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나한테 물어봐』 “아빠와 딸의 가을 데이트”

2022-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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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나한테 물어봐』 “아빠와 딸의 가을 데이트” 




깊어져 가는 가을, 여름 내내 푸르렀던 나뭇잎은 알록달록 아름다운 옷으로 갈아입고 여기저기 낙엽이 되어 흩날립니다. 오색 찬란한 가을 낙엽을 보러 많은 사람들은 나들이를 떠나기도 합니다. 가을은 한해 동안 잘 자란 곡식을 거두는 풍요로운 추수의 때이기도 합니다. 봄에 파릇한 싹을 틔운 씨앗들은 여름 내내 잘 자라고, 가을이 되어 어느새 탐스러운 열매를 내보입니다. 아이들의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름 한 철 뜨거운 햇빛에 그을리며 신나게 놀던 아이들은 가을이 되면 몰라보게 부쩍 자라 있습니다. “응애” 하며 울기만 하던 아기가 어느새 자라 쫑알쫑알 떠드는 모습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그림책 속 이야기, 아름다운 가을날 아빠와 딸은 어떤 이야기 꽃을 피울까요?

『아빠, 나한테 물어봐』 는 미국의 아동문학 작가 버나드 와버(1924-2013)의 마지막 작품을 한국의 이수지 작가가 그렸습니다. 이수지는 와버의 글에 매료되어 직접 그의 글을 우리말로 옮기고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아이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글 작가의 따뜻한 정서와 그의 글을 향한 그림 작가의 애정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그림책입니다.


겉표지는 어느 깊은 가을에 손을 잡고 서로를 바라보는 아빠와 딸의 모습을 따뜻하고 다정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왼쪽편에는 붉게 물든 단풍 나무가 늘어서 있고, 왼쪽은 잎이 노랗게 물든 가지 끝이 보입니다. 그 아래로 파란 모자를 쓴 아빠와 빨간 가디건에 흰 원피스를 입은 소녀가 아빠를 올려다 봅니다. 바닥에는 노랗고 붉고 주홍빛의 낙엽들이 떨어져 흩날립니다. 배경은 흰색으로 처리해 가을의 나무와 두 주인공의 부드러운 색이 돋보이게 합니다. 책의 표지를 열면 면지부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아빠는 파란 모자를, 아이는 빨간 가디건을 입고 외출을 준비합니다. 그리고 아이와 아빠는 공원에 도착합니다. 이수지 작가 특유의 거친듯한 선의 움직임은 아이의 상기된 기분을 잘 표현해 주고 있으며, 색연필로 표현한 붉은 단풍의 선명한 색감은 공원의 풍경에 생동감을 더합니다. 주인공은 공원의 정경과 함께 작게 그려지기도 하고, 아빠와 함께 대화할 때나 관찰하는 장면에서는 얼굴이 크게 부각되기도 합니다. 단순한 스케치이지만 아이의 표정과 기분이 생생하게 전달됩니다. 텍스트는 주로 아이와 아빠의 대화체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그림에 푹 빠져 대사를 읽다 보면 딸과 아빠의 이야기 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아이는 아빠에게 무엇을 좋아하는지 물어봐 달라고 합니다. 아빠가 아이에게 무엇을 좋아하냐고 묻자, 아이는 끝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재잘재잘 이야기합니다. 동물, 새, 개구리... 좋아하는 것들은 참 많습니다. 공원을 따라 깊이 들어가자 커다란 호수가 눈 앞에 펼쳐 집니다. 호수 둘레로 쭉 서있는 나무들은 알록달록 화려하고 멋진 색으로 호수를 에워쌉니다. 아이는 아빠와 함께 날아가는 새와, 살포시 꽃잎에 앉은 나비를 봅니다. 꽃밭 위로 윙윙 날아가는 빨간 고추잠자리, 꽃 향기 사이를 두리번거리며 붕붕 꿀을 찾는 꿀벌. 아이에게는 눈 앞에 펼쳐진 이 모든 것이, 귓가에 울리는 모든 소리가, 코끝에 스며드는 모든 향기가 참 좋습니다. 그리고 아이는 끝없이 아빠와 이야기를 나눕니다.


코스모스가 흐트러지게 핀 공원을 산책한 아빠와 딸은 저 멀리 회전목마 앞에 있는 아이스크림차를 향합니다,


“아빠, 내가 아이스크림 좋아하는지 한번 물어봐.”

“너 아이스크림 좋아하니?”

“아니, 나는 아이스크림을 사랑해. 정말 정말 사랑해!”


아빠에게 안겨 눈을 반짝이며 응석을 부리는 딸의 모습에 아빠도 활짝 미소로 답합니다. 아빠와 딸은 딸기 맛 일듯 한 핑크색 아이스크림 콘을 먹습니다. 아빠는 늘 하던 대로 거뜬히 딸을 목마 태우고, 능숙하게 한손에는 딸의 손을, 한손에는 아이스크림을 듭니다. 딸은 아빠 목이 편한지, 자연스레 균형을 잡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한 손으로 빨간 풍선과 아빠 손을 꼭 잡습니다. 아빠만큼 커진 키로, 아빠보다 높은 곳에서 공원을 바라보며 먹는 아이스크림이 얼마나 맛있을까요?


이제 아빠와 딸은 빨간 단풍 숲으로 들어섭니다. 빨간색을 좋아하는 아이는 떨어진 단풍잎을 발로 차며 신나게 걸어갑니다. 빨간 가디건과 빨간 풍선이 참 어울리는 숲입니다. 아이 뒤로 아빠도 똑같이 단풍을 차며 따라갑니다. 보석처럼 떨어지는 분수대를 지나 아빠와 즐거운 시간을 한참 보낸 뒤, 이제부터는 왜 그런지 물어봐 달라고 합니다. 아빠가 왜 그런지 묻자 아이는 엉뚱하게도 아빠가 대답해 달라고 합니다. 아빠가 대답을 하고 나면, 아이는 “나도 알아” 라고 말합니다. 왜 이런 엉뚱한 말을 계속 하는 걸까요? 아빠는 궁금해서 “그런데 왜 물어봤어?” 라고 묻습니다. 아이는 “아빠한테 듣고 싶어서” 라고 대답합니다.


이제 아빠와의 즐거운 소풍을 마치고 집으로 옵니다. 집에 들어서는 아이와 아빠 머리 위로 파스텔톤 색연필로 표현된 노을이 단아해 보입니다. 아이와 아빠의 대화는 집에 와서도 끝이 없습니다. 함께 이를 닦는 거울 속 아빠와 딸은 참 많이 닮았습니다. 이제는 잠 자리에 들 시간입니다. 아빠의 굿나잍 뽀뽀로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참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그림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읽다 보면, 아이와 아빠가 도란도란 대화 나누는 모습을 계속 상상하게 됩니다. 말을 배운 이후부터 아이들은 이야기 하고 묻는 것을 좋아합니다. 어떤 아이들은 쉴 새 없이 떠들기도 합니다. “이건 뭐야?” “왜?”라는 질문들을 정말 많이 합니다. 부모와 함께하는 대화를 통해 아이들의 언어와 세상을 보는 눈을 확장해 갑니다. 물론 아이들 성향에 따라 표현을 덜 하는 아이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그 시기에 아이들은 정말 쉴 새 없이 이야기합니다. 그런 아이들에 대한 부모의 반응은 다양합니다. 어떤 부모는 귀 기울여 들어주고 정성껏 답을 해줍니다. 또 어떤 때는 너무 분주해 아이들의 이야기를 흘려 넘길 때도 있습니다. 심지어 대답하기 귀찮아서 조용하라고 다그치기도 합니다.

그런데 부모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 최고의 것은 무엇일까요? 장난감이나 맛있는걸 사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입니다. 아이의 끝없는 이야기를 잘 듣고 세밀하게 반응해주고, 함께 마음을 나누는 것입니다. 그림책 속의 아이는 그저 아빠와 묻고 답하는 것 자체가 행복하고 좋은 것 같습니다. 아이에게 아빠는 산 같이 크면서도, 한없이 자신을 받아주고 사랑해주는 존재일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가 그 무엇보다 원하고 좋아하는 것은 바로 ‘아빠’와 함께하는 순간입니다. 아빠와 함께하기 때문에 깊은 가을의 공원은 더 크고 아름다운 세상으로 아이에게 다가옵니다.

요즘 가정의 아버지들은 두 어깨에 가장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큰 책임감 가운데 일터에서 바쁘고 분주하게 살아갑니다. 아빠와 아이가 서로 너무 바빠 잠시도 눈을 맞추고 재잘거릴 수 없는 것이 우리 현실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엄마나 다른 양육자와 함께 보내지요. 하지만 아빠는 아이들에게 정말 중요한 존재입니다. 머지않아 아이들의 질문도 줄어들지 않을까요? 또 아빠 엄마에게 재잘재잘 떠들기 보다 방 문을 닫고 혼자 음악을 듣고 싶어 할 지도 모릅니다.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보다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훨씬 재미있어 질 수도 있겠지요. 그때 가서 대화를 처음 시작하려 한다면 정말 어색하고 어려울 것입니다. 그때에도 자녀와 속 깊은 이야기까지 털어놓는 관계이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대화가 끊이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우리 부모님들 특히 아버지들이 『아빠, 나한테 물어봐』의 아빠와 아이처럼 자녀와 정답게 눈을 맞추고 이야기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박혜련  | 더샘물학교

South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서 교육 석사 학위를 마치고, 현재 더샘물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고, 성서유니온 ‘큐티아이’ 집필진, ‘기독교문화연구소 숨’에서 강사로 활동중이며, 극동방송 마더와이즈 ‘그림책 속 이야기’ 출연 중이다. 그림책 읽기를 통해 세대와 세대 간에 아름다움과 미덕이 전수 되길 꿈꾸며 그림책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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