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이 시를 만난 날』 “일상에 깃든 선의 조각”
여름날의 푹 찌는 듯한 무더운 공기 속에 갑자기 청명한 풀내음이 스쳐 지나갈 때, 알 수 없는 설레임에 마음이 싱숭생숭 합니다. 계속 될 것만 같았던 뜨거운 여름이 어느새 물러가고 가을이 오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하늘은 이 계절이 벌써 가을이라고 외치는 듯 높고 파랗습니다. 가을의 하늘이 더 높아서 일까요? 아니면 주변의 푸르렀던 나무 빛깔이 알록달록 바뀌어서일까요. 가을에는 이른 아침과 한낮, 오후와 초저녁, 늦은 저녁과 깊은 밤이 총천연의 색으로 우리를 에워싸는것 같습니다. 가을의 색감과 공기는 참 특별합니다. 그래서 시인 윤동주는 별을 헤아리는 그 깊은 밤에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라고 노래 했나 봅니다.(1) 다가오는 계절에 어울리는 그림책, 가을의 색을 고스란히 담은 그림, 그래서 저절로 시를 읊고 싶을 정도로 가을의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는 아름다운 그림책이 있습니다.
레몬 빛이 도는 영롱한 연노란색 배경에, 붉은 계열의 옷을 입고, 짧고 검은 곱슬머리를 한 아이가 다양한 색감의 바위 위에 배를 깔고 있습니다. 아이의 빛나는 눈동자의 시선은 바로 앞 바위더미 위의 작고 앙증맞은 다람쥐와 마주합니다. 다람쥐가 앉아있는 바위와 돌들은 하나도 같은 모양이 없습니다. 꼭 살아있는 바위가 지금이라도 튀어 나와 굴러 갈 것처럼 다양한 질감과 무늬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소년 위로 두 개의 나뭇잎이 떨어지고 있고, 다람쥐 위로 낙엽처럼 화려한 빛깔의 제목이 보입니다. 『다니엘이 시를 만난 날』
이 작품은 2017년 에즈라 잭키츠 수상작이며, 잭키츠의 책을 연상케 하는 꼴라주로 작업한 밝은 색감의 그림체와 소년이 주인공으로 나옵니다. 에즈라 잭키츠 작품 속 소년의 이름이 ‘피터’ 였다면, 이 작품 속 소년은 ‘다니엘’ 입니다. ‘다니엘’을 주인공으로 한 또 다른 작품으로 『다니엘의 멋진 날』이 있습니다. 작가 미카 아처(Micha Archer)는 두 아이의 엄마이면서 15년 이상 아이들을 가르친 교사입니다. 그 과정에서 그림책을 향한 사랑을 키워왔고, 그림책이 아이들에게 매우 중요한 교육매체라고 생각하며 직접 그림책을 만들었습니다. 화가이기도 한 그녀의 작품들은 독특한 콜라주에 유화를 결합한 그림이 주로 많고, 엄마의 마음, 선생님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향한 애정을 가득 담고 있습니다. 작가는 『다니엘이 시를 만난 날』에서 가을과 시, 그리고 소년을 주제로 어떤 이야기를 어린 독자들에게 들려줄까요?
단풍이 들어 노란 색으로 잎이 변한 큰 나무 위에 청솔모와 새가 저 아래 길가를 내려다 봅니다. 나뭇잎 사이로 공원 벤치에 앉아 신문을 읽는 사람과 강아지의 주둥이에 손을 대고 있는 꼬마와 검은 고양이가 보입니다. 글 텍스트는 이곳이 공원이라고 알려줍니다. 그리고 개와 함께 있는 소년은 공원을 잘 아는 아이 ‘다니엘'입니다.
공원은 도시 한복판에 위치했는지 놀이터와 연못, 드넓은 잔디밭 뒤로 고층 빌딩이 보입니다. 유화로 그린 듯한 뭉게구름이 떠있는 하늘이 부드럽게 도시를 감싸고 있습니다. 도심속 공원에서 아이들이 연을 날리고, 나무 위에 오르고, 자전거를 타고, 책을 읽는 모습이 여유롭고 평화로워 보입니다. 작가가 직접 제작한 스탬프로 아크릴 물감을 사용해 찍어 만든 무늬의 종이를 오려 겹겹이 꼴라주 기법으로 붙인 나뭇잎은 하나하나 독특하고 다채롭습니다.(2) 월요일 아침 다니엘은 공원 앞에 적혀있는 안내문을 보았습니다.
“공원에서 시를 만나요, 일요일 6시”
안내문을 본 다니엘은 ‘시'란 무엇인지 궁금해 합니다.
그때 어디선가 “시는 아침 이슬이 반짝이는 거야."라는 소리가 들립니다. 다니엘이 위를 쳐다보자 책의 경계선 부터 펼친 면 가득 사방으로 뻗은 거미줄에 방울방울 아침 이슬이 맺혀 있습니다. 높은 밀도로 맺혀있는 이슬 방울은 작가가 만들어낸 다양한 색과 무늬를 자랑하며 한편의 시를 읊조리는 것 같습니다. 다니엘은 놀라움에 가득차 이슬 사이를 오가는 거미를 바라봅니다. 이렇게 시작된 시와의 만남은 하루 하루 지날 때마다 마주치는 공원 친구들을 통해 더 풍성하게 다가옵니다. 화요일에 다니엘은 굵고 굴곡진 오래된 참나무 위를 올라가서 잿빛의 청설모에게 시가 뭐냐고 묻습니다. 어느새 나무 아래로 내려온 청설모는 떨어진 낙엽 사이를 오가며 “시는 바삭바삭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거야."라고 말합니다. 수요일에는 바위 틈에서 도토리를 모으는 다람쥐가 눈을 반짝이며, 시란 오래된 돌담이 둘러싼 창문 많은 집이라고 합니다. 다음 날, 개구리는 시란 시원한 연못에 뛰어드는 것이라고 말하고, 또 다음날 거북이는 햇빛에 달궈진 모래밭이 시라고 합니다. 다니엘은 이렇게 한 주 동안 공원에서 시를 찾았습니다. 마지막 날, 토요일 해질 무렵 그네를 타고 있을 때 귓가에서 귀뚤 귀뚤 소리가 들려옵니다.
“귀뚜라미야, 너에겐 이게 바로 시구나!”
시가 무엇인지 동물들에게 물어보기만 하던 다니엘은 처음으로 귀뚜라미에게 먼저 시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가로로 긴 주황빛 종이를 겹쳐 표현한 노을은 공원 잔디의 황금 빛과 어우러져 오묘한 빛의 조화를 이룹니다. 그날 밤, 다니엘은 잠자리에 들기 전 창밖의 부엉이에게 시에 대해 묻습니다. 청명한 가을밤의 공기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푸른 계열의 색감 속에서 지혜로운 부엉이는 큰 눈을 번뜩이며 별과 달빛, 자신의 날개 까지도 시라고 속삭이며 아파트 사이를 날아갑니다. 온 세상에 시가 가득 합니다.
드디어 일요일, 공원에서 시를 만나는 날입니다. 다니엘은 한 주 동안 찾은 시를 모인 사람들에게 나눕니다. 어느 덧 시를 알고 즐길 줄 알게 된 다니엘은 돌아오는 길에 연못에 비친 노을을 보며, 그 모습이 바로 시라고 고백합니다.
다니엘은 공원을 아주 잘 아는 아이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잘 안다고 여겼던 공원을 완전히 새롭게 보여주는 한 단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바로 ‘시’ 입니다. 다니엘이 한주간 시를 찾아 다니다 보니 시는 먼 곳이 아닌 가까운 곳에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매일 만나는 사람들, 매일 다니는 곳, 매일 하는 일… 시는 이처럼 아주 익숙한 일상 안에 있었습니다. 평범하게 보이던 공원 구석구석이 새로운 시와 노래로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이 땅의 자연과 평범한 일상 속에서 발견된 시는, 꼭 영원하고 불변하는 아름다움을 향한 신비로운 노래인 것 같습니다.
근대 이후 과학기술이 발달하며 과거에는 신의 영역이라고 믿었던 것들을 극복해 왔습니다. 사시사철 계절과 상관없이 먹고싶은 과일을 먹으며, 배고플 일 없이 살아가기에 더이상 비를 내려달라거나 풍년을 위해 신에게 빌지 않게 되었습니다. 또 의료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평균 수명이 훨씬 연장되고, 저주로 알았던 치명적인 질병도 극복하게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해결되면서, 삶 속에서 신과 초월적인 것을 배제하게 되었습니다. 현대인들에게 이제 우주는 신이 없는 닫힌 체계(Closed system)이며, 세상은 눈에 보이는 물질이 전부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지금 여기에서 잘 먹고 잘 사는 삶 만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끝없이 눈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고 호소하며 목마름을 느낍니다. 왜 그럴까요?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에 따르면 인간 안에는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빈 공간’이 있습니다. 사람은 그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합니다. 돈, 권력, 외모, 인기, 예술, 지식 등으로 채워 만족을 얻으려고 참 많이 애씁니다. 하지만 온갖 것으로 붓고 또 부어도 깨진 독과 같이, 그 공간은 채워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창조주에 의해 만들어진 공간(God-Shaped vacuum)이기 때문입니다. 파스칼은 마음의 텅 빈 공간, 영혼의 빈자리는 오직 사람을 만드신 창조주에 의해서만 채워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마음의 빈 공간은 그 어떤 물질이나 인간의 노력으로 채울 수 없기에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언제나 목마른 갈증을 안고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 세상에는 온 세상을 만드신 창조주의 흔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선과 아름다움의 조각이 세상 곳곳에 깃들여 있습니다. 그래서 아마 우리는 그 조각을 찾을 때 창조의 아름다움에 감동하여 시를 지어 화답하나 봅니다.
다니엘이 만난 공원속 친구들은 정말로 시를 지어 부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바로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향한 노래가 아닐까요? 그 시는 우리의 가슴에 말로 다할 수 없는 감동을 줍니다. 노을의 따사로운 빛은 허기지고 지친 우리의 가슴에 따뜻한 위로를 건넵니다. 가을날의 청명한 공기는 우리의 답답한 가슴을 뻥 뚫어 주며 괜찮다고 토닥입니다. 하늘을 수놓은 반짝이는 별빛은 이 세상 너머에 영원한 세계가 있다고 말합니다. 매일 똑같아 보이는 하루 하루, 늘 익숙한 집, 오고 가는 길, 마트, 아파트 단지, 학교, 회사, 놀이터와 공원에서 시를 찾아 보길 바랍니다. 일상에 깃든 선의 조각을 말입니다.
그림책의 원 제목은 『Daniel Finds A Poem』입니다. 시란 우연히 만난 것이 아니라 들여다보고 귀 기울이며 찾고 발견한 것이지요. 어느덧 가을로 온세상이 옷을 갈아입을 것입니다. 우리를 에워싼 일상은 한여름과 또 다른 옷을 입고 우리에게 시가 되어 찾아옵니다. 이른 아침 코끝에 스치는 낙엽 향기, 귀를 간지럽히는 바람 소리, 항상 만나는 가족들의 웃음 소리, 연못에 비치는 노을과 밤하늘에 빛나는 별…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과 내가 매일 살아가는 시간 속에 있는 ‘시’를 찾아보면 어떨까요? 울고, 웃고, 화내고, 다투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우리의 소소한 일상이 영원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은혜의 물방울’(C.S루이스) 입니다. 은혜의 물방울은 너무 커서 단 한 방울로도 우리의 텅빈 가슴을 가득 채우고도 넘칠 것입니다.
[1] 윤동주, 『별 헤는 밤』
[2] 꼴라주 기법으로 그림책을 만드는 과정 영상 Micha How She Does Collage Micha Collage How 2015
| 박혜련 | 더샘물학교 South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서 교육 석사 학위를 마치고, 현재 더샘물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고, 성서유니온 ‘큐티아이’ 집필진, ‘기독교문화연구소 숨’에서 강사로 활동중이며, 극동방송 마더와이즈 ‘그림책 속 이야기’ 출연 중이다. 그림책 읽기를 통해 세대와 세대 간에 아름다움과 미덕이 전수 되길 꿈꾸며 그림책을 연구하고 있다. |
『다니엘이 시를 만난 날』 “일상에 깃든 선의 조각”
여름날의 푹 찌는 듯한 무더운 공기 속에 갑자기 청명한 풀내음이 스쳐 지나갈 때, 알 수 없는 설레임에 마음이 싱숭생숭 합니다. 계속 될 것만 같았던 뜨거운 여름이 어느새 물러가고 가을이 오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하늘은 이 계절이 벌써 가을이라고 외치는 듯 높고 파랗습니다. 가을의 하늘이 더 높아서 일까요? 아니면 주변의 푸르렀던 나무 빛깔이 알록달록 바뀌어서일까요. 가을에는 이른 아침과 한낮, 오후와 초저녁, 늦은 저녁과 깊은 밤이 총천연의 색으로 우리를 에워싸는것 같습니다. 가을의 색감과 공기는 참 특별합니다. 그래서 시인 윤동주는 별을 헤아리는 그 깊은 밤에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라고 노래 했나 봅니다.(1) 다가오는 계절에 어울리는 그림책, 가을의 색을 고스란히 담은 그림, 그래서 저절로 시를 읊고 싶을 정도로 가을의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는 아름다운 그림책이 있습니다.
레몬 빛이 도는 영롱한 연노란색 배경에, 붉은 계열의 옷을 입고, 짧고 검은 곱슬머리를 한 아이가 다양한 색감의 바위 위에 배를 깔고 있습니다. 아이의 빛나는 눈동자의 시선은 바로 앞 바위더미 위의 작고 앙증맞은 다람쥐와 마주합니다. 다람쥐가 앉아있는 바위와 돌들은 하나도 같은 모양이 없습니다. 꼭 살아있는 바위가 지금이라도 튀어 나와 굴러 갈 것처럼 다양한 질감과 무늬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소년 위로 두 개의 나뭇잎이 떨어지고 있고, 다람쥐 위로 낙엽처럼 화려한 빛깔의 제목이 보입니다. 『다니엘이 시를 만난 날』
이 작품은 2017년 에즈라 잭키츠 수상작이며, 잭키츠의 책을 연상케 하는 꼴라주로 작업한 밝은 색감의 그림체와 소년이 주인공으로 나옵니다. 에즈라 잭키츠 작품 속 소년의 이름이 ‘피터’ 였다면, 이 작품 속 소년은 ‘다니엘’ 입니다. ‘다니엘’을 주인공으로 한 또 다른 작품으로 『다니엘의 멋진 날』이 있습니다. 작가 미카 아처(Micha Archer)는 두 아이의 엄마이면서 15년 이상 아이들을 가르친 교사입니다. 그 과정에서 그림책을 향한 사랑을 키워왔고, 그림책이 아이들에게 매우 중요한 교육매체라고 생각하며 직접 그림책을 만들었습니다. 화가이기도 한 그녀의 작품들은 독특한 콜라주에 유화를 결합한 그림이 주로 많고, 엄마의 마음, 선생님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향한 애정을 가득 담고 있습니다. 작가는 『다니엘이 시를 만난 날』에서 가을과 시, 그리고 소년을 주제로 어떤 이야기를 어린 독자들에게 들려줄까요?
단풍이 들어 노란 색으로 잎이 변한 큰 나무 위에 청솔모와 새가 저 아래 길가를 내려다 봅니다. 나뭇잎 사이로 공원 벤치에 앉아 신문을 읽는 사람과 강아지의 주둥이에 손을 대고 있는 꼬마와 검은 고양이가 보입니다. 글 텍스트는 이곳이 공원이라고 알려줍니다. 그리고 개와 함께 있는 소년은 공원을 잘 아는 아이 ‘다니엘'입니다.
공원은 도시 한복판에 위치했는지 놀이터와 연못, 드넓은 잔디밭 뒤로 고층 빌딩이 보입니다. 유화로 그린 듯한 뭉게구름이 떠있는 하늘이 부드럽게 도시를 감싸고 있습니다. 도심속 공원에서 아이들이 연을 날리고, 나무 위에 오르고, 자전거를 타고, 책을 읽는 모습이 여유롭고 평화로워 보입니다. 작가가 직접 제작한 스탬프로 아크릴 물감을 사용해 찍어 만든 무늬의 종이를 오려 겹겹이 꼴라주 기법으로 붙인 나뭇잎은 하나하나 독특하고 다채롭습니다.(2) 월요일 아침 다니엘은 공원 앞에 적혀있는 안내문을 보았습니다.
“공원에서 시를 만나요, 일요일 6시”
안내문을 본 다니엘은 ‘시'란 무엇인지 궁금해 합니다.
그때 어디선가 “시는 아침 이슬이 반짝이는 거야."라는 소리가 들립니다. 다니엘이 위를 쳐다보자 책의 경계선 부터 펼친 면 가득 사방으로 뻗은 거미줄에 방울방울 아침 이슬이 맺혀 있습니다. 높은 밀도로 맺혀있는 이슬 방울은 작가가 만들어낸 다양한 색과 무늬를 자랑하며 한편의 시를 읊조리는 것 같습니다. 다니엘은 놀라움에 가득차 이슬 사이를 오가는 거미를 바라봅니다. 이렇게 시작된 시와의 만남은 하루 하루 지날 때마다 마주치는 공원 친구들을 통해 더 풍성하게 다가옵니다. 화요일에 다니엘은 굵고 굴곡진 오래된 참나무 위를 올라가서 잿빛의 청설모에게 시가 뭐냐고 묻습니다. 어느새 나무 아래로 내려온 청설모는 떨어진 낙엽 사이를 오가며 “시는 바삭바삭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거야."라고 말합니다. 수요일에는 바위 틈에서 도토리를 모으는 다람쥐가 눈을 반짝이며, 시란 오래된 돌담이 둘러싼 창문 많은 집이라고 합니다. 다음 날, 개구리는 시란 시원한 연못에 뛰어드는 것이라고 말하고, 또 다음날 거북이는 햇빛에 달궈진 모래밭이 시라고 합니다. 다니엘은 이렇게 한 주 동안 공원에서 시를 찾았습니다. 마지막 날, 토요일 해질 무렵 그네를 타고 있을 때 귓가에서 귀뚤 귀뚤 소리가 들려옵니다.
“귀뚜라미야, 너에겐 이게 바로 시구나!”
시가 무엇인지 동물들에게 물어보기만 하던 다니엘은 처음으로 귀뚜라미에게 먼저 시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가로로 긴 주황빛 종이를 겹쳐 표현한 노을은 공원 잔디의 황금 빛과 어우러져 오묘한 빛의 조화를 이룹니다. 그날 밤, 다니엘은 잠자리에 들기 전 창밖의 부엉이에게 시에 대해 묻습니다. 청명한 가을밤의 공기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푸른 계열의 색감 속에서 지혜로운 부엉이는 큰 눈을 번뜩이며 별과 달빛, 자신의 날개 까지도 시라고 속삭이며 아파트 사이를 날아갑니다. 온 세상에 시가 가득 합니다.
드디어 일요일, 공원에서 시를 만나는 날입니다. 다니엘은 한 주 동안 찾은 시를 모인 사람들에게 나눕니다. 어느 덧 시를 알고 즐길 줄 알게 된 다니엘은 돌아오는 길에 연못에 비친 노을을 보며, 그 모습이 바로 시라고 고백합니다.
다니엘은 공원을 아주 잘 아는 아이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잘 안다고 여겼던 공원을 완전히 새롭게 보여주는 한 단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바로 ‘시’ 입니다. 다니엘이 한주간 시를 찾아 다니다 보니 시는 먼 곳이 아닌 가까운 곳에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매일 만나는 사람들, 매일 다니는 곳, 매일 하는 일… 시는 이처럼 아주 익숙한 일상 안에 있었습니다. 평범하게 보이던 공원 구석구석이 새로운 시와 노래로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이 땅의 자연과 평범한 일상 속에서 발견된 시는, 꼭 영원하고 불변하는 아름다움을 향한 신비로운 노래인 것 같습니다.
근대 이후 과학기술이 발달하며 과거에는 신의 영역이라고 믿었던 것들을 극복해 왔습니다. 사시사철 계절과 상관없이 먹고싶은 과일을 먹으며, 배고플 일 없이 살아가기에 더이상 비를 내려달라거나 풍년을 위해 신에게 빌지 않게 되었습니다. 또 의료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평균 수명이 훨씬 연장되고, 저주로 알았던 치명적인 질병도 극복하게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해결되면서, 삶 속에서 신과 초월적인 것을 배제하게 되었습니다. 현대인들에게 이제 우주는 신이 없는 닫힌 체계(Closed system)이며, 세상은 눈에 보이는 물질이 전부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지금 여기에서 잘 먹고 잘 사는 삶 만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끝없이 눈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고 호소하며 목마름을 느낍니다. 왜 그럴까요?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에 따르면 인간 안에는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빈 공간’이 있습니다. 사람은 그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합니다. 돈, 권력, 외모, 인기, 예술, 지식 등으로 채워 만족을 얻으려고 참 많이 애씁니다. 하지만 온갖 것으로 붓고 또 부어도 깨진 독과 같이, 그 공간은 채워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창조주에 의해 만들어진 공간(God-Shaped vacuum)이기 때문입니다. 파스칼은 마음의 텅 빈 공간, 영혼의 빈자리는 오직 사람을 만드신 창조주에 의해서만 채워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마음의 빈 공간은 그 어떤 물질이나 인간의 노력으로 채울 수 없기에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언제나 목마른 갈증을 안고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 세상에는 온 세상을 만드신 창조주의 흔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선과 아름다움의 조각이 세상 곳곳에 깃들여 있습니다. 그래서 아마 우리는 그 조각을 찾을 때 창조의 아름다움에 감동하여 시를 지어 화답하나 봅니다.
다니엘이 만난 공원속 친구들은 정말로 시를 지어 부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바로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향한 노래가 아닐까요? 그 시는 우리의 가슴에 말로 다할 수 없는 감동을 줍니다. 노을의 따사로운 빛은 허기지고 지친 우리의 가슴에 따뜻한 위로를 건넵니다. 가을날의 청명한 공기는 우리의 답답한 가슴을 뻥 뚫어 주며 괜찮다고 토닥입니다. 하늘을 수놓은 반짝이는 별빛은 이 세상 너머에 영원한 세계가 있다고 말합니다. 매일 똑같아 보이는 하루 하루, 늘 익숙한 집, 오고 가는 길, 마트, 아파트 단지, 학교, 회사, 놀이터와 공원에서 시를 찾아 보길 바랍니다. 일상에 깃든 선의 조각을 말입니다.
그림책의 원 제목은 『Daniel Finds A Poem』입니다. 시란 우연히 만난 것이 아니라 들여다보고 귀 기울이며 찾고 발견한 것이지요. 어느덧 가을로 온세상이 옷을 갈아입을 것입니다. 우리를 에워싼 일상은 한여름과 또 다른 옷을 입고 우리에게 시가 되어 찾아옵니다. 이른 아침 코끝에 스치는 낙엽 향기, 귀를 간지럽히는 바람 소리, 항상 만나는 가족들의 웃음 소리, 연못에 비치는 노을과 밤하늘에 빛나는 별…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과 내가 매일 살아가는 시간 속에 있는 ‘시’를 찾아보면 어떨까요? 울고, 웃고, 화내고, 다투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우리의 소소한 일상이 영원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은혜의 물방울’(C.S루이스) 입니다. 은혜의 물방울은 너무 커서 단 한 방울로도 우리의 텅빈 가슴을 가득 채우고도 넘칠 것입니다.
[1] 윤동주, 『별 헤는 밤』
[2] 꼴라주 기법으로 그림책을 만드는 과정 영상 Micha How She Does Collage Micha Collage How 2015
박혜련 | 더샘물학교
South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서 교육 석사 학위를 마치고, 현재 더샘물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고, 성서유니온 ‘큐티아이’ 집필진, ‘기독교문화연구소 숨’에서 강사로 활동중이며, 극동방송 마더와이즈 ‘그림책 속 이야기’ 출연 중이다. 그림책 읽기를 통해 세대와 세대 간에 아름다움과 미덕이 전수 되길 꿈꾸며 그림책을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