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와 구원, 하나님과 인간의 연결고리,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자세히 보기
성경에서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을 넘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먼저, 하나님은 태초에 천지를 ‘말씀으로’(God said,) 창조하셨다(창세기 1장). 언어에는 창조성이 있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특히 생성형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말만 하면 원하는 것이 창조되는 시대가 되었다.
둘째, 하나님은 사람을 남성과 여성으로 창조하신 후에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라. 땅을 정복하라. 또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날짐승과 땅 위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지배하라’고 말씀하셨다(창 1:28). 그리고 남자를 데려다가 에덴동산에 두사 그것을 가꾸고 지키게 하시며 동산 가운데 먹어도 되는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말씀하셨다(창세기 2장). 즉, 언어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와 정체성을 보여주는 도구이다. 하나님은 창조 후에 사람에게 말씀하심으로, 사람이 창조된 목적과 사람에게 부여된 사명 뿐만 아니라, 주권자이신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의 한계를 알려주셨다.
셋째, 하나님은 아담에게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이끌어 가셨고, 아담은 각 생물의 이름을 지었다(창 2:19). 즉, 첫 사람 아담에게 언어능력이 있었을 뿐 아니라, 그는 탁월한 지적 통찰력으로 각각의 들짐승과 새들에게 존재의 상징인 이름을 붙여준 것이다! 이것은 진화론을 바탕으로 하는 여러 언어의 기원설과 전혀 배치되는 것이다. 아담은 최초의 사람이자, 최초의 언어학자, 생물학자가 아니었을까? 이처럼 언어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인간의 특성이기도 하다.
이번에 소개하려고 하는 정보책은 바로 ‘언어’에 관한 그림책이다. 작가는 제목을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이라고 붙임으로써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특성으로 언어를 말한다.
줄거리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고, 어디에나 있다. 나는 사람들이 보거나, 소리를 듣거나, 혹은 만져볼 수 있다. 사람들이 아기일 때는 나를 잘 모르지만, 나이가 들면서는 서서히 나를 잊어버리기 시작한다. 나는 때론 부드럽고 때론 날카로우며, 사랑을 보여줄 수도 있지만 상처를 줄 수도 있다. 나는 처음에 하나였지만 지금은 모양도 소리도 수천 개나 있다. 어떤 나는 사라지고 있는데, 내가 하나 사라질 때마다 문화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다. 나는 위대한 발명품이며,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또 사람들을 미래로 데려가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나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나는 바로, 언어다.
책의 특징
이 책은 마치 스무고개 놀이를 하듯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독자가 알아맞히도록 한다. ‘나’는 본문의 모든 장면에서 자신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데, 사실 본문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표지에서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나’에 대한 힌트가 제시된다. 이를테면 표지에는 책의 제목이 4단에 걸쳐서 나타나는데 각각 머리와 눈, 입과 손의 이미지가 그려져 있다. 즉 ‘나’는 우리가 머리로 사고하는 것과 깊은 연관이 있고,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면서 동시에 입으로 말하는 것이고 또한 손으로도 전할 수 있는 것이다. 과연 나는 누구일까?
표제지에 이르면 책의 서지사항 정보가 말풍선 이미지 안에 쓰여 있어 작가와 편집자의 재치를 엿볼 수 있다. 이것 역시 ‘나’이기 때문이다. 본문에서도 ‘나’는 글 뿐만 아니라 그림에도 풍부하게 표현되어 있다. 특히 그림은 글의 내용을 충실하게 따르면서도 다양한 문화적 역사적 배경과 상징을 담고 있어 그림의 기호를 조금 더 능숙하게 읽어내는 독자들은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람의 일생에서 ‘나’는 아기일 때는 잘 모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알게 되고, 또 더 나이가 들면 서서히 잊어버리게 된다고 설명한다. 이 장면은 털실과 스웨터 옷으로 시각화되었는데, 아기는 마치 놀이를 하듯 흑갈색 실뭉치를 들고 있고, 소년은 똘망똘망한 눈망울로 하얀색 실뭉치를 들고 서 있으며, 청소년은 이 두 개의 실로 뜨개질을 하여 직접 옷감을 짜고 있다. 청년은 완성된 털 스웨터를 입었고, 중년의 남성 역시 같은 옷을 입고 있으나 아랫단부터 털실이 풀려 옷이 많이 줄어든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중년 남성의 옷에서 풀려나온 털실을 노인이 두 손으로 만지며 유심히 들여다보는데 노인이 털스웨터 대신 입고 있는 옷의 색깔은 소년과 청소년이 입은 옷과 같이 보라색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즉 청년 때에는 내 몸에 딱 맞춘 듯 ‘나’를 능숙하게 사용하지만, 어릴 때와 노년일 때는 ‘나’를 사용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거나 자연스럽지 않음을 암시한다.
한편 간단한 글과 그림으로 바벨탑을 연상시키는 장면도 ‘나’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달한다. 처음에 ‘나’는 하나였다는 문장 옆에는 수많은 층으로 이루어진 건물이 그려져 있다. 하늘에 닿을 만큼 높이 올려진 이 건물의 모습은 성경의 역사 속에 실존하였던 바벨탑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온 땅이 한 언어를 쓰고 한 말을 썼더라”로 시작하는 창세기 11장에는 노아의 자손들이 벽돌과 역청으로 성읍과 탑을 건설하고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자신들의 이름을 내고자 하자, 하나님이 하나였던 언어를 혼잡하게 하시고 사람들을 온 지면에 흩으시는 내용이 나온다.
그림책의 바벨탑 장면 다음에는 ‘나’의 모양과 소리가 여러 가지이고 수천 개의 내가 있음을 글과 그림에서 보여준다. 언어가 하나이고 사람들이 도시를 세우고 탑을 하늘에 닿을 만큼 높이 쌓아 올렸던 바벨탑 장면의 풍경과는 대조적으로, 이 장면에서는 우거진 녹지의 곳곳에- 나뭇가지와 나뭇잎 사이에, 식물원 안과 다양한 조형물 가운데 다양한 언어가 숨겨져 있다.
이 책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이 펼친 면 가득하게 그려져 있는데, 사람들 옆에 그려진 말풍선에는 각 나라의 문자로 언어의 이름을 써놓았다. 그리고 ‘나는 언어랍니다.’라고 쓰여 있는 커다란 종이를 여러 사람이 함께 들고 있어, ‘나’가 바로 언어였음을 밝힌다.
그림책은 여기에서 끝나지만, 다시 바벨탑 사건으로 돌아가보자. 현재 전 세계에 수많은 언어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았을 때, 본래 온 땅이 한 언어를 쓰고 한 말을 썼다는 점이 새삼 놀랍게 다가온다. 그런데 그저 놀랍기만 한 것이 아니라 슬프고 속상하다. 바벨탑 사건은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고 불순종하였던 선악과 사건 이후로, 인간이 또다시 “우리가 우리를 위해 이름을 내고”(창 11:4) 하나님처럼 높아지려고 했던 반역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 독자라면, 그림책에서 이야기하는 다양한 언어와 다양한 문화에 대한 지식을 이해하기에 앞서 왜 이 세상에 다양한 언어가 생겨났는지에 대한 역사를 돌아보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창 11:7)고 하신 이유와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한편, 이 글의 서두에서 제시한 성경 속 언어의 의미 중 아직 이야기하지 않은 중요한 한 가지가 있다. 바로,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다’(요 1:1)는 점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다 이루기 위해 이 땅 가운데 보내지셨다. 즉,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하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Logos) 그 자체가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것이다(요 1:14).
그런데 흥미롭게도 주의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승천하신 후 언어와 관련된 사건이 하나 일어난다. 바로, 오순절 날 제자들이 한 마음이 되어 한 곳에 있었을 때, “성령께서 그들에게 말하게 하시는 대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행 2:4). 이것은 단순히 사람들이 자기가 알지 못하는 언어를 말한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큰 사건이다. 이때 사람들은 모두 놀라고 이상히 여겼지만 아마도 혼돈의 상태는 아니었을 것이다. 바벨탑 사건에서 언어가 혼잡해지고 사람들이 지면에 흩어졌던 것과 대조적으로, 오순절 사건에서는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었을 때 인간의 언어가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소통과 화합이 되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책에 글을 쓴 빅터 산토스는 그림책 작가이자 언어학자이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 ‘작가의 말’을 덧붙여 언어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추가로 제시한다. 세계에는 7천여 개의 언어가 있지만 점차 사라지고 있고, 언어 하나를 잃는다는 것은 곧 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문화가 함께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며 작가는 언어가 점차 사라지는 현상을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에 더하여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다시 떠올렸으면 한다. “오직 성령님께서 너희에게 오신 뒤에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의 맨 끝 지역까지 이르러 나를 위한 증인들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다양한 언어와 문화의 상실에 대한 안타까움보다 더 큰 안타까움은, 예수님께서 우릴 위해 죄의 대가를 치르시고 죽음을 이겨 부활하셨다는 구원의 기쁜 소식을 아직 알지 못하는 영혼들의 상실에 대한 안타까움일 것이다. 인간의 교만을 심판하기 위해 언어를 혼잡하게 하시기도 하고, 또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충만해진 사람들에게는 자신도 모르는 언어를 말하게도 하시는 언어의 주관자는 바로 하나님이시다. 또 세상의 모든 영역이 하나님의 주권 하에 있듯, 언어와 문화도 그 자체가 하나님보다 높아질 수 없음을 기억하자. 언어든 문화든 다양함이 항상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그 언어와 그 문화가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양과 의미와 목적을 지녔는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결국 이 책의 제목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우리를 인간답게, 특히 하나님께서 처음 그분의 형상으로 지으신 모습의 인간답게 우리를 빚어가는 것은 다양한 언어와 문화라기보다는, 바로 하나님의 언어, 하나님의 말씀이다. 깊은 흑암 가운데서도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 말씀의 창조성은 옛날 이야기처럼 성경의 책장 속에 갇혀 있지 않다. 하나님 말씀은 지금도 살아 움직이며 우리를 다듬고 변화시키고 깨끗하게 하신다. 하나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의 자녀답고, 예수님의 제자다운, 그리하여 비로소 참 인간다운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작가 소개
빅터 D.O. 산토스는 브라질에서 태어나 그림책 작가이자 언어학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5개 나라에서 살았고, 10개 언어를 공부했으며, 우크라이나인 부인과 함께 미국 아이오와에 살면서 다문화, 다언어 자녀 두 명을 키우고 있다. 서로를 존중하고, 다양성을 소중히 여기며, 잠재력과 사랑의 힘을 믿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그림책에 담고자 한다.
안나 포를라티는 이탈리아 마체라타에 있는 아르스 인 파불라 일러스트레이션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언어에 관심이 많아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배웠고, 지금은 아랍어를 배우는 중이다.
 | 김현경 | 경인교육대학교 유아교육과 강사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에서 아동미디어교육 전공으로 박사 졸업하였습니다. 영국 캠브릿지 대학교 교육학과 the PLACE 연구소에서 Visiting Scholar를 지냈으며,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 한국위원회(KBBY)에서 사무국장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현재 경인교육대학교 유아교육과 강사로 있으며,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과 미디어에 담긴 세계관 연구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
창조와 구원, 하나님과 인간의 연결고리,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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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을 넘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먼저, 하나님은 태초에 천지를 ‘말씀으로’(God said,) 창조하셨다(창세기 1장). 언어에는 창조성이 있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특히 생성형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말만 하면 원하는 것이 창조되는 시대가 되었다.
둘째, 하나님은 사람을 남성과 여성으로 창조하신 후에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라. 땅을 정복하라. 또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날짐승과 땅 위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지배하라’고 말씀하셨다(창 1:28). 그리고 남자를 데려다가 에덴동산에 두사 그것을 가꾸고 지키게 하시며 동산 가운데 먹어도 되는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말씀하셨다(창세기 2장). 즉, 언어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와 정체성을 보여주는 도구이다. 하나님은 창조 후에 사람에게 말씀하심으로, 사람이 창조된 목적과 사람에게 부여된 사명 뿐만 아니라, 주권자이신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의 한계를 알려주셨다.
셋째, 하나님은 아담에게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이끌어 가셨고, 아담은 각 생물의 이름을 지었다(창 2:19). 즉, 첫 사람 아담에게 언어능력이 있었을 뿐 아니라, 그는 탁월한 지적 통찰력으로 각각의 들짐승과 새들에게 존재의 상징인 이름을 붙여준 것이다! 이것은 진화론을 바탕으로 하는 여러 언어의 기원설과 전혀 배치되는 것이다. 아담은 최초의 사람이자, 최초의 언어학자, 생물학자가 아니었을까? 이처럼 언어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인간의 특성이기도 하다.
이번에 소개하려고 하는 정보책은 바로 ‘언어’에 관한 그림책이다. 작가는 제목을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이라고 붙임으로써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특성으로 언어를 말한다.
줄거리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고, 어디에나 있다. 나는 사람들이 보거나, 소리를 듣거나, 혹은 만져볼 수 있다. 사람들이 아기일 때는 나를 잘 모르지만, 나이가 들면서는 서서히 나를 잊어버리기 시작한다. 나는 때론 부드럽고 때론 날카로우며, 사랑을 보여줄 수도 있지만 상처를 줄 수도 있다. 나는 처음에 하나였지만 지금은 모양도 소리도 수천 개나 있다. 어떤 나는 사라지고 있는데, 내가 하나 사라질 때마다 문화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다. 나는 위대한 발명품이며,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또 사람들을 미래로 데려가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나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나는 바로, 언어다.
책의 특징
이 책은 마치 스무고개 놀이를 하듯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독자가 알아맞히도록 한다. ‘나’는 본문의 모든 장면에서 자신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데, 사실 본문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표지에서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나’에 대한 힌트가 제시된다. 이를테면 표지에는 책의 제목이 4단에 걸쳐서 나타나는데 각각 머리와 눈, 입과 손의 이미지가 그려져 있다. 즉 ‘나’는 우리가 머리로 사고하는 것과 깊은 연관이 있고,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면서 동시에 입으로 말하는 것이고 또한 손으로도 전할 수 있는 것이다. 과연 나는 누구일까?
표제지에 이르면 책의 서지사항 정보가 말풍선 이미지 안에 쓰여 있어 작가와 편집자의 재치를 엿볼 수 있다. 이것 역시 ‘나’이기 때문이다. 본문에서도 ‘나’는 글 뿐만 아니라 그림에도 풍부하게 표현되어 있다. 특히 그림은 글의 내용을 충실하게 따르면서도 다양한 문화적 역사적 배경과 상징을 담고 있어 그림의 기호를 조금 더 능숙하게 읽어내는 독자들은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람의 일생에서 ‘나’는 아기일 때는 잘 모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알게 되고, 또 더 나이가 들면 서서히 잊어버리게 된다고 설명한다. 이 장면은 털실과 스웨터 옷으로 시각화되었는데, 아기는 마치 놀이를 하듯 흑갈색 실뭉치를 들고 있고, 소년은 똘망똘망한 눈망울로 하얀색 실뭉치를 들고 서 있으며, 청소년은 이 두 개의 실로 뜨개질을 하여 직접 옷감을 짜고 있다. 청년은 완성된 털 스웨터를 입었고, 중년의 남성 역시 같은 옷을 입고 있으나 아랫단부터 털실이 풀려 옷이 많이 줄어든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중년 남성의 옷에서 풀려나온 털실을 노인이 두 손으로 만지며 유심히 들여다보는데 노인이 털스웨터 대신 입고 있는 옷의 색깔은 소년과 청소년이 입은 옷과 같이 보라색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즉 청년 때에는 내 몸에 딱 맞춘 듯 ‘나’를 능숙하게 사용하지만, 어릴 때와 노년일 때는 ‘나’를 사용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거나 자연스럽지 않음을 암시한다.
한편 간단한 글과 그림으로 바벨탑을 연상시키는 장면도 ‘나’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달한다. 처음에 ‘나’는 하나였다는 문장 옆에는 수많은 층으로 이루어진 건물이 그려져 있다. 하늘에 닿을 만큼 높이 올려진 이 건물의 모습은 성경의 역사 속에 실존하였던 바벨탑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온 땅이 한 언어를 쓰고 한 말을 썼더라”로 시작하는 창세기 11장에는 노아의 자손들이 벽돌과 역청으로 성읍과 탑을 건설하고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자신들의 이름을 내고자 하자, 하나님이 하나였던 언어를 혼잡하게 하시고 사람들을 온 지면에 흩으시는 내용이 나온다.
그림책의 바벨탑 장면 다음에는 ‘나’의 모양과 소리가 여러 가지이고 수천 개의 내가 있음을 글과 그림에서 보여준다. 언어가 하나이고 사람들이 도시를 세우고 탑을 하늘에 닿을 만큼 높이 쌓아 올렸던 바벨탑 장면의 풍경과는 대조적으로, 이 장면에서는 우거진 녹지의 곳곳에- 나뭇가지와 나뭇잎 사이에, 식물원 안과 다양한 조형물 가운데 다양한 언어가 숨겨져 있다.
이 책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이 펼친 면 가득하게 그려져 있는데, 사람들 옆에 그려진 말풍선에는 각 나라의 문자로 언어의 이름을 써놓았다. 그리고 ‘나는 언어랍니다.’라고 쓰여 있는 커다란 종이를 여러 사람이 함께 들고 있어, ‘나’가 바로 언어였음을 밝힌다.
그림책은 여기에서 끝나지만, 다시 바벨탑 사건으로 돌아가보자. 현재 전 세계에 수많은 언어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았을 때, 본래 온 땅이 한 언어를 쓰고 한 말을 썼다는 점이 새삼 놀랍게 다가온다. 그런데 그저 놀랍기만 한 것이 아니라 슬프고 속상하다. 바벨탑 사건은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고 불순종하였던 선악과 사건 이후로, 인간이 또다시 “우리가 우리를 위해 이름을 내고”(창 11:4) 하나님처럼 높아지려고 했던 반역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 독자라면, 그림책에서 이야기하는 다양한 언어와 다양한 문화에 대한 지식을 이해하기에 앞서 왜 이 세상에 다양한 언어가 생겨났는지에 대한 역사를 돌아보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창 11:7)고 하신 이유와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한편, 이 글의 서두에서 제시한 성경 속 언어의 의미 중 아직 이야기하지 않은 중요한 한 가지가 있다. 바로,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다’(요 1:1)는 점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다 이루기 위해 이 땅 가운데 보내지셨다. 즉,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하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Logos) 그 자체가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것이다(요 1:14).
그런데 흥미롭게도 주의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승천하신 후 언어와 관련된 사건이 하나 일어난다. 바로, 오순절 날 제자들이 한 마음이 되어 한 곳에 있었을 때, “성령께서 그들에게 말하게 하시는 대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행 2:4). 이것은 단순히 사람들이 자기가 알지 못하는 언어를 말한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큰 사건이다. 이때 사람들은 모두 놀라고 이상히 여겼지만 아마도 혼돈의 상태는 아니었을 것이다. 바벨탑 사건에서 언어가 혼잡해지고 사람들이 지면에 흩어졌던 것과 대조적으로, 오순절 사건에서는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었을 때 인간의 언어가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소통과 화합이 되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책에 글을 쓴 빅터 산토스는 그림책 작가이자 언어학자이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 ‘작가의 말’을 덧붙여 언어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추가로 제시한다. 세계에는 7천여 개의 언어가 있지만 점차 사라지고 있고, 언어 하나를 잃는다는 것은 곧 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문화가 함께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며 작가는 언어가 점차 사라지는 현상을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에 더하여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다시 떠올렸으면 한다. “오직 성령님께서 너희에게 오신 뒤에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의 맨 끝 지역까지 이르러 나를 위한 증인들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다양한 언어와 문화의 상실에 대한 안타까움보다 더 큰 안타까움은, 예수님께서 우릴 위해 죄의 대가를 치르시고 죽음을 이겨 부활하셨다는 구원의 기쁜 소식을 아직 알지 못하는 영혼들의 상실에 대한 안타까움일 것이다. 인간의 교만을 심판하기 위해 언어를 혼잡하게 하시기도 하고, 또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충만해진 사람들에게는 자신도 모르는 언어를 말하게도 하시는 언어의 주관자는 바로 하나님이시다. 또 세상의 모든 영역이 하나님의 주권 하에 있듯, 언어와 문화도 그 자체가 하나님보다 높아질 수 없음을 기억하자. 언어든 문화든 다양함이 항상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그 언어와 그 문화가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양과 의미와 목적을 지녔는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결국 이 책의 제목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우리를 인간답게, 특히 하나님께서 처음 그분의 형상으로 지으신 모습의 인간답게 우리를 빚어가는 것은 다양한 언어와 문화라기보다는, 바로 하나님의 언어, 하나님의 말씀이다. 깊은 흑암 가운데서도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 말씀의 창조성은 옛날 이야기처럼 성경의 책장 속에 갇혀 있지 않다. 하나님 말씀은 지금도 살아 움직이며 우리를 다듬고 변화시키고 깨끗하게 하신다. 하나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의 자녀답고, 예수님의 제자다운, 그리하여 비로소 참 인간다운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작가 소개
빅터 D.O. 산토스는 브라질에서 태어나 그림책 작가이자 언어학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5개 나라에서 살았고, 10개 언어를 공부했으며, 우크라이나인 부인과 함께 미국 아이오와에 살면서 다문화, 다언어 자녀 두 명을 키우고 있다. 서로를 존중하고, 다양성을 소중히 여기며, 잠재력과 사랑의 힘을 믿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그림책에 담고자 한다.
안나 포를라티는 이탈리아 마체라타에 있는 아르스 인 파불라 일러스트레이션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언어에 관심이 많아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배웠고, 지금은 아랍어를 배우는 중이다.
김현경 | 경인교육대학교 유아교육과 강사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에서 아동미디어교육 전공으로 박사 졸업하였습니다. 영국 캠브릿지 대학교 교육학과 the PLACE 연구소에서 Visiting Scholar를 지냈으며,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 한국위원회(KBBY)에서 사무국장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현재 경인교육대학교 유아교육과 강사로 있으며,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과 미디어에 담긴 세계관 연구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