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라고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겨울철 벌레를 찾아서』

2022-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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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라고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겨울철 벌레를 찾아서』 





바람이 제법 차갑게 느껴지던 초겨울 어느 날이었습니다. 함께 공원 산책을 가기로 한 일곱 살 아들이 분주하게 무언가를 찾았습니다. “엄마, 내 곤충 채집통 못 봤어? 잠자리채는 어디 있지?” 아니, 이 추운 날씨에 곤충 잡을 생각을 하다니 당황스러우면서도 귀여워 짐짓 모른 체하며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글쎄, 그런데 채집통은 왜? 무얼 잡으려고?” “그야 당연히 곤충이지! 잠자리도 잡고, 나비도 잡아야지~” 아이는 지난 여름, 신나게 곤충을 잡던 시간이 떠올랐는지 방긋 웃으며 큰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추운 날 잠자리랑 나비가 있을까? 엄마는 요즘 못 본 것 같은데.” 아이는 저의 질문에 생각도 못해봤다는 듯 깜짝 놀라며 대답 대신 다른 질문을 했습니다. “엄마, 그럼 곤충도 겨울잠을 자?” 

그날 우리는 땅거미가 질 때까지 공원을 거닐었지만 한데 모여 날고 있던 하루살이들을 제외하고는 다른 곤충들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아이의 물음이 마음 속에 메아리처럼 맴돌았습니다. 곤충은 왜 겨울에 안 보이는 걸까? 겨울까지 살 수 없을 만큼 수명이 짧은 걸까? 아니면 정말로 겨울잠을 자는 걸까? 그래서 집에 돌아온 후 여러 날 동안 겨울철 곤충에 대한 정보책을 열심히 찾아보았습니다. 

그림책 <겨울철 벌레를 찾아서>는 그 때 찾은 그림책 중 한 권입니다. 이 책의 화자는 어릴 때부터 벌레를 무척 좋아했고, 어른이 된 지금도 벌레를 보러 종종 숲에 간다는 한 아저씨입니다. 아저씨는 우리집 아이가 하는 것처럼 모자를 쓰고 가방을 메고 잠자리채를 들고 겨울 숲으로 들어갑니다. 

그림책에서는 추운 겨울 동안 숲이 고요하다고 해서 벌레들이 모두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모두 이 숲 속 어딘가에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겨울을 나고 있는 것이지요. 이제 아저씨를 찾아 겨울철 벌레를 찾아 나서 볼까요?

먼저 나무를 올려다보면 나뭇가지 끝에 다양한 고치가 매달려 있고, 때로는 고치 옆에 알이 붙어 있기도 합니다. 나무에 달린 팻말 뒤를 보아도, 커다란 돌을 들어 보거나 나무 껍질을 벗겨 보아도, 낙엽을 뒤집어 보아도 많은 벌레가 숨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추운 겨울에는 벌레들이 따뜻한 곳을 찾아 숨어 들어서 사이좋게 같이 잠을 자고 있습니다. 부드러운 흙을 파 보면 그 안에도 딱정벌레나 나방의 고치들을 볼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벌레들이 겨울을 날 때에는 따뜻한 곳을 찾아 웅크리고 봄이 올 때까지 잠을 자거나 쉬는데 여럿이 모여서 함께 겨울을 난다는 것입니다.  



이 책은 벌레를 좋아하는 아저씨를 따라 겨울 숲에 들어가 겨울철 벌레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는지에 대한 정보를 전달합니다. 이 책의 특징은 화자인 아저씨의 모습이나 숲의 풍경 뿐만 아니라 벌레들의 모습도 모두 사진이 아닌 세밀화로 그려져 있다는 점입니다. 벌레를 찾는 모습이나 벌레가 겨울을 나는 모습이 실제 숲에서 관찰하듯 자연스럽게 그려져 있어 어색하지 않고 실제적으로 와닿습니다. 또, 세밀하게 그린 곤충 그림 바로 옆에는 회색 실루엣으로 실제 크기를 함께 제시함으로써, 곤충을 자세하게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실제 크기를 가늠해 볼 수도 있도록 배려하였습니다. 본문의 글은 자상하게 설명해 주시는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자세한 설명 글로 쓰여 있고, 본문 글 외에도 그림 곳곳에 고딕체로 곤충이나 알, 고치 등의 명칭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이 책과 더불어 소개하고 싶은 또 다른 그림책은 <겨울에도 괜찮아!>입니다. 

이 책의 구성은 조금 독특합니다. 매 펼침면마다 소제목이 있습니다. 가장 첫 번째 소제목은 ‘여름과 겨울’이지요. 여름과 대비하였을 때 겨울에는 동물들이 먹이를 구하기 어려운 계절임을 암시해 줍니다. 두 번째 소제목은 ‘가을에 겨울 양식을 모아요’ 입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청설모나 어치 등 동물들이 겨울 양식을 모으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세 번째 소제목은 ‘가을에 여행을 떠나요’ 입니다. 제비를 예로 들어서 추운 겨울을 견디지 못하는 동물들이 따뜻한 곳으로 이동하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네 번째 소제목은 ‘따뜻한 겨울 털옷을 입어요’로 이동하지 않고 머무는 동물들이 따뜻하게 겨울을 날 수 있도록 굵은 겨울털이 난다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이후로는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에 대한 내용과, 털이 없는 양서류나 파충류, 어류 등이 겨울을 나는 내용, 벌레가 겨울을 나는 내용 등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벌레 뿐만 아니라 다양한 동물들이 여름과 가을을 거쳐 ‘겨울’이라는 계절을 나기 위해 어떻게 준비하고 또 겨울에 무엇을 하는지 알려줍니다. 



한편 이 책의 형태도 독특한 점이 있습니다. 펼침면 오른쪽이 살짝 접혀 있는 날개 형식으로 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날개가 접힌 부분에는 저자의 질문이 쓰여 있고, 날개를 펼치면 질문에 대한 답이 나타납니다. 어린 독자의 지적 호기심과 관심을 끌기 위한 작가들의 세심한 마음이 돋보입니다. 

<겨울철 벌레를 찾아서>와 같이 이 책에서도 그림은 모두 사진이 아닌 세밀화로 그려졌습니다. 사진만큼 사실적일 수는 없겠지만 작가가 정성껏 그린 그림에는 왠지 작가의 마음까지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독자들은 작가의 그림을 통해 겨울철 동물을 사실적으로 만나는 것 이상의 의미를 담아 바라보게 될 것 같습니다. 

흥미롭게도 <겨울철 벌레를 찾아서>와 <겨울에도 괜찮아!> 두 권의 그림책 마지막 장에는 ‘봄’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머지않아 봄이 찾아오면 벌레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고, 얼었던 땅이 녹고 꽃이 피어날 것입니다. 즉, 겨울이라고 해서 모두 사라진 것도 모두 끝난 것도 아닙니다. 겨울이 지나가면 다시 봄이 옵니다.

아이와 제가 겨울의 공원을 종종걸음으로 다녔을 때, 이 그림책들과 달랐던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이 그림책들은 겨울에도 벌레와 동물들이 여러 모습으로 겨울을 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지만, 그것을 몰랐던 우리는 겨울 공원의 겉모습만 보고 황량한 이 곳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사실, 공원의 사계절을 떠올려보면 겨울은 다른 계절에 비해 외롭고 왠지 아무 유익도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봄은 따뜻하고 생동감이 있어 소망이 있고, 여름은 열정적이고 힘이 느껴지며, 가을은 찬란하고 화려하고 든든합니다. 그에 비해 겨울은 나무도 잎을 모두 떨구고, 바닥에 쌓인 낙엽마저 바싹 말라 바스러지는 소리가 쓸쓸함을 더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겨울이 그렇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생명은 겨울의 품을 파고들어 숨어 있을 뿐입니다. 계절의 순환과 하나님의 창조 원리가 참으로 오묘합니다. 

우리의 인생도 그러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살아가다 보면 봄, 여름, 가을도 있지만, 사실 겨울처럼 어둡고 시린, 아픈 시간들이 있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작은 고난에도 중심을 잃고 마구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왜 저에게 겨울을 주셨느냐고 하나님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울고 섭섭해하는, 아직도 참으로 연약하고 믿음이 작은 제 모습이 보여 부끄럽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겨울을 지나면서 제가 결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저의 삶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겨울에도 유익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겨울 덕분에 따뜻하고 안락했던 날들이 하나님이 허락해주신 선물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또 겨울 덕분에 내 힘으로 지나가지 못하는 시련의 시간을 하나님만 꼭 붙들고 의지하며 나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감사한 것은 겨울을 지나는 동안 결코 나를 홀로 두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함께하시며 말씀으로 깨닫게 하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통해서도 깊은 위로와 사랑을 전해주십니다. 그리고 나를 더 단단하고 깊게 다듬어 가십니다. 내 아픔만 바라보던 시선을 돌려서 다양한 아픔을 가진 이웃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그리고 빠르게 지나가는 헛된 것이 아니라 진짜 소망이 무엇인지 일깨워 주십니다. 


그림책을 읽고 난 며칠 후, 더 깊어진 겨울 숲속으로 아이가 채집통을 들고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벌레가 실을 내어 만든 고치의 흔적이 담긴 나뭇가지를 소중히 채집통에 담아 내려왔습니다. 아이는 이 고치의 흔적을 계속 보고 싶다고 합니다. 벌레가 성장하기 위해 실을 자아 고치를 지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도 성장과 믿음의 연단을 위해 이 겨울의 시간을 잘 보내야겠습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로마서 5:3~4)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12:9)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이사야 55:8~9)




김현경 | 성균관대학원 아동청소년학과 박사과정 수료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영국 캠브릿지 대학교 교육학과 the PLACE 연구소에서 Visiting Scholar를 지냈습니다.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과 미디어에 담긴 세계관 연구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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