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의 그림읽기


어린이 그림책과 키덜트 문화

2025-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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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그림책과 키덜트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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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라가치상을 수상한 작가들이 다수 있다. 정진호 작가는 2015년 『위를 봐요』(2014)와 2018년에 『벽』(2016)이 이탈리에서 열리는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라가치상을 받았다. 『위를 봐요』는 ‘오페라 프리마(신인 부문) 우수상’을 『벽』은 ‘예술·건축·디자인 우수상’을 받았다. 그는 문학이나 그림이 아닌 건축학을 전공했지만, 자신만의 독창적인 그림형식을 구축했다.

첫 책인 『위를 봐요』에는 건축 조감도처럼 높은 시점에서 내려다본 사람들이 등장하며, 사고로 다리를 쓸 수 없게 된 소녀가 자신의 아파트에서 그들을 바라보다 우연히 친구를 사귀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벽』은 건물 벽을 최대한 입체적으로 그려내어 안과 밖을 오가는 어린 인물을 통해 타자와 자신을 인식하는 과정을 그렸다. 『위를 봐요』는 하나의 이야기 구조가 탄탄한 완결을 지닌 반면, 『벽』은 오가기를 반복하다 질문으로 끝맺는다. 정진호 작가는 2~3가지 색만 사용하고, 텅 빈 공간을 배경으로 하며 단순함을 기본으로 한다. 인물은 옷을 입지 않은 사람으로, 머리와 몸, 다리가 하나의 선으로 이어져 어린아이 그림과 유사하다.

옥스퍼드 사전은 ‘어린애 같은 취미를 가진 성인’을 ‘키덜트(Kidult)’라고 정의한다. 미성숙한 상태로 회귀하는 유아화(infantilised)는 문화로 크게 확장되고 있어, 이를 그림책과 연결해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 정진호의 그림책 『벽』, 『해 한 조각』, 『별과 나』의 그림읽기를 PAT 방법론으로 분석하고, 그 특징이 현대 문화에서 어떠한 함의를 갖는지 논의해 보고자 한다.

 

PAT Design Framework는 글과 그림이 결합된 복합양식의 문해력을 기르기 위해 사용되는 분석 방법론이다. 특히 그림읽기를 위해 원칙(Principle), 역동(Action), 도구(Tool)를 분석하는 Toit의 방법론이 그림책 분석에 적용된다.

먼저 원칙은 선택(selection), 조직(organization), 통합(integration)으로 구성된다. 선택은 독자가 주의 깊게 볼 그림과 그렇지 않아도 되는 배경을 구분하여 정보를 선택하는 것이다. 조직은 정보를 생성해 특정 그림에 시선을 집중시키고, 이를 계층화하여 다양한 수준으로 배열한다. 통합은 전체 그림에서 조직된 정보들이 결합 된 방식을 뜻한다. 결론적으로 원칙은 그림의 조직과 통합을 통해 선택된 의미를 읽어내는 정보패턴이며, ‘그림이 어떠한 원칙을 지녔다.’라고 정의할 수 있다.

역동은 대비(contrast), 정렬(alignment), 반복(repetition), 인접성(proximity) 등을 통해 한 그림 혹은 여러 그림 간 시선을 유도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는 것을 말한다. 이 네 가지 요소는 반드시 동시에 사용될 필요는 없다. 대비는 상반되는 이미지를 동시에 배치해 주의를 집중시킨다. 예를 들어 검은색과 흰색을 함께 사용하거나, 사각형과 점과 같은 도형으로 시각적 포인트를 준다. 정렬은 인식한 항목들을 그룹화하여 특정 방향으로 그림읽기를 유도한다. 반복은 시각 요소를 여러 번 사용해 조화와 통일성을 강조한다. 인접성은 시각 요소들을 가까이 혹은 멀리 배치해 연관성을 조절한다. 가까울수록 관련성이 높고, 멀어질수록 관련성이 낮아진다. 역동은 독자의 인식에 영향을 주며, 도구와 결합해 효과적으로 조작할 수 있다.

도구는 글자체(타이포그래피)와 글-그림의 상호작용에서 제공되는 시각적 정보로, 모양(shape), 색(colour), 깊이(depth), 공간(space)으로 구성된다. 타이포그래피는 유연한 곡선의 손글씨체로 귀여움(감정)과 소리침(의성어)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고, 각진 글자는 무겁고 딱딱한 인상을 준다. 모양은 형태에 사용된 도형으로, 그림을 작은 단위로 분해하거나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색은 디자인 도구로서 심리적 영향력이 크며, 21세기 색채 심리학에서는 색 스펙트럼이 따뜻한 빨강·주황·노랑에서 초록을 지나 차가운 파랑·보라로 이어진다고 본다. 색은 반복 사용된 관행에 따라 상징적인 의미가 문화적으로 내재된다 깊이는 전경, 원경을 구분하여 가까운 것은 크게, 먼 것은 작게 표현하며 차원과 질감을 형성한다. 공간은 글과 그림을 명확하게 드러내도록 도와주며, 특히 영유아 대상 그림책은 단색 배경을 활용해 그림이나 글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

결론적으로 PAT Design Framework의 세 요소인 원칙, 역동, 도구는 독립된 개념이 아니라 상호 연결되어 있다. 원칙은 동작과 구도에 의해 영향을 받으며, 이는 이미지의 계층 구조에 대한 이해와 그림읽기를 향상시킨다. 따라서 그림책을 해석할 때 원칙, 역동, 구도를 분석함으로써 글과 그림의 상호작용을 보다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다.

 

 1. 정진호 그림책에 나타난 그림읽기

 

1) 원칙

정진호 삼부작의 공통된 원칙은 색의 대비를 통해 단편적인 이야기를 조직하고 이를 하나의 전체 서사로 통합한다는 점이다. 세 그림책 모두 배경이 한 가지 색으로만 이루어져 단순한 특징을 지닌다. 『벽』과 『해 한 조각』은 흰색 배경을, 『별과 나』는 검은색 배경을 사용하며, 여기에 대조적으로 한 두 가지 색만을 더해 시선을 집중시키는 원칙을 따른다.

『벽』에서는 노란색 벽을 지나면 반대편에 파란색 벽이 나타난다. 허공에 떠 있는 벽은 창, 문, 모서리, 동그렇게 휘어진 형태로 반복되며 서사가 전개되고, 안과 밖은 색의 대비를 통해 표현된다. 인물은 흰색 덩어리처럼 그려져 마치 다섯 살 유아가 그린듯하다. 짧은 팔과 다리를 뻗어 벽을 통과하는 아이는 결국 ‘변하는 것은 벽이 아니라 나일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에 이른다. 이는 변화하지 않음이 좋다는 존재론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해 한 조각』은 동그란 해가 산산이 부서져 떨어져 나온 삼각형의 조각들이 다양한 사물과 만나 변화를 일으키며 세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두운 큰 삼각형은 해 조각을 만나 전체가 노랗게 변하며 나무가 가득한 산이 되고, 검은 구름 위에 내려앉은 해 조각은 구름을 빛나는 노란색으로 변화시켜 무지개를 만든다. 해 조각은 생명과 희망, 삶의 상징으로서 어두운 동물, 인간, 마을을 밝고 희망차게 만든다. 검은색과 노란색의 대비는 죽음과 생명을 상징한다. 그러나 각 장면은 하나의 완결된 서사로 이어지지 않고 단편적으로 나열된다. 인물은 얼굴이 동그라미 하나, 몸은 연결된 선으로 그려진 네모로 표현되어, 마치 세 살 유아의 그림을 연상시킨다. 이 그림책은 해 한 조각을 정화 작용의 은유로 삼아 단순한 행운을 기대하게 하며, 인간의 노력보다는 해라는 신화적 존재가 운명을 결정짓는 모습을 보여준다.

『별과 나』에는 어두운 배경 속에 장면의 하단에 더 진한 검은색으로 길 위를 달리는 자전거와 사람이 그려져 있다. 사람은 하얀 눈만 보일 뿐 옷차림이나 성별조차 알 수 없다.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인물은 어린아이가 낙서하듯 하나의 덩어리로 표현되어 있다. 눈에 띄는 것은 먼지처럼 흩어진 하얀 별들이다. 미술치료 평가도구 중에는 별-파도 그림검사도구가 있다. 이 도구는 유아의 인지발달 평가도구이다. 『별과 나』에 등장하는 별은 찌그러진 동그라미 낙서같이 표현되어 2~3세 유아의 끼적이기와 유사하다.

글 없는 그림책은 독자가 서사를 스스로 읽어내야 하는 부담을 동반한다. 『별과 나』는 어두운 밤 자전거를 타는 한 인물이 구체적인 이야기를 엮지 않고, 우연히 나타난 별들이 주는 환희의 단편적 장면을 연속적으로 보여준다. 어둡게 그려진 사람이 갑작스러운 빛의 환대에 환희를 경험한다는 점에서, 이 책 역시 구체적인 서사보다는 노력 없이 찾아오는 행운을 강조한다. 밤에 자전거를 타는 장면은 아이들에게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경험이기에, 이 그림책은 힘든 여정을 겪는 어른에게도 행운을 기대하게 만든다.

종합하면, 정진호의 세 그림책은 서로 다른 색 대비의 원칙을 바탕으로 하며, 주로 ‘행운 서사’를 담고 있다. 특히 인물은 어린아이가 그린 듯 유약하고 미성숙하다. 그의 그림책은 색의 대비로 선택된 노란색에 집중하도록 시선을 조직하며, 궁극적으로는 신화적이고 운명적인 행운으로 의미가 통합된다.

 

2) 역동

그림책에서 역동은 대비, 정렬, 반복, 인접성이라는 네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정진호의 삼부작은 안과 밖, 검은색의 침체와 노란색의 생명, 어둠과 빛 같은 색의 대비를 통해 이야기를 구성한다. 이 대비는 구슬을 꿰듯 반복되고, 정렬되어 서사를 구성한다.

『벽』에서는 건축을 전공한 작가답게 벽을 입체적으로 표현하여 공간감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그림 속 흰 형체의 아이는 문을 통해 들어가고 나오며, 노란색과 파란색의 대비로 안과 밖을 보여준다. 아이는 얼굴을 내밀어 창 너머를 들여다보고 벽 사이를 오간다. 벽과 창, 문은 멀리 있는 것은 작게, 가까이 있는 것은 크게 그려져 대비가 강조되며, 밖으로 나가면 다시 그곳이 안이 되는 역동성을 담아낸다.

『해 한 조각』은 검은 세상 곳곳에 떨어지는 작은 해 조각의 역동을 보여준다. 세 번째 펼침면 “세상이 춥고 캄캄해졌어. 흩어진 해 조각은 어디로 갔을까?”라는 글은 해가 부서짐으로써 세상이 정체되고 부정적인 상태가 되었음을 나타낸다. 해 조각은 어두운 산, 구름, 동굴 속으로 들어가며 비록 작은 조각들이지만 큰 힘으로 세상을 깨우고, 새들의 보금자리가 되는 등의 변화를 일으킨다. 어둠을 밝히는 역동적인 노란 해 조각에 의존하여 삶이 변화하는 인간은 스스로 주체자가 되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이다.

『별과 나』는 어둠 속 사람과 빛나는 별들의 대비, 그리고 별들이 자전거 길을 밝혀주는 장면이 이어진다. 별빛과 사람은 가까워졌다 멀어지기를 반복하고, 결국 인물은 별과 함께하기를 원하며 라이트를 꺼 어둠을 선택한다. 이 그림책은 색의 대비로 다정한 별과 수동적인 인간이 반복되다가 마침내 인간은 별무리 속으로 흡수된다. 이 그림책 역시 개척자 인간이 아닌, 별빛에 이끌려 따라가는 수동적 존재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3) 도구

도구는 그림과 글 내용, 글자체의 상호작용에서 파생된 정보뿐만 아니라 모양, 색, 깊이, 공간을 모두 포함한다. 정진호의 그림책 세 권은 손글씨를 닮은 자유로운 형태의 글자체(타이포그래피)를 사용하고 있다. 특히 표지의 제목부터 독특하다. 『해 한 조각』의 제목 글자는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 마치 퍼즐퍼럼 보이며, 동그란 얼굴과 사각형 몸의 사람이 선으로 표현된 손을 뻗어 ‘해’의 조각을 맞춘다. 작가의 이름도 어린이가 쓴 듯한 타이포그래피로 쓰였고, ‘정진호’와 ‘그림책’ 사이에는 웃는 얼굴 이모티콘이 있다.

『벽』의 표지 제목은 두 벽이 만나는 모서리에 강한 투시도로 공간감을 주었다. 작가 이름 ‘정진호’도 그 흐름을 따라 썼다. 글자의 보조선과 각도에서 표지 디자인에 상당한 노력이 엿보인다. 『별과 나』의 글 없는 그림책으로 본문에 소리를 표현한 몇몇 글자가 손으로 직접 쓴 듯 역동적이다. 다른 두 책의 본문 글자체도 손글씨처럼 자유롭고 유연하다.

정진호 그림책의 핵심 색상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노란색이다. 색채심리 연구에서 학자들은 색의 전통적인 의미가 문화 속에서 집단무의식으로 작동한다고 본다. 서양에서 노란색은 해와 태양신과 같은 신화를 통해 부와 권력, 황금과 같은 번영의 상징으로 해석된다. 반면 한국에서는 노란색이 주로 유아기와 연결된다. 이는 유치원 단체복, 가방, 모자, 통학 차량에 노란색이 사용되어 어린이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잘 보이도록 하는 색’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노란 병아리에 비유되듯 노란색은 한국 문화에서 미성숙한 존재를 상징한다.

정진호 작가는 작품 속에서 핵심 사물을 노란색으로 강조한다. 예를 들어 본 연구 외에도 『위를 봐요!』(2014)의 한국어판은 흰색 표지였으나 영문판 『Look Up!』(2018)은 노란색 표지로 바뀌었다. 『바나나가 더 일찍 오려면』(2024)은 배경이 무채색인데 중심 소재인 바나나만 노란색으로 표현되어 시선을 고정시킨다. 『노란 장화』(2015)는 흰 배경과 검은 선의 단조로운 화면 속에 노란 장화만 색으로 채색되어 이야기를 이끈다. 『아빠와 나』(2019)에서는 흰 배경에 회색 그림으로 그려져 있으나 아빠의 창틀은 초록색이고, 아이의 창틀은 노란색으로 구분되어 상징성을 더한다. 그의 인생 에세이 『꿈의 근육』(2022) 표지에는 커다란 노란색 우주복을 입은 인물이 전면에 등장해 독특한 작가 자신을 은유한다.

결과적으로 PAT Design Framework로 분석한 정진호 그림책의 특징은 강한 두세 가지 색의 대비, 짧고 분절된 서사의 연속으로 전체 구성을 시도하는 원칙, 안과 밖이라는 큰 공간감과 함께 검은색의 침체와 노란색의 생명, 어둠과 빛의 정반대 대비로 구성된 역동성을 지닌다. 여기에 유아가 그린 듯한 인물과 자유로운 글자체, 유아기를 상징하는 색채를 도구로 활용한다.

이러한 특성은 부모에게 의존해야만 하는 유아기의 심정을 연상시키며, 타인을 의식하고 행운을 기대하며 빛나는 유혹의 환대 속으로 자신을 내맡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스스로의 사고나 독립적인 의지보다 의존과 수동성이 강조된다.

이러한 유아화 된 표현은 성인이 유아적 감정을 소비하며 자신을 드러내는 키덜트 문화의 특징과도 맞닿아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문화는 어린 시절의 자유로움과 도덕적 지침의 근원으로서 유년기를 숭배하도록 만든다. 이는 성인의 지적 성숙을 모호하게 하고 대신 유아기적 동경을 충족시키는 방식으로, 만화, 아동문학, 이모티콘, 캐릭터 소비 등 다양한 문화로 확장되어 쉽게 찾을 수 있다.

 

 

2. 정진호 그림책의 그림읽기로 본 문화적 특징

 

‘키덜트(Kidult)’는 기본적으로 아이(Kid)와 어른(Adult)이 결합한 말로, 어린시절의 문화와 놀이를 즐기는 성인을 뜻한다. 이 용어가 본격적으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TV 업계 경영진이 어린이용 프로그램을 즐겨 시청하는 성인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하면서 부터다. 키덜트 문화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다시 찾고자 하는 어른들의 열망을 반영하며, 오늘날 패션, 잡화, 엔터테인먼트, K-POP뿐만 아니라 한국 그림책에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키덜트 문화가 등장하고 확산된 배경은 크게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기술 발전, 둘째는 외로움의 증가, 셋째는 성숙의 미성숙이다. 기술 발전으로 인해 유아기 게임, 놀잇감, 엔터테인먼트 상품, 코스프레 같은 키덜트 상품에 누구나 온라인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성인 소비자의 새로운 요구에 맞춘 첨단 기술 기반의 장난감, 게임, 유아화 전략 상품이 이미 문화전반에 널리 퍼졌다. 결국 현대 사회의 디지털 문화는 인간의 뇌를 유아화하여 눈부신 자극에 반응하도록 훈련시킨다는 역할을 한다.

둘째는 인구 구조 변화로 혼자 살거나 결혼해도 자녀가 없는 가족이 늘어나면서 외로움이 증가하고, 이를 달래기 위해 어린 시절 놀이를 다시 즐기는 형태가 나타났다. 과거에 사라졌던 게임이나 물건을 복원해 판매할 때 소비자와 정서적 연결을 강화해 향수를 자극하는 상품들이 만들어지고, 이는 30~40대에게 큰 반응을 일으켜 전체 사회에 파급된다.

정진호 작가 역시 자신의 에세이의 대부분을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으로 채우고 있다. 정진호는 결혼했지만 자녀가 없으며, 자신의 그림책 작업은 가족 여부와 상관없이 어린 시절의 기억과 신념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밝힌다. 그는 에세이에서 어릴 적 타지 못했던 자기부상열차를 성인이 되어 타러 갔던 경험, 중학교 때 극장에 갔던 일, 고등학교 시절 뒷산에 올라갔던 사건 등을 회상하며, 늘 자신의 꿈인 그림책 작업과 연결한다. 또한 그는 어린 시절 누나와 만화를 보러 다니며 로맨스가 가득한 순정만화를 즐겼다고 회고한다. 이처럼 그의 생생한 어린 시절의 기억과 향수는 키덜트 문화를 만드는 원천이 되었고, 그의 그림책 창작으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셋째는 인간은 심리사회적으로 청소년기를 거치며 성격과 가치관이 성숙해 진다. 이 시기가 끝나면 부모로부터 독립적인 태도와 결정을 할 수 있는 성인으로 성장한다. 그러나 불안이나 회피 성향으로 인해 독립성이 충분히 형성되지 못한 성인을 교육학에서는 키덜트라고 본다.

‘성인(adult)’이라는 단어는 라틴어에서 유래된 ‘줄(row)’이라는 말에서 비롯되었으며, 이는 생리적, 심리적 성장을 의미한다. 즉, 성인은 부모로부터 ‘분리-개별화’를 이루고, 충동 조절과 책임감을 포함한 ‘심리적 성숙’을 달성한 존재로 간주된다. 그러나 이러한 성인의 특성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남성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된 개념이 바로 ‘피터팬 신드롬(PeterPan Syndreome)’이다. 피터팬 신드롬은 키덜트의 근원적 개념으로, 무책임하거나 나르시즘적 성향으로 인해 사회적, 직업적 어려움을 겪는 성인을 지칭한다. 이들은 흔히 ‘책임에서의 도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영원히 성장하지 않는 아이’로 묘사된다.

피터팬 신드롬과 유사한 개념으로는 캥거루족, 모라토리엄 인간, 마마보이, 트위스터족 등이 있다. 캥거루족은 20세기 말 프랑스에서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청년 실업자들로, 근로 의욕은 낮지만 소비 성향은 커서 부모에게 경제적 부담을 준다. 모라토리엄 인간은 고정된 직업이 없이 모든 사회적 관계를 일시적이라 여기며, 특정 가치관이나 책임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시도를 반복하면서도 사회적 책임을 회피한다. 마마보이는 유아기 불안정 애착으로 건전한 모자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어머니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들을 뜻한다. 트위스터족은 대학을 장기간 다닌 뒤에도 직장에 안정적으로 정착하지 못해 경제적 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부모에게 의존하는 불안정한 생활자를 말한다. 이처럼 사회 전반에 걸쳐 성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미성숙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들과 비슷하게 키덜트는 성인이 되어서도 아동의 감정과 분위기를 간직하며, 각박한 현대 사회에서 즐거움을 추구하고 인형 같은 귀여운 물건을 애호하며 어린이의 심상을 유지한다.

과거에는 피터팬을 마음에 품은 어른들이 이러한 감정을 드러내길 두려워했지만, 이제는 성인이 된 이후에도 이러한 감정이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19세기만 해도 성인기는 아동기와 명확히 구분되었다. 성인은 친절, 품위, 정직, 충성심, 정직, 자기 통제 등 도덕적 미덕을 실천하며 자신과 가족을 돌볼 수 있는 사람으로 여겨졌다. 이를 위해 성인은 생각과 행동을 스스로 통제하고, 감정과 충동을 억제할 줄 아는 지혜가 있었다. 성인의 가장 큰 책무는 돈을 버는 직업을 유지하고 평생 가족을 책임지는 것이었다. 성인기는 곧 삶의 중심이자 가장 중요한 시기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 이러한 ‘성인다움’은 점점 억압적인 것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19세기 이후 아동 권리에 대한 담론이 본격적으로 대두되면서, 어린 시절은 도전과 자유, 심지어 부주의까지도 허용되는 기쁨의 시기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어린이가 우월한 존재로 부각되고, 반면 어른은 노력해도 성공하기 어려운 나약한 존재로 그려지는 문학, 주장, 운동들이 등장하면서 문화적 흐름이 형성되었다. 이는 지혜나 우수성을 추구하던 고급문화에서 난잡함과 엉성함, 유희적 하류문화로 전복되는 자극제가 되었고, 그 대표적 예가 바로 키덜트 문화이며,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바로 문화의 유아화 현상이다.

유아화의 특징은 비판적 사고와 책임감 있는 시민의식의 발달을 억제하고,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을 강조하는 개인주의를 부추긴다. 이로 인해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하지 못한 채 돌봄과 책임을 회피하며 즉각적인 소비와 사적 이익을 추구하게 되고, 이는 오히려 전체주의적 시스템으로 향하는 길을 열게 된다. 유아화는 특히 소비, 오락, 돌봄, 청소년, 특권, 평생학습, 자기계발, 동기부여와 욕구 실현의 형태로 드러난. 다시 말해, 개인은 행복해야 할 ‘의무’를 갖지만 자기부정이나 자기희생은 포함시키지 않는다. 그 결과 책임에서 비롯되는 성취가 사라지고, 사람들은 공허한 신이 내려주는 행운을 기대하며 살아가게 된다. 이는 마치 유토피아적 낙원을 꿈꾸는 모습과 닮아 있으며, 그 끝이 전체주의로 이어질 수 있음을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문학, 특히 아동문학은 늘 성인의 시선으로 재구성된 아동기의 이미지를 담는다는 점에서 결코 ‘순수’할 수 없다. 그럼에도 아동문학을 꿈꾸는 작가에게는 잃어버린 어린 시절을 잠시나마 다시 경험할 수 있는 이중성이 있다. 이는 어린이가 스스로 표현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다시 만들어내는 어린 시절의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성인들이 유아기 그림체를 모방하여 자신의 욕망과 생각을 투영해 키덜트 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그림책 작가는 자신의 창작이 어린이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유희를 위한 것인지를 깊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의 첫 독자가 되어 즐기게 될 때,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결국 어린이다. 정진호 작가는 2019년 한국어린이문학교육학회 주제강연 『그림책과 놀이하기』에서 그림책에 대한 오해는 ‘아이들이 읽는 책이다’(35p)가 아닌 ‘아이들도 읽는 책이다’(35p)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 다소 도발적인 관점은 아이들의 놀잇감을 빼앗는 어른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어린이도서 창작자라면 ‘어린이를 위한 책’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유희보다 자신의 책을 읽어줄 어린이에 대한 고마움과 그들의 안녕에 더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이다. 이 세상에 어린이가 없다면 그림책이라는 매체의 존재 이유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본 글을 시작으로 사회적 의미 연구를 지속하여 학술지 어린이문학교육학회 제26권 제4호에 <키덜트 문화의 영향으로 유아화된 그림책의 사회학적 의미>로 발표하였습니다. 논문은 이 글의 끝에 다운로드 하실 수 있도록 올려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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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Barber, B. R. 2007. Consumed: How Markets Corrupt Children, Infantilise Adults, and Swallow Citizens Whole. W. W. Norton & Company.
[19] Peters, M. V. 2018. Crossover Literature and Age in Crisis at the Turn of the 21th Century. Herry Potter’s Kidults and the Twilingt moms. Siegen.
[20] 정진호(2019). [주제강연] 그림책과 놀이하기. 한국어린이문학교육학회.
[21] 
이상원()개혁주의 윤리학의 관점에서 본 현대사회와 윤리적 문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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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형  | 안산대학교. 경민대학교 겸임교수

그림책과 미술로 자신을 돌아보는 예술치유전문센터에서 센터장을 지냈고,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 박사 학위가 있습니다. 어린이를 위한 환경에서 그림책과 예술의 역할을 학문적으로 탐구하고자 세계관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현재, 안산대학교 언어치료아동보육과, 경민대학교 아동심리보육과에서 겸임교수로 강의하고 있습니다.  저서는 [아동과 우리사회] (2016), [Art Psychology : 직장인 마음을 읽다] (2019), [신앙이 자라는 그림책 읽기] (2024)이 있으며, 현재 '그림책세계관연구소' 이사이며, '한국기독교유아교육학회' 이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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