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는 민들레』 “변하지 않는 사실”

2022-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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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는 민들레』 “변하지 않는 사실”





몇 년 전부터 ‘부캐’ 열풍이 우리나라에 불었습니다. 부캐란 원래 ‘부 캐릭터’라는 게임 용어의 줄임말로 본 캐릭터 이외에 다른 캐릭터를 만들어 사용할 때 쓰는 말입니다. 즉 하나의 게임 캐릭터로 레벨도 쌓고 아이템을 모으다가, 다른 캐릭터를 만드는 것이죠. 이것이 현실 세계에 적용이 되어 본래의 내 모습이 아닌 새로운 자아를 일컫는 말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그 예로 유재석이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여러 부캐로 등장하여(트로트가수 유산슬, 혼성그룹 유두래곤, 치킨 튀기는 닥터 유 등) 각각 다른 사람이 되어 일련의 미션을 수행하는 에피소드를 보여주었습니다. 부캐의 세계가 프로그램 안이 아니라 실제에도 존재한다면 어떨까요? 실제로 아이돌 가수들의 경우 자신의 이름, 닉네임, 본캐, 부캐를 만들어 메타버스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를 넘나들며 놀이 문화를 제공하기도 하지요. 때로는 가상세계가 진짜인지 현실세계가 진짜인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사실 어느 것이 진짜이고 가짜라는 기준조차 사라져서 그 모든 다양한 부캐릭터 모두가 내 안의 다양한 자아라는 생각이 나오게 됩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 BTS의 노래 ‘IDOL’의 가사를 보십시오.

"내 속아나엔 몇 십 백명의 내가 있어
오늘 또 다른 날 맞이해
어차피 전부 다 나이기에
고민보다는 걍 달리네" (BTS, IDOL)


가끔씩 변덕을 부리는 사람의 마음을 생각 할 때면 수많은 내가 내 안에 있다는 말이 공감 됩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문화적 현상으로 라면 그 수많은 나는 요동치는 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안의 각각 다른 자아가 됩니다. 뮤직비디오에서 이 가사가 나올 때 정말로 수많은 얼굴을 빽빽하게 등장시키며 수많은 나를 표현했습니다. 대중은 ‘다중인격’으로 보이는 이런 현상을 왜 이렇게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걸까요? 


오늘날 사람들은 객관적인 도덕이나 진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은 나라와 문화, 시대, 개인에 따라 다 다르기 때문에 ‘당신에게는 옳을 수 있지만 나에겐 옳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무엇을 따라야 할까요. 외부의 기준이 없으니 자신의 느낌이나 감정이 기준이 됩니다. 주관적인 느낌과 감정은 수시로 변하게 되고, 그 변화를 따라 나 역시 이리저리 유동하며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모든 것이 내 모습이라면 더이상 나의 어떤 부분을 절제하거나 인내할 필요도 없고 일관되고 성숙한 성품과 인격도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내 마음에 좋은 대로 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말하고, 내 충동을 따라 행동하면 되는 것이죠. 우리는 주변에서 이런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내 마음에 안 들면 참지 못하고 쉽게 분을 내며, 자기 생각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캐릭터 계정 하나 삭제하고 다시 손쉽게 부캐를 만들면 그만인 것이죠. 느끼는 대로 원하는 대로 내 안에 있는 수많은 나 자신을 찾아가며 수많은 나로 살아가면 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사람들은 수 많은 나를 찾아 헤매다가 길을 잃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의 불안정한 정서와 높은 우울증이 이 시대의 모순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요. 



어린이들의 그림책에도 이러한 시대정신이 보여집니다. 인기있는 일본 그림책 요시타케 신스케의 『이게 정말 사과일까?』에서는 한 아이가 끝없이 사과를 의심합니다. 사과 하나를 가지고 수없이 많은 다른 것들을 상상해 내서 결국 독자로 하여금 사과는 꼭 사람이 먹는 과수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합니다. 

마찬가지로 그의 책 『이게 정말 나일까?』에서 ‘나’의 존재도 한 인격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존재로 그리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는 어린 독자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어떤 영향을 받게 될까요. 바른 가치를 배우고, 권위에 순종하며, 옳은 습관을 세우면서 일관된 정체성을 형성해 가야 하는 시기에, 이것도 저것도 다 내 모습이니까 이렇게 저렇게 마음대로 다 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갖게 되지는 않을까요?

이러한 시대 정신과 정 반대의 이야기를 전하는 아름다운 그림책이 있습니다. 작가는 민들레는 민들레인 것처럼, 누구나 어디에 있든 어떻게 있든 무엇을 하든, 참다운 자신의 모습을 지키고 가꾸며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하늘처럼 맑은 배경에 작은 토끼 패턴의 연노랑 머그컵에 민들레 두송이가 솟아 있습니다. 하나는 노란 꽃이고, 다른 하나는 씨를 맺은 흰 꽃입니다. 여기서 홀씨가 빠져나와 바람을 따라 흩날립니다. 책의 제목은 날아가는 홀씨와 함께 움직이듯 보입니다. 책의 제목부터 민들레는 결코 다른 것이 될 수 없음을 단호하게 선언합니다. 


표지부터 바람을 타고 날아온 민들레씨는 표제지로 넘어가 아래쪽으로 가라앉다가 첫 장에서 “민들레는 민들레”라는 글귀와 함께 싹을 틔웁니다. 배경은 없고 오른쪽 페이지에 민들레를 세밀화로 그렸기 때문에 민들레 생태 그림책인 것도 같습니다. 다음장에 떡잎만 배꼼이 내민 싹은 “싹이 터도 민들레”라는 글귀가 없었더라면 민들레인 줄 몰랐을 것입니다. 잎이 나자 민들레 특유의 톱니모양 잎이 등장합니다. 어느덧 꽃줄기가 쏙 하고 올라옵니다. 그리고 한 장을 더 넘기면 마침내 샛노랑의 꽃이 활짝 핍니다. 여기까지 작가는 민들레의 한살이의 과정을 표현하면서 그 모습이 씨, 싹, 잎, 줄기, 꽃이든 상관없이 민들레는 민들레라고 이야기 해줍니다. 

  


이제부터는 민들레가 서식하는 환경을 다룹니다. 길가 가로수 아래, 차들이 지나다니는 도로 틈, 기와 지붕 위에 노란 꽃이 피었습니다. 민들레 홀씨가 날아가는 곳이라면 놀라운 생명력으로 어디든 싹을 틔우고 밝은 노랑을 뽐내는 민들레입니다. 토끼풀 틈에 홀로 있어도 민들레이고, 두 송이가 펴도 민들레이며, 들판 가득 피어도 민들레는 민들레 입니다. 

그림 작가는 민들레를 밝게, 그리고 세밀하게 묘사합니다. 어떤 민들레는 활짝 피고, 어떤 민들레는 이제 막 피기 시작합니다. 민들레들의 모양, 크기, 길이 같은 것이 단 하나도 같은 것이 없습니다. 시들어 지는 모습도 보입니다. 작가는 들판에서 보는 민들레의 모습을 최대한 그대로 표현한 것 같습니다. 


이제 민들레 이야기는 절정에 이릅니다. 저 멀리 풍차가 보이는 시골 들판의 정경이 펼친 면 가득 들어옵니다. 우리나라의 나지막한 산도 보입니다. 아래로 풀을 뜯는 소들이 있고, 들판에 온통 민들레가 노랗게 펴 있습니다. 민들레 꽃에는 벌, 나비 등의 곤충이 여유롭게 꿀을 빨고 있습니다. 이 노란 민들레 밭이 곧 흰 민들레 밭으로 변하겠지요? 그러나 꽃이 진 민들레도 씨가 맺힌 민들레도, 모두 민들레입니다. 씨앗이 바람에 이리저리 하늘 높이 흩날려도, 민들레는 민들레기에 참 아름답습니다. 어디에 있든 어떤 모습이든 우리는 민들레를 민들레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해마다 봄이면 민들레를 참 많이 봅니다. 얼마 전에도 초등학생 제자들과 바깥놀이를 나가면 민들레 꽃을 관찰하며 놀았는데, 어느덧 노란 민들레가 하얗게 변했습니다. 아이들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민들레 대를 손에 쥐고, 홀씨를 ‘호’하고 불며 놀더군요. 홀씨가 날아갈 때 신비로운 느낌이 드나 봅니다. 흔하디 흔한 꽃이 평범한 일상과 분주히 움직이는 등교길, 출근길을 새롭게 만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민들레는 일상에 숨 쉴 틈을 주는 선물과 같은 꽃이기에 특별한 날 받은 세련된 꽃다발보다 더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이것이 민들레 입니다. 


민들레는 민들레이듯, 이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사실이 정말 많습니다. 민들레가 다른 것일 수 없듯 우리의 존재도 그와 같습니다. 민들레가 민들레이듯, 나도 나입니다. 내가 가장 나 다울 때는 나로 불릴 때라는 것이죠. 내가 만들어낸 다른 그 어떤 부캐는 내가 될 수 없습니다. 나는 내가 만들어가는 존재가 아니라 창조주에 의해 아주 먼 옛날부터 계획되고 특별하게 부여 받은 정체성을 가진 아름답고 존귀한 존재입니다. 내가 처한 상황이나, 가진 것이나, 겉모습이나, 내 느낌이나 주관적인 감정이 나를 정의하지 않습니다. 참된 행복은 마음의 소리를 따라 이리 저리 휩쓸리는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나를 좇다 보면 오히려 진정한 나를 잃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물고기가 물 안에서 가장 자유롭듯, 우리도 이 땅에 존재하는 변하지 않는 목적을 따라 살아갈 때 가장 자유롭고 아름답고 행복한 삶이 될 것입니다.






박혜련  | 더샘물학교

South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서 교육 석사 학위를 마치고, 현재 더샘물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고, 성서유니온 ‘큐티아이’ 집필진, ‘기독교문화연구소 숨’에서 강사로 활동중이며, 극동방송 마더와이즈 ‘그림책 속 이야기’ 출연 중이다. 그림책 읽기를 통해 세대와 세대 간에 아름다움과 미덕이 전수 되길 꿈꾸며 그림책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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