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의 그림읽기


문화 속 악마와 인간

2026-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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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 악마와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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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가족들과 영화를 보러 갔다. 오랜만에 살인마가 등장하지 않는 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홍보를 하기에 시간을 내었다. 또, 2006년 그 영화의 1편을 재미있게 보았었고, 20년 만에 나온 2편은 등장인물이 변함없이 나오기에 보고 싶었다.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건 제목의 ‘악마’라는 단어였다. 영화는 진짜 악마가 등장하지 않는다. 비유적으로 악마를 닮은 패션계 보스가 주인공이다. 그래서 표지에 그려진 빨간 하이힐 굽 끝에 있는 삼지창도 상징이겠거니 하며 무시했다. 그 영화의 제목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이다.

우리는 종종 문화적으로 등장하는 악마의 코드를 애써 무시한다. 기독신앙인이라도 축구 응원단이 붉은 악마이거나, 그들의 머리띠에 빨간 두 개의 뾰족한 뿔을 달고 있어도 응원 도구라고만 여기려 한다. 그것이 불편해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악마는 문화적인 아이콘으로 우리 삶 곳곳에 퍼져있다. 또, 너무 싫어해도 달려가 그들의 머리띠를 빼앗을 수 없다. 그것 또한 상식 밖의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싫은 것, 아닌 것에는 우려의 목소리는 내어야 한다. 문화를 비평함은 누구에게나 있는 개인의 자유이며, 악한 문화의 영향은 사람을 피폐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나는 영화의 클라이막스에서 고개를 떨꾸고 화면을 보지 않았다. 눈에 담고 싶지 않은 장면들이 나왔기 때문이다. 영화는 선하지 않은 인간들, 물질에 구속된 인간들, 자신의 명성과 직책을 위해 고군분투하며 유물론적 세계관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그 절정에 나온 퍼포먼스는 과했다.

영화의 절정에 팝가수 레이디 가가가 패션쇼의 축하 노래를 부른다. 가가는 마돈나 다음으로 악마에게 제를 올리는 퍼포먼스로 유명한 미국의 팝가수이다. 붉고 검은 색의 무대에서 그녀가 했던 것은 단지 귀여운 아이콘의 악마 응원가나 비유적인 퍼포먼스는 아닌 것 같다. 나는 그때 보지 않았다. 그것이 무엇이건 선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가의 무대는 원하는 사람들이 모여든 단독 콘서트에서 보는 것이 맞다. 그러나 영화의 절정에선 그녀를 싫어하는 사람도 스크린에서 마주하게 된다. 나는 바닥을 보았지만, 대부분 아무 생각없이 스크린을 보게 된다. 즉, 강제로 사탄 제사를 눈으로 보고 머리에 남기게 된 것이다.

해외 음악의 이런 특징을 다수의 사람들은 알고 있다. 그러나 일부 팝 음악은 감미롭기에 해롭다고 하기도 어렵다. 문화적으로 그림책은 어떠한가? 지금껏 우리는 그림책의 선함에 매료되어 감탄에 빠져들었다. 그림책이 영유아의 전용일 때는 더욱 창작에 순수함이 중요한 덕목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지현 그림책을 보며 또 한 번 눈을 감아야 할 것 같다. 오늘 볼 그림책은 이지현 그림책의 『레스토랑 핑크』이다. 그 전에 문화 속 악마를 찾아보자.


1. 사탄주의 유행

  

          영어로 Satanism은 사탄을 숭배하는 종교적, 철학적 신념과 운동이다. 사탄주의, 또는 사탄교라고 불리며 독립적이고 비밀스러운 성향이 있기에 정의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사탄은 초자연적인 힘, 신적 존재, 악마 등을 의미하며, 가장 일반적으로는 자기 자신인 자아를 의미한다고도 보았다. 사탄교회를 만든 안톤 라베이는 자신을 숭배하는 물질 우상주의자이다. 그 외 기독교에 대한 거부를 상징한다. 그들은 기독교를 자기비하, 자기부정, 억압, 무능함이라고 본다는 위키백과의 설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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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젠 들라크루아 < 공중의 메피스토펠레스 > (1828)



          고전에 유명한 사탄은 메피스토펠레스, 또는 메피스토라 불리는 독일 민간 전승에 기원한 악마이다. 일반적인 비열하고 악랄한 고전적인 악마의 원조로 파우스트 전설에 나온다. Goethe의 『파우스트』에 등장하는 메피스토는 주님과 내기에서 인간인 파우스트에게 쾌락적 삶을 주고 영혼을 넘겨받기로 한다. 이를 즐기던 파우스트는 순진한 처녀 그레트헨을 만나 그녀의 사랑으로 치유 받는데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메피스토는 그들을 농간한다. 그레트헨은 죽게 되지만 구원을 받아 천국으로 가고, 파우스트는 악마를 이기고 많은 사람들을 자유롭고 행복한 삶으로 이끈다. 우여곡절 끝에 그레트헨에 의해 파우스트는 천국으로 가게 되고, 천사들에게 붙잡힌 메피스토는 홀로 지옥으로 떨어지게 된다. 소설을 읽어보면 메피스토가 인간을 허무하게 만든다. 인간의 쓸모없는 욕심과 자기 탐욕, 쾌락 이후 허무함까지 부정적인 면을 끈임없이 자극하고 타락으로 이끈다. 이러한 최면이 인간을 정말 쓸모없는 존재로 만들어 버리고 두려움에 차게 한다.


2. 쓸모없는 인간들

    

          인간을 필요악으로 만드는 것은 Malthus의 『인구론』에서도 발견하게 된다. Malthus는 인구가 줄어야 산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 이전에는 인구가 많아야 산다고 믿었으나, 생명은 이제 존귀함을 잃어간다. 인구가 줄어야 하기 때문이다. 초판은 1798년 익명으로 출판되었으나, 여섯 번의 개정이후 1826년 최종판이 나왔다. 가장 먼저 논의된 것은 식량의 부족이었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지만, 식량은 산술급수적 증가로 그 부족은 필연적이라는 것이다. 해결책은 산아제한, 결혼연기, 독신 등을 통해 출산율을 낮추는 예방적 조치와 기근, 질병, 전쟁 등을 통한 사망률 증가의 적극적 억제를 제시했다.

『인구론』은 여러 분야에 매우 강한 영향을 주었다. 진화론자 Darwin은 진화의 기제가 적자생존, 즉, 자연도태라는 것을 이 책을 읽은 후에 깨닫게 되었다고 하였고, 그 외 경제학과사회학에서도 여러 영향을 발견할 수 있다. 19세기 비평가 Carlye은 이 책을 읽은 후 ‘경제학은 우울한 학문’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오늘날 재 번역된 Malthus의 『인구론』(2016)은 인간의 죽음, 그것도 가장 많은 떼죽음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부족 간의 사냥과 싸움, 대륙으로 이동한 민족간의 전쟁과 병균으로 인한 죽음, 인간의 힘의 서열과 여인과 어린이의 생존법 등은 문명과는 거리가 먼 유물론적인 판단이 전부이다.

실제로 문명사회는 도시로 인구가 모여 살면서 여러 측면의 사람들이 각기 자신의 재량으로 신기술과 발전을 통해 문명을 이루었다. 전 세계가 큰 전쟁이 없이 수십년을 지내오며 가장 평화로운 삶을 살았다. 그러나, 인구를 의도적으로 줄이는 정책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앞서 『인구론』에서 나왔던 대륙간의 민족이동은 오늘날 다문화 정책으로 등장했으나, 유럽을 비롯한 세계가 테러와 게토, 자국민이 아닌 정치 권력의 등장으로 혼돈에 빠져있다. 소리없는 전쟁이 진행 중인 것이다. 결혼을 억제하고, 출산율을 낮추는 낙태는 오히려 보호받지 못하는 어린 생명의 죽음을 증가시키고 있다. 그 외에도 전염병과 예방의 실패는 암과 같은 질병의 증가로 인간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 인간은 그토록 쓸모없는 존재인가?


3. 『레스토랑 핑크』 이지현 (2025)


          이지현 그림책의 표지는 매우 사랑스러운 핑크색과 어울리는 달콤한 크림의 딸기케잌이 가득한 예쁜 식당이 그려있고, 진 분홍색 선으로 그려진 토끼를 닮은 동물이 있다. 뿔인지 귀인지 머리 위로 솟은 두 개의 뾰족한 것이 눈에 띄인다. 표지는 고급레스토랑이 떠오른다. 속 표지에는 빈 공간의 주문서가 있다. 메뉴와 특별 요청을 적는 공간이 있고, 아래에 “레스토랑 핑크의 모든 서비스는 고객의 욕구를 최우선으로 합니다.”라고 씌여 있어 기대를 하게 된다. 인간의 욕구, 특히 식욕을 떠올리게 한다. 첫 펼침면의 왼쪽에 “어서 오세요. 여러분의 완벽한 식사를 위한 곳, 레스토랑 핑크입니다.”라는 글이 있고, 오른쪽에 문을 활짝 열고 선 식당 주인이 보인다. 글도 작고 그림도 크지않다. 페이지를 넘기자  표지에 있는 동물을 닮은 두 개의 뿔을 단 동물 손님들이 가득하다. 이후 남자, 여자로 적은 대상은  이 동물 손님을 지칭한다. 그림의 옷차림으로 추측하여 적었을 뿐이며, 실제 사람이 아닌 모호한 동물이다.

네 명의 손님이 보인다. 그들은 똑같은 모습으로 똑같은 음식을 먹는다. 그들의 위에는 악마를 연상시키는 붉은 뿔이 두 개 난 조명등이 있다. 네 명의 동물은 매우 뽀쪽 한 이가 가득한 입을 벌리고 삼지창의 포크로 음식을 찍어 입안에 넣는다. 2번 테이블에는 한 명의 손님이 보지만 주문서에 품목은 7개가 써 있다. 붉은 원피스를 입은 한 명의 동물은 테이블 가득한 16개가 넘는 접시 위의 케잌을 두손으로  열심히 먹는다. 주문서 5번 테이블에도 정장을 차려입은 한 명의 남자 손님이 스무개가 넘는 여러 요리를 열심히 먹는다. 주문한 품목은 ‘이 레스토랑의 모든 코스 요리’이다. 그러나 손님 의자 옆에는 먹고 버린 음식과 접시들이 가득하다. 글은 “무슨 일이든 경험이 제일이지. 가능한 한 모든 맛을 알아야지. 잠깐, 세 번째로 먹은 음식이 무슨 맛이었지...?”라고 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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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이후에도 다섯의 동물 가족들이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고 있다. 아기를 데려온 엄마와 아빠는 아기에게 뭐든 빠를수록 좋으니 이런 것도 먹으라고 양갈비를 준다. 혼자서 온 손님은 브런치 기본 1인을 먹으며, 12인석에 의자 1개를 주문했다. 주문대로 혼자서 넓은 테이블에 앉아 1인분의 식사를 하면서 “앞이 탁 트이니 음식 맛도 좋군.”이라고 중얼거린다. 주위에 여러 손님들이 그를 보면서 항의를 한다. 그들은 작은 1인용 테이블을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커튼 뒤에 정장을 입은 한 명이 “의자 다리가 곧 부러질 것 같이 생겼어. 포크는 너무 뾰족해서 먹다가 찔리겠어. 음식도 너무 맛있어 보여. 수상해. 여긴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라며 분위기를 살핀다. 다음 장에는 가족이 보인다. 아빠는 팔짱을 낀 채 음식을 먹지 않으면서 “무슨 맛인지 알 것 같아. 별것도 아닌 케이크에 호들갑은.”이라며 투덜거린다. 멋지게 차려입은 엄마와 아이들 넷은 요란하게 케잌을 먹는다. 앞서 커튼 뒤에서 겁을 내던 자가 테이블에 앉아 주변을 기웃거리며  나는 무엇을 시킬지 의문을 갖는다.

주문서 1층. 샹들리에 섹션에는 로얄 코스 2인을 먹는 남자와 여자가 있다. 그들의 주문은 유러피안 럭셔리 플레이팅과 3단 촛대 필수이다. 남자는 ‘다이아 플레이트는 기본이지’라고 생각하고 멋들어진 촛대, 가득 차려진 음식과 샹들리에 건너 멀리 떨어져 있는 여자와 식사를 한다. 여자는 ‘이 정도가 이 집에서 최고급이라니, 실망인걸’이라고 생각 한다. 주문서 2층 2번룸에는 프라이빗 VIP 코스 1인을 먹는 남자가 보인다. 특별히 주문서에 웨이터 코스별로 대기라고 씌여있다. 그림에는 침대에 누워서 입만 벌린 남자가 있고, 입에 웨이터가 서서 음식을 넣어준다. 다른 웨이터들이 줄지어 각종 음식을 들고 그에게 주려고 서있다. 

다음에는 커다란 치즈가 테이블 위에 있고, 혼자 앉은 남성이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먹으려고 한다. 반대편 누군가 살며시 나와 치즈를 훔치다 들킨다. 치즈 도둑은 식사 중인 테이블 위에 올라가 뛰어 도망간다. 다음 장면은 온통 난리가 난 식당의 모습이다. 서로 싸우고 넘어져서 들것이 들어오고, 식당 주인은 웃으며 파손 보상 방침을 안내해 드린다고 한다. 이후 여러 창문이 보이고 난장판이 된 식당 안의 그림자가 보인다. 한두 개 열린 창으로 술과 음료, 음식들이 던져져 밖으로 떨어지며 그 안에서 벌어지는 싸움을 상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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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기이한 장면은 레스토랑 주인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싸움을 바라보고 서 있다. 그는 “이곳에선 늘 있는 일이죠. 모두가 원하는 대로 되어 가고 있어요.”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왜 그들은 싸워야 하고, 그런 일이 모두가 원하는 것이란 말인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그림책의 메시지는 무엇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인간의 욕망과 싸움이 인생의 목표란 말인가? 아니면 모두가 욕심으로 싸울 수 밖에 없다는 것인가?

그 궁금증을 풀어 주듯 다음 장면은 레스토랑에 악마의 상징인 두 개의 뿔이 있다. 희한하게 생긴 등장인물도 두 개의 뿔이 있었는데 귀인지 뿔인지 알 수 없었으나, 이 장면에서 뿔이라고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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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들이 줄지어 나가고 주인은 정중히 인사를 한다. 그들은 음식값을 지불하지도 않은 듯 보인다. 인사를 하는 주인을 향한 손님은 하나도 없다. 깨진 접시와 엉망이 실내가 보임에도 주인은 “안녕히 가세요. 만족하지 못하셨다면 언제든 또 찾아 주세요.”라고 인사한다. 그리고는 “여러분의 완벽한 식사를 위한 곳, 레스토랑 핑크입니다.”라고 마무리하며 끝을 맺는다.


4. 그림책에 관하여

   

           마지막 지은이의 커멘트가 있다. 작가는 이곳이 욕구대로 행동하는 곳이며 상식에 없는 공간이지만, 나 자신을 제어하기 힘든 상황이 그와 같은 공간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불안이 증폭되고, 무턱대고 떠받드는 상황, 즉각적인 성취감과 채워지지 않는 허무함에 잠식된 상황이 그러한 곳이라고 부연한다. 그곳에서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게 되며, 욕망하는 삶과 동행할 때 만족에 닿을 수 있다고 한다. 이지현 작가는 국내보다는 국외에서 상을 많이 받았다. 포르투갈 아마도라 국제만화축제에서 아동도서부문 최우수 외국일러스트레이터상을 수상했고, 미국일러스트레이터협회에서 그녀의 그림책 『수영장』이 ‘최고의 그림책상’을 수상했다.

그림책은 귀여운 그림으로 인간의 욕망과 추함을 그려내면서 인간은 모두 그러하다고 설득한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먹는 것으로 싸운다는 것이다. 마치 Malthus가 주장하는 식량 경고를 연상시키면서, 그것을 조롱하는 악마를 등장시키는 것이다. 메피우스는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면서 그 우울과 허무함을 극대화하는 악마였다. 결국 그림책이라는 장르가 가진 귀여움을 간직하면서 파격적인 악마주의 장르를 가져온 것이다. 팝 음악이 감미로움을 가졌지만, 그에 비해 무대 위의 퍼포먼스는 악마를 연상시키는 것과 유사하다.

이 그림책은 이면에 담긴 인간상이 어떠한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이들은 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게 될지 예측하는 것은 그림책 전문가가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부모들 또한 예의 주시해서 작품을 해석해야 한다. 그 외양이 귀엽다고 하여 담겨진 메시지가 결코 귀엽지 않은 작품이 다수 등장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금지된 장르에 문을 닫아줄 필요가 있다.

작가가 생각하는 인간에 대해 살펴보기 위해 『수영장』 그림책을 보면, 표지부터 초현실주의 그림이 기괴하면서도 해석하고자 들여다보게 된다. 수영모를 쓴 아이는 유난히 색이 없는 무채색이다. 모든것이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생명이 다한 것은 흑백으로 표현하는 관례적 표현이 있다. 처녀귀신만 보아도 검은치마에 흰저고리와 검은 긴 머리를 늘어뜨린 하얀 얼굴을 하고 있으며, 저승사자는 검은 갓에 검은 두루마리를 하고 흰색의 얼굴을 하고 있다. 그림책에서는 생명력이 다한 인간인지 모르겠으나 색을 지닌 것은 수영장의 물뿐이다. 한 소년이 수영을 하려고 서있다. 그런데 어디선가 많은 수의 사람들이 몰려들어 수영장은 금새 가득찼다. 그곳은 한발도 움직이기 어려워 보인다. 소년은 여전히 멀리서 서 있다. 인구과밀, 여기서도 Malthus의 인구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떠오른다. 한정된 공간에 다수의 사람들, 수영하는 그들의 얼굴은 서로를 헐뜻고 인상을 쓰며 밀어내고, 소리를 지른다. 몇몇은 웃고 있지만, 그들은 결코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꼼작도 할 수 없는 그곳은 수영장이 아니라 갇힌 듯 보이기 때문이다.

소년은 그들을 뒤로하고 잠수를 한다. 물속에서 그는 색을 얻었다. 여전히 물위에 떠 있는 사람들은 흑백이다. 생명력이 없다. 소년은 물속 깊은 곳에서 소녀를 만난다. 그녀도 색을 가지고 있다. 둘은 깊이 들어가 기괴한 여러 물속에 사는 생명체를 만난다. 이윽고 행복한 모습으로 물 위로 올라온다. 글은 마지막 장면에 한 줄이 있다. “세상을 자유롭게 헤엄치고 싶은 사람들에게 ……”라고 헌정한다. 예측대로 작가는 한정된 수영장 공간을 세상으로, 과밀한 인구와 인구소멸을 주장하는 사람을 자유롭게 헤엄치고 싶은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다. 작가가 Malthus의 『인구론』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는지, 또는 아예 모르는지에 대한 정보는 없다. 그러나 작품은 끊임없이 인간의 쓸모없음을 보여준다. 그들은 그저 과밀한 존재들이고, 억제해야할 대상인 것이다. 또 그들은 자신의 욕구에만 사로잡힌 욕심쟁이들이다. 채워지지 못하는 욕심으로 부대며 살아가는 인간들이다. 그림책 『수영장』은 그렇게 허무하다.

이지현의 그림책 『문』 또한 유사한 패턴을 가진다. 인간이 사는 공간은 무채색이고, 따라서 그들은 생명력이 없다. 그림책 속 인간의 표정은 화가 났거나 무관심한 모습이다. 더 나아가 사람들은 혼자 다니며 옆 사람을 흘겨보고, 입은 굳게 다문 채 언짢은 표정이다. 전체적으로 서로를 의심하고 질투하고 미워한다. 그 안에 한 소년이 색을 가진 작은 파리를 따라 어떤 문안으로 들어간다. 그곳은 젼혀 다른 세상이고 기괴한 동물들이 인간과 유사한 모습으로 산다. 레스토랑 핑크에 등장한 두 개의 뿔을 가진 동물들도 그곳에 살고 있다. 이윽고 소년이 그곳을 나올때에 문을 열어두고 나온다. 다른 세계로 통하는 통로를 만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기괴한 동물이 사는 곳은 낙원이다. 아름다운 풍경, 아름다운 삶이 그려져 있지만 어쩐지 기괴하다. 선한 것과는 다른 그곳은 인간이 사는 곳보다 다양한 색으로 한껏 꾸며져 있다. 인간의 삶이 있는 곳은 어떠한 배경도 없고, 일그러진 인간들 뿐이다.

   

5. 허무한 인간군상인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귀한 존재인가?


          그림책은 욕심과 허영으로 음식을 축내는 인간을 허망하게 표현하거나, 인간을 차가움, 경멸, 믿지 못할 존재로 그려내는 허망함을 가졌다. 그림책을 읽는 독자에게 그 감정이 전이될 것이다. 고전은 인간이 한때의 허무함으로 악마에게 유혹당하지만 끝내 선하게 마무리하는 고군분투가 있다. 괴테의 『파우스트』가 그러하다. 그러나 현재의 문화는 악마를 그 자체로 받아들인다. 지적인 고군분투는 없다. 오히려 자신의 욕망, 물질적, 정신적 행복을 유지하기 위해 악한 것에 그럴 수 있다는 마무리를 보인다. 과연 인간은 악한가? 문화적인 메시지는 악마의 유혹과도 같다. 그것을 뛰어넘는 선한 고군분투를 보여주지 않는다. 선한 싸움은 기독신앙인들이 해오는 것과 같다. 사탄주의가 기독교를 부정하는 것은 이러한 싸움에서 그들은 결코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허무한 인간군상은 악마가 사람을 사로잡을 때 지껄이는 제안들과도 같다. 사탄은 창세기 3장에서 처음 나타나는데,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라고 하였다. 성경에 등장하는 사탄은 인간을 죄로 유혹하는 역할로 뱀이 그에 해당한다. 요한계시록 12장 7~17절과 마태복음 25장 41절에 따르면, 사탄은 타락한 천사들과 마귀들의 대장이며, “거짓의 아비”(요한복음 8장 44절), “의인을 비난하는 자”(욥기 1장 6~12절)로 불린다. 사람은 결코 악마에게 굴복하지 않는 힘이 있다. 그것을 무너뜨리는 문화적 코드가 요즘에 성행하는 것이다. 참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신자라면 이것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하고, 넘어지지 않도록 할 수 있다.

마태복음 4장 1절과 11절은 사탄의 유혹을 이기신 예수님이 나온다. 사십 일 동안 밤 낮으로 음식을 드지시 않아 무척이나 배가 고팠던 예수님에게 사탄이 나타나 “네가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을 빵이 되게 해봐.”라고 유혹했으나 예수님은 “사람은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그러자 사탄은 예수님을 예루살렘 성의 성전 꼭대기로 데려갔다. 사탄은 “네가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곳에서 뛰어 내려라. 그럼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주 너희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사탄이 예수님을 아주 높은 산으로 데려가서 세상에 있는 모든 나라와 영광을 보여주며 “세상의 모든 나라가 다 나의 것이니, 나에게 절을 하면 이 모두를 너에게 주마.”라고 유혹했다. 예수님은 단호히 “사탄아, 물러가라. 성경에 말씀하시길 ‘주 하나님만 경배하고 섬기라’라고 하셨다. 사탄은 예수님을 유혹하기를 포기하고 자리를 떠났다.

그림책 『레스토랑 핑크』도 인간에게 먹을 것으로 유혹하며 한없이 엉망이 되라고 주문한다. 인간이 욕망을 채우고 떠나는 식당이 아니라 악마에게 잠식당하여 자신의 지적 판단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럼으로 늘 말씀을 기준하여 당당히 대적하여야 할 것이다. 인간은 허무한 군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따뜻하고 존귀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고, 우리도 서로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가 있어 늘 행복하고 평온한 마음이 우리에게 넘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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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형  | 안산대학교. 겸임교수

그림책과 미술로 자신을 돌아보는 예술치유전문센터에서 센터장을 지냈고,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 박사 학위가 있습니다. 어린이를 위한 환경에서 그림책과 예술의 역할을 학문적으로 탐구하고자 세계관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현재, 안산대학교 언어치료아동보육과, 경민대학교 아동심리보육과에서 겸임교수로 강의하고 있습니다.  저서는 [아동과 우리사회] (2016), [Art Psychology : 직장인 마음을 읽다] (2019), [신앙이 자라는 그림책 읽기] (2024)이 있으며,  현재 '그림책세계관연구소' 이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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