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멸종위기 동물에 관한 생태 그림책 읽기, 『우리 곧 사라져요』
“그림책 베이직”의 <정보 그림책> 세션에서는
2023년 하반기 동안 ‘우수환경도서’로 선정된 그림책을 중심으로 하여,
우리의 생태 및 환경에 관한 그림책을 살펴보는 글을 연재하고자 한다.
<우리 곧 사라져요> 자세히보기
벌써 작년의 일이다. 아이가 책을 읽다가 내게 물었다. “엄마, 멸종이 뭐야?” 노트북 스크린만 주시하고 있던 나는 잠깐 눈을 들어 아이가 들고 있는 책을 바라보았다. 그 책에는 온갖 종류의 동물의 멸종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 아이에게 아직 멸종의 개념을 가르치기엔 이르다고 생각했던 나는 복잡한 마음을 숨기고 ‘멸종’에 대한 설명은 은근슬쩍 건너 뛰고 괜히 아이를 꾸짖었다. “엄마가 연구하는 책은 함부로 보면 안 된다고 했지?” 책을 아이 손에서 빼앗아 치우는데 아이가 집요하게 뜻을 물었다. “엄마, 멸종이 뭔데? 죽는 거야?”
멸종의 사전적인 정의는 ‘생물의 한 종류가 아주 없어짐.’이다. 아이는 일찍 글자를 깨쳐 책을 즐겨 읽었지만 글자를 읽을 줄 안다고 해서, 어떤 내용이든 소화를 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기엔 아직 여린 나이였다. 그래서 아이가 받아들일 수 있을만한 책을 가려서 주곤 했는데 종종 나의 불찰로 아이가 엉뚱한 책을 혼자 읽고 있는 일들이 생기곤 했다. 결국 멸종의 뜻을 들은 아이는 “도도새를 볼 수 없다니! 도도새가 이제 이 세상에 없다니!” 하며 대성통곡을 하였다.
생태 그림책의 하위 주제 중에서 ‘멸종위기 동물’은 빼놓을 수 없는 단골 주제이다. 이번 호에서는 멸종위기 동물의 주제를 다루는 생태 그림책 <우리 곧 사라져요>에 대해 논해보고자 한다. 2022년 우수환경도서로 선정된 <우리 곧 사라져요>는 세련된 그림과 독특한 이야기 구조가 돋보이는 그림책이다. 그러나 그림책에 깔려 있는 세계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도도새가 이제 이 세상에 없다니!’하며 슬피 울던 우리 아이가 과연 이 책을 읽고서는 어떤 생각과 감정이 들까, 조심스러워진다.
표지를 보면, 그림책의 제목인 ‘우리 곧 사라져요’의 뜻을 몸소 보여주려는 듯 표지 제목의 글자 일부가 실제로 사라지는 것처럼 희끗희끗하게 표현되었다. 표지 그림에는 깊은 바다 속, 해초들 사이로 해파리와 물고기들이 그려져 있다. 그런데 제목에 언급되는 ‘우리’는 과연 누구일까?
다양한 바다 동물들이 그려져 있는 면지를 지나고, 제목이 다시금 등장하는 표제지를 지나면 첫 장면의 그림은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시점으로 그려져 있다. 또, 글에서는 지구 표면의 70%를 차지하는 바다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어! 저기 누군가 있네요.’라는 문장이 제시되어 독자의 흥미를 끈다.
다음 장을 펼치면 표지에서 보았던 생소한 물고기 한 마리가 보인다. 민팔물고기다. 민팔물고기는 길을 잃었는지 여기가 어디이고, 우리 가족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인지 궁금해한다. 민팔물고기는 가시해마를 만나 자신과 비슷하게 생긴 물고기를 못 보았는지 물어보지만, 가시해마 역시 친구들을 찾고 있다며 어리둥절해한다. 푸른바다거북도 다가와 자신의 친척들이 모두 사라졌다고 말한다. 이들 주변으로 다양한 바다 동물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이들은 모두 딱 한 마리씩 등장해서 바다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가족과 친구들이 사라져 얼마나 쓸쓸하고 속상한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다음 장에서는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바다를 뒤덮었어요.’라는 장면(독자들은 그림을 통해 이것이 쓰레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과 ‘바다 동물들은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그저 눈만 깜박거릴 뿐이었지요.’라는 장면이 이어진다. 이 장면은 마치 책장을 넘기는 듯 오른쪽 상단에 페이지가 말려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책장을 넘기면 화면을 꽉 채운 그림이 나타나는데, 누군가 양손으로 책을 펼쳐 들고 있다. 그리고 펼쳐진 책장에는 민팔물고기, 가시해마, 푸른바다거북 등 앞에서 등장했던 바다 동물의 모습과 이름이 백과사전처럼 제시되어 있다. 그 다음 장을 보면, 이번에는 아이와 엄마가 함께 책을 보고 있는 모습이 나타난다. 그 책의 제목은 바로 <우리 곧 사라져요>이다. 이 장면에서 아이는 “엄마, 이것 좀 보세요. 바다 동물들이 멸종 위기에 놓여 있대요.”라고 말하고, 엄마는 “그러게, 참 안타까운 일이구나.”라고 답한다. 다시 다음 장을 보면, 책을 읽는 아이와 엄마의 모습이 사실은 해수욕장의 모래밭 위인 것을 알 수 있다. 이들 주변에는 해수욕을 즐기는 여러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는데 오른쪽 하단이 특히 눈에 띈다. ‘쓰레기를 버리지 마세요’라는 안내문 근처에 쓰레기들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기 때문이다.
다시 한 장을 넘기면, 하얀 바탕 위에 민팔물고기 한 마리가 왼쪽 면에 그려져 있고, 오른쪽 면에는 민팔물고기가 이미 멸종되었다는 글이 담겨 있다. 이 장면부터는 앞에서와는 다른 글자체로 글이 쓰여 있어 또 다른 책이 시작되었다는 암시를 준다. 또 한 장을 넘기면 이번에는 검정 바탕 위에 민팔물고기와 글이 왼쪽 면에 제시되고, 오른쪽 면에는 그 민팔물고기를 바라보는 주인공 아이의 옆모습이 커다랗게 그려져 있다. 이 장면의 글은 이러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엄청난 양의 플라스틱이 바다를 떠돌고 있어요. 언젠가 푸른 바닷속에 바다 동물보다 플라스틱이 더 많아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아마도 가장 약한 동물부터 사라지겠죠. 그리고 그다음은…’ 글에서는 동물의 멸종을 이야기하며 가장 약한 동물 다음에 또 누군가 멸종할 것임을 암시한다. 다시 한 장을 넘기면, 이번에는 앞 장면이 담긴 책을 들고 있는 생소한 모양의 청록색 손가락이 그려져 있다. 어떤 존재인지는 다음 장에 나오는데, 놀랍게도 이들은 외계인이다. 외계인 아이와 엄마는 이 책을 보며 이러한 대화를 나눈다. “엄마, 이것 좀 보세요. 지구 동물들이 멸종 위기에 놓여 있대요.” “그러게, 참 안타까운 일이구나.”
이 대화는 앞서 주인공 아이와 엄마가 멸종위기 동물에 관한 책을 보며 나눈 대화와 매우 유사하다. 즉, 앞에서 주인공 아이는 ‘바다 동물들’이 멸종 위기에 놓였다는 말을 엄마에게 전하는데, 지금은 외계인 아이가 ‘지구 동물들’이 멸종 위기에 놓였다는 말을 엄마에게 전하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 주인공 아이가 보고 있는 책 속에 멸종 위기에 놓은 바다 동물들의 그림이 있었던 것처럼, 이번에는 외계인 아이가 보고 있는 책 속에는 민팔물고기와 함께 ‘인간 아이’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즉, 이 이야기는 인간이 동물의 일종이라는 것과 함께 인간도 결국 멸종하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또, 외계인 아이와 엄마가 함께 보고 있는 책의 제목은 외계어로 되어 있는데, 우리 말로 번역하면 ‘우리 곧 사라져요’이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외계인 엄마와 아이가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고 있는 뒷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이것은 그림책의 첫 장면과 유사하다.
앞에서 자세히 살펴본 바와 같이, 이 그림책은 이야기가 시작되는 장면과 끝나는 장면이 마치 그림으로 수미상관을 이루는 듯 비슷하게 연출되었다. 또한 처음에는 멸종위기 동물들 이야기를 들려주다가 줌아웃하여 이 동물들을 바라보고 있는 아이와 엄마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다시 줌아웃하여 멸종위기 동물과 아이를 바라보고 있는 외계인 아이와 엄마의 이야기를 들려주어, 반복적인 줌아웃 형식과 액자식 구성으로 독특한 이야기 구조를 지니고 있다. 즉, 이 책에는 총 세 개의 이야기- 멸종위기 동물들의 이야기, 아이와 엄마의 이야기, 외계인 아이와 엄마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셈이다. 특히 앞의 두 가지 이야기에서 쓰여진 글자체와 세 번째 이야기에서 쓰여진 글자체를 서로 다르게 하여 마치 다른 목소리로 전개되는 다른 책이라는 것을 암시하듯 섬세하게 디자인되었다. 어쩌면 앞의 두 이야기는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현실적인 이야기이고, 뒤의 세번째 이야기는 미래에 이러할 것이라고 하는 상상의 이야기라는 것을 구분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작가가 이토록 섬세하게 글자체와 이야기 구조 등을 계획한 것은 아마도 멸종위기 동물의 심각성과 우리들의 책임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하여 이것이 단순히 바다동물의 문제가 아니며 인간에게도 위기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멸종의 위기가 ‘동물’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도 있음을 일깨워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이 그림책에서 적어도 다음의 두 가지 면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인간의 멸종, 특히 어린이가 민팔물고기처럼 멸종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과연 어린이 독자에게 적합한 내용인가?
인간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도 충격적이지만, 특히 이 책을 읽을 유아들은 자기 또래의 아이가 멸종위기동물 책에 그려져 있는 장면을 보고 과연 어떻게 반응할까? 꼭 환경 문제가 아니더라도 이사를 가면서 친구와 이별하거나 가까운 가족의 죽음을 경험하는 것과 같은 주제는 유아에게 있어 특별한 사건이다. 이러한 ‘상실감’으로 인해 유아의 심리적인 건강이 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교사와 부모 등 유아의 보호자는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그런데 ‘동물’의 멸종이라는 주제도 어렵고 무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될 유아에게 유아 자신의 멸종을 이야기하는 것은 지나친 표현이 아닐까? 실상은 현재의 환경 위기에서 잘못을 반복해온 사람도, 책임지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사람도 성인이건만 작가는 왜 인간 중에서도 ‘어린이’에게 협박의 말을 거는 것인지 의아하다.
둘째, 인간의 모습이 너무 부정적으로 치우쳐 그려진 것은 아닌가?
생태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자세는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 세계에 대한 ‘책임감 있는’ 태도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 세계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 특히 부정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반성과 성찰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잘 다스리라고 소명을 받은 청지기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인간의 특별한 존엄성에 대한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으로 만드신 존재이다. 인간이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다는 그 정체성으로 인해 인간은 존귀하다. 그런데 많은 생태 그림책에서 인간의 잘못과 책임을 강조하다 보니 인간이 마치 악하기만 한 존재, 지구에 불필요한 존재, 폐만 끼치는 존재로 그려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러한 생각이 반복되면 지나친 죄책감을 넘어서서 인간 혐오의 문제가 생겨날 수 있다. 실제로 ‘자발적 인류절멸운동(VHEMT)'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인류가 없을 때 지구가 더 나아질 것으로 생각하는 것으로서 반출생주의와 맥을 같이 한다.
따라서 그림책에서 인간을 너무 부정적으로만 묘사하기 보다는, 잘못에 대해 책임을 지고 지구 환경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함께 균형을 이루어 묘사할 필요가 있다.
최근에 출판되고 있는 다양한 생태 주제의 그림책들은 예술적이다. 뛰어난 색감, 독특한 이야기 구조, 반전에 반전을 이루는 흥미로운 이야기 전개는 생태 그림책을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 그래서 생태 위기의 책임감을 드러내는 생태 그림책은 그저 ‘착한’ 책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야기 속의 세계관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조심스러운’ 책들도 분명히 있다. 특별히 그림책을 즐겨 있는 유아 독자에게 좋은 양식이 되는 책은 무엇일지 신중하게 생각하며 책을 고르고 읽어주어야 하겠다.
| 김현경 | 성균관대학원 아동청소년학과 박사과정 수료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영국 캠브릿지 대학교 교육학과 the PLACE 연구소에서 Visiting Scholar를 지냈습니다.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과 미디어에 담긴 세계관 연구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
생태멸종위기 동물에 관한 생태 그림책 읽기, 『우리 곧 사라져요』
“그림책 베이직”의 <정보 그림책> 세션에서는
2023년 하반기 동안 ‘우수환경도서’로 선정된 그림책을 중심으로 하여,
우리의 생태 및 환경에 관한 그림책을 살펴보는 글을 연재하고자 한다.
<우리 곧 사라져요> 자세히보기
벌써 작년의 일이다. 아이가 책을 읽다가 내게 물었다. “엄마, 멸종이 뭐야?” 노트북 스크린만 주시하고 있던 나는 잠깐 눈을 들어 아이가 들고 있는 책을 바라보았다. 그 책에는 온갖 종류의 동물의 멸종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 아이에게 아직 멸종의 개념을 가르치기엔 이르다고 생각했던 나는 복잡한 마음을 숨기고 ‘멸종’에 대한 설명은 은근슬쩍 건너 뛰고 괜히 아이를 꾸짖었다. “엄마가 연구하는 책은 함부로 보면 안 된다고 했지?” 책을 아이 손에서 빼앗아 치우는데 아이가 집요하게 뜻을 물었다. “엄마, 멸종이 뭔데? 죽는 거야?”
멸종의 사전적인 정의는 ‘생물의 한 종류가 아주 없어짐.’이다. 아이는 일찍 글자를 깨쳐 책을 즐겨 읽었지만 글자를 읽을 줄 안다고 해서, 어떤 내용이든 소화를 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기엔 아직 여린 나이였다. 그래서 아이가 받아들일 수 있을만한 책을 가려서 주곤 했는데 종종 나의 불찰로 아이가 엉뚱한 책을 혼자 읽고 있는 일들이 생기곤 했다. 결국 멸종의 뜻을 들은 아이는 “도도새를 볼 수 없다니! 도도새가 이제 이 세상에 없다니!” 하며 대성통곡을 하였다.
생태 그림책의 하위 주제 중에서 ‘멸종위기 동물’은 빼놓을 수 없는 단골 주제이다. 이번 호에서는 멸종위기 동물의 주제를 다루는 생태 그림책 <우리 곧 사라져요>에 대해 논해보고자 한다. 2022년 우수환경도서로 선정된 <우리 곧 사라져요>는 세련된 그림과 독특한 이야기 구조가 돋보이는 그림책이다. 그러나 그림책에 깔려 있는 세계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도도새가 이제 이 세상에 없다니!’하며 슬피 울던 우리 아이가 과연 이 책을 읽고서는 어떤 생각과 감정이 들까, 조심스러워진다.
표지를 보면, 그림책의 제목인 ‘우리 곧 사라져요’의 뜻을 몸소 보여주려는 듯 표지 제목의 글자 일부가 실제로 사라지는 것처럼 희끗희끗하게 표현되었다. 표지 그림에는 깊은 바다 속, 해초들 사이로 해파리와 물고기들이 그려져 있다. 그런데 제목에 언급되는 ‘우리’는 과연 누구일까?
다양한 바다 동물들이 그려져 있는 면지를 지나고, 제목이 다시금 등장하는 표제지를 지나면 첫 장면의 그림은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시점으로 그려져 있다. 또, 글에서는 지구 표면의 70%를 차지하는 바다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어! 저기 누군가 있네요.’라는 문장이 제시되어 독자의 흥미를 끈다.
다음 장을 펼치면 표지에서 보았던 생소한 물고기 한 마리가 보인다. 민팔물고기다. 민팔물고기는 길을 잃었는지 여기가 어디이고, 우리 가족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인지 궁금해한다. 민팔물고기는 가시해마를 만나 자신과 비슷하게 생긴 물고기를 못 보았는지 물어보지만, 가시해마 역시 친구들을 찾고 있다며 어리둥절해한다. 푸른바다거북도 다가와 자신의 친척들이 모두 사라졌다고 말한다. 이들 주변으로 다양한 바다 동물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이들은 모두 딱 한 마리씩 등장해서 바다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가족과 친구들이 사라져 얼마나 쓸쓸하고 속상한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다음 장에서는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바다를 뒤덮었어요.’라는 장면(독자들은 그림을 통해 이것이 쓰레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과 ‘바다 동물들은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그저 눈만 깜박거릴 뿐이었지요.’라는 장면이 이어진다. 이 장면은 마치 책장을 넘기는 듯 오른쪽 상단에 페이지가 말려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책장을 넘기면 화면을 꽉 채운 그림이 나타나는데, 누군가 양손으로 책을 펼쳐 들고 있다. 그리고 펼쳐진 책장에는 민팔물고기, 가시해마, 푸른바다거북 등 앞에서 등장했던 바다 동물의 모습과 이름이 백과사전처럼 제시되어 있다. 그 다음 장을 보면, 이번에는 아이와 엄마가 함께 책을 보고 있는 모습이 나타난다. 그 책의 제목은 바로 <우리 곧 사라져요>이다. 이 장면에서 아이는 “엄마, 이것 좀 보세요. 바다 동물들이 멸종 위기에 놓여 있대요.”라고 말하고, 엄마는 “그러게, 참 안타까운 일이구나.”라고 답한다. 다시 다음 장을 보면, 책을 읽는 아이와 엄마의 모습이 사실은 해수욕장의 모래밭 위인 것을 알 수 있다. 이들 주변에는 해수욕을 즐기는 여러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는데 오른쪽 하단이 특히 눈에 띈다. ‘쓰레기를 버리지 마세요’라는 안내문 근처에 쓰레기들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기 때문이다.
다시 한 장을 넘기면, 하얀 바탕 위에 민팔물고기 한 마리가 왼쪽 면에 그려져 있고, 오른쪽 면에는 민팔물고기가 이미 멸종되었다는 글이 담겨 있다. 이 장면부터는 앞에서와는 다른 글자체로 글이 쓰여 있어 또 다른 책이 시작되었다는 암시를 준다. 또 한 장을 넘기면 이번에는 검정 바탕 위에 민팔물고기와 글이 왼쪽 면에 제시되고, 오른쪽 면에는 그 민팔물고기를 바라보는 주인공 아이의 옆모습이 커다랗게 그려져 있다. 이 장면의 글은 이러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엄청난 양의 플라스틱이 바다를 떠돌고 있어요. 언젠가 푸른 바닷속에 바다 동물보다 플라스틱이 더 많아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아마도 가장 약한 동물부터 사라지겠죠. 그리고 그다음은…’ 글에서는 동물의 멸종을 이야기하며 가장 약한 동물 다음에 또 누군가 멸종할 것임을 암시한다. 다시 한 장을 넘기면, 이번에는 앞 장면이 담긴 책을 들고 있는 생소한 모양의 청록색 손가락이 그려져 있다. 어떤 존재인지는 다음 장에 나오는데, 놀랍게도 이들은 외계인이다. 외계인 아이와 엄마는 이 책을 보며 이러한 대화를 나눈다. “엄마, 이것 좀 보세요. 지구 동물들이 멸종 위기에 놓여 있대요.” “그러게, 참 안타까운 일이구나.”
이 대화는 앞서 주인공 아이와 엄마가 멸종위기 동물에 관한 책을 보며 나눈 대화와 매우 유사하다. 즉, 앞에서 주인공 아이는 ‘바다 동물들’이 멸종 위기에 놓였다는 말을 엄마에게 전하는데, 지금은 외계인 아이가 ‘지구 동물들’이 멸종 위기에 놓였다는 말을 엄마에게 전하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 주인공 아이가 보고 있는 책 속에 멸종 위기에 놓은 바다 동물들의 그림이 있었던 것처럼, 이번에는 외계인 아이가 보고 있는 책 속에는 민팔물고기와 함께 ‘인간 아이’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즉, 이 이야기는 인간이 동물의 일종이라는 것과 함께 인간도 결국 멸종하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또, 외계인 아이와 엄마가 함께 보고 있는 책의 제목은 외계어로 되어 있는데, 우리 말로 번역하면 ‘우리 곧 사라져요’이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외계인 엄마와 아이가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고 있는 뒷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이것은 그림책의 첫 장면과 유사하다.
앞에서 자세히 살펴본 바와 같이, 이 그림책은 이야기가 시작되는 장면과 끝나는 장면이 마치 그림으로 수미상관을 이루는 듯 비슷하게 연출되었다. 또한 처음에는 멸종위기 동물들 이야기를 들려주다가 줌아웃하여 이 동물들을 바라보고 있는 아이와 엄마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다시 줌아웃하여 멸종위기 동물과 아이를 바라보고 있는 외계인 아이와 엄마의 이야기를 들려주어, 반복적인 줌아웃 형식과 액자식 구성으로 독특한 이야기 구조를 지니고 있다. 즉, 이 책에는 총 세 개의 이야기- 멸종위기 동물들의 이야기, 아이와 엄마의 이야기, 외계인 아이와 엄마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셈이다. 특히 앞의 두 가지 이야기에서 쓰여진 글자체와 세 번째 이야기에서 쓰여진 글자체를 서로 다르게 하여 마치 다른 목소리로 전개되는 다른 책이라는 것을 암시하듯 섬세하게 디자인되었다. 어쩌면 앞의 두 이야기는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현실적인 이야기이고, 뒤의 세번째 이야기는 미래에 이러할 것이라고 하는 상상의 이야기라는 것을 구분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작가가 이토록 섬세하게 글자체와 이야기 구조 등을 계획한 것은 아마도 멸종위기 동물의 심각성과 우리들의 책임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하여 이것이 단순히 바다동물의 문제가 아니며 인간에게도 위기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멸종의 위기가 ‘동물’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도 있음을 일깨워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이 그림책에서 적어도 다음의 두 가지 면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인간의 멸종, 특히 어린이가 민팔물고기처럼 멸종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과연 어린이 독자에게 적합한 내용인가?
인간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도 충격적이지만, 특히 이 책을 읽을 유아들은 자기 또래의 아이가 멸종위기동물 책에 그려져 있는 장면을 보고 과연 어떻게 반응할까? 꼭 환경 문제가 아니더라도 이사를 가면서 친구와 이별하거나 가까운 가족의 죽음을 경험하는 것과 같은 주제는 유아에게 있어 특별한 사건이다. 이러한 ‘상실감’으로 인해 유아의 심리적인 건강이 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교사와 부모 등 유아의 보호자는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그런데 ‘동물’의 멸종이라는 주제도 어렵고 무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될 유아에게 유아 자신의 멸종을 이야기하는 것은 지나친 표현이 아닐까? 실상은 현재의 환경 위기에서 잘못을 반복해온 사람도, 책임지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사람도 성인이건만 작가는 왜 인간 중에서도 ‘어린이’에게 협박의 말을 거는 것인지 의아하다.
둘째, 인간의 모습이 너무 부정적으로 치우쳐 그려진 것은 아닌가?
생태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자세는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 세계에 대한 ‘책임감 있는’ 태도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 세계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 특히 부정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반성과 성찰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잘 다스리라고 소명을 받은 청지기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인간의 특별한 존엄성에 대한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으로 만드신 존재이다. 인간이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다는 그 정체성으로 인해 인간은 존귀하다. 그런데 많은 생태 그림책에서 인간의 잘못과 책임을 강조하다 보니 인간이 마치 악하기만 한 존재, 지구에 불필요한 존재, 폐만 끼치는 존재로 그려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러한 생각이 반복되면 지나친 죄책감을 넘어서서 인간 혐오의 문제가 생겨날 수 있다. 실제로 ‘자발적 인류절멸운동(VHEMT)'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인류가 없을 때 지구가 더 나아질 것으로 생각하는 것으로서 반출생주의와 맥을 같이 한다.
따라서 그림책에서 인간을 너무 부정적으로만 묘사하기 보다는, 잘못에 대해 책임을 지고 지구 환경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함께 균형을 이루어 묘사할 필요가 있다.
최근에 출판되고 있는 다양한 생태 주제의 그림책들은 예술적이다. 뛰어난 색감, 독특한 이야기 구조, 반전에 반전을 이루는 흥미로운 이야기 전개는 생태 그림책을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 그래서 생태 위기의 책임감을 드러내는 생태 그림책은 그저 ‘착한’ 책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야기 속의 세계관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조심스러운’ 책들도 분명히 있다. 특별히 그림책을 즐겨 있는 유아 독자에게 좋은 양식이 되는 책은 무엇일지 신중하게 생각하며 책을 고르고 읽어주어야 하겠다.
김현경 | 성균관대학원 아동청소년학과 박사과정 수료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영국 캠브릿지 대학교 교육학과 the PLACE 연구소에서 Visiting Scholar를 지냈습니다.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과 미디어에 담긴 세계관 연구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