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4년 7월 16일 고양시 덕양구에 소재한 Cafe 그림책박물관에서 『신앙이 자라는 그림책 읽기(두란노, 2024)』 북토크가 진행되었다. 그림책 읽기를 위한 수많은 책들이 출간되고 있지만 성경의 렌즈로 그림책을 읽는 노력은 그동안 무방비 상태의 수준이었다. 기독 신앙의 관점으로 그림책 비평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현은자 교수와 ‘한국기독교유아교육학회’에서 동역하는 8명의 전문가들이 공동 집필하였다. 먼저 대표 저자이자 이 모임을 시작한 현은자 교수가 책이 출간되기까지의 과정과 그림책 읽기에 있어서 세계관의 중요성에 대한 짧은 강의를 해주셨고, 저자들이 돌아가며 자신이 평론한 글에 대해 소개하고, 질문과 답변 시간을 가지면서 마무리되었다. 이수형 교수의 사회와 저자 5명 (현은자, 김정준, 박혜련, 강다혜, 김현경)의 패널로 진행되었던 북토크 현장에서의 내용을 정리해 본다.
현은자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 명예교수) : 아이들에게 어떤 책을 읽어주십니까? 좋은 그림책을 읽어주고자 하시죠? 어떤 책이 좋은 그림책입니까? (독자: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책...) 네,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책, 그림이 아름다운 책, 서사성이 좋은 그림책 등등이 있겠지요. 그러면 예를 들어 앤서니브라운의 책을 왜 아이들에게 읽어주십니까? (독자: 발견할게 많아서, 재미있으니까...) 네, 여러분들이 무심코 던지신 말이지만 이 말 안에 여러분들이 그림책을 보는 관점이 담겨 있습니다.
요즘은 그림책을 어린이 도서가 아니라 예술이라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글, 그림 작가들이 예술가로서 인정받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림책을 어린이 도서가 아니라 예술로서 접근해 보도록 하지요. 예술에 대한 관점은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방론, 표현론, 형식론, 그리고 본질주의적인 관점입니다.
모방론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 플라토, 아리스토텔레스가 예술은 실체의 모방이라고 한 데서 유래했습니다. 그들은 현실은 실체의 그림자이므로 그 현실을 모방한 예술에 대해서는 큰 가치를 두지 않았지요. 표현론은 예술이 진리나 실재의 객관적 서술이 아니라 작가의 감정과 느낌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18세기의 낭만주의가 그 뿌리라고 할 수 있겠지요.
세 번째 형식론은 예술의 본질을 심미성으로 전제하고 예술 작품이 예술의 질서 안에 있는 자율적 존재라고 전제하는 것입니다. 칸트의 철학으로부터 이론적으로 정리되기 시작한 것으로 예술은 예술 아닌 어떤 것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예술 자체를 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림책 분야에서는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교수인 마리아 니콜라 예바가 이 형식론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는 <How picturebooks work>라는 연구서에서 그림책이란 글과 그림으로 이루어지는 커뮤니케이션의 고유한 형식(form)이라고 정의내렸지요. 이 입장은 그림책의 메시지나 내용이 아니라 그림책이 글과 그림을 통해 어떻게 독자의 반응을 이끌어내는가에 관심을 갖습니다. 대학에서 그림책을 평론하는 많은 분들은 그의 이론을 따르고 있다고 볼 수 있지요. 그런데 이 입장에 따르면 그 작품이 전달하려고 하는 메시지나 교훈 등은 중요한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이 세 가지의 예술론은 예술의 본질을 가시적인 차원에서 발견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예술의 표면에 관심을 갖는 대신 그 의미는 논의의 대상이 아닙니다.
세 번째 형식론은 예술의 본질을 심미성으로 전제하고 예술 작품이 예술의 질서 안에 있는 자율적 존재라고 전제하는 것입니다. 칸트의 철학으로부터 이론적으로 정리되기 시작한 것으로 예술은 예술 아닌 어떤 것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예술 자체를 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림책 분야에서는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교수인 마리아 니콜라 예바가 이 형식론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지요.
마지막으로 본질주의란 모든 존재하는 것에는 본래의 의미가 있음을 전제합니다. 예술 창작은 표상과 모방을 하기도 하지만 사람과 세계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예술 작품은 실재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해 작가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표현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관객으로 하여금 무엇인가를 같이 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이것은 어느 정도 예술에 대한 도구주의적인 입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예술평론가 알랭 드 보통은 <영혼의 박물관>에서 우리의 삶에서 예술의 치유 능력을 인정한 바 있으며, <동물 농장>의 저자인 조지 오웰도 <모든 예술은 프로파간다다>라는 책에서 그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예술관을 자신들의 이데올로기 전파에 가장 잘 활용하고 있는 집단이 사회주의, 공산주의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대중에게 막시즘의 전파 수단으로 사진, 영화 등을 이용하였고 지금도 문화 전반에 걸쳐 그러한 작업을 열심히 해오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림책의 세계관 문제는 심각하게 다루어져야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어린이 교육에 대한 책무성이 있으며 교육이란 그들이 건강한 세계관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림책에 담긴 세계관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문학과 조형예술을 잘 감상하기 위한 공부의 필요성은 대부분 공감하지만 그림책을 읽기 위해서 특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림책이야말로 글과 그림이 복합적으로 기능하면서 그 세계관이 암시적, 은유적으로 표현되는 매체이므로 읽기 연습을 해야 합니다. 『신앙이 자라는 그림책 읽기』는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그림책을 해석한다고 할 때 우리는 우선 세 가지 작업을 해야 합니다. 먼저 그림책의 글, 그림을 꼼꼼히 읽고, 그 작가의 배경과 그가 창작한 다른 작품들을 같이 읽어보고, 그의 작품들에 대해 독자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술이란 독자나 관객을 설득하는 힘을 갖고 있으므로 생각 없이 그 텍스트를 읽다 보면 그 세계관에 자신도 모르게 설득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인터넷 서평에서 그런 현상을 자주 발견하곤 합니다.
그렇게 해서 그 작품에 스며든 세계관, 즉 이 세상을 어떤 렌즈로 보게 하는지를 파악하게 되면 그것에 대해 평가해 보세요. 그 작품이 인간을 어떤 존재로 여기는지, 삶의 목적은 무엇인지, 이 사회의 문제는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지,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그리고 이 사회에서 어떻게 살도록 인도하는지와 같은 질문을 던져볼 수 있습니다. 작가의 명성이나 국제적인 아동도서상 수상 경력, 인터넷 서평 등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서 말이지요.
우리는 이 평론집에서 주로 그러한 책들을 다루려고 했습니다. 칼데콧 도서상을 비롯하여 유명한 국제 도서상을 수상한 작가의 작품들입니다. 그중에는 모리스 센닥, 요시타케 신스케, 앤서니 브라운, 백희나, 자바카 스텝토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은 우리의 주장에 동의하실 수도 있을 테고 거부감이나 당혹감을 표하실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여러분들이 이 책자로 인해 그림책을 더 진지하게 읽고 자신과 우리 문화의 세계관에 대해 성찰할 기회를 갖게 된다면 우리의 일차적인 목표는 달성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어떤 그림책을 해석한다고 할 때 우리는 우선 세 가지 작업을 해야 합니다. 먼저 그림책의 글, 그림을 꼼꼼히 읽고, 그 작가의 배경과 그가 창작한 다른 작품들을 같이 읽어보고, 그의 작품들에 대해 독자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술이란 독자나 관객을 설득하는 힘을 갖고 있으므로 생각 없이 그 텍스트를 읽다 보면 그 세계관에 자신도 모르게 설득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김정준(총신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한국기독교유아교육학회 회장) : 공부를 해오면서 박사학위를 받을 때까지는 세상에서 말하는 이론이 모두 맞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변치 않는 진리를 공부하기 위해 학위를 받았는데 계속해서 변하는 학문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고, 이러한 의문은 한국기독교유아교육학회에 소속되어 공부하면서 무엇이 문제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나는 남자도 되고 여자도 될 수 있을까?’ 제시카 러브의 『인어를 믿나요?』라는 책의 평론을 썼는데, 제시카 러브는 이 책으로 2019년 볼로냐 라가치 상 오페라프리마 부문 대상, 2019년 에즈라 잭 키츠 상 명예상, 2019년 스톤월 북 어워드 대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했습니다. 앞의 두 상은 알지만, 스톤월 북 어워드가 무슨 상인지 알아보니 성소수자 인권 운동의 성지 ‘스톤월’을 상징하는 상으로, LGBT 예술에 대해 주는 상이었습니다. 동성애가 어린이 그림책의 주제가 될 수 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상을 받자마자 우리나라에서 바로 출간되는 사실이 매우 놀라웠습니다. 또 놀라웠던 것은 손자가 여장을 한 모습을 본 할머니가 매우 침착한 표정으로 손자의 성 정체성 전환의 상징물인 목걸이를 걸어주며 동성애 가장행렬에 참여하도록 데리고 가는 장면을 본 독자의 반응이었습니다. ‘할머니의 태도를 통해 부모 역할을 배웠다’, ‘자녀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고 끝까지 지지해 주는 그런 엄마가 되고 싶다.’,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응원과 격려는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라는 반응이었습니다. 이들은 자녀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삶이 인간다운 삶인지 가르쳐야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단지 진정한 부모의 역할은 아이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동성애 관련된 수많은 그림책도 문제이지만 아이들이 가진 잘못된 관점마저 그대로 인정해 주고, 받아주는 것이 좋은 어른의 역할로 그려지는 것이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올바른 부모의 역할은 자녀에게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치는 (잠 22:6) 어른이 되는 것이 성경 말씀을 따르는 길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나는 누구인지, 그리고 하나님과 나는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갈 것인지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자녀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삶이 인간다운 삶인지 가르쳐야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단지 진정한 부모의 역할은 아이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동성애 관련된 수많은 그림책도 문제이지만 아이들이 가진 잘못된 관점마저 그대로 인정해 주고, 받아주는 것이 좋은 어른의 역할로 그려지는 것이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박혜련(더샘물기독학교 교사): 미국에 유학 갔을 때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도서관과 서점을 자주 갔습니다. 어린이 그림책에 젠더주의가 많이 들어가 있고, 굉장히 폭력적인 내용도 많아서 그림책을 읽어주다가 깜짝 놀라는 일들을 많이 겪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림책을 분별하여 읽어야 하는 중요성을 깨닫고, 한인 신학생 커뮤니티 안에서 그림책 모임을 하면서 그림책 연구를 지속해 왔습니다. 코로나 시기에 국내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성균관대학교 그림책전문가 과정에서 현은자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지금까지 연구활동을 함께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이들을 지속적으로 만나왔던 교육자이자 교회에서는 영아부, 청년부를 담당하는 전도사이기도 합니다. 저는 교회에서도 그림책을 활용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나누는 사역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나는 정말 누구일까?’ 요시타케 신스케의 『이게 정말 나일까?』라는 책의 평론을 썼는데, 내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표현적 개인주의’ 사회 속에서 우리 아이들이 건강한 자아관을 형성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표현적 개인주의’란 외부에서 부과된 도덕이나 권위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발견하고 내적 심리와 일치된 행동을 해야 한다는 사상입니다. 즉 현대적 자아는 자기 내면 감정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진정성을 성취하는 자아입니다. 최고의 권위가 나의 내면의 마음이기에 어떤 권위도 제거해 버립니다. 작가의 그림책은 무척 재미있지만 그러한 개인적 표현주의를 따르는 책을 아이들과 어떻게 읽을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서 이 평론을 쓰게 되었습니다.
‘표현적 개인주의’란 외부에서 부과된 도덕이나 권위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발견하고 내적 심리와 일치된 행동을 해야 한다는 사상입니다. 즉 현대적 자아는 자기 내면 감정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진정성을 성취하는 자아입니다. 최고의 권위가 나의 내면의 마음이기에 어떤 권위도 제거해 버립니다. 작가의 그림책은 무척 재미있지만 그러한 개인적 표현주의를 따르는 책을 아이들과 어떻게 읽을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서 이 평론을 쓰게 되었습니다.
강다혜(성균관대학교 생활과학연구소 연구원) : 저는 ‘남들보다 뛰어나야 내가 산다’ 앤서니 브라운의 『겁쟁이 윌리』의 평론을 썼습니다.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은 국내에서도 꽤 유명합니다. 『고릴라』와 『돼지책』이 가장 대표적이겠죠. 그런데 이러한 그림책을 가만히 보면, 등장인물들의 심리와 정서, 그리고 인물들 사이의 관계가 그리 건강하지 않습니다. 저는 ‘왜 앤서니 브라운의 등장인물이 건강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가지고, 앤서니 브라운의 대표적인 캐릭터인 ‘윌리’를 연구하다가 그의 생각의 기저에 유물론적 사고와 진화론적 사고가 깔려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앤서니 브라운이 ‘고릴라’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이것도 그의 진화론적 사고에서 나타나게 된 것을 발견하였죠. 어느 날, 저희 아이가 『겁쟁이 윌리』를 읽고 이 책에서 주장하는 세계관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하였습니다. 이를 계기로 저는 앤서니 브라운의 진화론적 사고에서 파생되는 사상을 비판적으로 보려고 노력하며 이 주제로 논문을 썼습니다. 논문을 학회지에 내면, 심사를 받습니다. 그런데 심사위원 중 한 분은 저의 논문은 소설이라고 하셨죠. 이런 허무맹랑한 논문을 게재할 수 없다고 비판하셨습니다. 그림책 연구하시는 분들이 건드리지 못하는 성역의 작가들이 몇몇 있는 것 같은데, 그 중 한 분이 앤서니 브라운인 것 같습니다. 제 글을 읽는 분들도 저와 같은 생각을 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객관적 근거를 바탕으로 글을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앤서니 브라운의 생각의 기저가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보았을 때 결코 정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심을 가지고 작가의 다른 책도 들여다보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썼습니다. 그리고 어른들이 읽어도 감동을 받을 수 있는 그림책도 많지만 그림책 작가님들이 조금 더 그림책은 아동을 위한 책으로 생각하고 작업을 해주시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린이들의 문화를 성인이 빌려 쓸 수는 있지만 아예 빼앗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왜 앤서니 브라운의 등장인물이 건강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가지고, 앤서니 브라운의 대표적인 캐릭터인 ‘윌리’를 연구하다가 그의 생각의 기저에 유물론적 사고와 진화론적 사고가 깔려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앤서니 브라운이 ‘고릴라’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이것도 그의 진화론적 사고에서 나타나게 된 것을 발견하였죠.
김현경 (경인교육대학교 유아교육과 강사) : 저는 ‘엄마는 왜 떠났을까?’ 앤서니 브라운의 『돼지책』의 평론을 썼습니다. 저희 아이와의 에피소드로 글을 시작했는데,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던 만 3~4세 무렵 빨래를 널고 있는 저를 보며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엄마, 나도 할게. 엄마 힘들지? 우리 때문에 집을 나갈 거야?” 하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빨래를 조물거렸습니다. 저는 아이의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는데, 알고 보니 어린이집에서 야심 차게 그림책 축제를 『돼지책』으로 진행을 했었던 것입니다. 그때까지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이와 같은 주제의 그림책을 통해 아이가 불안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원 시절 그림책 마니아처럼 그림책 공부를 하고 그림책 전시를 찾아다녔었는데요. 아이를 낳고 나서는 예술적으로 매력이 있었던 그림책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자녀를 낳고 기르신 분들은 많이 공감하실 텐데 내 아이에게는 무엇이든 좋은 것을 주고 싶어 하는 것이 엄마의 마음이잖아요? 심지어 먹는 것도 유기능을 찾게 되는데, 아이에게 맞지 않는 음식을 줄 수 없는 것처럼 책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책은 여러 용도로 여러 사람들에게 쓰일 수 있겠지만, 특히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어린이들에게 정말 좋은 그림책을 읽히는 것은 너무도 중요함을 깨닫게 되어 이 그림책의 평론을 쓰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예술적으로 매력이 있었던 그림책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자녀를 낳고 기르신 분들은 많이 공감하실 텐데 내 아이에게는 무엇이든 좋은 것을 주고 싶어 하는 것이 엄마의 마음이잖아요? 심지어 먹는 것도 유기능을 찾게 되는데, 아이에게 맞지 않는 음식을 줄 수 없는 것처럼 책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국경아 (성균관대학교 생활과학연구소 연구원) : 저는 ‘착한 게 나쁜 건가요?’ 조리 존의 『착한 달걀』과 토니 로스의 『착한 어린이 대상! 제제벨』의 평론을 썼습니다. 우리는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을 하지만 막상 착하게 사는 것이 그렇게 매력적이지는 않아! 힘들어!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착함’을 다루는 그림책 중에서는 ‘착함’을 마냥 긍정적인 시선으로만 보지 않은 경우들이 많은데, 현대 사회에서 ‘착함’이 어떤 부정적인 의미로 다가오는지, 독자들은 이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이 평론을 쓰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사상적 바탕에서 율법주의에 대한 반발로 ‘착함’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그림책이 감정적 지지를 얻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도 나도 완벽하지 않으니 서로를 포용하는 것에서 만족하거나 규범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진정한 해결책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덕윤리에서도 덕스러운 성품은 반복과 훈련을 통해 체득되는 것임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신자의 성화 과정에도 경건의 훈련이 요구된다는 점과 일맥상통합니다. 물론 경건의 훈련이 즐거운 것만은 아니지만 그 과정을 통해 기쁨과 능력을 경험하고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열매를 맺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사상적 바탕에서 율법주의에 대한 반발로 ‘착함’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그림책이 감정적 지지를 얻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도 나도 완벽하지 않으니 서로를 포용하는 것에서 만족하거나 규범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진정한 해결책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수형 (안산대학교 언어치료아동보육과 겸임교수) : 저는 ‘당신은 무엇에 집착하나요?’ 모리스 샌닥의 『깊은 밤 부엌에서』를 박은주(경민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교수님과 공동 평론하였고, ‘엄마, 귀신같은데 선녀래!’ 백희나의 『이상한 엄마』의 평론을 썼습니다. 모리스 샌닥의 그림책은 실제로 많은 어린이들이 즐겨 읽지 않는 것을 기관이나 수업 현장에서 오랫동안 확인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기하게도 많은 그림책 비평가들과 전문가들은 항상 언급하고 현대 그림책의 문을 열였다는 호평을 합니다. 어린이 그림책은 발달적인 특성상 보이지 않는 무의식을 탐구하기보다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사물을 통하여 소통하는 것이 적합합니다. 그러나 모리스 샌닥의 그림책은 심리학의 정신분석 해석 연구가 가장 많이 이루어졌습니다. 순수하고 깨끗해야 할 어린이 도서인 그림책에 인간의 가장 어두운 부분을 끌어오는 심리학의 정신분석 해석이 적합한 것인지 검증해 볼 필요성이 느껴져 『깊은 밤 부엌에서』를 평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백희나 작가의 『구름빵』 그림책을 너무 좋아합니다. 영상미도 아름답고 이야기도 재미있고요. 그러나 요즘 나오는 그림책들은 선뜻 품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백희나 작가님께 권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시 예전처럼 아이들을 먼저 생각해 주는 그림책을 만들어주시면 어떠실까요? 많은 분들이 좋아하시는 작가님의 그림책, 특히 한국 작가를 비평하는 것은 많은 용기가 필요한, 쉽지 않은 일이지만 작가님께 간곡히 부탁을 드리고 싶은 마음에서 평론을 쓰게 되었습니다.
어린이 그림책은 발달적인 특성상 보이지 않는 무의식을 탐구하기보다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사물을 통하여 소통하는 것이 적합합니다. 그러나 모리스 샌닥의 그림책은 심리학의 정신분석 해석 연구가 가장 많이 이루어졌습니다.
임해영 (그림책박물관 운영자) : 저는 ‘그는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찾았을까?’ 라파엘 프리에의 『블레즈씨에게 일어난 일』의 평론을 썼습니다. 최근에 왜 이렇게 환경 그림책이 쏟아지는 것일까요? 환경을 주제로 한 그림책의 내용이 과학적 진실과 거리가 먼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환경 그림책을 과학적으로 반박하는 것보다는 왜 이와 같은 그림책이 쏟아지고 있는지 사상적인 부분을 연구하였고, 이러한 생각의 바탕에 ‘생태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깔려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생태주의란 인간 중심적으로는 더 이상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을 위해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자연 생태를 중심에 놓고 환경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상입니다. 인간은 다른 생명체와 동등한 가치를 지닐뿐 특권을 지닌 존재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오히려 인간보다 지구를, 자연을, 동물을 더 우위에 있게 하는 사상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사회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을 합니다. 생태주의가 단순한 자연 보전 주의가 아닌 정치 이데올로기화되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각국의 녹색당은 하나같이 동성애 성해방 운동을 함께 하지요.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상으로 흐르게 됩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환경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생육하고 번성하여 다스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진짜 환경 이야기는 창조주를 인정하고 청지기임을 자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가짜 정보가 가득한 환경 그림책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 만물을 아끼고 돌보는 책임감, 이웃을 배려하는 좋은 성품을 길러주는 그림책이 진짜 환경 그림책입니다.
생태주의란 인간 중심적으로는 더 이상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을 위해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자연 생태를 중심에 놓고 환경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상입니다. 인간은 다른 생명체와 동등한 가치를 지닐뿐 특권을 지닌 존재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오히려 인간보다 지구를, 자연을, 동물을 더 우위에 있게 하는 사상입니다.
현은자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 명예교수) : 저희들은 아이들에게 “이 세상에 태어나길 정말 잘했다”라고 격려하는 그림책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 일들을 하려고 보니 그렇지 않은 책들에 너무 많이 현혹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정말 성실하게 글과 그림을 열심히 읽어보면 책이 가진 세계관이 떠오를 것입니다. 좋은 세계관도 있고, 나쁜 세계관도 있겠지요. 우리는 나쁜 세계관을 걸러내는 작업을 하기 위해서 이 책을 쓴 것입니다. 이 책을 읽어보시면 여러분이 그런 훈련에 동참해 보실 수도 있고, 기독교인들이라면 로마서 12장 2절 말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말씀처럼 성경 신자로서의 여러분들의 정체성을 더욱 견고히 하고, 자녀들의 신앙 교육에 큰 도움을 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림책이 대중화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즐겨 읽는 책이 되었습니다. 원래의 우리의 시도와는 다르게 우리가 문화 변혁을 일으킬 수 있는 그런 입장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잘못된 문화를 바로잡고, 좋은 문화를 퍼트릴 수 있는 하나님의 청지기가 될 수 있겠다는 소망과 믿음, 사명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는 단순히 책 썼기 때문에 자랑하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그런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책에 실리지 않은 평론들이 웹진 베이직(https://www.picturebook-basic.com)에 더 많이 있습니다. 댓글이나 이메일을 통해서 여러분의 의견을 들려주세요. 마음껏 비판하셔도 좋습니다. 진지한 토론이 시작될 것이고 우리의 평론 문화는 더욱더 성숙해 나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평론 문화가 상당히 빈약합니다. 평론은 또 다른 평론을 위한 것입니다. 계속해서 토론이 일어날 수 있어야 문화가 발전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 다 같이 그림책의 좋은 문화를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잘못된 문화를 바로잡고, 좋은 문화를 퍼트릴 수 있는 하나님의 청지기가 될 수 있겠다는 소망과 믿음, 사명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는 단순히 책 썼기 때문에 자랑하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그런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현장에 참여하여 주신 독자들과 유익한 질문과 답변의 시간을 마치고 마지막에는 『신앙이 자라는 그림책 읽기』에서 저자들이 추천한 그림책을 추첨을 통해 전달하는 선물 증정 시간으로 흐뭇하게 마무리되었습니다. 일기 예보상 많은 비가 예상되었지만 좋은 날씨를 허락해 주셔서 많은 분들이 참여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드리며 모든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신앙이 자라는 그림책 저자와의 북토크 (2024년7월16일)
어린이 교육 전문가와 함께 신앙이 자라는 그림책 읽기가 두란노 출판사에서 2024년 5월 14일 출간되었습니다. 출간을 축하하며 저자 9명이 함께 모여 책이 출간되기까지의 과정과 활동의 목적을 함께 나누며, 독자와의 북토크를 카페 그림책박물관에서 진행했습니다. 그림책의 일차적인 독자는 어린이입니다. 그러나 그림책 창작과 번역의 풍요함 속에서 정작 어린이들에게 읽힐 만한 작품들을 찾기 위해서는 전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이 현실입니다. 어린이에게 좋은 책을 골라줄 수 있는 어른들의 안목은 어느 때 보다 절실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심미적인 그림책, 교육적 목적에 적합한 그림책을 넘어 신앙의 관점에서 그림책의 세계관을 살피고 골라서 읽어야 할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림책은 세상과 인간과 자신을 바라보는 작가의 ‘관점'이 담겨 있고 작가의 관점이 그림책을 통해 아이에게 전달되며, 그림책의 세계관이 아이의 세계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특히 은유적으로 세계관이 표현되는 그림책은 읽기 연습과 가이드가 더욱 필요한 영역입니다. 눈을 밝히어 성경을 기준으로 그림책을 평가하고 비평하는 방법을 전하는 이 신앙이 자라는 그림책 읽기 책을 통해 그리스도인 부모와 교사는 성경적 세계관 안에서 올바른 그림책을 구별하는 신앙의 분별력을 키울 것이며 아이의 신앙이 기독교 세계관 안에서 자라게 될 것입니다. 저자, 현은자, 박혜련, 강다혜, 이수형, 박은주, 김정준, 김현경, 이수형, 국경아, 임해영 입니다.
01_아이들에게 어떤 책을 읽어주십니까? (현은자)
아이들에게 어떤 책을 읽어주십니까? 좋은 그림책을 읽어주시죠? 그렇죠? ^^ 그러면 좋은 그림책의 정의가 뭘까요? 정의라고 하니까 굉장히 부담스러운데... 어떤 책이 좋은 그림책이예요? ^^
예술에 대한 관점 4가지 - 모방론, 표현론, 형식론, 본질주의적 관점 (현은자)
요즘은 그림책을 어린이 도서가 아니라 예술이라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글, 그림 작가들이 예술가로서 인정받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림책을 어린이 도서가 아니라 예술로서 접근해 보도록 하지요. 그런데 예술은 과연 무엇일까요? 예술에 대한 관점은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방론, 표현론, 형식론, 그리고 본질주의적인 관점입니다. 모방론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 플라토, 아리스토텔레스가 예술은 실체의 모방이라고 한데서 유래했습니다. 그들은 현실은 실체의 그림자이므로 그 현실을 모방한 예술에 대해서는 큰 가치를 두지 않았지요. 표현론은 예술이 진리나 실재의 객관적 서술이 아니라 작가의 감정과 느낌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18세기의 낭만주의가 그 뿌리라고 할 수 있겠지요. 세 번째 형식론은 예술의 본질을 심미성으로 전제하고 예술 작품이 예술의 질서 안에 있는 자율적 존재라고 전제하는 것입니다. 칸트의 철학으로부터 이론적으로 정리되기 시작한 것으로 예술은 예술 아닌 어떤 것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예술 자체를 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림책 분야에서는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교수인 마리아 니콜라예바가 이 형식론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는 'How picturebooks work'라는 연구서에서 그림책이란 글과 그림으로 이루어지는 커뮤티케이션의 고유한 형식(form)이라고 정의내렸지요. 이 입장은 그림책의 메시지나 내용이 아니라 그림책이 글과 그림을 통해 어떻게 독자의 반응을 이끌어내는가에 관심을 갖습니다. 대학에서 그림책을 평론하는 많은 분들은 그의 이론을 따르고 있다고 볼 수 있지요. 그런데 이 입장에 따르면 그 작품이 전달하려고 하는 메시지나 교훈 등은 중요한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의 예술론은 예술의 본질을 가시적인 차원에서 발견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예술의 표면에 관심을 갖는 대신 그 의미는 논의의 대상이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본질주의란 모든 존재하는 것에는 본래의 의미가 있음을 전제합니다. 예술 창작은 표상과 모방을 하기도 하지만 사람과 세계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예술 작품은 실재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해 작가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표현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관객으로 하여금 무엇인가를 같이 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이것은 어느 정도 예술에 대한 도구주의적인 입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예술평론가 알랭 드 보통은 '영혼의 박물관'에서 우리의 삶에서 예술의 치유 능력을 인정한 바 있으며, '동물농장'의 저자인 조지 오웰도 '모든 예술은 프로파간다다'라는 책에서 그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예술관을 자신들의 이데올로기 전파에 가장 잘 활용하고 있는 집단이 사회주의, 공산주의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대중에게 막시즘의 전파 수단으로 사진, 영화 등을 이용하였고 지금도 문화 전반에 걸쳐 그러한 작업을 열심히 해오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림책의 세계관 문제는 심각하게 다루어져야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어린이 교육에 대한 책무성이 있으며 교육이란 그들이 건강한 세계관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림책에 담긴 세계관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현은자)
그렇다면 그림책에 담긴 세계관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문학과 조형예술을 잘 감상하기 위한 공부의 필요성은 대부분 공감하지만 그림책을 읽기 위해서 특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림책이야 말로 글과 그림이 복합적으로 기능하면서 그 세계관이 암시적, 은유적으로 표현되는 매체이므로 읽기 연습을 해야 합니다. '신앙이 자라는 그림책 읽기'는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그림책을 해석한다고 할 때 우리는 우선 세 가지 작업을 해야 합니다. 1. 그림책의 글, 그림을 꼼꼼히 읽고 2. 그 작가의 배경과 그가 창작한 다른 작품들을 같이 읽어보고, 3. 그의 작품들에 대해 독자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술이란 독자나 관객을 설득하는 힘을 갖고 있으므로 생각없이 그 텍스트를 읽다 보면 그 세계관에 자신도 모르게 설득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인터넷 서평에서 그런 현상을 자주 발견하곤 합니다. 그렇게 해서 그 작품에 스며든 세계관, 즉 이 세상을 어떤 렌즈로 보게하는지를 파악하게 되면 그것에 대해 평가해 보세요. 그 작품이 인간을 어떤 존재로 여기는지, 삶의 목적은 무엇인지, 이 사회의 문제는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지,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그리고 이 사회에서 어떻게 살도록 인도하는지와 같은 질문을 던져볼 수 있습니다. 작가의 명성이나 국제적인 아동도서상 수상경력, 인터넷 서평 등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서 말이지요. 우리는 이 평론집에서 주로 그러한 책들을 다루려고 했습니다. 칼데콧 도서상을 비롯하여 유명한 국제 도서상을 수상한 작가의 작품들입니다. 그 중에는 모리스 센닥, 요스다케 신스케, 앤서니 브라운, 백희나, 자바카 스텝토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은 우리의 주장에 동의하실 수도 있을 테고 거부감이나 당혹감을 표하실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여러분들이 이 책자로 인해 그림책을 더 진지하게 읽고 자신과 우리 문화의 세계관에 대해 성찰할 기회를 갖게 된다면 우리의 일차적인 목표는 달성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댓글이나 이메일을 통해서 여러분의 의견을 들려주신다면 진지한 토론이 시작될 것이고 우리의 평론 문화는 더욱 더 성숙해 나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02_세상에 있는 모든 사물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현은자)
'세상에 있는 모든 사물에는 의미가 있다.' 라는 것을 전제로 하는 거예요. 예술에도 의미가 있다는 것이죠. 의미가 있다는 것이 무엇이냐면 그 안에 작가의 관점, 즉 세계관이 들어가 있다는 뜻이에요. 세상의 모든 사물들은 목적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것이 쓰여진 목적이 있어요. 즉 의미가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취하고 있는 것은 예술관의 네번째 입장, 본질주의적인 입장입니다.
03_세계관을 알려면 그림책을 열심히 촘촘히 읽어야합니다. (현은자)
세계관을 알려면 그림책을 열심히 촘촘히 읽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그림책이 어떤 사람들에 의해 쓰여 졌는가? 어떤 문화권에서 쓰여 졌는가? 그 작가의 배경을 보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이 그림책에 대한 독자의 반응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책을 읽으면서 그것에 반응할 때 사실 우리는 그 책이 요구하는 나 자신이 되거나 아니면 계속해서 그것을 거부하게 되거나 합니다. 작가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남을 설득하는 기술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감정이입을 하게 하고, 공감을 하게 하는 그런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죠. 그래서 그런 책들을 읽을 때는 자신도 모르게 거기에 계속 공감하면서 읽게 됩니다. 그게 설득의 힘입니다.
04_어떤 세계관의 그림책을 읽어주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현은자)
글, 그림을 촘촘히 읽고, 작가에 대해서 면밀히 살펴보고, 그 책에 대해서 독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살펴봐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준다고 할때 세계관의 의미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줄 때 작가의 세계관을 통해 전달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책을 읽어주느냐는 너무나 중요합니다. 우리는 아이들을 잘 키워야 하는 책무성이 있는데 자신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나쁜 세계관을 심어주는 책이라면 굉장히 곤란하지 않습니까?
05_ 앤서니브라운의 고릴라는 과연 어린이 것인가? (현은자)
제 글이 사람들을 당혹하게 하거나 거부감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앤서니 브라운 같은 작가에 대해서 세계관적으로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 말이지요. 예를 들어 '앤서니 브라운의 고릴라는 과연 어린이 것인가?' 라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결국은 소아성애라는 문화막시즘이 그 안에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그래서 그대로 논문도 냈고, 통과되었고, 출판되었습니다.
06_여러분들이 책과 베이직 웹진을 읽어보시고 마음껏 비평해도 좋습니다. (현은자)
아마 많은 분들이 충격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공산주의, 소아성애, 문화막시즘... 이런 것들이 다 있거든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한번 좀 읽어보세요. 그러면서 마음껏 비판하셔도 좋습니다. 우리나라 평론 문화가 상당히 빈약합니다. 그림책에 대한 연구 역량이 그동안 많이 쌓아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림책 평론분야는 더욱 빈약합니다. 평론은 또 다른 평론을 위한 것이예요. 계속해서 토론이 일어날 수 있어야 문화가 발전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 다 같이 그림책의 좋은 문화를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07_자신의 이데올로기를 책 속에 심어서 의도적으로 사람들을 세뇌시키기 때문에 세계관을 면밀히 살펴야 합니다. (현은자)
예술의 네 번째 관점, 즉 작가의 세계관이 드러난 것이고, 그것이 사람들을 설득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조지오웰이 쓴 문화평론 중에 '모든 예술은 프로파간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아주 본질을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의도적으로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책 속에 심어서 사람들을 계속해서 세뇌시키는 일들을 많이 해 왔습니다. 예술의 네 번째 기능을 가장 잘 활용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들을 위해 그림책의 세계관을 면밀히 봐야 합니다.
08_아이들에게 이 세상에 태어나길 정말 잘했다 라고 격려하는 그림책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현은자)
아이들에게 이 세상에 태어나길 정말 잘했다 라고 격려하는 그림책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 일들을 하려고 보니 그렇지 않은 책들에 너무 많이 현혹되어서 주로 읽어주는 것들을 발견하게 되어 여러분들이 현혹되지 않고 정말 성실하게 글과 그림을 열심히 읽어보면 그들의 세계관이 떠오를 것입니다. 좋은 세계관도 있고, 나쁜 세계관도 있겠지요. 우리는 나쁜 세계관을 걸러내는 작업을 하기 위해서 이 책을 쓴 것입니다. 읽어보시면 여러분이 그런 훈련에 같이 한번 동참해 보실수도 있고, 기독교인들이라면 로마서 12장 2절 말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처럼 성경신자로서의 여러분들의 정체성을 더욱 견고히 하고, 자녀들의 신앙 교육에 큰 도움을 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09_좋은 문화를 퍼트릴 수 있는 하나님의 청지지가 될 수 있길 바랍니다. (현은자)
그림책이 대중화되며 많은 사람들이 즐겨 읽는 책이 되었습니다. 원래의 우리의 시도와는 다르게 우리가 문화 변혁을 일으킬 수 있는 그런 입장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잘못된 문화를 바로 잡고, 좋은 문화를 퍼트릴 수 있는 하나님의 청지기가 될 수 있겠다는 소망과 믿음, 사명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는 단순히 책 썼기 때문에 자랑하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그런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지난 2024년 7월 16일 고양시 덕양구에 소재한 Cafe 그림책박물관에서 『신앙이 자라는 그림책 읽기(두란노, 2024)』 북토크가 진행되었다. 그림책 읽기를 위한 수많은 책들이 출간되고 있지만 성경의 렌즈로 그림책을 읽는 노력은 그동안 무방비 상태의 수준이었다. 기독 신앙의 관점으로 그림책 비평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현은자 교수와 ‘한국기독교유아교육학회’에서 동역하는 8명의 전문가들이 공동 집필하였다. 먼저 대표 저자이자 이 모임을 시작한 현은자 교수가 책이 출간되기까지의 과정과 그림책 읽기에 있어서 세계관의 중요성에 대한 짧은 강의를 해주셨고, 저자들이 돌아가며 자신이 평론한 글에 대해 소개하고, 질문과 답변 시간을 가지면서 마무리되었다. 이수형 교수의 사회와 저자 5명 (현은자, 김정준, 박혜련, 강다혜, 김현경)의 패널로 진행되었던 북토크 현장에서의 내용을 정리해 본다.
현은자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 명예교수) : 아이들에게 어떤 책을 읽어주십니까? 좋은 그림책을 읽어주고자 하시죠? 어떤 책이 좋은 그림책입니까? (독자: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책...) 네,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책, 그림이 아름다운 책, 서사성이 좋은 그림책 등등이 있겠지요. 그러면 예를 들어 앤서니브라운의 책을 왜 아이들에게 읽어주십니까? (독자: 발견할게 많아서, 재미있으니까...) 네, 여러분들이 무심코 던지신 말이지만 이 말 안에 여러분들이 그림책을 보는 관점이 담겨 있습니다.
요즘은 그림책을 어린이 도서가 아니라 예술이라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글, 그림 작가들이 예술가로서 인정받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림책을 어린이 도서가 아니라 예술로서 접근해 보도록 하지요. 예술에 대한 관점은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방론, 표현론, 형식론, 그리고 본질주의적인 관점입니다.
모방론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 플라토, 아리스토텔레스가 예술은 실체의 모방이라고 한 데서 유래했습니다. 그들은 현실은 실체의 그림자이므로 그 현실을 모방한 예술에 대해서는 큰 가치를 두지 않았지요. 표현론은 예술이 진리나 실재의 객관적 서술이 아니라 작가의 감정과 느낌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18세기의 낭만주의가 그 뿌리라고 할 수 있겠지요.
세 번째 형식론은 예술의 본질을 심미성으로 전제하고 예술 작품이 예술의 질서 안에 있는 자율적 존재라고 전제하는 것입니다. 칸트의 철학으로부터 이론적으로 정리되기 시작한 것으로 예술은 예술 아닌 어떤 것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예술 자체를 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림책 분야에서는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교수인 마리아 니콜라 예바가 이 형식론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는 <How picturebooks work>라는 연구서에서 그림책이란 글과 그림으로 이루어지는 커뮤니케이션의 고유한 형식(form)이라고 정의내렸지요. 이 입장은 그림책의 메시지나 내용이 아니라 그림책이 글과 그림을 통해 어떻게 독자의 반응을 이끌어내는가에 관심을 갖습니다. 대학에서 그림책을 평론하는 많은 분들은 그의 이론을 따르고 있다고 볼 수 있지요. 그런데 이 입장에 따르면 그 작품이 전달하려고 하는 메시지나 교훈 등은 중요한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이 세 가지의 예술론은 예술의 본질을 가시적인 차원에서 발견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예술의 표면에 관심을 갖는 대신 그 의미는 논의의 대상이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본질주의란 모든 존재하는 것에는 본래의 의미가 있음을 전제합니다. 예술 창작은 표상과 모방을 하기도 하지만 사람과 세계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예술 작품은 실재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해 작가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표현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관객으로 하여금 무엇인가를 같이 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이것은 어느 정도 예술에 대한 도구주의적인 입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예술평론가 알랭 드 보통은 <영혼의 박물관>에서 우리의 삶에서 예술의 치유 능력을 인정한 바 있으며, <동물 농장>의 저자인 조지 오웰도 <모든 예술은 프로파간다다>라는 책에서 그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예술관을 자신들의 이데올로기 전파에 가장 잘 활용하고 있는 집단이 사회주의, 공산주의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대중에게 막시즘의 전파 수단으로 사진, 영화 등을 이용하였고 지금도 문화 전반에 걸쳐 그러한 작업을 열심히 해오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림책의 세계관 문제는 심각하게 다루어져야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어린이 교육에 대한 책무성이 있으며 교육이란 그들이 건강한 세계관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림책에 담긴 세계관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문학과 조형예술을 잘 감상하기 위한 공부의 필요성은 대부분 공감하지만 그림책을 읽기 위해서 특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림책이야말로 글과 그림이 복합적으로 기능하면서 그 세계관이 암시적, 은유적으로 표현되는 매체이므로 읽기 연습을 해야 합니다. 『신앙이 자라는 그림책 읽기』는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그림책을 해석한다고 할 때 우리는 우선 세 가지 작업을 해야 합니다. 먼저 그림책의 글, 그림을 꼼꼼히 읽고, 그 작가의 배경과 그가 창작한 다른 작품들을 같이 읽어보고, 그의 작품들에 대해 독자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술이란 독자나 관객을 설득하는 힘을 갖고 있으므로 생각 없이 그 텍스트를 읽다 보면 그 세계관에 자신도 모르게 설득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인터넷 서평에서 그런 현상을 자주 발견하곤 합니다.
그렇게 해서 그 작품에 스며든 세계관, 즉 이 세상을 어떤 렌즈로 보게 하는지를 파악하게 되면 그것에 대해 평가해 보세요. 그 작품이 인간을 어떤 존재로 여기는지, 삶의 목적은 무엇인지, 이 사회의 문제는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지,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그리고 이 사회에서 어떻게 살도록 인도하는지와 같은 질문을 던져볼 수 있습니다. 작가의 명성이나 국제적인 아동도서상 수상 경력, 인터넷 서평 등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서 말이지요.
우리는 이 평론집에서 주로 그러한 책들을 다루려고 했습니다. 칼데콧 도서상을 비롯하여 유명한 국제 도서상을 수상한 작가의 작품들입니다. 그중에는 모리스 센닥, 요시타케 신스케, 앤서니 브라운, 백희나, 자바카 스텝토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은 우리의 주장에 동의하실 수도 있을 테고 거부감이나 당혹감을 표하실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여러분들이 이 책자로 인해 그림책을 더 진지하게 읽고 자신과 우리 문화의 세계관에 대해 성찰할 기회를 갖게 된다면 우리의 일차적인 목표는 달성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김정준 (총신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한국기독교유아교육학회 회장) : 공부를 해오면서 박사학위를 받을 때까지는 세상에서 말하는 이론이 모두 맞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변치 않는 진리를 공부하기 위해 학위를 받았는데 계속해서 변하는 학문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고, 이러한 의문은 한국기독교유아교육학회에 소속되어 공부하면서 무엇이 문제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나는 남자도 되고 여자도 될 수 있을까?’ 제시카 러브의 『인어를 믿나요?』라는 책의 평론을 썼는데, 제시카 러브는 이 책으로 2019년 볼로냐 라가치 상 오페라프리마 부문 대상, 2019년 에즈라 잭 키츠 상 명예상, 2019년 스톤월 북 어워드 대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했습니다. 앞의 두 상은 알지만, 스톤월 북 어워드가 무슨 상인지 알아보니 성소수자 인권 운동의 성지 ‘스톤월’을 상징하는 상으로, LGBT 예술에 대해 주는 상이었습니다. 동성애가 어린이 그림책의 주제가 될 수 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상을 받자마자 우리나라에서 바로 출간되는 사실이 매우 놀라웠습니다. 또 놀라웠던 것은 손자가 여장을 한 모습을 본 할머니가 매우 침착한 표정으로 손자의 성 정체성 전환의 상징물인 목걸이를 걸어주며 동성애 가장행렬에 참여하도록 데리고 가는 장면을 본 독자의 반응이었습니다. ‘할머니의 태도를 통해 부모 역할을 배웠다’, ‘자녀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고 끝까지 지지해 주는 그런 엄마가 되고 싶다.’,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응원과 격려는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라는 반응이었습니다. 이들은 자녀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삶이 인간다운 삶인지 가르쳐야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단지 진정한 부모의 역할은 아이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동성애 관련된 수많은 그림책도 문제이지만 아이들이 가진 잘못된 관점마저 그대로 인정해 주고, 받아주는 것이 좋은 어른의 역할로 그려지는 것이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올바른 부모의 역할은 자녀에게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치는 (잠 22:6) 어른이 되는 것이 성경 말씀을 따르는 길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나는 누구인지, 그리고 하나님과 나는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갈 것인지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박혜련 (더샘물기독학교 교사) : 미국에 유학 갔을 때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도서관과 서점을 자주 갔습니다. 어린이 그림책에 젠더주의가 많이 들어가 있고, 굉장히 폭력적인 내용도 많아서 그림책을 읽어주다가 깜짝 놀라는 일들을 많이 겪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림책을 분별하여 읽어야 하는 중요성을 깨닫고, 한인 신학생 커뮤니티 안에서 그림책 모임을 하면서 그림책 연구를 지속해 왔습니다. 코로나 시기에 국내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성균관대학교 그림책전문가 과정에서 현은자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지금까지 연구활동을 함께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이들을 지속적으로 만나왔던 교육자이자 교회에서는 영아부, 청년부를 담당하는 전도사이기도 합니다. 저는 교회에서도 그림책을 활용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나누는 사역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나는 정말 누구일까?’ 요시타케 신스케의 『이게 정말 나일까?』라는 책의 평론을 썼는데, 내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표현적 개인주의’ 사회 속에서 우리 아이들이 건강한 자아관을 형성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표현적 개인주의’란 외부에서 부과된 도덕이나 권위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발견하고 내적 심리와 일치된 행동을 해야 한다는 사상입니다. 즉 현대적 자아는 자기 내면 감정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진정성을 성취하는 자아입니다. 최고의 권위가 나의 내면의 마음이기에 어떤 권위도 제거해 버립니다. 작가의 그림책은 무척 재미있지만 그러한 개인적 표현주의를 따르는 책을 아이들과 어떻게 읽을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서 이 평론을 쓰게 되었습니다.
강다혜 (성균관대학교 생활과학연구소 연구원) : 저는 ‘남들보다 뛰어나야 내가 산다’ 앤서니 브라운의 『겁쟁이 윌리』의 평론을 썼습니다.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은 국내에서도 꽤 유명합니다. 『고릴라』와 『돼지책』이 가장 대표적이겠죠. 그런데 이러한 그림책을 가만히 보면, 등장인물들의 심리와 정서, 그리고 인물들 사이의 관계가 그리 건강하지 않습니다. 저는 ‘왜 앤서니 브라운의 등장인물이 건강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가지고, 앤서니 브라운의 대표적인 캐릭터인 ‘윌리’를 연구하다가 그의 생각의 기저에 유물론적 사고와 진화론적 사고가 깔려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앤서니 브라운이 ‘고릴라’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이것도 그의 진화론적 사고에서 나타나게 된 것을 발견하였죠. 어느 날, 저희 아이가 『겁쟁이 윌리』를 읽고 이 책에서 주장하는 세계관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하였습니다. 이를 계기로 저는 앤서니 브라운의 진화론적 사고에서 파생되는 사상을 비판적으로 보려고 노력하며 이 주제로 논문을 썼습니다. 논문을 학회지에 내면, 심사를 받습니다. 그런데 심사위원 중 한 분은 저의 논문은 소설이라고 하셨죠. 이런 허무맹랑한 논문을 게재할 수 없다고 비판하셨습니다. 그림책 연구하시는 분들이 건드리지 못하는 성역의 작가들이 몇몇 있는 것 같은데, 그 중 한 분이 앤서니 브라운인 것 같습니다. 제 글을 읽는 분들도 저와 같은 생각을 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객관적 근거를 바탕으로 글을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앤서니 브라운의 생각의 기저가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보았을 때 결코 정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심을 가지고 작가의 다른 책도 들여다보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썼습니다. 그리고 어른들이 읽어도 감동을 받을 수 있는 그림책도 많지만 그림책 작가님들이 조금 더 그림책은 아동을 위한 책으로 생각하고 작업을 해주시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린이들의 문화를 성인이 빌려 쓸 수는 있지만 아예 빼앗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김현경 (경인교육대학교 유아교육과 강사) : 저는 ‘엄마는 왜 떠났을까?’ 앤서니 브라운의 『돼지책』의 평론을 썼습니다. 저희 아이와의 에피소드로 글을 시작했는데,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던 만 3~4세 무렵 빨래를 널고 있는 저를 보며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엄마, 나도 할게. 엄마 힘들지? 우리 때문에 집을 나갈 거야?” 하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빨래를 조물거렸습니다. 저는 아이의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는데, 알고 보니 어린이집에서 야심 차게 그림책 축제를 『돼지책』으로 진행을 했었던 것입니다. 그때까지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이와 같은 주제의 그림책을 통해 아이가 불안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원 시절 그림책 마니아처럼 그림책 공부를 하고 그림책 전시를 찾아다녔었는데요. 아이를 낳고 나서는 예술적으로 매력이 있었던 그림책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자녀를 낳고 기르신 분들은 많이 공감하실 텐데 내 아이에게는 무엇이든 좋은 것을 주고 싶어 하는 것이 엄마의 마음이잖아요? 심지어 먹는 것도 유기능을 찾게 되는데, 아이에게 맞지 않는 음식을 줄 수 없는 것처럼 책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책은 여러 용도로 여러 사람들에게 쓰일 수 있겠지만, 특히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어린이들에게 정말 좋은 그림책을 읽히는 것은 너무도 중요함을 깨닫게 되어 이 그림책의 평론을 쓰게 되었습니다.
국경아 (성균관대학교 생활과학연구소 연구원) : 저는 ‘착한 게 나쁜 건가요?’ 조리 존의 『착한 달걀』과 토니 로스의 『착한 어린이 대상! 제제벨』의 평론을 썼습니다. 우리는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을 하지만 막상 착하게 사는 것이 그렇게 매력적이지는 않아! 힘들어!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착함’을 다루는 그림책 중에서는 ‘착함’을 마냥 긍정적인 시선으로만 보지 않은 경우들이 많은데, 현대 사회에서 ‘착함’이 어떤 부정적인 의미로 다가오는지, 독자들은 이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이 평론을 쓰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사상적 바탕에서 율법주의에 대한 반발로 ‘착함’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그림책이 감정적 지지를 얻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도 나도 완벽하지 않으니 서로를 포용하는 것에서 만족하거나 규범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진정한 해결책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덕윤리에서도 덕스러운 성품은 반복과 훈련을 통해 체득되는 것임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신자의 성화 과정에도 경건의 훈련이 요구된다는 점과 일맥상통합니다. 물론 경건의 훈련이 즐거운 것만은 아니지만 그 과정을 통해 기쁨과 능력을 경험하고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열매를 맺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수형 (안산대학교 언어치료아동보육과 겸임교수) : 저는 ‘당신은 무엇에 집착하나요?’ 모리스 샌닥의 『깊은 밤 부엌에서』를 박은주(경민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교수님과 공동 평론하였고, ‘엄마, 귀신같은데 선녀래!’ 백희나의 『이상한 엄마』의 평론을 썼습니다. 모리스 샌닥의 그림책은 실제로 많은 어린이들이 즐겨 읽지 않는 것을 기관이나 수업 현장에서 오랫동안 확인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기하게도 많은 그림책 비평가들과 전문가들은 항상 언급하고 현대 그림책의 문을 열였다는 호평을 합니다. 어린이 그림책은 발달적인 특성상 보이지 않는 무의식을 탐구하기보다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사물을 통하여 소통하는 것이 적합합니다. 그러나 모리스 샌닥의 그림책은 심리학의 정신분석 해석 연구가 가장 많이 이루어졌습니다. 순수하고 깨끗해야 할 어린이 도서인 그림책에 인간의 가장 어두운 부분을 끌어오는 심리학의 정신분석 해석이 적합한 것인지 검증해 볼 필요성이 느껴져 『깊은 밤 부엌에서』를 평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백희나 작가의 『구름빵』 그림책을 너무 좋아합니다. 영상미도 아름답고 이야기도 재미있고요. 그러나 요즘 나오는 그림책들은 선뜻 품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백희나 작가님께 권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시 예전처럼 아이들을 먼저 생각해 주는 그림책을 만들어주시면 어떠실까요? 많은 분들이 좋아하시는 작가님의 그림책, 특히 한국 작가를 비평하는 것은 많은 용기가 필요한, 쉽지 않은 일이지만 작가님께 간곡히 부탁을 드리고 싶은 마음에서 평론을 쓰게 되었습니다.
임해영 (그림책박물관 운영자) : 저는 ‘그는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찾았을까?’ 라파엘 프리에의 『블레즈씨에게 일어난 일』의 평론을 썼습니다. 최근에 왜 이렇게 환경 그림책이 쏟아지는 것일까요? 환경을 주제로 한 그림책의 내용이 과학적 진실과 거리가 먼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환경 그림책을 과학적으로 반박하는 것보다는 왜 이와 같은 그림책이 쏟아지고 있는지 사상적인 부분을 연구하였고, 이러한 생각의 바탕에 ‘생태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깔려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생태주의란 인간 중심적으로는 더 이상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을 위해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자연 생태를 중심에 놓고 환경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상입니다. 인간은 다른 생명체와 동등한 가치를 지닐뿐 특권을 지닌 존재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오히려 인간보다 지구를, 자연을, 동물을 더 우위에 있게 하는 사상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사회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을 합니다. 생태주의가 단순한 자연 보전 주의가 아닌 정치 이데올로기화되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각국의 녹색당은 하나같이 동성애 성해방 운동을 함께 하지요.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상으로 흐르게 됩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환경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생육하고 번성하여 다스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진짜 환경 이야기는 창조주를 인정하고 청지기임을 자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가짜 정보가 가득한 환경 그림책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 만물을 아끼고 돌보는 책임감, 이웃을 배려하는 좋은 성품을 길러주는 그림책이 진짜 환경 그림책입니다.
현은자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 명예교수) : 저희들은 아이들에게 “이 세상에 태어나길 정말 잘했다”라고 격려하는 그림책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 일들을 하려고 보니 그렇지 않은 책들에 너무 많이 현혹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정말 성실하게 글과 그림을 열심히 읽어보면 책이 가진 세계관이 떠오를 것입니다. 좋은 세계관도 있고, 나쁜 세계관도 있겠지요. 우리는 나쁜 세계관을 걸러내는 작업을 하기 위해서 이 책을 쓴 것입니다. 이 책을 읽어보시면 여러분이 그런 훈련에 동참해 보실 수도 있고, 기독교인들이라면 로마서 12장 2절 말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말씀처럼 성경 신자로서의 여러분들의 정체성을 더욱 견고히 하고, 자녀들의 신앙 교육에 큰 도움을 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림책이 대중화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즐겨 읽는 책이 되었습니다. 원래의 우리의 시도와는 다르게 우리가 문화 변혁을 일으킬 수 있는 그런 입장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잘못된 문화를 바로잡고, 좋은 문화를 퍼트릴 수 있는 하나님의 청지기가 될 수 있겠다는 소망과 믿음, 사명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는 단순히 책 썼기 때문에 자랑하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그런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책에 실리지 않은 평론들이 웹진 베이직(https://www.picturebook-basic.com)에 더 많이 있습니다. 댓글이나 이메일을 통해서 여러분의 의견을 들려주세요. 마음껏 비판하셔도 좋습니다. 진지한 토론이 시작될 것이고 우리의 평론 문화는 더욱더 성숙해 나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평론 문화가 상당히 빈약합니다. 평론은 또 다른 평론을 위한 것입니다. 계속해서 토론이 일어날 수 있어야 문화가 발전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 다 같이 그림책의 좋은 문화를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현장에 참여하여 주신 독자들과 유익한 질문과 답변의 시간을 마치고 마지막에는 『신앙이 자라는 그림책 읽기』에서 저자들이 추천한 그림책을 추첨을 통해 전달하는 선물 증정 시간으로 흐뭇하게 마무리되었습니다. 일기 예보상 많은 비가 예상되었지만 좋은 날씨를 허락해 주셔서 많은 분들이 참여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드리며 모든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신앙이 자라는 그림책 저자와의 북토크 (2024년7월16일)
01_아이들에게 어떤 책을 읽어주십니까? (현은자)
예술에 대한 관점 4가지 - 모방론, 표현론, 형식론, 본질주의적 관점 (현은자)
그림책에 담긴 세계관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현은자)
02_세상에 있는 모든 사물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현은자)
03_세계관을 알려면 그림책을 열심히 촘촘히 읽어야합니다. (현은자)
04_어떤 세계관의 그림책을 읽어주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현은자)
05_ 앤서니브라운의 고릴라는 과연 어린이 것인가? (현은자)
06_여러분들이 책과 베이직 웹진을 읽어보시고 마음껏 비평해도 좋습니다. (현은자)
07_자신의 이데올로기를 책 속에 심어서 의도적으로 사람들을 세뇌시키기 때문에 세계관을 면밀히 살펴야 합니다. (현은자)
08_아이들에게 이 세상에 태어나길 정말 잘했다 라고 격려하는 그림책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현은자)
09_좋은 문화를 퍼트릴 수 있는 하나님의 청지지가 될 수 있길 바랍니다. (현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