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의 그림읽기
초현실주의 그림 숀탠의 신세계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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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진2026-01-17 12:24
서평을 읽으며 초현실주의에 대해 좀 더 알게 되었습니다. 비이성, 꿈의 세계를 담고 있는 초현실주의는 비규정의 형태를 띠고 있어 극적인 효과를 주지만 그 안에 이념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초현실주의의 색채가 강한 작품들을 볼 때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생각의 범위를 뛰어넘는 경우가 많아 독창적이라고 여겼던 적이 많았는데, 그 안에 담긴 메시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던 적이 많았던 것 같네요. 글을 읽으니 앞으로는 작품이 담고 있는 본래의 메시지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독창적인 그림은 상상에 대한 폭을 넓혀줄 수 있지만 그 확장과 의미생성이 과연 독자에게 유익한가에 대한 부분은 논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숀탠의 <여름의 규칙>에 관한 글을 읽으며 숀탠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일까를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작가는 자신의 글을 통해 친한 사이의 낯선관계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하는데, 그 말의 뜻을 알 듯 모를 듯 아리송합니다. 두 형제인지 혹은 두 어린아이인지. 그리고 이 둘을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이미지들..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좀 더 꼼꼼히 살펴봐야겠습니다..!
숀탠의 <여름의 규칙>에 관한 글을 읽으며 숀탠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일까를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작가는 자신의 글을 통해 친한 사이의 낯선관계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하는데, 그 말의 뜻을 알 듯 모를 듯 아리송합니다. 두 형제인지 혹은 두 어린아이인지. 그리고 이 둘을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이미지들..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좀 더 꼼꼼히 살펴봐야겠습니다..!
백효진2026-01-20 21:31
그림책을 좋아하는 어른들의 모임에서 숀탠의 그림책은 어렵고 모호하다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초현실주의 그림을 보며 기괴하다 또는 창의적이다, 이런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그 그림 안에 프로이트와 마르크스가 담겨있다는 것도 이 글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아직 '여름의 규칙' 그림책을 보지 못했다는 것인데 그림책을 보며 서평에 담긴 내용을 더 깊이 느끼고 확인하고 싶습니다. 그림책을 여러 번 읽는다 해도 절대 알 수 없는 내용이었을 서평에 감사합니다. 그림책 안에 담긴 세계관이 참으로 거대해 보입니다. 이런 그림책이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작가의 의도와 더불어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됩니다.
이수형2026-01-21 00:26
이 책은 잘 팔리지 않는것 같아요. 모호함이 선택을 제한하지요. 저도 해석하기 전에는 볼 생각도 안들었는데... 어느날 해석을 작정하고 들여다보니 달랐어요. 이 책은 숀 탠의 생각을 가장 명료하게 담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은 분명한 책이지요. 다만 그 분명함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는 것입니다.
우승린2026-01-21 12:39
졸린 눈을 비비면서 댓글을 달아볼까 했지만, 이 책이 어떤지 너무 궁금했습니다. 찾아본 [여름의 규칙]을 보면서 생각보다 큰 사이즈의 책이어서 놀랐고. 그림을 너무 잘 그려서 놀랐습니다. 얘기했던 원화와 그림책의 그림의 관점에서 이 작품들은 아마 실제로 보면 더 (좋든/싫든) 울림이 있을것 같은 그림들입니다. 초현실주의가 이성에 반하여 나온 사조로서 보는 것에 대한 인식을 전복하는 것으로만 생각했지, 이렇게 정치적인 의미가 깊게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서평으로 더 많은 지식을 알게 되고,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어 귀하다 싶고 많이 배웁니다.
일단, 디스토피아적인 그림임이 더 확실한 것이 뒷 표지를 보니 고흐의 죽기전에 그렸던 그림인 [까마귀가 있는 밀밭]과 너무 흡사합니다. 이 작가는 의도와 메세지를 생각 이상으로 더 많이 숨겼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많이 드는 부분이네요. 이런 책들이 어떻게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칠런지. 저의 얇은 지식에도 분명 어린아이들이 보면 안될 것 같은 그림인데, 아름답다고 울림이 있다고 선뜻 살 수 있는 이 책을 어찌할꼬.. 하는 걱정이 앞섭니다.
질문들도 더 많이 생기니 공부하는 이유에 조금 더 다가가는 것 같습니다.
일단, 디스토피아적인 그림임이 더 확실한 것이 뒷 표지를 보니 고흐의 죽기전에 그렸던 그림인 [까마귀가 있는 밀밭]과 너무 흡사합니다. 이 작가는 의도와 메세지를 생각 이상으로 더 많이 숨겼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많이 드는 부분이네요. 이런 책들이 어떻게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칠런지. 저의 얇은 지식에도 분명 어린아이들이 보면 안될 것 같은 그림인데, 아름답다고 울림이 있다고 선뜻 살 수 있는 이 책을 어찌할꼬.. 하는 걱정이 앞섭니다.
질문들도 더 많이 생기니 공부하는 이유에 조금 더 다가가는 것 같습니다.
이수형2026-01-21 12:54
맞아요. 이런 작가의 특징은 그림을 잘그리는 것에 있습니다. 그림만으로 상을 많이 받기에 내용과 달리 저명한 작가가 되곤한답니다. 그러니 영향력이 커질 수 밖에 없고, 애써 칭찬들을 합니다. 이러한 경향을 깨는 작업이 그림책 연구가들의 몫이라 여기게 됩니다. 그 메시지는 별루거든요.
지상선2026-04-23 16:10
비평에서 짚어주신 정치적 이념과 초현실주의적 틀 덕분에 작품을 보는 시야가 한층 넓어졌습니다.
동시에 숀탠의 그림이 주는 불편함은 역설적으로 우리 안에 갇힌 '이성의 검열'을 해제하는 힘이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이들을 이 난해한 그림으로부터 분리하여 보호할 것인가, 아니면 그 속에서 스스로 의미를 발견해 낼 수 있는 힘을 길러줄 것인가를 깊이 고민하게 만드네요.
작가가 그려낸 모호한 불안이 아이들에게는 단순한 혼란이 아니라, 자신만의 내적 질서를 찾아가는 성장통이자 회복의 서사로 치환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작품이 남겨둔 '비어 있는 공간'을 통해 아이들이 정서적 회복과 자아활성화를 경험하고, 나아가 건강한 자아의 힘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 작가와 기독교 교육 실천가들이 함께 고민해야 할 지점이라고 사료됩니다.
그림책이 지닌 예술적 가치와 그 교육적 지평을 다시금 되새기게 하는 귀한 글 잘 읽었습니다.
동시에 숀탠의 그림이 주는 불편함은 역설적으로 우리 안에 갇힌 '이성의 검열'을 해제하는 힘이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이들을 이 난해한 그림으로부터 분리하여 보호할 것인가, 아니면 그 속에서 스스로 의미를 발견해 낼 수 있는 힘을 길러줄 것인가를 깊이 고민하게 만드네요.
작가가 그려낸 모호한 불안이 아이들에게는 단순한 혼란이 아니라, 자신만의 내적 질서를 찾아가는 성장통이자 회복의 서사로 치환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작품이 남겨둔 '비어 있는 공간'을 통해 아이들이 정서적 회복과 자아활성화를 경험하고, 나아가 건강한 자아의 힘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 작가와 기독교 교육 실천가들이 함께 고민해야 할 지점이라고 사료됩니다.
그림책이 지닌 예술적 가치와 그 교육적 지평을 다시금 되새기게 하는 귀한 글 잘 읽었습니다.
김선옥2026-04-27 17:30
그림책을 비평을 보고, 비평을 읽고 그림책을 다시 봐도 제가 이해하기에는 다소 난해하고 어려운 주제인 것 같습니다. 비평을 읽지 않았다면 이 책에 대한 이해도가 전혀 없었을 뿐더러 그냥 내용이 별로다 하고 넘겼을 그런 책이란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우선 제가 이해하고 있던 초현실주의는 현실을 뛰어넘는 어떤 이상향을 향한 그런 것이었는데 비평을 읽으면서 초현실주의 안에는 단순히 이전의 사조를 뛰어넘는 것이 아닌 정치이념과의 관계가 너무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서 놀랐습니다. 또 그림책이 교훈적인 내용에 적합하지 않아도 그림이 뛰어나다는 이유로 상을 받았다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며, 그림책 뿐 아니라 일반 아동들이 읽는 문고도서, 소설 등의 책들도 내용의 중요성보다 그 외적인 것에 더 치우쳐 좋은 책이라 소개하고 있는 현실이 씁쓸함을 느꼈습니다.
좋은 그림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행복을 주지만 일반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그림을 그리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지 못 하는 것은 대중이 아닌 예술을 하는 사람들 만의 울타리를 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 그림책의 주인공인 아이의 모습은 쓸쓸함, 화남 등의 부정적인 모습이 주를 이루며, 마지막에 그려진 모습도 진정으로 행복해서 웃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림책이라고 하면 아이들 뿐만 아니라 그 누가 봐도 즐겁고 유쾌하고 사랑스럽고 그런 긍정적인 모습으로 인해 재미있게 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데(이것도 어쩌면 나의 편협적인 생각일지도 모른다) 이 그림책은 무섭고 기괴하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그림으로서는 훌륭할지 모르겠으나 그림책이라는 장르를 생각했을 땐 어울리지 않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 교육에 있어서는 작가의 유명성 보다 어느 한 부분이 뛰어난 것을 강조하는 것보다 균형이 잡힌 책을 보여주는 것이 아이들의 정서에 좋으며 무언가 깊이 생각해야 할 책들은 어린 아이들이 아닌 최소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 같이 보고 토론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예전에는 그림책의 대상이 어린 아이들이 주를 이뤘다면 요즘은 그 대상이 성인까지 확대되는 느낌이라 그림책에 대한 정의(?) 개념(?)도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마지막에 새로운 세계 질서에 대해서도 언급해 주셨는데 처음 이 용어가 나올 당시엔 단순히 하나의 질서를 생각했지 여기에 많은 의미가 숨겨져 있다는 것은 이 비평을 읽으면서 새롭게 알게 됐습니다. 세상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이 생겨나고 그 것을 띄어 주는 것은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것이 왜 생겨났는지 주의 깊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음을 깨닫습니다.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세상에서 내놓은 새로운 이념 같은 것은 갈수록 절대적인 성경 진리를 비틀고 왜곡 시키는 것에 더 심화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 진리인 성경 말씀을 더 가까이 하여 내 영이 늘 깨어 있으며 분별할 줄 아는 눈을 열어 볼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우선 제가 이해하고 있던 초현실주의는 현실을 뛰어넘는 어떤 이상향을 향한 그런 것이었는데 비평을 읽으면서 초현실주의 안에는 단순히 이전의 사조를 뛰어넘는 것이 아닌 정치이념과의 관계가 너무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서 놀랐습니다. 또 그림책이 교훈적인 내용에 적합하지 않아도 그림이 뛰어나다는 이유로 상을 받았다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며, 그림책 뿐 아니라 일반 아동들이 읽는 문고도서, 소설 등의 책들도 내용의 중요성보다 그 외적인 것에 더 치우쳐 좋은 책이라 소개하고 있는 현실이 씁쓸함을 느꼈습니다.
좋은 그림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행복을 주지만 일반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그림을 그리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지 못 하는 것은 대중이 아닌 예술을 하는 사람들 만의 울타리를 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 그림책의 주인공인 아이의 모습은 쓸쓸함, 화남 등의 부정적인 모습이 주를 이루며, 마지막에 그려진 모습도 진정으로 행복해서 웃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림책이라고 하면 아이들 뿐만 아니라 그 누가 봐도 즐겁고 유쾌하고 사랑스럽고 그런 긍정적인 모습으로 인해 재미있게 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데(이것도 어쩌면 나의 편협적인 생각일지도 모른다) 이 그림책은 무섭고 기괴하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그림으로서는 훌륭할지 모르겠으나 그림책이라는 장르를 생각했을 땐 어울리지 않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 교육에 있어서는 작가의 유명성 보다 어느 한 부분이 뛰어난 것을 강조하는 것보다 균형이 잡힌 책을 보여주는 것이 아이들의 정서에 좋으며 무언가 깊이 생각해야 할 책들은 어린 아이들이 아닌 최소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 같이 보고 토론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예전에는 그림책의 대상이 어린 아이들이 주를 이뤘다면 요즘은 그 대상이 성인까지 확대되는 느낌이라 그림책에 대한 정의(?) 개념(?)도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마지막에 새로운 세계 질서에 대해서도 언급해 주셨는데 처음 이 용어가 나올 당시엔 단순히 하나의 질서를 생각했지 여기에 많은 의미가 숨겨져 있다는 것은 이 비평을 읽으면서 새롭게 알게 됐습니다. 세상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이 생겨나고 그 것을 띄어 주는 것은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것이 왜 생겨났는지 주의 깊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음을 깨닫습니다.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세상에서 내놓은 새로운 이념 같은 것은 갈수록 절대적인 성경 진리를 비틀고 왜곡 시키는 것에 더 심화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 진리인 성경 말씀을 더 가까이 하여 내 영이 늘 깨어 있으며 분별할 줄 아는 눈을 열어 볼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수형2026-04-27 18:29
보통의 사람들은 숀 탠의 책이 어렵기 때문에 내용은 접어두고 그림에 감탄하며 멋진 책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욱 비평을 해야한다고 봅니다. 선생님의 기도처럼 분별의 지혜가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긴 글 감사합니다. ^___^
전보람2026-04-27 23:47
내용도 그림도 너무 난해해서 한참을 생각하고 고민하게 된것 같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생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1. 작가는 왜 초현실주의 그림과 내용의 책을 만들었을까?
: 다른 작품들도 보니 이 작가는 SF와 공포물을 좋아하고 많이 그렸다. 작품의 교훈과 의미 보다는 초현실주의적 이미지와 그것들이 주는 느낌을 좋아하는것 같다.
2. ‘절대~ 하지말라’는 문장들이 마치 운율처럼 이어지는 것은 어떤 의미 일까?
: 이 문장들을 보니 이상의 오감도 시가 생각났다. 이상의 시도 여전히 그 의미를 제대로 해석해내는 사람은 없고 그 당시 시대상과 개인사를 엮어 추측하는 정도라고 알고 있다. 그렇지만 당시 그런 형식의 문학을 하는 작가는 거의 유일 무이 하기 때문에서라도 인정을 받는게 아닌가 싶다. 어떤 시대를 뛰어넘는, 시대를 선두하는(?) 남다른 능력을 가진 사람이 인정받은것처럼 숀탠도 그림책에서 초현실주의 그림체와 초현실주의적인 (의미를 알기 어렵고 심오한 무언가가 있는듯한 그렇지만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은 없는 이라고 표현하고 싶네요) 느낌을 주는 문장들을 만들어 낸것을 인정받는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3. 이 사람은 신세계 질서의 의미를 잘 이해하고 있는걸까? 이것을 홍보하기 위해 만든 그림책일까?
: ‘아동 문학은 새로운 세계 질서(New World Order)의 비전을 담기 위해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를 사용 한다’ 라고 쓰여진 것을 보고 내심 놀랬다. ‘신세계질서’라는 것을 모르는것은 아니었는데도 아동문학에 적용이되고 있다는 것은 간과하고 있었던것 같고 그것이 내심 음모론의 하나쯤으로 느껴질때도 있었다. 그러나 문화막시즘으로 기존 질서를 뒤집고 파괴하는 세력들이 존재하는 것을 볼때 이 ’신세계 질서‘의 개념도 단순히 우리 삶과 먼것이 아니라 기독교적 진리와 질서를 파괴하려는 어떤 집단의 의도와 공격으로 생각을 해야겠다 라는 경각심이 든다. 숀탠의 그림책을 보니 그것이 더욱 가까이 아동문학까지도 적나라하게 보여지고 나타나지고 있음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4. 그림은 미래적인 느낌인데 디스토피아적인 느낌을 준 이유는 무엇일까?
: 비평에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추측으로 해석하신 부분도 동의하고 불안함을 보여주는것 같다는 지선생님 말씀에도 동감이 든다.
이 책을 보고 나서 드는 생각은 아무래도 작가에게 미래란 그렇게 희망적이지 않아보인다. 그리고 딱히 바라는 소망이 느껴지지도 않는다. 무의미하고 허무한 느낌이 강하지만 그림을 아주 잘 그리고 색채는 또 선명한 것을 보며 어떤 소망과 희망은 없지만 자신이 가진 취향과 그림실력은 뽐내고싶은(?) 모순된 느낌을 받는다.
1. 작가는 왜 초현실주의 그림과 내용의 책을 만들었을까?
: 다른 작품들도 보니 이 작가는 SF와 공포물을 좋아하고 많이 그렸다. 작품의 교훈과 의미 보다는 초현실주의적 이미지와 그것들이 주는 느낌을 좋아하는것 같다.
2. ‘절대~ 하지말라’는 문장들이 마치 운율처럼 이어지는 것은 어떤 의미 일까?
: 이 문장들을 보니 이상의 오감도 시가 생각났다. 이상의 시도 여전히 그 의미를 제대로 해석해내는 사람은 없고 그 당시 시대상과 개인사를 엮어 추측하는 정도라고 알고 있다. 그렇지만 당시 그런 형식의 문학을 하는 작가는 거의 유일 무이 하기 때문에서라도 인정을 받는게 아닌가 싶다. 어떤 시대를 뛰어넘는, 시대를 선두하는(?) 남다른 능력을 가진 사람이 인정받은것처럼 숀탠도 그림책에서 초현실주의 그림체와 초현실주의적인 (의미를 알기 어렵고 심오한 무언가가 있는듯한 그렇지만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은 없는 이라고 표현하고 싶네요) 느낌을 주는 문장들을 만들어 낸것을 인정받는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3. 이 사람은 신세계 질서의 의미를 잘 이해하고 있는걸까? 이것을 홍보하기 위해 만든 그림책일까?
: ‘아동 문학은 새로운 세계 질서(New World Order)의 비전을 담기 위해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를 사용 한다’ 라고 쓰여진 것을 보고 내심 놀랬다. ‘신세계질서’라는 것을 모르는것은 아니었는데도 아동문학에 적용이되고 있다는 것은 간과하고 있었던것 같고 그것이 내심 음모론의 하나쯤으로 느껴질때도 있었다. 그러나 문화막시즘으로 기존 질서를 뒤집고 파괴하는 세력들이 존재하는 것을 볼때 이 ’신세계 질서‘의 개념도 단순히 우리 삶과 먼것이 아니라 기독교적 진리와 질서를 파괴하려는 어떤 집단의 의도와 공격으로 생각을 해야겠다 라는 경각심이 든다. 숀탠의 그림책을 보니 그것이 더욱 가까이 아동문학까지도 적나라하게 보여지고 나타나지고 있음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4. 그림은 미래적인 느낌인데 디스토피아적인 느낌을 준 이유는 무엇일까?
: 비평에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추측으로 해석하신 부분도 동의하고 불안함을 보여주는것 같다는 지선생님 말씀에도 동감이 든다.
이 책을 보고 나서 드는 생각은 아무래도 작가에게 미래란 그렇게 희망적이지 않아보인다. 그리고 딱히 바라는 소망이 느껴지지도 않는다. 무의미하고 허무한 느낌이 강하지만 그림을 아주 잘 그리고 색채는 또 선명한 것을 보며 어떤 소망과 희망은 없지만 자신이 가진 취향과 그림실력은 뽐내고싶은(?) 모순된 느낌을 받는다.
이수형2026-04-28 00:38
아동문학에서의 디스토피아. 유토피아를 그려내며 신세계질서를 담는다는 것은 브래드포드와 그외 비평가들이 숀 탠은 책을 꼭집어 설명했답니다. 저는 그의 책 중에서 <여름의 규칙>이 그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낸다고 생각합니다. 심도 깊은 의견 감사합니다 ^^
지민규2026-04-27 23:51
초현실주의의 태생이 프로이트와 마르크스의 결합으로 볼 수 있다니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것 같습니다.
초현실주의 그림 하면 달리의 흐르는 시계가 제일 먼저 떠오르기도 했는데요.
초현실주의의 탄생에 이런 사상적 뿌리가 있고
전복의 사상이 담겨있을 수 있다는 것을 새롭게 알았습니다.
숀텐의 그림책은 워낙 눈에 띄다보니 자녀와 함께 도서관을 드나들다
한 번 쯤 펼쳐서 읽어봤던 기억이 납니다.
어차피 내용을 알 수 없다고만 생각해서 그냥 멋진 그림 감상만 하고 덮었던 것 같습니다.
숀텐의 캐릭터들은 그렇게 선호하는 비율의 스타일은 아니지만...
-단순화한 기하학적 캐릭터들
-다양한 사이즈의 등장요소들을 체감하게끔 한 흥미로운 배치들
-능숙한 유화적인 터치들
-시각적 복잠성으로 시선을 확 끌며
높은 완성도의 매력적인 그림들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궁금한 점은]
[Q1] 초현실주의 작가들과 그림들은 어느 정도 대부분 문화 막시즘,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고있고
그런 메시지를 품고 있다고 봐야 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초현실주의의 태생이 그러할 뿐,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볼 수 있는 것일까요?
[Q2] 또 성경적인 세계관으로 이런 초현실주의적인 화풍을 사용해서 올바른 메시지를 전하는 그림책을 만든다는 것도 가능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것 같습니다.
초현실주의 그림 하면 달리의 흐르는 시계가 제일 먼저 떠오르기도 했는데요.
초현실주의의 탄생에 이런 사상적 뿌리가 있고
전복의 사상이 담겨있을 수 있다는 것을 새롭게 알았습니다.
숀텐의 그림책은 워낙 눈에 띄다보니 자녀와 함께 도서관을 드나들다
한 번 쯤 펼쳐서 읽어봤던 기억이 납니다.
어차피 내용을 알 수 없다고만 생각해서 그냥 멋진 그림 감상만 하고 덮었던 것 같습니다.
숀텐의 캐릭터들은 그렇게 선호하는 비율의 스타일은 아니지만...
-단순화한 기하학적 캐릭터들
-다양한 사이즈의 등장요소들을 체감하게끔 한 흥미로운 배치들
-능숙한 유화적인 터치들
-시각적 복잠성으로 시선을 확 끌며
높은 완성도의 매력적인 그림들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궁금한 점은]
[Q1] 초현실주의 작가들과 그림들은 어느 정도 대부분 문화 막시즘,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고있고
그런 메시지를 품고 있다고 봐야 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초현실주의의 태생이 그러할 뿐,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볼 수 있는 것일까요?
[Q2] 또 성경적인 세계관으로 이런 초현실주의적인 화풍을 사용해서 올바른 메시지를 전하는 그림책을 만든다는 것도 가능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이수형2026-04-28 00:43
제가 박사논문을 쓰기 전에는 저도 숀 탠의 그림책에 담긴 의미는 모르겠다. 그래서 기괴하고 재미없다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수 많은 책과 사상들을 본 후에 읽어 본 <여름의 규칙>은 그 의미가 확연히 달랐습니다. 이처럼 수 많은 지식과 담론이 지민규 선생님의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일 봬요 ^^
곽서연2026-04-28 00:34
프로이드와 마르크스 ......
이름만 들어도 복잡한 감정이 드는 것 같아요.(이사할 때 컴퓨터의 선들이 널브러져 있는 것만 봐도 한숨이 나오는 ...저의 성향^^ )
평론을 읽기 전 책을 보니 정말 어려운 책이네요.
거대한 기계와 기묘한 생물, 황량한 풍경 등 현실적 설명이 불가능한 장면들은 독자들에게 ' 이해가 안돼도 그냥 봐'. 라고 하는 것 같아요.
'절대 ~ 하지 마' 하는 것처럼 요
평론을 읽은 후 간신히 맥락을 이해하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 부분에 ['여름의 규칙'은 중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세계 질서의 규칙을 내포한다고 할 수 있다.] 에서 확~ 이해가 쏟아지네요. 도로의 커다란 붉은 토끼와 부엉이와 올빼미의 등장 등 각 장면들의 의미가 알아지는 것 같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복잡한 감정이 드는 것 같아요.(이사할 때 컴퓨터의 선들이 널브러져 있는 것만 봐도 한숨이 나오는 ...저의 성향^^ )
평론을 읽기 전 책을 보니 정말 어려운 책이네요.
거대한 기계와 기묘한 생물, 황량한 풍경 등 현실적 설명이 불가능한 장면들은 독자들에게 ' 이해가 안돼도 그냥 봐'. 라고 하는 것 같아요.
'절대 ~ 하지 마' 하는 것처럼 요
평론을 읽은 후 간신히 맥락을 이해하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 부분에 ['여름의 규칙'은 중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세계 질서의 규칙을 내포한다고 할 수 있다.] 에서 확~ 이해가 쏟아지네요. 도로의 커다란 붉은 토끼와 부엉이와 올빼미의 등장 등 각 장면들의 의미가 알아지는 것 같습니다.
이수형2026-04-28 00:49
그는 그 질서를 누구보다 잘 알지 않을까.. 추측해봅니다. 저의 글로 알아가는 의미가 있다니 너무나 감사하네요. 더 읽고 분별하고 해석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깁니다. 곽서연 선생님도 분별의 지평을 여는 해석의 공동체의 일원이 되심을 축하드립니다. ^^
with Chang2026-04-28 00:54
그동안 숀 탠의 작품들을 보며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는데, 현실의 질서를 외면하거나 전복하려는 초현실주의 관점으로 보니 조금은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무엇보다 저 역시 이민자로 살고 있어서 그런지, 박사님이 짚어주신 작가의 서사가 남 일 같지 않아 깊이 공감되었습니다. 중국 이민자였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삶, 그리고 거대한 권력 구조로 다가왔을 새로운 나라에서 느꼈을 불안과 차별이 작품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는 것 같아 마음이 짠했습니다.
<여름의 규칙>에 등장하는 갖가지 금기어와 지시 사항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강요받는 메세지 들인 것 같아요.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이 강요하는 방식이 아니라 우리가 진정으로 지켜야 할 규칙과 계명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붙들며 살아야겠다는 깨달음을 줍니다.
작가의 다른 작품 <매미>에서 비정한 체제 속에서도 자기 본연의 모습을 찾아 날아오르는 자유함, 깊은 절망 속에서 피어나는 <빨간 나무>의 희망은 그나마 부조리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은총과 소망을 발견하게 한다고 재해석해 봅니다.
박사님이 우려하신 대로 숀 탠의 작품은 아이들의 연령대에 맞게 잘 나누어 보여주는 지혜가 꼭 필요할 것 같습니다. 작품 속 가치관을 읽어내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성찰을 이끌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저 역시 이민자로 살고 있어서 그런지, 박사님이 짚어주신 작가의 서사가 남 일 같지 않아 깊이 공감되었습니다. 중국 이민자였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삶, 그리고 거대한 권력 구조로 다가왔을 새로운 나라에서 느꼈을 불안과 차별이 작품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는 것 같아 마음이 짠했습니다.
<여름의 규칙>에 등장하는 갖가지 금기어와 지시 사항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강요받는 메세지 들인 것 같아요.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이 강요하는 방식이 아니라 우리가 진정으로 지켜야 할 규칙과 계명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붙들며 살아야겠다는 깨달음을 줍니다.
작가의 다른 작품 <매미>에서 비정한 체제 속에서도 자기 본연의 모습을 찾아 날아오르는 자유함, 깊은 절망 속에서 피어나는 <빨간 나무>의 희망은 그나마 부조리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은총과 소망을 발견하게 한다고 재해석해 봅니다.
박사님이 우려하신 대로 숀 탠의 작품은 아이들의 연령대에 맞게 잘 나누어 보여주는 지혜가 꼭 필요할 것 같습니다. 작품 속 가치관을 읽어내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성찰을 이끌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하순2026-04-28 01:46
이번 글을 읽으며 솔직히 놀랍고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그동안 초현실주의를 단순히 상상력과 무의식의 표현, 독특한 예술 양식 정도로 생각해 왔는데, 그 배후에 프로이트와 마르크스의 사상, 혁명과 전복의 이념, 공산주의적 세계관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특히 이러한 사상과 미학이 어린이 그림책 속에까지 스며들 수 있다는 점에서 깊은 경각심을 갖게 되었다.
무엇보다 예술이 순수한 아름다움과 진리의 추구가 아니라 기존 질서를 뒤집고 하나님이 세우신 가치와 권위를 해체하려는 ‘전복’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이 두렵게 느껴졌다. 초현실주의가 꿈과 무의식이라는 이름 아래 비이성과 혼돈을 미화하고, 공포와 왜곡, 영지주의적 요소까지 품고 있다는 설명은 단순한 예술 사조로 보기 어렵게 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신데, 이런 사조가 혼돈과 반역을 미학으로 포장하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 우려를 금할 수 없었다.
특히 어린이들에게 읽히는 그림책 속에 이러한 세계관이 은밀하게 담길 수 있다는 사실은 분노마저 느끼게 했다. 순수한 아이들의 상상력과 감수성을 길러 준다는 이름으로, 하나님 없는 인간 중심의 사상과 반기독교적 이념을 스며들게 하는 작가들과 문화 흐름에 대해 비판적으로 보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현실을 부정하고 전복을 선동하는 상상이 아니라, 진리와 선함, 창조 질서를 아름답게 보여 주는 이야기라고 믿는다.
이번 글을 통해 나는 그림책을 더 분별하며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모든 예술은 가치중립적이지 않으며 세계관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특별히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아름답고 독창적인 표현이라는 이유만으로 작품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어떤 인간관과 세계관이 숨어 있는지 분별해야 한다. 이번 읽기는 내게 초현실주의에 대한 새로운 흥미가 아니라, 오히려 영적 분별의 필요성과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읽힐 것인가에 대한 책임감을 더 깊이 일깨워 준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예술이 순수한 아름다움과 진리의 추구가 아니라 기존 질서를 뒤집고 하나님이 세우신 가치와 권위를 해체하려는 ‘전복’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이 두렵게 느껴졌다. 초현실주의가 꿈과 무의식이라는 이름 아래 비이성과 혼돈을 미화하고, 공포와 왜곡, 영지주의적 요소까지 품고 있다는 설명은 단순한 예술 사조로 보기 어렵게 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신데, 이런 사조가 혼돈과 반역을 미학으로 포장하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 우려를 금할 수 없었다.
특히 어린이들에게 읽히는 그림책 속에 이러한 세계관이 은밀하게 담길 수 있다는 사실은 분노마저 느끼게 했다. 순수한 아이들의 상상력과 감수성을 길러 준다는 이름으로, 하나님 없는 인간 중심의 사상과 반기독교적 이념을 스며들게 하는 작가들과 문화 흐름에 대해 비판적으로 보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현실을 부정하고 전복을 선동하는 상상이 아니라, 진리와 선함, 창조 질서를 아름답게 보여 주는 이야기라고 믿는다.
이번 글을 통해 나는 그림책을 더 분별하며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모든 예술은 가치중립적이지 않으며 세계관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특별히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아름답고 독창적인 표현이라는 이유만으로 작품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어떤 인간관과 세계관이 숨어 있는지 분별해야 한다. 이번 읽기는 내게 초현실주의에 대한 새로운 흥미가 아니라, 오히려 영적 분별의 필요성과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읽힐 것인가에 대한 책임감을 더 깊이 일깨워 준 시간이었다.
정예리2026-04-28 08:03
동생을 밧줄로 묶고 검은새에게 팔아버리는 형의 모습에 그 분노와 폭력은 어디에서 배웠을까 싶었다. 자유주의 호주에서 컸지만 호주가 인종차별이 심한 나라라고 하는데 그런 영향도 있었을까? 그림책임에도 불구하고 독자인 유아들이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기에 11세 이상 어린이가 읽는 것이 적합하다는 것에 어린 아동들이 이 책을 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난해하면서도 섬뜩하고 상징으로 가득한 그림책이 그림이 있는 덕에 그림책이라 하지만 소설에 가까운 것 같다. 그리고 그 내용이 무슨 내용인지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 토끼가 등장하는 점, 그리고 마지막 장면의 두 소년이 잠에서 깨어 꿈이었나 하는 장면에서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오마주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고 그만큼 NWO의 사상이 묻어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경남2026-04-28 09:18
초현실주의가 프로이트와 마르크스의 결합이라니, 날마다 교수님들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됩니다.
그림책 속 마지막 문장 "절대 규칙을 어기지 마. 특히 그 규칙을 이해하지 못하면 더욱" 을 보면서,
이해도 못한 채 따르고 있다는 것이 이미 지배 구조 안에 있다는 뜻임을 알게되었네요.
어린이책에 이런 문장이 심어져 있다는 사실이 무척 걱정스럽고 무섭기까지 합니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오히려 더 날것으로 이미지를 받아들이며 별다른 해석 없이 그대로 스며드는데
이런 그림을 통하여 아이들의 마음속에 희망이 먼저 자리할지, 아니면 불안이 먼저 뿌리 내릴지 걱정이 됩니다.
이처럼 아이들을 비롯한 우리 모두의 생각과 마음을 지켜내는 일이 참으로 어려운 현실 속에 살고 있음을 다시금 느낍니다.
그림책 속 마지막 문장 "절대 규칙을 어기지 마. 특히 그 규칙을 이해하지 못하면 더욱" 을 보면서,
이해도 못한 채 따르고 있다는 것이 이미 지배 구조 안에 있다는 뜻임을 알게되었네요.
어린이책에 이런 문장이 심어져 있다는 사실이 무척 걱정스럽고 무섭기까지 합니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오히려 더 날것으로 이미지를 받아들이며 별다른 해석 없이 그대로 스며드는데
이런 그림을 통하여 아이들의 마음속에 희망이 먼저 자리할지, 아니면 불안이 먼저 뿌리 내릴지 걱정이 됩니다.
이처럼 아이들을 비롯한 우리 모두의 생각과 마음을 지켜내는 일이 참으로 어려운 현실 속에 살고 있음을 다시금 느낍니다.
Joy2026-04-28 09:22
숀텐의 그림책들을 통하여 초현실주의를 이해하게 되었다.
프로이트와 마르크스의 결합으로 초자연적인 비이성 꿈의 세계를 표현하며
예술가들의 물질주의적 부르조아 사회에 대한 깊은 불신을 타파하고자 혁명적인 반예술을 펼치는 것,
예술에 이념을 담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역사의 전복을 꿈꾸는 초자연주의 신세계질서는 숀텐의 가족배경을 통해서 형성되었듯이
그림책이라는 창문을 통하여 세상을 여과없이 흡수하는 아이들에게
더욱 분별력있는 지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프로이트와 마르크스의 결합으로 초자연적인 비이성 꿈의 세계를 표현하며
예술가들의 물질주의적 부르조아 사회에 대한 깊은 불신을 타파하고자 혁명적인 반예술을 펼치는 것,
예술에 이념을 담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역사의 전복을 꿈꾸는 초자연주의 신세계질서는 숀텐의 가족배경을 통해서 형성되었듯이
그림책이라는 창문을 통하여 세상을 여과없이 흡수하는 아이들에게
더욱 분별력있는 지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이아름2026-05-24 08:24
표지에 그려진 눈동자 가면을 보고, 평소라면 무심히 지나치고 펼쳐보지 않았을 그림책인데, 초현실주의를 통해 그림책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처음 그림책을 봤을 때는, 그림이 조금 무섭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두 번째로 봤을 때는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걸까?를 생각하며 보았습니다.
제가 이해하기에는 조금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교수님의 그림책 비평을 본 후, 그림책 속에 정말 많은 의미들이 숨겨져 있구나를 새롭게 알게 되었고 정말 놀라웠습니다.
나아가서 그림책을 잘 분별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른인 제가 보면서도 정말 많은 궁금증을,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는 그림책인데, 아이들이 읽기에는 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림책은 모두가 읽을 수 있지만, 가장 첫 번째 독자층은 어린이인데, 과연 어린이에게 맞춰져 있는 그림책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상을 받은 그림책은 아이들도 “상받았어! 좋은 그림책이야!”라고 말을 하며 그림책을 보게 됩니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과 선생님의 가치관에 따라 ‘좋은’것을 선별 받아서 접하게 되지만, 언제까지고 아이들이 부모님과 선생님의 지도 아래 있을 수 없음을 느낍니다.
아이들도 좋은 것의 분명한 기준, 선한 것의 기준이 바로 서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고, 그 기준이 세상의 기준이 아닌 말씀을 기준으로 바로 설 수 있도록 어렸을 때부터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초현실주의는 아이들의 상상력을 확산시키며 좋은 영향을 발휘하기도 하겠지만, 초현실주의라는 이름아래 하나님의 진리와 질서를 무너뜨릴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더욱이 각각의 분야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분별하여 깨어있을 필요가 있고,
나 또한 내가 있는 교육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움과 질서를 지키는 분별력을 가지고 아이들을 바르게 인도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하게 됩니다.
처음 그림책을 봤을 때는, 그림이 조금 무섭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두 번째로 봤을 때는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걸까?를 생각하며 보았습니다.
제가 이해하기에는 조금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교수님의 그림책 비평을 본 후, 그림책 속에 정말 많은 의미들이 숨겨져 있구나를 새롭게 알게 되었고 정말 놀라웠습니다.
나아가서 그림책을 잘 분별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른인 제가 보면서도 정말 많은 궁금증을,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는 그림책인데, 아이들이 읽기에는 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림책은 모두가 읽을 수 있지만, 가장 첫 번째 독자층은 어린이인데, 과연 어린이에게 맞춰져 있는 그림책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상을 받은 그림책은 아이들도 “상받았어! 좋은 그림책이야!”라고 말을 하며 그림책을 보게 됩니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과 선생님의 가치관에 따라 ‘좋은’것을 선별 받아서 접하게 되지만, 언제까지고 아이들이 부모님과 선생님의 지도 아래 있을 수 없음을 느낍니다.
아이들도 좋은 것의 분명한 기준, 선한 것의 기준이 바로 서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고, 그 기준이 세상의 기준이 아닌 말씀을 기준으로 바로 설 수 있도록 어렸을 때부터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초현실주의는 아이들의 상상력을 확산시키며 좋은 영향을 발휘하기도 하겠지만, 초현실주의라는 이름아래 하나님의 진리와 질서를 무너뜨릴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더욱이 각각의 분야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분별하여 깨어있을 필요가 있고,
나 또한 내가 있는 교육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움과 질서를 지키는 분별력을 가지고 아이들을 바르게 인도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하게 됩니다.
김신영2026-05-24 22:22
<여름의 규칙>을 처음 접했을 때 책에 대한 감동 보다는 기괴하고 무의미하고 삭막하고 난해함을 느꼈었다. 그런데 교수님의 글을 읽고 난 후 그림책을 톺아 보니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단순히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을 떠나 작가가 1년을 공들여 그린 그림 속에 숨어 있는 작가의 사상을 작품 세계에서 발견하고 나니 왠지 씁쓸함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예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지만 교수님의 글을 통해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이 부르주아 사회에 대한 깊은 불신을 타파하고자 혁명적인 반(反)예술을 펼치며 프로이트와 아나키스트와 다다이스트의 영향을 받아 기독교 신앙의 진리를 전하는 많은 가치에 허상을 씌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마디로 프로이트와 마르크스의 결합적인 측면에서 새로운 세계질서(NWO)를 꿈꾸며 자유주의 체제에서 전복을 그림으로 표현하였다고 한다. 또한 공산당 선언 그림을 추구했다는 배경 지식을 가지고 그림책을 들여다보니 그림책에 나타나는 그림 한 장 한 장마다 시대적 사상과 작가가 의도했던 부분에 대한 서사와 사회적 맥락이 눈에 들어왔다. 이러한 숀탠의 책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무의식적인 투사와 상징적 회화들을 해석하며 나만의 방식으로 그림책을 자유롭게 톺아 보았는데 아주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전체주의의 지령인 ‘절대 ~ 하지 말 것’ 이라는 디스토피아 배경으로 권력자의 공포를 물씬 느끼며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의 작품 세계는 생각보다 가볍지 않게 다가 왔다. 작가의 유년 시절을 회상하며 그린 책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어둡고 마지막 뒷장 까지도 아이들에게 복종을 강조하는 명령은 협박조로 들려 왔으며 소름이 돋을 만큼 무섭고 공포가 가득했다. 태양의 화가 고흐가 자살 전에 그린 그림과 비슷한 그림을 보며 찬송가 589장의 첫 구절이 생각이 났다. ‘넓은 들에 익은 곡식 황금 물결 뒤치며 어디든지 태양빛에 향기 진동하도다.’ 그리고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들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마3:12)’하신 성경말씀이 떠올랐다. 모든 사람들을 옭아매려 하고 통제하며 이상하고 이해가 되지 않는 규칙들을 만들고 지켜야 하며 재배와 착취를 당해야만 하는 새로운 세계질서 앞에서 나 역시 미성숙자로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하은혜2026-09-12 19:59
[여름의 규칙]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지난 현은자 교수님의 수업을 통해 키워드로 남았던 '환대'에 대해 다시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세상에 태어나 환대를 누리고 샬롬을 배우며 살아가야 할 텐데 이런 그림책을 통해 세상에 대한 공포와 억압과 두려움 또는 분노를 배울까봐 덜컥 겁이 납니다. 왜 절대 하지 말아야하는지 설명이 없는 와중에 보여지는 그림은 아이들에게 공포심을 심겨줄 뿐인 것 같습니다.
동생이 형에게 싸움을 붙였다가 어딘가에 팔려버리는 내용도, 만에 하나 그것이 어떤 체제나 상황으로부터 동생을 보호하기 위한 형의 방법이었을지 몰라도 그 내용과 그림을 본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11세부터 적합하다고 하는데, 모든 장면마다 11세가 넘는 아이에게도 보여주기 싫어지는 폭력적인 내용으로 다가옵니다.
결국엔 형이 동생을 다시 찾으러 가고, 집으로 가는 방법을 아는 형 덕분에 다시 (까마귀로부터) 안전한 집으로 갈 수 있게 된 동생은, 그 여름을 지나 형이 그동안 말해준 규칙들이 이해되지 못하더라도 어기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된 것 같은데.. 단순히 룰(규칙)에 대해 배우는 과정이라고 이해하기에는 그 속에 담긴 내용들이 너무 심오하고 기괴하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꺼림칙한 기분이 남겨진 채 교수님의 글을 보니, 그 안에 담긴 세계관이 비진리의 것이기 때문이었구나- 더 깊이 알게 되고 이해가 되었습니다.
전공수업 때 정말 기분 나쁘고 꺼림칙했지만 예술적이라고 인정받던 작가의 작품에 대해 조사해야 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새롭고 파격적인 행보라고 박수 쳐주는데 저는 사실 알고 싶지 않았었죠. 하나님의 것으로부터 멀어진 것이 박수 받고 인정받는, 그것이 새로운 시선과 시대를 여는 것처럼 평가되는 것이 참 안타까운 것 같습니다. 초현실주의 또한 단순히 비현실 세계를 표현하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로만 생각해왔는데, 그 안에 담겨진 뜻과 세계관에 대해서는 더 깊이 알지 못했었다는 것을.. 이 글을 통해 깨닫게 되어 감사합니다.
더불어, 요즘 우리나라에도 전시안으로 만들어지는 로고, 컨텐츠, 구조물 등이 많이 보이는데.. 이제라도 이것을 구별해볼 수 있는 눈을 주심에 감사하고, 더욱 진리 수호를 위해 기도해야겠습니다.
동생이 형에게 싸움을 붙였다가 어딘가에 팔려버리는 내용도, 만에 하나 그것이 어떤 체제나 상황으로부터 동생을 보호하기 위한 형의 방법이었을지 몰라도 그 내용과 그림을 본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11세부터 적합하다고 하는데, 모든 장면마다 11세가 넘는 아이에게도 보여주기 싫어지는 폭력적인 내용으로 다가옵니다.
결국엔 형이 동생을 다시 찾으러 가고, 집으로 가는 방법을 아는 형 덕분에 다시 (까마귀로부터) 안전한 집으로 갈 수 있게 된 동생은, 그 여름을 지나 형이 그동안 말해준 규칙들이 이해되지 못하더라도 어기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된 것 같은데.. 단순히 룰(규칙)에 대해 배우는 과정이라고 이해하기에는 그 속에 담긴 내용들이 너무 심오하고 기괴하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꺼림칙한 기분이 남겨진 채 교수님의 글을 보니, 그 안에 담긴 세계관이 비진리의 것이기 때문이었구나- 더 깊이 알게 되고 이해가 되었습니다.
전공수업 때 정말 기분 나쁘고 꺼림칙했지만 예술적이라고 인정받던 작가의 작품에 대해 조사해야 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새롭고 파격적인 행보라고 박수 쳐주는데 저는 사실 알고 싶지 않았었죠. 하나님의 것으로부터 멀어진 것이 박수 받고 인정받는, 그것이 새로운 시선과 시대를 여는 것처럼 평가되는 것이 참 안타까운 것 같습니다. 초현실주의 또한 단순히 비현실 세계를 표현하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로만 생각해왔는데, 그 안에 담겨진 뜻과 세계관에 대해서는 더 깊이 알지 못했었다는 것을.. 이 글을 통해 깨닫게 되어 감사합니다.
더불어, 요즘 우리나라에도 전시안으로 만들어지는 로고, 컨텐츠, 구조물 등이 많이 보이는데.. 이제라도 이것을 구별해볼 수 있는 눈을 주심에 감사하고, 더욱 진리 수호를 위해 기도해야겠습니다.
이수형2026-09-12 21:04
현은자 교수님 수업은 언제들어도 다시들어도 너무 좋아요. ^^ 은혜선생님 글은 제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알고 있어서.. 같은 마음을 갖는다는 것에 무한한 감동이 있네요. 동지애랄까?.!
김윤경2026-09-16 10:59
그림책은 단순히 이야기를 읽는 매체가 아니라 아동이 그림책의 글과 그림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고 이해하며 배워가고,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상상하는 매체라고 알고 있습니다. 실제 연구에서도 어린 아동은 성인보다 그림에 먼저 주의를 기울이는 경향이 있으며, 그림은 어린 아동의 이야기 이해를 돕는 중요한 정보원이라고 합니다. 그렇기에 숀 탠의 「여름의 규칙」을 읽으며 현실과 상상의 모호한 경계, 기이하고 낯선 이미지와 서사가 아이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혼란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더욱이 교수님 글에서 아동 문학이 새로운 세계 질서(NWO)의 비전을 담기 위해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를 사용한다는 관점의 접근과 분석을 보니 이러한 세계관을 담은 그림책이 아이들의 생각과 가치관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염려되는 마음이 생깁니다.
숀 탠이 자신의 가족적 배경과 호주에서 경험한 문화적 환경 등으로부터 여러 영향을 받아 작품을 만들어왔다면, 작가가 자신이 살아온 세계를 작품에 담아내는 것처럼 그림책 역시 독자에게 하나의 세계를 보여주는 매체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이 충분한 분별이나 성인의 도움 없이 접하는 그림책이 이후 그들의 생각과 삶에 미칠 영향 또한 가볍게 여길 수 없습니다.
아동이 그림책을 통해 세상을 보고 창조 세계를 이해한다면, 양육자는 그 책이 보여주는 세계가 무엇인지, 인간을 어ᄄᅠᆫ 존재로 바라보는지, 무엇을 선하고 바람직한 것으로 제시하는 지를 살펴야 할 책무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점에서 그림책의 아름다움이나 문학적 가치, 작가의 명성 만을 기준으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세계관을 잘 분별해야 함을 다시 한 번 새겨봅니다.
숀 탠이 자신의 가족적 배경과 호주에서 경험한 문화적 환경 등으로부터 여러 영향을 받아 작품을 만들어왔다면, 작가가 자신이 살아온 세계를 작품에 담아내는 것처럼 그림책 역시 독자에게 하나의 세계를 보여주는 매체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이 충분한 분별이나 성인의 도움 없이 접하는 그림책이 이후 그들의 생각과 삶에 미칠 영향 또한 가볍게 여길 수 없습니다.
아동이 그림책을 통해 세상을 보고 창조 세계를 이해한다면, 양육자는 그 책이 보여주는 세계가 무엇인지, 인간을 어ᄄᅠᆫ 존재로 바라보는지, 무엇을 선하고 바람직한 것으로 제시하는 지를 살펴야 할 책무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점에서 그림책의 아름다움이나 문학적 가치, 작가의 명성 만을 기준으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세계관을 잘 분별해야 함을 다시 한 번 새겨봅니다.
이수형2026-09-16 14:55
자녀와 어린이를 위한 마음이 느껴는 글입니다. 깊은 생각의 사유는 그림책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와 세상 문화에 대한 분별이 싹트게 되는것 같아요. ^^
김지윤2026-09-16 13:08
숀 탠의 그림책 『여름의 규칙』을 초현실주의 미술사와 사상적 배경에 접목하여 다각도로 분석한 점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단순히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림책으로만 여겼던 작품 속에 숨겨진 기호학적 상징과 사상적 메시지를 새로이 포착할 수 있었습니다. 화려하고 뛰어난 시각 예술 뒤에 담긴 세계관과 맥락을 분별력 있게 읽어내는 비판적 안목이 왜 필요한지 다시금 깨닫게 해준 인상 깊은 글이었습니다~
MO L2026-09-16 22:53
이해하기 어려운 그림책, 그래서 필요한가?
초현실주의는 참으로 읽기 어렵다. 문학에서든 회화에서든 눈앞에 펼쳐진 장면을 현실의 논리로 이해하려고 하면 자꾸만 막힌다. 무엇을 의미하는지 해석하기도 쉽지 않고, 때로는 섬뜩하고 기괴하기까지 하다. 그래서인지 나는 초현실주의 작품을 일부러 찾아보는 편은 아니다.
숀 탠의 『여름의 규칙』도 그렇다. 책에는 두 아이가 등장하고, “~하지 말 것”이라는 짧은 규칙들이 반복된다. 그러나 그 규칙들이 왜 필요한지,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친절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그래서 책을 읽고 난 후 기분이 좋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다르게 생각하면 독자로 하여금 생각의 여지를 많이 주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과도할 때 오는 피로감은 독자로 하여금 손을 놓게 하기도 한다.
이 책의 구조는 한쪽에는 문장이 놓이고 다른 한쪽에는 현실에서는 만날 수 없는 기괴한 존재와 장면들이 펼쳐진다. 거대한 생명체가 나타나기도 하고, 수많은 검은 새들이 아이들을 둘러싸기도 하며, 거대한 회오리와 어두운 공간이 등장하기도 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자꾸 묻게 된다.
“그래서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 "이런 그림책이 아이들에게 꼭 필요할까?"
좋은 그림책이 많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도 많고, 아이들이 쉽게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그림책도 많다. 그런데 굳이 아이들에게 기괴하고 불안한 세계를 보여주어야 할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특히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통해 무의식적 공포와 불안을 마주하게 하고, 그것을 지나 다시 일상의 평온으로 돌아오게 한다는 해석을 접하더라도 나는 여전히 “그 경험이 정말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내려놓기 어렵다.
성인독자에게는 “나는 왜 이 그림이 불편하지?” “왜 이 장면이 무섭지?” “나는 왜 자꾸 의미를 찾으려고 하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하고 유아동 독자에게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과 낯선 세계를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는지의 연령과 발달수준을 고려하고 성인과 이야기 나누며 읽을 것을 권하고 싶다.
아마 이 그림책이, 이 작가가 유명한 것은 쉽게 해석의 문을 열어주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초현실주의는 참으로 읽기 어렵다. 문학에서든 회화에서든 눈앞에 펼쳐진 장면을 현실의 논리로 이해하려고 하면 자꾸만 막힌다. 무엇을 의미하는지 해석하기도 쉽지 않고, 때로는 섬뜩하고 기괴하기까지 하다. 그래서인지 나는 초현실주의 작품을 일부러 찾아보는 편은 아니다.
숀 탠의 『여름의 규칙』도 그렇다. 책에는 두 아이가 등장하고, “~하지 말 것”이라는 짧은 규칙들이 반복된다. 그러나 그 규칙들이 왜 필요한지,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친절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그래서 책을 읽고 난 후 기분이 좋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다르게 생각하면 독자로 하여금 생각의 여지를 많이 주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과도할 때 오는 피로감은 독자로 하여금 손을 놓게 하기도 한다.
이 책의 구조는 한쪽에는 문장이 놓이고 다른 한쪽에는 현실에서는 만날 수 없는 기괴한 존재와 장면들이 펼쳐진다. 거대한 생명체가 나타나기도 하고, 수많은 검은 새들이 아이들을 둘러싸기도 하며, 거대한 회오리와 어두운 공간이 등장하기도 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자꾸 묻게 된다.
“그래서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 "이런 그림책이 아이들에게 꼭 필요할까?"
좋은 그림책이 많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도 많고, 아이들이 쉽게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그림책도 많다. 그런데 굳이 아이들에게 기괴하고 불안한 세계를 보여주어야 할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특히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통해 무의식적 공포와 불안을 마주하게 하고, 그것을 지나 다시 일상의 평온으로 돌아오게 한다는 해석을 접하더라도 나는 여전히 “그 경험이 정말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내려놓기 어렵다.
성인독자에게는 “나는 왜 이 그림이 불편하지?” “왜 이 장면이 무섭지?” “나는 왜 자꾸 의미를 찾으려고 하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하고 유아동 독자에게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과 낯선 세계를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는지의 연령과 발달수준을 고려하고 성인과 이야기 나누며 읽을 것을 권하고 싶다.
아마 이 그림책이, 이 작가가 유명한 것은 쉽게 해석의 문을 열어주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수형2026-09-16 22:59
어려운데.. 또 잘 그리거든요. 고흐의 까마귀가 있는 밀밭을 연상하게하는 멋진 유화 붓칠의 색감과.. 기괴함의 스토리가 유혹하기에.. 이민옥 선생님의 혜안처럼. 쉽게 해석이 안되는 것도 한 몫하고요..^^
초현실주의 그림 숀탠의 신세계질서
숀탠(Shaun Tan, 1974-)의 그림책은 어린이가 읽기에 다소 어려운 글과 그림을 지녔음에도 다수의 연구물과 학업 매체로 선호되고 있다. 이민자의 삶을 촘촘히 묘사한 그래픽 노블의 『도착 (Arrival)』이나 어두운 도시에 희망을 찾는 『빨간나무 (Red Tree)』는 비교적 선명한 주제를 보인다. 『도착』이 출판된 2008년의 시기는 다수의 나라가 단일 민족의 정체성이 뚜렷하였고, 세계화(globalization)가 장려되는 초기로 다문화가 등장하던 시기였다. 그림책은 면지에서부터 세계의 여러 민족에 속하는 60인의 얼굴이 증명사진처럼 모여있다. 『빨간나무』는 어두운 배경과 눈물 흘리는 큰 괴물이 전체 지면을 차지하고, 억눌린 어린 소녀와 사람들 모습이 어린이 도서로서 적합한가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다만 심리학으로 그림책을 활용하는 부류는 소녀의 방에서 자라난 빨간나무 한그루가 희망을 상징한다는 긍정적 해석을 하였다. 더 난해한 그림책은 『잃어버린 것 (The Lost Thing)』이다. 철 구조물이 가득한 곳에서 살아가는 작은 인간들, 철과 생물이 결합 된 움직이는 존재는 생물인지 괴물인지조차 구분이 안 된다. 속 표제지에서 설명하기를 그림책은 통상 유아가 보지만 다양함을 담고자 이 책이 만들어졌고 ‘초등학생용’이라고 한다. 이 책은 2000년에 출판되었으며 당시 그림책은 유아의 전유물이었다. 숀탠은 초현실주의(surrealism) 그림을 시도하여 유아용 그림책 영역을 붕괴하기 시작한 작가 중 하나였다.
1. 초현실주의
초현실주의는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 1896-1966)이 1924년 『초현실주의 선언』을 출간하고, <초현실주의 중앙연구소>를 개설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초현실주의란 “순수한 심령의 자동주의를 통한, 구두(口頭) 또는 쓰기 아니면 진정한 사고활동에 의한 표현을 목적으로 한다. 아무런 이성의 통제가 없는 가운데, 그리고 모든 미적 또는 도덕적 선입견에서 벗어나 사고를 구술한다.”라고 미술사학자 카트린 클링죄어 르루아(Cathrin Kingsöhr-Leroy)는 설명한다.(1) 쉽게 설명하면 초현실주의는 초자연적인 비이성 꿈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며, 예술가들의 물질주의적 부르주아 사회에 대한 깊은 불신을 타파하고자 혁명적인 반(反)예술을 펼치는 것이다. 꿈의 세계는 프로이트에 영향을 받았으며, 혁명적인 반예술은 아나키스트의 다다이스트들의 영향을 받았다. 초현실주의자들은 1925년 혁명 투쟁에 참여하기 위해 공산당에 가입한다.(2) 그러나 브르통은 1930년 『초현실주의 제 2선언』을 출간하고 공산당의 지령을 수행하기보다 작품활동으로 저항을 이룬다. 초현실주의 운동은 문학가와 미술가들이 함께 했으며, 작품을 통해 초현실주의 언어와 화풍을 확대했다.
초현실주의는 프로이트와 마르크스의 결합으로 볼 수 있다.(3) 따라서 모든 기성의 미학적, 도덕적 기준을 타파하고 현실의 한계를 넘어선 상상력의 자유를 가지며, 그 이론은 자동기술, 꿈의 해석, 내면 탐구, 언어의 유희 등 실험적 탐구와 예술의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인식하고 타파하는 것을 목표로 진정한 예술을 혁명적인 사회 활동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초현실주의는 예술에 이념을 담았다고 볼 수 있다. 비평가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역시 마르크스가 염원하는 역사(진리)의 전복을 위한 구제비평(Rettende Kritik)을 하였다. 이 개념은 자본주의 현대에서 파괴될 이성의 ‘파국’과 작품을 분석하고 해석함을 넘어 잠재적 의미를 찾아 ‘구원’하는 비평행위를 의미한다.(4) 벤야민은 대표적인 초현실주의 화가 파울 클레(Paul Klee)의 <새로운 천사 (Angelus Novus, 1920)>를 다음과 같이 비평했다.
"그림의 천사는 자기가 줄곧 보던 것들로부터 떠나려는 것 같다. 눈을 크게 뜨고 있고, 입은 벌어져 있으며, 날개는 펼쳐져 있다. 역사의 천사도 이런 모습일 것이다. 그의 얼굴은 과거를 향하고 있다. 그는 온갖 난파된 잔해를 쌓아 올리며, 그의 발 앞에 내던져진 대참사를 목격한다. 천사는 거기 머물며 죽은 자들을 깨우고 파괴된 것들을 복구하고 싶다. 폭풍으로 날개를 접지도 못한 채, 그저 미래를 향해 날아가면서 쌓이는 과거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우리가 진보라고 일컫는 것은 바로 이런 폭풍을 두고 하는 말이다.”(5)
파울 클레 (Paul Klee) <새로운 천사 (Angelus Novus, 1920)>
벤야민의 대중과 기술 발전에 대한 해방적 관심은 사회질서를 혁명적으로 이루어야 한다는 정치적 관점과 서로 맞물려 있다. 초현실주의 작품 속 천사는 현실에서 맞이하는 ‘파국’으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날개 달린 역사 속의 천사가 아니다. 불안에 떨며 날개를 퍼덕이는 그림 속 천사는 현대의 불안, 새로운 미래, 파국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현대인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벤야민이 바라본 ‘구원’은 폭풍처럼 모든 것을 휩쓸고 지나가 새로움을 설립하는 미래의 진보라는 것이다. 즉, 초현실주의 그림의 불안정은 막스의 혁명과 같으며, 기독교 신앙의 진리(Truth)를 전하는 많은 가치에 허상을 씌운다.
초현실주의 화풍은 독특하고 새로운 기법을 시도한다.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아 ‘자유연상’기법에 기초한 글쓰기와 드로잉이 사용되었고, ‘자동기술법’으로 누구의 간섭없이 빠르게 말로 쏟아낸 독백을 사용하기도 한다. 초현실주의 회화 기법은 비규정의 성격을 가진다. 막스 에른스트(Max Ernst)는 제멋대로 결합하여 극적인 효과를 자아내는 콜라쥬를 사용해 비이성을 일상생활로 표현한다. 또는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놀이로 울퉁불퉁한 오브제에 종이나 천을 대고 연필이나 마른 붓으로 문질러 오브제의 결을 드러내는 프로타쥬를 사용하여 예기치 못한 효과를 자아냈다. 다른 초현실주의자들은 더 나아가 여성 조각상을 빈 방 천장에 매달거나, 파괴적인 작품을 통해 살상용 전쟁을 떠올린다. 비현실성과 영지주의까지 담고 있으며, 생물과 무생물의 조합으로 하이브리드를 구현하여 완전히 변형되는 생물체를 담고 있다.(6) 무생물에 대한 신비주의는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나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에서 나타났으며 초현실주의자들은 고의적으로 현실을 외면하는 그림을 그렸다. 악몽과 살인, 공포영화로 이어지는 카니발 또한 초현실주의 안에 자리했다. 특히 눈동자(전시안)에 집중하여 공포와 혜안의 상징으로 복종을 요구한다. 그 중심에는 ‘전복’, 부르주아 가치체계에 아이러니한 의문을 불러일으키는 활동으로 사회정치적 영향을 미치는 의도가 있다. 이것은 두 형식을 보이는데, 하나는 ‘도덕성’ 차원에 작동하는 정도이고, 다른 하나는 혁명의 길, 마르크스주의로 단호히 나가는 것이다.
2. 『여름의 규칙』 숀탠 (2013)
숀탠의 『여름의 규칙』은 2014년에만 CBCA(호주 어린이책위원회) 그림책 부문 ‘올해의 책’, 보스톤 글로브-혼 도서상, 호주 북 디자인 어워드 ‘베스트 디자인 그림책’ 상을 수상했다. 출판사는 명확한 주제의식과 교훈적인 메시지와 거리가 먼 작품이라고 소개하고 있으며, 두 등장인물의 ‘관계’ 그 자체를 주목하도록 구성되었다고 설명한다. 기괴한 여러 이미지가 가득 들어있으며 아이들은 그 그림을 통해 상상하고 의미를 만들 수 있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Arts Centre Melbourne에서 실시한 인터뷰 ‘Shaun Tan: Author Talk’(2019)(7)에서 연령 권장을 정신 건강 관련 주제를 다루기에 11세 이상에게 적합하다고 권고한다. 그와 그의 그림책이 어린이에게 적합할지 궁금해진다. 그림책의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자.
표지와 면지
표지의 그림은 익숙한 매체를 사용했다. 우리에게 친근한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연상시키는 유화의 질감을 느낄 수 있다. 그림은 가을 누런 풀밭을 표현하고 있으나 낯선 인물들이 보인다. 붉은색 철의 질감으로 만들어진 반원을 어린아이가 마치 헬멧처럼 얼굴에 뒤집어쓰고 있다. 무거운지 두 손으로 받치고 있는데, 반원 안에는 인간의 눈동자 하나가 가득 들어있다. 눈동자 하나의 이미지는 호루스의 눈이라 하여 ‘전시안’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호루스는 이집트의 파라오와 왕권을 수호하는 상징이며, 태양신이라 한다. 숀텐의 그림책에는 전시안이 자주 등장한다. 그 뒤로 냉소적으로 아이를 바라보는 소년이 있다. 소년의 옆에 파란색 철로 만들어진 공룡 또는 새를 닮은 구조물(로봇)이 두발로 걸어가듯 한다. 파란색은 하나의 동체인데, 붉은색은 눈알 든 얼굴만 멀쩡하고 다른 부품들이 제각각 널부러져 있다.
면지는 소년이 총알 모양의 비행기에 올라타 날아가고, 땅 위에 아이가 가방을 들고 소년을 부르듯 뛰어가고 있다.
본문
1장은 무채색의 도시 풍경이 가득하다. 시멘트 작은 건물들이 좌우 일렬로 나란히 지어져 있으며 가운데 차도는 텅 비었고, 소년과 아이가 서서 대화를 나눈다. 메마른 도시와 짙은 회색 건물, 나무와 풀 한 포기 없는 길에는 전기줄이 길게 이어진 전봇대만 있다. 소년도 아이도 높은 태양빛에 검게만 보인다. 형으로 보이는 소년이 아이를 향해 다리를 구부리고 한 손을 들어 속삭이고 있다. 마치 비밀 작전을 짜는 것 같다.
2장은 누런지면에 낙서가 조금있고 글은 “내가 지난여름 배운게 있어”라고 씌여있다.
3장은 “절대 빨간 양말 한 짝을 빨랫줄에 남겨 두지 말 것”이라는 글이 오른쪽에 있고, 왼편에 낡은 철로 된 집의 마당이 보인다. 마당에는 벽에 웅크리고 꼭 끌어안은 소년과 아이의 그림이 작게 있고, 얇은 벽 너머에 붉은 토끼가 거대하게 그려져 차도를 지나가고 있다. 눈도 털도 온통 붉은 색을 가진 토끼이다. 마당에는 빨랫줄이 있고 빨간 양말 한 짝이 걸려 있다.
4장에는 글이 먼저 보인다. “절대 마지막 남은 올리브를 먹지 말 것.” 왼편의 그림에는 검은 슈트를 차려입은 두 아이와 역시 검은 슈트를 차려입은 커다란 부엉이 또는 올빼미를 담은 새의 무리가 아이들을 둘러싸고 있다. 아이가 손을 뻗어 빈 접시들 사이에 하나 남은 올리브를 잡으려 하고, 소년이 그 아이를 잡아끌며 안된다고 소리치는 것 같다. 부엉이나 올빼미는 모두 Owl로 미네르바 신 또는 그리스 아테나의 신으로 여기며 기독교와 다른 종교적 의미가 있다.(8) 그러한 연유로 부엉이들은 모두가 한쪽 눈만을 커다랗게 보이는 전시안 무리로 그려져 있다. 저 멀리 불타는 배경은 두개의 기둥들이 보이고 그 가운데 동그란 형태는 문 또는 제단 같다.
서사의 전개는 개연성이 없으면서도 두 등장인물이 중심에 있기에 단편적인 이야기가 줄지어 하나의 이야기를 전달할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만든다. 이어지는 이야기 역시 글은 “절대 ~~ 하지말 것”을 지시하고, 그림 속 아이는 지시를 지키지 못하고, 소년이 아이를 지켜준다.
5장부터 15장의 글은 다음과 같다.
‘절대 병을 떨어뜨리지 말 것’
‘절대 밤새 뒷문을 열어 두지 말 것’
‘절대 달팽이를 밟지 말 것.’
‘절대 퍼레이드에 늦지 말 것’
‘절대 완벽한 계획을 망치지 말 것’
‘절대 심판에게 대들지 말 것’
‘절대 모르는 사람에게 열쇠를 주지 말 것’
‘절대 비밀번호를 잊지 말 것’
‘절대 까닭을 묻지 말 것’
‘절대 싸움에 지지 말 것’
‘절대 미안하다 말하기를 기다리지 말 것’
13장까지는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고 개별 상황의 그림이었다. 답답하든, 실수가 많든 적든 소년은 아이가 멀리 떨어지지 않도록 도왔다. 그런데. 13장의 ‘절대 까닭을 묻지 말 것’이라는 그림에서 소년과 아이는 주먹다짐을 하면서 싸운다. 둘을 둘러싼 주변에는 지금껏 나온 기괴한 등장인물들이 둘의 싸움을 쳐다보고 있다.
14장은 아이가 줄에 묶여 소년에게 끌려왔다. 검은 새는 왕관을 소년에게 건네고 뒤에는 불을 내뿜는 네모난 통이 마치 레일 위에서 어디론가 가는 듯 보인다. 숀탠의 홈페이지(9)는 이 장면이 핵심적인 이야기로, 형의 형편과 마음이 약해진 순간에 동생을 수상한 상인(검은새)에게 팔아넘기는 것이라 설명한다. 숀탠이 수년간 스케치북에 써온 이야기라고 한다. 숀탠은 실제로 남동생이 하나 있다. 이후 15장에서 아이는 검은 통 안에 갇혀 어디론가 떠나가고, 통 밖에는 자물쇠가 굳게 닫혀있다. 아이가 있는 내부는 불타는 듯 보이지만, 아이가 타는 것이 아닌 그 안의 열기로 보인다. 주변에는 검은 새무리들이 함께 날아간다. 숀탠은 아마도 둘이 현실이 아닌 검은새가 주도하는 세상 뒤편에 있을 것이라 설명한다.
16장. 17장. 18장 모두 글이 없이 검은 통이 도심을 가로질러 듬성 듬성 공장지대를 지나 어둠속으로 들어가며 이윽고 아무것도 없는 지대를 지난다. 통을 따르는 많은 새들의 무리가 보인다. 19장의 글은 ‘언제나 금속 절단기를 갖고 다닐 것’이라하며, 처음으로 ‘절대 ~ 하지 말 것’이라는 부정적인 언급이 아닌 문장이다. 그림은 검은 통안에 아이가 보이고 멀리 검은 새들이 날아다니는 와중에 자전거를 탄 소년이 절단기를 높이 들고 아이를 따라 잡는다.
19장에는 ‘언제나 집에 가는 길을 알아 둘 것’이라 씌여있고, 두 소년은 자전거를 타고 철구조물의 잔해들, 공군 비행기와 폭탄, 공룡닮은 뼈, 뽀죡한 설치물 들이 널부러진 곳을 지나간다. 20장 ‘절대 여름의 마지막 날을 놓치지 말 것’이란 글과, 높은 사다리 끝에 올라선 소년과 아이가 오르기를 돕고 있다. 21장은 이전과 달리 화려한 과일과 케잌, 꽃들이 르네상스 시대 유화로 그린 정물화같이 그려져 있다. 마치 축제를 벌이듯 작은 아이는 나팔을 소년은 북을 치며 행진한다. 그러나 이들은 거대한 음식과 달리 개미만큼 작다. 22장은 모든 여행이 끝난 듯 ‘이게 다야’하고 씌여 있다. 마치 텔레비전을 보았던 듯 소파에 둘이 앉아 가운데 놓인 볼에 간식을 먹는다. 아이는 영화 한 편이 끝났는지 리모컨을 들고 채널을 돌린다. 23장은 마지막 장면이다. 황량한 눈 쌓인 벌판에 떨어진 황금 왕관이 있고, 그 것을 바라보는 검은새가 눈에 띄인다. 검은새는 왕관과 아이를 바꾼 거래를 배신한 소년에게 분노하는 소리를 내는 듯 입을 벌리고 있다.
뒷표지에는 “절대 규칙을 어기지 마. 특히 그 규칙을 이해하지 못하면 더욱.”이라고 써있다.
숀탠 홈페이지에는 『여름의 규칙』의 여러 장면을 상세히 소개한다. 글에 대한 해석도 간간히 있지만, 마지막 장면에 대한 설명은 없다. 규칙(rules)에 대한 개념은 질서를 유지하는 허용된 행동규범을 의미하여, 규칙을 설정하는 것은 권력자의 질서(order)이다. 즉, 숀탠의 마지막 문장은 영문으로 ‘Never break the rules. Especially if you don’t understand them.’이다. 쉽게 말하면 규칙을 이해하지 못하면 어기지 말라는 것으로 권력 구조의 역설을 정확히 지적하는 문장이다. 겉으론 복종의 언어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권력의 질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는 불안을 내포한다. 즉 ‘이해하지 못한 규칙(rules)’은 곧 ‘보이지 않는 질서(order)’를 의미하는 것이다. 질서의 틀은 구조 – 체계로서 정치, 철학, 우주론에서 언급되는 상위 개념이다.
숀텐 그림책은 복잡하고 어려운 그림들, 예를 들면 빨간 토끼와 퍼레이드 같은 여러 단편을 해석하느라 애쓰기보다는 소년과 아이가 그렇게 세상을 즐기고 살아가다 닥치는 어려움 앞에 전개되는 그림들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숀탠도 이 부분이 중요하다고 언급했었다. 등장한 두 아이는 어리기 때문에 세상에 대하여 미숙하고 규칙을 지키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그림책에서 “절대 ~ 하지 말 것”이라고 반복해 금기가 나오는 중에 둘은 싸우고, 강자(소년)는 약자(아이)를 감시자(검은새)에게 팔아넘긴다. 규칙(rules)이 어려운 자는 조직의 구조적 틀(order)을 이해하지 못하고, 권력의 희생양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행히 소년은 아이를 구출하지만, 그림책은 세계(정치)의 구조적 틀과 그에 속한 규범을 잘 모르는 불안감을 다루었다. 앞선 여러 복잡한 그림들이 그러한 심리를 내포한다고 볼 수 있다.
아동 문학은 새로운 세계 질서(New World Order)의 비전을 담기 위해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를 사용 한다.(10) 아동용에서 암울한 내용은 문학적 흥미를 끌기 위해 디스토피아를 다룬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20세기 초부터 정치인들은 ‘새로운 세계 질서(NWO)’라는 용어를 사용해 희망을 주고자 했다. 그러나 현실은 종교와 인종, 정치적 갈등과 그것을 넘어서는 세계화 진전이 미래를 불안으로 이끌었다. AI와 함께 인간과 결합 된 기계의 하이브리드 등장, 난민과 이민자들의 대륙 이주는 새로운 시대를 이끌고, 중국의 시장 개방은 공산주의가 자유주의 체제의 시장경제를 형성할 것이란 예측 등으로 빠르게 세상은 변화되어 왔다. 그러나 현재 중국은 자유시장 경제체제에서 국력은 성장했지만 그 정치체계는 변함이 없다. 중국은 공산당 일당체제에서 일대일로(一帶一路)를 내세워 육상과 해상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인프라 무역 경로를 구축해 경제적,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숀텐의 할아버지는 중국인으로 말레이시아로 이주한 뒤 숀탠의 아버지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결혼하여 정착한 후 두 아들을 기른다. 첫째가 숀탠이며, 『여름의 규칙』의 두 아이는 자신의 어릴적 이야기라고 한다. 숀탠은 『도착』의 해설집 『이름 없는 나라에서 온 스케치』에서 에른트스의 초현실주의 화풍을 좋아해 따라 하였다고 한다. 초현실주의 화가들이 자유주의 체제에서 전복적 그림 표현을 선언하며 막스의 공산당 선언 추종자들의 그림을 추구한다고 한 것과 숀텐의 정체성은 연결이 되는 것도 같다. 물론 그의 할아버지가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활동하는 사람인지는 알 수 없다. 그 당시에 말레이시아로 일거리를 찾아 나오는 중국인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의 본국에 대한 정체성을 찾고자 이민자 문제를 그렸던 『도착』이나, 전체주의 지령과도 같은 대사 “절대 ~ 하지 말 것”이 16번이나 나오며 디스토피아 배경을 그려내는 것은 작가의 조국(祖國)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자유민주주의 호주에서 태어나 살면서 거대한 자신의 나라에 대한 의식 또는 무의식의 호기심, 또는 탐구가 자신의 작품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추측해 본다. 숀탠의 그림책 『여름의 규칙』은 중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세계 질서(NWO)의 규칙을 내포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정치적인 도서가 어린이가 보아도 좋을지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1) Leroy, K. C. (2008) 초현실주의 [Surrealism] (김영선 역) 마로니에북스 (2004)
(2) Breton, A. (2011) 초현실주의 선언 [Man Ray, Waking Dream Séance] (황현산 역) 미메시스(1924)
(3) 오생근 (2025) 초현실주의와 문학의 혁명. 문학과지성사.
(4) Benjamin, W. (2024)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폭력비판을 위하여. 초현실주의 외. [Über den Begriff der Geschichte. Zur Kritik der Gewalt. Der Sürrealismus] (최성만 역) 도서출판 길 (1972-86)
(5) 중앙일보 (2015) 권근영의 오늘 미술관 https://www.joongang.co.kr/article/17750452
(6) Leroy, K. C. (2008) 같은 책.
(7) Arts Centre Melbourne (2019) Shaun Tan: Author Talk https://www.artscentremelbourne.com.au/community/content-hub/digital-hub/watch/shaun-tan-author-talk
(8) Owl of Athena https://en.wikipedia.org/wiki/Owl_of_Athena
(9) SHAUN TAN – books – RULES OF SUMMER https://www.shauntan.net/summer-book
(10) Bradford. C., Mallan. K., Stephens. J., & McCallum. R., (2008) New World Orders In Contemporary Children’s Literature – Utopian Transformations. Palgrave Macmillan.
이수형 | 안산대학교. 경민대학교 겸임교수
그림책과 미술로 자신을 돌아보는 예술치유전문센터에서 센터장을 지냈고,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 박사 학위가 있습니다. 어린이를 위한 환경에서 그림책과 예술의 역할을 학문적으로 탐구하고자 세계관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현재, 안산대학교 언어치료아동보육과, 경민대학교 아동심리보육과에서 겸임교수로 강의하고 있습니다. 저서는 [아동과 우리사회] (2016), [Art Psychology : 직장인 마음을 읽다] (2019), [신앙이 자라는 그림책 읽기] (2024)이 있으며, 현재 '그림책세계관연구소' 이사이며, '한국기독교유아교육학회' 이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