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따뜻한 한마디를 건네 주는 어른”

2022-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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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한마디를 건네 주는 어른”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콤플렉스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건강한 자존감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신의 콤플렉스에 지나치게 함몰되어 비관적으로 자신의 삶을 바라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남들이 보기에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데도 스스로 자신에 대해 지나치게 낮게 평가합니다. 요즘 학생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독특한 공통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학군이 좋기로 유명한 한 지역의 고등학생들이 대입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하는데, 우수한데도 아이들마다 자신이 늘 잘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의대를 준비하는 아이도 공부를 못한다고 말하고, 음대나 미대 실기를 준비하는 아이들도 잘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어떤 아이들은 자신이 도태된다는 생각에 불안증세로 우울증 치료에 의존하기도 합니다. 정말 이상한 점은 초등학생들도 자신은 그림을 잘 못 그린다, 글을 잘 못쓴다, 공부를 잘 못한다면서 자신들의 부족한 것이 당연한 듯 이야기하는 것이었습니다. 풍족하여 갖고 싶은 것 다 갖고, 하고 싶은 것 다 할 수 있는 아이들, 그리고 자기중심적이기로 유명한 이 시대의 아이들에게 대체 어떤 일이 있는 걸까요? 왜 그 아이들은 끝없이 가혹한 잣대를 가져다 대며 자신이 부족하다고만 느끼는 걸까요? 아이들에게 무엇이 결핍되어 있는 걸까요?


그림책의 표지는 물보라가 이는 검푸른 강에 주근깨 가득한 얼굴의 한 소년이 등장합니다. 표제지에는 창의 그림자가 진 벽에 책 제목이 써 있는 작은 메모지가 붙어 있고 아래는 아무렇게나 붓으로 찍찍 그은 선이 보입니다. 첫 장면은 6개의 가로로 분할된 프레임에 아침 햇살이 비추는 방안의 모습을 부분적으로 보여줍니다. 장난감, 7시를 막 넘긴 알람시계, 마지막 장면엔 주근깨 있는 소년의 두 눈이 보입니다. 다음 장은 그 작은 분할된 장면이 창가 앞 한 그림에 담깁니다. 창은 넓고, 커튼은 열려 있고, 창 밖에는 뿌옇게 나무와 새, 아침의 빛 때문에 색이 바랜 달이 보입니다. ‘소나무의 스’ ‘까마귀의 끄’ ‘달의 드’ 소리가 소년을 깨웁니다.



화면은 다시 두면 가득 창문 밖 풍경과 창문에 반사해 비친 소년의 얼굴로 클로즈업 됩니다. ‘소나무의 스’가 입안에 뿌리를 내리며 혀와 뒤엉킵니다. 원어로 “The P in pine tree” 즉 첫음 p는 무성 양순 파열음으로 입술을 터트리며 나는 소리인데 이 소리가 혀와 뒤엉킨다는 것입니다. 아이의 발음이 자신을 깨운 소리와 다르게 표현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까마귀의 영어 단어 crow 의 c 소리는 까마귀의 ㄲ 처럼 목구멍 소리이나 무성음으로서 공기가 빠져나가야 하는데, 목구멍 안쪽에 딱 달라 붙는다고 합니다. ‘달이 입술을 지워버린다’는 의미는 영어의 양순음인 moon이라는 단어를 생각할 때 더욱 잘 이해가 됩니다. 두 입술이 붙어야 하는데 사라진다고 하니, 소년은 말하는 일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창 밖에 펼쳐진 pine tree, crow, moon이라는 낱말들이 자신의 목에 달라붙으며 아침을 깨웁니다. 그러면 소년은 돌멩이처럼 조용해집니다. 소년의 어려움에 대한 시적으로 표현입니다. 돌멩이라는 글 텍스트 만큼이나 검은 옷을 입은 아이는 얼굴 표정이 보이지 않은 채로 옷을 갈아입고 이를 닦고 아침을 먹습니다.


소년은 학교에 가서도 경직되어 맨 뒤에 앉습니다. 말할 기회가 없기를 간절히 바라면서요. 맨 뒷자리에서 자신이 주목받을 때의 혼란스러움을 그림 텍스트는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마구 번져 어그러진 얼굴이 일제히 뒤를 향하는 교실의 장면은 그 모습을 바라보는 현기증나는 당사자의 심정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한 장면으로도 소년의 두려움과 긴장이 깊게 느껴집니다. 뒤를 돌아 보고 있는 학생들은 누구를 보고 있을까요. 다음 장 두려움과 혼란 가운데 있는 소년의 얼굴이 보입니다. 아이의 목구멍을 붙게 하고, 입술을 사라지게 한 pine, crow, moon 세 단어는 계속에서 서사를 이끌어 갑니다. 수채화로 그린 소년의 얼굴이 채 마르기 전에 물감을 긁어 소나무와 까마귀와 달이 소년 얼굴 위에 오버랩 됩니다. 소년의 눈이 떨리고 입은 굳게 다뭅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장소에 대해 발표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소년의 입은 꼼짝 하지 않습니다. 작은 프레임으로 조각조각 쪼개진 아이의 옆 모습이 일그러집니다. 그 짧은 순간이 영원할 것 같은 복잡한 심정이 프레임 하나 하나에 담겨있습니다.


그 날 아빠가 데리러 왔습니다. 조수석에 앉은 소년은 입을 굳게 닫고 고개를 돌려 반대쪽을 봅니다. 아빠는 소년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 강으로 데려옵니다. 소년이 아버지와 넓고 검푸를 강가를 거니는 풍경은 이전의 그림체와는 달리 점점 선명해 집니다. 그래도 소년은 머리속에 떠오르는 학교에서의 일을 지울 수 없습니다. 자신을 비웃는 아이들의 입이 생각납니다. 


"배 속에 폭풍이 일어난 것 같아요.
두 눈에 빗물이 가득 차 올라요." 



비참한 마음을 시적인 언어로, 어쩌면 아이의 언어로 작가는 표현합니다. 그러다 소년의 뒤에서 눈부신 빛이 비쳐옵니다. 소년의 얼굴을 중심으로 두 면을 펼치면 네 페이지에 걸친 긴 장면이 나옵니다. 눈이 부시게 빛을 반사하는 물결과 그 가운데 우뚝 서 있는 소년, 그리고 아빠에게 들은 이야기.

"아빠는 말했어요.
내가 강물처럼 말한다고." 


그리고 아이는 울고 싶을 때마다, 말하기 싫을 때마다 이 말을 떠올립니다. 아빠와 함께 간 그 강의 물결을 생각합니다. 물거품이 일고, 굽이치고, 소용돌이치고, 부딪히는 강물.. 다양한 모습의 강 이기에 아름다움은 더합니다.

캐나다 시인 조던 스콧은 말을 더듬었던 자신의 어린시절 이야기를 자전적으로 담아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그림책을 썼습니다. 소년은 자신의 약점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 앞에서 피하고 숨지만 아버지와의 대화를 통해 다시금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용기를 얻게 됩니다. 이때 소년의 아버지가 없었다면 이 아름다운 언어로 그림책을 만든 지금의 시인도 없었을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숨기고 싶은 연약함과 콤플렉스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습 까지도 나의 모습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 모습 그대로 “강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이지? 너도 저 강물처럼 말한단다.” 라고 말해주는 단 한 명의 어른이 필요한지도 모릅니다. 꼭 유창하고 실력이 있는 것만 좋은 것이 아닙니다. 빠르게 흘러 갈 때만이 아니라 굽이치거나 잔잔할 때 모두 다 강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어른이든 아이든 사람들 앞에 숨고 싶은 이런 순간이 분명히 있겠지요. 오늘날 우리 아이들은 경쟁 가운데 참 열심히 공부하고 애쓰며 살아갑니다. 학교에서 학원에서 이 점수로 어떻게 하냐는 이야기를 참 많이 듣습니다. 그리고 부모들도 똑같은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더합니다. 부모가 아니어도 너무 많이 듣고, 누구보다 자기 스스로가 가장 많이 자책하는데도 말입니다. 결국 마음 둘 곳이 없는 아이들은 마음이 곪은 상태로 우울하게 하루하루 보낼지도 모릅니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먼저 자신에게 “괜찮아 나는 OO처럼 OO해.” 라고 이야기 해주면 어떨까요? 혹은 아이들의 연약한 점을 향해 그림책 속 아버지가 아들에게 한 것처럼 아름다운 별명을 지어줘 보는 것은 어떨까요? 따뜻한 그 한마디가 미래의 멋진 시인을 키워낼 지도 모른답니다.

당장 누군가가 우리에게 “너는 강물처럼 말해”라고 말해주지 않는다고 실망하지 마십시오. 조용히 우리를 가장 잘 아시고 창조주께 귀를 기울여 보세요. 우리는 공허한 우주 속에 홀로 덩그러니 어디로부터 왔으며 어디로 갈지 모르는 막연한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를 가장 잘 아시고, 지금도 사랑으로 온 우주를 돌보시는 분이 계십니다. 우리를 만드신 하늘의 아버지는 우리의 부족과 허물을 보지 않으시고, 우리 존재 자체를 말할 수 없이 귀하고 아름답게 보십니다. 





박혜련  | 더샘물학교

South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서 교육 석사 학위를 마치고, 현재 더샘물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고, 성서유니온 ‘큐티아이’ 집필진, ‘기독교문화연구소 숨’에서 강사로 활동중이며, 극동방송 마더와이즈 ‘그림책 속 이야기’ 출연 중이다. 그림책 읽기를 통해 세대와 세대 간에 아름다움과 미덕이 전수 되길 꿈꾸며 그림책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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