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 그림책에 대한 비판적 읽기 (1) 『생태 통로』

2024-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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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그림책에 대한 비판적 읽기(1) 『생태 통로』  



“그림책 베이직”의 <정보 그림책> 세션에서는 2024년 상반기 동안 

생태 그림책에 나타난 종말론적 환경주의 시각을 비판하는 글을 연재하고자 한다."


『생태 통로』  그림책 자세히 보기


지난 23년 하반기에는 ‘우수환경도서’로 선정된 유아용 그림책 중에서 쓰레기와 멸종위기동물, 서식지 파괴에 관한 그림책 3권을 비판적으로 살펴보았다. 이에 대한 연장선상에서 24년 상반기에는 생태 그림책에 나타난 종말론적 환경주의 시각을 비판하는 글을 연재하고자 한다.

이번 달에 소개하려는 그림책은 김황 글, 안은진 그림의 <생태 통로>이다. 이 책은 2015년에 출간되었고, 2016년에 우수환경도서로 선정되었다.

앞표지를 보면 뒷배경의 나무들이 거무스름하게 표현되었고, 공중에서 하늘다람쥐가 양팔을 활짝 벌리고 날아가고 있다. 하늘다람쥐 뒤로 하늘색 점선이 곡선을 그리며 표시되어 있는데, 앞뒤 표지를 모두 펼쳐보면 이것이 곧 하늘다람쥐의 이동경로를 나타낸 것임을 알 수 있다. ‘생태 통로’라는 제목 옆에는 ‘인간이 만든 동물의 길’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어 이 책의 중심이 문제에 있는지, 아니면 문제 ‘해결’에 있는지 잘 보여준다.

앞면지에는 한 남자아이가 자동차 뒷좌석에 앉아 차창 밖을 바라보고 있고, 자동차는 검은 매연을 내뿜으며 오른쪽으로 달려가고 있다. 페이지를 넘기면 다시 한번 제목이 쓰여진 표제지가 나타나는데, 표제지 중앙에는 토끼, 족제비, 고라니와 멧돼지 등 여러 동물들이 차도의 중앙선 위에 서서 독자들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 동물들은 깜짝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다. 앞면지에서는 이미 자동차가 출발하여 오른쪽으로 달리고 있으니, 그 다음 페이지인 표제지의 동물들은 이제 어떻게 되겠는가? 그렇다. 이 그림책은 로드킬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본문 첫 장면은 하늘다람쥐 암컷이 나무 구멍에서 빠끔 얼굴을 내미는 귀여운 모습으로 시작된다. 해 질 녘, 어두워진 숲을 배경으로 하늘다람쥐 수컷이 ‘공중 길’을 날아 사랑하는 짝을 찾아온다. 하지만 며칠 뒤 도로 공사로 인해 높다란 나무들이 베어지면서 하늘다람쥐는 공중 길을 잃어버리고 짝을 만나러 가지 못한다. 하늘다람쥐에게는 높은 나무가 바로 ‘길’이기 때문이다.

하늘다람쥐와 마찬가지로 길을 잃어버린 여러 동물들이 있다. 앞서 표제지에서 동그랗게 뜬 눈으로 독자들을 바라보았던 고라니, 멧돼지, 족제비 등이다. 이들에겐 도로 위를 쌩쌩 달리는 자동차가 ‘바퀴 괴물’처럼 보인다. 이들은 먹이를 찾으러 도로로 뛰어들었다가 자동차에 치여 숨지고 만다. 그러다 보니 이들에게는 옛날부터 있어왔던 그 길이 ‘무서운 적’이 되어 버렸다.

만일 이 그림책이 이러한 로드킬의 문제를 제기하는 데서 끝났다면 이곳에 소개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그림책은 로드킬의 문제, 동물들의 서식지 파괴의 문제에서 멈추지 않고, 이 문제에 대하여 우리 인간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로 더 나아간다.

“어떻게 하면 길에서 죽는 동물을 구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해 지혜를 모은 결과 사람들은 동물이 다닐 수 있는 새 길을 만들어 주기로 한다. 그것이 바로 ‘생태 통로’이다.

그래서 자동차가 많이 다니는 곳에는 터널을 뚫어 ‘터널형’ 생태 통로를 만들고, 지형이 험한 곳에는 다리를 놓고 그 위에 흙을 덮고 나무를 심어 ‘육교형’ 생태 통로를 만들어 준다. 댐으로 인해 물 길이 막힌 곳에는 댐 옆에 강으로 이어지는 계단 길을 만들어 물고기들이 상류에 가서 알을 낳을 수 있도록 하는 ‘어도’를 만들기도 한다.

그럼 아까 그 하늘다람쥐에게는 어떤 길을 만들어주어야 할까? 암컷 하늘다람쥐와 새끼들에게 가지 못해 발만 동동 굴리는 수컷 하늘다람쥐에게는 기다란 막대기를 도로 양쪽에 세워주어 새로운 공중 길을 만들어준다.

야생 동물들이 도로를 건너다가 차에 치여 죽는 것, 로드킬. 작가의 말에 따르면 우리나라 고속 도로에서 연간 수만 수천 건의 로드킬이 일어난다고 한다. 소중한 동물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로드킬은 분명 심각한 ‘문제’이다. ‘생태 통로’는 이러한 로드킬로부터 동물들을 보호하고 조금이라도 돕기 위해 만든 인공적인 구조물 또는 생태적인 공간을 말한다. 그림책의 뒷부분에는 작가의 말을 통해 생태 통로의 개념과 종류에 대한 정보를 부가적으로 전하고 있다. 우리나라 곳곳에 실제로 만들어진 다양한 생태 통로들을 사진으로도 만나볼 수 있어 어린이 독자들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작가는 이러한 생태 통로는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으므로, 궁극적으로는 원래의 자연을 야생 동물에게 돌려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즉, 베어낸 나무보다 더 많은 나무를 심어서 원래 하늘다람쥐들이 다니던 ‘나무의 길’을 복원해 주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음을 당부한다.

그래서일까? 앞면지에서 자동차를 타고 차창 밖을 바라보며 유유히 지나가던 아이가 뒤면지에서는 작은 나무를 심고 물을 주고 있다. 그리고 토끼, 족제비, 너구리, 고라니 등 여러 동물들이 이번에는 놀란 눈이 아닌 호기심 어린 눈망울로 그 나무와 아이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 그림책의 뒤면지는 우리가 여러 생태 문제 앞에서 어떤 미래를 꿈꾸고, 어떤 방향을 잡아야 할 지를 잘 보여준다. 창세기에는 하나님께서 이 세계를 지으시고, 또 동물들과 사람을 지으시고 ‘보시기에 좋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즉, 존재론적으로 보았을 때 피조물인 우리는 창조주께서 만드시고 기뻐하셨던 그런 존재들이다. 우리의 정체성은 우리를 만드신 분이 우리를 어떻게 보시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그런데 최근 생태를 주제로 하는 그림책의 출판 흐름을 보면 사람이 지구를 망가뜨리는 원흉인 것처럼 그려지는 경향이 있어 참으로 안타깝다. 우리는 여러 문제들 앞에서 우리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또 반성하고 성찰할 필요가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사람이 쓸모없는 존재이거나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할 존재는 아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창세기에서 우리에게 주셨던 청지기의 임무를 진지하게 떠올리고 그 역할을 힘 있게 수행해야 하는 존재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이 그림책의 뒤면지와 같이, 모든 피조물들은 서로 분열하고 서로를 해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조화를 이루어 함께 살아가야 한다.

그러한 면에서 <생태 통로>는 동물들과 생태 문제를 대하는 사람의 자세가 무엇인지, 우리들이 자연을 잘 돌보는 청지기로서의 할 일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책이라고 생각된다. 유아 독자들은 이러한 그림책을 보면서 생태 위기에 대한 과도한 불안감을 떠안기보다는,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또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하고 다짐하고 실천하는 어린이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김현경 | 성균관대학원 아동청소년학과 박사과정 수료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영국 캠브릿지 대학교 교육학과 the PLACE 연구소에서 Visiting Scholar를 지냈습니다. 현재 경인교육대학교 유아교육과 강사로 있으며,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과 미디어에 담긴 세계관 연구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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