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의 그림읽기


성인 그림책이란 무엇인가?

2026-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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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그림책이란 무엇인가?



어느덧 그림책은 0세부터 100세까지 읽을 수 있는 도서라는 인식이 보편화되고 있다. 노인 인구가 늘어가면서 노인의 인지 저하를 방지하고 과거의 기억을 회상하는 매체로 그림책이 선호되기도 한다. 만혼으로 늦은 나이에 자녀를 가진 여성이 아이에게 읽어주려고 만난 그림책에서 위로를 받았고, 그림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었다. 그들은 영화, 소설, 미술과 같이 그림책이 하나의 문화를 차지하길 바란다. 그림책은 도서이지만 그림이 여러 장이기에 소장하고 싶은 욕구마저 자극한다.

그러나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림책은 성인의 전용이 아니라는 점이다. 인간이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도서가 그림책이라는 것은 영원한 사실이다. 성인의 영역에까지 확장된 그림책에서 에로틱(erotic: 성적인 사랑을 불러일으키거나 관능적이고 성적 욕구를 암시·표현하는 것. 월간미술)한 성인 코드를 주장한다면 그것은 영유아와 아동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 오늘 다뤄볼 주제이다.

 

 

예술인가, 외설인가


에로틱은 예술의 영원한 주제이며 가장 심연한 창작의 원천이다. 르네상스에서 인간의 신체에 대한 탐닉과 여성이 가진 묘한 분위기 표현은 점차 확대되었다. 화가는 신화들 속 여신들을 아름답게 표현하기 위하여 과도한 에로틱 표현을 하였고, 인간 본연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자 나체를 그리기도 하였다. 더욱이 그림을 배울 때 화가는 인체를 표현하기 위해 근육과 뼈, 신체의 동작마다 드러나는 곡선을 탐구하며 누드를 그린다. 즉, 예술은 누드를 비롯한 에로틱 그림이 허락되었다.

더 나아가 섹슈얼(sexual)과 같은 직접적인 생물학적 성행위와 가까운 포르노그라피 예술들이 성행하고 있다. 프로이트의 과한 성애에 대한 집착이 성해방의 흐름을 타고 분별없이 예술가들을 자극했고, 그들은 쉽게 차용했다. 현대 미술의 대표적인 화가 제프 쿤스(Jeff Koons)는 그 당시 아내이며 포르노 배우 치치올리나(Ilona Staller)와의 성관계를 노골적으로 다룬 시리즈 <메이드 인 해븐>을 작품화했다.

아동과 성인이라는 확실한 경계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성적 개방성에 있다. 그러나 성인에게도 포르노가 정신적 피폐함을 가져온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제프 쿤스의 작품은 논란을 일으켰으며, 천박함과 대중문화의 속성인 키치(Kitsch)를 예술로 끌어 올리는 작업이라는 평가가 이어졌다.

영화나 TV 등의 영상 매체가 초기 등장했을 때는 기술의 진보에 열광했었다. 그때는 어린이 시청에 제한 및 규제가 확고했다. 규제는 범죄와 사기, 성적인 장면들이 포함되었다. 서구사회에 문화 개방이 컸던 8~90년대만 하더라도 TV에는 남녀의 키스신은 방명되지 않았다. 영화도 미래에서 온 기계인간 터미네이터가 시공간을 넘어 타임 트래블로 도착할 당시 그는 아무 옷을 입고 있지 않았는데, 당시 어린이들은 포스터에 나온 그 뒷모습 장면만으로도 화제를 삼았다. 그러나 최근의 영화뿐만 아니라 가정에서 보는 TV 드라마, Netflix는 손쉽게 클릭으로 모든 장면을 볼 수 있다. 확장된 미디어는 성관계나 잔혹한 살인, 귀신이나 악마에 접신된 상태인 빙의 등 어린이에게 유해한 장면이라도 화면에 15, 또는 12라는 숫자가 적정 연령이라는 표시를 해줄 뿐 어떤 장면이든 리모콘만 있다면 본다.

이러한 변화는 여러 형태로 빠르게 확산되는 미디어 매체의 영향일 것이다. 유튜브만 하더라도 시청자가 누구든 자신의 방송을 하는 일방향 매체이다. 이데올로그(ideologue)들은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들을 권리라는 주장으로 검열로 만들어 버리고, 어른들이 가하는 침해로 만들어 각자 알아서 단속해야만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누가 보든, 무엇을 방송하든 접속하면 만나게 된다. 즉, 진보라는 것은 에로틱에서 섹슈얼로 가는 급행열차이다. 그림책도 진보의 행진에서 안전할 수 있을까?

 

 

성인 그림책


그림책에도 성인을 대상으로 창작했다는 광고를 쉽게 찾아볼 수 있고, 그 창작 현황도 늘어나고 있다. 그중 ‘오후의 소묘’ 출판사는 어른을 위한 그림책과 에세이를 만든다고 광고한다. 그 중 여성, 우울, 성적 상징이 있는 그림책들이 눈에 띈다.

 

<구름의 나날>은 얼굴에 구름이 드리워져 살아가는 중년 여성의 하루를 보여준다. 그녀의 얼굴에는 늘 구름이 뒤덮여 있다.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햇살마저 구름이 가려  머릿속을 채우고,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그런 날은 그저 모른척 하고 넘겨야 한다고 글은 설명한다. 가장 아름다운 것에도 구름의 그림자가 있다는 그녀의 일상은 모든 것을 슬프고 어둡게 만들었다는 글과 함께 그림에는 고양이 세 마리 조차 얼굴에 구름이 끼어 있다. 구름에서 내리는 비와 함께 일상을 보내고, 잠자리까지 따라온 구름은 악몽이 된다. 이후 다음날 구름이 걷혔다. 비로소 그녀의 얼굴이 드러났다. 삶이 다시 향기로워졌다는 그녀는 바이올린 연주를 한다. 누런 종이에 갈색 채도가 조절된 그림으로 인물의 형태는 짙은 갈색 선이 굴곡을 만들어내 신체를 왜곡하여 보여준다. 등장인물이 유일한 중년 여성이고, 고양이 세 마리가 주변에 어슬렁거릴 뿐이다. 글과 그림에서 한없이 우울하고 외로움만 느껴진다.

느낌만으로 그림을 해석하기보다, 심리학에서 미술을 근거로 진단하는 Rawley Silver(2002, Three art assessments)는 환경적으로 불행한 가운데 있다는 판단을 낙심과 악몽, 비와 구름을 꼽았다. 이에 근거하여 그림책은 우울증이 있는 중년 여성의 심정을 담았다고 볼 수 있다.


<사랑의 모양> 그림책은 꽃 향기를 맡는 여성이 그려진 표지를 가졌다. 역시나 갈색과 짙은 검정을 섞어 그렸다. 주인공도 중년 여성임을 알 수 있으며, 신체의 굴곡진 형태가 여성의 미를 살리기보다는 두꺼운 목, 외소한 다리, 동그란 몸통을 보여준다. 이 책은 다소 복잡하다. 꽃을 기르던 여성이 꽃이 자라지 않아 상심하고 고민하다가 옆집에서 꽃을 발견한다. 여자는 비로소 꽃이 떠났다는 것을 깨닫고 ‘가질 수 없는 사랑도 사랑일까?’라는 체념을 보인다.

그림은 지속적인 상징을 담고 있다. 꽃의 암술과 수술이 보이도록 단면을 그려 넣어 여성성을 상징하고, 꽃에 열쇠를 꽂는 장면과 열쇠 그림 또한 성적 결합을 은유한다. 꽃이 매일 피어나 행복했던 것도 잠시, 더 이상 꽃이 피지 않을 때 가위가 그려있다. 가위는 운명의 여신 아트로포스가 인간의 수명(실)을 끊어내어 목숨을 앗아가는 도구로 그리스 신화에서는 생명과 단절을 상징한다(그리스 신화(2022) 아폴로도로스 저). 이는 문화인류학에서 남성성의 소멸인 거세와 단절을 상징하는 도구로서 남성의 성적 정체성이나 생명력을 위협하는 의미를 가진다.

유일한 등장인물인 중년 여성은 짧은 치마를 입고 허벅지까지 다리를 드러내고 있으며, 바닥에 다리를 벌리고 앉아 가위로 꽃을 잘라낸다. 이유는 꽃이 시들어가기 때문이었다. 돌보고 돌보아도 시들어버리는 꽃들 때문에 상심한 그녀는 밤마다 ‘다시 꽃을 보고 싶어’한다. 그러나 다시 꽃이 피지 않았고, 이웃에서 핀 꽃을 받아 들이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허무하고 허무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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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소개할 그림책은 <여전히 나는>이다. 이 책은 하나의 영화를 보는 듯이 스토리가 이어지는데, 과거에 연인을 그리는 중년 남자의 이야기이다. 그녀와 함께 가던 카페를 그녀가 좋아했던 개를 기르면서 매일 찾는 중년의 남자가 있다. 그는 젊은 시절 그녀의 얼굴을 감싸쥐던 순간을 추억한다. 그리고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었고, 영화를 보고, 길을 걷던 그 순간을 추억한다. 별을 보던 어떤 날 언덕에서 하던 키스를 기억하며, 다시 한숨도 자지 않고 밤을 보내고 싶다고 한다. 과거의 그는 20대로 보이며, 추억하는 그는 40을 넘어 50대로 가는 중년으로 보인다. 배가 많이 나오고 머리가 빠진 주름진 그는 추억의 장소에 매일 들러, 그저 너와 여기서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한다. 이 외로움에 빠진 중년은 가정을 가꿀 마음이 아직도 없는 것인지 궁금하다. 어쩌다 마주칠까 희망하고, 그리워 매일 가면서도 그저 커피한잔 마시자는 생각뿐이라고 변명하는 것은 오늘날 피상적인 남녀관계를 잘 보여준다. 결혼과 자녀를 낳아 가정을 이루는 모습이 아닌 인스턴트 사랑을 즐기던 성인들의 피폐한 노년의 모습이다. 그림책은 간간히 키스장면과 연애장면이 등장한다. 여담이지만, 어릴 때 그림책을 즐겨보던 필자의 딸(성인)이 이 책을 들어 그 장면에 이르렀을 때 책을 집어 던졌다. 동시에 ‘우엑’이라는 소리를 질렀을 때, 그림책에 이런 장면들이 어울리지 않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가 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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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곤 쉴레 (Egon Schiele)

누런 갱지에 갈색 그림들, 왜곡된 선들과 몸의 곡선들.. 이 특징의 그림은 에곤 쉴레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오스트리아 표현주의를 대표하는 화기이며 인간의 몸에 집착하는 그림을 그렸다. 자화상을 많이 그렸는데, 그 또한 뒤틀리거나 불안정한 자세로서 인간의 불안, 욕망, 고독, 죽음, 취약함을 드러낸다. 쉴레의 초기 그림은 피카소를 비롯한 모든 화가들이 그러하듯이 매우 잘 그린 것을 볼 수 있다. 그가 신체와 에로틱에 관심을 가진 것은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식적이고, 화려한 인체로 대표되는 클림트의 그림 그대로가 아닌, 인간의 몸에서 점점 벗어나 훨씬 거칠고 심리적이고 외설적인 자기만의 표현으로 발전되었다. 그는 여성과 청소년의 나체도 그렸고, 그것을 포함한 그의 작품은 관람자에게 불편함을 가져온다. 쉴레의 앙상한 몸은 인간의 존엄성 파괴로 읽어지기 때문이다. 병약한 몸, 성적으로 드러냄, 밝지 않은 눈빛, 비뚤어진 자세와 갈색의 한정적인 색들은 어둡고 탁한 인간을 비추고 있다. 또한 청소년의 신체를 다룬다. 아래의 그림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저작권을 허용한 그림이다. 그럼에도 매우 파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일부 그림은 공식적으로 사용해도 되지만, 불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어 여기에 올리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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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에곤 쉴레, <뒤에서 본 앉아 있는 여인>, 1917,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Public Domain.

 

 

 

나아가며

 

화가들의 에로틱은 섹슈얼을 넘어섰다. 그림책도 다정함을 추억하다가 언제 섹슈얼로 넘어갈지 모를 일이다. 그러기 전에 필자는 다소 불편함을 감수하고 이에 관해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러분들도 성인 그림책의 미래가 어떠할지 추측해보시길 바란다.

창세기에 하나님의 형상(image of God)을 따라 지음 받은 인간은 그에 맞는 존엄성(dignity)을 가진다. 우리가 만들어 내는 인간 형태는 때로는 추하고, 악한 경험을 담았거나, 보여주려고 애쓰게 된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그것을 씻어내고자 표현하고 드러내야 한다는 주장이 미술치료이고, 심리치료에 있다. 추·악이 드러냄으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들은 어디에 모여 있는 것일까? 화가가 그러한 그림들을 그린다면, 현대 사회에서는 예술작품이 되어버린다. 그것은 우리에게 존경과 감명을 강요받을 수도 있다.

진정으로 추·악에서 벗어남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와 사랑을 깊이 깨달을 때 비로소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우리가 그분에게서 배우는 삶의 가치와 진리가 우리의 행동양식을 결정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성경을 읽고, 삶의 태도를 알아갈 때 은혜가 가득한 그림을 그릴 수 있다. 하나님은 나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께 나아감을 기다리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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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형  | 안산대학교. 겸임교수

그림책과 미술로 자신을 돌아보는 예술치유전문센터에서 센터장을 지냈고,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 박사 학위가 있습니다. 어린이를 위한 환경에서 그림책과 예술의 역할을 학문적으로 탐구하고자 세계관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현재, 안산대학교 언어치료아동보육과, 경민대학교 아동심리보육과에서 겸임교수로 강의하고 있습니다.  저서는 [아동과 우리사회] (2016), [Art Psychology : 직장인 마음을 읽다] (2019), [신앙이 자라는 그림책 읽기] (2024)이 있으며,  현재 '그림책세계관연구소' 이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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