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의 그림책, 『세계도회』의 그림 읽기

2022-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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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그림책, 『세계도회』의 그림 읽기



그림책의 기원에 대해서는 많은 견해가 있지만 어린이를 위한 최초의 그림책이 코메니우스의 『세계도회』(Orbis Sensualium Pictus)(1658)라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요하네스 아모스 코메니우스(1592-1670)는 지금의 체코인 모라비아 지역에서 태어났으며 보헤미아 형제단 목사를 지냈고 후에 이 교단의 지도자가 된 인물이다. ‘근대 교육학의 선구자’, ‘감각교육의 선구자’ ‘시청각교육의 아버지’ 로 지칭되듯 그는 다방면으로 근대 교육학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가 활동하던 당시의 유럽은 신교와 구교의 30년 종교전쟁으로 인해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으로 매우 혼란하고 피폐한 상황이었고 자신도 보헤미아의 개신교 군대가 카톨릭 군대에게 패배하자 망명길에 오르게 되었다. 여러 나라를 떠돌아다니던 그는 전쟁의 폐허 속에서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책을 접하지도 못한 아이들만이 아니라 잘못된 교수법과 교재로 인해 시달리고 있는 상류사회 어린이들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 모두에게 소박하고 투박한 목판화가 가득한 이 책의 출현은 매우 획기적인 것이었다. 이 책은 순식간에 전 유럽으로 보급되었으며, 처음에는 라틴어 교본으로 사용되다가 금속판화가 삽입되면서 영문으로 출간되어 영국의 학교와 가정으로까지 널리 보급되었고, 곧 유럽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그의 교육철학과 교육방식은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도 알려져 1641년 미국에 설립된 하버드 대학의 학장으로 초빙되었으나 고국에 남기 위해 그 초청을 고사(固辭)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누구나 인정하듯이 『세계도회』의 가장 큰 기여는 코메니우스의 감각교육과 언어교육 이론이 어린이를 위한 책에 구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이해 없이는 이 책의 의의를 온전히 파악했다고 보기 힘들다. 중세를 지배하고 있던 카톨릭의 교리에 맞서 성경 중심의 복음주의 신앙을 옹호했던 그가 생각한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을 알고 내세의 삶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세계도회』 편찬의 목적도 세상의 창조로부터 최후의 심판까지 이어지는 하나님의 경륜(經綸)을 그림이 있는 책으로 보여주는 데 있었다.

이 책의 내용은 저자 서문과 입문, 150개의 주제 등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50개의 주제는 백과사전식으로 지식을 전달하고 있다. 백과사전식의 정보 배열만을 놓고 볼 때 지금 정보 그림책이라고 부르는 것, 그 중에서도 확인책(identification book)의 효시라고 할 만하다. 각 페이지는 위와 아래 두 부분으로 분할되어 있으며 위에는 그림, 아래에는 글 텍스트가 배치되어 있고 사물의 이미지 옆에 매겨진 숫자는 글 텍스트의 명칭과 그것에 대한 설명과 대응된다. 


지금부터 남혜승(1999)의 한국어 번역판(1) 과 1887년의 영어판(2) 을 인용하여 세 부분을 차례로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서문에서는 “이 책은 세계의 사물과 인생의 활동에 있어서의 기초를 그림으로 표시하고 이름 지은 것입니다.”라고 하여 이 책의 목적을 분명히 밝히고 있으며 그 아래에는 다음과 같이 성경 구절이 쓰여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그 이름이라.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KJV 창세기 2:19-20). 이 성경 말씀 안에는 몇 가지 성경적 의미가 들어있다. 첫째, 인간의 언어 능력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며, 둘째, 하나님은 그 능력을 아담이 사용하기를 원하셨고, 세 번째, 아담이 그 언어 능력으로 수행한 최초의 일은 동물들에게 이름 지어주기(naming)라는 것이다. 이름짓기라는 행위는 단순한 호명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자녀에게 이름을 지어줄 때처럼 그 대상에게 고유성과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부모가 하나님으로부터 그 자녀를 보호하고 양육하는 책무를 부여받은 것처럼 아담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창조 세계에 대한 청지기의 사명을 위임받았다. 아담의 이름짓기 언어 능력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우리가 우리의 형상으로 우리의 모양에 따라 사람을 만들고 그들이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날짐승과 가축과 온 땅과 땅에서 기는 모든 기는 것을 지배하게 하자”(KJV 창세기 1:26-27)라는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기초적이며 핵심적인 요소였다. 

『세계도회』의 두 번째 부분은 ‘입문’(invitation)이다. 그림 오른편에는 스승(the master)이, 왼편에는 그의 제자로 보이는 어린 소년(the boy)이 햇살이 내리쬐는 밖에 나와 있다. 그들의 두 발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대지를 굳건히 딛고 서 있다. 발과 몸체는 독자를 향해 있지만 시선은 서로를 향하고 있어 두 사람이 대화 중임을 알 수 있다. 모자를 쓴 스승은 오른손으로 지팡이를 잡고 왼손의 검지는 위를 향하고 있으며, 모자를 벗어 왼손에 든 제자의 오른손 검지도 스승처럼 위를 향하고 있다. 이 두 인물의 뒤에는 주택과 교회 건물들과 나무가 있는 마을의 전경(全景)이 펼쳐져 있다. 그림 아래의 글은 다음과 같다.  

 

교사: 이리로 오렴. 현명해지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한단다. 
학생: 현명해진다는 것은 어떤 건가요?
교사: 필요한 모든 것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올바르게 행동하고, 올바르게 말하는 것이란다. 
학생: 그런 것을 누가 가르쳐 주나요?
교사: 신의 도움을 받아 내가 가르쳐준단다. 
학생: 어떻게요?
교사: 내가 모든 사물을 통해 이끌어주마. 내가 모든 것을 제시하고 그 이름을 가르쳐주겠다. 
학생: 알겠습니다. 저를 신의 이름으로 이끌어 주세요. 
교사: 우선 간단한 발음부터 공부해야 한단다. 인간이 말하는 것은 발음에 의해서이고 살아있는 모든 것은 소리를 내는 법을 알고 있단다. 그 후에 우리들은 세계로 나아가 모든 사물을 관찰할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생생한 발음이 가능한 알파벳을 보도록 하자.

 

우리는 이들의 대화에서 코메니우스의 교육철학의 중요한 요소를 엿볼 수 있다. 교사는 공부의 목적은 현명(wise)(3) 해지기 위해서이고 현명해진다는 것은 “올바르게 이해하고, 올바르게 행동하고, 올바르게 말하는 것(to understand rightly, to do rightly, to speak out rightly)”이라고 하여 ‘올바르게’를 세 번 강조하고 있다. 코메니우스는 이 세 가지 명제가 학교 학습의 기본적인 기능이라고 생각하였음이 틀림없다(4).

두 번째, 교사는 자신의 권위가 신으로부터 위임된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의 대답에는 ‘겸손’과 ‘확신’이라는 두 가지의 미덕이 서려 있다. 겸손이란 자신의 교수 능력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된 것이라는 믿음과 관련되어 있으며. 확신은 자신이 전달하는 지식은 하나님의 진리라는 믿음에서 온다. 이에 대한 학생의 반응은 즉각적인 ‘순종’이다. 그의 순종은 학식 있는 인간 교사가 아니라 신의 대리인으로서의 교사에게 대한 것이다.

세 번째, 교사가 제시하는 알파벳 학습법은 사물교육과 감각 교육의 기초를 보여준다. 알파벳의 음가는 사물을 직접 보고 그것이 내는 소리를 모방하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a’라는 소리는 까마귀가 ‘아아’ 하고 우는 것을, b 발음은 양의 ‘베에에에’라는 울음 소리를, c는 메뚜기가 ‘치치’하고 날개를 비비는 소리 등을 흉내 냄으로써 학습된다. 학습은 관찰로부터 시작되고 관찰에는 시각과 청각이 동원된다.


발음 공부 후에는 150개의 주제를 다룬다. 150개 주제의 배치에서도 그의 기독교 세계관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첫 번째 주제는 ‘신’으로서 그림에는 동심원 두 개가 있는데 원은 신의 완전함을 상징하는 것이다. 큰 원 가운데 위치한 동심원 안에 점선으로 그려진 삼각형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뜻한다. 아랫부분의 글 텍스트는 “신은 스스로 영원 속에 있으며 완전하고 행복한 최고의 경지에 있는 존재입니다.”라는 문장으로부터 시작하여 신의 속성을 다룬다. 하나님의 영원함, 완전함. 선함, 전지전능, 무소부재, 삼위일체 등의 교리가 제시되고 있으며 “우리가 세계라고 부르는 만물의 창조자이고 지배자이며 보호자입니다.”라는 마지막 진술은 이 책의 교리적 근거를 제공한다.

다음부터 다루어지는 주제는 첫 번째 주제에서 제시된,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지배하시고 보호하시는 창조 세계에 관한 것이다. 2번째 주제로부터 34번째 주제까지는 창조 세계의 동식물들, 35번째 주제부터 43번째 주제까지는 인간의 신체, 44번째 주제부터 149번째 주제까지는 인간의 활동과 문화와 종교를, 그리고 마지막인 150번째 주제는 ’최후의 심판‘을 다루고 있다. 이 마지막 주제의 그림에는 천사들의 나팔 소리와 함께 예수님이 공중 강림하시는 모습, 죽은 자들이 부활하는 모습, 그들과 함께 살아있는 사람들도 자신의 행위를 변명하기 위해 구름 속에서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법정으로 소환되는 모습(데살로니가 전서 5:16-17)이 그려져 있으며, 의로운 사람과 선택받은 사람은 영생을 얻고, 신앙심이 없거나 비난을 받은 사람은 악마와 더불어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을 받는 모습(요한계시록 20:12-15)을 그리고 있다.


이상으로 『세계도회』의 구성과 내용을 살펴보았다. 첫 번째 주제와 마지막 주제가 보여주듯이 『세계도회』의 구성은 성경의 그것과 병치되고 있다. 즉, 첫 번째 주제는 세계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을 다루고 있다는 면에서 창세기의 첫 장과 비교되며, 150번째 주제인 ‘마지막 심판’에는 성경 66권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에 그려진 세상 종말의 모습이 나타난다. 즉, 첫 번째와 마지막 주제를 제외한 148개의 주제에서 다루는 모든 사물과 인간의 활동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창조하고 지배하고 보존하고 계시며, 언젠가 예수님의 재림으로서 마무리되는 메타 서사(meta narrative) 안에 위치하고 있다. 

그 밖에도 그가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는 성경 신자(bible believer)라는 증거는 이 책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는 기독교를 다루는 147번째 주제에서 예수님의 탄생을 세계년도 3970년으로 밝히고 있는데 이는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한 결과이다. 즉, 아담과 이브로부터 시작된 성경의 연대기에 따르면 예수 탄생의 연도는 천지 창조 후 대략 4000년으로 산출되기 때문이다.

150개의 주제를 모두 다룬 후 스승과 제자가 다시 등장한다. 그들의 모습은 입문에서 그려진 모습 그대로이다. 태양 빛으로 가득한 하나님의 창조 세계 안에서 스승과 제자는 대지 위에 두 발을 굳건히 딛고 서 있다. 스승은 지금까지 세상의 사물을 하나씩 가리키며 그 명칭을 일러주고 설명하기를 마친 것이다. 자신의 책무를 다 마친 스승은 제자에게 다음과 같이 권고한다. “이렇게 해서 여러분들이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사물을 간추려 보았습니다. 그리고 라틴어의 주요 단어를 배웠습니다. 학식이 있고 지적이며 경건해지기 위하여 더욱 정진하십시오. 그리고 좋은 책을 부지런히 읽으십시오. 다음의 말을 기억해 두십시오. 신이 여러분들에게 지혜의 정신(the Spirit of Wisdom)을 줄 수 있도록 신을 두려워하고 따르십시오. 그럼 안녕히!” 이 마지막 구절은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니라
”(KJV 잠언 9:10)(5) 를 인용한 것이다.  


  (1) 요하네스 아모스 코메니우스 『세계도회』(1999). 남혜승역. 서울:씨앗을 뿌리는 사람. 
  (2) John  Amos Comenius(1887). The Orbis Pictus. Syracuse, N.Y.: C.W. Bardeen, Publisher
  (3) 번역본에서 ‘현명’이라고 번역한 ‘wise’는 ‘지혜로운’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4) 요하네스 아모스 코메니우스 『세계도회』(1999). 남혜승역. 서울:씨앗을 뿌리는 사람. 
  (5) “The fear of the Lord is the beginning of wisdom”(KJV 영어 성경)  







현은자 |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 교수

이화여자대학교 교육학과 졸업 후 Eastern Michigan University 에서 석사, University of Michigan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 어린이문학교육학회 회장 및 한국 기독교 유아교 육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아동 청소년학과 교수이며 사회과학대학 부설 생활과 학 연구소 그림책 전문가 과정에서 “기독신앙과 그림책 읽기”를 강의하고 있으며, <기독교 세계관으로 아동문학보기>, <그림책의 이해>(공저), <그림책과 예술교육>(공저>, <그림책으로 보는 아동과 우리사회>(공저), <100권의 그림책>(공저) 등 그림책 관련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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