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로의 즐거운 초대 <ㄱㄴㄷ 그림책> (1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예비 학부모가 가장 많이 하는 질문 중의 하나는 한글에 대한 것이다. 최근에는 초등학교에 ‘한글 책임제’가 도입되어서 아직 한글을 완전히 익히지 못하고 입학하더라도 담임교사가 다양한 방법으로 학생을 책임지고 돕는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주변의 이야기를 들으며, 또 간혹 그림책을 술술 읽는 친구들을 보며 어깨가 움츠러드는 여덟 살 어린이가 있다면 다양한 ㄱㄴㄷ 그림책을 읽으며 조금은 즐겁고 가벼운 마음으로 한글의 세계로 들어가보면 어떨까?
‘ㄱㄴㄷ 그림책’ 하면, 나는 참 즐거웠던 시간이 떠오른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우리집은 조금 좁은 편이었다. 그러나 그림책을 공부하던 내게는 만만치 않은 양의 그림책이 있었고, 어쩔 수 없이 집 곳곳에 자리가 보이는 대로 책을 수납하다 보니 아이는 기어 다니고 앉을 수 있게 될 무렵부터 자기 눈높이에 엄마의 그림책이 보이면 장난감처럼 꺼내어 가지고 놀았다. 의도적으로 책을 아이 눈높이에 맞추어 꽂아 둔 것이 아니었기에 아이는 그 나이에 걸맞지 않은 책을 꺼낼 때도 많았다. 아이가 아직 세 살 때의 일이다. 책장에서 <요렇게 해 봐요: 내 몸으로 ㄱㄴㄷ> 그림책을 꺼내 바닥에 펼쳐 놓고 따라하며 놀고 있었다. 이 책은 ㄱ부터 ㅎ까지의 자음을 몸동작으로 표현하는 그림책인데, 아이는 혼자서 몇 번 해 보더니 나를 불러 같이 하자고 했다. 그러고는 ㄱ, ㄴ처럼 비교적 표현하기 쉬운 글자는 자기가 하고, ㅁ, ㅂ처럼 난이도가 높은 글자는 엄마가 하게 했다. 또 둘이 힘을 합해서 모양을 만들어야 할 때는 땀을 뻘뻘 흘리며 도와가며 글자를 만들었다. 그날 저녁, 우리 둘이 놀이 매트 위에서 내복만 입고 뒹굴며 얼마나 깔깔거리고 신나게 글자 놀이를 했던지, 책의 몇 장은 찢어지기까지 했다. 그때의 웃음소리가 난 지금도 생생하다. 참 그리운 시간들 중 하나이다.
(찢어지고 너덜너덜해진 그림책은 오히려 우리 모자의 즐거웠던 시간을 기억나게 해 주어 더 소중하다.)
<그림책의 이해 2>(2005)에는 ‘제2장 정보 그림책’에서 정보책 분류 중의 하나로 ‘알파벳 책’을 소개하고, ‘제6장 알파벳 그림책’에서 알파벳 그림책에 대해 자세히 소개한다. 알파벳 책은 알파벳 순서에 따라 정보를 배열한 책으로, 국내에서는 ‘글자 그림책’, 혹은 ‘ㄱㄴㄷ 그림책’으로도 불린다. <그림책의 이해 2>가 출간되었을 당시에는 국내에 ㄱㄴㄷ 그림책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ㄱㄴㄷ 그림책보다는 서양의 알파벳 그림책의 사례로 이러한 종류의 책이 지닌 성격이나 분류를 설명할 수 있었다. 최근에 출판되는 알파벳 그림책을 보면, 단어와 사물을 일대일 대응하는 방식 뿐만 아니라 소재와 형식이 훨씬 다양하고 복잡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형태와 내용, 표현 방식이 복잡하고 다양해도 알파벳 그림책을 같은 장르로 묶을 수 있는 것은 어떤 방식이든 알파벳의 연속이라는 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1] <그림책의 이해 2>에서는 알파벳 그림책을 1) 사물의 이름과 단어를 가르치는 책, 2) 전문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책, 3) 상위 언어적인 지식을 요구하는 책, 4) 수수께끼나 놀이를 의도하는 책, 5) 그래픽의 성격이 두드러진 책, 6) 서사가 있는 책, 7) 다문화 교육을 지향하는 책으로 분류하였다. 또, 김민진, 이승륜(2022)의 연구[2]에서는 ㄱㄴㄷ 그림책 총 67권을 선정하여 국내 글자그림책의 유형을 1) 글자정보제공에 치중한 책, 2) 하나의 주제로 연결된 책, 3) 이야기가 있는 책, 4) 놀이를 의도하는 책, 5) 그래픽의 성격이 두드러진 책으로 분류하였다.
이 글, “한글로의 즐거운 초대 ㄱㄴㄷ 그림책”은 1부와 2부로 나누어서 이번 호에서는 ㄱㄴㄷ 그림책의 다양한 유형 중에서 1) 글자정보제공에 충실한 ㄱㄴㄷ 그림책, 2) 이야기가 있는 ㄱㄴㄷ 그림책, 3) 놀이를 의도하는 ㄱㄴㄷ 그림책 유형에 속하는 ㄱㄴㄷ 그림책을 소개하고자 한다.[3]
1) 글자정보제공에 충실한 ㄱㄴㄷ 그림책
‘글자정보제공에 충실한 ㄱㄴㄷ 그림책’ 유형은 한글의 자·모음 글자나 단어가 그림과 대응되는 형식의 책을 말한다. 어떤 책은 책의 앞이나 뒤에 글자그림책을 활용하는 방법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 유형에 속하는 그림책은 ㄱㄴㄷ 그림책이 본래 지닌 역할에 충실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림책 <생각하는 ㄱㄴㄷ>[4]은 한국과 인연이 깊은 폴란드 작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가 그림을 그리고 이지원이 기획한 그림책이다. 한국 작가가 아닌 외국인 작가가 ㄱㄴㄷ 그림책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흥미를 자아낸다.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는 그림책 <생각>, <발가락> 출간을 계기로 한국을 방문했다가 한국의 문화 특히 한글 자모의 간결한 논리성에 매혹되어 글자 그림책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인지 표지만 보아도 제목의 글자들을 한국의 전통 건축물의 모형과 한복을 입은 남자와 여자의 모습, 밥이 소담하게 담겨 있는 밥그릇과 수저, 붓과 종이 등으로 표현하여 한국의 문화를 담으려 한 작가의 노력이 돋보인다. 그림책의 앞뒤 면지에는 훈민정음 해례본에 그림 글자를 덧입혀 새로 구성한 그림이 들어 있다.
이 책은 모든 펼침면이 같은 구성으로 되어 있는데, 왼쪽 면에는 자음자가 크게 그림으로 제시되고 해당 자음자가 들어간 문장이 나온다. 오른쪽 면에는 그 자음자가 들어 있는 단어와 단어의 뜻에 해당하는 그림을 제시하고 있다.
왼쪽 면의 문장은 대체로 각 자음자를 독자들이 눈 여겨 찾아보도록 독려한다. 예를 들어, 본문 첫 펼침면의 문장은 “개미를 들여다보는 김씨 아저씨 ㄱ은 어디에 있나요?”로서, ㄱ에 대한 장면임을 알 수 있다. 문장 안에 한글의 자음자 ‘ㄱ’이 여러 번 등장하며, 문장의 의미 그대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즉, 김씨 아저씨로 보이는 인물이 허리를 굽혀 개미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이 그림이 그 자체로 ‘ㄱ’의 형태를 나타낸다.
오른쪽 면에는 가운데에 ‘ㄱ’ 글자가 그림이 아닌 문자로서 간결하게 제시되며 ‘ㄱ’으로 시작하는 여러 단어- 가위, 기차, 가시, 개미, 거북이, 곰, 가방, 갈색, 그네, 고양이-가 쓰여 있고, 각 단어에 해당하는 그림도 여러 컷 제시된다.
이러한 형식으로 매 펼침면마다 ㄱ~ㅎ까지의 자음자와 단어와 그림이 제시되는 이 그림책을 만들기 위해 외국인 작가가 얼마나 고민하고 연구했을지 짐작되어 더욱 감탄하게 된다. 특히 이 책을 자녀와 읽었던 경험을 나눈 강다혜 선생님의 글이 이번 호 <그림책 베이직>, “아이와 그림책 읽기” 섹션에 실려 있어 함께 읽어 보시기를 권한다.
2) 이야기가 있는 ㄱㄴㄷ 그림책
‘이야기가 있는 ㄱㄴㄷ 그림책’은 등장인물, 배경, 사건과 행위 등이 포함된 단순한 이야기 구조를 취하는 유형의 글자그림책을 말한다. 이 유형에 속하는 그림책의 예로 <아기 예수와 ㄱㄴㄷ> 그림책을 들 수 있다.[5]
이 그림책의 앞 뒤 표지와 제목을 보면 이 그림책이 아기 예수의 탄생 이야기를 담고 있는 ㄱㄴㄷ 그림책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앞 표지에는 제목 아래에 당나귀와 구유, 그리고 아기 예수를 조심스레 안고 있는 마리아의 모습이 그려져 있고, 마리아의 오른편으로는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바치려고 찾아온 동방박사 세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뒤표지에는 하늘의 별과 천사들, 그리고 천사들에게 예수님 탄생 소식을 들은 목자들로 짐작되는 검은 실루엣이 그려져 있다.
표지를 넘기면 제목이 쓰여진 표제지 옆, 작가의 말이 인상적이다. “... 당시에는 그림책을 엄마의 입장이 아닌 새로운 예술표현의 매체로 봤습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은 그때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 그림책을 바라보게 됩니다. 저는 이 책의 바탕이 된 성경을, 어린이에게 주는 신의 메시지가 풍부한 어장으로 봅니다. 그 속의 싱싱한 해산물로 아이들의 영혼을 먹여 주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성경의 바다에 자주 자맥질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이 그림책 역시 매 펼침면마다 한글의 자음자가 하나씩 제시되고 그 자음자로 문장이 시작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ㄱ~ㅎ까지의 자음자에 맞추어 이야기가 전개된다. 펼침면의 왼쪽 면에는 먼저 색깔 있는 자음자가 조금 크게 제시되고, 그 옆에 작은 글씨로 그 자음자의 이름을 표기하였다. 그 아래에는 이야기가 담긴 문장이 나오는데 자음자가 들어 있는 첫 단어는 굵게 표시하여 독자가 주목해서 보도록 하였다. 펼침면의 오른쪽은 자음자의 모양을 본떠서 그림이 제시된다. 예를 들어, ‘ㄱ’의 경우에는 그림이 ‘ㄱ’ 모양으로 제시된다. 전체적으로 모든 장면이 흰색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글과 그림이 모두 깔끔하게 제시된다.
‘이야기가 있는 ㄱㄴㄷ 그림책’이기에 ㄱ부터 ㅎ까지의 순서를 지키면서도 아기 예수의 탄생 이야기를 시간의 흐름대로 자연스럽게 이어간 작가의 노고가 돋보인다. 특히 ‘ㅍ’은 “평화의 왕 아기 예수”, ‘ㅎ’은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을 보내 주셔서.”로 찬양과 감사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그림책의 마지막 장에는 ‘함께 읽을 성경 구절’ 코너가 있어 ‘ㄱ, ㄴ, ㄷ, ㅂ, ㅅ, ㅍ, ㅎ’에 해당하는 글의 내용이 들어 있는 성경 구절을 안내하고 있다.
3) 놀이를 의도하는 ㄱㄴㄷ 그림책
‘놀이를 의도하는 ㄱㄴㄷ 그림책’은 글자그림책을 읽으면서 수수께끼, 숨은 그림 찾기, 신체 활동, 노래 부르기 등 놀이 활동을 함께 해 보도록 제작된 형태의 글자그림책을 뜻한다. 김민진, 이승륜(2022)의 연구에 따르면 국내 글자 그림책의 유형 중에 ‘놀이를 의도하는 ㄱㄴㄷ 그림책’이 약 41.8%의 비율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유형에는 수수께끼 글자그림책, 숨은그림찾기 글자그림책, 신체활동 글자그림책, 노래 글자그림책, 말놀이 글자그림책의 하위 유형이 있다. 이 글에서는 그 중에서 신체활동 글자그림책에 해당하는 <요렇게 해 봐요- 내 몸으로 ㄱㄴㄷ>[6] 그림책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
이 책의 표지를 보면 아이와 다람쥐가 몸으로 글자의 형태를 표현하고 있다. 앞 면지에는 본문에 사용되었던 한글 자음자의 모양을 띠는 그림이 장식적으로 배치되어 있고, 뒤 면지에는 ㄱ부터 ㅎ까지 순서대로 한글 자음자의 모양 그림이 한 줄로 제시되고 있다. 본문이 시작되기 전, 표제지 왼편에는 이 책을 활용하는 방법이 친절하게 소개된다. 이 책의 동작들은 아이들이 쉽게 따라할 수 있도록 요가 전문가의 도움으로 개발되었다고 한다.
보통의 ㄱㄴㄷ 그림책과 마찬가지로 이 책 역시 모든 펼침면이 같은 구성으로 되어 있는데, 왼쪽 면에는 한글의 자음자가 크게 중앙에 제시되고, 자음자 위에는 해당 자음자 모양을 하고 있는 그림 글자와 단어가 제시된다. 자음자 아래로는 해당 자음자로 시작되는 문장이 제시된다.
펼침면의 오른쪽에는 자음자의 모양을 몸으로 표현한 대표적인 예시가 가운데에 제시되고, 그 아래에는 몸과 소도구를 활용해서 자음자를 표현한 그 밖의 다양한 예를 그림으로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ㄱ 자음자가 주제가 되는 펼침면에서는 ㄱ이 들어간 단어인 ‘고구마’를 ㄱ 자 모양으로 표현하고, 대표적으로 단어 고구마를 제시한다. 중앙에 크게 표기된 ‘ㄱ’의 색깔은 오른쪽 면에서 몸으로 ‘ㄱ’자를 표현하고 있는 아이가 입은 옷 색깔과 일치한다. 물론, ‘ㄱ’아래에 나오는 문장은 오른쪽 면의 아이가 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모습과 연결된다. ‘ㄱ’에 해당하는 문장은 고마운 세종대왕님께 인사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고, 오른쪽의 그림도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모습을 담고 있어 통일감을 잘 살리고 있다.
한편 글자를 몸으로 표현할 때, ‘ㄱ’이나 ‘ㄴ’처럼 비교적 쉬운 경우도 있지만 ‘ㅁ’이나 ‘ㅂ’처럼 어려운 경우도 있어 같이 몸으로 표현하다 보면 오히려 글자가 마음처럼 잘 만들어지지 않아 더 유쾌하고 즐거운 시간이 되기도 한다. 혼자 하는 것보다도 가족이나 친구가 함께 힘을 합쳐 몸을 움직이며 글자를 만들면 재미있는 놀이 시간이 될 것이다.
[1] 현은자, 김세희 (2005). 그림책의 이해 2, 사계절, 295쪽.
[2] 김민진, 이승륜 (2022). 국내 글자그림책의 특성 분석, 어린이문학교육연구, 23(2), 1-24쪽.
[3] 월간 <그림책 베이직>의 3월호에서는 1) 그래픽의 성격이 두드러진 책, 2) 한글 창제원리를 알려주는 책, 3) 상위 언어 지식을 요구하는 책 유형의 ㄱㄴㄷ 그림책을 소개할 예정이다.
[4] 이지원 기획, 이보나흐미엘레프스카 그림, 생각하는 ㄱㄴㄷ, 논장, 2005.
[5] 정원정 글, 그림, 아기 예수와 ㄱㄴㄷ, 홍성사, 2010.
[6] 김시영 글, 그림, 요렇게 해 봐요- 내 몸으로 ㄱㄴㄷ, 마루벌, 2022 (구판은 2011년도에 출간되었다)
| 김현경 | 성균관대학원 아동청소년학과 박사과정 수료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영국 캠브릿지 대학교 교육학과 the PLACE 연구소에서 Visiting Scholar를 지냈습니다.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과 미디어에 담긴 세계관 연구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
한글로의 즐거운 초대 <ㄱㄴㄷ 그림책> (1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예비 학부모가 가장 많이 하는 질문 중의 하나는 한글에 대한 것이다. 최근에는 초등학교에 ‘한글 책임제’가 도입되어서 아직 한글을 완전히 익히지 못하고 입학하더라도 담임교사가 다양한 방법으로 학생을 책임지고 돕는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주변의 이야기를 들으며, 또 간혹 그림책을 술술 읽는 친구들을 보며 어깨가 움츠러드는 여덟 살 어린이가 있다면 다양한 ㄱㄴㄷ 그림책을 읽으며 조금은 즐겁고 가벼운 마음으로 한글의 세계로 들어가보면 어떨까?
‘ㄱㄴㄷ 그림책’ 하면, 나는 참 즐거웠던 시간이 떠오른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우리집은 조금 좁은 편이었다. 그러나 그림책을 공부하던 내게는 만만치 않은 양의 그림책이 있었고, 어쩔 수 없이 집 곳곳에 자리가 보이는 대로 책을 수납하다 보니 아이는 기어 다니고 앉을 수 있게 될 무렵부터 자기 눈높이에 엄마의 그림책이 보이면 장난감처럼 꺼내어 가지고 놀았다. 의도적으로 책을 아이 눈높이에 맞추어 꽂아 둔 것이 아니었기에 아이는 그 나이에 걸맞지 않은 책을 꺼낼 때도 많았다. 아이가 아직 세 살 때의 일이다. 책장에서 <요렇게 해 봐요: 내 몸으로 ㄱㄴㄷ> 그림책을 꺼내 바닥에 펼쳐 놓고 따라하며 놀고 있었다. 이 책은 ㄱ부터 ㅎ까지의 자음을 몸동작으로 표현하는 그림책인데, 아이는 혼자서 몇 번 해 보더니 나를 불러 같이 하자고 했다. 그러고는 ㄱ, ㄴ처럼 비교적 표현하기 쉬운 글자는 자기가 하고, ㅁ, ㅂ처럼 난이도가 높은 글자는 엄마가 하게 했다. 또 둘이 힘을 합해서 모양을 만들어야 할 때는 땀을 뻘뻘 흘리며 도와가며 글자를 만들었다. 그날 저녁, 우리 둘이 놀이 매트 위에서 내복만 입고 뒹굴며 얼마나 깔깔거리고 신나게 글자 놀이를 했던지, 책의 몇 장은 찢어지기까지 했다. 그때의 웃음소리가 난 지금도 생생하다. 참 그리운 시간들 중 하나이다.
(찢어지고 너덜너덜해진 그림책은 오히려 우리 모자의 즐거웠던 시간을 기억나게 해 주어 더 소중하다.)
<그림책의 이해 2>(2005)에는 ‘제2장 정보 그림책’에서 정보책 분류 중의 하나로 ‘알파벳 책’을 소개하고, ‘제6장 알파벳 그림책’에서 알파벳 그림책에 대해 자세히 소개한다. 알파벳 책은 알파벳 순서에 따라 정보를 배열한 책으로, 국내에서는 ‘글자 그림책’, 혹은 ‘ㄱㄴㄷ 그림책’으로도 불린다. <그림책의 이해 2>가 출간되었을 당시에는 국내에 ㄱㄴㄷ 그림책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ㄱㄴㄷ 그림책보다는 서양의 알파벳 그림책의 사례로 이러한 종류의 책이 지닌 성격이나 분류를 설명할 수 있었다. 최근에 출판되는 알파벳 그림책을 보면, 단어와 사물을 일대일 대응하는 방식 뿐만 아니라 소재와 형식이 훨씬 다양하고 복잡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형태와 내용, 표현 방식이 복잡하고 다양해도 알파벳 그림책을 같은 장르로 묶을 수 있는 것은 어떤 방식이든 알파벳의 연속이라는 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1] <그림책의 이해 2>에서는 알파벳 그림책을 1) 사물의 이름과 단어를 가르치는 책, 2) 전문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책, 3) 상위 언어적인 지식을 요구하는 책, 4) 수수께끼나 놀이를 의도하는 책, 5) 그래픽의 성격이 두드러진 책, 6) 서사가 있는 책, 7) 다문화 교육을 지향하는 책으로 분류하였다. 또, 김민진, 이승륜(2022)의 연구[2]에서는 ㄱㄴㄷ 그림책 총 67권을 선정하여 국내 글자그림책의 유형을 1) 글자정보제공에 치중한 책, 2) 하나의 주제로 연결된 책, 3) 이야기가 있는 책, 4) 놀이를 의도하는 책, 5) 그래픽의 성격이 두드러진 책으로 분류하였다.
이 글, “한글로의 즐거운 초대 ㄱㄴㄷ 그림책”은 1부와 2부로 나누어서 이번 호에서는 ㄱㄴㄷ 그림책의 다양한 유형 중에서 1) 글자정보제공에 충실한 ㄱㄴㄷ 그림책, 2) 이야기가 있는 ㄱㄴㄷ 그림책, 3) 놀이를 의도하는 ㄱㄴㄷ 그림책 유형에 속하는 ㄱㄴㄷ 그림책을 소개하고자 한다.[3]
1) 글자정보제공에 충실한 ㄱㄴㄷ 그림책
‘글자정보제공에 충실한 ㄱㄴㄷ 그림책’ 유형은 한글의 자·모음 글자나 단어가 그림과 대응되는 형식의 책을 말한다. 어떤 책은 책의 앞이나 뒤에 글자그림책을 활용하는 방법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 유형에 속하는 그림책은 ㄱㄴㄷ 그림책이 본래 지닌 역할에 충실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림책 <생각하는 ㄱㄴㄷ>[4]은 한국과 인연이 깊은 폴란드 작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가 그림을 그리고 이지원이 기획한 그림책이다. 한국 작가가 아닌 외국인 작가가 ㄱㄴㄷ 그림책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흥미를 자아낸다.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는 그림책 <생각>, <발가락> 출간을 계기로 한국을 방문했다가 한국의 문화 특히 한글 자모의 간결한 논리성에 매혹되어 글자 그림책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인지 표지만 보아도 제목의 글자들을 한국의 전통 건축물의 모형과 한복을 입은 남자와 여자의 모습, 밥이 소담하게 담겨 있는 밥그릇과 수저, 붓과 종이 등으로 표현하여 한국의 문화를 담으려 한 작가의 노력이 돋보인다. 그림책의 앞뒤 면지에는 훈민정음 해례본에 그림 글자를 덧입혀 새로 구성한 그림이 들어 있다.
이 책은 모든 펼침면이 같은 구성으로 되어 있는데, 왼쪽 면에는 자음자가 크게 그림으로 제시되고 해당 자음자가 들어간 문장이 나온다. 오른쪽 면에는 그 자음자가 들어 있는 단어와 단어의 뜻에 해당하는 그림을 제시하고 있다.
왼쪽 면의 문장은 대체로 각 자음자를 독자들이 눈 여겨 찾아보도록 독려한다. 예를 들어, 본문 첫 펼침면의 문장은 “개미를 들여다보는 김씨 아저씨 ㄱ은 어디에 있나요?”로서, ㄱ에 대한 장면임을 알 수 있다. 문장 안에 한글의 자음자 ‘ㄱ’이 여러 번 등장하며, 문장의 의미 그대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즉, 김씨 아저씨로 보이는 인물이 허리를 굽혀 개미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이 그림이 그 자체로 ‘ㄱ’의 형태를 나타낸다.
오른쪽 면에는 가운데에 ‘ㄱ’ 글자가 그림이 아닌 문자로서 간결하게 제시되며 ‘ㄱ’으로 시작하는 여러 단어- 가위, 기차, 가시, 개미, 거북이, 곰, 가방, 갈색, 그네, 고양이-가 쓰여 있고, 각 단어에 해당하는 그림도 여러 컷 제시된다.
이러한 형식으로 매 펼침면마다 ㄱ~ㅎ까지의 자음자와 단어와 그림이 제시되는 이 그림책을 만들기 위해 외국인 작가가 얼마나 고민하고 연구했을지 짐작되어 더욱 감탄하게 된다. 특히 이 책을 자녀와 읽었던 경험을 나눈 강다혜 선생님의 글이 이번 호 <그림책 베이직>, “아이와 그림책 읽기” 섹션에 실려 있어 함께 읽어 보시기를 권한다.
2) 이야기가 있는 ㄱㄴㄷ 그림책
‘이야기가 있는 ㄱㄴㄷ 그림책’은 등장인물, 배경, 사건과 행위 등이 포함된 단순한 이야기 구조를 취하는 유형의 글자그림책을 말한다. 이 유형에 속하는 그림책의 예로 <아기 예수와 ㄱㄴㄷ> 그림책을 들 수 있다.[5]
이 그림책의 앞 뒤 표지와 제목을 보면 이 그림책이 아기 예수의 탄생 이야기를 담고 있는 ㄱㄴㄷ 그림책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앞 표지에는 제목 아래에 당나귀와 구유, 그리고 아기 예수를 조심스레 안고 있는 마리아의 모습이 그려져 있고, 마리아의 오른편으로는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바치려고 찾아온 동방박사 세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뒤표지에는 하늘의 별과 천사들, 그리고 천사들에게 예수님 탄생 소식을 들은 목자들로 짐작되는 검은 실루엣이 그려져 있다.
표지를 넘기면 제목이 쓰여진 표제지 옆, 작가의 말이 인상적이다. “... 당시에는 그림책을 엄마의 입장이 아닌 새로운 예술표현의 매체로 봤습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은 그때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 그림책을 바라보게 됩니다. 저는 이 책의 바탕이 된 성경을, 어린이에게 주는 신의 메시지가 풍부한 어장으로 봅니다. 그 속의 싱싱한 해산물로 아이들의 영혼을 먹여 주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성경의 바다에 자주 자맥질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이 그림책 역시 매 펼침면마다 한글의 자음자가 하나씩 제시되고 그 자음자로 문장이 시작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ㄱ~ㅎ까지의 자음자에 맞추어 이야기가 전개된다. 펼침면의 왼쪽 면에는 먼저 색깔 있는 자음자가 조금 크게 제시되고, 그 옆에 작은 글씨로 그 자음자의 이름을 표기하였다. 그 아래에는 이야기가 담긴 문장이 나오는데 자음자가 들어 있는 첫 단어는 굵게 표시하여 독자가 주목해서 보도록 하였다. 펼침면의 오른쪽은 자음자의 모양을 본떠서 그림이 제시된다. 예를 들어, ‘ㄱ’의 경우에는 그림이 ‘ㄱ’ 모양으로 제시된다. 전체적으로 모든 장면이 흰색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글과 그림이 모두 깔끔하게 제시된다.
‘이야기가 있는 ㄱㄴㄷ 그림책’이기에 ㄱ부터 ㅎ까지의 순서를 지키면서도 아기 예수의 탄생 이야기를 시간의 흐름대로 자연스럽게 이어간 작가의 노고가 돋보인다. 특히 ‘ㅍ’은 “평화의 왕 아기 예수”, ‘ㅎ’은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을 보내 주셔서.”로 찬양과 감사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그림책의 마지막 장에는 ‘함께 읽을 성경 구절’ 코너가 있어 ‘ㄱ, ㄴ, ㄷ, ㅂ, ㅅ, ㅍ, ㅎ’에 해당하는 글의 내용이 들어 있는 성경 구절을 안내하고 있다.
3) 놀이를 의도하는 ㄱㄴㄷ 그림책
‘놀이를 의도하는 ㄱㄴㄷ 그림책’은 글자그림책을 읽으면서 수수께끼, 숨은 그림 찾기, 신체 활동, 노래 부르기 등 놀이 활동을 함께 해 보도록 제작된 형태의 글자그림책을 뜻한다. 김민진, 이승륜(2022)의 연구에 따르면 국내 글자 그림책의 유형 중에 ‘놀이를 의도하는 ㄱㄴㄷ 그림책’이 약 41.8%의 비율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유형에는 수수께끼 글자그림책, 숨은그림찾기 글자그림책, 신체활동 글자그림책, 노래 글자그림책, 말놀이 글자그림책의 하위 유형이 있다. 이 글에서는 그 중에서 신체활동 글자그림책에 해당하는 <요렇게 해 봐요- 내 몸으로 ㄱㄴㄷ>[6] 그림책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
이 책의 표지를 보면 아이와 다람쥐가 몸으로 글자의 형태를 표현하고 있다. 앞 면지에는 본문에 사용되었던 한글 자음자의 모양을 띠는 그림이 장식적으로 배치되어 있고, 뒤 면지에는 ㄱ부터 ㅎ까지 순서대로 한글 자음자의 모양 그림이 한 줄로 제시되고 있다. 본문이 시작되기 전, 표제지 왼편에는 이 책을 활용하는 방법이 친절하게 소개된다. 이 책의 동작들은 아이들이 쉽게 따라할 수 있도록 요가 전문가의 도움으로 개발되었다고 한다.
보통의 ㄱㄴㄷ 그림책과 마찬가지로 이 책 역시 모든 펼침면이 같은 구성으로 되어 있는데, 왼쪽 면에는 한글의 자음자가 크게 중앙에 제시되고, 자음자 위에는 해당 자음자 모양을 하고 있는 그림 글자와 단어가 제시된다. 자음자 아래로는 해당 자음자로 시작되는 문장이 제시된다.
펼침면의 오른쪽에는 자음자의 모양을 몸으로 표현한 대표적인 예시가 가운데에 제시되고, 그 아래에는 몸과 소도구를 활용해서 자음자를 표현한 그 밖의 다양한 예를 그림으로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ㄱ 자음자가 주제가 되는 펼침면에서는 ㄱ이 들어간 단어인 ‘고구마’를 ㄱ 자 모양으로 표현하고, 대표적으로 단어 고구마를 제시한다. 중앙에 크게 표기된 ‘ㄱ’의 색깔은 오른쪽 면에서 몸으로 ‘ㄱ’자를 표현하고 있는 아이가 입은 옷 색깔과 일치한다. 물론, ‘ㄱ’아래에 나오는 문장은 오른쪽 면의 아이가 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모습과 연결된다. ‘ㄱ’에 해당하는 문장은 고마운 세종대왕님께 인사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고, 오른쪽의 그림도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모습을 담고 있어 통일감을 잘 살리고 있다.
한편 글자를 몸으로 표현할 때, ‘ㄱ’이나 ‘ㄴ’처럼 비교적 쉬운 경우도 있지만 ‘ㅁ’이나 ‘ㅂ’처럼 어려운 경우도 있어 같이 몸으로 표현하다 보면 오히려 글자가 마음처럼 잘 만들어지지 않아 더 유쾌하고 즐거운 시간이 되기도 한다. 혼자 하는 것보다도 가족이나 친구가 함께 힘을 합쳐 몸을 움직이며 글자를 만들면 재미있는 놀이 시간이 될 것이다.
[1] 현은자, 김세희 (2005). 그림책의 이해 2, 사계절, 295쪽.
[2] 김민진, 이승륜 (2022). 국내 글자그림책의 특성 분석, 어린이문학교육연구, 23(2), 1-24쪽.
[3] 월간 <그림책 베이직>의 3월호에서는 1) 그래픽의 성격이 두드러진 책, 2) 한글 창제원리를 알려주는 책, 3) 상위 언어 지식을 요구하는 책 유형의 ㄱㄴㄷ 그림책을 소개할 예정이다.
[4] 이지원 기획, 이보나흐미엘레프스카 그림, 생각하는 ㄱㄴㄷ, 논장, 2005.
[5] 정원정 글, 그림, 아기 예수와 ㄱㄴㄷ, 홍성사, 2010.
[6] 김시영 글, 그림, 요렇게 해 봐요- 내 몸으로 ㄱㄴㄷ, 마루벌, 2022 (구판은 2011년도에 출간되었다)
김현경 | 성균관대학원 아동청소년학과 박사과정 수료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영국 캠브릿지 대학교 교육학과 the PLACE 연구소에서 Visiting Scholar를 지냈습니다.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과 미디어에 담긴 세계관 연구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