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에 관한 생태 그림책 읽기, 『미세미세한 맛 플리수프』

2023-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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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에 관한 생태 그림책 읽기, 『미세미세한 맛 플리수프』



“그림책 베이직”의 <정보 그림책> 세션에서는 2023년 하반기 동안 
‘우수환경도서’로 선정된 그림책을 중심으로 하여, 
우리의 생태 및 환경에 관한 그림책을 살펴보는 글을 연재하고자 한다.



<미세미세한 맛 플라수프> 자세히보기


며칠 전 반찬 가게에서 반찬 두어 가지를 골라 계산하는데 가게 사장님이 겸연쩍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혹시 비닐봉투 필요하세요? 이제 봉투 값을 따로 받거든요.” “아, 괜찮아요. 그냥 들고 갈게요.”

‘한동안은 장바구니를 들고 다녔었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일회용 비닐봉지를 마음 편히 사용해 왔던 걸까?’ 곰곰이 생각하며 집에 왔는데 그러고보니 부엌 베란다에 쌓여 있는 많은 쓰레기들이 부끄러워졌다. 우리 아파트에서는 일주일에 하루, 목요일에만 재활용품을 분리 배출한다. 많지도 않은 세 식구가 사는데도 목요일이 가까워오면 베란다에 모아 놓은 재활용품이 어찌나 많은지 “아니, 쓰레기가 왜 이렇게 많아?”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생태’를 뜻하는 영어 단어 ecology는 ‘집’을 뜻하는 그리스어 oikos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진다. 즉, 지구를 하나의 집으로 보고 동물, 식물, 인간 등이 유기적으로 서로 깊은 관계를 맺고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살아가는 매일의 삶 속에서 다양한 생태 이슈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생태 이슈 중에는 ‘쓰레기’ 문제를 빼놓을 수 없으며, 이 주제를 다루는 그림책도 여러 권 찾아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이번 호에는 2022년에 환경부 우수환경도서로 선정되고, 같은 해에 볼로냐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수상작으로도 선정된 그림책, <미세미세한 맛 플라수프>(김지형, 조은수 글, 김지형 그림, 두마리토끼책)를 자세히 살펴보겠다.

그림책의 앞 표지를 보면 책의 제목이 그림과 어우러져 플라스틱 조립 장난감을 연상시킨다. 특히 ‘플라수프’라는 글자는 블록 장난감과 플라스틱 빨대, 리본, 칫솔, 빨래집게와 볼펜 등의 이미지로 만들어져 글자 같기도 하고, 그림 같기도 하여 매우 탁월한 아이코노텍스트를 보여준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플라스틱 제품이다. ‘플라수프’의 ‘플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림에서 모두 보여주는 셈이다.

조약돌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군데 군데 놓여 있는 앞 면지를 넘기고, 그림책 제목이 나오는 표제지를 넘기면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한 아이가 망가진 자동차 장난감을 손에 들고 ‘우앙~’하며 입을 크게 벌리고 울고 있다. 글은 대화체의 문장으로 제시되는데, 엄마의 목소리일 것으로 짐작된다. “울지 마. 울지 마! 얼른 뚝! 망가졌으면 또 사면 되는데 왜 울어?”

그 다음에는 펼친 면 가득 플라스틱 제품들이 그림책 표지의 이미지와 비슷하게 제시된다. 여러 종류의 옷과 치약, 칫솔, 면도기, 샴푸 등 일상에서 흔히 사용되는 제품들이다. 다음 장면 역시 펼친 면 가득 플라스틱 제품들이 제시되는데, 주로 아이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들로 가득하다. 이 두 펼친 면의 글 역시 아이 엄마의 목소리로 예상된다. “플라스틱 천국엔 없는 게 없거든.” “블링블링 값싸고 예쁘고 편리한 물건이 수두룩 빽빽. 폴리가 갖고 싶다면 뭐든지 다 사 줄게.”

다음 장에서 아이는 새로운 장난감을 손에 들고 기뻐하고, 아이 뒤로 보이는 쓰레기통에는 플라스틱 장난감이 쌓여 있다. 또, 집 밖 거리에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나뒹굴고 있고, 쓰레기 주변에 동그랗고 작은 알갱이들이 함께 그려져 있다. 이 동그랗고 작은 알갱이들은 이후 그림책 장면마다 등장하는데, 아이가 씻을 때도, 세탁기가 돌아갈 때도 나오고, 집집마다 하수구를 통해 배출되어 하수도와 비를 타고 바다로 나간다.

작은 물고기가 알갱이들을 삼키고,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삼키고, 커다란 그물이 큰 물고기를 삼키며, 결국 주인공 아이인 폴리가 큰 물고기를 삼킨다. 이제 알갱이들은 폴리 몸속에 들어와 장기 뿐만 아니라 온몸 구석구석을 차지한다. 그렇게 들어온 알갱이들이 폴리 몸에 쌓이고 쌓여서 폴리는 점점 플라스틱 장난감 모양으로 변한다.

“앗, 내가 플라스틱 장난감이 된 거 같아요.”라고 말하는 폴리에게 엄마는 “걱정 마, 폴리야. 너를 위해 맛난 수프를 만들어 줄게.”라고 이야기하고, 다음 장에서 폴리가 “엄마, 이 수프 이름이 뭐예요?”라고 묻자, 엄마는 “미세미세한 맛 플라수프란다.” 라고 대답한다. 이야기의 마지막 장에는 암흑을 배경으로 여러 바다 동물과 폴리, 엄마의 몸이 알록달록한 알갱이로 가득 차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동그랗고 작은 알갱이는 바로 미세 플라스틱이다.

그림책의 뒷부분에는 플라스틱과 미세플라스틱에 대한 정보와 함께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글로 제시된다. 플라스틱이 처음에는 아주 놀라운 발명품이었지만, 자연 재료가 아니다 보니 쉽게 분해되지 않아 자연으로 돌아가는 데 500여년의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지적한다. 특히 미세 플라스틱은 땅과 물, 공기 중에 쌓일 뿐 아니라 식재료를 통해 우리 몸 속에 쌓이기 때문에 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플라스틱 용기 사용을 줄이거나 재사용하고, 나라의 정책이나 개인의 창의적인 발명도 도움이 된다고 알린다.

너무 많은 쓰레기가 생기는 점 특히, 잘 분해되지 않는 플라스틱 사용이 환경에 미칠 영향을 인지하고 책임감을 갖고 행동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주제이다. 그러나 이 그림책을 읽을 유아 독자(reader)를 생각해 보았을 때, 몇 가지 점에서 매우 우려가 된다.


첫째, 부모는 어떤 존재로 그려지는가?

이 그림책에는 폴리와 함께 엄마가 등장한다. 이야기의 극적인 재미 또는 개연성을 위해 설정된 성격이겠지만 폴리의 엄마는 이기적이고 소비주의적이며 자녀 교육을 소홀히 하는 부모로 그려진다. 예를 들어, 폴리가 장난감이 망가져서 울음을 터뜨리자 엄마는 망가졌으면 또 사면된다며, 폴리가 갖고 싶다면 뭐든지 다 사주겠다고 말한다. 엄마의 이런 무책임하고 소비주의적인 행동 때문일까, 폴리 방의 쓰레기통에는 장난감들이 수북하다.



게다가 엄마는 폴리에게 바다에서 난 천연 재료로 만든 특별 수프를 만들어 준다. 이 장면은 의아함을 넘어 섬뜩하기까지 하다. 엄마가 직접 ‘천연 재료’로 만드는 수프라고 말했으니, 천연 재료 안에 미세플라스틱이 얼마나 많은지에 대해서 엄마는 몰랐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완성된 수프의 이름을 묻는 폴리에게 엄마가 ‘미세미세한 맛 플라수프’라고 대답하기 때문이다. 엄마는 이것이 미세 플라스틱으로 가득한 수프임을 아는 것이 분명하다. 이 대목에서는 폴리 엄마가 과연 아이가 잘 먹고 쑥쑥 크기를 바라는 것인지, 미세 플라스틱이 가득한 수프를 먹고 해롭기를 바라는 것인지 혼란스럽다.


둘째, 어린이는 어떤 존재로 그려지는가?

폴리는 사실 여느 아이와 다름없는 평범한 아이로 보인다. 이 그림책에서 폴리는 장난감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장난감이 망가졌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우지 못했을 뿐 생태 위기에 대한 책임을 질 만한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

그러나 이 그림책에서는 ‘어린이’가 마치 환경 오염의 주된 원인 제공자인 것처럼 묘사한다. 장난감이 망가졌다고 우는 장면과 물고기를 먹는 장면에서 폴리는 커다란 입과 이빨이 강조되어 그려졌는데, 이러한 모습은 폴리의 탐욕스러운 마음을 암시하는 듯하다. 또, 부모님이 차려 주신 음식을 먹었을 뿐인데, 미세 플라스틱이 몸속에 쌓여 마치 플라스틱 장난감이 될 것처럼 그려진다.

도대체 폴리가 무엇을 잘못했는가? 이 그림책을 읽는 어린이 독자들은 폴리 몸 속에 미세 플라스틱이 쌓이는 것을 지켜보면서 과연 어떤 생각과 감정이 들까? 어린이 독자들은 폴리에게 동일시하면서 자신의 건강이 해로워질 것을 염려하지 않을까? 또, 폴리에게 플라수프를 만들어주는 엄마를 보며 ‘엄마’라는 존재를 신뢰할 수 있을까?



특히 이 그림책의 매력적인 그림은 그 자체로 임팩트가 있어, 어린이 독자들에게 더 큰 공포심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우려된다.


셋째, 미세 플라스틱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보다는 정확한 정보를 전달할 필요가 있다. 

이 그림책의 뒤에는 ‘플라스틱’에 대한 다양한 정보가 제시되고 있어 이야기에서 다 전달하지 못한 내용을 보완하고 있다. 정확한 수치를 알지 못하더라도 플라스틱의 과다 사용 문제나 미세 플라스틱의 해로움에 대해서는 많은 어른들이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림책에서 미세 플라스틱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려면 좀더 정확한 근거에 기반한 정보가 필요하다.

이 그림책에서는 미세 플라스틱의 해로움에 대하여 ‘우리 몸에 들어와 세포를 죽이고,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고, 뇌로 가서 신경독성 물질이 된다고 해요!’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해로움에 대해 설명할 때 ‘세포를 죽이고’, ‘독성 물질’과 같은 다소 충격적인 단어를 사용한 것에 비하면, 현재까지 미세 플라스틱에 대해 어떤 사실들이 밝혀졌는지, 우리가 일상에서 잘 알지 못하는 중에 미세 플라스틱을 얼마나 먹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 부족하다. 이 그림책을 충실히 읽은 어린이 독자들은 폴리의 예를 떠올리며 저녁 식탁에 차려진 생선 요리를 먹으면 내 몸의 세포가 죽고, 내 머릿속에 독성 물질이 쌓일 것이라는 공포심에 휩싸일지도 모를 일이다.

이 그림책의 앞 면지에는 작은 조약돌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배치되어 있는데, 뒤 면지에는 앞 면지와 같은 그림이 제시되면서 한 문장의 글이 더해진다. 그 문장은 이러하다. “잠깐, 내가 아직도 조약돌로 보이니?” 마치 공포 영화에 나오는 대사를 연상시키는 이 문장은 이 그림책의 전반적인 어조가 공포스러움과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와 환경은 매우 중요하며, 우리는 지구와 환경을 잘 돌보고 관리할 책임이 있다. 왜냐하면 지구를 하나님이 창조하셨기 때문이고, 하나님이 우리를 청지기로 부르시고 지구 돌봄의 프로젝트에 우리를 초청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신 지구를 감히 인간인 우리가 함부로 대할 수 없다. 그러나 반대로 지구와 환경, 생태의 중요성을 강조하느라고 인간을 함부로 대해서도 안 될 일이다.

그림책은 매력적인 매체이면서 동시에 어린 독자들이 즐겨 읽는 일상적인 매체이기도 하다. 즉, 그림책을 읽으면서 어린이들은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림책이 언제나 어린이들에게 말을 건다는 것을 떠올리면, 우리 어른들이 그림책을 선정하고 읽어주는 작업이 좀 더 세심하게 이루어져야 함을 짐작할 수 있다.

어린이가 환경의 문제를 인식하고 바른 태도를 배워 나가는 데 있어 그림책은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그림책에 사람들이 어떻게 묘사되고 있는지, 특히 어린이를 돌볼 책임이 있는 어른의 태도가 어떠한지, 그리고 어린이의 존엄성이 지켜지고 있는지 등을 생각하며 읽어야 한다. 즉, 어린이 독자에게 지나친 공포심과 두려움을 심어주지는 않는지 잘 살펴보아야 하겠다. 더 나아가서 우리가 청지기로서 무엇을 실천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어른과 어린이가 그림책을 함께 읽고 많은 대화를 나누기를 권한다.




김현경 | 성균관대학원 아동청소년학과 박사과정 수료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영국 캠브릿지 대학교 교육학과 the PLACE 연구소에서 Visiting Scholar를 지냈습니다.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과 미디어에 담긴 세계관 연구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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