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의 그림읽기
어린이 그림책과 키덜트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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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효진2026-02-12 11:32
문학이나 예술의 많은 부분들이 그렇듯 그림책 역시 문화의 흐름을 반영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림책에 나타나는 그림과 글의 특성에 근거하여 문화의 흐름을 진단하고 그림책이 가져야 할 교육적 목적을 회복하는 것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글을 통해 그 가능성을 확인하는 것 같습니다. PAT Design Framework를 통해 체계적으로 글과 그림을 분석하는 방식 또한 매력적입니다.
또한 흥미로웠던 것은 그림책 작가 또한 자신의 그림책을 즐기는 독자의 입장으로서 그림책을 창작한다는 것입니다. 요즘 들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이 교육의 목적을 가진 그림책으로가 아닌 작가 자신의 개인적 서사의 표현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그림책이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생각을 뒷받침해주는 근거가 되는 것 같습니다.
또한 흥미로웠던 것은 그림책 작가 또한 자신의 그림책을 즐기는 독자의 입장으로서 그림책을 창작한다는 것입니다. 요즘 들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이 교육의 목적을 가진 그림책으로가 아닌 작가 자신의 개인적 서사의 표현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그림책이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생각을 뒷받침해주는 근거가 되는 것 같습니다.
이영진2026-02-12 12:27
그림책을 해석함에 있어 그림책을 보며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이나 느낌을 의지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PAT Design Framework는 체계적으로 그림책을 해석할 수 있는 좋은 도구라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방법을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승린2026-02-12 13:00
지난 주 우연히 도서관에서 ‘벽’과 ‘별과 나’를 보고나서 ‘의미를 담으려 했으나 별거 없네’하는 결론을 내린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 글을 읽으니 이도 저도 아닌 중간에 서서 어쩔 수 없이 이 시대의 영향 받은 사람이구나 싶어 PAT design framework이 더 귱굼해 집니다. 어렵기도 하고, 각각 이해하는 것과 적용의 문제는 다른것 같아 선생님 서평울 여러번 읽게되네요.
이런 애매한 그림책을 보게되는 아이들, 그리고 그들이 자라는 지금의 환경이 그들이 자란 다음의 작가둘에게 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가 가장 먼저 우려로 떠올랐습니다.
이런 애매한 그림책을 보게되는 아이들, 그리고 그들이 자라는 지금의 환경이 그들이 자란 다음의 작가둘에게 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가 가장 먼저 우려로 떠올랐습니다.
이아름2026-06-15 03:09
그림책을 볼 때, 그림읽기가 아직 익숙치 않은데, PAT Design Framework라는 방법이 있다는게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그림책들을 천천히, 보면서 교수님께서 분석하신 것을 보아야겠습니다.)
옛날에 그림책 전시회를 갔을 때, 정진호작가님의 벽, 별과 나 전시를 봤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공간적인 면에서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 볼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좋으나
아이들에게 읽어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번뜩 들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요즘에는 정말 어른들만을 위한 그림책들이 많이 있음을 느낍니다.
어른/아이 딱 구분할 수 없이 그림책들은 아이들이 언제나 쉽게 접하게 되기에
그림책을 분별하여 아이들에게 제공해주는 것이 더 중요하게 느껴집니다.
어린이의 그림으로 표현한 것들이 어린이들을 위함이 아니라
자기 만족, 즐거움을 담은 키덜트문화와 관련이 있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이미 어른이 된 입장에서 결코 순수할 수 없다 것은 생각치 못했던 것인데,
작가의 입장에서 자신이 살아온 문화,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을 담아내게 되기 때문에
그럴 수 있겠구나라고 공감이 되며 와닿았습니다
그래서 더 그림책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어렵구나를 느낄 수 있었고,
정말이지 그림책의 첫번째 독자는 '어린이'어야 한다는 것을 한 번 더 마음에 새기며
어린이들이 읽어야 할 그림책들이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림책들을 천천히, 보면서 교수님께서 분석하신 것을 보아야겠습니다.)
옛날에 그림책 전시회를 갔을 때, 정진호작가님의 벽, 별과 나 전시를 봤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공간적인 면에서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 볼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좋으나
아이들에게 읽어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번뜩 들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요즘에는 정말 어른들만을 위한 그림책들이 많이 있음을 느낍니다.
어른/아이 딱 구분할 수 없이 그림책들은 아이들이 언제나 쉽게 접하게 되기에
그림책을 분별하여 아이들에게 제공해주는 것이 더 중요하게 느껴집니다.
어린이의 그림으로 표현한 것들이 어린이들을 위함이 아니라
자기 만족, 즐거움을 담은 키덜트문화와 관련이 있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이미 어른이 된 입장에서 결코 순수할 수 없다 것은 생각치 못했던 것인데,
작가의 입장에서 자신이 살아온 문화,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을 담아내게 되기 때문에
그럴 수 있겠구나라고 공감이 되며 와닿았습니다
그래서 더 그림책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어렵구나를 느낄 수 있었고,
정말이지 그림책의 첫번째 독자는 '어린이'어야 한다는 것을 한 번 더 마음에 새기며
어린이들이 읽어야 할 그림책들이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수형2026-06-15 10:44
저도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이 많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작가나 교사, 사서, 부모는 모든 그림책이 어린이에게 더 많이 노출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1차로 생각해야 합니다. 어린이 도서관에서 그림책을 필수로 두고있고. 특히 영유아 중심의 책으로 비치한다는 것은 불변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나라는 그림책에 성인과 아동, 영유아 구분 표시와 제도가 없이, 즉 구분없이 사고 팔고 비치하고 있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입니다.
김선옥2026-06-15 23:09
키덜트라고 했을때 딱 떠오르는 것은 어른을 위한 장난감 이미지였는데 평론을 읽으면서 키덜트라는 단어 또한 그 안에 감추어져 있는 것이 결코 아름답지 못 함을 알게 되었다.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이 결코 '순수'하지 못 하다는 문장을 읽으면서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전에 아이와 한 문고 도서를 읽는데 주인공 아이가 나는 커서 내가 원하는(어린이를 위한) 약을 만들거야 라고 말했을 때 다른 주인공은 그땐 너도 이미 어른이야 라고 했던 대목이 떠올랐다. 아이였을 때 꿈꾸던 것을 성인이 됐을 때 우리는 얼마나 그 순수했던 마음을 지니고 있을까?
그림책은 막연히 영유아를 위한 것이야라는 생각속에 아이를 위한 것이 많은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 하다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 일일까?
그림책이 하나의 문화로서 영위될 때 미치는 영향력은 크다. 그렇기 때문에 그림책에 담겨지는 글과 그림은 세상의 담론을 따라가기 보다 아이를 위한 아름다움이 지켜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이 결코 '순수'하지 못 하다는 문장을 읽으면서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전에 아이와 한 문고 도서를 읽는데 주인공 아이가 나는 커서 내가 원하는(어린이를 위한) 약을 만들거야 라고 말했을 때 다른 주인공은 그땐 너도 이미 어른이야 라고 했던 대목이 떠올랐다. 아이였을 때 꿈꾸던 것을 성인이 됐을 때 우리는 얼마나 그 순수했던 마음을 지니고 있을까?
그림책은 막연히 영유아를 위한 것이야라는 생각속에 아이를 위한 것이 많은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 하다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 일일까?
그림책이 하나의 문화로서 영위될 때 미치는 영향력은 크다. 그렇기 때문에 그림책에 담겨지는 글과 그림은 세상의 담론을 따라가기 보다 아이를 위한 아름다움이 지켜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전보람2026-06-16 00:45
간단한 만화적인 그림이 단순히 귀엽게 보이려고 혹은 어린아이같은 순수함을 강조하는것이라 생각했는데 그 깊은 곳에 의존과 수동성이 숨어있다는것을 알게되니 정말 놀랍고 세계관이란 숨어있는 부분까지 찾아낼수 있을때 진정으로 파악되는것임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키덜트 문화’ 라고 하면 뭔가 힙한(?) 느낌인데 문화적 유아화 현상이라 하면 굉장히 잘못된 것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단순히 언어에 가려서 본질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 많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우리 주변에 숨겨진 세계관들이 우리 모르게 스며들고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고 있을거 같아 정말로 주의하고 나의 말과 행동의 세계관을 돌아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흔히 아이없이 사는 부부를 말하는 딩크족들의 유투브나 생활상을 본 적이 있는데 그때 느꼈던 특징적인 부분이 굉장히 자기 자신에게 투자하고 자신의 취미활동이나 일에 몰두한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없기때문에 당연한 것일수도 있겠지만 자신에게만 오로지 몰입되는것이 과연 스스로에게도 좋은것인가 의문을 가졌었습니다. 이제는 다 커서 노화되 가는 육체를 가지고 정신은 순수한(?) 어린아이로 남아 사는것을 영화나 미디어에서는 종종 아름답게 표현할 때가 있는것 같습니다. 교수님 글을 읽으니 그것은 오히려 미성숙하고 의지적이고 수동적인 모습을 감추거나 합리화 하기 위한 장치 혹은 쇄뇌 아닐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그다지 아름답게 느껴지지도 않네요.
지금의 저는 예전과 많이 달라졌습니다. 꼭 모든게 다 좋아졌다고는 할수 없지만 다양한 일과 사람들을 접하며, 시행착오를 통해, 아이를 키우며 예전보다는 성숙한 부분이 많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예전보다 성숙된 제가 좋고 감사합니다. 자신의 미성숙함을 아름다움으로 꾸미기 보다는 성숙해감에 감사하는 그런 삶이 아름다운 삶인것 같습니다. 그런 그림책을 보고싶네요.
‘키덜트 문화’ 라고 하면 뭔가 힙한(?) 느낌인데 문화적 유아화 현상이라 하면 굉장히 잘못된 것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단순히 언어에 가려서 본질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 많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우리 주변에 숨겨진 세계관들이 우리 모르게 스며들고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고 있을거 같아 정말로 주의하고 나의 말과 행동의 세계관을 돌아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흔히 아이없이 사는 부부를 말하는 딩크족들의 유투브나 생활상을 본 적이 있는데 그때 느꼈던 특징적인 부분이 굉장히 자기 자신에게 투자하고 자신의 취미활동이나 일에 몰두한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없기때문에 당연한 것일수도 있겠지만 자신에게만 오로지 몰입되는것이 과연 스스로에게도 좋은것인가 의문을 가졌었습니다. 이제는 다 커서 노화되 가는 육체를 가지고 정신은 순수한(?) 어린아이로 남아 사는것을 영화나 미디어에서는 종종 아름답게 표현할 때가 있는것 같습니다. 교수님 글을 읽으니 그것은 오히려 미성숙하고 의지적이고 수동적인 모습을 감추거나 합리화 하기 위한 장치 혹은 쇄뇌 아닐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그다지 아름답게 느껴지지도 않네요.
지금의 저는 예전과 많이 달라졌습니다. 꼭 모든게 다 좋아졌다고는 할수 없지만 다양한 일과 사람들을 접하며, 시행착오를 통해, 아이를 키우며 예전보다는 성숙한 부분이 많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예전보다 성숙된 제가 좋고 감사합니다. 자신의 미성숙함을 아름다움으로 꾸미기 보다는 성숙해감에 감사하는 그런 삶이 아름다운 삶인것 같습니다. 그런 그림책을 보고싶네요.
지민규2026-06-16 01:48
와... 평론을 읽으며 그림책 세계관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나를 인도하신 주님께 너무나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수님의 정진호 작가의 그림책 세계관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과 평가가 마치 저에 대해서 평가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정진호 작가가 그림책에 대한 오해는 '아이들이 읽는 책이다'가 아닌 '아이들도 읽는 책이다. 라고 했다는 데에 있어서
저도 무의식중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알게 되었습니다.
그림책에 대한 1차적 대상을 나의 유희, 또 혹은 같이 공감할 어른들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난 왜 진심으로 어린이를 위한 문화라고 생각하지 못했을까?
내 안에 어린이들을 진심으로 소중한 대상이고 미래라고 생각하지 못할 때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문득 한국에 오셨던 선교사님들이 생각났습니다.
왜 이런 타지에 오셔서 학교를 세우고 아이들을 교육시켰을까?
불쌍한 한국 백성들이, 아이들이 복음을 알고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였을텐데
저도 어느샌가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치고있고 또 그림책 관련일을 했었는데 정말 주님께서 나에게 허락해주셨던 영역이었을 수도 있었겠구나 싶습니다.
정말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다시 그림책 일을 하게 된다면
앞으로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주님께 충성하는 마음으로 1차적으로는 어린이들을 생각하며 해야겠구나. 다짐하게 됐습니다.
교수님의 정진호 작가의 그림책 세계관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과 평가가 마치 저에 대해서 평가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정진호 작가가 그림책에 대한 오해는 '아이들이 읽는 책이다'가 아닌 '아이들도 읽는 책이다. 라고 했다는 데에 있어서
저도 무의식중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알게 되었습니다.
그림책에 대한 1차적 대상을 나의 유희, 또 혹은 같이 공감할 어른들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난 왜 진심으로 어린이를 위한 문화라고 생각하지 못했을까?
내 안에 어린이들을 진심으로 소중한 대상이고 미래라고 생각하지 못할 때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문득 한국에 오셨던 선교사님들이 생각났습니다.
왜 이런 타지에 오셔서 학교를 세우고 아이들을 교육시켰을까?
불쌍한 한국 백성들이, 아이들이 복음을 알고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였을텐데
저도 어느샌가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치고있고 또 그림책 관련일을 했었는데 정말 주님께서 나에게 허락해주셨던 영역이었을 수도 있었겠구나 싶습니다.
정말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다시 그림책 일을 하게 된다면
앞으로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주님께 충성하는 마음으로 1차적으로는 어린이들을 생각하며 해야겠구나. 다짐하게 됐습니다.
김신영2026-06-16 09:13
정진호 작가님의 삼부작을 PAT이론에 의해 시각적분석과 문화적 특성 그리고 사회학적 의미를 심층적으로 분석하신 교수님의 그림 읽기는 한마디로 신선하고 새롭고 고급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먼저 키덜트 문화가 확산된 배경에 있어 기술발전과 외로움증가 성숙의 미성숙이라는 사회문제에서 발전하였고 낭만주의 시대에서 생겨나 아동기 예찬운동을 통한 유아화 현상은 문화적 전복의 자극제로 사용되고 있으며 결국 마지막이 전체주의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무적 놀라웠습니다. 회피와 퇴행이라는 부정적 의미를 지닌 키덜트 문화현상을 이해하며 정진호 작가의 개인적 행운 서사표현을 통해 마이클 잭슨의 네버랜드 스토리가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키덜트 문화 속에서 스스로에게도 키덜트 문화의 영향은 어느 정도 우리들의 삶에 침투해 있는지 점검해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성인의 열등감을 어린이의 심상과 감정을 이용하여 미성숙의 우월함에 현혹되지 말아야 하며 또한 가족을 돌보는 책임감을 가지고 성숙한 사회를 만드는 성인들의 문화 회복이 필요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문학과 예술의 만남을 통한 멋진 그림책 분석은 읽은 재미가 정말 솔솔했으며 피터팬 증후군에 대해 사회전반적으로 문제가 대두되었던 시대적 흐름을 이해하는데 더 없이 좋은 초석이 될거라 여겨집니다.
어린이 그림책과 키덜트 문화
한국에는 라가치상을 수상한 작가들이 다수 있다. 정진호 작가는 2015년 『위를 봐요』(2014)와 2018년에 『벽』(2016)이 이탈리에서 열리는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라가치상을 받았다. 『위를 봐요』는 ‘오페라 프리마(신인 부문) 우수상’을 『벽』은 ‘예술·건축·디자인 우수상’을 받았다. 그는 문학이나 그림이 아닌 건축학을 전공했지만, 자신만의 독창적인 그림형식을 구축했다.
첫 책인 『위를 봐요』에는 건축 조감도처럼 높은 시점에서 내려다본 사람들이 등장하며, 사고로 다리를 쓸 수 없게 된 소녀가 자신의 아파트에서 그들을 바라보다 우연히 친구를 사귀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벽』은 건물 벽을 최대한 입체적으로 그려내어 안과 밖을 오가는 어린 인물을 통해 타자와 자신을 인식하는 과정을 그렸다. 『위를 봐요』는 하나의 이야기 구조가 탄탄한 완결을 지닌 반면, 『벽』은 오가기를 반복하다 질문으로 끝맺는다. 정진호 작가는 2~3가지 색만 사용하고, 텅 빈 공간을 배경으로 하며 단순함을 기본으로 한다. 인물은 옷을 입지 않은 사람으로, 머리와 몸, 다리가 하나의 선으로 이어져 어린아이 그림과 유사하다.
옥스퍼드 사전은 ‘어린애 같은 취미를 가진 성인’을 ‘키덜트(Kidult)’라고 정의한다. 미성숙한 상태로 회귀하는 유아화(infantilised)는 문화로 크게 확장되고 있어, 이를 그림책과 연결해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 정진호의 그림책 『벽』, 『해 한 조각』, 『별과 나』의 그림읽기를 PAT 방법론으로 분석하고, 그 특징이 현대 문화에서 어떠한 함의를 갖는지 논의해 보고자 한다.
PAT Design Framework는 글과 그림이 결합된 복합양식의 문해력을 기르기 위해 사용되는 분석 방법론이다. 특히 그림읽기를 위해 원칙(Principle), 역동(Action), 도구(Tool)를 분석하는 Toit의 방법론이 그림책 분석에 적용된다.
먼저 원칙은 선택(selection), 조직(organization), 통합(integration)으로 구성된다. 선택은 독자가 주의 깊게 볼 그림과 그렇지 않아도 되는 배경을 구분하여 정보를 선택하는 것이다. 조직은 정보를 생성해 특정 그림에 시선을 집중시키고, 이를 계층화하여 다양한 수준으로 배열한다. 통합은 전체 그림에서 조직된 정보들이 결합 된 방식을 뜻한다. 결론적으로 원칙은 그림의 조직과 통합을 통해 선택된 의미를 읽어내는 정보패턴이며, ‘그림이 어떠한 원칙을 지녔다.’라고 정의할 수 있다.
역동은 대비(contrast), 정렬(alignment), 반복(repetition), 인접성(proximity) 등을 통해 한 그림 혹은 여러 그림 간 시선을 유도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는 것을 말한다. 이 네 가지 요소는 반드시 동시에 사용될 필요는 없다. 대비는 상반되는 이미지를 동시에 배치해 주의를 집중시킨다. 예를 들어 검은색과 흰색을 함께 사용하거나, 사각형과 점과 같은 도형으로 시각적 포인트를 준다. 정렬은 인식한 항목들을 그룹화하여 특정 방향으로 그림읽기를 유도한다. 반복은 시각 요소를 여러 번 사용해 조화와 통일성을 강조한다. 인접성은 시각 요소들을 가까이 혹은 멀리 배치해 연관성을 조절한다. 가까울수록 관련성이 높고, 멀어질수록 관련성이 낮아진다. 역동은 독자의 인식에 영향을 주며, 도구와 결합해 효과적으로 조작할 수 있다.
도구는 글자체(타이포그래피)와 글-그림의 상호작용에서 제공되는 시각적 정보로, 모양(shape), 색(colour), 깊이(depth), 공간(space)으로 구성된다. 타이포그래피는 유연한 곡선의 손글씨체로 귀여움(감정)과 소리침(의성어)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고, 각진 글자는 무겁고 딱딱한 인상을 준다. 모양은 형태에 사용된 도형으로, 그림을 작은 단위로 분해하거나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색은 디자인 도구로서 심리적 영향력이 크며, 21세기 색채 심리학에서는 색 스펙트럼이 따뜻한 빨강·주황·노랑에서 초록을 지나 차가운 파랑·보라로 이어진다고 본다. 색은 반복 사용된 관행에 따라 상징적인 의미가 문화적으로 내재된다 깊이는 전경, 원경을 구분하여 가까운 것은 크게, 먼 것은 작게 표현하며 차원과 질감을 형성한다. 공간은 글과 그림을 명확하게 드러내도록 도와주며, 특히 영유아 대상 그림책은 단색 배경을 활용해 그림이나 글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
결론적으로 PAT Design Framework의 세 요소인 원칙, 역동, 도구는 독립된 개념이 아니라 상호 연결되어 있다. 원칙은 동작과 구도에 의해 영향을 받으며, 이는 이미지의 계층 구조에 대한 이해와 그림읽기를 향상시킨다. 따라서 그림책을 해석할 때 원칙, 역동, 구도를 분석함으로써 글과 그림의 상호작용을 보다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다.
1. 정진호 그림책에 나타난 그림읽기
1) 원칙
정진호 삼부작의 공통된 원칙은 색의 대비를 통해 단편적인 이야기를 조직하고 이를 하나의 전체 서사로 통합한다는 점이다. 세 그림책 모두 배경이 한 가지 색으로만 이루어져 단순한 특징을 지닌다. 『벽』과 『해 한 조각』은 흰색 배경을, 『별과 나』는 검은색 배경을 사용하며, 여기에 대조적으로 한 두 가지 색만을 더해 시선을 집중시키는 원칙을 따른다.
『벽』에서는 노란색 벽을 지나면 반대편에 파란색 벽이 나타난다. 허공에 떠 있는 벽은 창, 문, 모서리, 동그렇게 휘어진 형태로 반복되며 서사가 전개되고, 안과 밖은 색의 대비를 통해 표현된다. 인물은 흰색 덩어리처럼 그려져 마치 다섯 살 유아가 그린듯하다. 짧은 팔과 다리를 뻗어 벽을 통과하는 아이는 결국 ‘변하는 것은 벽이 아니라 나일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에 이른다. 이는 변화하지 않음이 좋다는 존재론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해 한 조각』은 동그란 해가 산산이 부서져 떨어져 나온 삼각형의 조각들이 다양한 사물과 만나 변화를 일으키며 세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두운 큰 삼각형은 해 조각을 만나 전체가 노랗게 변하며 나무가 가득한 산이 되고, 검은 구름 위에 내려앉은 해 조각은 구름을 빛나는 노란색으로 변화시켜 무지개를 만든다. 해 조각은 생명과 희망, 삶의 상징으로서 어두운 동물, 인간, 마을을 밝고 희망차게 만든다. 검은색과 노란색의 대비는 죽음과 생명을 상징한다. 그러나 각 장면은 하나의 완결된 서사로 이어지지 않고 단편적으로 나열된다. 인물은 얼굴이 동그라미 하나, 몸은 연결된 선으로 그려진 네모로 표현되어, 마치 세 살 유아의 그림을 연상시킨다. 이 그림책은 해 한 조각을 정화 작용의 은유로 삼아 단순한 행운을 기대하게 하며, 인간의 노력보다는 해라는 신화적 존재가 운명을 결정짓는 모습을 보여준다.
『별과 나』에는 어두운 배경 속에 장면의 하단에 더 진한 검은색으로 길 위를 달리는 자전거와 사람이 그려져 있다. 사람은 하얀 눈만 보일 뿐 옷차림이나 성별조차 알 수 없다.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인물은 어린아이가 낙서하듯 하나의 덩어리로 표현되어 있다. 눈에 띄는 것은 먼지처럼 흩어진 하얀 별들이다. 미술치료 평가도구 중에는 별-파도 그림검사도구가 있다. 이 도구는 유아의 인지발달 평가도구이다. 『별과 나』에 등장하는 별은 찌그러진 동그라미 낙서같이 표현되어 2~3세 유아의 끼적이기와 유사하다.
글 없는 그림책은 독자가 서사를 스스로 읽어내야 하는 부담을 동반한다. 『별과 나』는 어두운 밤 자전거를 타는 한 인물이 구체적인 이야기를 엮지 않고, 우연히 나타난 별들이 주는 환희의 단편적 장면을 연속적으로 보여준다. 어둡게 그려진 사람이 갑작스러운 빛의 환대에 환희를 경험한다는 점에서, 이 책 역시 구체적인 서사보다는 노력 없이 찾아오는 행운을 강조한다. 밤에 자전거를 타는 장면은 아이들에게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경험이기에, 이 그림책은 힘든 여정을 겪는 어른에게도 행운을 기대하게 만든다.
종합하면, 정진호의 세 그림책은 서로 다른 색 대비의 원칙을 바탕으로 하며, 주로 ‘행운 서사’를 담고 있다. 특히 인물은 어린아이가 그린 듯 유약하고 미성숙하다. 그의 그림책은 색의 대비로 선택된 노란색에 집중하도록 시선을 조직하며, 궁극적으로는 신화적이고 운명적인 행운으로 의미가 통합된다.
2) 역동
그림책에서 역동은 대비, 정렬, 반복, 인접성이라는 네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정진호의 삼부작은 안과 밖, 검은색의 침체와 노란색의 생명, 어둠과 빛 같은 색의 대비를 통해 이야기를 구성한다. 이 대비는 구슬을 꿰듯 반복되고, 정렬되어 서사를 구성한다.
『벽』에서는 건축을 전공한 작가답게 벽을 입체적으로 표현하여 공간감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그림 속 흰 형체의 아이는 문을 통해 들어가고 나오며, 노란색과 파란색의 대비로 안과 밖을 보여준다. 아이는 얼굴을 내밀어 창 너머를 들여다보고 벽 사이를 오간다. 벽과 창, 문은 멀리 있는 것은 작게, 가까이 있는 것은 크게 그려져 대비가 강조되며, 밖으로 나가면 다시 그곳이 안이 되는 역동성을 담아낸다.
『해 한 조각』은 검은 세상 곳곳에 떨어지는 작은 해 조각의 역동을 보여준다. 세 번째 펼침면 “세상이 춥고 캄캄해졌어. 흩어진 해 조각은 어디로 갔을까?”라는 글은 해가 부서짐으로써 세상이 정체되고 부정적인 상태가 되었음을 나타낸다. 해 조각은 어두운 산, 구름, 동굴 속으로 들어가며 비록 작은 조각들이지만 큰 힘으로 세상을 깨우고, 새들의 보금자리가 되는 등의 변화를 일으킨다. 어둠을 밝히는 역동적인 노란 해 조각에 의존하여 삶이 변화하는 인간은 스스로 주체자가 되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이다.
『별과 나』는 어둠 속 사람과 빛나는 별들의 대비, 그리고 별들이 자전거 길을 밝혀주는 장면이 이어진다. 별빛과 사람은 가까워졌다 멀어지기를 반복하고, 결국 인물은 별과 함께하기를 원하며 라이트를 꺼 어둠을 선택한다. 이 그림책은 색의 대비로 다정한 별과 수동적인 인간이 반복되다가 마침내 인간은 별무리 속으로 흡수된다. 이 그림책 역시 개척자 인간이 아닌, 별빛에 이끌려 따라가는 수동적 존재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3) 도구
도구는 그림과 글 내용, 글자체의 상호작용에서 파생된 정보뿐만 아니라 모양, 색, 깊이, 공간을 모두 포함한다. 정진호의 그림책 세 권은 손글씨를 닮은 자유로운 형태의 글자체(타이포그래피)를 사용하고 있다. 특히 표지의 제목부터 독특하다. 『해 한 조각』의 제목 글자는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 마치 퍼즐퍼럼 보이며, 동그란 얼굴과 사각형 몸의 사람이 선으로 표현된 손을 뻗어 ‘해’의 조각을 맞춘다. 작가의 이름도 어린이가 쓴 듯한 타이포그래피로 쓰였고, ‘정진호’와 ‘그림책’ 사이에는 웃는 얼굴 이모티콘이 있다.
『벽』의 표지 제목은 두 벽이 만나는 모서리에 강한 투시도로 공간감을 주었다. 작가 이름 ‘정진호’도 그 흐름을 따라 썼다. 글자의 보조선과 각도에서 표지 디자인에 상당한 노력이 엿보인다. 『별과 나』의 글 없는 그림책으로 본문에 소리를 표현한 몇몇 글자가 손으로 직접 쓴 듯 역동적이다. 다른 두 책의 본문 글자체도 손글씨처럼 자유롭고 유연하다.
정진호 그림책의 핵심 색상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노란색이다. 색채심리 연구에서 학자들은 색의 전통적인 의미가 문화 속에서 집단무의식으로 작동한다고 본다. 서양에서 노란색은 해와 태양신과 같은 신화를 통해 부와 권력, 황금과 같은 번영의 상징으로 해석된다. 반면 한국에서는 노란색이 주로 유아기와 연결된다. 이는 유치원 단체복, 가방, 모자, 통학 차량에 노란색이 사용되어 어린이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잘 보이도록 하는 색’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노란 병아리에 비유되듯 노란색은 한국 문화에서 미성숙한 존재를 상징한다.
정진호 작가는 작품 속에서 핵심 사물을 노란색으로 강조한다. 예를 들어 본 연구 외에도 『위를 봐요!』(2014)의 한국어판은 흰색 표지였으나 영문판 『Look Up!』(2018)은 노란색 표지로 바뀌었다. 『바나나가 더 일찍 오려면』(2024)은 배경이 무채색인데 중심 소재인 바나나만 노란색으로 표현되어 시선을 고정시킨다. 『노란 장화』(2015)는 흰 배경과 검은 선의 단조로운 화면 속에 노란 장화만 색으로 채색되어 이야기를 이끈다. 『아빠와 나』(2019)에서는 흰 배경에 회색 그림으로 그려져 있으나 아빠의 창틀은 초록색이고, 아이의 창틀은 노란색으로 구분되어 상징성을 더한다. 그의 인생 에세이 『꿈의 근육』(2022) 표지에는 커다란 노란색 우주복을 입은 인물이 전면에 등장해 독특한 작가 자신을 은유한다.
결과적으로 PAT Design Framework로 분석한 정진호 그림책의 특징은 강한 두세 가지 색의 대비, 짧고 분절된 서사의 연속으로 전체 구성을 시도하는 원칙, 안과 밖이라는 큰 공간감과 함께 검은색의 침체와 노란색의 생명, 어둠과 빛의 정반대 대비로 구성된 역동성을 지닌다. 여기에 유아가 그린 듯한 인물과 자유로운 글자체, 유아기를 상징하는 색채를 도구로 활용한다.
이러한 특성은 부모에게 의존해야만 하는 유아기의 심정을 연상시키며, 타인을 의식하고 행운을 기대하며 빛나는 유혹의 환대 속으로 자신을 내맡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스스로의 사고나 독립적인 의지보다 의존과 수동성이 강조된다.
이러한 유아화 된 표현은 성인이 유아적 감정을 소비하며 자신을 드러내는 키덜트 문화의 특징과도 맞닿아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문화는 어린 시절의 자유로움과 도덕적 지침의 근원으로서 유년기를 숭배하도록 만든다. 이는 성인의 지적 성숙을 모호하게 하고 대신 유아기적 동경을 충족시키는 방식으로, 만화, 아동문학, 이모티콘, 캐릭터 소비 등 다양한 문화로 확장되어 쉽게 찾을 수 있다.
2. 정진호 그림책의 그림읽기로 본 문화적 특징
‘키덜트(Kidult)’는 기본적으로 아이(Kid)와 어른(Adult)이 결합한 말로, 어린시절의 문화와 놀이를 즐기는 성인을 뜻한다. 이 용어가 본격적으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TV 업계 경영진이 어린이용 프로그램을 즐겨 시청하는 성인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하면서 부터다. 키덜트 문화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다시 찾고자 하는 어른들의 열망을 반영하며, 오늘날 패션, 잡화, 엔터테인먼트, K-POP뿐만 아니라 한국 그림책에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키덜트 문화가 등장하고 확산된 배경은 크게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기술 발전, 둘째는 외로움의 증가, 셋째는 성숙의 미성숙이다. 기술 발전으로 인해 유아기 게임, 놀잇감, 엔터테인먼트 상품, 코스프레 같은 키덜트 상품에 누구나 온라인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성인 소비자의 새로운 요구에 맞춘 첨단 기술 기반의 장난감, 게임, 유아화 전략 상품이 이미 문화전반에 널리 퍼졌다. 결국 현대 사회의 디지털 문화는 인간의 뇌를 유아화하여 눈부신 자극에 반응하도록 훈련시킨다는 역할을 한다.
둘째는 인구 구조 변화로 혼자 살거나 결혼해도 자녀가 없는 가족이 늘어나면서 외로움이 증가하고, 이를 달래기 위해 어린 시절 놀이를 다시 즐기는 형태가 나타났다. 과거에 사라졌던 게임이나 물건을 복원해 판매할 때 소비자와 정서적 연결을 강화해 향수를 자극하는 상품들이 만들어지고, 이는 30~40대에게 큰 반응을 일으켜 전체 사회에 파급된다.
정진호 작가 역시 자신의 에세이의 대부분을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으로 채우고 있다. 정진호는 결혼했지만 자녀가 없으며, 자신의 그림책 작업은 가족 여부와 상관없이 어린 시절의 기억과 신념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밝힌다. 그는 에세이에서 어릴 적 타지 못했던 자기부상열차를 성인이 되어 타러 갔던 경험, 중학교 때 극장에 갔던 일, 고등학교 시절 뒷산에 올라갔던 사건 등을 회상하며, 늘 자신의 꿈인 그림책 작업과 연결한다. 또한 그는 어린 시절 누나와 만화를 보러 다니며 로맨스가 가득한 순정만화를 즐겼다고 회고한다. 이처럼 그의 생생한 어린 시절의 기억과 향수는 키덜트 문화를 만드는 원천이 되었고, 그의 그림책 창작으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셋째는 인간은 심리사회적으로 청소년기를 거치며 성격과 가치관이 성숙해 진다. 이 시기가 끝나면 부모로부터 독립적인 태도와 결정을 할 수 있는 성인으로 성장한다. 그러나 불안이나 회피 성향으로 인해 독립성이 충분히 형성되지 못한 성인을 교육학에서는 키덜트라고 본다.
‘성인(adult)’이라는 단어는 라틴어에서 유래된 ‘줄(row)’이라는 말에서 비롯되었으며, 이는 생리적, 심리적 성장을 의미한다. 즉, 성인은 부모로부터 ‘분리-개별화’를 이루고, 충동 조절과 책임감을 포함한 ‘심리적 성숙’을 달성한 존재로 간주된다. 그러나 이러한 성인의 특성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남성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된 개념이 바로 ‘피터팬 신드롬(PeterPan Syndreome)’이다. 피터팬 신드롬은 키덜트의 근원적 개념으로, 무책임하거나 나르시즘적 성향으로 인해 사회적, 직업적 어려움을 겪는 성인을 지칭한다. 이들은 흔히 ‘책임에서의 도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영원히 성장하지 않는 아이’로 묘사된다.
피터팬 신드롬과 유사한 개념으로는 캥거루족, 모라토리엄 인간, 마마보이, 트위스터족 등이 있다. 캥거루족은 20세기 말 프랑스에서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청년 실업자들로, 근로 의욕은 낮지만 소비 성향은 커서 부모에게 경제적 부담을 준다. 모라토리엄 인간은 고정된 직업이 없이 모든 사회적 관계를 일시적이라 여기며, 특정 가치관이나 책임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시도를 반복하면서도 사회적 책임을 회피한다. 마마보이는 유아기 불안정 애착으로 건전한 모자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어머니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들을 뜻한다. 트위스터족은 대학을 장기간 다닌 뒤에도 직장에 안정적으로 정착하지 못해 경제적 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부모에게 의존하는 불안정한 생활자를 말한다. 이처럼 사회 전반에 걸쳐 성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미성숙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들과 비슷하게 키덜트는 성인이 되어서도 아동의 감정과 분위기를 간직하며, 각박한 현대 사회에서 즐거움을 추구하고 인형 같은 귀여운 물건을 애호하며 어린이의 심상을 유지한다.
과거에는 피터팬을 마음에 품은 어른들이 이러한 감정을 드러내길 두려워했지만, 이제는 성인이 된 이후에도 이러한 감정이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19세기만 해도 성인기는 아동기와 명확히 구분되었다. 성인은 친절, 품위, 정직, 충성심, 정직, 자기 통제 등 도덕적 미덕을 실천하며 자신과 가족을 돌볼 수 있는 사람으로 여겨졌다. 이를 위해 성인은 생각과 행동을 스스로 통제하고, 감정과 충동을 억제할 줄 아는 지혜가 있었다. 성인의 가장 큰 책무는 돈을 버는 직업을 유지하고 평생 가족을 책임지는 것이었다. 성인기는 곧 삶의 중심이자 가장 중요한 시기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 이러한 ‘성인다움’은 점점 억압적인 것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19세기 이후 아동 권리에 대한 담론이 본격적으로 대두되면서, 어린 시절은 도전과 자유, 심지어 부주의까지도 허용되는 기쁨의 시기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어린이가 우월한 존재로 부각되고, 반면 어른은 노력해도 성공하기 어려운 나약한 존재로 그려지는 문학, 주장, 운동들이 등장하면서 문화적 흐름이 형성되었다. 이는 지혜나 우수성을 추구하던 고급문화에서 난잡함과 엉성함, 유희적 하류문화로 전복되는 자극제가 되었고, 그 대표적 예가 바로 키덜트 문화이며,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바로 문화의 유아화 현상이다.
유아화의 특징은 비판적 사고와 책임감 있는 시민의식의 발달을 억제하고,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을 강조하는 개인주의를 부추긴다. 이로 인해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하지 못한 채 돌봄과 책임을 회피하며 즉각적인 소비와 사적 이익을 추구하게 되고, 이는 오히려 전체주의적 시스템으로 향하는 길을 열게 된다. 유아화는 특히 소비, 오락, 돌봄, 청소년, 특권, 평생학습, 자기계발, 동기부여와 욕구 실현의 형태로 드러난. 다시 말해, 개인은 행복해야 할 ‘의무’를 갖지만 자기부정이나 자기희생은 포함시키지 않는다. 그 결과 책임에서 비롯되는 성취가 사라지고, 사람들은 공허한 신이 내려주는 행운을 기대하며 살아가게 된다. 이는 마치 유토피아적 낙원을 꿈꾸는 모습과 닮아 있으며, 그 끝이 전체주의로 이어질 수 있음을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문학, 특히 아동문학은 늘 성인의 시선으로 재구성된 아동기의 이미지를 담는다는 점에서 결코 ‘순수’할 수 없다. 그럼에도 아동문학을 꿈꾸는 작가에게는 잃어버린 어린 시절을 잠시나마 다시 경험할 수 있는 이중성이 있다. 이는 어린이가 스스로 표현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다시 만들어내는 어린 시절의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성인들이 유아기 그림체를 모방하여 자신의 욕망과 생각을 투영해 키덜트 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그림책 작가는 자신의 창작이 어린이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유희를 위한 것인지를 깊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의 첫 독자가 되어 즐기게 될 때,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결국 어린이다. 정진호 작가는 2019년 한국어린이문학교육학회 주제강연 『그림책과 놀이하기』에서 그림책에 대한 오해는 ‘아이들이 읽는 책이다’(35p)가 아닌 ‘아이들도 읽는 책이다’(35p)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 다소 도발적인 관점은 아이들의 놀잇감을 빼앗는 어른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어린이도서 창작자라면 ‘어린이를 위한 책’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유희보다 자신의 책을 읽어줄 어린이에 대한 고마움과 그들의 안녕에 더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이다. 이 세상에 어린이가 없다면 그림책이라는 매체의 존재 이유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본 글을 시작으로 사회적 의미 연구를 지속하여 학술지 어린이문학교육학회 제26권 제4호에 <키덜트 문화의 영향으로 유아화된 그림책의 사회학적 의미>로 발표하였습니다. 논문은 이 글의 끝에 다운로드 하실 수 있도록 올려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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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형 | 안산대학교. 경민대학교 겸임교수
그림책과 미술로 자신을 돌아보는 예술치유전문센터에서 센터장을 지냈고,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 박사 학위가 있습니다. 어린이를 위한 환경에서 그림책과 예술의 역할을 학문적으로 탐구하고자 세계관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현재, 안산대학교 언어치료아동보육과, 경민대학교 아동심리보육과에서 겸임교수로 강의하고 있습니다. 저서는 [아동과 우리사회] (2016), [Art Psychology : 직장인 마음을 읽다] (2019), [신앙이 자라는 그림책 읽기] (2024)이 있으며, 현재 '그림책세계관연구소' 이사이며, '한국기독교유아교육학회' 이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