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의 그림읽기
그림의 경고 – Psychedelic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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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순2026-05-27 18:26
먼저, 이런 글을 올려주셔서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그림의 경고」를 읽으며 가장 크게 다가온 것은, 내가 막연히 느끼던 혼란에 이름이 붙여졌다는 점입니다.
그동안 어떤 그림책들을 보며 설명하기 어려운 불편함과 혼란을 느낄 때가 있었습니다.
색감은 화려한데 마음은 어지럽고, 자유롭다는데 왠지 불안하고, 예술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데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느낌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사이키델릭 아트’, ‘환각 이미지’, ‘혼탁한 정신의 표현’ 같은 용어들을 접하면서, 그동안 내 안에 흩어져 있던 감각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 내가 이상하게 느낀 게 괜한 게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마음에 남은 것은, 그림은 단순한 취향이나 감각이 아니라 결국 한 시대의 정신과 인간 내면을 드러낼 수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요즘은 강렬하고 몽환적이고 낯선 표현을 “예술적”이라고 쉽게 소비하지만, 그 표현이 어디에서 왔고 어떤 세계관을 담고 있는지는 깊이 생각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표현이 어디에서 왔고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는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독창적이고 새롭기만 하면 다들 감탄하고 박수를 보내는 세대에서
똑같이 행하고 있는 저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신앙인에게 중요한 것은 결국 정신의 상태와 분별이라는 말처럼, 우리는 무엇을 반복해서 보고, 무엇에 끌리고, 어떤 감각을 아름답다고 느끼는지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림의 경고」를 읽으며 가장 크게 다가온 것은, 내가 막연히 느끼던 혼란에 이름이 붙여졌다는 점입니다.
그동안 어떤 그림책들을 보며 설명하기 어려운 불편함과 혼란을 느낄 때가 있었습니다.
색감은 화려한데 마음은 어지럽고, 자유롭다는데 왠지 불안하고, 예술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데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느낌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사이키델릭 아트’, ‘환각 이미지’, ‘혼탁한 정신의 표현’ 같은 용어들을 접하면서, 그동안 내 안에 흩어져 있던 감각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 내가 이상하게 느낀 게 괜한 게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마음에 남은 것은, 그림은 단순한 취향이나 감각이 아니라 결국 한 시대의 정신과 인간 내면을 드러낼 수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요즘은 강렬하고 몽환적이고 낯선 표현을 “예술적”이라고 쉽게 소비하지만, 그 표현이 어디에서 왔고 어떤 세계관을 담고 있는지는 깊이 생각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표현이 어디에서 왔고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는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독창적이고 새롭기만 하면 다들 감탄하고 박수를 보내는 세대에서
똑같이 행하고 있는 저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신앙인에게 중요한 것은 결국 정신의 상태와 분별이라는 말처럼, 우리는 무엇을 반복해서 보고, 무엇에 끌리고, 어떤 감각을 아름답다고 느끼는지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김신영2026-05-31 21:57
사이키델릭 아트를 그림책으로 만났다. 그리고 어떻게 이러한 예술이 등장했는지 알고 나니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알게 모르게 예체능 분야에서는 탁월한 성과를 내기 위해 약물에 의존하는 일들을 종종 대중매체를 통해 익히 접해왔고 논란의 기준이 되기도 했지만 이러한 문제의식을 전혀 갖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환각예술을 알고 나니 환각에 의존하여 탄생시킨 작품을 천재라 불리며 역사에서도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는 예술가들을 앞으로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의구심이 들게 되었다. 왜냐하면 멋진 작품이라 말하는 문화 예술작품의 숨은 이면에는 뉴 에이지 사상과 비도덕적인 문예사조(다다이즘)및 팝아트의 영향을 받아 무의식에 기반한 대항문화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진리를 찾는 정신은 경계와 색이 분명하며 하고자 하는 의견이 선명하다고 하였다. 그래서 독에 빠져 탄생한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그림들을 구별하는 분별력이 여느 때보다 중요한 것 같다. 또한 인식론적 세계관에 입각하여 영적인 눈으로 분별하는 힘을 기름이 마땅하다고 본다. 이제는 이러한 예술 작품을 그리기 위해 환각제에 의존하지 않고도 AI가 알아서 작품을 만들어 주는 시대에 도래했으니 더 이상 약물에 의존하여 예술하는 분들이 줄어 들었으면 좋겠다. 끝으로 환각제에 의존하여 명성을 얻으려는 예술가들에게 말해 주고 싶다. ‘해 아래 새 것은 없다. 모든 새로운 것은 단지 망각일 뿐……’ 해 위의 삶 즉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 속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할 때 비로소 우리는 아름다움에 대해 말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아름2026-06-01 00:43
하나님께서도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 보시기에 심히기뻤더라고 말씀하셨고, 그 무엇보다 이세상의 창조물 중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우리 인간이 가장 소중한 존재임은 분명한 것인데,,,그림책에서 버섯보다 하향하여 사람을 표현한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예술이라는 이름아래, 무엇이 옳고그른지 조차 불분명한 이 세상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아이들이 읽는 그림책 속에서 혁명...정치...라는 것에 바탕을 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교수님의 말씀대로 요즘은 그냥 "재밌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라고 가볍게 웃어 넘기는 것들이 쌓여서 죄가 되는 것임을
다시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이야기해주신 교수님의 역할이 지금의 세대에서
너무도 너무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바른 지식과 올바른 것을 볼 수 있는 눈. 분별력.을 생각하다가도, 잠시 한눈팔면 생각치 못하고, 구덩이로 빠져버리는
너무도 복잡한 세대속에서 더 똑똑히 눈뜨고, 하나님의 안경을 쓰고 바라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파민을 추구하다 보면 결국 마지막에는 허망을 느끼게 되고, 그 허무가 다시 더 자극적이고, 더 새로운 것들을 찾는 이 세대 속에서,
다시 참된 주인이신 하나님께 나아가 우리 모든 것들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평안을 그려내는 따뜻한 예술들이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우리 인간이 가장 소중한 존재임은 분명한 것인데,,,그림책에서 버섯보다 하향하여 사람을 표현한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예술이라는 이름아래, 무엇이 옳고그른지 조차 불분명한 이 세상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아이들이 읽는 그림책 속에서 혁명...정치...라는 것에 바탕을 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교수님의 말씀대로 요즘은 그냥 "재밌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라고 가볍게 웃어 넘기는 것들이 쌓여서 죄가 되는 것임을
다시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이야기해주신 교수님의 역할이 지금의 세대에서
너무도 너무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바른 지식과 올바른 것을 볼 수 있는 눈. 분별력.을 생각하다가도, 잠시 한눈팔면 생각치 못하고, 구덩이로 빠져버리는
너무도 복잡한 세대속에서 더 똑똑히 눈뜨고, 하나님의 안경을 쓰고 바라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파민을 추구하다 보면 결국 마지막에는 허망을 느끼게 되고, 그 허무가 다시 더 자극적이고, 더 새로운 것들을 찾는 이 세대 속에서,
다시 참된 주인이신 하나님께 나아가 우리 모든 것들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평안을 그려내는 따뜻한 예술들이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습니다.
김선옥2026-06-01 14:38
글에 언급한 것처럼 정신의 상태가 신앙의 지표라는 말이 많이 와 닿았습니다. 지인 중에 예술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분들의 얘기를 듣다 보면 하나같이 하는 말이 예술을 하는 사람 가운데 제정신(온전한 정신)을 갖는 사람이 드물다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그 분들이 하는 말이 예술은 자신과의 싸움으로 외롭고 고독하며, 정말 치열한 영적 전투의 삶이라고 합니다. 유명한 예술가들의 대부분이 영혼을 사탄과의 계약을 한다고 말할 정도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유명해 질 수 없다고 합니다.
이런 사상과 세계관이 아직은 순수한 어린 영혼을 가진 아이들이 보는 그림책에 깊숙히 침투해 있는 것을 보면서 이들은 왜 어린아이들에게 반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계속해서 심어주려고 하는지 궁금합니다.
우리가 독이 들어 있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을 알기에 피합니다. 그러나 요즘은 위험한 것을 예술의 한 획을 그은 장르를 칭송하며 일반 독자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경계의 모호함을 창의적이라고 칭송함으로 내가 느끼는 위험함을 위험으로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것의 위험 수위가 점점 높아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하나님은 모호한 분이 아닌데 이런 환각과 망상, 우리가 그려내는 이미지를 통해 이 세상의 창조주, 통치자, 구원자 되신 하나님을 모호하게 만드는 것, 그래서 우리가 진리에 바르게 다가가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저는 봤을 때 따뜻한 그림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팝아트적인 요소나 너무 강렬한 색채, 함축된 의미의 그림 등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듭니다. 그래서 그림책을 볼 때도 먼저 그림이나 색의 조화가 따뜻한가를 가장 먼저 눈여겨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안에서도 세계관의 분별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건강한 정신을 가질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많은 사람의 마음에 감동을 줄 수 있는 예술이 탄생할 거라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보는 그림책도 그런 책들이 더 많아지길 바라고요.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의 몸을 악(환각이나 마약 같은)에서 성령님의 능력의 도움을 힘입어 잘 지켜 나가길 소망합니다.
이런 사상과 세계관이 아직은 순수한 어린 영혼을 가진 아이들이 보는 그림책에 깊숙히 침투해 있는 것을 보면서 이들은 왜 어린아이들에게 반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계속해서 심어주려고 하는지 궁금합니다.
우리가 독이 들어 있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을 알기에 피합니다. 그러나 요즘은 위험한 것을 예술의 한 획을 그은 장르를 칭송하며 일반 독자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경계의 모호함을 창의적이라고 칭송함으로 내가 느끼는 위험함을 위험으로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것의 위험 수위가 점점 높아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하나님은 모호한 분이 아닌데 이런 환각과 망상, 우리가 그려내는 이미지를 통해 이 세상의 창조주, 통치자, 구원자 되신 하나님을 모호하게 만드는 것, 그래서 우리가 진리에 바르게 다가가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저는 봤을 때 따뜻한 그림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팝아트적인 요소나 너무 강렬한 색채, 함축된 의미의 그림 등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듭니다. 그래서 그림책을 볼 때도 먼저 그림이나 색의 조화가 따뜻한가를 가장 먼저 눈여겨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안에서도 세계관의 분별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건강한 정신을 가질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많은 사람의 마음에 감동을 줄 수 있는 예술이 탄생할 거라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보는 그림책도 그런 책들이 더 많아지길 바라고요.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의 몸을 악(환각이나 마약 같은)에서 성령님의 능력의 도움을 힘입어 잘 지켜 나가길 소망합니다.
전보람2026-06-01 23:55
비틀즈가 노래속에 LSD를 찬양하는 이야기를 숨겨 놓았듯 68혁명 이후의 예술가들 사이에서 마약은 영감의 원천이라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 이었다. 그런데 예술계 뿐만 아니라 과학기술이 폭발적으로 발달하고 있는 이 시대에 실리콘 밸리를 중심으로 하는 테크업계에서 창의력과 스트레스 완화를 위해 LSD는 물론 환각버섯 같은 마약물질을 아주 소량 사용하는 '마이크로 도싱'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알게 되었을 때 인간의 죄성은 어느 특정한 분야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어느 부분에서든지 나타날 수 있음을 알고 경계하고 분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약을 하고 과학기술을 개발한다고 생각하니 과학의 발전 이면의 세계관을 더욱 분별해야 할 것 같다. 그림책 분야 역시 우리가 아동도서라 생각했던 안일함을 넘어 예술의 한 장르로서 그림과 글, 작가의 의도와 작품의 의의를 비판적 시각으로 분석해야 할 필요성을 더욱 느끼게 된다.
싸이키델릭 아트를 보면 왜곡된 형태나 총천연색 등이 초현실적이고 색은 밝은데 음산하고 어지러운 느낌을 받는다. 마약을 안 해봐서 모르겠지만 이것이 하나님없이 영감을 얻는 쉬운 방법임에는 분명한것 같다. 이 책을 보면서 이런 장르들이 예술이라는 명목하에 당연한 듯 아동들의 문화에 스며들게 하기 쉬운 분야가 그림책 분야가 될 수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CCM 산업에 관심이 있는데 최근 어떤 CCM 밴드팀에서 싸이키델릭을 가미한 CCM을 만들어 내서 기겁했던 기억이 있다. 영적으로 깨어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음세대에게 모든 분야에 대해 분별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가르치고 우리 사회에 소리내어야 한다. 소설 멋진 신세계의 마약을 권하는 사회 모습들이 정말 이루어지지 않길 바란다.
싸이키델릭 아트를 보면 왜곡된 형태나 총천연색 등이 초현실적이고 색은 밝은데 음산하고 어지러운 느낌을 받는다. 마약을 안 해봐서 모르겠지만 이것이 하나님없이 영감을 얻는 쉬운 방법임에는 분명한것 같다. 이 책을 보면서 이런 장르들이 예술이라는 명목하에 당연한 듯 아동들의 문화에 스며들게 하기 쉬운 분야가 그림책 분야가 될 수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CCM 산업에 관심이 있는데 최근 어떤 CCM 밴드팀에서 싸이키델릭을 가미한 CCM을 만들어 내서 기겁했던 기억이 있다. 영적으로 깨어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음세대에게 모든 분야에 대해 분별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가르치고 우리 사회에 소리내어야 한다. 소설 멋진 신세계의 마약을 권하는 사회 모습들이 정말 이루어지지 않길 바란다.
지민규2026-06-02 09:17
사이키델릭 아트에 대해서 분별하는 시야를 가질 수 있도록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이키델릭 아트들이 어떤 그림인지 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리고 왠지 사이키델릭한 음악에 대해서도 약간은 분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요즘 모던하다. 모던한 디자인에서 더 트렌디한 것이 힙하다. 힙한 이미지, 힙한 디자인이란 말을 많이 하는데
합하다는 이미지중에는 간혹 사이키델릭한 스타일도 포함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실 트렌디하다고 생각된 것도 뿌리를 알고나니 참 허탈하다는 생각도 들고
아무 것도 모르고 감상하고 있었구나. 부끄럽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도 어떨 때는 사이키델릭한 스타일이 신선하고 트렌디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는데
분별하며 개념을 갖고서 접하도로 해야겠습니다.
사이키델릭 아트들이 어떤 그림인지 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리고 왠지 사이키델릭한 음악에 대해서도 약간은 분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요즘 모던하다. 모던한 디자인에서 더 트렌디한 것이 힙하다. 힙한 이미지, 힙한 디자인이란 말을 많이 하는데
합하다는 이미지중에는 간혹 사이키델릭한 스타일도 포함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실 트렌디하다고 생각된 것도 뿌리를 알고나니 참 허탈하다는 생각도 들고
아무 것도 모르고 감상하고 있었구나. 부끄럽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도 어떨 때는 사이키델릭한 스타일이 신선하고 트렌디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는데
분별하며 개념을 갖고서 접하도로 해야겠습니다.
그림의 경고 – Psychedelic Art
그림의 경고 - Psychedelic Art
그림은 수 세기를 거쳐 정신을 표현하고, 인간은 그에 자극을 받았다. 진리를 찾는 정신은 경계와 색이 분명하고, 하고자 하는 의견이 선명하다. 그러나 혼탁한 정신은 공포의 그림, 훼손의 그림, 알 수 없는 정체의 그림으로 그 악함을 숨기지 않기에 이르렀다. 악한 정신의 자극일지, 악한 그림의 의도적 자극일지 알 수는 없지만 그림책에도 혼탁한 표현이 나타나고 있다. 인간의 자극에 대한 탐닉은 어디까지인가?
대표적으로 뉴에이지에서 드러난 사이키델릭 아트(Psychedelic Art)가 있다. 뉴에이지는 1960년대 히피 문화와 함께 등장하여 환각제를 복용하며 자신이 신이 되려는 것을 포함한다. 이 환각적 체험을 시각적으로 재현한 예술로서 사이키델릭 아트는 혼탁한 정신의 이미지화로 볼 수 있다. 그림의 특징은 다채로운 색채와 유기적 곡선, 자극적이고 몽환적인 무늬가 나타난다.
미술계에서 사이키델릭 아트의 정의는 ‘psycho’과 ‘delicious’의 합성어로 환각제 복용에 의한 환시와 환청을 재현하려는 ‘환각미술’으로도 불리운다. 사이코psycho는 ‘정신’이라는 의미의 접두어이나 최근들어 사이코패스psychopath의 줄임말로 자주사용된다. 반사회적 인격 장애나 정신병을 가진 사람을 뜻하는 사이코로 흔히 사용한다. 델리셔스delicious는 아주 좋은 맛이나 냄새를 가지는 의미로 맛있다고 표현할 때 쓰는 단어로 알려졌지만, 굉장히 맛난다는 뜻이기에 잘 사용하지 않는다. 즉, 정신병이 있는 사람에게 과도하게 맛있는 환각제를 의미하는 것이다. 미술계에서는 사이키델릭 아트를 환각제의 일종인 ‘LSD 아트’라고도 부른다. 마약의 하나인 LSD를 복용하고 느껴지는 환시와 환청 등의 체험을 통해 그리기를 권장한다.
1960년대 히피의 문화였던 사이키델릭 아트가 미디어의 성행으로 쉽게 만들 수 있는 이미지가 되었다. 발광하는 빛들과 색이 질서 없이 흩어져 자극하는 이미지는 생성형 AI로 쉽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버튼 하나로 환각의 세계를 보여주는 미디어 세상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은 그것의 정체도 모른 채 젖어서 살아가고 있다.
독버섯의 자유 : 그림책 <MYKO 미코, 버섯의 모든 것>
이 책은 2024년 볼로냐 라가치상 논픽션 부분 대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다. 표지는 너무나 차분한 갈색의 종이 또는 흙을 연상시키는 색이며 흐믈거리는 영문 글자는 혼자서 서 있기 힘든 상태로 보여진다. 저자는 이르지 드보르자크(글), 다니엘라 올레이니코바(그림)으로 슬로바키아에서 출판했다. 글쓴이 이르지는 1970년 구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태어나 식물학을 전공했다. 당시 체코슬로바키아는 공산주의 체제였고, 1989년 벨벳 혁명 이후 민주화가 이루어졌다. 이르지는 출판, 저널리즘, 창작 등을 하며 책을 출판하고 있다. 사이키델릭 아트의 특징을 가진 그림을 그린 다니엘라는 드로잉과 판화를 전시하는 예술가이며 어린이와 성인을 위한 20여 권의 책에 그림을 그렸다. 다니엘라는 이르지와 함께한 첫 번째 책 <고슴도치>로 2017년에 브라티슬라바 일러스트레이션 비엔날레에서 골든애플상을 수상했다.
페이지를 넘기면 저자가 버섯이라 소개를 하면서 어떤 내용이 담겨있는지 설명한다. 머리말을 달고 있는 편지형식의 글은 독자와 균류에게 인사말로 시작한다. 본격적으로 이 책은 전 세계 버섯들이 크게 진화한 모습을 보여주며, 버섯의 삶에 중요한 모든 주제를 다룬다며 정치(즉, 식물이나 발이 여럿인 동물들과의 교류와 갈등)에서부터 신화, 역사, 문화, 스포츠, 그리고 사회적 사건 등에 이르기까지 담고 있다. 그리고 지구와 우주 전체에서 버섯들이 걸어온 길고 찬란한 역사 속에서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선언한다. 다른 선언문처럼 독립을 선포한다.
다음 장에는 이 책의 제목에 대한 설명이 있다. 책의 제목 <미코, 버섯의 모든 것>에 나오는 미코(MYKO, 체코어)는 곰팡이, 혹은 버섯을 뜻하는 라틴어 접두사 미코(myco)에서 비롯했다. 오른쪽 그림은 19세기 일본 문화에 대한 유럽의 열광을 반영한 듯 보이는 선과 색이 느껴지는 정신없는 그림이 그려있다. 유럽의 그림이라기 보기 어렵지만, 복잡한 객체의 모임은 일본의 것이라 하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형광빛의 주황과 보색의 청록은 시선을 잡아끌며 주황을 보완하는 노란색이 어색한 부분을 채운다. 그림은 도대체 무엇을 그린 것인가 짐작하기 어렵다. 다만 ‘버섯이 버섯에게’라는 글자만 보일뿐이다.
이 책은 96페이지로 이루어진 책으로 잡지라고 소개한다. 즉, 여러 주제를 모은 한 권의 정보책과 같으며, 중간에 여러 기사를 넣어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버섯 독립선언문은 동물과 식물도 아닌 버섯이 독립적인 종으로 존중받고 배려받아야 하기에 동의하는 분들의 서명을 받고 있다. 독립위원회 대표는 녹슨버짐버섯(Serpula Iacrymans), 해그물버섯(Xerocomellus chrysenteron), 효모(Saccharomyces cerevisiae), 양배추병균(Olpidium brassicae), 털곰팡이류(Mucor mucedo)이다. 그런데, 독립 선언은 버섯이 하였고, 이들을 대표하는 것은 사실은 균류이다. 식물과 동물이 아닌 균류의 독립인 것이다.
내용 중에 버섯의 기원, 그들의 신화를 달에서 왔다고 적는다. 허공에서 외로움을 견디다가 지구의 바다에 미친 자신을 보고 친구라고 여겼지만, 아무 대답이 없는 고요에 흘린 눈물이 뚝 뚝 떨어져 최초의 버섯이 되었다는 전설이다. 달에 있는 할머니 조상이 외롭지 않도록 달이 떠오를 때 마다 깊은 숨을 들이 마쉰다는 버섯의 시가 있다. 지구에 떨어진 달의 눈물은 일본 풍 파도 그림을 연상시키는 그림에 반쯤 얼굴을 내밀고 있다. 이 역시 버섯이라기 보다는 균이다.
그 외에도 과학의 진보, 솔방울에 키우는 버섯 등등 여러 가지 내용으로 책 한 권을 채운다. 뒤로 갈수록 프랑스 혁명을 떠올리는 구호 자유, 평등, 균근이 써있는가 하면, ‘전 세계의 균사 동지들이여, 단결하라!’라는 구호도 있다. 결국에는 ‘인간을 고발합니다!’라는 지면이 나타났다. 인간, 호모 사피엔스가 수천 년간 자신들 곰팡이의 노동으로 부자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빵을 굽는 동안의 효모들의 노동을 이용하면서 제빵사는 보상하지 않았기에 고발한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맥주를 만드는 양조업자, 페니실린과 항생제를 제조하는 제약업자, 약사, 의사들을 고발했다. 더 있다. 와인생산자, 구연산 제조업자, 비타민, 세제, 향수, 염료 생산자들 모두 곰팡이를 이용해 온 수 많은 인간들로 자신들의 지적 재산권을 인정하고 인류가 착취함에 대한 영예로운 보상을 요구하고 경고한다. 그것은 기후 변화 및 지구 온난화, 온실가스 등으로 연결해 환경파괴의 주범을 인간으로 만드는데 활용한다. 결국 몹쓸 인간은 위대한 버섯에게 경배하라는 전체적인 맥락에서 유머러스와 위트가 특징이라고 소개한다.
이 책을 소개하는 기사는 볼로냐 라가치 논픽션 부문 대상을 받은 최고의 지식 그림책이라는 칭찬 일색이다. 그림에 대해서는 단순한 책을 넘어서 예술 작품을 보는 듯한 14개의 별색을 사용해 버섯의 아름다움을 표현했다고 감탄한다. 그러나 선언이나 혁명이라는 모티브 선택에 대해서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며, 그림의 색채와 구성이 사이키델릭 아트에서 왔다는 것도 언급이 없다.
그림책은 아동의 과학서라는 인상과 달리 환각예술을 통해 정치적 발화의 도발서라고 할 수 있다. 버섯을 세밀하게 그려냈다면 구체적인 사실화 그림으로서 ‘버섯 사전’이 되었을 정도로 많은 지식을 담았겠지만, 가벼운 그림은 지식서라는 실체를 깨뜨리고 독버섯만이 연상될 뿐이다. 독이 있는 버섯은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섭취시 구토, 설사, 환각 등의 고통을 동반하며 심하게는 죽음에 이른다. 버섯을 다루면서 사이키델릭 아트와 어울리는 그림을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어떤 평가는 ‘난잡한 그림이 주는 정보의 혼동’을 지적하기도 했다.
환각이라는 장르
인간은 기본적으로 외로움과 불안의 상태를 가지고 있다. 알랭드 보통은 <불안>(2011)에서 사랑의 결핍이 주는 욕망이 불안의 원천이라 하였고, 해소를 위해 예술 작품을 볼 것은 권한다. 예술은 그만큼 인간의 기본 욕구와 불안을 채워주는 도구적 기능이 있는 것이다. 자극은 잠시나마 감각의 마비를 일으킨다. 도파민의 역설도 시각적 자극에 의한 일시적이고 기계적인 만족의 호르몬 장난일 뿐이다. 그런데 영화, 음악, 미술.. 이런 감각적 자극은 심각한 내성이 생긴다는 단점이 있다. 새롭던 이미지는 금방 관심을 잃어가고 더 새롭고 더 자극적인 이미지와 소리를 찾게 된다. 그것들이 생존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지 않음에도 심각하고 집요하게 새로움을 찾고, 충족되지 못하면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결국 새로운 창작을 제공해야 하는 창작자와 그것을 요구하는 감상자 모두는 외로움과 불안을 가질 뿐이다. 그것도 일시적이 아닌 반복적이고 영구적인 고립이다. 그 자극을 합법화하고 ‘신이 될 수 있다’ 유혹하는 마약은 예술가들에게 지독한 고통을 주면서 창작을 강요한다. 결론적으로 자신을 고통으로 몰아넣는 죄이기에 사이키델릭 아트가 새로운 장르라고 치부하며 가벼이 넘길 수는 없다. 마약의 중독성은 이미 알려져 있으며 새로움이 필요한 감각의 내성과도 유사한 패턴이다. 우리는 예술 장르가 추구하는 근원을 알 필요가 있다. 대부분 왜 그러한 장르가 생겨났는지 관심을 두지 않고, 기법과 색상, 표현방법에 의미를 둔다.
그것이 죄를 추구하는 의도인지 모르거나, 알아도 가볍게 넘길 뿐이다. 다들 하는데! 요즘 그런 것이 죄가 되나? 예쁘거나 멋있으면 그만이지. 새롭고 신선한데! 웃기고 즐거워, 뭔가 매력적이야! 그러는 사이 자신은 분별없이 죄를 짓고 있을 뿐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로마서 6:23)
성경이 언급한 인간의 죄는 크게 하나님처럼 되려는 자기 주권 선언의 선악과 사건으로 원죄(Original Sin)가 있으며, 행위의 죄로 거짓말, 도둑질, 살인, 간음 등이 있으며 출애굽기 20장에 십계명으로 경고한다. 구조적이고 집단적인 죄로는 불의한 권력과 억압 체제, 우상숭배도 사회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행위들은 드러나는 죄이기에 판단의 근거가 있고 논의가 비교적 쉬울 수도 있지만, 예수님께서는 마음의 상태로 행동 이전에 내면의 왜곡된 망상의 죄를 마태복음 5장에 다루셨다. 음욕의 생각은 간음과 같은 것이고, 미움의 생각은 살인과 같은 것이다.
마약이라는 환각제를 복용하는 것은 법에서 정해진 규칙을 깨는 자유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중독이라는 것으로 인간을 속박한다. 그래서 죄의 삯이 사망이 아니겠는가! 자신을 잃어버리고 환각에 의지하는 상태로서 마음의 죄가 될 수 있다. 요한복음 8장 34절이 이에 대해 잘 설명한다.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약에 중독된 이들은 그 안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그 상태로 살아가기에 죄에 속박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인간은 자극의 자극을 추구하다가 이러한 지경까지 예술이라 하며 자신을 속인다.
정신의 상태는 신앙인에게 가장 중요한 지표이다. 이미 믿음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우리는 죄에 대하여 사함을 받았기에 안정과 행복의 은혜를 느끼며 살아간다. 깨어 기도하고, 매일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인 삶을 살기 위함이다. 죄로부터 자유로워지고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과정이 성화(Sanctification)이며, 평생에 걸친 여정이다. 거룩함을 간직하고 하나님을 만날 그날을 기다리는 것이 신앙인의 행복일 뿐이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데살로니카전서 4:3)
이수형 | 안산대학교. 겸임교수
그림책과 미술로 자신을 돌아보는 예술치유전문센터에서 센터장을 지냈고,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 박사 학위가 있습니다. 어린이를 위한 환경에서 그림책과 예술의 역할을 학문적으로 탐구하고자 세계관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현재, 안산대학교 언어치료아동보육과, 경민대학교 아동심리보육과에서 겸임교수로 강의하고 있습니다. 저서는 [아동과 우리사회] (2016), [Art Psychology : 직장인 마음을 읽다] (2019), [신앙이 자라는 그림책 읽기] (2024)이 있으며, 현재 '그림책세계관연구소' 이사이며, '한국기독교유아교육학회' 이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