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예술가의 따뜻했던 시간” 『반 고흐와 해바라기 소년』

『반 고흐와 해바라기 소년』 자세히 보기
얼마 전 가족과 함께 반 고흐 몰입형 체험 전시회를 다녀왔습니다. 전시 공간을 빛으로 가득 채운 ‘한국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화가’ 반 고흐의 삶과 작품 속에서 관람객들은 감탄하며 즐거워했습니다. 전시회를 다녀온 후 얼마 지난 후 초등학교 5학년 작은딸이 그림책장에서 이 작품을 꺼내 읽다가 전시회에서 들어가본 고흐의 방 그림을 보고 반가워하며, 그림책의 등장인물이 실존 인물이냐며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이 작품을 오래 전 미국 텍사스 포트워스에 위치한 킴벨 아트 뮤지엄(Kimbell Art Museum)의 기프트숍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당시 집에서 가까워 자주 방문했는데, 기프트숍 서적 코너에 비치된 이 시리즈가 제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명화나 예술가를 모티브 삼아 펴낸 그림책 들을 종종 볼 수 있었는데, 로렌스 안홀트의 작품은 다른 책들과 다른 독특한 매력이 느껴졌습니다. 그 후 엄마로서 아이와 자주 읽게 되고, 아이도 이야기 속에 깊게 빠져들었지요. 저희 가정의 오래 된 보석 같은 그림책을 꺼내 보며 깊어 가는 가을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해바라기 만발한 아를로 여행을 떠나보고 싶습니다.
『반 고흐와 해바라기 소년』은 로렌스 안홀트의 <내가 만난 미술가 그림책 시리즈: ANHOLT'S ARTIST SERIES> 중 하나입니다. 이 시리즈의 저자 로렌스 안홀트는 영국에서 출생하고 어린시절을 네덜란드에서 보냈습니다. 영국 팔머스 예술학원 시절 아내 캐서린을 만났습니다. 로렌스는 8년 동안 미술을 공부한 끝에 런던의 영국왕립미술원에서 석사 학위를 마쳤습니다. 로렌스와 캐서린 안홀트 부부는 30년 이상 200권 넘는 책을 만들었으며, 30개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서 사랑받았습니다. 그들은 영국에서 시작된 어린 아기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북스타트 운동에도 참여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안홀트의 작품은 영유아 보드북부터 그림책, 챕터북, 청소년 소설, 성인용 추리소설에 이르기까지 연령층의 범위가 폭넓습니다. 특히 어린이 책에 있어서 네슬레 스마티즈 골드 상을 두 번이나 받았고 쉐필드 아동 도서 상, 노팅엄 아동 도서 상도 여러 차례 수상했습니다. "오늘날 어린이를 위해 글을 쓰는 가장 다재 다능한 작가”의 타이틀을 갖고 있으며 영국의 10위 안에 드는 어린이책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안홀트 부부는 영국 남서부 데번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초원에서 살며 어린 시절의 기억과 아이를 키울 때 느꼈던 일들을 토대로 계속해서 작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특히 아내 캐서린 안홀트는 현재 화가로서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1]
로렌스는 미술 선생님으로 학생을 가르치면서 프리다 칼로, 클로드 모네, 피카소 등 자신이 사랑하는 위대한 예술가들에 대한 실제 이야기를 제자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일지 고민했습니다. 그는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어린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전하기 위해 화가가 작업하는 모습을 곁에서 실제로 지켜보았던 어린이가 겪은 일을 중심으로 서사를 이끌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미술가들을 만났던 어린이들의 흔적을 찾아다니며 이야기로 만들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많은 경우 미술가의 친인척들을 직접적으로 만나 화가들에 대해 폭넓게 조사하며 자료를 수집했습니다. 그리하여 아이들이 미술 작품과 미술가의 삶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 <내가 만난 미술가 그림책> 시리즈가 탄생했습니다. 이 시리즈는 화가와 그의 작품 소개에 중점을 두었던 기존의 미술 관련 책과는 다른 관점으로 호평을 받았습니다. 로렌스는 대부분 작품을 그의 아내 캐서린과 작업했는데, 유독 이 시리즈 만큼은 본인이 모두 직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위대한 예술가의 작품을 다음 세대 학생들에게 전달하고자 한 작가의 마음과 애정이 작품 안에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시리즈에는 작가의 창작 동기 대로 영국에서 초등학생들을 위한 국정 미술 교과서로 사용되고 있으며, 나아가 전 세계의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수많은 역본으로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부가 팔렸고 우리나라에서는 2001년에 소개되어 2019년에는 뮤지컬로 공연되었지만, 책은 안타깝게 절판 되었습니다.
<내가 만난 미술가 그림책> 첫번째 작품이 바로 『반 고흐와 해바라기 소년』입니다. 원제는 『Camille and the Sunflowers』로 서사를 이끌어 가는 작품 속 주인공은 카밀이라는 소년입니다. 이 작품으로 시작한 안홀트의 미술가 시리즈는 출간 순서대로 다음과 같습니다.
Book 1: Camille and the Sunflowers (1995)
Book 2: Degas and the Little Dancer (1996)
Book 3: The Magical Garden of Claude Monet (1997)
Book 4: Picasso and the Girl with the Ponytail (1998)
Book 5: Leonardo and the Flying Boy (2003)
Book 6: Matisse, King of Colour (2007)
Book 7: Cezanne and the Apple Boy (2009)
Book 8: Tell Us a Story, Papa Chagall (2014)
Book 9: Frida Kahlo and the Bravest Girl in the World (2016)

그리고 학생들을 위한 활동책 Activity Book도 나와있습니다.

『반 고흐와 해바라기 소년』의 겉표지의 상단에 제목이 있고, 가운데 테이블에는 팔레트와 해바라기 화병이 놓여 있습니다. 그 옆에 해바라기를 그린 캔버스를 보라색 옷을 입은 마른 남자가 들고 있고, 남자 앞에는 파란 모자를 쓰고 커다란 해바라기 꽃 한송이를 들고 있는 소년이 보입니다. 성인 남자는 고흐이고 소년은 카밀 입니다. 표지를 펼치니 앞 표지는 뒷 표지로 이어집니다. 이 테이블이 놓인 곳은 다름 아니라 고흐의 침실방 입니다. 붉은 바닥은 뒷표지로 이어지는데, 고흐가 그렸던 방과 똑같은 그림이 펼쳐집니다. 작가는 고흐의 그림을 그대로 표현하려고 애쓴 흔적이 느껴집니다. 원작은 유화이지만 그림책은 수채화로 그리고 있어 더 부드러운 이미지를 나타냅니다.

<고흐의 방 The Bedroom>, 세 버전의 침실 중 1888년의 첫번째 작품

판권면 상단에는 초가 세워져 있는 모자의 스캐치가 있고, 오른쪽 표제지에는 제목과 함께 고흐 방에서 본 의자에 해바라기를 든 카밀이 앉아 있습니다. 이 작품은 고흐가 35세에 찾아간 프랑스 남부 아를에서 생애 말년을 보내며, 고흐를 따뜻한 마음으로 가족처럼 살펴준 실제 인물 조셉 룰랑의 작은 아들 카밀이란 소년의 시점으로 서사가 전개됩니다. 카밀의 아버지 조제프 룰랑은 유쾌한 성격으로 아를의 우체부였고, 이후 빈센트가 병원에 입원한 뒤에도 변함없이 찾아와 위로해 준 진정한 친구였다고 합니다.
“카밀이 사는 마을에는 해바라기가 무척 많았습니다.
해바라기들은 하늘 높이 자라고 있어서, 진짜 해 같았습니다.
해바라기 밭은 온통 노란 해가 활활 불타는 것 같았습니다.”

첫 장면은 펼친 면 가로로 긴 액자 구성 안에 흐드러지게 해바라기가 피어 있고, 빨간 바지 소년이 신나게 달리고 있습니다. 해바라기 밭 너머에 파란 우체부 유니폼을 입은 아빠의 넉넉한 품은 카밀을 반깁니다. 카밀은 언제나 하교 후 해바라기 밭을 달려 아빠를 만납니다. 그리고 기차에서 우편물 자루를 내리는 아빠를 돕습니다. 기차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연기는 꼭 고흐의 작품 별이 빛나는 밤의 소용돌이 치는 별빛을 연상케 합니다. 작가는 그림 속에 고흐의 그림들을 의도적으로 녹여낸 것 같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차 역에서 밀집모자를 쓰고 노란 수염이 난 낯선 사람을 만납니다. 카밀과 고흐의 첫 만남이지요. 작가는 화가를 성 ‘고흐’가 아닌 이름 ‘빈센트’로 친근하게 소개합니다. 카밀의 눈에 빈센트는 돈도 없고 친구도 없습니다.

카밀은 아빠와 함께 헌 가구와 그릇을 수레에 싣고 노란 집으로 향합니다. 카밀은 거기에 해바라기 한다발을 선물로 꺾어갑니다. 카밀은 빈센트가 작품활동을 할 때마다 따라다니며 느끼고 보고 생각하는 것들을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빈센트는 자신의 친구와 같은 카밀 가족을 존경과 사랑의 마음으로 초상화를 모두 그렸습니다. 카밀은 캔버스 뒤에서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아빠를 그리는 빈센트를 바라봅니다.
“카밀은 아빠의 얼굴이 캔버스 위에
마법처럼 그려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그림은 조금 낯설었지만 아주 아름다웠습니다.”

<Josheph Roulin, Bust, 1889>

<The Schoolboy Camille Roulin, 1888>

빈센트가 카밀 가족의 그림을 완성하자, 갑자기 흑백의 스케치로 그림체가 바뀝니다. 그리고 아빠, 형, 여동생 그리고 카밀까지 고흐 작품이 그대로 캔버스 그림 위에 그려져 있습니다. 등장 인물은 색 없이 스케치로 표현하고 카밀 가족의 초상화를 강조합니다. 사진 한 장 찍어 본 적이 없었던 카밀은 벅차고 신이 났습니다. 카밀이 자신의 초상화를 가지고 학교에 간 장면에서도 카밀의 초상화만 색이 있고, 친구들은 흑백으로 처리합니다. 자랑하고 싶은 카밀의 마음과는 정 반대로 모두 그림을 놀렸고, 그것도 모자라 하교 후 빈센트를 놀리며 졸졸 따라다닙니다.
카밀은 빈센트를 따라가 아를의 풍경을 그리는 빈센트를 지켜봅니다. 카밀의 눈에 빈센트는 쉬지 않고 그림을 그립니다. 해바라기 밭과 해를 그리는 빈센트를 보며 ‘빈센트 아저씨는 해바라기 사나이야.’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부자라면 아저씨의 그림을 모두 사고 싶다는 카밀의 말에 고흐는 고마워하며, 카밀은 자신의 친구라고 말하며 웃습니다.

카밀은 빈센트 아저씨를 마을 사람들이 싫어하고 따돌리는 모습에 울음을 터트립니다. 어린 카밀의 순수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아빠는 카밀을 달래며 언젠가는 사람들도 빈센트의 그림을 좋아하게 될 거라고 위로합니다. 그날 카밀은 꿈속에서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리고 있는 고흐를 봅니다. 커다란 사이프러스 나무 앞 높은 언덕에 우뚝 서서 캔버스에 소용돌이 치는 별빛을 담아내고 있는 빈센트가 ‘별이 빛나는 밤’의 그림 속에 있습니다. 코발트 블루의 하늘, 빛을 내뿜는 그 밤의 별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아를의 밤을 그리는 고흐를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원작과는 달리 연필 스케치와 수채화로 더욱 맑은 ‘별이 빛나는 밤’이 카밀의 꿈처럼 펼쳐져 있습니다. 카밀은 탄성합니다.
“해바라기 사나이는 별을 그리고 있었어요!”

하지만 결국 마을 사람들은 빈센트를 마을에서 떠나게 해달라며 아빠를 찾아옵니다. 카밀은 빈센트의 노란집으로 달려가 방 문을 엽니다. 카밀이 준 해바라기 다발은 모두 시들어 카밀의 마음을 더욱 슬프게 합니다. 빈센트는 짐을 꾸리며 그림 하나를 카밀에게 남기고 떠납니다. 바로 진짜 해같이 노랗고 밝게 빛나는 해바라기 그림입니다.

<해바라기 15송이>, 1988
빈센트는 떠나고 없지만, 카밀은 언젠가 빈센트의 그림을 사랑할 거라는 아빠의 말이 사실임을 알게 됩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빈센트의 그림을 보기 위해 박물관과 미술관을 찾게 되었지요. 그림책의 마지막 장면은 빈센트 미술관에 들어가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고 있습니다.
생전에 고흐의 작품은 인정받지 못했고, 그는 고독하고 외롭고 병약했고 심약했습니다. 해처럼 빛나는 해바라기와 밤하늘의 눈이 부신 별빛은 젊은 화가의 고뇌를 예술혼으로 승화시켜 더욱 슬프면서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림책을 통해 어린 독자들은 고흐의 삶에 따뜻한 순간을 봅니다. 어린 카밀의 눈과 마음으로 고흐를 멀고 고독한 예술가가 아닌 열살 꼬마의 친구, 해바라기 사나이로 만나게 합니다. 카밀을 통해 빈센트를 만난 어린이 독자의 마음 속에는 예술가의 작품이 어떻게 남을까요?

| 박혜련 | 더샘물학교 South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서 교육 석사 학위를 마치고, 현재 더샘물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고, ‘기독교문화연구소 숨’에서 다음 세대를 위한 문화 연구와 부모교육 강사로 활동중이다. 또한 그림책 읽기를 통해 세대와 세대 간에 아름다움과 미덕이 전수 되길 꿈꾸며 그림책을 연구하며 그림책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
“고독한 예술가의 따뜻했던 시간” 『반 고흐와 해바라기 소년』
『반 고흐와 해바라기 소년』 자세히 보기
얼마 전 가족과 함께 반 고흐 몰입형 체험 전시회를 다녀왔습니다. 전시 공간을 빛으로 가득 채운 ‘한국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화가’ 반 고흐의 삶과 작품 속에서 관람객들은 감탄하며 즐거워했습니다. 전시회를 다녀온 후 얼마 지난 후 초등학교 5학년 작은딸이 그림책장에서 이 작품을 꺼내 읽다가 전시회에서 들어가본 고흐의 방 그림을 보고 반가워하며, 그림책의 등장인물이 실존 인물이냐며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이 작품을 오래 전 미국 텍사스 포트워스에 위치한 킴벨 아트 뮤지엄(Kimbell Art Museum)의 기프트숍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당시 집에서 가까워 자주 방문했는데, 기프트숍 서적 코너에 비치된 이 시리즈가 제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명화나 예술가를 모티브 삼아 펴낸 그림책 들을 종종 볼 수 있었는데, 로렌스 안홀트의 작품은 다른 책들과 다른 독특한 매력이 느껴졌습니다. 그 후 엄마로서 아이와 자주 읽게 되고, 아이도 이야기 속에 깊게 빠져들었지요. 저희 가정의 오래 된 보석 같은 그림책을 꺼내 보며 깊어 가는 가을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해바라기 만발한 아를로 여행을 떠나보고 싶습니다.
『반 고흐와 해바라기 소년』은 로렌스 안홀트의 <내가 만난 미술가 그림책 시리즈: ANHOLT'S ARTIST SERIES> 중 하나입니다. 이 시리즈의 저자 로렌스 안홀트는 영국에서 출생하고 어린시절을 네덜란드에서 보냈습니다. 영국 팔머스 예술학원 시절 아내 캐서린을 만났습니다. 로렌스는 8년 동안 미술을 공부한 끝에 런던의 영국왕립미술원에서 석사 학위를 마쳤습니다. 로렌스와 캐서린 안홀트 부부는 30년 이상 200권 넘는 책을 만들었으며, 30개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서 사랑받았습니다. 그들은 영국에서 시작된 어린 아기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북스타트 운동에도 참여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안홀트의 작품은 영유아 보드북부터 그림책, 챕터북, 청소년 소설, 성인용 추리소설에 이르기까지 연령층의 범위가 폭넓습니다. 특히 어린이 책에 있어서 네슬레 스마티즈 골드 상을 두 번이나 받았고 쉐필드 아동 도서 상, 노팅엄 아동 도서 상도 여러 차례 수상했습니다. "오늘날 어린이를 위해 글을 쓰는 가장 다재 다능한 작가”의 타이틀을 갖고 있으며 영국의 10위 안에 드는 어린이책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안홀트 부부는 영국 남서부 데번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초원에서 살며 어린 시절의 기억과 아이를 키울 때 느꼈던 일들을 토대로 계속해서 작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특히 아내 캐서린 안홀트는 현재 화가로서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1]
로렌스는 미술 선생님으로 학생을 가르치면서 프리다 칼로, 클로드 모네, 피카소 등 자신이 사랑하는 위대한 예술가들에 대한 실제 이야기를 제자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일지 고민했습니다. 그는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어린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전하기 위해 화가가 작업하는 모습을 곁에서 실제로 지켜보았던 어린이가 겪은 일을 중심으로 서사를 이끌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미술가들을 만났던 어린이들의 흔적을 찾아다니며 이야기로 만들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많은 경우 미술가의 친인척들을 직접적으로 만나 화가들에 대해 폭넓게 조사하며 자료를 수집했습니다. 그리하여 아이들이 미술 작품과 미술가의 삶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 <내가 만난 미술가 그림책> 시리즈가 탄생했습니다. 이 시리즈는 화가와 그의 작품 소개에 중점을 두었던 기존의 미술 관련 책과는 다른 관점으로 호평을 받았습니다. 로렌스는 대부분 작품을 그의 아내 캐서린과 작업했는데, 유독 이 시리즈 만큼은 본인이 모두 직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위대한 예술가의 작품을 다음 세대 학생들에게 전달하고자 한 작가의 마음과 애정이 작품 안에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시리즈에는 작가의 창작 동기 대로 영국에서 초등학생들을 위한 국정 미술 교과서로 사용되고 있으며, 나아가 전 세계의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수많은 역본으로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부가 팔렸고 우리나라에서는 2001년에 소개되어 2019년에는 뮤지컬로 공연되었지만, 책은 안타깝게 절판 되었습니다.
<내가 만난 미술가 그림책> 첫번째 작품이 바로 『반 고흐와 해바라기 소년』입니다. 원제는 『Camille and the Sunflowers』로 서사를 이끌어 가는 작품 속 주인공은 카밀이라는 소년입니다. 이 작품으로 시작한 안홀트의 미술가 시리즈는 출간 순서대로 다음과 같습니다.
Book 1: Camille and the Sunflowers (1995)
Book 2: Degas and the Little Dancer (1996)
Book 3: The Magical Garden of Claude Monet (1997)
Book 4: Picasso and the Girl with the Ponytail (1998)
Book 5: Leonardo and the Flying Boy (2003)
Book 6: Matisse, King of Colour (2007)
Book 7: Cezanne and the Apple Boy (2009)
Book 8: Tell Us a Story, Papa Chagall (2014)
Book 9: Frida Kahlo and the Bravest Girl in the World (2016)
그리고 학생들을 위한 활동책 Activity Book도 나와있습니다.
『반 고흐와 해바라기 소년』의 겉표지의 상단에 제목이 있고, 가운데 테이블에는 팔레트와 해바라기 화병이 놓여 있습니다. 그 옆에 해바라기를 그린 캔버스를 보라색 옷을 입은 마른 남자가 들고 있고, 남자 앞에는 파란 모자를 쓰고 커다란 해바라기 꽃 한송이를 들고 있는 소년이 보입니다. 성인 남자는 고흐이고 소년은 카밀 입니다. 표지를 펼치니 앞 표지는 뒷 표지로 이어집니다. 이 테이블이 놓인 곳은 다름 아니라 고흐의 침실방 입니다. 붉은 바닥은 뒷표지로 이어지는데, 고흐가 그렸던 방과 똑같은 그림이 펼쳐집니다. 작가는 고흐의 그림을 그대로 표현하려고 애쓴 흔적이 느껴집니다. 원작은 유화이지만 그림책은 수채화로 그리고 있어 더 부드러운 이미지를 나타냅니다.
<고흐의 방 The Bedroom>, 세 버전의 침실 중 1888년의 첫번째 작품
판권면 상단에는 초가 세워져 있는 모자의 스캐치가 있고, 오른쪽 표제지에는 제목과 함께 고흐 방에서 본 의자에 해바라기를 든 카밀이 앉아 있습니다. 이 작품은 고흐가 35세에 찾아간 프랑스 남부 아를에서 생애 말년을 보내며, 고흐를 따뜻한 마음으로 가족처럼 살펴준 실제 인물 조셉 룰랑의 작은 아들 카밀이란 소년의 시점으로 서사가 전개됩니다. 카밀의 아버지 조제프 룰랑은 유쾌한 성격으로 아를의 우체부였고, 이후 빈센트가 병원에 입원한 뒤에도 변함없이 찾아와 위로해 준 진정한 친구였다고 합니다.
첫 장면은 펼친 면 가로로 긴 액자 구성 안에 흐드러지게 해바라기가 피어 있고, 빨간 바지 소년이 신나게 달리고 있습니다. 해바라기 밭 너머에 파란 우체부 유니폼을 입은 아빠의 넉넉한 품은 카밀을 반깁니다. 카밀은 언제나 하교 후 해바라기 밭을 달려 아빠를 만납니다. 그리고 기차에서 우편물 자루를 내리는 아빠를 돕습니다. 기차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연기는 꼭 고흐의 작품 별이 빛나는 밤의 소용돌이 치는 별빛을 연상케 합니다. 작가는 그림 속에 고흐의 그림들을 의도적으로 녹여낸 것 같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차 역에서 밀집모자를 쓰고 노란 수염이 난 낯선 사람을 만납니다. 카밀과 고흐의 첫 만남이지요. 작가는 화가를 성 ‘고흐’가 아닌 이름 ‘빈센트’로 친근하게 소개합니다. 카밀의 눈에 빈센트는 돈도 없고 친구도 없습니다.
카밀은 아빠와 함께 헌 가구와 그릇을 수레에 싣고 노란 집으로 향합니다. 카밀은 거기에 해바라기 한다발을 선물로 꺾어갑니다. 카밀은 빈센트가 작품활동을 할 때마다 따라다니며 느끼고 보고 생각하는 것들을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빈센트는 자신의 친구와 같은 카밀 가족을 존경과 사랑의 마음으로 초상화를 모두 그렸습니다. 카밀은 캔버스 뒤에서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아빠를 그리는 빈센트를 바라봅니다.
<Josheph Roulin, Bust, 1889>
<The Schoolboy Camille Roulin, 1888>
빈센트가 카밀 가족의 그림을 완성하자, 갑자기 흑백의 스케치로 그림체가 바뀝니다. 그리고 아빠, 형, 여동생 그리고 카밀까지 고흐 작품이 그대로 캔버스 그림 위에 그려져 있습니다. 등장 인물은 색 없이 스케치로 표현하고 카밀 가족의 초상화를 강조합니다. 사진 한 장 찍어 본 적이 없었던 카밀은 벅차고 신이 났습니다. 카밀이 자신의 초상화를 가지고 학교에 간 장면에서도 카밀의 초상화만 색이 있고, 친구들은 흑백으로 처리합니다. 자랑하고 싶은 카밀의 마음과는 정 반대로 모두 그림을 놀렸고, 그것도 모자라 하교 후 빈센트를 놀리며 졸졸 따라다닙니다.
카밀은 빈센트를 따라가 아를의 풍경을 그리는 빈센트를 지켜봅니다. 카밀의 눈에 빈센트는 쉬지 않고 그림을 그립니다. 해바라기 밭과 해를 그리는 빈센트를 보며 ‘빈센트 아저씨는 해바라기 사나이야.’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부자라면 아저씨의 그림을 모두 사고 싶다는 카밀의 말에 고흐는 고마워하며, 카밀은 자신의 친구라고 말하며 웃습니다.
카밀은 빈센트 아저씨를 마을 사람들이 싫어하고 따돌리는 모습에 울음을 터트립니다. 어린 카밀의 순수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아빠는 카밀을 달래며 언젠가는 사람들도 빈센트의 그림을 좋아하게 될 거라고 위로합니다. 그날 카밀은 꿈속에서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리고 있는 고흐를 봅니다. 커다란 사이프러스 나무 앞 높은 언덕에 우뚝 서서 캔버스에 소용돌이 치는 별빛을 담아내고 있는 빈센트가 ‘별이 빛나는 밤’의 그림 속에 있습니다. 코발트 블루의 하늘, 빛을 내뿜는 그 밤의 별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아를의 밤을 그리는 고흐를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원작과는 달리 연필 스케치와 수채화로 더욱 맑은 ‘별이 빛나는 밤’이 카밀의 꿈처럼 펼쳐져 있습니다. 카밀은 탄성합니다.
하지만 결국 마을 사람들은 빈센트를 마을에서 떠나게 해달라며 아빠를 찾아옵니다. 카밀은 빈센트의 노란집으로 달려가 방 문을 엽니다. 카밀이 준 해바라기 다발은 모두 시들어 카밀의 마음을 더욱 슬프게 합니다. 빈센트는 짐을 꾸리며 그림 하나를 카밀에게 남기고 떠납니다. 바로 진짜 해같이 노랗고 밝게 빛나는 해바라기 그림입니다.
<해바라기 15송이>, 1988
빈센트는 떠나고 없지만, 카밀은 언젠가 빈센트의 그림을 사랑할 거라는 아빠의 말이 사실임을 알게 됩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빈센트의 그림을 보기 위해 박물관과 미술관을 찾게 되었지요. 그림책의 마지막 장면은 빈센트 미술관에 들어가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고 있습니다.
생전에 고흐의 작품은 인정받지 못했고, 그는 고독하고 외롭고 병약했고 심약했습니다. 해처럼 빛나는 해바라기와 밤하늘의 눈이 부신 별빛은 젊은 화가의 고뇌를 예술혼으로 승화시켜 더욱 슬프면서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림책을 통해 어린 독자들은 고흐의 삶에 따뜻한 순간을 봅니다. 어린 카밀의 눈과 마음으로 고흐를 멀고 고독한 예술가가 아닌 열살 꼬마의 친구, 해바라기 사나이로 만나게 합니다. 카밀을 통해 빈센트를 만난 어린이 독자의 마음 속에는 예술가의 작품이 어떻게 남을까요?
[1] 작가에 대한 보다 자세한 정보는 작가의 홈페이지를 참고하세요. https://www.anholt.co.uk
박혜련 | 더샘물학교
South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서 교육 석사 학위를 마치고, 현재 더샘물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고, ‘기독교문화연구소 숨’에서 다음 세대를 위한 문화 연구와 부모교육 강사로 활동중이다. 또한 그림책 읽기를 통해 세대와 세대 간에 아름다움과 미덕이 전수 되길 꿈꾸며 그림책을 연구하며 그림책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