결과로 인간이 과거 수천 년동안 누려보지 못했던 풍요를 경험하고 있었던 시기였다. 그에 힘입어 이 세상이 신 없이 시작되었고 신 없이도 급속도로 발전할 수 있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는 낙관론이 팽배하게 되었다.[6] 시간이 흐르자 진화론은 생물학에서 그치지 않고 사회학, 심리학, 경제학, 교육학에 이르기까지 모든 학문의 기초 이론이 되었다. 진화론은 기독교의 창조론에 대항하여 인간과 동물의 기원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시작하였으나 점차 인간의 총체적인 삶을 지배하는 세계관이 되었다.
그러나 성경은 매우 분명하게 우리 인간이 이 모든 것을 지으신 분이 하나님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분명히 드러나 있기 때문이라. 하나님께서 그것을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그분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분의 영원하신 권능과 신격은 세상의 창조 이후로 분명히 보이며 만들어진 것들에 의해 이해될 수 있으므로 그들이 변명할 수 없느니라.”(KJV 롬 1:19-20). 하늘을 나는 날짐승, 땅에서 자라는 동식물, 그리고 바다와 강과 호수에서 서식하는 동식물 등 어느 하나도 아름답고 신비롭고 위대하지 않은 것이 없다. 수족관에서 노니는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을 보면 그 다양한 색채와 형태에 감탄하게 된다. 예수님은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그가 입은 것이 들꽃 하나만 못하다(마 6: 28-29)고 하셨다. 이렇듯 하나님은 자신이 지으신 창조세계를 통해 모든 인간에게 자신을 계시하고 계시므로 누구도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아마존 정글에 사는 원시인이나 고대인이나 조선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 모두 하나님의 존재를 몰랐다는 변명을 할 수 없다. 다윗은 일반계시를 이렇게 노래하였다.
다시 노랑이와 분홍이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표지에서부터 노랑이는 사색을 즐기며, 분홍이는 직관적인 타입의 캐릭터로 그려진다. 신문지 위에 누워있던 그들 중에 철학적인 문제를 먼저 제기한 인물도 노랑이였다. 그는 “우리 아는 사이니?” “우리가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건지 혹시 아니?”, “우리는 누구지?”라고 묻는다. 그것에 대한 분홍이의 반응은 누군가 우리를 만들었을 거라는, 짧고 직관적인 답이다. 그러나 노랑이는 자신들같이 정교한 존재는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라는 가설을 내세운다. 그런데 그 근거가 논리와 증거가 아닌, 상상력의 산물임은 아이러니하다.
노랑이처럼 사람들이 ‘우연‘이라는 터무니 없는 가설에 끌리는 이유를 생각해 본다. 가장 큰 이유는 인간의 죄성(sinful nature), 즉 타락한 마음 때문일 것이다. 하나님의 자리에 ’우연‘을 대신하고 이 세상과 자신의 삶에서 하나님을 완전히 제거하기를 꾀하는 교만이라는 죄성 때문이다. 교만은 태초의 인간인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선악과를 따먹은 순간(창 3: 5-7)에 인간의 마음속에 스며들었고 아담의 후손인 인류의 마음에 전가(傳家)되었다(롬 5:12). 두 번째로는 진화론자들이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거짓 증거를 날조하여 사람들을 세뇌시킨 결과라고 볼 수 있다[7]. 지금 시중의 과학서적이나 교과서들은 대부분 과학적으로 증명이 안된 자료들(동물의 화석이나 지층 등)을 들어 진화론을 사실인 것처럼 가르치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각 개인이 진지하게 그 문제를 생각해 볼 여유가 없어서라는 이유도 있을 것 같다. 지금 우리는 차고 넘치는 정보의 바다 속에서 살고 있으며 노력하지 않아도 필요한 정보를 아주 빠르고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만큼 똑똑해 졌을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저자 니콜라스 카는 사람들이 인터넷 세상에서 링크와 하이퍼텍스트로 이어진 정보를 따라가느라 점차 사고할 수 있는 힘을 잃어버리고 있다고 경고한다. 그리고 사유하는 힘과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해 미디어를 떠나 사색하는 시간을 마련하라고 조언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노랑이와 분홍이처럼 너른 풀밭에 앉아 생각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질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여기 있게 된 걸까?” “우리는 누굴까?” 라는 문제를 놓고 깊이 사유할 수 있게 될까? 그러나 정작 이 문제를 제기했던 노랑이는 누군가 자신들을 만들었을 거라는 분홍이의 단순 명확한 답을 거부하고 끝까지 ‘우연’이라는 자신의 생각에 집착한다. 결국 딜레마에 빠진 노랑이는 “어떤 것들은 영원히 모르고 남아 있을거야”라고 하며 인식론적 회의주의를 택하고 만다. 그의 태도는 창조주를 인정하느냐의 여부는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역시 마음의 문제라는 것을 드러낸다. 노랑이라는 캐릭터는 “그들이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으로서 그분이 받으실 영광을 그분께 돌리지 아니하고 감사하지도 아니하며 오히려 자기들의 상상(imagination) 속에서 허망해졌고 그들의 어리석은 마음이 어두워”(KJV 롬 1: 21)진 인간 마음의 기막힌 은유가 아닐 수 없다.
노랑이와 분홍이의 긴 논쟁은 털보 아저씨의 등장으로 인해 아주 간단히 마무리된다. 콧노래를 부르며 걸어와 인형들의 마무리 상태를 확인하고 옆구리에 끼워 만족스럽게 걸어가는 털보 아저씨는 윌리엄 스타이그, 그 자신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1] 원어로는 “Someone must have made us” 즉, “누군가 우리를 만들었음이 분명해” 혹은 “틀림없이 누군가 우리를 만들었을거야.”로 번역할 수 있다.
[2] 추론자가 논증할 명제를 논증의 근거로 하는 시작하는 논리적 오류
[3] https://smartbooks1.tistory.com/1523
[4] https://astro.kasi.re.kr/learning/pageView/6381
[5] Sire, J.(1988/1995). 『기독교 세계관과 현대 사상』 3장
[6] 정소연, 이연임(2020). 『생각의 기원』 p.29.
[7] Wile, J. L. (2001/2009). 『이성적 믿음』
현은자 |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 교수
이화여자대학교 교육학과 졸업 후 Eastern Michigan University 에서 석사, University of Michigan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 어린이문학교육학회 회장 및 한국 기독교 유아교 육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아동 청소년학과 교수이며 사회과학대학 부설 생활과 학 연구소 그림책 전문가 과정에서 “기독신앙과 그림책 읽기”를 강의하고 있으며, <기독교 세계관으로 아동문학보기>, <그림책의 이해>(공저), <그림책과 예술교육>(공저>, <그림책으로 보는 아동과 우리사회>(공저), <100권의 그림책>(공저) 등 그림책 관련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